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가나안 땅 분배원칙 14:1-5
이제 역사가는 그들이 가나안 땅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서술한다. 가나안 땅은 황폐하도록 버려두기 위하여 점령한 것은 아니다. 만일 가나안 땅을 거주지로 삼지않는다면 헛되이 정복한 것이다. 아직 모든 사람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곳에 거주할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어떻게 이땅을 분배할 것인지에 대하여 모세에게 지시하셨다(참조. 민 24:53).
(1) 이 거대한 과업을 수행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지명하셨다(민 34:17 이하). 그들은 곧 총사령관 여호수아, 대제사장 엘리아살, 그리고 아직 기업을 받지못한 각지파에서 하나씩 선출된 열명의 족장이다.
(2) 이땅을 나누어 받을 지파는 모두 아홉지파 반이다. 레위 지파는 여기서 제외되었다. 그들은 달리 살길이 정해진다. 요셉은 두지파를 이루었다. 곧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인데, 그것은 야곱이 요셉의 두아들을 양자로 삼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지파의 수는 여기서 암시하는 것처럼(4절) 레위 지파를 제외하고도 열두 지파가 된다.
(3) 그들이 택한 방법은 제비뽑기였다(2절).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다'(잠 16:33). 이처럼 중대한 일에는 제비뽑기가 실시된다. 달리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만한 방법이 없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동의아래 하나님께 그 결정권을 돌리는 표시로서 엄숙한 종교적 태도로 실시된다.

Ⅱ. 갈렙의 기업 14:6-15
각지파의 기업을 결정하기 위한 제비뽑기가 실시되기 직전에 특별한 분깃이 갈렙에게 주어진다. 갈렙은 여호수아를 제외한 온이스라엘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다. 게다가 다른 모든 백성들보다 적어도 스무살은 더많다. 왜냐하면 그 마흔살이었을때 스무살이상의 사람이 모두 광야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불사조의 인물에게 어떤 특별한 존경의 표시로 땅을 할당해준다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1) 갈렙은 여기서 헤브론을 다른 땅과 함께 제비뽑기의 대상지로 넣지말고 자기의 기업으로 달라고 청원한다. 그는 헤브론을 '이 산지'라고 부른다(12절). 이 청원이 정당함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모세를 통하여 '이 산지'를 그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음을 상기시킨다.
1)강력히 청원하기 위하여 그는 첫째, 유다 자손 곧 유다 지파의 두령들과 유력인사들을 대동하였다. 둘째, 그는 자기가 청원하는 근거가 정당한 것임을 여호수아에게 호소한다.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바라(6절).
2)갈렙의 청원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그땅을 정탐함에 있어 양심적으로 행하였음을 진술한다.
㉠그는 마음에 있는그대로 보고 하였었다. 자세한 내용은 민 13:30;14:7-9절을 참고하라. 그는 단지 모세의 귀를 즐겁게하거나 백성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그렇게 보고한 것도 아니고 자기 동료들을 반박하려는 마음에서도 아니요, 자기가 한말의 진실함을 전적으로 확신하며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마음으로 그런 보고를 한것이다.
㉡이점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다. 그러므로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전혀 자신의 헛된 영광을 위함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들을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해줌으로써 남들을 고무해주기 위함이었다.
㉢여호수아를 제외한 모든 형제들과 동료들이 반대 입장을 취했을때 그는 이와같은 보고를 하였었다.
②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그때까지 경험한바를 진술한다.
㉠광야에서 살아남은 일을 이야기한다. 그 지루한 행진중에 닥친 모든 위험과 피로중에서도 살아남았고, 또한 자신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동시대의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멸절될때 그는 살아남았다. 그는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야기한다(10절). 이제 보소서. 이 사십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38년동안은 광야에서 사막의 재앙을 통과했고, 7년은 가나안에서 전쟁의 위험을 통과해 온것이다. 오래 살면 살수록 생명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연약한 생명을 연장시켜주시는 보호하심과 죽을수밖에 없는 인생을 연장시켜주시는 오래참으심을 더욱 뼈저리게 느껴야만 한다.
㉡그는 아직도 일을 할수 있는 형편으로 가나안에 도착했음을 이야기한다. 비록 팔십오세의 나이이지만, 아직도 사십세때처럼 정정하다고 주장한다(11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이것은 약속의 열매이다. 그러나 그것은 훨씬이상의 것이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뿐만 아니라 더 주신다. 약속된 인생은 생명과 건강과 힘과 그리고 그 삶의 축복과 위로로 채워주시는 모든것을 누릴 것이다.
③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산지'를 그에게 준다고 약속한 일을 이야기한다(9절). 이곳은 다른 어느지역보다 더 정탐꾼들의 중요한 보고대상이 된 지역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아낙 자손을 보고 그모습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민 13:22,33).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추측할수 있다. 즉, 다른 정탐꾼들이 헤브론 거민들이 주둔하고 있던 성을 정복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갈렙은 그들이 '무적의' 도시라고 부른 곳을 자기의 분깃으로 정해달라고 용감하게 요구하였었다. "그 성은 내가 맡아 하겠습니다. 내가 그 성을 기업으로 얻을수 없다면, 없는 그대로 지내겠습니다." 그가 이곳을 택한 것은 단지 그곳이 정복하기 가장 힘든 곳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것은 그의 영혼이 육체와 마찬가지로 기력을 잃지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사십오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는 여전히 자기의 선택에 대하여 변함이 없으며, 한결같은 마음을 소유하고 있었다.
④지금은 비록 아낙 자손이 그성을 장악하고 있지만 자기가 그성을 소유할수 있다는 소망을 이야기한다(12절).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헤브론 성은 여호수아가 이미 항복시켰다(10:37). 그러나 헤브론에 속한 산지는 아직도 아낙 자손이 거주한채로 정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서 그는 마치 자기의 보잘것없음을 겸손하게 느낀 나머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심을 약간 회의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만일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신다면 아낙 자손을 얼마든지 쫓아낼수 있다는 확신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표현한다. 역시 갈렙은 그의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뜻은 '온마음'이라는 것이다.
(2) 여호수아는 갈렙의 요청을 들어준다(13절). 여호수아는 갈렙을 축복하고, 그의 용기를 높이사서 그의 요청을 칭찬하고 그가 요구한바를 들어주었다. 헤브론이 갈렙과 그의 후손의 기업이 된 이유를 14절에서 볼수 있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헤브론은 아르바의 성이었다. 그는 아낙 자손중에서도 가장 큰사람이었다(15절). 그성은 '기럇아르바'라고도 불리우는데(창 23:2) 거기서 사라가 죽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들이 가나안에 머무르는 동안의 대부분을 이 부근에서 살았고, 그 근처에는 그들이 묻힌 막벨라 굴이 있다. 아마도 갈렙은 이땅을 다른 어느곳보다도 기업으로 삼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이성은 제사장들에게 속한 성중의 하나이며(수 21:13) 도피성이기도 하다(수 20:7). 갈렙이 그 산지를 소유하게 되었을때 그는 그성 주변의 땅으로 만족하고, 그성 자체는 기꺼이 여호와의 수종자들인 제사장들에게 내주었다. 이 성은 왕도였고, 다윗의 통치초기에는 유다 왕국내의 대도시였다. 거기서 백성은 다윗을 추종하였고, 다윗은 7년을 거기서 통치하였다.

# 핵심
14:1-15
요단서편 지역의 영토분배에 관한 기록이다. 요단동편 지역의 영토분배를 함께 언급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단일성을 강조하고 있다.

# 묵상
요셉 자손이 둘이 된 이유 ( 14:4 )
요셉 자손이 둘이 된 이유는 야곱이 임종하면서 예언한것 때문입니다(창48:5). 하나님은 당신과 교통하면서 섬기는 자의 소원을 성취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기업을 받을 자격 ( 14:6-9 )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순종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비록 육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혈통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선물로 받을수 있게 되었습니다(요1:13).
갈렙의 신앙 ( 14:6-15 )
갈렙은 원래 그나스(그니스) 사람이었는데(민32:12) 그니스 족속은 에돔의 후손으로(창36:9-11) 가나안에 거주했고, 정복대상의 목록에 나왔던 족속입니다(창15:18-21). 그런데 이 족속은 어느새 이스라엘에 편입되어 들어왔고 특히 유다 지파에 속하게 되었으며,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자로 활동했던 것입니다(민13:6). 갈렙은 성실과(14:7) 온전한 순종의 사람으로(14:8) 말씀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민14:8, 9). 또한 불의를 보면 분개했으며(민14:6) 영적인 강건함이 있었습니다(14:11). 그리하여 그는 가나안 땅에서의 기업과 건강, 장수의 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성실한 신앙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됩니다. 언약→믿음→순종→복은 영원히 변함없이 시행되는 하나님의 원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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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정복되지 않고 남은 땅 13:1-6
(1)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그가 늙었음을 상기시킨다(1절).
1)여호수아가 나이많아 늙으매. 당시 그와 갈렙 두사람은 수많은 이스라엘 자손가운데 시대산에서 계속된 사람들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여호수아는 그의 노년에 모세처럼 그리 강건하지는 못했다. 노년기에 이르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좋은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2)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그 사실을 주목케하신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많아 늙었고.
①그렇게 말씀하심은 그가 이제 전쟁을 추구하는 생각을 그만둘때가 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그가 모세를 이어 그 과업을 시작했던 것처럼, 이제는 다른 사람들로하여금 이 과업을 잊게하여야 한다. 이 과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은 오랜후의 다윗을 위하여 남겨졌다.
②이는 또한 그로하여금 신속히 점령지를 분배해 주게하기 위함이다. 이일은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도 속히 해야만 한다. 나이많아 늙은 여호수아는 이제 더오래 살것 같지는 않은 형편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위한 그의 마지막 봉사가 될 이일을 하도록 하신다.
(2) 하나님은 아직 정복되지 않고 남은땅에 관하여 특별히 말씀하신다. 그 땅들은 이스라엘을 위해 예비된 것이며, 이스라엘의 문빗장을 가로지르지만 않는다면 적절한 시기에 얼마든지 차지할수 있는 땅이다. 다양한 장소들이 언급되었는바 남쪽으로는 다섯방백이 통치하는 블레셋 땅과 애굽쪽으로 위치한 땅(2,3절), 서쪽으로는 시돈 사람에게 속한 땅(4절), 동쪽으로는 온 레바논(5절), 북쪽으로는 하맛에 들어가는 곳까지(5절) 등등이다.
(3) 비록 여호수아가 늙었지만 하나님은 이들, 즉 아직 정복되지 않은 모든땅이 이스라엘의 차지가 될것임을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이 정하신때에 자신의 일을 행하신다(6절). 내가 그들을 쫓아내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앞에서 이들을 쫓아내겠다고 하신 약속은 분명히 이스라엘 자손이 스스로 그들을 쫓아내는 일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있다. 그렇지않으면 그들앞에서 쫓겨났다고 말할수 없을 것이다. 만일 장차 이스라엘이 게으름이나 또는 겁때문에 주저앉아서 그들을 내버려둔다면, 그들을 쫓아내지 못한다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안에서 일하시고 우리와 함께 일하실 것이다.

Ⅱ. 요단동편의 두지파 반의 기업 13:7-33
(1)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땅을-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까지 포함하여-각지파에게 나누어주라고 명하신다.
1)그땅은 지파들에게 분배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항상 함께 살아서는 안된다.
2)비록 이땅을 정복해서 얻었지만, 그것은 기업으로서 분배되어야 한다.
①이땅은 그들의 조상적부터 기업으로 약속받은 땅이다. 그 약속의 땅이 약속된 자손에게 돌아간 것이다.
②그 소유지는 그들의 자손들에게 기업으로서 물려가게 되었다.
3)여호수아는 자기 생각대로 땅을 나눌수는 없었다. 비록 그는 매우 현명하고 의롭고 선한 사람이긴 하지만, 각지파에게 그가 원하는대로 주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제비로 결정하여야 했다. 이것은 모든일을 하나님께 곧 그분의 결정에 맡김을 뜻한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땅을 분배해주는 영광을 누린다.
①그것은 그가 그땅을 정복하는 수고를 치렀기 때문이다.
②또한 여호수아는 이점에서 그리스도의 표상이 되기도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지옥문을 정복하셨을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하늘문을 열어 주시고 모든 성도를 위해 영원한 기업을 사신후에 정하신때에 그들로하여금 그 기업을 소유하게 하실 것이다.
(2) 여기서 요단강 동편의 땅을 르우벤 지파,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할당한 설명이 나온다.
1)이 설명이 도입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요단 이편의 땅을 오직 아홉지파 반에게만 나누어주어야 하는 이유로서 설명되었다. 나머지 두지파 반은 이미 기업을 받았기 때문이다.
②여호수아가 이제 해야하는 일의 본보기로서 설명되었다.
③여호수아를 자극하여 서둘러 이땅을 나누어주게 하는 요인으로서 설명되었다. 아홉지파와 반지파가 자기들의 형제, 나머지 두지파 반이 그들의 기업에서 안주하고 있는 반면에, 필요이상으로 기업을 받지못한채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2)이 이야기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여기에서는 두지파 반에게 주어진 땅에 대한 개괄적인 기술을 보게된다. 그땅은 '모세가 그들에게 준것'이다(8절). 모세가 주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말한 것은 여호수아도 그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땅의 경계를 정하는 것을 보게된다. 이로인해 비로소 그들은 이웃나라들과 구분되었다(9절 이하). 이스라엘은 자기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지켜야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소유에서 제외된 지역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곧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의 땅이다(13절).
②이들 두지파 반의 기업에 대한 상세한 기술을 볼수 있다. 그것은 완벽하고 정확하게 설명되었다. 이는 후손들이 이 역사를 읽을때에 자기 조상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더욱 큰감명을 받을수 있게끔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각지파의 경계선이 이 신빙성있는 기록에 정확하게 설정되어 있어서 아무런 논쟁의 여지가 없게하셨다.
㉠우선 야곱의 큰아들 르우벤 지파의 기업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르우벤은 비록 장자권의 위엄과 권한은 상실했다. 하지만 첫번째로 대우받는 특권은 누리고 있는것 같다. 드보라는 이지파가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다른 지파와 떨어진 것을 애통해 하였다. 드보라는 그들이 사적인 이익을 더 추구한 점을 들어 그들을 질책하였다(삿 5:15,16). 이 지파의 분깃안에는 헤스본과 십마가 있는데, 이 두성읍은 비옥한 밭과 포도원으로 유명하다. 이 지파는 갓 지파와 함께 아람왕 하사엘에 의하여 크게 되었고(왕하 10:33) 후에는 다른 열지파가 전부 포로로 잡혀간 때보다 20년이나 먼저 앗수르왕에 의해 포로가 되어 다른 땅에 옮겨졌다(대상 5:26).
㉡갓 지파의 기업은 이러하다(24-28절). 르우벤 지파의 북쪽에 놓여있는 이 기업의 기업안에는 향유로 이름높은 길르앗 땅과 야베스 길르앗, 라못 길르앗 등의 성읍이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이름들을 자주 대한다. 기드온의 기사에서 읽게되는 숙곳과 브누엘, 그리고 장미로 유명한 샤론도 이 지파안에 있다. 그리고 이 지파의 경계안에서 구세주보다 그들의 돼지를 더사랑했던 가다라 사람들이 살고있었다. 이들은 아마 '이스라엘 사람'이라기보다는 '기르가스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것이 더적합할 것이다.
㉢므낫세 반지파의 기업은 이러하다(29-31절). 옥의 왕국 바산이 이들분깃에 속하였다. 바산은 '바산의 상수리나무'라는 말이 있을만큼 훌륭한 목재로 유명하며, 또한 '바산의 황소와 양'이라고 할만큼 그 좋은 품종의 가축으로도 유명하다. 이 지파는 갓 지파의 북녘에 자리잡고 있으며 헤르몬산까지 이르렀고 길르앗의 일부분도 포함하였다. 미스바가 이 반지파내에 있고, 입다는 그들이 자랑하는 인물중의 한사람이며, 엘리야도 그러하다. 이 지파의 분깃안에 디셉이 있는데 엘리야는 이 지명을 따라 디셉 사람으로 불리웠다. 야일도 빼놓을수 없는 사람이다. 이 지파의 가장자리에 고라신이 위치하고 있다. 고라신은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역이 행하여지는 영광을 얻었지만 계속 발전시켜 나가지 아니한고로 결국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 말미암아 쇠망하게 된다.
㉣레위 지파에게는 하나님이 정하신바대로(민 18:20)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다'(14,33절). 이들은 모두 지파중에 흩어져 거하며 그들 모든 지파들로부터 생계유지를 위한 제물을 받아야 했다(신 10:9;18:2).

# 핵심
13:1-33
13장부터 21장까지는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13장은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들과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가 요단 동부지역을 차지하게 된 사실을 기록한다.
약속의 현재성과 미래성(13:1)
여호수아서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말하면서(11:23; 21:45), 동시에 정복해야할 땅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말한다(23:4,5).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인 주제이다. 신약성경에서도 하나님나라의 축복이 그리스도안에서 ‘이미 주어진 현재적인 사실’임과 동시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적인 사실’로 남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엡 1:3,14).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현재 그분의 은총과 축복을 맛보게 됨과 동시에 보다 완전한 마지막 구원의 때를 소망해야 한다.

# 묵상
일의 실현에 있어서 노인의 역할 ( 13:1 )
유대사회에서는 보통 60-70세를 노인으로 보는데 여호수아 당시는 아직 활동이 왕성하기에 80세부터 임종때까지에야 비로소 늙었음을 인정했습니다. 성경은 노년의 백발을 영화로운 면류관으로 표현하는데(잠16:31), 이는 노인들이 인생의 경험을 통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으며 끝까지 온전한 자가 되는 모범을 보이기 때문입니다(딛2:2, 3).
남은 땅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 13:2-6 )
이와같이 하나님은 성취하지 못한 일을 살피시고 고려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성도가 행할수 있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이 완성할수 없는 일에 대해서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직접 이루십니다.
기업분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 13:6-33 )
사랑의 하나님(신7:6-8), 공평하신 하나님(고후8:13-15), 은혜의 하나님(롬3:24), 신실하신 하나님(창15:7-21), 소망의 하나님(요10:28), 풍성하신 하나님(엡1:13, 14)이십니다.
땅분배의 원칙 ( 13:7 )
각지파의 사정에 따라 공평하게 나누었습니다. 성경에서 토지는 결코 매매나 증여에 의해서 타인의 소유가 될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공평하게 나누게 하는데 그이유는 땅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단강 동편 ( 13:8-31 )
원래는 이방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느곳에 있어도 그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은 장소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땅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기업을 얻지못한 레위 지파 ( 13:14 )
그이유는 하나님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특별한 종교적 사역을 담당한 사람들은 세속적인 번거로운 일로부터 가능한 한 제외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그들이 생활의 불편함을 느끼지않도록 생계를 돌보아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고전9:7-10).
발람의 죽음 ( 13:22 )
발람은 브돌에 사는 점술가로 발락이 제시한 물질의 유혹에 넘어가 후에 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함으로써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처럼 물질은 사람의 눈을 어둡게하는 것입니다(딤전6:10).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세상이 제공하는 물질을 바라보는 사람은 곧 멸망하고 맙니다.
성직자의 바른자세 ( 13:33 )
레위 지파처럼 성직자는 오직 하나님만을 자기 기업으로 삼아야합니다. 즉 성직자들은 다른것에 신경을 써서는 안되고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는 일에 주력해야 하는 것입니다(렘3:15; 벧전5:2).
성도의 기업 ( 13:33 )
성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주어진 천국의 기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음란과 방탕한 삶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안에서 성결한 삶을 사는 자가 받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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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요단동편의 점령지 12:1-6
다른 누가 역사를 기록했더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정복을 기록하기 앞서서 모세시대에 이룩했던 정복을 먼저 기록한다. 즉, 모세시대에 점령한 강대한 시혼과 옥의 왕국을 기술하고 있다. 여호수아의 봉사와 업적은 분명히 괄목할만한 것이지만 모세의 그것을 그냥 보아 넘기거나 잊어서는 안된다.
(1) 여기서 점령지에 대하여 기술한다(1절). 남쪽으로는 '아르논 골짜기에서' 북쪽으로 '헤르몬산까지'이다. 특별히 여기서 시혼의 왕과(2,3절) 옥의 왕국(4,5절)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모세는 이땅에 대하여 아주 상세히 기록하였는데(신 2:36;3:4등) 여기의 기록은 모세의 기록과 일치한다. 바산왕 옥은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하였다고 했는데(4절) 아마도 두성읍 모두 그의 왕도였던것 같다. 그는 두곳에 궁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에게서 그 둘을 다빼앗고 그중 하나를 궁전 하나로 만족하지 않았던 그를 위한 무덤으로 만들었다.
(2) 그땅의 분배에 대하여 기술한다. 모세는 두지파 반의 요구에 따라 그들에게 이땅을 할당해주고 나누어주었다(6절). 자세한 것은 민수기 32장에 기록되어 있다. 모세가 그땅을 점령한후 나누어준 일을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요단이편 땅을 점령한 여호수아 역시 그리하여야 한다는 본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모세는 자기생전에 매우 풍요로운 땅을 이스라엘의 일부지파에게 주었으나 그땅은 요단강 바깥쪽에 위치한 땅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요단강 안쪽에 있는 거룩한 땅 곧 하나님의 성스러운 대지를 온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었다.

Ⅱ. 요단서편의 점령지 12:7-24
여기서는 여호수아의 점령지에 관하여 간단히 기록하고 있다.
(1) 점령지의 경계선은 다음과 같았다(7절).
동쪽으로는 요단강과 서쪽으로는 지중해사이에 놓이며 북쪽으로는 레바논 근처의 바알갓에서부터 남쪽으로는 에돔땅에 위치한 할락산까지 이른다. 경계선에 대해서는 민수기 34:2절이하에서 더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신실하시며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 모든땅을 그들에게 주셨던 것이다.
(2) 점령지에서는 갖가지 지형을 찾아볼수 있다(8절). 이 다양성은 그땅을 기쁨과 풍요로 채워준다. 산들은 험하고 바위많은 불모의 산이 아니라 '보물'(신 33:15)을 생산할수 있는 풍요로운 산지이고, 골짜기들은 이끼와 늪으로 덮인 것이 아니라 '곡식으로 덮여'있었다(시 65:13). 평지와 물을 대주는 샘들과 심지어 이 풍요로운 땅에는 광야와 숲도 있었다.
(3) 이땅을 원래 소유하고 있던 족속들로는 헷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함의 저주받은 아들, 가나안의 후손이다(창 10:15-18). 이들은 일곱족속으로서 여러번 언급되고 있는데(신 7:1), 여기서는 단지 여섯족속만 언급하고 있다. 창 10:16절과 15:21절에서 찾아볼수 있는 기르가스 족속은 아마 빠지거나 빠뜨린것 같다. 이들은 다른족속들과 합세하여 싸웠든지 아니면 유대인의 전설에 나타난대로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지휘아래 접근해오자 그들 모두가 애굽으로 도망했든지 했을 것이다.
(4) 이스라엘의 칼날아래 정복되고 희생당한 왕들의 이름이 나열되었다(9-24절). 여리고왕, 아이왕, 예루살렘왕 및 그와 동맹한 남방의 군주들, 그리고 북방에서 동맹한 군주들 등이 차례로 열거되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우리는 그 당시 가나안 땅이 그처럼 많은 왕국들을 먹여 살릴수 있는 너무 풍요로운 땅이었음을 알수 있다.

# 핵심
12:1-24
모세와 여호수아의 지도아래 정복한 땅과 왕들을 요약한다. 11:17절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 묵상
요단동편 땅의 정복 ( 12:1-5 )
헤스본왕 시혼과 바산왕 옥이 이스라엘의 그땅 통과를 거절하고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적으로는 강한자도 하나님의 능력앞에서는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기에 이스라엘에게 정복당하게 됩니다. 이로써 요단서편 땅의 정복에 있어서 큰성과를 거두었는데, 이미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두려워했고 이어 전의를 상실했던 것입니다.
정복된 땅이 주는 영적교훈 ( 12:3-23 )
성도의 순례의 길에는 영적전쟁이 있다고 하는 것과(엡6:10-18) 전쟁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해있기에(대하20:15) 오직 주안에서만 승리하고(엡6:10,13) 무릇 사탄을 대적해서 이겨야 하고(약4:7) 세상의 악과는 대적해야 하며(요일2:15) 영적전쟁은 성도의 영적성숙의 기회임을 가르쳐줍니다(엡4: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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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북쪽동맹군과의 싸움 11:1-9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의 또다른 원정을 보게된다. 이적의 측면에서 볼때 영광이 지난번 보다는 못하다. 그때 하나님은 기사를 통하여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용감히 행하도록 하시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단의 왕국에 맞서서 전파하는 전쟁은 처음에 이적들로써 시작된다. 그러나 그전쟁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러졌다는 것이 충분히 입증된후에는 이 전쟁수행자들은 성령의 칼을 사용하는데 있어 더이상 우박이나 해가 머무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이 기사를 통하여 다음을 알수 있다.
(1)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맞서서 출전했다. 그들은 공격자들이었다. 죄인들은 자기 머리를 상하게만 할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하실때 의롭다여김을 받으실 것이며, 그들은 영원히 수치를 당할 것이다.'
1)몇몇나라가 동맹에 가담하였는데, 그중 몇은 '산지에', 다른몇은 '평지에' 거하는 나라였다(2절). 그들은 이스라엘을 공동의 적으로 삼고 연합한다. 이처럼 '이세상의 자녀들'은 '빛의 자녀들'보다 더잘 연합하고 따라서 더현명하다. 교회의 원수들이 하나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교회의 벗들은 불일치와 분열을 부끄럽게 여기고 하나되는 일에 힘써야 한다.
2)이 동맹군의 우두머리는 '하솔왕 야빈'이었다(1절). 이들이 병력을 모두 집결시키자, 그것은 대군을 이루었다. 그들에게는 말과 병거도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이것들은 남쪽왕들에게 없던 것들이다.
(2) 하나님이 여호수아더러 그들을 자기들이 택한 전쟁터에서 접전하라고 격려하신다(6절).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말라. 여호수아는 뛰어나게 용감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그가 받은 가장 큰은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듭거듭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의를 들을 필요가 있었던것 같다. 하나님이 격려하신 것을 살펴보면
1)그의 승리를 확신시키고 시간까지 정해주셨다. 내일 이맘때에.
2)'말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는 지시를 내리셨다. 이는 이스라엘이 이후에 그것들을 사용하지 못하게하려는 것뿐아니라 지금 그것들을 두려워하지도 않게하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로하여금 불에 탈 썩은 나무같은 병거들과 전쟁에서 마차도 제대로 끌지못할정도로 제 기능을 발휘못하는 말들을 보게하셨다.
(3) 동맹군을 향하여 진격해 나아가다(7절).
(4) 승리하다(8절). 그는 완전히 승리함으로써 명예와 이익을 얻는다. 그는 그들이 도망하는 몇길에서 그들을 쳐죽이고 추적하였다.
(5)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말과 병거를 파괴시키다(9절). 이는 백성들이 지나치게 신뢰할만한 유혹받기 쉬운 것들을 끊어버리고, 그들로하여금 다만 하나님만 신뢰하기위한 배려였다. 이것은 실로 '오른손을 자르는' 행위인 것이다.

Ⅱ. 동맹군의 성읍들을 취함 11:10-14
앞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승리를 활용하는 것을 볼수 있다.
(1) 하솔의 파멸에 대하여는 특별히 기록되어 있다. 그 성의 왕이 이스라엘을 대적한 주모자이고 그 성안에서 모의가 있었기 때문이다(10,11절).
(2) 그 지역의 나머지 성읍들에 대하여는 다만 대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호수아는 이들 성읍들을 모두 손에 넣은후 하솔처럼 불사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이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신 6:10)에 거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들 남겨둔 성읍들이 바로 그런 성읍이었다.

Ⅲ. 전쟁의 종식 11:15-23
본문은 이 전체사건의 결론을 기록하고 있다.
(1) 이 짧은 기록은 다음의 네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1)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한 가나안 족속의 완강함을 볼수 있다. 다른 성읍들도 헤어진 옷과 떨어진 신발이 아니더라도 스스로를 낮추기만 했더라면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더나은 결과가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평화의 조건들을 바라지' 않았다. 이들의 모든 어리석음을 벌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친구로 만들수 있었던 자를 적으로 삼게끔 만들었다.
2)이스라엘 자손은 오랫동안 계속해서 이 전쟁을 수행하였다(18절). 여호수아가 싸운지는 여러날이라. 어떤이는 5년이라 하고, 다른 어떤이는 이땅을 항복시키는데 7년이 걸렸다고 한다.
3)마침내 아낙 사람을 정복한다(21,22절).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이 패주할때에 진멸될수도 있었겠지만 아낙 자손들이 그들의 요새로 퇴각했기때문에 이스라엘이 다른적들을 모두 무찌른후 마지막으로 그들을 찾아내어 진멸했다고 보는것이 더타당할 것이다. 유다와 이스라엘 산지는 그들 산지족들의 거주지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그 산이 높고 그 동굴이 견고하며 그곳으로 가는 통로가 험하다고하여도 이들 군사들을 여호수아의 칼로부터 지켜줄수는 없었다. 아낙 자손을 진멸한 일을 특별히 기록한 것은 40년전 이들이 이스라엘 정탐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스라엘 정탐들은 가나안을 정복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체구와 힘을 도저히 극복할수 없는 난관으로 생각했었다(민 13:28,33). 거인도 전능자앞에서는 난쟁이나 다름없다. 어쨌든 아낙 사람들과의 이 싸움은 이스라엘 자손이 충분히 전쟁기술을 익히고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을 더욱 경험한 이후인 전쟁의 마지막때까지 보류되었다. 하나님은 때때로 자기 백성과 고난과 시련을 당하는 중에 가장 어려운 시험은 그들 생애의 거의 마지막때까지 보류하신다. 무시무시한 아낙 자손으로 비유되는 죽음은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마지막 대적인데, 그것은 '멸망되기로' 작정되어 있다(고전 15:26).
4)이 장기전의 종식과 그결과 가나안 족속은 뿌리채 뽑혔다. 여호수아가 그 온땅을 취하였으니 (16,17절). 백성들은 자기 가족을 거느리고 그땅 곳곳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본부가 있는 길갈근처의 마을들로라도 분산했을 것이다.
(2) 이제까지 이루어진 일과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 비교되어진다. 그것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1)가나안 정복에 관하여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리신 모든 명령은 적어도 여호수아가 살아있는동안 백성들에 의해 그대로 지켜졌다. 여호수아는 과연 위대한 사령관이었다. 그러나 그의 순종보다 더 칭찬들을만한 일은 달리없다. 여호수아는 만군의 여호와에 대한 열정으로 우상이나 우상숭배자들을 전혀 남겨두지 않았다. 사울은 아말렉을 멸절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 혹은 일부만 순종했기때문에 마침내 자기 왕국을 잃게되었다.
2)가나안 정복에 관하여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모든 약속은 여호수아에 의하여 성취되었다(23절). 하나님은 그앞에서 열방을 쫓아내시고(출 33:2;34:11) 그들을 엎드러지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신 9:3). 그것이 이제 이루어진 것이다.

# 핵심
11:1-23
가나안 남부지역에 대한 정복이 끝나고 가나안 북부지역에 대한 정복이 시작된다. 가나안 남부지역처럼 북부지역도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게 정복된다.
하나님의 주권(11:20)
성경은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고 증거한다(롬 9:14-29). 따라서 하나님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서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렇다고해서 인간의 죄가 하나님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수는 없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통하여 자신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관점에서 볼때 심판이란 하나님이 죄인의 완고한 상태를 방치하신 것이라고 말할수 있으며, 인간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그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 묵상
전쟁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 ( 11:6 )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위로와 승리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대적들은 병거와 말을 의지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며(시20:7) 전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만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한편 우리에게 부과된 영적싸움은 단한번에 끝나지않고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도 시일이 지나면서 영적감퇴에 빠질수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셨고 전쟁때마다 승리의 약속을 상기시켜 영적싸움에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말뒷발의 힘줄을 끊음 ( 11:6, 9 )
말뒷발의 힘줄을 끊는 것은 전쟁에서 다른수단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기위해서는 다른것을 의지하지 말고 겸손히 그분께 순종해야 합니다(잠3:34).
순종의 자세 ( 11:15 )
하나님의 말씀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성경에서의 순종은 수동적으로 귀로만 듣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말씀을 듣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삶까지를 의미합니다(신21:18-21).
여러날 계속되게 하신 전쟁 ( 11:18 )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케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단시간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더 큰은혜를 부어주십니다(고후6:2).
악인을 강퍅케하시는 하나님 ( 11:20 )
당신의 백성을 더사랑하는 것을 보여주시며 은혜베푸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강퍅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땅의 주인이시며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세우시기위해 절대적인 주권으로 악인들을 세우기도 하시며 또한 패망케도 하십니다.
아낙 자손의 멸망 ( 11:21 )
아낙 자손은 매우 강대한 민족으로서 모세가 정탐꾼들을 보냈을때 그들이 무서워했던 민족이기도 합니다(민13:33). 그렇지만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하시는 분이기에, 아낙 자손을 멸망시키셨던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바라볼때에만 굳건한 믿음을 소유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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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동맹군과 기브온의 대전 10:1-6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이적으로 여리고를 점령하고 전략으로 아이를 차지했으며 기브온으로부터는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추측컨대 늑장부리는 것을 참지못했던 사람들중에 더러는 여호수아의 느린행동에 대해 불평했을 것이며 대적이 연합군을 형성하기전에 왜 당장 가나안의 중심지로 쳐들어가지 않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신중함은 게으르고 겁 많고 기백없는 것으로 비난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 땅을 하루아침에 정복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사람을 조금씩 쫓아내리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출 23:30). 또한 여호수아는 가나안 사람이 공격해오기를 기다렸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하여 전쟁을 벌일기회를 한동안 기다리자 마침내 좋은 사건이 생긴다.
(1) 다섯왕이 기브온 사람을 맞서 연합한다. 예루살렘왕 아도니세덱이 이 동맹의 첫발기자며 주동자였다. 그의 조상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의 신뢰할만한 친구였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세덱은 좋지못한 사람이었으며, 아브라함의 후손에 대하여는 잊을수 없는 원수가 된것으로 보인다.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4절). 그의 이런 결심에는 다음 둘중의 한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 정책적인 면에서 기브온 성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기브온 성은 견고한 성으로서 누가 그 성을 차지하고 있느냐 하는것은 그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었다.
둘째, 감정적인 면에서 신의 없게도 그들의 나라를 배반하고 여호수아와 화친을 맺은 기브온 거민을 응징하기 위해서였다.
(2) 기브온 거민은 그들이 처해있는 곤경과 위험에 대하여 여호수아에게 전갈을 보낸다(6절). 그들은 여호수아가 자기들을 도울의무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1)그 이유는 내면적으로는 기브온 거민은 여호수아의 종이기 때문이다.
2)명목상으로는 그들의 대적이 싸움을 걸어온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존중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적원수들이 우리를 맞서서 전열을 다듬어 우리를 삼키려고 위협할때, 바울을 본받아 믿음과 기도로 우리의 여호수아이신 그리스도께 나아가 힘과 도움을 구하도록 하자. 우리도 바울이 얻은 것과 똑같은 평안의 응답을 받게될 것이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8,9).

Ⅱ. 여호수아의 대승리 10:7-14
(1) 여호수아는 기브온 거민을 돕기로 결심한다. 하나님도 그의 이런 결심을 북돋워주신다.
1)그는 기브온을 구하기로 결정하고 길갈에서 올라갔다(7절).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예배를 받아들인 것은 곧 그의 날개 그늘아래 보호받으러 온것(룻 2:12)임을 여호수아는 알고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종들같이 그들을 지켜줄 의무가 있었다.
2)하나님은 이일에 있어서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다(8절). 두려워말라 즉,
①"너의 명분이 선하며 너의 소명이 확실하니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②"적의 권세를 두려워말라"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다.
(2) 여호수아는 결심대로 행동에 옮기고 하나님은 그의 실행을 도우신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게된다.
1)여호수아의 부지런함과 또한 적을 물리침에 있어 그와 더불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하심을 볼수 있다. 이번일에서 여호수아는 기브온을 구하기위하여 신속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호의를 보여주었다(9절). 이제 일이 무르익어 실행할때가 되자 전에 느림보로 보였던 여호수아는 어느누구보다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는 밤새 행군하였다. 이 과업을 성취하기까지는 자지도, 졸지도 않기로하였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는 어려움을 참는법을 배우며 어린양이 어디로가든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때때로 밤잠을 못 자게 될지라도 해이한 생각을 하여서는 안된다. 하늘나라에 가서 쉬어도 넉넉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여호수아는 그처럼 자신과 군대를 긴장속에 몰아 넣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실수없이 대적을 그의 손에 붙이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던가? 물론 약속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수고를 늦추거나 대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촉진시키고 북돋우어 주기위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앞에서 패하게 하셨다(10절).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할수 있는일만 하였고 하나님은 전부를 맡아하셨다.
2)여호수아의 위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권능은 태양을 머물게하는 기적으로 그 절정을 이룬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승리의 날은 더길어졌고 적은 철저히 패배하였다. 우박은 구름보다 낮은 곳에서 내린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도움이 구름보다 높은 곳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쉬지않는 운행으로 온땅을 비추는 태양도 필요한 경우에는 운행을 멈추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주의 나는 살의 빛으로 인하여 해와 달리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합 3:11).
①여기서 우선 태양아 머무르라고 말한 여호수아가 위대하게 보인다. 그의 조상 요셉은 실제로 해와 달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것이 상징적으로 이루어진후에 그의 후손중 한사람에게 다시 문자그대로 이루어질줄이야 누가 생각했을까? 여호수아는 태양이 사건의 무대 곧 전쟁터가 되어있는 기브온위에 머무르라고 명령한다. 이는 이 요청이 적과의 싸움에 있어 이스라엘측에 유리하리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아마 그때 태양은 기울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아얄론 골짜기를 언급한 것은 그때에 여호수아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아얄론 골짜기는 기브온 근처에 있다. 다음에 이스라엘앞에서 그런말을 했다는 것은 실로 그의 담대함을 보여준다. 또한 그것은 그의 강하고 확실한 믿음을 증거해주는 것이다.
②이 기도에 대한 놀라운 응답을 살펴보자. 여호수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일은 이루어졌다(13절) :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쳤다. 하늘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동시에 땅도 다스리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마치 여기서처럼 하늘조차도 땅에 응답할 것이다. 이 놀라운 이적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즉 태양이 다른때 같으면 다시 그 자리로 올만큼 오랜동안을 지평선위에 머물러있었다.
㉡이로써 백성은 대적에게 원수를 갚을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게되었고, 마침내 대적을 완전히 패퇴시키기에 이르렀다. 때때로 하나님은 짧은 시간안에 큰구원을 완성하심을 유의하라. 여기서는 하루만에 그일을 완성하셨다. 이일은 '야살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야살의 책'은 역사시집으로서 이때 쓰여진것 역시 그중에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이 구절은 매우 운율적으로 들리는데, 아마도 야살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 이 사건에 대한 서술을 옮겨적은 듯하다. 세상의 눈인 태양은 마치 기브온과 아얄론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관찰하였다가 사람의 아들들이 그 일을 조사해 보고 그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어올때에(대하 32:32)확실하게 해주기나 하려는듯이 몇시간동안 그자리에 멈추어 섰었을 것이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해와 달을 섬기며 그것들에게 신적권위를 부여하는 우상숭배자들에게 그것들도 또한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납득시키고 그들의 생각을 깨뜨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이 기적은 또한 장차 세상의 빛이 어두운 밤으로 기울어질때에 우리의 여호수아이시며 '의의 태양'이신 예수께서 일어나셔서(말4:2) 다가오는 밤을 막고 참빛이 되실 것을 의미한다.

Ⅲ. 다섯왕을 죽임 10:15-27
다섯왕은 모두 패배하였다. 이제 임무를 마친 여호수아는 자기 군대와 함께 진으로 돌아가도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는 아직도 할일이 남아있음을 깨달았다. 승리는 전리품을 나눌때까지 계속 추구해야 한다.
(1) 패주하는 군사들을 추적해야 했다. 그는 자기 군사들에게 할수 있는한 그들이 요새로 도망하지 못하도록 계속 추격하라고 지시한다. 이 끈질긴 추격의 결과로
1)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적들을 크게 도륙하였다.
2)견고한 성으로 도망친 군사외에는 모두다 죽임을 당하였다.
3)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21절). 이 표현은
①이스라엘 자손이 아주 안전하고 평온했음을 뜻한다. 그들은 승전이후에 아무런 위협도 받지않았던 것이다.
②그들의 존귀함과 명성을 뜻한다. 아무도 그들을 비난하거나 거스리는 말조차 할수가 없었다.
(2) 숨어있는 왕들을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반역죄로 처벌하여야 했다.
1)그들은 어떻게 잡혔는가? 그들이 피난처로 믿고 피신한 굴이 그들의 감옥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심판할때까지 그곳에 갇혀있었다(18절).
2)그들은 어떻게 치욕당하였나? 여호수아는 그들을 굴에서 끌어내어 법정에서와 같이 자기앞에 세우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불려졌다(22,23절). 그들이 끌려나온후 손발이 묶이어 땅바닥에 던져졌는지 아니면 그들 스스로 땅바닥에 엎디어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걸했는지 알수 없다. 어쨌든 여호수아는 군장들을 불러 그 왕들을 짓밟고 목을 밟으라고 지시한다. 이런 행위는 어떻게보면 매우 야만적으로 보인다. 가장 높은 존귀의 자리에서 갑자기 치욕의 자리로 떨어진 가련한 자들을 그처럼 모욕하는 일은 훗날의 전례가 되어서는 분명코 안된다. 이경우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①하나님은 이처럼 죄에 빠진 가나안 족속의 우두머리들을 의로움으로 공개심판하심으로써 자기 백성으로하여금 '하나님이 그들앞에서 쫓아내신 열국'의 죄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며, 그것들에 유혹받아 흉내내는 일이 없게하려 하셨다.
②이것은 또한 모세를 통해 하신 약속을 이루기 위함이었다(신 33:29).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③하나님은 또한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앞에 남아있는 전쟁에 대해서도 그들에게 믿음과 소망을 심어주고자 하셨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말하기를(25절). 두려워말고 놀라지말라.
㉠"이 일들을 두려워말고 그들중 아무도 두려워말라."
㉡"어느때고 너희를 대적하여 동맹을 맺는 다른 왕들을 두려워말라. 너희들이 무섭게 생각했던 이들이 이처럼 끌려내려와 있지 않은가."
④이 사건은 또한 흑암의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 및 그를 통한 신자들의 승리를 상징하는 예표이기도 하다. 구속자의 모든 원수들은 '그의 발등상'이 될것이다(시 110:1). 조만간에 우리는 만물이 그의 아래 복종하며(히 2:8), '정사와 권세들'이 웃음거리가 되는때(골 2:15)를 볼것이다.
3)그들은 어떻게 죽임당하였나? 여호수아는 그들을 칼로 쳐죽이고 그들의 시체를 석양까지 나무에 매어달았다가 저녁에 그것들을 내리어 그들이 숨었던 굴에 들여던졌다(26,27절). 만일 이들 다섯왕이 적시에 자신을 낮추고 전쟁을 걸어오는 대신 화친을 구했더라면 생명을 구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Ⅳ. 여호수아의 계속적인 승리 10:28-43
(1) 여기서는 여호수아가 지체없이 점령한 몇몇 성읍들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1)그가 전장에서 물리친 왕들중 세왕의 성읍들을 가서 점령하였다. 그 성읍들의 이름은 라기스(31,32절), 에글론(34,35절), 헤브론(36,37절) 이다. 다른 두성읍 곧 예루살렘과 야르뭇은 이때 점령되지 않았다.
2)다른 성읍들 역시 왕이 있는 세성읍을 점령하였다. 막게다(28절), 립나(29,30절). 드빌(38,39절).
3)라기스를 도우려고 자기 병력을 끌고온 게셀왕 호람도 그의 모든 군대와 함께 살육당하였다(33절).
(2) 이스라엘의 손에 붙여져 진멸된 지역은(40-42절) 대부분이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후에 예루살렘도 점령되고 이 지역은 대부분 유다 족속의 분깃에 속하게 되었다. 이 기록에서 다음사항을 유의해야 한다.
1)여호수아는 이 성읍들을 취하는데 있어서 매우 신속했다.
2)여호수아는 점령지 사람들에게 몹시 가혹했다. 그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을 칼로 쳐죽였다(28,30,32,35절 등).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진멸하고(40절)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다. 이를통해서 하나님은 첫째, 가나안 백성과 같이 우상을 숭배하거나 다른 가증한 짓을 하는 자들을 철저히 싫어하신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둘째,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크게 사랑하심을 보여주고 계신다.
3)이 원정은 큰성공을 거두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다(42절). 하나님이 전쟁을 수행하지 않으셨던들 그들은 승리할수 없었을 것이다.

# 핵심
10:1-43
가나안 왕들이 연합하여 기브온과 이스라엘 군대에 대항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그들은 완전히 패배한다. 이 사건은 세상의 군왕들이 하나님과 그백성을 대적하지만(시 2편)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당할수 없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가나안 정복전쟁의 원리는 신20:1,4,10,18절에 기록되어 있다.
낮이 연장된 기적(10:12-14)
‘머물고’(히, 다맘)라는 용어는 가만히 붙들어 움직임을 멈추게 한다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에 의해서 낮의 길이가 길어졌다는점을 분명하게 함축하고 있다. 지구와 태양의 관계에 있어서 태양은 고정되어 있고 지구가 자전하여 낮과 밤의 변화가 있다는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해 볼때, 이 현상은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늦추어졌던 것으로 해석될수 있다.

# 묵상
기브온에 대한 아모리족의 반응 ( 10:1-5 )
복수를 하려고 동맹하여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와같이 사탄은 성도가 세상과 헤어져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편에 있으면 세상은 언제나 성도를 미워하게 됩니다(요17:14).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 ( 10:8 )
‘그들을 두려워말라’는 말씀입니다. 즉 그들을 네 손에 붙였고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전쟁을 하실때마다 여호수아를 격려하며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담대하게 살아야만 합니다(갈3:29).
우박으로 도우심 ( 10:11 )
하나님은 아모리 다섯왕의 군대를 패하게 하시고 도망하는 군사들에게 큰덩이 우박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손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맞아 죽은 사람들의 수가 더많았습니다.
태양이 멈춘 사건 ( 10:12-14 )
태양이 기브온위에 머무른 이 사건에서 볼수 있듯이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수 있는 최고의 특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인간의 생각을 초월한 은혜와 능력을 베푸십니다. 또한 이 사건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통치자이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므로(창1:1)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아래 있고 만물은 창조주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기도 ( 10:14 )
기도는 바로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축복으로 들어가는 문이요, 하나님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분이 낮고 천한 인간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은 기적중의 기적이며 성도에게는 커다란 확신과 위로를 줍니다.
진정한 평화 ( 10:21 )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샬롬의 상태입니다(6:26). 예수님은 인간의 평화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엡2장). 그러므로 사람들은 성령님이 자신들속에 평화를 가득 채우시도록(갈5:22) 적극적으로 구해야만 합니다(엡4:3).
발로 밟을 대적의 목 ( 10:24 )
이것은 완전한 승리를 뜻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땅의 모든 지도자들을 두렵게하시는 하나님의 처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승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기를 진작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십자가의 승리와 함께 원수를 밟아버리는 권세를 부여하셨습니다.
진을 치며 싸우는 이스라엘 ( 10:31, 34 )
이는 지파의 결속과 전쟁을 위해 성별케하기 위함입니다. 구약에서 진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쳐졌으며 광야 행군때와 가나안 정복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미하는 것으로써(출33:14) 부정한 것은 격리시켰습니다(신23:10-14).
악인과 함께한 자 ( 10:33 )
그들은 이땅에서 진멸되었습니다. 이처럼 악한 자와 동행하는 사람은 결국 패망케되며(시21:6; 미4:9-13), 불의의 끈으로 맺어진 결속도 멸망밖에는 돌아올 것이 없습니다.
성도가 대적해야할 것 ( 10:38, 39 )
바로 사탄(벧전5:8)과 세상(갈1:4)이며, 악한 영들(엡6:12)과 죄악(시26:4, 5), 그리고 옛자아(엡4:22)입니다. 또한 여러복음 방해요소들(고후10:4, 5)과 거짓 선지자와 거짓 전도자(갈1:6-10) 등입니다.
단번에 취할수 있었던 그땅 ( 10:42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기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성도는 매일의 삶속에서 사탄과 싸우고 있는데 이것은 성도의 싸움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적전쟁임을 인식해야 합니다(출14:14). 그리고 하나님은 승리를 주시는 분임을 믿는 신앙이 있을때 성도의 삶은 생명력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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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가나안 왕들의 동맹 9:1-2
이제까지 가나안 사람들은 방어적인 행동을 하였고, 이스라엘 족속은 여리고와 아이성에 대한 공격자였다. 그런데 이제 가나안 왕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위해 회합을 갖는다. 그리고 계속 개가를 부르는 이스라엘 군대의 전진을 막기위하여 어떻게 자기들의 연합군을 강력하게 활용할수 있는지 협의한다. 이 일을 듣고(1절). 곧 여리고와 아이성의 함락뿐만 아니라 에발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국적 집회를 갖고 여호수아가 마치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점령이라도 한듯이 자기 백성을 모두 모아놓고 그들을 통치할 율법을 낭독했다는 소식을 접한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몹시 흥분한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때야 말로 자기들이 분발할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였다. 그들은 헷, 아모리, 브리스 등의 서로 다른족속의 왕들이었다. 비록 그들의 이해관계가 명백히 서로 다르고 엇갈리기도 했지만,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일에는 전원이 일치하여 연합할수가 있었다.

Ⅱ. 기브온 거민의 속임수 9:3-14
(1) 여리고의 파멸소식을 듣고 놀란 기브온 거민은 이스라엘과 화친맺기를 바랬다(3절). 다른 백성들은 그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이스라엘과 전쟁을 꾀하였으나 기브온 거민만은 이 소식을 듣고 그들과 화친하는 길을 꾀하였다. 똑같은 태양이 밀초는 녹게 하지만 진흙은 굳게한다. 이 일로 연합한 이들 네성읍(17절에 언급됨)은 장로나 평의원이 통치한것 같다(11절). 그들은 자신의 개인적 명예보다는 공공의 안전을 도모하였다. 기브온 거민은 자신을 위해 적절한 행동을 취하였다.
(2) 기브온 거민이 이일을 꾸민방법을 알아보자. 그들은 가나안 땅의 모든 거민이 멸절될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스스로 변장하여 여호수아로하여금 그들이 어느 아주 먼나라에서 왔다는 것을 믿게하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의 칼날로부터 자기들의 생명을 구할방도가 없음을 알고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 원방의 나라에 대하여 전쟁을 명령받은 일도 없고 또한 화친을 금지당하지도 않았을뿐만 아니라 단지 특별히 먼저 평화를 선포하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신 20:10, 15). 그러므로 이것만이 그들이 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1)그들은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이일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이보다 더능란하게 처리된 일이 없을정도였다.
① 그들은 원방의 사절단 모습으로 꾸몄다. 그리하면 이스라엘의 족장들을 기쁘게하고 또한 그들로하여금 먼나라로부터 문안을 받는다는 명예로 자부심을 갖게할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②그들은 매우 긴여행에 지쳐 피로한 기색을 하였고 또한 그것을 시각적으로 보이기위한 위장도 하였다. 이제 그들은 위장을 통하여서 그들의 양식이 고국에서 가져올때는 신선하고 새것이었는데 이제 다마르고 곰팡이 난것처럼 만들어놓았다. 그들의 신과 옷은 40년 광야생활을 지낸 이스라엘 자손의 그것들보다 훨씬 낡았으며, 떡은 곰팡이가 피었다(4,5,12,13절).
③그들은 의심을 받고 어디서 왔는지 엄중하게 심문을 받았지만 끝내 자기들 나라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채 화친을 맺기에 이르렀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거짓말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하였다(7절). 너희가 우리중에 거하는 듯하니. " 우리는 너희와 어떠한 조약도 맺지아니할 것이며 또 맺어서도 안된다."
둘째, 여호수아도 그들에게 묻는다. 너희는 누구며 어디서 왔느뇨(8절).
셋째, 그들은 끝내 어디서 왔는지 말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같은말만 반복한다. 종들은…심히 먼지방에서 왔사오니(9절).
④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고백함으로써 여호수아의 비위를 맞추고자 한다. 사실 관대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다음과 같은 그들의 고백은 신실한 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왔사오니(9절).
⑤그들은 얼마전 모세의 통치하에 일어났던 일, 곧 애굽에 임한 재앙과 시혼과 옥 두왕의 멸절에 관한 소식을 듣고왔다고 한다(9,10절). 그러나 그들은 지혜롭게도 여리고와 아이의 함락에 관한 말은 한마디도 내지않는다. 이렇게함은 두성이 함락되기 훨씬전에 자기집을 떠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한 것이다.
⑥그들은 거국적 복종을 한다. 우리는 당신들의 종이니. 그리고 겸손히 거국적 화친을 간청한다-우리와 약조하사이다(11절).
2)그러나 그들의 행위에서 선과 악이 섞여있다.
①그들의 거짓은 정당화될수 없고 전례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이 '우리는 원방에서 왔나이다'(6절)라고 한번 말했을때, 그것을 다시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9절). 그리고 떡과 부대와 옷에 관해서도 새빨간 거짓말을 하지않을수 없었다(12,13절). 한가지 거짓은 다른 거짓을 끌어들이고 그다음의 거짓이 계속 꼬리를 물고나온다.
②그러나 그들의 믿음과 지혜만은 높이 살만하다. 우리 주님은 불의한 청지기가 자신을 위해 현명하게 잘 처신했기때문에 칭찬한적이 있다(눅 16:8). 그들은 이스라엘에 복종함으로써 이스라엘 하나님께 복종하였다. 그것은 자기들이 섬겨온 신을 버렸음을 함축하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성읍을 포위하기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때는 이미 항복하려 한다해도 늦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들이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있을때 평화조약을 원했던 것이다. 심판을 피하는 길은 회개함으로써 심판을 맞는 것이다. 기브온 거민을 본받도록 하자. 겸손과 경건한 슬픔과 굴욕의 누더기를 걸치고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하자. 그리하면 우리의 죄악이 우리를 해치지않을 것이다. 우리의 복되신 여호수아 곧 예수의 종이 되자. 예수님과 그리고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자. 그리하면 살 것이다.

Ⅲ. 조약의 체결 및 그 결과 9:15-12
(1) 기브온 거민과의 약조는 바로 체결되었다(15절). 이 일은 복잡한 절차없이 간략하게 이루어졌다.
①그들은 기브온 거민을 살려주겠다고 약속하였고 기브온 거민도 더이상 요구하지 않았다.
②이 약조는 여호수아 혼자만이 아니라 회중의 족장들도 그와 더불어 맺은 것이다.
③이 약조는 맹세로 확정되었다. 가나안의 신들중 어느 한신으로 맹세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였다(19절).
④이 모든일에 있어서 다만 일을 너무 급히 처리했다는 사실외에는 비난을 살만한 일은 없는것 같다. 그들은 이성을 쓰지않고 다만 감각대로만 떡을 보고 또 냄새맡아 보고는 그 사람들의 양식때문에 그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다'(14절). 이 일에 있어서 여호수아도 비난을 면할수는 없다. 하나님과 함께하지도 아니하고 말씀과 기도로써 하나님께 묻지도 아니하면 어떤일에도 알맞는 속도를 넘어 너무 서두르게 된다.
(2) 조약의 체결까지 보게한 이 속임수는 바로 탄로되었다. 거짓말하는 혀는 잠시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밝혀진다. 이 일은 제삼일에 발각되었다. 놀라웁게도 그들 사절단의 성읍들은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다. 그것은 겨우 길갈 진에서 하룻밤 행군으로 도착할수 있는 곳이었다(10:9).
(3) 회중은 이 일을 가지고 원망하였다. 기브온 거민은 약조대로 각종 굴레에 굴복하였다. 이스라엘은 기브온 거민의 성읍을 치지도 않았고 사람을 죽이거나 약탈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이처럼 손을 묶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더욱 성나게 한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족장들을 원망하였다'(18절).
(4) 족장들은 지혜로운 말로써 불평하는 회중을 안정시키고 틀림없이 백성으로하여금 이미 결정난 일을 따르게 하였다.
1)그들은 기브온 거민의 목숨을 살려주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을 살려주기로 분명히 맹세했기 때문이다(15절).
①그 맹세는 합법적이었다.
②그 맹세가 합법적인고로 백성과 및 백성을 위해 일하는 족장들 모두가 그맹세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게되었다. 곧 양심상 매임을 받고 또한 그들이 그이름을 들어 맹세한바 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에 매이게 된것이다. 만약 이스라엘의 맹세를 어긴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가나안 백성으로부터 욕을 먹을 것이다.
첫째, 족장들은 손해보는줄 번연히 알면서도 자기들이 한말을 지키려하였다. 시온의 거민은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한다'(시 15:4).
둘째, 이 일로 백성의 불만이 쌓이고 그들의 불평이 반란을 야기할수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족장들은 기브온 거민에게 언약한 것을 깨려하지 않았다. 제왕이나 군중에게 위압되어 죄된 일을 행하거나 양심을 어기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되겠다.
셋째, 약조자체가 계략에 의한 것이므로 그것을 무효라고 선언할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족장들은 약조를 지켰다. 우리 모두도 경건하게 약속을 실행하며 잘지켜야 한다. 그리고 한번 입밖에 낸 말이면 양심을 다하여 그말을 지켜야 한다. 이처럼 거짓과 속임수로 맺어진 약조도 파기되지 않았는데, 하물며 가장 정직하고 공정하게 맺어진 계약에 대한 의무를 회피할수 있으랴.
2)기브온 거민은 목숨을 건지긴 하였지만 자유는 박탈당하여 '온회중을 위하여 나무패며 물긷는 자'가 되었다(21절). 이러한 제안으로써 불평하는 회중을 무산시킬수 있었다.

Ⅳ. 기브온 거민의 생존 9:22-27
여호수아와 기브온 거민사이에 이 일이 끝맺히게 된다.
(1) 여호수아는 그들의 속임수를 힐책한다(22절). 기브온 거민은 힘닿는데까지 변명을 늘어놓는다(24절).
①여호수아의 나무람은 매우 부드러웠다. 너희가…어찌하여…우리를 속이느냐(22절).
②그들은 자신을 위해 할수 있는 최선의 변명을 늘어놓는다(24절).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은 대항할수 없고 그의 공의는 굽힘이 없으며 그의 권능은 거역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에 호소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헛수고가 아님을 곧 깨달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거짓말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그에 대하여 용서를 빌뿐이다. 그런일을 한것은 자기들의 목숨을 건지기 위함이었다고 호소한다.
(2) 여호수아는 그들의 속임수에 대한 형벌로서 그들을 노예신분으로 정죄했다(23절). 그들은 선고대로 순복했다(25절). 겉으로 보기에는 양자 모두 만족한 듯하다.
1)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영원한 노예신분을 선고한다. 이들에게 어떻게 심판이 내려졌는지 살펴보자.
①노예신분은 그들에게 저주로 내려진 것이다.
②그러나 이 저주는 하나의 축복으로 바뀐다. 그들은 노예가 될것이지만 그것은 '내 하나님을 집을' 위한 것이다. 족장들은 그들을 '회중을 위하여' 노예로 삼으려고 하였다(21절).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브온 거민에게는 은총을 베풀고자 그들의 형을 가볍게 해준다. 비록 노예의 일이라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집과 및 그 직무를 위해 이루어진다면 존귀케될 것이다.
첫째, 기브온 거민은 이로써 참이스라엘 자손이 누리는 자유와 특권에서는 제외되었다.
둘째, 그들은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개인적인 시중을 드는 일에 채용되었다(27절).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배울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그처럼 많은 수의 장사들을 자기들곁에 두어 계속 시중들게 하고 성막의 모든 고된일에 종사시킬수 있는 큰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집의 연료를 대기위하여 무한수 나무를 패야하며, 또한 율법이 정하고 있는 갖가지 씻음을 위하여 막대한 양의 물을 길어야만 했다.
넷째, 그들은 또한 회중의 종노릇도 하여야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촉진이 되고 도움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지 결국 백성의 복지를 위한 참된 봉사와 결부되기 때문이다. 훗날 기브온 사람들은 '느디님'이라고 불리운다. 그것은 레위인들이 제사장들에게 배속된 것처럼(민 3:9) 기브온 사람들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레위인들을 시중들기위하여 그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것은 이방인이 복음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예표하는 것으로 볼수도 있다.
2)그들은 이 조건에 순복한다(25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옮은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그일은 그대로 결정되었다. 이스라엘의 노예는 이처럼 여호와의 자유인이 되었다. 가장 비천한 직무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면 곧 자유인 것이다. 그리고 그 섬기는 일자체가 일에 대한 삯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께 순복하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생명을 그분께 바치도록 하자. 만일 주께서 우리더러 그의 십자가를 지고 그의 멍에를 메고 그의 단에서 섬기라고 명하신다면 그일이 훗날 우리에게 부끄럼도 슬픔도 되지않을 것이다.

# 핵심
9:1-27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동편의 아모리족과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정복했다는 소문이 가나안의 모든 족속에게 퍼지게 되었다. 그결과 그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싸우려고 했던반면, 기브온 사람들은 교묘한 속임수로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어 목숨을 부지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역하는 세상(9:1)
9:1절은 9-12장의 배경이다. 9-12장에는 가나안의 도시국가들이 서로 연합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대적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세속국가들’이라는 중요한 신학적인 테마를 제공한다. 이 테마는 시 2:1-3절의 요지이며, 행 4:25-27절 말씀이 증거하는대로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행위를 통하여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 묵상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기브온 사람들 ( 9:1-27 )
기브온 사람들이 보호를 받게된 것은 이스라엘과 약조하여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기브온 사람들을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했기때문에 자기들만이 은혜언약의 수혜자가 아님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가운데 들어오면 구원을 얻게됩니다.
성도에 대한 사탄의 계략 ( 9:3-15 )
자기의 본모습을 숨기고 성도의 친구가 되고자 하며(고후11:14) 자기의 방법이 항상 이익과 성공을 가져온다고 속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에게서 승리하는 길은 바로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를 듣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에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잘못 ( 9:14 )
기브온 거민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하나님께 묻지않고 기브온 거민들을 침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의 약속을 경솔히 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서 볼수 있듯이 기도를 드릴때의 방해물은 불신(약1:6, 7), 죄악(시66:18), 욕심(약4:3) 등으로 이들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속은 계약의 효력여부 ( 9:16-21 )
비록 속아서 한 계약이라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것은 파기될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한 약속에 대해서는 철저히 수행하시는 신실한 분이시기에, 어떠한 계약이라도 자기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은 일방적으로 무시하거나 파기하시지 않고 끝까지 수행하십니다.
거짓이 밝혀진후의 기브온 거민 ( 9:25-27 )
그들은 온전히 모든일을 여호수아에게 맡기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처럼 죄인들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구속당하게 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도 죄를 지으면 사탄에게 구속되기때문에 죄에 대해서는 작은 것이라도 멀리해야 합니다. 결국 그들은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나무패며 물긷는 자가 됩니다. 비록 악을 행했지만 지혜롭게 처신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게된 사람들을 하나님은 버리시지않고 계속적으로 사랑과 은총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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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아이성 공격명령 8:1,2
추측컨대 여호수아는 이제 막다른 골목에 부딪쳐 두려움과 떨림이 없이는 더이상 전진을 생각할수 없었다. 진중에 또다른 아간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전에처럼(제 5장) 환상을 통하여 칼을 빼든 전사로 나타나셨든지 아니면 판결흉패로써 말씀하셨을 것이다. 바친 물건 곧 죄를 충실하게 제거만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의 음성을 들을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역과 전쟁에서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를 지시해주시는 것은 그가 우리와 화목하셨다는 좋은 증거가 된다.
(1)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진군하도록 격려하셨다 : 두려워말라 놀라지말라(1절). 교회내의 부패는 교회밖의 반대세력들보다 훨씬더 인도자들과 조력자들의 손을 약하게 만들며 사기를 꺾어놓는다. 불신한 이스라엘 사람이 적대적인 가나안 사람보다 훨씬더 두려운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놀라지말라고 명하신다. 이스라엘을 원수들의 침략에서 지키시는 그 능력으로써 이스라엘의 자멸도 막으실 것이다. 여호수아에게 힘을 주시고자 하나님은 아이성에 대한 승리를 확신시키시며, 그 모든것을 그에게 주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로서 취해야 한다. 하나님은 또한 백성에게 약탈물을 스스로 취하도록 허락하신다. 여기서 약탈물은 여리고 성에서처럼 하나님께 바쳐지지 않았다.
(2) 하나님께서 아이성 공격명령을 내리셨다. 그것은 여리고성을 취할때처럼 시간이 걸리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기적에 의해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들 자신의 행동과 용기가 필요하였다. 하나님께서 자기들편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안이상, 이제 그들 스스로 분발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시는 백성을 다거느리고 성뒤에 복병하라는 것이었다.

Ⅱ. 이스라엘의 승전 8:3-22
여기서는 책략으로써 아이성을 공략한 기사를 보게된다. 후퇴외에는 속이거나 위장한 일이 없었다. 적은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했다. 그리고 성벽의 방어선을 지켜야했다. 상식적인 지혜만 있었더라도 숫자상으로 자기들보다 훨씬더 우세한 그런 병력을 계속 뒤쫓아가면서 자기들의 성을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성이 속기를 원한다면 속게 내버려두라'.
(1) 아이성 작전에 동원된 병력의 숫자에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 3절에 삼만명을 '뽑아 밤에 보낸' 것으로 언급되었다. 그들에게 내려진 임무는 성이 비었다고 생각되자마자 성을 불시에 덮치는 것이었다(4,7,8절). 그런데 그뒤에 보면(12절) 여호수아는 '오천명 가량을 택하여' 성뒤에 '매복시켰고, 이들 복병이 성읍에 들어가서 성읍에 불을 놓았다'(9절)고 하였다. 어떤이들은 생각하기를 2개 부대의 복병이 보내졌으며 여호수아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인솔하여 성을 정면공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이들은 생각하기를 모든 백성은 단지 성앞에 진을 치기위하여 동원되었고 그들중 여호수아는 삼만명을 택하여 작전인원으로 썼으며, 그중 다시 오천명을 복병으로 썼다고 한다. 오천명의 병력이라면 들키지않고 행군할수 있다고 생각된다.
(2) 그러나 이야기의 줄거리는 분명하다. 파견대는 성뒤로 몰래 행군하여 들어갔고, 그 반대편에서는 여호수아가 주력부대를 이끌고 성을 마주하였다. 아이성의 주둔부대는 이들 주력부대를 향하여 강력한 돌격을 개시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뒤로 물러서서 광야길로 짐짓 무질서를 보이면서 퇴각하였다. 아이성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병력을 총동원하여 그들을 추적하기에 이르렀다. 이때야말로 복병하고 있는 병력이 성을 공략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들이 연기로 여호수아에게 신호를 보내자 여호수아와 모든 병력은 그 따르던 자에게로 돌이켰다. 이제 그들은 자기들이 올무에 걸린 것을 알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들의 퇴로는 차단당하고, 그들 모두가 살육당하기에 이르렀다.
1)여호수아는 용감한 지휘관이었다.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 사람들앞에서 격퇴를 당하였는데도 그는 두번째 몸소 군대를 이끌고 진격할 결심을 한다(5절). 그는 '그밤에 골짜기가운데로 갔다'. 공격을 위해 필요한 배치를 하기 위해서였다. 패트릭(Patrick) 주교는 여호수아 혼자서 하나님께 기도 드리러 골짜기로 내려갔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여호수아는 자기의 단창을 아이성을 향하여 잡아들고(18절-모세의 지팡이와 마찬가지로 이 단창은 이스라엘의 대적에게 있어서 거의 치명적이고 몹시 두려운 것이었다) 싸움이 끝나기까지 손을 든 사람은 그 손을 다시 거두어서는 안된다. 여호수아는 마치 자기가 정복되기나 한듯이 굴복함으로써 승리하였다. 우리 주 예수께서 머리를 숙이시고 숨을 거두실때에도 마치 사망이 그를 이기고 그와 그의 모든 관심사가 끝장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부활하심으로 다시 일어나셨고 어두움의 권세를 철저히 정복하셨다. 발뒤꿈치에 상처를 받을정도로 뱀에게 허용했지만, 뱀의 머리를 부수셨다. 이 얼마나 영광스런 전략인가!
2)이스라엘 백성은 착실하게 복종하였다.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명한 것을 백성은 불평이나 원망없이 행하였다(8절).
3)아이왕은 정말 얼빠진 대적이었다. 그는 정찰병을 보내어 성뒤에 있는 복병도 찾아보지 않았다(14절). 이스라엘이 처음 공격해왔을때 그 3,000명중에서 서른여섯 사람을 죽였다고해서 이제 그가 상대하고 있는 이 엄청난 병력을 완전히 물리칠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6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앞에서 도망한다. 어리석은 자의 번영은 스스로를 파괴시키며 스스로 완악케되어 파멸에 이른다.
4)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으로 이스라엘은 온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각자가 맡은바를 수행한 것이었다.

Ⅲ. 아이성을 진멸함 8:23-29
아이성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에 뒤따른 일들이 여기 기록되어 있다.
첫째, 아이사람 전부를 칼날로 죽였다.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26절). 어떤이들은 생각하기를 단창을 잡아든 것은 적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군사에게 힘을 북돋우어 주기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기수로서의 열등한 역을 한 것이다. 그것도 싸움이 끝나기까지 쉬지않고 해내었다. 단창을 잡아둠으로써 백성으로하여금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게하였고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였다.
둘째, 백성은 성을 약탈하고 일체의 노략물은 스스로 취하였다(27절).
셋째, 성을 잿더미로 만들어 그대로 버려두었다(28절). 이스라엘은 여전히 장막안에서 거하여야 했다. 그러므로 이 성도 여리고성과 마찬가지로 불에 태워져야 했다.
넷째, 아이왕은 사로잡혀 나무에 달렸다가 시체는 성문어귀에 던져졌다. 그리고 그위에는 '돌로 큰무더기'를 쌓았다(23,29절). 아마도 그는 사악하기로 악명높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첫공격을 실패하고 퇴각할때에 아마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하였을 것이다.

Ⅳ. 율법의 기록과 낭독 8:30-35
여기 기록되어 있는 이 종교의식은 가나안 전쟁의 역사가운데서 다소 놀라운감을 안겨준다. 여기 전혀 다른성질의 장면이 펼쳐진다. 이스라엘 진은 들로 나간다. 적과 싸우기위해서가 아니라 희생을 드리고 율법이 낭독되는 것을 듣고 축복과 저주의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존귀케하는 일에 있어 이스라엘이 열심인 것을 보여주는 뚜렷한 실례가 된다. 그들이 지정된 장소로 장시간 행군하며, 또한 거기서 이 의식에 참여할동안 전쟁과업은 여전히 그들에게 걸려있었다.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하면 그 길이 형통할 것이다(마 6:33). 이 일은 신실한 종들과 예배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를 보여주는 실례이다. 비록 그들이 아직 정복되지 아니한 적지에 와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동안 그들은 안전하였다. 그것은 거룩한 계약이었다. 이제 약속한 땅을 소유할즈음에 하나님과 이스라엘사이에 체결된 그 계약이 갱신된 것이다. 이는 약속한 땅을 정복하는 일에 있어서 힘을 북돋우어 주고, 땅을 소유하는 조건이 무엇인가를 알려줌과 동시에 계약의 표시로서 그들을 새로운 의무에 복종시키기 위함이었다.
(1) 그들은 단을 쌓고 하나님께 희생을 드렸다(30,31절). 이 제물은 그것을 거룩케하는 제단 곧 중보자안에서 그리고 그에 의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산제물로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표시였다. 이 단은 에발산에 세워졌다. 만일 희생을 통하여 속죄하지 않았더라면 에발산에서 선포된 저주는 즉시 시행되었을 것이다. 이 단위에 희생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역시 자기들이 이미 얻은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출 17:15참조). 그들이 쌓은 단은 율법대로(출 20:25) 다듬지 아니한 거친돌로 된것이었다. 그것은 가장 평범하고 자연스러우며 기교나 꾸밈과는 거리가 먼것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다.
(2)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원하고 제물을 열납받기 원하는 사람은 율법을 준행하여야 한다.
1)이제 여기서 전체율법의 축소판으로서 십계명이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앞에서 돌에 기록되었다(32절). 그런데 그 돌들에는 석회를 바른후, 그 석회위에 십계명을 기록하였다(신 27:4,8). 그것은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자기들이 동의한 것이 무엇인지 알도록 기록되었다.
2)율법의 상벌에 해당하는 축복과 저주가 무리들에게 낭독되고, 백성은(추측건대) 모세의 지시대로 '아멘'으로 화답하였다(33,34절).
①대단히 많은 청중이 운집하였다.
첫째, 백성의 우두머리라고 제외되지는 않았다.
둘째, 가난한 이방인마저도 빠지지않았다. 이는 이방개종자들에게 힘이 되고 훗날 불쌍한 이방인들에게도 자비가 베풀어질 것이라는 좋은 조짐이기도 하였다.
②모세의 지시대로 여섯지파는 그리심산을 향하고 나머지 여섯지파는 에발산을 향하여 위치하였다. 그리고 언약궤는 그들사이 골짜기가운데 위치하였다. 언약궤안에는 촘촘히 기록된 율법두루마리가 보관되어 있었다. 그것은 돌위에 복사하여 공개적으로 볼수 있게 한 것이다. 계약은 명령화되었고 명령은 계약화되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 또는 그들을 돕는 레위인중 몇은 백성이 모두 자리를 잡고 조용할 것을 선포한후에, 모세가 전해준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똑똑히 선포하였다. 이제 지파들은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만 '백성에게 축복하라'고만 되어있다. 축복이야말로 우선적이고 주요한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도 축복을 위하여서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저주에 떨어진다면 그것은 그들자신의 잘못인 것이다.
3)교훈과 금지에 관한 율법도 낭독되었다(35절). 아마 여호수아 본인이 직접 낭독했을 것이다.

# 핵심
8:1-29
아간을 처형한후에 감행된 아이성에 대한 두번째 공격이 성공을 거둔다.

# 묵상
여리고성과 아이성 정복 ( 8:1-9 )
여리고성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기적적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아이성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군인들의 실제전략으로 승리를 거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직접적 권능으로 역사하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지혜와 힘을 빌어서 역사하시기도 합니다.
아이성 전투의 교훈 ( 8:1-29 )
이 사건은 죄가 제거된후 비로소 하나님안에서 담대케됨을 가르칩니다. 또한 범죄후 회복은 더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 8:14 )
하나님께서는 적들의 눈을 어둡게하여 당신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동자로 백성을 늘 지키시며(계1:14), 어떠한 적도 침해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단창을 든 여호수아 ( 8:18 )
이는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을 확신한다는 의미입니다. 성도는 적들로부터 구원받게 되는 표시인 십자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흘리신 십자가를 높이들고 나갈때 승리할수 있습니다.
나무에 매단 시체 ( 8:29 )
이것은 죽은자로 하여금 죽은후에까지라도 모욕과 수치를 당하게 하고(민25:4), 그것을 보는자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수치와 모욕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갈3:13).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사53:4). 예수님은 이토록 철저히 버림받으셨지만 우리는 이를통해 나음을 입었고 하나님앞에서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해질때 시체를 내린 까닭은, 시체는 부정한 것으로서 거룩한 땅을 더럽힐수 없었기에 율법상으로 금지하였기 때문입니다(신21:23).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 ( 8:30, 31 )
온전한 헌신(번제)과 감사의 마음(화목제)입니다. 예배는 인간이 마땅히 드려야할 경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는 자의 자세는 신성하고 진지해야 합니다(요4:24). 하나님께 단을 쌓아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모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새돌로 만든 단 ( 8:31 )
연장으로 다듬지않고 자연그대로 만든 이 단은 꾸밈이 없는 진실한 예배의 중요성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율법책에 기록된 하나님말씀 그대로이며(출20:24)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에발산과 그리심산 ( 8:33 )
그리심산은 축복의 산으로 율법에 순종하는 것을 상징하고, 에발산은 저주의 산으로 불순종을 상징합니다. 이와같이 인간의 축복과 저주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순종여부에 달려있습니다(신28: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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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아간의 범죄가 부른 재앙 7:1-5
앞장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땅에 퍼지니라'라는 말로 끝맺는데 본장은 '그러나'(흠정역-역주)로 시작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1절).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하시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잃게되면 친구도 잃는다. 하나님이 우리편이 되어주지 아니하시면 친구도 우리를 도울수 없다.
1. 아간의 범죄(1)
아간의 죄는 '바친 물건을 취한' 행위로서 명령에 대한 불복종이요 경고를 무시한 행위였다(6:18). 여리고성을 약탈할때에 연민의 정은 거두어 율법아래 묻었지만 탐심은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뽑아내기 힘든 쓴뿌리와 같다. 아간의 이야기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가운데서 아간만이 유일하게 이 일에 있어서 범죄하였음을 분명히 시사해준다. 그러나 범죄한 사람은 단 한사람일지라도 이스라엘 자손이 범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들 지체중 하나가 범죄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과 따로 떨어진 사람도 아니며 그 관계를 끊은 것도 아니다. 그들이 범죄했다. 다시말해서 한구성원인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가 소속된 전사회에 죄책을 초래한 것이다. 이것은 나 한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거나 불안에 빠지게 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를 준다(히 12:15). 분별 있는 상인일지라도 분별없는 동업자때문에 파산하는 경우가 자주있다. 그러므로 범죄를 막도록 서로 관심을 가지고 조심해야 한다.
2. 이스라엘 진에 임한 형벌(2-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1절). 백성은 죄의 사실을 보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은 이를 보시고 그것을 백성에게 알리는 방침을 취하신다.
(1) 여호수아는 길목에 있는 다음성 아이를 공략하기위하여 일부의 병력을 보낸다. 아이성은 보잘것없는 곳으로서 그 성을 함락하는데는 많은 병력이 필요없다는 정탐꾼의 말을 듣고 단지 3,000명만을 파견하였다(2,3절). 정탐꾼들은 말하기를 '그들은 소수니' 하였지만, 아무리 그들이 소수일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너무 많은 수였다. 이로써 우리는 '정사와 권세로 더불어 싸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전쟁에 있어서 주의와 근면을 소홀히해서는 안됨을 자각해야 한다.
(2) 아이성의 첫공략시 파견된 병력은 일부 일원의 손실과 함께 패주하고 말았다(4,5절).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낮추기 위함이었으며 가나안 사람을 완악하게 하고 더욱 안심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었으며, 그들로하여금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게' 주의를 주신 것이었다. 이것이 그들이 패배한 주요한 원인이었다.
(3) 이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하자 이스라엘 온진영이 두려워하게 되었다. 백성의 마음이 녹아(5절). 손실도 손실이지만 실망이 더욱 컸다. 백성중 생각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이번일이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Ⅱ. 여호수아의 기도 7:6-9
여기서는 이 슬픈사건으로 말미암아 깊은 심려에 빠진 여호수아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1. 여호수아의 탄식(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는 민족적 재난에 대한 큰슬픔의 표시이며 특별히 이번사건의 분명한 원인인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두려움을 표시하는 행위였다. 그는 일찍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그 육체가 떨었던'(시 119:120) 것을 인정한 가장 용감한 군인중의 한사람이다. 하나님의 권능의 손아래서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다. 이스라엘의 장로들 역시 이사건에 책임을 느끼고 여호수아를 따라서 그와 함께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있었다. 이는 애곡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또한 회개하기 위함이었다. 여호수아는 진노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일이 그를 괴롭게하였던 것이다.
2. 여호수아의 기도(7,8)
여호수아는 겸손히 이문제를 하나님께 간하면서 호소하였다. 여호와께서 웃사에게 진노하셨을때의 다윗처럼 시무룩하지도 않고 아주 감동적으로 호소하였다. 그는 다소 속이타고 마음이 뒤숭숭했던것 같다. 그러나 기도를 하지못할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앞에 겸손한 말로써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음으로써 자기의 감정을 잘 조절하고 기도를 잘 끝맺는다.
(1) 이제 그는 요단강 저편 두지파 반의 땅을 모두 나누어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7절). 어찌하여…요단을 건너게 하시고…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이 말은 불평꾼들이 자주했던 말과 아주 비슷하다(출 14;11, 12;16:3;17:3;민 14:2,3). 그러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말이 불평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고계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가 잘못 말한것을 책잡지 않으셨다.
(2) 여호수아는 이사건의 원인을 전혀 모르는 말을 하였다(8절). 하나님의 팔이 짧아졌는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방법은 때때로 묘하고 복잡하여 아주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이라할지라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들이 이후에는 알 것이다(요 13:7).
(3) 그는 지금 이스라엘이 빠져있는 파멸의 위험을 호소한다. 이처럼 착한 사람일지라도 일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리하게 되면 최악의 사태를 걱정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서는 간구가 내포되어 있다. "여호와여, 참으로 당신에게 사랑스럽고 세상에서 위대한 이스라엘의 이름을 끊지마소서."
(4) 그는 하나님께 욕이 돌아갈 위험에 대해 호소한다. 이스라엘이 패망하면 그로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선하심과 신실하심에 영향을 미치게될까 염려했다. 그리고 애굽인들은 무어라고 할것인가?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하는 것보다 더 슬픈일은 없다.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9절). 이보다 더좋은 호소가 어디있겠는가. 범사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리고나서 그의 온전하신 뜻을 받아들이도록 하라.

Ⅲ. 하나님의 응답 7:10-15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기도에 응답하시었다.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아래 있는 자는 하나님을 불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불평을 털어놓으라. 그리하면 평화의 응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즉시 응답하시었다.
(1) 하나님은 현재 낙담해있는 여호수아를 격려해 주신다. 일어나라. 너무 낙담하거나 실망하지 말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10절). 하나님은 이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신다. 여호수아를 더이상 계속해서 그런 비참한 자세로 있게하는 것을 원치않으셨다. 참회자가 용서와 평안을 얻기에 적합한 선을 넘어 지나칠정도로 자신을 괴롭히며 슬퍼하는 것을 하나님은 바라지 않으신다. 여호수아는 '저물도록' 계속 슬퍼하였다(6절). 이제는 상복을 벗어버리고 재판장의 옷을 입으며 '열심으로 겉옷을 삼아야'할 때이다. 우는 일로인하여서 씨뿌리는 것을 그만둘수는 없다. 종교의 한가지 의무로인하여 다른 의무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2)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 재난의 참되고 유일한 원인을 알려주신다(11절).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죄는 말씀하시면서도 죄인의 이름은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 전체의 소행으로 말씀하셨다. 여기서 그 죄가 어떻게 죄로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1)이스라엘이 범죄하여…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그들은 형벌이 딸린 긴급명령을 어기었다. 여리고 성의 모든 노략물은 하나님께 돌리고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나머지 성들의 노략물을 소유하는 것으로 약속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함으로써 이 언약을 어긴 것이다.
2)그들은 바친 물건을 취하였다.
3)도적하고. 그들은 마치 하나님의 전지하심으로부터 피할수 있기라도 한듯이 은밀히 이 짓을 하였다.
4)사기하여. 아간은 총회의 다른 무리와 함께 결백을 선언하는 일에 가담하여 마치 '먹고 그 입을 씻음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하는 음녀와도 같이 태연히 서있었다.
5)게다가 그들은 마치 제 소유물이나 된듯이 그 바친 물건을 '자기 기구가운데' 두었다. 이때에 하나님은 이 일을 한자가 누구인지 여호수아게게 알려주실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않으셨다. 이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회중으로하여금 범죄자를 찾아내는 일에 열의를 다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죄인 본인에게는 회개하고 자백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간은 제비에 뽑히기까지 자수하지 아니함으로서 자기 마음의 완악함을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그는 아무런 자비도 받을수 없었다.
(3) 하나님은 여호수아더러 이사건을 더깊이 조사하라고 일깨우신다.
1)이 일만이 이번문제의 유일한 원인이다. 따라서 이 바친 물건을 없애기만 하면 아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된다.
2)이 바친 물건을 멸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은혜스런 임재를 돌려받지 못할 것이다. 개인적인 회개와 변화에 의하여 내 자신의 마음가운데 있는 바친 물건을 없애야 한다. 그렇게하지 아니하면 결코 복되신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할수 없다.
(4)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그 조사 및 처형방법에 대하여 지시하신다.
1) '백성을 성결케'하여야 한다. 이제 백성을 명하여 '스스로 성결케하라'고 하여야 했다(13절). 백성도 이러해야 하거든 하물며 통치자나 사역자들은 성결케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이들은 자신을 알맞는 틀에 넣어 하나님앞에 보이며 하나님의 면밀한 조사에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
2)모든 백성을 불러내어 제비뽑기를 통한 면밀한 조사를 하여야 한다(14절). 먼저 범죄한 사람이 소속한 지파가 뽑힐 것이고 그다음에는 가족, 한집안, 가장 마지막으로 그 개인순으로 뽑힐 것이다. 이처럼 범죄자 색출을 점차적으로 실시한 것은 그 범죄자에게 나아와 자백할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3)범죄자는 발견하는 즉시 '불쌍히 여길것 없이' 죽여야 한다(히 10:28). 그 범죄는 '망령된 일'이었다. 이러한 범죄는 그처럼 가차없이 처단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세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자들에게 경고가 될것이다.

Ⅳ. 범죄자의 색출 및 처형 7:16-26
1. 제비로 아간을 찾아냄(16-18)
범인 색출과정을 살펴보자. 범죄한 지파는 유다 지파였다. 유다 지파는 모든 지파중에서 그 당시나 앞으로나 가장 존귀하고 뛰어난 지파이다.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유다 지파가 뽑히자 유다 지파의 용사들은 칼을 빼어들고 범죄자가 처형되고 자기들의 무죄가 밝혀지기전까지는 절대로 칼을 다시 칼집에 꽂지않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마침내 범죄한 사람이 붙들린다. 제비가 말하는바는 바로 '네가 그 사람이다'라는 것이었다(18절). 자기가 범죄한 사실을 알고있는 아간이 제비가 점차 자기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도망할 꾀를 내지도않고 자백함으로써 은총을 구하려하지도 않았다는 것은 참이상한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죄를 감출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보게된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무슨방법을 동원해서든지 어두움속에 숨겨진 일들을 밝은데로 끌어내신다. 하나님이 우리로 더불어 다투실때 우리는 나의 죄가 무엇인지 면밀히 찾아내야 하며, 또한 경건한 욥과 같이 '주여, 어찌하여 나로 더불어 다투시는지 내게 보이소서'라고 진지하게 기도하여야 한다.
2. 아간의 범죄에 대한 심리(19)
여호수아는 재판석에 앉아서 아간에게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백할 것을 촉구한다. 이는 그의 영혼이나마 오는세계에서 구원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1)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넨다. 그는 마땅히 아간을 '도둑', '반역자', '라가', '이 바보'라는 말로 부를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를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제사장이 우리의 복된 구주께 했던 것처럼 자백하라고 엄중히 명하거나, 아니면 자백을 강요하기위하여 고문으로써 위협할수도 있었으나 여호수아는 사랑하는 까닭에 오히려 그에게 간청한다. 내 아들아 청하노라…내게 고하라. 이것은 비록 스스로 못된 짓을 하여 끌려나온 사람일지라도 곤경에 처해있는 사람은 너무 윽박지르지 말것을 가르쳐준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사법관들에게 있어서도 몹시 성나게 만드는 자들일지라도 그들을 향하여 모욕적인 행위나 언사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하는 본보기가 된다. 사람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수 없다.
(2)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바란것은 사실대로 고백하는 것이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에게 고백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가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을때 죄를 고백하면 이로써 공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선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백을 우리에게 불리한 증거물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벌을 신실하고 공정한 것으로 인정하면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켰다. 그리스도는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손상한 것을 채우셨다. 그러나 우리는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우리의 선한 뜻을 나타내보여야 한다. 우리 힘이 미치는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한다.
3. 아간의 고백(20,21)
이제 마침내 범죄사실을 숨기는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달은 아간은 침착하고 솔직하게 자백한다. 아간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사실을 상세하게 얘기한다. 여차여차히 행하였나이다(20절). 참회자는 하나님께 자기 죄를 고백할때에 아주 자세하게 말해야 한다. "내가 범죄하였습니다."라는 말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일에 범죄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하여야 한다.
(1) 아간은 그가 취한 물건에 대하여 고백한다. 여리고 어느 한집을 노략한때에 그는 바벨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벌을 발견하였다. 이 외투는 제후들이 정장으로 입는 옷을 가리킨다. 아간은 "이 옷을 태우다니 말도 안되지" " 이 옷 한벌이면 내 최고급 옷으로 여러해나 입을수 있을텐데"라고 생각했다. 이런 구실로 그는 겁없이 이 첫물건에 손을 댄다. 그러나 그의 손은 계속해서 '은 200세겔'(100온스)과 '금덩이 50세겔'(25온스)이 든 돈자루에 닿는다. 그는 이것들을 취함으로써 이것들을 '불에서' 건졌다고 변명할수는 없다. 조그만 구실을 가지고 감히 한가지 죄를 짓는 사람은 다음부터는 그런 구실없이도 과감하게 범죄할 것이다. 죄의 길은 내리막길이기 때문이다. 아간의 이런 무모한 모험에 대한 대가는 비참한 것이었다(마 16:26참조).
(2) 아간은 자기의 범죄양상을 고백한다.
첫째, 마치 하와가 금지된 과일을 보았던 것같이 죄는 눈에서 시작했다. 그도 이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고 이상스럽게도 그 모양에 유혹되었다. 눈에 보이는대로 행하면 그 마음에 고통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눈과 계약을 맺어야하는데 그것은 곧 눈이 잘못 인도하면 틀림없이 그로인하여 울게 되리라는 것이다. '붉은 포도주를 쳐다보지 말며', 아름다운 여인에게 눈을 돌리지 말것이다.
둘째, 그 죄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탐내어(2절). 아간은 이처럼 시인하였다. 이와같이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은 것이다. 자기 자신을 죄로부터 지키기 원하는 사람은 자기안에 있는 죄의 욕망을 억제하고 없애야 한다. 그가 파멸된 것은 보는것 때문이 아니라 정욕때문이었다.
셋째, 아간은 범죄한후 부지런히 그것을 감추려 하였다. '죄의 속임수'를 보라. 죄를 저지를때는 재미있지만 되돌아보면 너무나 쓰린 일이다. 마침내 죄는 뱀처럼 물어뜯는다.
4. 죄의 확증(22,23)
하나님은 제비뽑기로써 확증하셨고, 아간은 자백함으롬써 확증하였다. 여호수아는 더나아가 아간이 자백한대로 그 물건을 감춘 장막을 탐색함으로써 확증했다.
5. 정죄(24,25)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선고를 내린다(25절).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죄는 죄인 본인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까지도 매우 괴로운 것이다. 여호수아가 말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아간의 범죄가 이처럼 심각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물건을 도적질했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괴롭게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아합과도 같이(왕상 18:18) 그의 머리위에는 "아간,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라는 죄패가 쓰여졌다. 어떤 유대인 박사들은 아간을 괴롭게 하기위한 판결문중의 '오늘날'이란 단어를 근거로하여 그가 오는 세상에서는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영혼을 구원받기위해 육체가 멸망당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시대는 실제로 생각처럼 그렇게 혹독한 것은 아니었다.
6. 처형 (24-26)
(1) 처형 장소 : 아간의 죄로 어지럽혀진 진영을 그의 죽음으로 더럽히지 않기위하여 얼마쯤 떨어진 곳에서 형을 집행하였다.
(2) 형 집행에 참가한 사람 : 그것은 온이스라엘의 행위였다(24,25)
(3) 형벌의 대상 : '그 죄악으로 망한 자가 그 사람뿐이 아니었느니라'(22:20). 훔친 물건도 아간과 함께 진멸되었다. 아간의 다른 모든 물건도 마찬가지로 진멸되었다. 그의 장막과 장막기구뿐만 아니라 그의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까지도 진멸된 것이다. 돌 잡으려다 집돌 잃는다. 그 아들들과 딸들도 그와 함께 죽임당하였다. 어떤이들은 단지 아버지의 처형장면을 지켜보게 하기위하여 그들을 '이끌고' 왔다고 생각한다(24절). 아마도 그의 아들들과 딸들은 이 악행의 방조자와 독려자가 되어 그 바친 물건을 훔치는 일을 도왔을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들은 그것들을 숨기는 일에 협조했을 것이다.
(4) 아간에게 가해진 형벌 : 그는 돌에 맞아 죽었다(어떤이는 아간이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생각한다. 즉 안식일에 그 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시체는 불에 태워졌다.
(5) 하나님의 분노가 그침(26절) :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원인을 제거하면 그 결과도 그칠 것이다.
7. 아간의 정죄와 처형에 대한 기록(26)
후손에게 경고하고 교훈하고자 이 일을 기억케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1) 아간이 처형된 곳에 돌무더기가 쌓였다. 아무도 회중 한사람 한사람이 돌을 던짐으로써 이루어진 무더기일 것이다. 그것은 범죄에 대한 증오의 표시로서 던져진 것이다.
(2) 그곳은 새로운 이름을 얻게되었다. '아골' 곧 '괴로움'의 골짜기라고 불리웠다. '아골 골짜기'는 훗날 '소망의 문'으로 불리운다. 바쳐진 물건을 제거할때에 그때부터 이스라엘에 소망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호 2:15;스 10:2).

# 핵심
7:1-26
아간의 범죄사건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저질러진 최초의 범죄로서 앞으로의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나게될 불순종을 암시하는 불길한 사건이었다(왕하 17:7-20).
개인과 공동체(7:1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라는 말은 하나님이 아간 개인의 범죄를 이스라엘 전체의 범죄로 여기셨음을 의미한다. 사실 그의 범죄로인하여 아이성 공격이 실패로 끝났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정복하라는 명령과 원칙에 각사람 모두가 동의했기때문에, 한개인의 실패는 곧 공동체 전체의 실패가 된다. 이러한 원칙은 신약시대의 교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도덕성은 교인들 각각의 행위에 달려있다. 교회가 범죄요소를 철저히 다스리지 못하면 결국 심판을 초래하게될 것이다(참조, 행 5:1-6).
아골 골짜기(7:26)
원어상으로는 ‘괴로움의 골짜기’라는 뜻. 유다 북동부 지역, 여리고에서 남쪽으로 16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계곡이다. 성경에는 아골 골짜기가 고통과 괴로움의 현실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였다. 예를들어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주리니”(호 2:15)라는 말씀은 환난에 처한 이스라엘로 구원의 소망을 갖게 해주겠다는 의미이며, “아골 골짜기는 소떼의 눕는 곳이 되어”(사 65:10)라는 말씀역시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고된 포로생활로부터 풀려나서 구원받을 것을 암시한다.

# 묵상
개인의 죄와 공동체 ( 7:1 )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개인의 죄는 곧 그 공동체의 범죄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아간의 범죄는 아이성 정복의 직접적인 실패요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개인은 하나님께 대한 전체로서 하나의 공동체이며, 전민족을 대표하면서 한분이신 하나님을 모시는 언약의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의 숨은 죄를 보시고 반드시 드러내시어 형벌을 받게 하십니다. 신약의 성도도 그리스도를 머리로하는 한지체이기에(고전12:2-31), 개인의 영광과 고통은 교회의 영광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아이성에서의 패배 ( 7:2-5 )
아이성에서의 패배는 2가지의 교훈을 줍니다. 하나는 개인의 죄가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고, 다른하나는 어제의 승리(여리고 성 싸움)가 오늘의 승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매일매일을 하나님의 뜻가운데서 새롭게 살아야합니다.
기도의 올바른 태도 ( 7:6-9 )
기도하는 사람은 겸손히 자기의 부족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합니다. 기도의 가장 큰조건은 하나님의 뜻안에서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롬8:27).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간구하는 기도에 응답하십니다(눅11:9-13).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 ( 7:10-15 )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는 것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우리의 주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렘31:33).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지않는 백성에게 환난을 주시므로 약속을 다시 기억하게끔 하십니다.
제비뽑기 ( 7:16-21 )
이것은 선지자 이전시기에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일종의 계시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백성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잠16:33).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것을 그대로 적용시킬수 없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간의 착각 두가지 ( 7:20, 21 )
첫째 자기 죄를 숨길수 있다는 것과 ‘나 하나쯤이야’하고 자신의 잘못을 대수롭지않게 생각한 점입니다. 그래서 이 결과로 36명의 생명을 잃었고 이스라엘이 전쟁에 패했으며 백성의 마음은 물같이 녹았고,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에게 멸시를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그 죄인을 찾아내며 또한 자신들의 조그마한 잘못이 전체에 큰영향을 미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욕심의 결과 ( 7:24-26 )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하고 시체가 불살라졌습니다. 이처럼 재물은 인간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미끼입니다(딤전6:10). 인간이 미혹에 넘어갈때 그 결과는 죽음뿐입니다(잠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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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여호와의 지시와 확증 6:1-5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과 여리고 백성사이에 벌어지는 한판 승부를 보게된다.
(1) 여리고는 이스라엘의 종이 되지 않겠다고 단단히 각오한다(1절). 도망하거나 또는 화친을 교섭하기 위하여 성서에 나오는 자도 없었고, 설사 화친을 제안해 온다하더라도 절대 성안으로 들여보내지 아니하였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속히 그 성의 주인으로 삼겠다고 결정하셨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어떻게 성을 공략할 것인지에 관하여 가르쳐주신다. 참호를 팔 필요도 없고 어떠한 군사적 준비도 필요 없었다. 단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성주위를 엿새동안에 하루 한번씩 돌고 제 7일에 일곱번을 돌아야 했다. 제사장들은 조용히 행진하는 무장한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면 줄곧 양각나팔을 불면 되었다(3,4). 이것이 그들이 해야하는 전부이다. 제 7일 밤이 오기전에 그들은 틀림없이 그 성을 차지하게 될것이다. 주어진 신호에 따라 모두가 외치기만 하면 바로 성벽이 무너져내릴 것이다(5절). 하나님이 이 방법을 정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높이시기 위함이었다. 이로써 전쟁도구의 위력이 칭송을 듣는 것이 아니라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시 21:13).
둘째, 하나님의 임재의 제도적 표지인 언약궤를 영화롭게 하며, 백성으로하여금 율법을 최대의 경의와 존중으로 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셋째, 그것은 동시에 이 일에 있어서 언약궤를 메고 나팔을 불도록 되어있는 제사장들을 존귀케하는 것이기도 하기위한 것이었다.
넷째, 백성의 믿음과 복종과 인내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인간의 수단으로 볼때 순종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는 그 가르침을 지킬것인지 인간의 계산으로 볼때 이루어지기 불가능한 것인지 보이는 약속을 믿을지에 대하여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여리고 성벽은 병력이 아닌 이와같은 믿음으로인해 무너져 내렸다.
다섯째, 그것은 이스라엘앞에 놓여있는 다른 곤경들에 대하여도 소망을 잃지않도록 힘을 주기 위함이었다. 제아무리 단단하고 높은 성벽일지라도 전능자앞에서는 맞서서 버틸수 없다.

Ⅱ. 이스라엘의 복종 6:6-16
여기서 여리고성 주위의 이스라엘의 행렬, 그에 관한 여호수아의 명령에 관한 기사를 볼수 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께 받은 그대로 지시하였고 백성은 이 명령을 어김없이 지켰다.
(1) 궤가 어디로가든 백성은 그것을 따랐다(9절). 무장한 자들은 언약궤의 전초로서 궤앞에 행하며 길을 열었다. 언약궤를 위하여 좋은 직무를 수행하며 자기나라의 종교적 유익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은 위대한 사람에게 있어서도 명예스러운 일인 것이다. 궤뒤에 행한 '후군'은 다른 일단의 무장한 자들이었거나 아니면 광야에서 맨뒤에 행진한바 있던 단지파의 행렬이었을 것이다. 어떤이들은 그들이 비무장한 백성의 무리라고 생각한다.
(2) 일곱 제사장은 각기 그손에 나팔을 잡고 궤 바로앞에서 행진하며 계속 나팔을 불었다(4,5,9,13절). 이들은 가나안 족속에게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이로써 그들에게 공포감을 조성시켰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인간의 모든 불경건한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는 나팔을 불어야 한다. 이들이 시온에서 나팔을 불면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할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였다. 이로써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명과 용기를 주셨다.
(3) 그들이 사용한 나팔은 은나팔이 아니라, 양뿔에 구멍을 뚫어만든 양각나팔이었다. 그것은 가장 저질의 재료로 만든 것으로서 소리가 둔탁하며 모양이 없었다. 탁월한 권능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양각나팔의 소리에 비유될수 있는 '전도의 미련함'으로써 마귀의 왕국은 무너지게 된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 10:4,5).
(4) 모든 백성은 조용해야 한다. 외쳐서도 안되고 입밖에 한마디도 내서는 안된다(10절). 이는 거룩한 나팔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나팔소리는 이제 그들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때 우리가 말하는 것은 옳치않는 일이다.
(5) 이같은 일을 하루에 한번씩 엿새를 해야하며 제 7일에는 일곱번씩이나 해야했다. 백성은 시키는대로 하였다(14,15절). 구원의 약속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이 정하신때에 성취될 것이다.
(6) 칠일중 하루는 안식일임에 틀림없었다.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그 마지막날이 안식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확실치 않다. 다른 안식일에 쉴것을 정하신 하나님께서 이날만큼은 행진하라고 명하셨다. 따라서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에 행진하는 것을 정당화 해준다. 하나님은 결코 자신이 만드신 법으로 자신을 묶어매시는 일이 없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그 법을 면제할수도 있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안식일법이 금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일, 즉 비굴하고 세속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것은 종교적인 행위였다. 분명히 안식일에 할일을 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
(7)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런 결과도 보지 못하였지만 지정된 기간동안에 계속하여 행진하였고 제 7일에는 일곱번을 돌았다. 아마도 여리고성 사람들은 처음에 이 이상한 장면을 보고 웃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들은 자기들을 포위한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여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하며 조롱하였을 것이다(느 4:2).
(8) 백성은 마침내 외치도록 지시받았다. 그들이 외치자 성벽이 즉시 무너져버렸다(16절). 이것은 승리의 외침이며 기도의 외침이다. 하나님이 저희를 기억하시겠다는 약속을 선포하는 나팔소리에 대한 반향이었다. 마지막때에 우리 주께서 호령과 나팔소리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때에 사단의 왕국은 완전히 파멸될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이 있기전에는 먼저 모든 반대 세력과 정사와 권력이 철저히 그리고 영원히 굴복될 것이다.

Ⅲ. 여리고성 함락 6:17-27
백성은 여리고성 포위에 관한 명령을 경건하게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16절).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성을 주셨느니라. "들어가서 취하라."
(1) 성을 탈취하는데 있어서 지켜야할 규율이 있었다.
첫째, 그 성과 그가운데 모든 물건은 '헤렘' 즉 여호와께 바친 것이 될것이다. 이러한 엄정한 명령속에서 오직 라합과 그의 가족만이 제외되었다. 라합과 무릇 그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17절). 라합은 이스라엘에게 친절을 베풂으로써 이웃들과는 구별된 사람이었다.
둘째, 성안의 모든 보화들, 즉 돈과 그릇과 가치있는 물건들은 성막에 쓰기위하여 바쳐야 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하신 땅은 은과 금으로 가득한 땅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이다. 성막을 풍요하게함으로써 자신을 풍요케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셋째, 특별히 금지된 노략물에 손을 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할 것이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18절). "그것중 하나라도 손대는 일이 없도록 삼가라." 하나님은 아간의 죄를 예견하신듯이 이처럼 말씀하셨다. 아간의 죄에 대해서는 다음장에서 다룰 것이다.
(2) 성벽이 갑자기 무너져내림으로해서 성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렸다. 성 주민이 자신들의 방호벽으로 굳게 믿었던 것이 결국은 자기들을 파멸케하는 것으로 입증된 것이다. 말할것도 없이 성벽이 갑자기 무너져내리자 주민들은 혼비백산하여 어떻게 저항해볼 정신이나 기력이 없이 쉽사리 이스라엘 칼의 제물이 되었다. 이처럼 사단의 왕국도 무너질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강퍅케하는 자는 형통치못할 것이다.
(3) 이 함락된 성에 관한 명령을 어떻게 시행하였는지 살펴보자.
첫째, 호흡이 있는 모든 것을 칼날로 멸하였다. 만일 이런 일을 행함에 있어서 기적적인 보증이 따른 하나님의 보장이 없었더라면, 그것은 정당화될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와같은 보장이 있을수 없겠기에 만일 그같은 일을 한다면 정당함을 인정받지못할 것이다. 복음정신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려고 오신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눅 9:56). 그리스도의 승리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둘째, 그들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것을 살랐다'(24절).
셋째, 불로 깨끗하게 할수 있는 모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곳간에 두었다.
(4) 주막 주인 기생 라합만은 살아남았다. 라합은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다'(히 11:31). 두정탐꾼은 그녀의 안전을 위한 공적신의를 약속하였었다. 과거 그녀의 보호를 받았던 두사람이 그녀를 보호하는 일에 임명되었다(22,23절). 그녀의 모든 친속도 그녀와 더불어 구원을 얻었다. 라합은 살아남은후 당분간 집밖에서 머물며 이방인의 미신을 버리고 정결히하여야만 했다. 이렇게함으로써 개종자로서 받아들여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그녀는 이스라엘 교회에 가입되었고, 그녀와 그녀의 후손은 이스라엘가운데 거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가문은 오랜후에 명가문이 되었다. 그녀는 유다의 명문인 살몬의 아내요 보아스의 어머니며 우리 구주의 조상가운데서 그이름을 찾아볼수 있다(마 1:5).
(5) 여리고 성은 영원히 황폐되는 저주를 받았다. 그리고 이후 어느때도 그 성을 다시 건축하는 자에 대하여도 저주가 선언되었다(26절). 여리고 성의 위치는 매우 이상적이었다. 아마도 요단강 가까운 곳에 있음으로해서 유익한 점이 많이 있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건축하려는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그 성을 다시 건축하는 자는 멸절될 것이다. 사람들은 번영을 위하여 자기가 건축한 것을 향유할수 있는 후손을 갖지못할 것이다. 오랜후에 이 저주는 여리고를 재건한 사람에게 그대로 임하였다(왕상 16:34). 그러나 그곳이 더나쁘게 되었다거나 또는 그 성의 거주민들에게 어떠한 상해가 내려졌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훗날 여리고 성은 위대한 두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뿐만 아니라 우리의 복된 구주까지도 모시는 은혜를 누리게됨을 알수 있다(눅 18:35;1(;1;마 20:29).

# 핵심
6:1-27
여리고 성 정복에 관한 기사이다. 여리고 성은 여호수아가 태어나기 수천년전에 지어진 고대의 가장 오래된 성읍중 하나이다. 둘러싼 성곽의 경우 높이가 7.5m, 두께가 6m에 달하는 곳도 있었다. 그 위에서 보면 수마일 앞이 훤히 보였다. 이처럼 여리고는 함락 불가능한 곳으로 여겨졌고, 군사적인 위용과 힘의 상징이었다.
다 멸하라(6:21)
여리고 성에 있는 모든것, 심지어 노인과 어린아이까지 다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윤리적인 관점에서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문제다(신 12:2,3; 13:12,18). 하지만 문제의 초점은 하나님이 가나안인들의 악한 우상숭배로부터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을 순수하게 지키시려고 했다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인들의 우상숭배 관행에 젖어들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하셨다. 이 사실은 성도가 순결한 신앙을 오염시키는 그 어떤것도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엄중한 교훈을 준다.

# 묵상
여리고 정복과정 ( 6:1-21 )
본문에는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지시한 여리고 함락의 작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정복의 대상인 여리고 성을 돌라는 작전으로 이 작전에 따라 먼저 모든 군사가 하루 한번씩 6일동안 성을 돌았고, 7일째는 하루동안에 일곱번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모든 백성이 외치자 성이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순종 ( 6:8-14 )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은총을 받을만한 마음의 자세를 지니고 있음을 반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높이는 자들은 멸망과 수치를 당하게 하시지만, 겸손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는 귀히 여기셔서 높이 세우시는 분입니다(시35:26; 잠3:34).
여리고 성 정복의 교훈 ( 6:8-21 )
이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발적이고 철저한 순종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것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결코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교훈해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의 모든 것들을 멸하도록 명령을 내리셨는데, 그것은 죄악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더러운 우상숭배에 빠지지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세상을 사는동안 빛과 어둠이 서로 조화될수 없음을 명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구별된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라합의 구원이유 ( 6:17, 25 )
세가지로 말할수 있는데 하나님에 대한 믿음(수2:9-11)과 정탐꾼을 구해준 의로운 행위(수2:12), 그리고 그들이 한 약속(수2:`14, 17-20)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었을지라도 그녀의 믿음은 구원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처럼 보잘것없고 연약한 믿음도 자기 영혼을 구할수 있는 힘을 가집니다(시3:8; 막16:16).
여리고에 내리신 저주 ( 6:26 )
하나님께서는 여리고를 재건하지 말라고 명하시며 만일 이를 어기면 아들을 잃게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능력을 기억케하시며 또한 다른 민족들에게 능력있으신 분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워하게 하실 목적으로 여리고에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나중에 이 저주는 히엘에게서 이루어지는 데(왕상16:34), 이는 하나님의 뜻에 불복하는 자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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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부활된 할례의식 5:1-9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친 여리고 평지는 의심할바 없이 그 수많은 진들로 장관을 이루었다. 광야에 있던 교회가 이제 광야에서 나왔다. 적에게 있어서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는지 1절에서 알수 있다. 2절이하에 기록된대로 애굽의 수치를 굴려보낸후 그것은 친구들의 눈에 매우 아름답고 맑게 보였다.
1. 공포에 빠진 요단 서편의 왕들(1)
본문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을 건넜다는 소식이 이땅의 왕들에게 얼마나 큰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 나온다. 그들은 불앞의 밀초와 같이 되었다.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이제까지 가나안 땅의 왕들은 사기를 잘 유지해왔었다. 땅을 소유했고 인구로 번성했으며 성들도 요새화되어 있어서 침략자와 맞서서 얼마든지 싸워낼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을 그것도 기적으로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서, 이는 분명히 자연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싸워주고 있다고 생각한 가나안 왕들은 '마음이 녹았고' 이제는 어찌할바를 알지 못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두려워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스라엘 자체가 만만찮은 조직체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머리로 계셨기때문이며,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약속하신대로(출 23:27) 그들에게 공포를 집어넣고 그들의 혼을 빼놓으셨기 때문이다.
2. 이스라엘 백성의 할례(2-9)
그때에 (2절). 즉 그들 주변의 나라가 몹시 당황해할때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셨다.
(1)이런 거국적 할례를 시행하게된 경위를 살펴보자. 애굽에서…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4,5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당시 그들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바로의 포고령이 떨어지자 할례식이 중단되었었다. 애굽에서 나온후…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그리하여 이들을 상대로 거국적인 할례가 실시된 것이다. 이것과 관련하여서 이제 있게된 할례는 '다시'란 말로 표현되었다(2절). 모세가 친히 통치할무렵 이스라엘 백성이 38년동안 자녀를 낳으면서 그자녀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첫째, 어떤이들은 할례가 필요없었기 때문에 빠뜨려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례는 이스라엘 민족과 다른 민족들을 구분하기 위한 표시로 제정된 것으로서 따라서 광야에서는 할례의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둘째, 어떤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할때까지 할례에 대한 가르침을 의무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셋째, 어떤이들은 생각하기를 이스라엘 나라가 아직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였기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를 감안하여 할례에 대한 준수를 요구치 않으셨다고 한다.
넷째,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불신앙과 불평에 대한 하나님의 노여움을 계속해서 나타낸 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금송아지를 만듦으로써 계약을 깨뜨렸을때 언약의 돌판이 깨뜨려진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있다. 그 이유가 어쨌든간에 거의 40년동안이나 이스라엘 백성중에서 이 장엄한 규례가 빠진것 같다. 이 사실은 할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도 아니며 또한 영속적인 의무도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2) 여호수아에게 떨어진 이 거국적 할례에 대한 명령에 관하여 알아보자(2절). 왜 지금 이 명령을 내리셨을까?
1)약속이 이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할례는 이 약속의 보증으로 제정된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약속대로 안전하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다.
2)40년의 세월이 끝남으로해서 위험한 기간이 모두 지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 계약의 표식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①하나님은 이로써 이스라엘 진영을 전쟁의 규율이나 방책으로써 통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지시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②하나님은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과 체결했던 언약을 확약하신다. 그리하여 앞으로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칠 그들에게 새힘을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승리와 성취 그리고 약속의 땅을 완전히 소유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③하나님은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과 또한 우리에게 교훈을 베푸신다. 모든 큰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하며 그의 은혜를 확인하는 한편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할례의 피가 뜻하는 것이다.
④이처럼 오랫동안 폐지되었던 할례가 부활된 것은 다른 규례들도 다시금 부활시켜 준수해야함을 뜻한다.
⑤본문에 기록된바 '다시' 시행된 이 할례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복음의 안식에 들어갈때 받는 신령한 할례를 상징한다. 그것은 예수를 참된 할례자 즉 율법의 명령에 따른 육체적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베푸시는 분이심을 시사해준다(롬 2:29).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불리우는 것이다(골 2:11).
(3) 백성은 이 명령에 순종하였다. 여호수아가…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3절). 백성은 이 고통스런 의식에 선뜻 복종함으로써 자기들의 의무를 다하였다.
(4) 그들은 할례를 받음으로써 애굽의 수치를 굴러보낼수 있었다. 그들은 애굽의 우상숭배에 오염되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수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할례를 받음으로써 그 모든 수치를 굴려보내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할수 있는 소망을 갖게되었다. 그들이 무사히 가나안에 도착한 것도 역시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애굽 사람들의 못된 생각 즉 '그들이 그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출 14:3)는 생각을 침묵케하였기 때문이다.

Ⅱ. 유월절을 지킴 5:10-12
가나안 백성들이 깜짝 놀랐으리라고 쉽게 생각할수 있다. 여호수아는 전쟁을 시작하기전에 연이어 종교의식을 가졌다.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하면 끝맺음이 좋을 것이다.
(1) 율법에 정한 시간 곧 '첫달 십사일'에 할례를 행한 그 장소에서 엄숙히 유월절을 지켰다(10절).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유리할때는 그들에게 위로와 유익이 되는 이 제도를 거절당하였지만,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위로하시며 이로써 그 즐거운 제도가 부활된 것이다. 엄숙한 할례예식에 이어 곧바로 엄숙한 유월절이 따랐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씀을 받고 세례받은 이들은 바로 '떡을 떼게' 되는 것이다(행 2:41,42). 이스라엘 자손은 여리고 평지에서 이 유월절을 지켰다. 그것은 가나안 사람들을 상관치않는 행위였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시 23:5).
(2) 이스라엘 진을 위하여 '그땅 소산'이 양식으로 쓰이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만나가 그치게' 되었다(11,12). 만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베푸신 놀라운 자비였다. 하지만 그것은 광야생활을 대변하기도 한다. 더욱 바람직한 일은 '그땅의 소산'을 먹은 것이다. 이제 그들은 그것을 공급받게 되었다.
1)들에 살던 백성들은 자기들의 곳간과 논밭 그리고 그안에 있는 모든것들을 버려둔채 안전을 위하여 여리고 성으로 도망하였다. 그래서 때에 알맞는 공급이 이루어질수가 있었다. 유월절이 끝난 다음에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만일 만나외에 다른 양식이 없다면 규정대로 무교절을 지킬수 없다. 이제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곳간안에서 충분한 곡식을 찾아내어 무교절을 지키는데 넉넉히 쓸수가 있었다. 유월절의 안식일 이튿날에 그들은 '곡물의 첫이삭 한단을 여호와앞에 흔들어야' 한다(레 23:10,11). 이 명령은 특별히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지키도록 지시된 것이다. 그때는 마침 '그해 그땅 소산'이(12절) 이미 자라서 익기 시작할무렵이라서 쉽게 이 명령을 지킬수가 있었다.
2)그들이 '그땅 소산'을 먹기 시작하자 만나가 그쳤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만나는 그들에게 필요할때에 내렸다. 그것은 필요로하는 경우에만 내렸고 이후 더이상 내리지않았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식량을 얻을수 있을때에는 비상한 공급을 기대하지 말라는 교훈을 얻을수 있다. 이제 그들에게 만나가 필요없게되자 하나님은 그것을 거두어가셨다. 하나님은 슬기로운 아버지이시다. 그는 자기 자녀들의 필요를 아시고 그들에게 선물을 공급해주신다. 그러나 그들의 기분에 맞추어 주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는 신령한 만나이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광야에 있는 자기 백성을 먹이신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의 가나안으로 이르게 될때 이 만나는 그칠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더이상 만나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Ⅲ. 여호와의 군대장관 5:13-15
이제껏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차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을 찾아볼수 있지만 이제까지 하나님이 영광중에 그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여호수아에게 곤경이 커질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더 큰격려가 있었다.
(1) 여호수아가 이 환상을 보는 은혜를 입은때는 그가 할례와 유월절을 아주 엄숙하게 지킨 바로 직후였다. 우리도 마땅히 할일을 지켜나아가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될 것이다.
(2)여호수아가 이 환상을 본곳은 '여리고' 가까운 곳이었다. 아마도 그는 전혀 혼자있었던 듯하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신하였으므로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떤사람은 생각하기를 그가 거기서 묵상하며 기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니면 아마도 여리고성을 살펴보며 그것을 어떻게 공략할지 궁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지시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 법은 잠자는 자를 돕지않고 깨어있는 자를 도와준다. 하나님이 오셔서 스스로를 군대장관으로서 알리셨을때 여호수아는 장군으로서의 자기 자리를 잘지키고 있었다.
(3) 하나님의 현현에 대하여 알아보자. 사고와 주의력이 깊은 사람이 늘 그렇듯이 여호수아는 눈을 땅아래로 고정시키고 아래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얼마 멀지않은 거리에 한사람이 나타나 서있는 모습에 놀란 그는 눈을 치켜들지 않을수 없었다. 이 사람은 영원한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는 지속적인 상태로 인간의 성질을 입으시기전에 자주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곤 하였다. 그는 여기서 '칼을 빼어 손에 든' 군인으로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이 장막에 있을때 그는 나그네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들판에 있던 여호수아에게는 전사로서 나타나셨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에게 그들의 믿음이 바라고 갈망하는바가 되어주신다. 그리스도께서 여호수아에게 오신 것은 용감히 싸우도록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칼을 빼어 손에 드신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를 힘입어 용감히 싸울 것이다.
(4) 여호수아는 그에게 다가가서 담대히 질문하였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큰용기와 결의를 보여준다. 그는 이 갑작스런 출현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자기 백성의 복지에 대한 여호수아의 지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아마 여호수아는 그를 적으로 생각했던것 같다. 이처럼 우리도 가장 우리를 위하는 자를 우리를 대적하는 자로 오인하기 쉽다. 이스라엘 자손과 가나안 민족 그리고 그리스도와 바알세불사이에는 어떠한 중립적 입장도 있을수 없다.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해치는 자이다.'
(5) 자기 자신에 대한 설명(14절). "아니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너희의 대적이 아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너희에게 친구로써뿐만 아니라 총사령관으로서 온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와 또한 이들을 도와줄 천군을 모두 다 지휘하실 것이다. 아마도 여기서 암시를 받아서 훗날에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히 2:10), 그리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명자'(사 55:4)라고 부른 듯하다.
(6) 여호수아는 그가 신적인 인물이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1)여호수아는 그에게 절하였다.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14절). 여호수아는 자기가 이스라엘 병력의 장군이 되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를 자기의 상관으로 맞아들이고 복종을 표시했다.
2)여호수아는 그에게 명령과 지시를 내려달라고 부탁하였다.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4절). 앞서의 질문은 여호수아의 담대하고 군인다운 점을 보여주는 반면에, 이번 질문은 그의 경건하고 성도다운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것이 여호수아의 뛰어난 기상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면류관을 쓴 왕들조차도 '왕의 왕' 되신 주 예수의 보좌앞에서 아무리 자기를 낮춘다 해도 부족한 것이다(시 2:10, 11; 72:10,11; 계 19:16).
①여호수아와 그리스도와는 어떤 관계인가? 그리스도는 주가 되시고 여호수아는 종이다. 따라서 그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대장이 되시고 여호수아는 한군사로서 그의 휘하에 있어야 한다. 곧 여호수아는 명령받은대로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마 8:9).
②여호수아는 이러한 관계에 준하여 질문한다. 주여…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이것은 그리스도의 뜻을 알고자하는 진지한 열망과 그 뜻대로 기꺼이 행하겠다는 마음자세와 결의를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기질의 마음이야말로 그가 현직의 적임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복종할줄 아는 사람은 명령하는 방법을 가장 잘알고 있다.
(7) 하나님의 군대장관은 여호수아에게 더욱 경외의 표시를 요구하였다(15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신을 벗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모자를 벗는 것처럼 경외와 존경을 표시하는 행위였다. 흔히 우리는 무척 좋아하는 사람을 향하여 그가 밟은 땅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안의 존경심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울리는 일이며 또한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패트릭 주교는 하나님이 떨기나무 불꽃가운데서 모세에게 내리신 명령과 같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하셨던 것처럼 또한 여호수아와 함께하실 것이었다(1:5).

# 핵심
5:1-15
요단강을 건넌뒤 가나안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의식을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다. 할례는 아브라함 언약에 대한 육체적 증거이며(창 17:9-14), 유월절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이었다(출 12:48). 할례는 언약백성이 지니는 표시였고, 유월절은 출애굽의 구원을 축하하며 기념하는 축제였다. 가나안 땅에서 이 두의식을 지켜 행한 이유는 아브라함 언약과 출애굽이 바로 이 성취의 때를 기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 묵상
할례의 목적 ( 5:2-5 )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명령하신 것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거하는 외적인 징표입니다. 할례의 진정한 증표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이웃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신약에서 할례는 세례로 변화되어지는데, 성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정한 할례(세례)를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약속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골2:11-15).
가나안에서 그쳐진 만나 ( 5:12 )
만나는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자연적으로 주어진 양식이었기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땅의 소산을 거둘수 있게되자 그쳤습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으로 역사하기도 하시지만 자연적인 은총으로 인간의 노력을 통해 역사하기를 더욱 원하십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 ( 5:13-15 )
이는 어려운 상황속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앞에 나아갈수 없습니다. 다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친히 우리에게 오셨기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근본적 차이 ( 5:15 )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창조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시고, 악에 관한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롬3:23). 그 죄는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면 더크게 인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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