# Study
Ⅰ. 악인의 형통함을 항의함 12:1-6
선지자는 하나님과 그의 영혼사이에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이 유익하리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해준다.
(1) 하나님의 판결에 대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그와 변론하는 것은 놀라운 자유이다(1절). 그는 하나님과 쟁변하고자 했다. 이는 그의 처사에서 결함을 찾고자 한것이 아니라 그의미를 알고자 한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수는 없지만 그와 더불어 변론할수는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의미에 대하여 거의 알지못하는 가운데 있을때에도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생각을 여전히 유지하도록 마음을 다지지않으면 안되며,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조금도 부당히 행치않으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실 것임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특정한 섭리들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될때에도 우리는 제 일원리가 되는 일반적인 진리들에 의거해야 하며 그것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섭리가 아무리 명확하지 않다하더라도 '주는 의로우시다'(시 73:1).
(2) 하나님의 섭리가운데에는 그에게 거침이 되는 것도 있었다. 악한 자들의 계획과 모의가 성공을 거두는듯이 보여졌다.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즉 저희의 악한 계획이 성취된 듯했다. 여기에서 악한 자라함은 주로 위선자(2절에서 나오듯이)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비록 선한 출발을 하였지만 거기에서 벗어나 패역되이 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 안락하였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관대하셨다고 말한다(2절). "그들은 좋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낙토에 심겨졌나이다(시 44:2;80:8)."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저희의 융성함은 확고한듯이 보여졌다. 그들이 하나님께 패역되이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셨다.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마음은 머니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주의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에게 신실한 애정을 품지도 않았지만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 대해서 말할수 있었다. 입만의 경건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록 그들이 항상 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말할 준비가 되어있고, 경건의 냄새를 풍기는 어조에 익숙하였으나 그들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지닐수는 없었다.
(3) 자신의 정직성에 관하여 하나님께 호소하는 중에 그가 받은 위로는 무엇인가(3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미혹시키는 자도, 거짓 선지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셨다.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지못하는 자들이다(고전2:8).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또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했는가 아닌가에 따라 선하고 악함이 구별된다.
(4)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 악한 백성에 대한 방침을 바꾸사 그들이 비록 오랫동안 번영을 누려왔으나 항상 형통하게 하지마시기를 기도한다. "심판을 내리사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이기름진 초장에서 끌어내소서. 그리하여 그들의 오랜 번영도, 죽일 날을 위하여 넓은 들에서 먹이며 예비해둔 양과 같을뿐임이 드러나게 하소서"(호4:16).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교만과 사치로 그들의 불의의 그릇을 가득채워 파멸을 향해 무르익도록 형통하게 버려두셨다. 언제까지 이땅이 슬퍼하며(4절). "주여, 저들이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파멸시킬정도에 이르기까지 형통하게 하시겠나이까?" 온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풀들이 타버리고)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것은 요시야왕 재위말기와 여호야김왕 치세초기에 있었던 오랜가뭄의 결과였다(참조. 렘 3:3; 8:13; 9:10,12; 14장). '그거민의 악을 인하여 옥토가 염밭이 되게하신' 것이 어찌된 일이었던가? 그러므로 선지자는 이악한 백성이 저희 자신의 죄로인해 죽도록, 그리고 그들로 말미암아 전민족이 고통받지않도록 기도한다. 거민이…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이말은 다음 두가지 의미중에 하나이다.
1) 하나님 자신이 저희의 결국을 보지못할 것이다. 그는 저희가 어떤 길을 취하였는지, 그리고 그결말이 어떻게 될지 알지못하신다는 의미이다.
2) 예레미야 선지자가 저희의 결국을 보지못하리라는 말이다. 즉 그들은 그를 거짓 선지자로 간주한 것이다.
(5) 그는 자신의 이러한 불평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을 우리에게 알려준다(5,6절). 사역자들은 가르쳐야할 교훈과 더불어 배워야할 교훈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며 또한 자신에게 설교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아나돗 사람들의 악함과 그들의 형통함에 대해 불평하였다. 본문은 그불평에 대한 응답으로 여겨진다.
1) 그에게 불평할만한 이유가 있었음이 용인되었다(6절). 네 형제(곧 아나돗의 제사장들)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너에게 패역되이 행한다). "그들은 우애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할수 있는한 모든 악행을 너에게 행하였도다."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은 네 뒤에 많은 무리를 불러모아 따르게 하였으며 너를 경멸하게 하였도다.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그들은 실로 믿을수 없는 자들이라. 그들은 너의 친구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너의 원수들이라."
2) 그렇지만 그는 고향 사람들의 불친절을 너무 지나치게 마음에 새겼다는 말씀을 듣는다. 그들은 그를 피곤하게 하였다. 그곳이 그가 무사하리라고 믿던 '평안한 땅'이었기 때문이다(5절). 자기 친족들에게 이같이 미움받고 핍박받는 것은 그에게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이로인하여 그는 마음이 혼잡하여졌으며 자신의 일에 대해 낙심하게 되었다. 예언하는 일이 피곤해지기 시작했으며 그일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이것이 단지 그의 슬픔의 시작에 불과하며 그앞에는 보다 가혹한 시련들이 놓여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고통을 인내심으로 견디어냄으로써 다가올 보다큰 고난에 스스로 대비해야만함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으로인하여 바로앞에 놓여있는 일도 감당치 못하였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마로가 경주하겠느냐. "네가 이일로도 벌써 숨차하지 않느냐?" 만일 아나돗 사람들이 가한 핍박이 그에게 그처럼 큰충격을 주었다면 장차 예루살렘에 있는 방백들과 대제사장들이 저희 권세로 덮쳐올때는 무엇을 할수 있겠는가(렘 20:2; 32:2). 만일 그가 '평안한 땅' 거의 위험이 없는 곳에서 그토록 쉽게 곤비케되었다면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는가?' 그물이 둑위로 넘쳐서 사자들까지 수풀위로 올라오도록 놀라게 할때는 어떻게 하겠는가(렘 49:19). 우리가 '요단의 창일한 중에' 이르를때에는 어떻게 우리의 순전함과 평안을 유지할 것인가? 우리는 현재 당하는 작은 시련들을 잘 감당해나가야 하며, 우리 영혼을 지키고, 약속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우리의 눈을 장차 받을 상급에 고정시키고 그것을 얻을수 있도록 달려가야 한다.
Ⅱ. 백성의 참상을 애곡함 12:7-13
백성들의 파멸이 여기에서 작정되고 있다.
(1) 여기에서 하나님은 두려운 말씀을 하신다(7절).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가 내 성전, 내 왕궁을 버렸도다." 그들이 그것을 더럽혔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버리시지 않을수 없었다. 내가…내 산업을 내어던져. "그리고 그것을 더이상 쳐다보지 않을 것이라." 만일 그들이 스스로 합당하게, 올바르게 행하려고 했었다면 그는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허락하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마음의 사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진노를 야기시켜 저희를 '그대적의 손에 붙이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타락하였으며,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피하는 맹수와 같이 되었다(8절). 내 산업이 삼림중의 사자같이 되어서. 그리하여 경고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그소리를 발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는 선지자들을 향하여 노호를 발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불경스럽게 말하며 그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의 공의를 무시한다. 그래서 삼림중의 사자같이 그를 향하여 소리를 발하였다. 하나님의 초장의 양떼이었던 자들이 탐욕스럽고 야만스럽게 되었으며 숲의 사자와 같이 통제할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미워하셨다. 포효하는 사자와 성난 짐승들같이 그주변의 모든 것들에게 고민거리가 된 백성들에게서 사랑의 하나님이 무슨 기쁨을 취하실수 있겠는가? 그들은 어떠한 맹수류나 맹금류도 제사로 드려지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하나님의 집에서 자리를 차지할 가치가 없는 '매'와 같이 되었다(9절). 내 산업이 내게 대하여는 무늬있는 매가 아니냐. 혹자는 '발톱달린 매'로 해석한다. 그들은 이치에 닿지않는 분쟁으로 나라를 하나의 투계장으로 만들었다. 혹은 저희 먹이의 피가 끼얹어진, 아니면 그피를 뒤집어 쓸 '무늬있는 매'로 만들었다. 매들이 그를 에워싸지 아니하느냐. 혹자는 '무늬있는 매'라는 말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이 하나님의 규례와 이방인의 미신적인 관습을 혼합시킨 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즉, 그들은 다채롭게 꾸며진 종교를 좋아하였다.
(2) 대적들이 그들을 덮칠 것이며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 혹자는 그들이 무늬있는 매에 비유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새들은 보통 기이하고 이상한 빛깔을 띤 새를 보면 둘러싸고 요란한 소리를 내기때문이다. 이세상 사람들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은 '사람들이 기이히 여기는' 자들이며 '무늬있는 매'와 같은 자들이다. 그러나 이백성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인하여 스스로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모든 새들이 그를 에워쌌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기 때문이다. 갈대아 군대가 그땅을 극도로 황폐화시킨 일이 이미 행하여진 일처럼 묘사되고 있다. 파멸이 그토록 가까이까지 임박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죄인들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그일을 전혀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1) 죄로 가득찼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사 이땅에 대하여 얼마나 온화한 애정으로 말씀하시는지를 보라. 그것은 '내 포도원'이요, '내 분깃'이요, '나의 낙토'라고 말씀하신다(10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에 많은 잘못이 있다고해도 그에 대해 인자와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주목하라.
2) 하나님께서 이땅의 황폐에 대하여 얼마나 따뜻한 동정심을 가지고 말씀하시는지 보라. 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훼파하며. 이는 마치 아라비아의 목자들이 양떼를 몰고와 공동 목초지의 풀을 쉽사리 먹어치우듯, 군대를 몰고와 전국토를 수월하게 차지하고 삼켜버린 갈대아 장군들을 의미한다. 그들이 황무지로 만든 그땅은 본래 낙토였다. 그것은 전쟁의 칼로 말미암아 그렇게 변한 것이다. 훼멸하는 자들(갈대아 병사들)이 광야 모든 자산위에 이르렀고. 그들은 모든 요새와 성채를 점령하였다(12절). 칼이 땅 이끝에서 저끝까지 삼키니. 침략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그리하여 '무릇 혈육있는 자가 평안치 못하였다.'
3) 이모든 참상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보라. 여호와의 칼이 삼키니(12절). 하나님의 백성이 그와 가까이 있는동안, 그들의 칼은 기드온의 칼이 증거하는듯이 여호와의 칼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을때에는 그들을 훼파하는 자들의 칼이 곧 여호와의 칼이 된다. 갈대아인의 칼이 이를 증거한다. 이는 여호와의 분노를 인함이니라(13절). 하나님을 그들의 대적으로 만든 것은 다름아닌 그들의 죄였다(11절). 그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국토는 황폐한채로 방치되었으며 황폐한 땅은 말그대로 호소를 무수히 억수로 쏟아놓지만 거민들은 너무도 무감각하고 미련하여 그것을 '개의하는 자가 없었다.' 그들이 발을 딛고 있는 땅도 그들을 수치로 여기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애곡하지도 않았다.
4) '무리가 밀을 심어도', 즉 자신들의 안전을 위하여 수고하여도 그모든 것이 허사라. 이는 그들의 가시를 거두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것이 그들에게 골치거리로 드러날 것이다. 그소산으로 인하여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전쟁을 위해 자신들이 대비한 것으로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들은 저희가 군자금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생각하였으나 이제는 그사실을 수치스러워 하게될 것이다. 저희의 은과 금은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아무런 유익도 주지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Ⅲ. 회복을 약속하심 12:14-17
여기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를 가하였던 모든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포문이 있다.
(1) 하나님께서 그들과 쟁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악한 이웃'이었다(14절). 즉 그들은 그의 교회에 대한 악한 이웃들이었으며, 그들이 교회에 대하여 행한 행위를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적대행위로 보셨다. 이 악한 이웃들은 곧 모압인과 암몬인과 아람인과 에돔인과 애굽인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변절하는 것을 돕고 그들을 하나님께서 끌어낸 악한 이웃들이었으며, 이제는 이스라엘을 황폐화하는 일을 도우며 갈대아인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였다.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그들의 죄과는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산업으로 준 산업을 다쳤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에게 주어진 것을 외람되이 자신의 소유로 돌렸다. '나의 기름부은 자를 만지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들의 산업을 다치지 말라' 말씀하셨다.
(2)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다루려고 하시는가. 그는 그들이 자기 백성에게 행하였던 권세를 부숴뜨리실 것이다. 내가…유다 집은 그들중에서 뽑아내리라.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에게 포로가 되었으며 만일 도망치다가 잡힐시에는 죄수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로와 죄수생활에서 '뽑아내실' 것이다. 즉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추려내신 것과 같이 자신의 신을 보내어 그들을 나오게 하실 것이며 그들의 간역자로하여금 그들을 놓아보내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내리셨던 것과 똑같은 재난을 그들에게 내리실 터이었다. 내가 그들을 그땅에서 뽑아버리겠고. 심판은 하나님의 전에서 시작되었으나 거기에서 끝나지는 않았다.
(3) 하나님은 스스로 그와 연합하여 그의 백성이 되고자하는 자들을 위하여 어떤 자비를 준비하고 계시는가(15,16절). 그들은 그들과 함께 우상을 섬기도록 하나님의 백성을 끌어냈었다. 이제 만일 포로생활에서 돌아오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을 이끌어 살아계신 참하나님을 섬기게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이일은 포로에서 백성들이 귀환한후, 예전에 이스라엘의 악한 이웃이었던 많은 족속들이 유대교로 전향하였을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개종하였을때 완전한 성취를 보게되었다. "그들의 죄에 대한 정당한 심판으로써 그들을 뽑아낸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기리라."
1) 하나님께서는 만일 그들이 '그의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산다면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길만이 선한 길이다. 거룩한 길, 천국을 바라보는 길, 사랑과 화평의 길, 기도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길, 그리고 의식을 부지런히 참석하는 길 등 이와같은 길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것 같이', 여호와께서는 살아계시다(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하며 자신을 그의 판단에 맡기는 것)고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극악한 자가 개심하지 않으리라고 단념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들을 비뚜러지게 만들고 타락시키는 도구가 되었던 자들조차도 회개할수 있으며 그렇게 될때 자비를 얻게될 것이다. 미혹되었던 자의 개심은 오히려 미혹하였던 자의 개심을 유발하는 복된 계기가 될수 있다. 이와같이 시궁창으로 함께 굴러 떨어진 자들은 때때로 함께 구해진다.
2)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로 돌아오실 것이다(15절). 내가…각사람을 그산업으로 각사람을 그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영적인 특혜를 누릴 자격을 갖게될 것이다. 그들이 내 백성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16절). 그들은 여호와의 전에서 이제 이름과 자리를 얻게될 것이며 여호와의 백성중에 세움을 입을 것이다. 여호와의 전에는 원래 이방인들을 위한 뜰이 있었다. "그들이 그리하지 아니하면, 즉 만일 누군가가 계속하여 대항하려고 한다면 내가 반드시 그나라, 그가족, 그사람을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핵심
12:1-6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받은 예레미야가 고통을 견딜수 없어 하나님께 항변하는 대목이다.
렘 12:1,2절의 바른이해
마치 하나님이 악인을 의도적으로 형통케하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본문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세상에서 악인이 번성하는 것을 일시적으로 허용하셨지만, 악인은 자신의 죄악가운데서 멸망의 심판을 받을수밖에 없다(시 1:4-6). 악인의 형통으로인해 구약의 신자들이 고민한 것은 그들이 주로 이세상에서의 보상과 처벌에 국한시켜 생각했기 때문이다(욥 12:6).
# 묵상
예레미야의 질문의 핵심 ( 12:1, 2 )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고 패역한 자가 모두 안락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신데 왜 악인이 잘되고 의인은 고난당하느냐 하는 것으로서, 이는 욥기의 중심 내용이기도 합니다(욥21:7). 이세상은 악이 승리하고 선이 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선이 승리하게 됩니다.
‘무늬있는 매’가 가리키는 것 ( 12:7-12 )
본문은 불평을 토로하는 예레미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응답으로 유대인들의 죄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여기서 ‘무늬있는 매’란 유일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혼합주의적 종교사상을 가진 유다인들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유다인은 자기들보다 강한 이방나라에 아부하기위해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자연스럽게 수용했던 것입니다. 결국 유다는 우상숭배의 행위로인해 그들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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