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가 예언자로서 소명받은 것은 언제인가(사 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이사야는 B.C. 736년이나 혹은 735년경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사야가 그의 소명 시기를 밝힌 것은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서 입니다.

 
‘스랍’이란 어떤 존재인가(사 6:2)?

스랍이라는 말은 불타는 자들이란 뜻임.
스랍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영물들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스랍은 ‘생물’(겔1:5-25; 계4:6-8)이나 ‘하늘의 무리’(단7:10)와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사야는 왜 두려워했는가(사 6:5)?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고 살아남을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참조, 출33:20; 삿6:22,23; 13:22).
이사야는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인이므로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스랍 중 하나가 핀 숯을 이사야의 입에 댄 이유는(사 6:6, 7)?

이사야의 죄를 사한다는 의미.
이는 하나님 편에서 인간의 죄를 덮지 않는다면 죄를 소멸하려는 인간의 모든 노력이 소용없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죄를 깨닫고 그 죄로부터 벗어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될수 있습니다.

 
부르심에 대한 이사야의 대답은(사 6:8)?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 대답은 부르심을 받은 자의 모범적인 대답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사양했었던 모세와 예레미야와는 달리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신속성과 결단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신 이유는(사 6:9, 10)?

이사야를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에게 그 참뜻을 숨겨서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막4:11,12; 마13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고 노력하거나 열심을 기울이지도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영적 비밀을 알지 못하게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패역한 백성들의 마음을 둔하게 하사 그 귀가 막히게 하고 눈이 감기게 하기 위해서 이사야를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이미 들을수 있는 귀를 잃었습니다.

 
그루터기란 무엇을 가리키는가(사 6:13)?

죄인들 속에서도 그들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거룩한 자들.
본 서 전체에 흐르고 있는 남은 자(Ramnnant) 사상을 보여주는 이 단어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될 성도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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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포도원에 심은 것은(사 5:1, 2)?

극상품의 포도나무.
하나님은 좋은 포도 열매 맺기를 바라시고 땅을 파고 돌을 제하고 망대를 세우고 술틀을 팠지만 이스라엘은 결국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이렇듯 패역한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의 심판으로 급전환 합니다.


들포도란 어떤 것인가(사 5:2)?

먹지못하는 작고 딱딱한 신포도.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한 포학과 그것으로 인한 부르짖음을 가리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바라신 것은(사 5:7)?

공평과 의로움.
그러나 그들은 공평(미스챗) 대신에 포학, 피흘림(미스파)을 행했으며, 의로움(체다카) 대신에 부르짖음, 통곡 소리(체아카)가 넘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을 원하셨으나 인간은 악을 행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사람들은 마음으로는 원해도 선을 행할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행하신 일이란(사 5:12)?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를 가리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축복된 삶을 살았으나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마저도 잊어버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백성들의 무지란 어떤 것인가(사 5:13)?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패배를 당할수 밖에 없는 당시의 정세에 대한 무지.
또한 예언자를 통해 보내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깨닫지 못하는 무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통찰력이 상실되었다고 하는 것은 곧 불신앙의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어린 양’이란 누구를 가리키는가(사 5:17)?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킴.
이스라엘은 종종 양으로 비유되었고 그들의 왕은 양떼를 맡고있는 목자로 비유되었습니다.
이사야 당시 백성들은 삯꾼 목자인 악한 왕들 때문에 백성들은 꼴을 찾기위해 헤매는 양들처럼 이리저리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는 그날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서 안전하게 풀을 먹는 것처럼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이스라엘 역시 그의 나라에서 영생의 꼴을 먹게될 것입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한다’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인가(사 5:20)?

선과 악의 분별이 바뀌어진 것을 의미함.
도덕의 객관적 기준을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가 도덕의 표준이 될때 이러한 가치 전도 현상이 일어납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악을 시인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악을 ‘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진정한 악인입니다.

 
‘불꽃이 ~ 티끌처럼 날리리니’라는 표현의 의미는(사 5:24)?

악인이 당할 신속한 멸망을 의미함.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인으로 취급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의 말씀을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손이 오히려 펴졌느니라’는 말의 의미는(사 5:25)?

여호와의 손은 권능을 의미함.
‘손을 들다’, ‘손을 펴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풀거나 심판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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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싹이란(사 4:2)?

이스라엘의 거룩한 남은 자들을 가리킴.
종말론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서의 메시야를 의미하여 그리스도 칭호의 하나로 봅니다(슥3:8).


녹명된 사람들이란(사 4:3)?

기록된 자들이란 뜻.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영생의 선물을 부여받기로 결정된 사람들 즉 성도들을 말함.
인간의 행위가 심판을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하는 것은 계시록에서도 찾아볼수 있습니다(계20:12).

 
구름과 연기, 화염의 빛을 만드시는 이유는(사 4:5)?

시온에 남아있는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출애굽시에도 하나님은 그의 선민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낮에는 구름 기둥, 밤이면 불기둥을 만드셨습니다(출13:21,22).
하나님은 그분에게서 피난처와 안식을 구하는 의로운 자들을 철저히 보호하시며 안전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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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광의 눈을 촉범했다’는 말의 뜻은(사 3:8)?

촉범이란 ‘범죄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의 눈이란 곧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는 그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싫어하는 일을 범했다는 뜻입니다.
유다의 멸망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자신의 뜻대로 했던 행위의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아이와 부녀는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가(사 3:12)?

이는 어리석고 감정에 쉽게 지배당하는 겁장이의 대명사로 유대의 지도자들을 가리킴.
정치적 능력이 없는 자들의 통치는 국가적인 불행을 초래했습니다.

 
심판이 임박할때 시온의 딸들은 어떻게 행하였나(사 3:16)?

교만하여 목을 늘리고,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작거려 걸으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냄.
당시의 여인들도 부패하여 교만하며 사치하여 온갖 장식을 하고 다녔는데 특히 우상을 숭배하며 반달 장식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또 우상 숭배와 더불어 요란스런 치장과 요염한 몸짓을 통해 대낮에도 남자들을 유혹하고자 하는 음란함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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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야곱 족속을 버리셨는가(사 2:6)?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고 블레셋 사람같이 술객이 되었으며 이방인과 언약했기 때문임.
이는 전적인 종교적 타락이요 그들이 우상 숭배자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야곱 족속이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의 제사장 족속이 되기로 하나님과 굳게 언약했음을 잊었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여호와의 한 날’이란 (사 2:12)?

‘주의 날’, ‘종말의 날’이라고도 불리우는 이날은 심판의 날임.
이날은 죄인들에게는 형벌이 주어지는 심판의 날이고 의인들에게는 축복의 상급이 주어지는 구원의 날입니다.
사단의 모든 세력들이 결박당하여 영원히 멸망받게 되는 이날은 최후 심판의 날입니다.

 
‘사람들이 피할 것이라’는 말에서 사람들이란 누구를 가리키는가(사 2:19)?

여호와의 심판에서 살아남을 의로운 자들.
남은 자(Remnant)란 택함받은 소수의 사람들로서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새로운 씨앗(Seed)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의 위엄과 영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사 2:21)?

세상과 사람들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를 가리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때 롯의 가족이 작은 산으로 피하여 심판받는 것을 목도할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으로는 감당할수 없이 두렵고 큰 것이므로 이를 피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의미는(사 2:22)?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으로써 여기서는 특히 방백들이나 점술가들을 믿지말라고 하는 것임.
아무리 많은 권세를 가진 자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호흡을 거둬가 버리시면 그는 죽은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일시적인 존재인 사람이 아닌 영원한 존재이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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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라는 이름의 뜻은(사 1:1)?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이는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구원자이신 메시야를 보내실 것이라고 하는 이사야서 전체의 주제를 암시하는 이름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의 특징은(사 1:1)?

이상이라는 점.
이상을 다른 말로는 환상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환영을 보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전달하는 독특한 수단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앞에서 어떻게 행했는가(사 1:4)?

여호와를 버리고 그분을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났음.
그들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악을 자행했습니다.
이사야는 백성들이 불의를 자행하는 것을 곧 여호와를 업신여기는 행위로 간주했으며 그 죄의 대가는 사망임을 선포했습니다(롬6:2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는 이유는(사 1:1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제사하지 않았기 때문임.
불의한 자들의 예배는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 마음대로 제사를 일삼다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종교 행사의 외면적 거룩함보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내면적 거룩함을 원하십니다.

 
많이 기도할지라도 상달되지 않는 이유는(사 1:15)?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
악과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한다고 할지라도 그 예배와 기도는 응답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신인 동시에 공의의 신이므로 불의한 자를 향하여 참지 못하며 외면하시기 때문에 불의한 자들은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변론하자고 하신 이유는(사 1:18)?

인간의 피고인됨을 알게하기 위해서.
그러나 유죄 판결을 받을수 밖에 없는 죄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사야 당시의 부패 상황은(사 1:22, 23)?

은이나 포도주 등에 혼합물이 섞이며 방백들은 뇌물을 구하고, 돌봐야할 불쌍한 자들의 억울함을 돌아보지 않았음.
백성들의 관원은 무엇보다도 공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치부하는 악습을 오늘날에도 쉽게 발견할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얻은 새이름은(사 1:26)?

의의 성읍, 신실한 성읍.
예루살렘은 본래 ‘평강의 성읍’이란 뜻입니다.
이제 그곳에서 불의가 제거되고 그곳의 치리자들이 정의를 회복한다면 그곳은 하나님의 의가 넘치는 곳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상수리나무를 기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사 1:29)?

상수리나무를 신으로 섬긴다는 뜻.
이는 우상 숭배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자연종교를 취하고 참신앙을 버리는 이스라엘을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땅 그리고 물속에 있는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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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빛과 교회(사60장)

본문에 언급된 빛과 그리스도 그리고 교회는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게 되는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제시해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힘과 영향력을 부여해 주심으로써 교회에 빛을 던져주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거룩하고 성실한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억압과 멸시를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다시 강한 힘을 발휘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번영을 주시기 위하여 빛으로 세상에 임하신다. 즉 그리스도의 도래로 인하여 그들에게는 새로운 봄날이 찾아왔던 것이다. 그는 그의 교회를 강하게 하셨는데 그 힘은 급속히 퍼져나갔으며 오늘날에도 역시 계속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②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교회에 구원의 지식을 부여해 주심으로써 빛을 던져주시고 계신다. 그는 인간에게 하나님 아버지에 관하여 가르쳐 주셨고,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예전에 결코 인식하지 못하였던 영적인 깊은 의미를 율법에 더하여 주셨다. 그는 그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실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완전히 알고 계셨다. 그리고 그는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말씀하셨다.
③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거룩한 이 아름다움을 부여해 주심으로써 빛을 던져주고 계신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교회위에 임한 것으로 선포하고 있는 영광에 대한 응답일수도 있는 것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영적인 은사들을 통하여 혹은 그의 말씀과 성령의 활동으로 인하여 그의 백성들의 성품속에 가시적으로 나타나게 된 그의 무한한 은총을 통하여 그의 교회에 영광을 부여해 주고 계신다.

2. 구약성서에서의 빛

빛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 세계에서 태초에 나타난 현상들 가운데 하나이다. 빛은 하늘에 나타나는 것들과는 별도로 그것들보다 먼저 창조되었기 때문에 어둠이자 혼돈이며 빛과는 상관없었던 세상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행동을 보여주는 가장 일반적이며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히브리인들은 자연적인 빛과 초자연적인 빛을 구분하지 않았다. 여명의 현상은 하나님이 이세상을 창조함에 있어서 특별한 목적을 추구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새벽은 어두움이 영원히 지속되거나 지배하지 못할 것임을 시사해 준다. 그러므로 빛은 하나님이 피조물들을 축복해 주시는 모든 선물들 가운데 정수이다. 빛은 이 세계안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에너지이며, 또 빛이 비추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이익을 위한것이라고 본다. 히브리인들이 빛과 태양을 인과적 관계속에 있다고 이해하였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는 포로 시대에만 나타날 뿐이다(사60:19).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의 창조주이시며 낮과 밤과 언약을 맺으셨다. 즉 하나님은 밤과 낮이 질서 정연하게 이어지는 것을 감독하신다. 무엇보다도 빛은 생명의 원천이다. 하나님의 빛이 인간에게 비추일때 인간은 광명을 보게 된다. 이 사상이 발전하여 구약성서의 빛은 '구원' 또는 '위험에서 건져 주심'의 의미로까지 확대되었다. 구약성서에서 이 두개념은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동일시 된다. 생명의 원천 이외에도 빛은 이세상에 질서를 준다. 사람들은 빛의 질서에 따라 살아가며 그 질서는 모든 피조물들의 질서의 기초를 이룬다.

3. 시온

시온은 본래 이스라엘 이전의 예루살렘에 있었던 요새였다. 이 이름의 원천은 명확하지 않다. 시온이라는 이름은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 설화에서 '시온 산성'이라는 표현속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시온 산성'이란 말을 제한하여 한개의 건축물 또는 분리된 요새로 번역할 필요는 없고 오히려 성전 구역 또는 두로포이온과 기드론 계곡사이에 끼어있는 요새화된 산성으로 번역함이 좋을 것이다. 한편 우루살림(Urusalim, 예루살렘의 옛이름)은 요새 바깥에 있는 잡다한 촌락들과 외딴 집들을 포함하는 도시 국가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같은 구절은 다윗에 의해 복구된후에 증축된 요새지역에 알맞게 붙인 '다윗성'이라는 표현이 시온이란 이름을 대신 쓰여지게된 경위를 설명해 준다.
종교적 의미를 갖는 시온은 종종 공동체로서의 예루살렘 거민들 또는 하나님의 장중에 운명을 맡긴 도덕적 인격자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시온의 아들들과 시온의 딸들 같은 표현은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자들 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로서의 예루살렘 남자들과 여자들을 말한다. 종말적내지 묵시록적 작품들에서 시온이란 말은 메시야적 공동체의 영광이 일어나는 거룩한 곳, 말세에 때가 찼을때 메시야가 임하는 곳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이 경우 시온은 하늘의 예루살렘과 같은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평화를 원하신다. 이를 위하여 그분은 계획을 세우셨으니 그것을 이스라엘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리셨다. 우리는 그분의 특별 계시인 성경을 통해서 그분의 계획을 읽을수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온전한 평화를 이루어 함께 기뻐할 그때와 그곳을 기록하고 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떤 계획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며 받아들일 것인가?

1. 시온의 미래(사58:1-63:6)
예수님께서 오시어 빛보다 참빛이 왔음을 외치셨다(요1:4,5; 요3:16-21). 그 빛은 여기 본문 "일어나 빛을 발하라"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이스라엘 위에 임하게 된것은 무엇인가? 또한 이스라엘이 그 빛으로 비추어야될 대상은 어떤 것인가? 이 빛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있는 구절은 어디인가?

1) 여호와의 영광
참빛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사61:1-3의 내용을 모두 이루신 분이시다. 결국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만민에게 선포하라는 것이며, 이는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주어진 복음의 빛인 것이다. 그들은 이 빛을 열방에게 인정받는 이스라엘의 모습이다(사60:10-14)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 앞에 몸을 굽힐 것이며, 이스라엘을 멸시하던 자가 무릎을 꿇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할 것이다.

2) 참빛되신 예수로 인한 영광
시온의 영광의 모습은 승리자의 모습이다. 괴롭히던 자와 멸시하던 자가 무릎을 꿇어 굴복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참빛되신 예수님을 붙들때 그분은 우리를 영원히 높이신다. 우리는 단지 일어나 빛을 발할 뿐이다. 그러나 그 빛을 숨기고 감추려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당당히 밝히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화합하지 못하는 자도 이 빛을 어두움에 감추는 자이다.

2. 백성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사63:7-65:25)
우리는 호칭을 두고 여러가지의 의미를 찾곤 한다. 사64:15은 도움을 구하는 기도로써 '자비와 긍휼'이 그쳤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 이스라엘의 누구라고 하는가? 이 호칭이 신약에 사용된 적이 있는가? 있다면 혹 서로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또한 이 호칭과 더불어 여호와는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무엇과 무엇의 관계라고 비유하고 있는가? 이 비유를 우리는 어떤 방면에서 해석해야할 것인가?

1) 우리의 아버지
이스라엘은 기도를 하면서 그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는 그분이 이스라엘의 창조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사64:8에 그분은 토기장이요, 이스라엘은 진흙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그분이 이스라엘의 창조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부르는 대상에 있어서 신약과 차이가 있는데 구약의 사람들은 아버지를 단지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여기는 것에 그치길 원했다. 결국은 자신들만의 아버지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신약은 영적 아버지의 개념으로 만유의 아버지이심을 나타낸다.

2) 아바 아버지
롬8:15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것을 권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음을 뜻한다. 우리가 알듯이 잘못을 저지를때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가 될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가까이에 있는 정다운 관계를 원하신다.

3. 하나님의 위로와 그의 영광(사66장)
이사야의 결론 부분은 이 예언을 받는 자들의 미래가 어떠할 것을 선포하고 있다. 과연 이스라엘 자손이 있을 곳은 어디인가? 분명 그곳에는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고 했는데 이 이름의 기록부에 대해 언급한 신약의 구절은 무엇인가? 그리고 모든 혈육이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했는데 언제 경배할 것이라고 했는가? 그때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즉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1) 새하늘과 새땅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사65:17)하신다고 했다. 이것이 사66:22에 새하늘과 새땅인 것이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경배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는데 이는 계3:5에 생명책이란 명칭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계20:15에 여기(생명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자는 불못에 던지움을 받는다고 한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이루어질 일임을 우리는 쉽게 파악할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월삭과 매안식일에 경배하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안식일이 주는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의 일을 하시고 7일째 쉬셨다. 이것은 완성의 의미를 주는 날이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부활하셨다. 그날은 완전한 구원의 완성을 이룬 날이다. 이 완성의 날 즉 주일에 새하늘과 새땅에서 영원히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다.

2) 생명책에 기록된 우리의 이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기 위해서는 한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다(요1:12). 사66:22의 너희 자손은 다윗의 자손이다. 이 다윗의 자손은 구속사의 일맥을 이룬다. 결국 메시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가 영원한 언약을 성취시킨 분으로서 다윗 자손의 대표가 되신다. 이제 우리는 그분을 잘 따르게 될때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음을 확인할수 있는 것이다.

죄라는 것이 우리의 빛을 가림으로 인해 우리는 진정한 빛을 알수 없었다. 그러나 참빛되신 예수그리스도가 메시야로 우리에게 오시어 잃어버린 빛을 되찾게 하셨으며,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수 있게 하셨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화합하게 된것이다(요일4:10).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 또한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새하늘과 새땅을 만드셨는데 그곳은 반드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만이 들어갈수 있다. 주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그 영원한 천국집이 믿는 자의 것이 될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주의 고난받으심

1) 고난의 모습
사50:6에는 예수그리스도의 받으실 수모에 대해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재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와 같이 매우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 부분은 물론 주께서 죽으시기 전에 완벽하게 이루어졌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그분은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간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사52:14)라고 표현될만큼 상하신 모습이었다.
그분은 비천한 태생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못한 인물로 보였으며 그가 받을 십자가 형은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죄로 죽게된 것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 그의 죽음의 의미
자신의 죄악으로 인한 것이 아닌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찔리고 상한 모습으로(사53:6) 고통스럽게 죽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에 대해 사53:6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답하고 있다. 양같은 우리가 죄악의 길로 들어선 것에 대해 죄악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 죽으신 것이다.

3) 고난의 종의 부활과 승천
사52:13에서는 그의 부활과 승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고난의 종은 형통하여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기로 예언된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높임을 받아(부활) 찬양받게될 것이다.

2. 이사야서에 나타난 예수에 대한 예언

1) 성육신에 대하여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이름은 '임마누엘'이 될 것이라는 것을 사7:14,15에서 예언하였다. 악한왕 아하스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자 세아기에 대해 언급하는데 '임마누엘, 스알야숩, 마헬살랄하스바스' 등이다. 임마누엘이라는 아기는 하나님의 한징조로 기적을 의미했다. 왜냐하면 동정녀에게서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알야숩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라는 의미의 이름으로 그 아기는 아버지 이사야를 쫓아 아하스 왕 앞에 가서 다메섹의 베가와 에브라임의 르신 두연합이 망할 것을 예언하였다. 또 마헬살랄하스바스는 '노략품을 재빨리 전리품을 잽싸게'라는 의미를 가졌는데 이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의 포로가 될것임을 예언하는 의미를 가졌다.

2) 동정녀의 아들의 이름
다섯가지 이름을 갖는다.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이라는 이름이다. 기묘자란 비밀이란 말이며, 모사는 어려운 일에 대해 자문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혜와 지식을 가진 것을 의미하고, 영존하시는 아버지 또는 평강의 왕이 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신 그분의 아들이시며,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 평화를 주실 평강의 왕이시다.

3) 메시야의 어린 시절
그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올 것이며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 모략과 재능의 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에게 임하실 것을 예언하였다.(사11:12). 그의 지혜는 사물을 구별하고 분별할줄 알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이 모든 것을 실행할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그 모습은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것이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다(사53:2). 또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때에 미쳐 버터와 꿀을 먹게 될 것"(사7:15)을 말하였는데 이는 사막을 배회하는 사람들의 음식으로 그리 넉넉한 생활을 하지못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4) 하나님과의 관계
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하나님의 신, 하나님의 종이었다(사42:1).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지 않고 순종할 것이며(사50:4,5), 스불론과 납달리땅 즉 이방의 백성들에게 빛을 비추기 위한 분이었다(사9:1,2).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실 것이다. 이것은 그가 약한 자들의 편에 서며 그들을 위해 일하실 분이심을 예언한 것이다.

5) 그의 행하실 기적
사35:5,6에는 그가 행하실 기적이 대해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이 예언은 우리가 의심할 여지없이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귀머거리를 고치시고, 벙어리의 입을 여시며, 앉은 뱅이를 고쳐 주셨고, 죽은 자를 살려주시기까지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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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들은 해탈이란 의미를 부여하면서 구원과 연관된 이야기를 한다. 조금더 설명하자면 자기 자신을 완전히 비운다는 의미이다. 결국 자신이 자신을 구원시킬수 있다는 원리로써 시작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철저하게 자신이 자신을 구원시킬수 없음을 전제로 한다. 본 연구에서는 구원자 메시야가 당하시는 그 고난의 의미를 파악함으로써 우리에게 오는 구원의 실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1. 여호와의 종(사49,50장)
49장 전체를 통하여 여호와의 종의 임무를 나열하고 있다. 그 임무중에 종이 쓰러진 자를 일으키듯 그의 일으킴을 받는 자들이 있으며, 흩어졌던 자들을 모으는 일이 있다. 과연 어떤 자들이 그 대상이 될 것인가? 이들은 신약의 해석상 어떤 무리들로 해석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여호와께서 어떤 비유를 내세워서 "그들은 너를 잊을지라도 나는 잊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비유는 무엇이며, 그 비유에서 '그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비유와 종이 일으킬 자와는 해석상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1) 야곱의 지파
사49:6에서 '야곱의 지파'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들(롬4:16)도 포함된다. 그리고 이 야곱의 지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여인이 젖먹는 자식을 잊지 않음보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긍휼히 여김보다 더 잊지않고 긍휼을 베풀겠다고 하셨다(사49:15). 이 은혜는 종이 일으킬 자들에게 직접 임하는 것이다.

2) 이방인의 구원자
사49:6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의 '너'는 '여호와의 종'을 지칭한다. 그 여호와의 종은 '이방의 빛'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말함이다. 결국 그분이 오심은 우리를 위함이요, 우리 믿는 자가 '이스라엘의 보전된 자'인 것이다.

2. 고난받는 종(사51-53장)
먼저 존귀케될 분은 사람들과 비교하여 어떠하다 했는가? 그리고 그 모양은 어떠하다 했는가? 이는 우리 인생의 어떤 면을 부각시키고자 함인가? 그리고 그는 멸시와 간고와 질고를 겪었으며,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였는데 왜 그분은 멸시와 질고를 받아야 했으며 자신의 어떤 잘못으로 이런 고난을 받아야 했는가?
만약 자신의 잘못이 없다면 누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인가? 그가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라고 했는데(사53:10) 어떻게 할때에 여호와의 뜻을 성취할수 있는가?

 

1) 택함받은 자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간보다 상하였다"(사52:14). 이는 우리 인간의 완악하고 죄많음을 부각시킴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인간의 죄를 짊어지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질고와 멸시를 당하신다. 사53:4-6에 따르면 '우리'를 위하여 그일을 당하신다고 한다. 여기서 '그'는 ① 개인적인 존재요, ② 죄인들을 대신하는 수난자요, ③ '우리'로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대속자이다.
결국 '그'로 지칭되는 여호와의 종은 고난받으시는 메시야로서 택한 백성을 위하여 스스로 속건 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다. 이 속건 제물로써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절정인 것이다.

2)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심
마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다. 우리 모든 인간은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무거운 짐들을 가지고 있다. 이 짐은 아무도 들어줄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같은 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짐이 없는 자가 와서 대신 들어주어야 한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짐을 가지고 계시지 않음으로 우리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신 것이다.

3. 메시야로부터 올 구원(사54-57장)
목마른 자가 찾는 것은 물이다. 그 물을 값없이 주시겠다는 분이 계신다. 그런데 이런 분을 멀리하고 값을 지불하면서 자기들을 위하여 사먹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아닌 이스라엘이었다. 그들이 값을 주고 산 것은 무엇이었나?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를 베푸시는데 그것은 무엇이라 했나? 그리고 하나님은 초청장을 보내고 있는데, 이 초청장을 이스라엘은 어떤 기회로 삼아야할 것인가? 또한 이 초청장은 신약의 누구에게 보내지는 것이며 이 초청장을 받은 자들은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할 것인가?

1) 영원한 언약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값을 준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나타내고 있는 구절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임하셔서 '영원한 언약'을 세워 주셨다.
삼하7:11-16은 다윗에게 세우신 영원한 계약이 유효함을 상기시키는 내용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에 따르는 초청장을 보내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것을 회개의 기회로 삼아야할 것이다.

2) 대가를 원치않는 삶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은 값을 요구하시지 않고 오심이다. 그리고 영원한 언약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값을 원치 않으셨다. 그러나 우리들은 조그마한 일을 남에게 해주고서도 대가를 바란다. 그리고 그 대가가 주어지지 않으면 원망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자기는 남에게서 그냥 받으려하면서 남은 자기에게 대가를 지불해 주어야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웃에게 거저줄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죄악으로 가득차 있다(롬3:23).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인간이 스스로 무엇을 할수 있는가? 이 사실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공의대로 그 죄를 징계하신다(롬6:23). 그런데 그 징계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대속자가 오셨다. 그분이 대속자가 될수 있는 자격은 그분에게는 죄가 없기 때문이다(고후5:21).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고전15:3) 우리를 대신하여 멸시와 고난을 받으시고 죽기까지 하셨다.
이제 그분의 부활하심을 따라 우리가 온전히 부활함을 입을 것을 믿고 감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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