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포위당한 예루살렘의 징조 4:1-8
여기에서 선지자는 징표를 사용하여 '예루살렘이 에워싸인' 모양을 표현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것은 일종의 예언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1) 선지자는 흙벽돌(한글개역에는 '박석')위에 예루살렘을 그리라는 명령을 받았다(1절). 예루살렘이 순결을 지키고 있을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그의 '손바닥에 새겼다'는 사실은 예루살렘의 명예였다(사 49:16). 뿐만아니라 이스라엘 각지파들의 이름들이 대제사장의 흉패에 달린 보석에 새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신실한 성읍이 매춘보가 되어버려 전혀 가치도 없는 박석이나 벽돌위에 새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2) 선지자는 이성읍 도면둘레에 작은성벽을 건설하고 포위한 자들이 만들어 세운 '공성퇴'를 만들어 놓으라는 명령을 받았다(2절). 그리고 그성읍과 포위군사이에 철벽을 본따서 철판(한글개역은 전철)을 세우라는 명령도 받았다(3절). 이철벽은 양측의 단호한 결의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갈대아사람들은 정복할때까지 한걸음도 물러설수 없다는 결심이었으며, 유대인들은 결코 포로는 될수 없다는 결심이었던 것이다.
(3) 에스겔은 그성읍 그림의 앞에 옆으로 누우라는 명령을 받는데 말하자면 그성을 에워싸라는 명령이다. 이는 갈대아군대가 그 성앞에 진을 쳐서 모든교통을 차단시키는 것을 상징한다. 그는 좌편으로 '삼백구십일'을 누워있어야 했다(5절). 이것은 약 13개월에 해당하는데 예루살렘의 포위기간은 약 18개월(렘 52:4-6)로 추정되어 5개월정도의 차이가 난다. 그러나 애굽의 바로의 군대가 진격해와서(렘 37:5-8) 포위군들이 잠시 철수했었던 5개월을 빼면 완전히 포위되었던 기간은 삼백구십일 정도가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은 또한 삼백구십일은 삼백구십년을 의미한다는 다른의미도 가지고 있다. 선지자가 옆으로 그렇게 삼백구십일을 누워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집이 즉 열지파가 삼백구십년동안 지었던 죄책을 감당하는 것이다. 여로보암의 통치아래 그들이 처음으로 변절했던 시기부터 예루살렘의 멸망까지의 기간을 계산하면 삼백구십년이 된다.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유다에 빌붙어 살고있었던 약간의 이스라엘 잔류백성들은 완전히 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우편으로 사십일동안 누워있어야 했다. 이는 유다의 집의 죄악, 두지파로 된 왕국의 죄악을 견디는 기간을 나타낸다. 이 사십일은 그들의 죄가 포로되기전 마지막 사십년동안에 해당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요시아라는 선한왕과 예레미야라는 훌륭한 선지자를 가지고 있었던 유다왕국은 이스라엘이 했던것보다 훨씬 짧은기간에 자기의 죄악의 양을 채웠던 것이다. 여기서 선지자가 밤낮으로 누워있었다고는 생각할수 없고 하루중 정해놓은 어떤 시간동안만 매일 누워있었다고 볼수 있다. 그를 찾아온 사람들은 그가 좌편으로 삼백구십일, 우편으로 사십일동안 누워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이 예루살렘성의 포위를 의미하는 것임을 이해하였을 것이다.
(4) 에스겔은 그포위를 굳게 지키라는 명령을 받는다(7절). 너는 또 에워싼 예루살렘을 향하여. 이는 지금 갈대아인들이 하듯이 모든생각을 거기에 집중하라는 의미이다. 느부갓네살은 자기와의 동맹을 깨뜨린 시드기야의 배신에 매우 분개하여 이번 포위를 더욱 굳게하여 신의없는 왕과 백성들을 정벌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갈대아군대는 포위에 만전을 기하였다. 선지자는 그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섬으로써 이를 나타내었다. 이사야 52:10절에는 '여호와께서 그팔을 나타내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서 갈대아사람들은 자기들의 일을 끝까지 관철시키고자 결심하고 성심껏 노력하는 사람들처럼 진행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하나의 징조'로 나타내기위하여 의도된 것이다(3절). 즉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있는 자들이나 고국에 남아있는 자들에게 공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선지자는 벙어리가 되어 아무말도 할수 없었지만(겔 3:26) 하나님께서는 증거하지않도록 내버려두시지 않고, 징조를 만들어서 자기의 마음(곧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것을, 무감각과 어리석음에 빠져 아동들처럼 그림으로 배워야하는 백성들에게 나타내 알게할 것을 그에게 분부하셨다. 혹은 그리스도께서 비유를 사용해서 말씀하셨던 이유과 똑같이 선지자가 징조를 사용하였다고 볼수도 있다. 선지자는 이와같은 방법으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언하였다(7절).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제시될때 훨씬 깊은 감동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경우는 눈으로 직접 볼수 있는 형상이 말이 줄수 있는것 이상의 깊은감동을 주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인해 거룩한 일들을 예시하기 위하여 성례식이 제정되어 있는 것이다. 상상력이 바르게 사용되어 진다면 그리고 그것이 이성과 믿음의 지시와 훈도를 받는다면 경건한 사랑을 타오르게 하는데 유용할수도 있는 것이다. 공상이란 불과 같아서, 선한종이 되기도 하며 악한주인이 되기도 한다. 이일 전체가 유치한듯하고 피곤한 일처럼 보이지만,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안락은 희생시켜야 하며, 하나님께 봉사는 일을 결코 어려운 일이라 불러서도 안된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성읍인 예루살렘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에 서야한다는 것이 선지자에게는 대단히 하고싶지 않은 일이었을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한사람의 선지자로서 자기가 즐겨하는 것을 따를것이 아니라 받은지시를 따라야하는 몸이요, 그가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바는 예루살렘의 흥왕이지만 죄가 많은땅은 반드시 멸망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파하여야 하는 몸이었다. 선지자 에스겔이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하여 그백성의 자손들앞에 보여주는 이모든 것은 그들로 회개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형벌의 하루는 죄의 일년에 해당한다. 내가 네게...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포위는 삼백구십일동안의 재앙이었다.

Ⅱ. 기근의 예고 4:9-17
예루살렘의 파멸에 대한 에스겔의 예언중 이부분에 대하여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슬퍼하는 예레미야의 애가에 잘 표현되어 있다(애 4:3,4;5:10).
(1) 선지자 에스겔은 다가올 기근에 대하여 미리 보여줌으로써 백성들에게 자극을 주어야했다. 그래서 그는 삼백구십일동안 질이 좋지않은 음식에 부족한 식량, 볼품없는 의복으로 생활해야 했다. 이는 예루살렘성읍의 백성들에게 음식물과 연료가 떨어질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1) 에스겔이 먹는음식은 밀과 보리, 콩과 팥, 조와 귀리로 만든 아주 질이 안좋은 떡이었다. 이는 말이나 돼지에게 사료로 주는 먹이와 같은 것이었다. 또한 거지들이 이집 저집 다니면서 얻은것을 섞어놓은것 같은 것이었다(9절).
2) 선지자는 하루에 이십세겔 무게의 떡만을 먹어야 했다(10절). 이는 약 십온스에 해당하였다. 그리고 물도 육분의 일힌씩만 마셔야 했다. 이것은 팔온스에 해당하는 반파인트였다(11절). 선지자는 바벨론에서 충분히 먹고 남을만한 식량을 가지고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예언을 확증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의 징조가 되도록 하기위하여 그에게 이렇게 궁핍하게 살도록 지시하신 것이다. 자연은 적은것에도 만족하고 은혜는 보다 적은것에도 만족하나, 욕망은 어떤것에도 만족할줄 모른다. 반드시 절약해야할 경우를 대비해서 그러한 상황을 잘 견뎌낼수 있도록 일부러 절제하는 것은 좋은일이다.
3) 선지자는 인분으로 떡을 구워야했다(12절). 그 인분은 그릇을 데우기위한 연료로 사용되어야 했다. 선지자는 이런식으로 구워진 형편없는 떡을 마치 '보리떡처럼' 먹어야 했다. 에스겔은 이런 메스꺼운 떡쪼가리를 사람들의 '목전에서' 공개적으로 먹여야했으니, 이는 그들로 다가올 재앙에 대하여 더욱깊이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심한기근이 닥쳐오면 맛있는 진미는 고사하고 음식이란 구경도 못하게될 것이다.
4) 징조를 보여주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선지자는 인분으로 떡을 구워야하는 일은 제외하고 임무를 수행할수 있기를 겸손히 원하였다(14절). 그러한 일은 의식법상 부정한 것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율법중에는 인분은 흙으로 덮어야한다는 법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처소에서 더러운 것을 일체 보지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신 23:13-14). 그런데 에스겔이 가서 그토록 비위를 상하게 하는 물건을 끌어모아다가 백성들이 보는앞에서 자기가 먹을음식을 요리하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말인가? 에스겔은 말한다. 오호라 주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이일로 내영혼이 더럽혀질까 두려워하나이다."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더럽혀지는 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바이다. 그렇지만 예민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합법적으로 적당한 일인데도 여기서의 선지자처럼 까닭없이 주저하고 두려워한다. 이 선지자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아직까지는 배우지못한 사람이었던 것이다(마 15:11). 에스겔이 양심이 매우 예민해서 이문제를 가지고 우물쭈물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일을 제거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인분대신에 쇠똥을 사용해도 좋다고 에스겔에게 양보하셨다(15절).
(2) 이 징조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징해준다.
1)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은 생필품의 결핍으로 극단적인 도탄에 빠지게될 것이다. 포위군들로인해서 공급품이란 공급품은 죄다 끊어질 것이며 예루살렘성내에서는 떡부스러기조차 떨어질 것이다(16절). 남아있던 사람들중에 대부분이 기근으로 죽되 죽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서서히 죽게될 것이다. 그사람들에게 이러한 슬픈재앙을 가져오는 것은 바로 죄이다. 백성이...그 죄악중에서 쇠패하리라(17절).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서 우리의 정욕의 양식과 연료로 삼는 쾌락들을 빼앗아 가시는 일은 정당한 일이 아닐수 없다.
2)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이방인들중에서 강제로 부정한 떡을 먹게되리라는 사실을 상징해준다(13절). 유대교회의 율법에 따라 만든 음식이 아니라, 부정하다고 교육을 받아온 이방인의 음식을 먹게되리라는 것이다. 또는 그들을 포로로 잡아간 사람들이 노예에게 주는 음식이나 이전에는 만지기도 꺼려했던 부정한 음식을 먹지않을수 없게된다는 뜻일수도 있다.

# 핵심
4:1-17
예루살렘이 함락될 것과 포위기간동안 극심한 기근이 닥칠것을 상징적 행동으로 예언한 내용이다.
공성퇴(4:2)
원문상 ‘숫양’을 뜻하기도 한다. 이것은 숫양이 그뿔로 받듯이, 적의 성벽이나 성문을 무너뜨리는데 사용했던 공격용도구를 가리키며, 파성추(破城鎚)라고도 불렸다. 공성퇴(功城槌)는 길고 무거운 나무장대의 끝에 금속을 붙인 것으로서, 목재틀에 부착되었고 네개의 바퀴달린 대에 고정되었다.

# 묵상
포로기간에 대한 예언 ( 4:4-8 )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좌편으로 390일, 우편으로 40일동안 누워있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여기서 좌편 390일은 이스라엘의 범죄한 햇수이며 우편 40일은 유다의 범죄한 햇수입니다. 이것은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을 상징하며, 또한 앞으로 이스라엘이 이러한 고난을 받을것을 예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편 이것은 에스겔편에서의 자발적인 행동만은 아니고,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에 의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430일 간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390일동안의 에스겔의 음식 ( 4:9-17 )
에스겔은 밀과 보리, 콩, 팥, 조와 귀리로 만든 떡 20세겔(228g)씩 때를따라 먹고, 힌 육분의 일(0.61ℓ)의 물을 때를따라 마십니다. 이것은 하루의 양식으로는 매우 적은양으로써, 당시 포위된 예루살렘성의 식량난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된동안 사람들은 기근 등의 재난으로인해서 자기아이까지 잡아먹는 무서운 환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애2:20). 이러한 처참함은 패역한 유다가 자초한 심판의 결과입니다. 또한 에스겔이 이음식을 인분불로 구워서 먹은것은 이들이 이방에 쫓겨가서 부정한 음식을 먹게될 것을 상징합니다.

# 해설
심판의 세상징 ( 4 )
앞장인 제삼장의 마지막부분에서는 유다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않는 패역한 족속일뿐만 아니라, 그러한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여 회개하게 하려고 보낸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도 핍박하는 악한백성임을 말하였습니다. 본장에서는 그처럼 악한 유다백성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멸망을 당하고 고통을 받을것을 세가지 행동의 비유를 통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전쟁의 징조
1) 바벨론의 침공
예레미야는 사람들앞에서 박석과 흙을 가져다가 예루살렘성이 적군에게 포위되는 상황에 놓이게되는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성이 한나라에 의해 침공을 받아 포위당할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성을 공격하여 포위한 나라는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은 세번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세번이나 예루살렘을 에워쌌습니다. 이로보건대 예레미야의 행동은 바벨론의 침공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될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a.바벨론 침공예언(렘38:3)
b.하나님의 도구(겔17:20)
2) 예루살렘의 함락
예레미야는 바벨론군이 예루살렘성을 에워싸는 모형을 만들때 성앞에 운제와 토둔, 공성퇴 및 전철을 세웠습니다. 운제는 성안에 있는 적의 동정을 살피는 망루이고, 토둔은 성으로부터 날아오는 화살을 막는 동시에 높은위치에서 성안으로 활을 쏠수 있도록 성주위에 쌓은 인공산입니다. 공성퇴는 오늘날의 대표와 같은것이며 전철은 과자를 굽는 후라이팬과 같은 그릇입니다. 이모든 것은 바벨론군대의 가공할 힘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 힘앞에서 예루살렘성이 함락될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줍니다.
a.함락(렘39:2)
b.함락의 소식(겔33:21)
3) 살육
직접적으로는 드러나고 있지않지만 바벨론군의 포위, 그군대가 가진 강력한 군사력에 의한 예루살렘함락 등의 상징은 모두 유다백성이 바벨론군에 의해 패배함으로 무참히 살육당할 것을 암시해줍니다.
a.쳐죽임(왕하25:21)
b.살육(렘39:6)
2. 포로됨의 징조
1) 누움
두번째 상징으로 예레미야는 밧줄에 동인채로 누워서 왼쪽으로는 삼백구십일동안, 오른쪽으로는 사십일을 꼼짝못하고 눕습니다. 이 상징이 보여주는 첫번째 의미는 예루살렘이 전쟁앞에서 무력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가 누워있었다는 것이 그상징입니다. 전사는 싸울때 서서달리며 싸웁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누워있었으니 예레미야로 상징되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그행동대로 무기력하게 있게될 것입니다.
a.도망(왕하25:4)
b.비굴(렘35:5)
2) 줄로 동임
예레미야는 누워있되 포승줄로 묶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할때에 무기력하게 멸망당하되 멸망당하고 나서도 승전국의 포로로 잡혀갈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그들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참조, 왕하17:6).
a.본토를 떠남(왕하25:21)
b.포로됨(렘39:9)
3) 날수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족속에 대하여는 왼편으로 삼백구십일을 유다족속에 대하여는 오른편으로 사십일을 포승줄에 묶인채 누워있었습니다. 이행동을 취한기간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각각 삼백구십년과 사십년동안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있을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이처럼 포로의 기간을 정하신 것은 첫째, 범죄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영원한 것이 아니며, 둘째, 하나님의 징계는 자기백성을 회개케함으로 더나은 백성이 되도록 연단하는 기간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a.사백년동안(창16:13)
b.하루를 일년으로(민14:34)
3. 기근의 원인
1) 기근의 원인
예레미야는 세번째로 그가 누워있던 날수와 같은 날수동안 곡식을 먹되 적은양을 일정하게 달아먹었으며 또 더러운 떡을 고의적으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백성과 유다백성들이 포위되는 날부터 다시 회복되는날까지 배고픔의 고통을 당할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런고통을 주신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배를 채워주는 양식을 의뢰했기 때문입니다(참조, 렘4:16). 하나님은 이처럼 그들이 의뢰하는 양식을 끊음으로써 그들이 의뢰하는 양식이 의뢰할 것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렇게함으로써 양식이라는 우상을 숭배한 대가로 고통을 주시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a. 양식을 의뢰함(레26:26)
b.의뢰하는 양식(겔5:16)
2) 극심한 양식부족
예레미야가 소량의 양식을 저울에 달아 일정량을 먹었다는 것은 양식이 극심하게 부족할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과 유다백성들은 포위되던날 배급된 양식을 먹었으며 급기야는 그것도 없어 굶주린배를 움켜쥐고 고통을 참아야 했습니다.

a.양식이 진함(왕하25:3)
b.아미를 먹음(왕하6:29)
3) 부정한 양식
예레미야는 말린똥으로 구운떡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유다백성들이 굶주릴때에 양식을 구워먹을 연료가 없어 사람의 똥을 말린것으로 연료를 삼아 양식을 구워먹을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똥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기피하는 부정한 것입니다. 그들도 그러한 것을 기피함으로 자신들이 거룩한 백성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러한 더러운 것으로 만든 부정한 것을 먹게 만들므로 그들의 잘못된 정결의식에서 깨어나도록 의도하셨습니다.
a.부정한 자는 허물이 있음(레5:2)
b.위선(사65:4-5)
결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육신을 위한 삶을 살면 그결과는 본장의 세상징이 보여주는 것처럼 전쟁과 기근에 의한 죽음과 고통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사실을 명심하여 헛되고 무익한 세상것을 의뢰하여 그것을 추구하지 말고 오직 인생의 참된 의뢰자가 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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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두루마리를 먹는 선지자 3:1-15
어떤주석가들은 본문이 앞의 환상의 계속이므로 전장들과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1) 에스겔은 어떤방식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야 했는가(1절). 인자야 너는 받는것을 먹으라. "그두루마리를 네마음에 새기라. 그것을 먹고 네영혼이 양분을 얻으며 기력을 얻으라. 음식물로 네배를 채우듯이 그두루마리로 네배를 채우라." 우리는 하나님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즉 말씀이신 그분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불평없이 영접해야 한다. 만일 두루마리를 펴시고 그의 신을 통하여 그내용을 우리앞에 보이시는 분이 우리의 명철을 열고 성령을 통하여 그에 대한 지식을 주시지않고 우리로 그두루마리를 먹게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두루마리에 대해서는 영원히 이방인이 되고 말것이다. 그두루마리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가득차 있었지만 선지자에게는 그것의 달기가 꿀과 같았다.
(2) 선지자는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계시를 다른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했다(1절). 너는 이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가서 갈대아사람들의 죄를 책망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집의 죄를 책망하라는 것이다. 이는 자녀가 탈선한다면, 아비는 타인의 자녀를 훈계하는 대신에 그자녀를 훈계하여 돌이키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자기가 가서 말할대상이 이스라엘족속 곧 하나님과 선지자 자신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다. 그대상자들은 같은 민족일뿐만 아니라 시련을 함께 당하고있는 동족들이었던 것이다. 선지자 에스겔은 자신이 보내질 곳의 사람들의 성품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내용을 기억해야 했다. 이는 혹시라도 낙담하거나 실망할 일을 만날때에 상처를 받지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7절) 죄에 대한 어떤책망도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못하므로, 어떤 위협적인 경고도 그들을 떨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그자체에 대해서 목이 굳은 자들이었다. "이스라엘족속이 네말을 듣지않더라도 이상히 여기지말라. 이는 그들이 나의 말을 듣지 아니하려는 것이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법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시행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일을 잘 해낼수 있도록 할것이다.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얼굴을 굳게하였고. "내가 너를 아주 굳세고 담대하게 하였노라. 하나님을 배격하는 사악한 자들이 강하면 강할수록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욱 마음을 열고 단호하게 실천하고 방어해야 한다. 악이 대담해진다고해서 덕이 움츠러 들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대적자들의 어떤비난이나 위협에도 신경을 쓰지말고 용기를 가지고 할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고있다. 그들이 성난얼굴로 힐난한다고 할지라도 책망의 말을 조금도 늦추지말아야 했다. 에스겔은 여호와께서 하신말씀의 내용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직접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말해야 했다. 사로잡힌 네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11절). 우리의 사역의 성패가 어떤지에 대하여 무관심할수는 없겠지만, 그성과가 어떠하든지간에 우리는 할일을 다하고 그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하는 법이다. 에스겔은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12절). 그것은 마치 천사들이 예언자의 취임식을 보기위하여 모여들면서 내는 소리같았다. 그는 천사들이 날개치는 소리와 천사들과 마주 움직이면서 어울리는 섭리의 바퀴들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모든 소리는 찬미의 소리로 끝을 맺었다. 그는 천사들이 '여호와의 처소에서 나는 영광을 찬송할지어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선지자는 주저하였으나 하나님의 신의 강력한 감화로 임무수행에 들어갔다. 하나님의 신이 강한손으로 그를 인도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라 명하였지만 에스겔은 하나님의 신이 그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실'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14절). 에스겔로서는 자기가 보고 직접들은 내용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겠으나 예언의 추진력이 그를 움직이므로 그는 사도들처럼 자기가 '보고 들은내용을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행 4;20). 그는 슬픈마음으로 따라갔다. 주의 신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마음으로 행하니. 그는 아마,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얼마나 어려운일을 맡았으며 얼마나 부당한 대접을 받았었는지 또한 결국 그가 행한일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을 보았었을 것이다. "나는 요나처럼 하늘의 지시에 불복종하거나, 할일을 발뺌하지 않고, 비록 근심하여 전혀 즐겁지못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수행하기 위하여 갔다." 에스겔은 실망할 것을 미리알고 '분한마음'으로 갔지만, 여호와의 손은 그가 만날지도 모르는 난관을 이겨내고 분발하도록 강력하게 그위에 임하셨다. 그리하여 그러한 사실을 깨달았을때 그는 자신의 임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일에 자신을 몰두하였다. 이에...그 사로잡힌 백성에게 나아가 그중에서 민답히 칠일을 지내니라(15절). 이는 그들이 무슨말을 하며 무슨행동을 하는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여호와의 말씀이 자기에게 임하기를 기다렸다. 그는 그곳에서 백성들의 죄악과 불행에 대해 슬픔에 쌓이기도 하고 자기가 보았던 환상에 압도되기도 하며 '민답히' 지냈다.

Ⅱ. 파수꾼 에스겔 3:16-21
이 계속되는 지시는 '칠일후에' 즉 그가 환상을 본후 칠일째 되는날에 다시 내려졌다. 지난번 환상을 보여주셨던 날이나 본문의 지시를 내리신 이날은 모두 안식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칠일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이셨던 일들에 대하여 일주일내내 골똘히 생각하고 묵상하며 지내왔었기때문에, 안식일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또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합당한 상태였다. 에스겔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는 사실을 비유를 통하여 분명하게 듣게된다.
1. 선지자가 부름을 받은 직무(16,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17절). 그는 파수꾼인 것이다. 침략을 당한나라나 포위된 성읍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고 위험이 올때 경종을 울리는 진지의 파수꾼처럼 양떼를 살피는 파수꾼처럼 그성읍의 파수꾼으로 임명된 것이다. 이말은 이스라엘족속이 전쟁중에 매우 교활한 적에게 노출되어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파수꾼들은 항상 적에게 목숨을 잃을 위험에 놓여있다. 적들은 보초만 죽이면 목적을 쉽게 달성할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그들은 죽는한이 있어도 감히 자기들의 위치를 이탈할수 없으며 근무지를 이탈할경우 상관으로부터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러한 딜레마는 교회의 파수꾼들에게도 있다. 만일 교회의 파수꾼들이 자기직무에 충실하다면 사람들이 그들을 저주할 것이요, 불성실하다면 하나님께서 저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2. 파수꾼의 임무(18-21)
파수꾼의 임무는 동태를 살펴서 전달하는 것이다.
(1) 파수꾼으로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민족에게 대하여 하시는 말씀을 먼저 인지하여야 한다. 그러나 에스겔은 다른 파수꾼들처럼 위험을 탐지하고 정보를 얻기위하여 두리번거릴 필요가 없고 하나님만 주시해야 했다. 너는 내입의 말을 듣고(17절). 그외에 것은 살필필요가 없었다.
(2) 그는 자기가 들은내용을 자기의 이름으로나 자기에게서 나온듯이 말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에게서 나온것으로 전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악인들이 계속해서 죄를 범하고 그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꼭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으며 지금도 여전히 말씀하고 계신다. 악인의 죄악은 틀림없이 자기의 멸망이 되고말 것이다. 만일 악인이 그죄에서 돌이켜 악한길에서 떠난다면 그는 살게될 것이요 이미 경고받은 멸망까지도 방지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알고 그렇게 행할수 있도록 악인은 처해있는 위험에 대하여 경성함을 받는다. 죄의 위험에 대하여 죄인들을 경성시키는 일과 죄인들에게 회개의 특혜에 대하여 확신시켜 주는것이 사역자의 임무이다. 신실한 사람들은 비록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보답을 받게될 것이다. 에스겔이 접해야했던 사람들중에는 의로운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의에서 돌이키지' 말라고 경고를 해야했다(20,21절). 넘어지지 않는 좋은방법의 하나는 넘어지는 일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히 4:1). 사람이 의에서 떠나면 곧 불법을 행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소홀히 하고 그러한 의무를 등한시하게 되며 쉽게 시험하는 자의 희생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중도에서 의를 포기하는 자들은 그것을 유지하지 못했기때문에 의의혜택을 누리지 못하게될 것이다. 우리는 악에게 아부를 해서도 안되겠지만, 의가 마치 어디에서고 전적으로 안전한 것처럼 의에게 아부해서도 안된다. 지혜로운 책망을 순종하는 귀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이는 듣고 따르는 자는 경고를 받아들였기때문에 살게될 것이고, 견책을 한 사람은 그사람의 영혼을 건지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Ⅲ. 다시 나타난 여호와의 영광 3:22-27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하여 선지자들에게 나타내신 이모든 계시와 충분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그의 부름에 비례할만큼의 역할을 못해낸 듯하다. 선지자가 여러난관들을 극복할수 있도록 격려하기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에 대한 또다른 환상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위하여 그를 들로 불러내신다(22절). 비천한 포로일뿐만 아니라 죄인이요, 하나님의 지시에 근심하는 마음으로 간 사람이며 게다가 이번경우엔 자기임무에 대하여 의욕이 없는 그런사람과 대화하시기 위하여 이와같이 자기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라. 하나님과 의논을 하고 그분에게 말씀드리기위하여 세상에서 물러나 하나님과 함께있다는 것은 대단히 큰위로가 아닐수 없다. 선지자는 많은 백성들사이에서, 오히려 이보다 더한 외로움을 맛보았었기 때문이다. 에스겔은 포로들가운데로 들어갔을때보다 훨씬 즐겁게 평원으로 나아갔다(15절). 선지자는 평원에 나아가 그가 이전에 그발강 강가에서 보았었던 환상과 동일한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야기를 해주기위하여 선지자를 불러내셨던 것이지만 그에게 자신의 영광도 보여주셨다(23절). 지금은 우리가 그러한 환상들을 기대할수 없지만 우리가 여호와의 영광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의 신으로 말미암아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된다면 우리에게 이미 그러한 은혜가 주어졌음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혹자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곧장 군중들이 모여있는 광장 한가운데에 보내 그들이 선지자와 선지자의 전갈을 받아들이도록 만드시고, 에스겔이 자기에게 넓게 열려져있는 기회를 갖게하셨을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에스겔이 들은내용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공공 회합에 파견하시는대신에 집안에 있으라고 명하셨다. 너는 가서 네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24절). 에스겔은 공중앞에 나서기를 꺼려했을뿐더러 나서더라도 백성들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과 그백성들에 대하여 정당한 책망을 하신다. 에스겔은 수줍어하는 태도에 대하여 책망을 받았고 백성들은 냉담한 태도에 대하여 책망을 받았다. 이로써 에스겔은 공중앞에 나가는 것이 금지된다. 따라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또다른 계시를 받기위하여 문들 닫고 집안에만 있어야 하였다. 우리는 유다의 장로들이 에스겔을 찾아와서 그앞에 앉아 그가 환상을 보느라고 무아경에 빠지는 것을 직접 목도하였음을 볼수 있다(8:1). 에스겔은 11:25절에 가서야 포로된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보이셨던 모든일을 비로소 말해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그백성들에게 보내시면 그들은 에스겔에게 존경과 사랑을 주는대신 평화를 어지럽히는 자라는 구실로 그를 '줄로 동여매' 결박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25절). 그백성들은 자기들이 선지자들을 핍박하였던 탓에 바벨론에 사로잡힌 몸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곳에서도 선지자들을 핍박한다. 그들은 미쳤다는 명목으로 에스겔을 포박해버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 대한 찬송을 드러내도록 에스겔의 입술을 열어주는 대신에 적절한 시가가 오기까지는 말하지 말도록 침묵을 요구하셨다(26절). 최상의 것을 말할수 있는 그에게 전혀 말하는 것이 금해진 것이다. 그이유는 그들이 그들자신에게 보내진 사람에게 '패역한 족속'이기 때문이며 그런사람을 '책망자'로 가질만한 하등의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을때, 즉 그를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계획하셨던 때가 이르면 그의 입을 열어주실 것이다(27절). 언제든 에스겔이 백성들에게 말하게 될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성공에 대한 확신을 해주는대신에 그문제를 불투명하게 남겨놓으신다. 그리고 에스겔은 그문제로 인하여 당황하거나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서는 안되며 그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되든지 그대로 버려두어야 했다.

# 핵심
3:1-27
에스겔은 그발강가 델아빕에서 7일간의 사역준비 기간을 보내면서 사명수행을 위해 필요한 성령의 감동하심과 말씀을 받았다.
파수꾼 (3:17)
성벽위나 산꼭대기 혹은 망대위에서 적의 동정을 살펴 급히 알리는자(렘 51:12). 파수꾼은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말아야 했다. 성민들의 안전이 그에게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파수꾼이라는 말이 선지자들에게 적용된 사례가 종종있다(사 56:10; 렘 6:17). 에스겔은 하나님의 파수꾼으로서 이스라엘에 임박한 심판에 대해 깨우쳐줄 책임이 있었다.

# 묵상
에스겔이 받아먹은 두루마리 ( 3:1-3 )
에스겔이 두루마리를 받아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음을 의미합니다. 계시록저자도 예언해야할 두루마리를 받아 먹었습니다(계10:8-11). 즉, 이는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아먹음으로써, 예언자들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가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말씀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역시 매일 그말씀을 받아먹고 살아야 우리의 영혼이 강건해집니다. 또한 선지자가 먹은 두루마리의 맛은 꿀같이 달았습니다. 이는 결국 성도가 주의 말씀을 가까이하되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송이꿀보다 더 단맛을 느끼며 사모하는 심정으로 묵상하라는 교훈이며,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크나큰 힘과 즐거움을 준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동족에게로 파송되는 에스겔 ( 3:4-11 )
에스겔은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알아듣지 못할 열국이 아니라 동족인 이스라엘로 파송되었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선민이면서도 강퍅한 심령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들을 깨우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귀가 있어도 듣지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못하는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셨던 것입니다.
주의 신 ( 3:12 )
본문에서 주의 신이란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에 대해 ‘성신’(신51:11), ‘하나님의 신’(창1:2), ‘심판의 영’(사4:4) 등 다양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활동방식으로서 성령이 임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강건한 힘을 부여받고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살게됩니다.
에스겔의 사명 ( 3:17-21 )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주신 사명은 이스라엘족속의 파수꾼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파수꾼은 항시 적의 동태를 살펴야 하기때문에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에스겔은 이스라엘족속이 의의길을 걸어가도록 늘 깨어서 지켜야 했습니다. 만약 에스겔이 말씀을 전하지 않아 악인을 깨우치지 않고 범죄한 의인을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피값을 그의 손에서 찾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백성을 의의삶으로 인도하고 바로 세우는 파수꾼의 역할은 종교지도자의 몫입니다.
에스겔을 들로 이끄신 하나님 ( 3:22-27 )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것은 그에게 말씀을 계시하시고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이 사람들에 의해 줄에 매이고 잠시 벙어리가 되었다가 혀가 풀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되리라고 계시하셨습니다. 아직은 그가 말씀을 대언할때가 되지 않았기때문에 준비기간을 주신 것입니다.

# 해설
에스겔을 파송하시는 하나님 ( 3 )
본장의 전반부는 전장의 내용에 이어 계속해서 부르심을 입은 에스겔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파송받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본장의 후반부는 에스겔이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으로 전한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본장의 마지막부분은 에스겔이 잠시동안 대언을 하지못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에스겔 파송의 준비
1) 말씀을 익힘
에스겔은 파송을 받기전에 그가 받은 말씀전파의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위해 몇가지 준비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 준비과정의 첫번째 것은 전달해야할 말씀을 완전히 소화하여 자기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달하는 자가 자기가 전달해야할 사항을 숙지하지 못한다면 전달사명은 온전히 성취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에스겔은 말씀을 먹어 그의 것으로 하도록 명령받았습니다.
a.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3:14)
2) 말씀전파 대상의 확인
에스겔이 파송의 준비단계로서 두번째 행한것은 말씀전파 대상을 다시한번더 확인받은 것입니다. 에스겔은 2장에서 그가 말씀을 전파할 대상이 패역하고, 강퍅한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말씀전파 사명을 정확히 수행하기위해 전파대상을 다시 확인받는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쳤습니다.
a.다른백성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겔3:5)
3) 말씀의 권능을 줌
에스겔이 전파대상으로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곧고 무례하여 포악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에스겔의 사명이 순탄하지 않을것임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에스겔에게는 강하고 담대한 성품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이 그의 사명을 끝까지 잘 수행하도록 에스겔에게 말씀의 권능을 주었습니다.
a.금강석같은 이마(겔3:9)
b.성령의 권능(행1:8)
2. 에스겔 파송의 실행
1) 성신의 인도로 선교지에 파송됨
효과적인 사명수행을 위한 준비과정을 마치자 에스겔은 드디어 선교임지로 파송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가운데로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보냄을 받을때에 에스겔은 하나님의 신이 임함으로 그성신의 힘에 이끌리는 가운데 보냄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에스겔이 파송되는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인도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a.신이 들어올림(겔3:14)
b.성령의 인도(행16:6)
2) 감동을 입음
에스겔은 파송을 받을때에 하나님의 영의 권능에 이끌리어 임지로 이동했을뿐만 아니라 임지로 이동하는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영의 감동하심을 입었습니다. 에스겔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에 의해 그의 사명을 감당하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입어 일꾼으로 나아갈때에 이처럼 은혜를 입음으로 나아가는 축복되고 성공하는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a.성령충만한 제자들(행2:4)
b.성령충만한 베드로(행4:8)
3) 전파대상 가운데서 일정기간 거하면서 파수꾼됨을 인식함
그런데 에스겔은 임지에서 바로 말씀을 전파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임지에서 다시 칠일동안 침묵하는 가운데 자신의 사명을 가다듬고 전파대상을 연구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과정을 필요로하므로 우리는 그일에 부름을 받을때 신중하고 경건하게 수행해야 하겠습니다.
a.모세의 수련(히11:27)
3. 말씀의 내용
1) 악인을 깨우쳐 구해야 함
에스겔은 오랜 준비과정을 거쳐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그가 드디어 입을 열어 말한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가운데 첫번째 것은 악인을 깨우쳐 그 죄가운데서 구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따라서 대언자는 그누구보다도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그들이 돌아오도록 해야합니다. 그들이 그말을 듣고 돌이키면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듣지않을경우 전달자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전달자는 전달의 책무를 다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전하지 않으면 악인은 악가운데서 죽거니와 그피값은 전달자가 담당합니다.
a.악인에게 전파한 경우(겔33:8)
b.악인에게 전파하지 않은 경우(겔33:9)
2) 의인을 깨우쳐 악에 빠지지않도록 해야함.
말씀전파자는 죄인에게만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그가 평생 악의 길에 들지않도록 해야합니다. 모든인간은 항상 악에 빠질 가능성앞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경우에도 전파자가 전하면 그결과가 어떻든지 전파자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반면에 전하지 않은것으로 인해 악에 빠지면 전파자에게 피값이 전가됩니다.
a.의인에게 전하지 않은경우(겔3:20)
b.의인에게 전한 경우(겔3:21)
3) 백성이 듣지 아니하므로 선포하지 못하게 하심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그대로 전하였으나 이스라엘백성이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징계의 일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조차 못하도록 에스겔의 입을 막았습니다. 본장은 이내용으로 막을 내립니다.
a.예언을 봉함하라(단12:4)
결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는 자기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그불충성의 죄값을 반드시 치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가운데 전달자는 오직 말씀전파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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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책망할 일을 부여받은 에스겔 2:1-5
하나님께서는 그를 '인자'(1,3절) 곧 아담의 아들, 땅의 아들이라 부르고 있다. 이호칭은 하나님께서 그를 겸손케 만드는 명칭으로 볼수 있다. 에스겔이 풍성한 계시를 받았다해서 자고해지지 않도록 그가 여전히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려는 것이다. 달리 높이 올려주는 명칭으로 볼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명칭은 구약에서 메시야에 대하여 사용한 칭호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단 7:13, '내가 또 밤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같은 이가 하늘구름을 타고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1) 에스겔은 일으켜 세움을 받고(1,2절) 사명을 부여받는다.
1) 에스겔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일으켜 세워졌다. 인자야 일어서라. 엎드린자세는 큰경외를 표시하는 자세이지만 일어선자세는 일을 하기위하여 준비된 자세를 가리킨다.
2) 에스겔은 그명령에 수반되어온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일으킴을 받게되었다(2절).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셨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일어날 기력도 없었으며 그환상을 다시 쳐다볼 엄두도 나지않았다. 따라서 신이 그에게 임하여 일으켜 세우셨다. 신이 그를 일으켜 세우시사 그가 분부받은대로 설수 있게하셨다. 인자야 일어서라...나를...세우시기로.
(2) 에스겔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냄을 받는다(3절).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보내노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온 사람들을 능욕하였기때문에 포로신세가 되어 유배당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에도 선지자를 보내주셨다.
1) 이 사자가 보냄을 받은곳에 있는 백성들의 패역함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소위 '이스라엘 자손'이라 불리고 있다. 이렇게 경건한 조상의 이름으로 불리긴했으나 그들은 타락하여 '고임'(이방나라라는 뜻)이 되어버렸다. 이 고임이라는 말은 보통 이방인들에게 사용되었던 단어였다. 그들은 계속 패역한세대로 이어졌으며 그패역을 고집하였다. 그들과 그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 현재 그들은 강퍅하고 '얼굴이 뻔뻔하며' 옹고집이었다.
2)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4절). 선지자가 그들에게 하는 모든말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권세로 하는 것이어야 했고, 또한 그에게서 나온 말씀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의 기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해야 마땅하다. 사람들의 마음이 그말씀아래 소멸되고 고집이 그말씀에 꺾이게 될때, 그들은 선지자의 말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고 그사실에 대하여 증인이 될것이다. 만약 그들이 그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하더라도 그들은, 양심의 가책과 선지자를 거절한 대가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정당한 심판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무시했던 그사람이 진정 선지자였음을 알게될 것이다.

Ⅱ. 선지자에게 내린 훈령 2:6-10
선지자는 사명을 받은후 다음과 같은 권면을 받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1) 담대하라는 권면을 받는다. 인자야 너는...그들을 두려워말고(6절). 선지자가 파송되는 곳의 사람들은 그가 어느방향으로 몸을 돌리든지 괴롭히는 '찔레와 가시들'같은 존재들이었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찔레와 가시들이다. 그들은 독을 머금은 무서운 전갈들이다. 전갈의 쏘는 독은 가시보다 수천배의 상처를 낸다. 환상중에 천사들과 대화하고 있었던 에스겔은 그환상에서 깨어나면 자신이 '전갈중에 처했음'을 알게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가 선지자노릇을 포기하도록, 아니면 적어도 하나님의 심판을 가지고 자기에게 위협을 가하지 못하도록 하기위하여 그를 괴롭히고 협박할 것이다.
(2) 신실하라는 권면을 받는다(7절).
1) 그는 자기를 파견하신 그리스도께 대하여 신실함을 지켜야 한다.
2) 그는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자들의 영혼에 대하여 신실해야 한다. "그백성들이 심히 패역한 자라는 것은 불문지사니라. 그러니 그들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너는 내말만 말할지니라."
(3) 하나님의 지시를 준수하라는 권면을 받는다.
1) 선지자앞에 펼쳐진 책에 지시되어있는 사항을 준수하라는 것이다(10절). 두루마리는 '그안팎에' 즉 안쪽면에도 바깥쪽면에도 글이 기록되어 있었다. 한쪽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소상히 적혀있었으며, 다른쪽면에는 그죄악에 대한 벌로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들이 적혀있었다. 그는 슬픈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책에 담겨져있는 내용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었다. 거룩하고 복된 백성이 그러한 죄와 비참함속에 빠져들어가는 사실을 보는것보다 더슬프고, 더눈물이 나오고, 더무서운 일이 어디있단 말인가.
2)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전달함에 대한 하나의 분명한 분부가 주어진다. 선지자는 부지런히 그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8절). 만약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죄를 묵인하고 그들이 불쾌해 할것을 두려워하는 죄인들을 만족시켜 주려고 한다면, 그들은 죄인들의 죄악에 대하여 책임을 물어야한다.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들을뿐만 아니라 너의 입을 열어 내가 주는것을 먹으라. 그것을 즐겨 맛있게 먹으라."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지자앞에 가져와 펼쳐 보이셨는데, 이는 선지자로하여금 그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 자기의 것으로 만들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 핵심
2:1-10
에스겔이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에 압도당한 상태에서 소명을 받는 장면이다.

# 묵상
인자 ( 2:1 )
성경에서는 ‘인자’라는 단어를 세가지 의미로 사용했는데 에스겔서에서는 신과는 비교할수 없는 연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이란 의미로, 다니엘서에서는 메시야를 가리키는 용어로, 신약에서는 예수께서 자신의 인성을 강조하시는 말로 각각 사용되었습니다. 에스겔은 이단어를 신이 인간을 부르시는 보통의 명칭으로써 사용했습니다.

# 해설
에스겔을 부르신 하나님 ( 2 )
본장은 제1장에서 나타나신 거룩하고 전능하시며 지극히 영화로우신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있으면서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대적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에스겔을 보내는 장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본장은 영광가운데서 심판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 에스겔을 대언자로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시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소명자 에스겔에게 주신 것
1) 말씀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위해 부르심을 받은 에스겔은 보냄을 받기전에 소명자로서, 대언자로서 몇가지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에스겔이 받은 첫번째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자로 부르심을 입었기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a.말씀이 임함(겔3:16)
b.주께서 분부하신 것(마28:20)
2) 권능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위해서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무엇, 즉 하나님의 권능을 필요로 합니다. 거룩한 말씀, 거룩한 사역은 거룩한 능력으로서만이 전해지고 성취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도 그가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았습니다. 에스겔은 부르심을 받을때에 하나님의 신으로부터 일으킴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입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한다면 우리의 힘으로써 할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을 입음으로 하여야할 것입니다.
a.보혜사를 통해 함께하심(행1:8)
b.권능을 받음(요14:16)
3) 말씀선포의 사명
에스겔은 막연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는 명령을 받은채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냄을 받은것이 아닙니다. 에스겔은 사생결단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라는 중대한 사명을 받은후 보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일꾼을 뽑으실때 해도되고 안해도 된다는 식으로 뽑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일을 반드시 이루도록 하시는 가운데 자기종을 부르시고 보내십니다. 오늘 우리도 부르심을 받고 보냄을 받았다면 필사 각오의 자세로 맡은바 소임을 다해야할 것입니다.
a.지상명령(막16:15)
b.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
2. 소명자가 보냄을 받은 대상
1)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도록 소명을 받았을때 그임무를 수행해야할 대상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돌아선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준비도 되어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귀를 막은채 하나님께 거역할 자세만을 취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보냄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에스겔에게 주어진 사명은 결코 쉬운것이 아니었습니다.
a.패역하여 율례를 버림(겔20:13)
b.안식일을 더럽힘(겔20:21)
2) 옛부터 지금까지 배반한 백성
에스겔이 말씀을 전파하는 대상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선 백성이었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이방의 신들을 섬긴 배반하는 백성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신들, 앗수르의 신들, 가나안의 신들, 바벨론의 신들을 섬김으로써 그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배반하는 패륜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a.이스라엘의 우상숭배(겔16:36)
b.가증한 제사(겔20:28)
3)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김으로 범죄하고 더나아가 이방의 신들을 섬기는 배반의 죄를 저지르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회개를 종용하는 선지자들을 보내어도 그들은 그마음을 굳게할뿐 돌이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처럼 뻔뻔하고 강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사명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루기 매우 힘든 사명이었습니다.
a.이스라엘의 뻔뻔함(겔16:28)
b.이스라엘의 강퍅함(겔20:32)
3. 소명자 에스겔이 취할 자세
1) 말씀을 자기것으로 삼아야 함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하는 사명을 받은 에스겔은 몇가지 사명자가 취해야할 자세를 하나님께로부터 요구받았습니다. 그첫번째 자세는 말씀을 받되 파상적으로 받지말고 온전히 자기것으로 삼아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스겔은 말씀을 송두리째 먹을것을 요구받은 것입니다. 실로 전해야할 말씀을 온전히 이해해야 하는것은 사명자에게 마땅히 요구되는 자세입니다.
a.두루마리를 먹으라(겔3:1)
b.책을 먹으라(계10:9)
2) 어떤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들은바를 전해야 함
에스겔이 요구받은 두번째 자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듣든지 듣지않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전달의 사명을 받은자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이상 인간들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전해야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선포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포된 것이 반응을 얻을 것인지 아닐지는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전달자는 오직 전해야할 뿐입니다.
a.내말로 고하라(겔3:4)
b.듣든지 아니듣든지(겔3:11)
3) 듣는 자에게 아무리 나쁜내용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함
거짓된 전파자의 특징은 전하는 대상으로부터 이익얻기를 바라기때문에 그대상에게 해가 되는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편에 서있는 자는 이해관계를 따지지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달합니다. 에스겔도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그것이 나쁜내용일지라도 그대로 전달받을 것을 요구받았습니다.
a.재앙의 말이 기록된 책(겔2:10)
b.거짓선지자의 특성(겔13:10)
결론
하나님의 대언자가 대상으로 하는 인간들은 악하고 강퍅하고 뻔뻔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대상들에게 그들이 듣든지 안듣든지, 내용이 좋은것이든 나쁜것이든 전할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전달자는 그명령에 따라야합니다. 그리고 그명령에 따르면 전달자는 그의 임무를 성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그에게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르심을 입으면 순종함으로 맡은바 사명에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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