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유다왕국의 몰락에 대한 비유〔1〕 19:1-9
(1) 왕가의 몰락에 대해 애통해하라는 명령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주어졌다. 여기서 유다왕들이 '이스라엘 방백들'로 불리고 있다. 이는 그들의 영광이 감해졌기 때문이다.
(2) 에스겔 선지자는 유다왕국을 '암사자'에 비유해야 했다(2절). 왕가는 왕국의 어미와 같다. 곧 사납고 잔인하며 굶주린 '암사자'와 같다. 그가...젊은 사자중에서 그새끼를 기르는데. 즉 젊은방백들에게 폭군의 도를 가르쳤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과 약속을 좇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사자의 능력과 위엄을 보존시켜 주셨을 것이다. 그것은 '유다지파의 사자새끼'인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사자새끼들은 잔인했으며 가혹하였다. 이 새끼들중 하나인 여호아하스는 '젊은사자가 되었다'(3절). 즉 그는 왕이 되었으되 자기 하고싶은대로 하기위해 왕이 된것으로 착각하였다. 그의 폭정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땅으로 간지라(4절). 여호야김은 그의 형제의 운명을 보고서 경계하기는커녕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젊은사자가 되며 여러사람 가운데 왕래하며(6절). 그리고는 그는 곧 '식물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켰다.' 즉 그는 신하들의 재산을 강탈했으며 자기눈에 띄는 모든것을 삼켜버렸다. 그는 사람들이 쌓아둔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낼줄 아는 기술이 있었다. 그는 압제함으로써 '그의 궁실들을 헐고 성읍들을 훼파하였다'(7절).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자신의 파멸을 재촉할 뿐이었다(8절). 하나님께서는 여호야김을 대적하여 아람인, 모압인, 암몬인, 갈대아인의 군대를 보내셨다(왕하 24:2). 그리하여 그는 저들의 '함정'에 잡혔다. 느부갓네살이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갔다(대하 36:6). 그의 폭정은 끝났다. 즉 그는 나귀같이 매장되었던 것이다(렘 22:19).

Ⅱ. 유다왕국의 몰락에 대한 비유〔2〕 19:10-14
유다의 모체가 되는 성읍인 예루살렘이 본문에서 다른비유로 나타나고 있다. 즉 예루살렘은 포도나무로 그리고 방백들은 가지로 나타나 있다. 우리는 앞에서도 이러한 비유를 보았었다(15장). 예루살렘은 '포도나무'와 같다. 유대민족도 마찬가지다. 네 피의 어미는...포도나무같아서(10절). 크게 사악한 곳이라도 잠시동안 번영하는 수가 있다. 그리고 피에 감긴 포도나무가 무성한 가지를 가지는 수가 있다. 예루살렘은 '견강한 가지', 즉 유능한 치리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견강한 가지'란 매우 단단한 가지를 말하는 것이나 포도나무를 지탱해주는 막대를 뜻할수도 있다. 왜냐하면 치리자들의 역할이 그런것이기 때문이다. 그가지들은 '권세잡은 자의 홀'로 사용하는 흰지팡이를 만들수 있을정도로 성숙하게 자랐다(11절). 유다 왕실가족의 수효가 중다하고 재판정이 양심적이고 청렴한 사람들로 가득찼을때에는 예루살렘의 키가 '굵은가지 가운데서 가장 높았었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왕의 멍에아래서 잠잠히 있었을때 유다왕국은 이와같이 번성하였었다. 그러나 지금 이 포도나무는 파멸되었다. 시드기야의 배반에 진노한 느부갓네살이 '분노중에' 예루살렘을 '뽑아버렸다'(12절). 즉 그성읍을 파멸시키고 모든왕가의 가지들을 잘라버렸다. 포도나무는 이제 광야에 심긴바 되었다(13절). 바벨론은 그곳으로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에게 있어서 광야와 같은 곳이었다. 유다땅 역시 예루살렘에게는 광야와 같은 곳이었다. 저 견강한 가지들은 압제의 도구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왕과 함께 멸망하였다. 폭정은 무정부상태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통치의 막대기가 압제의 독사로 변할때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통치의 홀이 될만한 견강한 가지를 없애리라. 그리고 인간으로하여금 큰것이 작은것을 삼키는 바다의 고기들처럼 만들리라."

# 핵심
19:1-14
비운을 맞은 유다왕들의 근본적인 죄악을 애가의 형태로 지적한다.
겔 19:10절의 바른해석
여기서 “네 피”는 유다의 혈통을 의미하며(NKJV-your bloodline), “어미”는 유다왕국을 뜻한다. 그리고 본절 상반절은 ‘네 어미(유다왕국)는 네 피(혈통)에 있어서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같아서’라고 읽는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처음 유다왕조가 세워질 당시에는 하나님앞에서 매우 견실했음을 의미한다.

# 묵상
암사자와 젊은사자 ( 19:1-9 )
바로 이스라엘이 ‘암사자’요 그들의 왕은 ‘젊은사자’입니다(창49:9; 미5:8). 그러므로 본문에서 애굽땅으로 끌려간 젊은사자는 여호아하스(왕하23:30-34)를, 바벨론으로 끌려간 젊은사자는 여호야긴(왕하24:8-16)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애가를 지어 부르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왕들의 비극적 미래를 경고케 하셨습니다.
가물이 든 땅으로 옮겨진 포도나무 ( 19:13 )
본문에서 광야, 곧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이란 바벨론지역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가지가 이러한 땅으로 옮겨 심어졌다는 말은 시드기야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 그때까지 누려왔던 풍요로움과 정치적인 권력 등을 더이상 누리지못하고 피폐한 상황에 처해진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 해설
방백들을 위한 애가 ( 19 )
다윗왕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큰번영과 영광을 누렸습니다. 다윗의 바른통치로 인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가져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후예들은 다윗의 길에서 떠나 악을 행함으로 그백성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본장은 그러한 악한왕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는 동시에 왕위에서 뽑혀 다시는 그위에 앉지못할 것을 예언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1. 사자비유
1) 암사자
에스겔 선지자는 유다의 왕을 젊은사자에 비유하고 그 젊은사자인 유다왕의 조상들과 그조국을 암사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자는 백수의 왕입니다. 따라서 유다의 열조왕들과 그후예들을 사자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유다의 열조왕들과 그후예들을 사자에 비유한 것은 또한 유다자체가 선택받음으로 열국중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였다는 것을 아울러 나타내줍니다. 한편 유다의 열조왕과 유다나라가 암사자로 비유된 것은 그들이 유다의 후예들을 배출하였기 때문입니다.
a.강한 사자(삼하1:23)
b.사자의 얼굴(겔1:10)
2) 그 새끼하나
여기서 말하는 새끼하나는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지칭합니다. 그는 유다의 왕이 되었으나 왕위에 오르자마자 동족을 살해하고 강포와 약탈을 일삼았습니다(참조, 왕하23:2). 이에 그는 징벌을 받아 애굽왕에 의해 즉위 3개월만에 폐위당한채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참조, 왕하23:33-34;대하36:4).
a.강포한 유다목자들(겔34:4)
b.젊은사자(암3:4)
3) 또다른 새끼하나
본문이 언급하는 내용으로 볼때 여기서 언급되는 또다른 새끼하나는 여호아하스 다음왕인 여호야김을 가리킵니다. 물론 그다음 다음왕인 여호야긴도 본문의 정책과 일치하기때문에 여호야김으로 보는것이 옳습니다. 그역시 선왕들처럼 강포를 행하다 느부갓네살 제일차 침공때 패하여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참조, 대하36:6-7).
a.여호야김의 악행(렘22:16-17)
b.여호야김에게 내린 저주(렘36:30)
2. 포도나무 비유
1) 네 피의 어미
여기서 '네 피의 어미'란 '네 혈통의 어미'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것은 유다왕들을 배출한 유다 열조왕들과 유다나라를 가리킵니다. 결국 이렇게보면 이표현은 앞에 '암사자'와 같은의미의 말입니다. 한편 본문의 묘사대로 유다는 한때 주변 모든나라보다 부강하였었습니다. 그나라의 부는 부러울 것이 없을정도로 풍성하였고 그힘은 주위나라가 두려워할정도로 강했습니다.
a.솔로몬시대의 부(왕상10:21-22)
b.열방이 다윗에게 복종함(대상22:18)
2) 뛰어난 한가지
이상징은 유다의 마지막왕 시드기야를 지칭합니다. 시드기야는 즉위초기에 바벨론에 의지함으로 나라가 부강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왕들보다 뛰어난 왕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가지 않아 바벨론을 배반했습니다(참조, 왕하24:20). 그리하여 그가 다스리는 유다나라는 다시 쇠약해져버렸고 그는 그가 배반한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받아 왕위에서 쫓겨났을 뿐만아니라 두눈이 뽑힌채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참조, 왕하25:7).
a.시드기야의 배반(왕하24:20)
b.시드기야때의 번영(겔17:6)
3) 홀이 될만한 가지가 없도다
이예언의 말씀은 시드기야이후로 더이상 유다나라에 왕이 없을것을 의미합니다. 시드기야에게 배반당한 경험이 있는 느부갓네살은 더이상 유다사람을 왕위에 앉히지 않고 유다를 속국으로 만들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언의 말씀대로 시드기야이후로는 다시는 다윗의 후손이 왕위에 앉는일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a.그달리야의 대리관할(왕하25:22)
b.바사국이 주재할때까지 노예가 됨(대하36:20)
3. 애가가 주는 교훈
1) 약한 방백은 반드시 심판을 받음
본문의 애가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백성을 바로 인도하고 백성을 평안케한 왕은 영광을 그만대에 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가운데 백성을 악으로 인도하고 강포를 행하여 나라를 멸망으로 가게하고 백성을 피폐케하는 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그위에서 쫓김을 당하며 욕된 자리에 앉게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즉 본문의 애가는 악한방백은 반드시 그죄행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교훈해줍니다.
a.시드기야의 고통(왕하25:7)
b.악한목자를 대적하심(겔34:10)
2) 악한방백은 그나라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림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악한지도자는 악을 행함으로 자신만 심판에 이를뿐 아니라 그밑에 있는 백성들도 피폐하게 만들며 그나라를 쇠악과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지도자는 한나라의 머리이기때문에 그가 악의 길을 걸으면 그 몸된 백성들도 악한길을 걷게되기 때문입니다.
a.들짐승의 밥이된 백성들(겔34:5)
b.의와 공평을 베풀어야할 상전들(골4:1)
3) 적용
한나라나 사외 또는 단체의 지도자란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지도자 된자는 자신의 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살고 그밑의 사람들도 살게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하나님의 은혜와 뜻이 있어 머리된 자들은 이사실을 기억하여 바른길을 걸어야할 것입니다.
a.하나님의 백성을 먹이는 목자(겔34:23)
b.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목자(요10:11)
결론
유다의 왕들중 대부분은, 특히 후기왕들은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함으로 심판을 받아 개인적으로 파멸에 이르고 나라는 멸망케 하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메카니즘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도자 되었을때 하나님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도자의 길을 걸아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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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신포도의 속담 18:1-9
때때로 악한속담이 선한예언을 낳는다.
(1) 이 악한속담은 포로로 사로잡혀있던 유대인들사이에 주로 쓰였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비난하는 것이었다. "너희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황무해진 현재 '이스라엘땅'에 대해 이속담을 사용하는구나."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리다고함은 어찜이뇨(2절). "우리가 조상들의 죄때문에 벌을 받는다면 그것은 마치 아비가 신포도를 먹은 것으로인해 아들의 이가 시린것만큼이나 불합리하나이다. 만일 사람이 어떤것을 잘못먹거나 잘못마신다면 단지 그사람만이 그것으로인해 고통을 겪어야하지 않겠나이까." 하나님께서는 종종 아비의 죄를 아들에게 돌리실 것을 말씀하셨었다. 특별히 우상숭배의 죄가 그러했는데 이는 그렇게함으로 그죄의 악함을 나타내고자 한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현재와 같은 파멸이 있게된 것은 므낫세와 그이전의 다른 여러왕들의 죄를 주목하셨기 때문이라고 선포하셨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것을 하나님을 비난하는 자료로 삼았다.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들은 신포도를 먹은 것이다. 그것은 죄인들의 이를 시게 한다. 즉 양심이 깨어나면 그것은 입맛을 형편없게 만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이들이 아비의 어리석음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자기들이 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당해야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항의하였다.
(2) 이속담에 대하여 정당함 답변이 주어진다. "네아비가 너보다 앞서 먹었던 그 신포도를 너도 먹었음을 네자신의 양심이 너에게 증거하리라. 그렇지않다면 네이가 시지 않았으리라." 만일 그들이 아비의 전철을 밟지않고 죄악의 양을 채우지 않는다면(마 23:32) 하나님께서는 아비의 죄때문에 아들을 벌하시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 아비의 악행때문에 재난을 당하는 것은 단지 현세에서일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당하는 자들에게 그환난이 선이 되게하실수 있다. 그러나 아들은 결코 아비의 죄때문에 영적이며 영원한 고통(본문에는 죽음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자신의 절대적인 주권을 주장하신다. 모든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4절). 만물을 조성하신 하나님은 특별한 의미에서 영혼의 아버지이시다. 이는, 모든사람의 영혼에는 그의 세상이 찍혀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처음 창조하실때도 형상을 찍으셨으며 그들이 거듭날때도 그러하셨다. 그는 사람의 속에 영혼을 만들어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비와 아들 모두에게 호의를 품고 계시며 아무에게도 고통을 주시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모든영혼에 자비를 베푸사 아무도 자신의 태만에 의하지 않고는 죽지않도록 해주셨다. 죄는 곧 영혼의 행위이므로 죄에 대한 형벌은 '영의 환난과 곤고'이다(롬 2:9). 사람이 만일 의로와서 법과 의를 따라...행할진대 그는...정녕 살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5,9절).
1) 의인은 제 2계명을 범하는 죄를 짓지않도록 자신을 주의깊게 지킨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는 '산에서 제물을 먹는'것조차 하지않았다. 즉 우상에게 드린 제물을 먹음으로 우상숭배자들과 교제하는 일을 결코 하지않았다(고전 10:20).
2) 의인은 제 7계명을 범하는 죄를 짓지않도록 자신을 주의깊게 지킨다. 그는 항상 육체의 욕망을 이성과 덕성으로 극복할 것이다.
3) 의인은 제 8계명을 범하는 죄를 짓지않도록 자신을 주의깊게 지킨다. 그는 거짓으로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억탈하지 아니한다'(7절). 의인은 이웃의 궁핍을 자기가 이익을 얻을기회로 삼지않으며 오히려 기꺼이 이웃들의 이익뿐 아니라 손해에도 동참할 것이다. 이것이 이웃에 대하여 의인이 취할 태도이다. 그리고 이같은 성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는 하나님께도 마찬가지로 행하여야 한다(9절). 이러한자가 의인이며 그는 정녕 살것이다.

Ⅱ. 악인의 재앙과 선인의 형통함 18:10-20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사람의 혈통이 상황을 변경시키지 못한다고 하는 심판의 일반적인 법칙을 보여주고 계시다.
(1) 경건한 부모가 악한자녀를 갖는경우와 악한부모가 경건한 자녀를 갖는경우가 종종 있다.
1) 악한사람은 경건한 아비의 자식이라할지라도 그의 죄악으로인하여 멸망할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그의 선한아비가 두려워하였던 온갖 죄에 빠진 것으로 가정되어 있다. 이러한 사람은 그가 비록 선한아비의 자식이라할지라도 멸망하게 될것이다.
2) 의인은 악한아비의 자식이라할지라도 복을 누리게될 것이다. 비록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다할지라도 자식이 그포도와 관계하지 않는다면 그는 아비때문에 결코 화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은혜를 받지못한 아비만이 그의 죄로인해 죽을것이며 은혜를 받은 아들은 결코 그 아비로인한 화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2) 선지자는 그들에게 "너희는 하나님께 큰과오를 범한 것이 아니냐"고 힐문한다. "이처럼 진상이 명백하도다.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천만에, 그렇지 않도다. 만일 누구든지 '법과 의를 행한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19절). 그러나 이백성이 이아비의 죄가운데로 나아가 법과 의를 행치 않았으므로 마땅히 그들자신의 죄로인한 고통을 받은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조상들이 자기들에게 남겨준 악한것들에 대해서는 불평할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에 대해서는 결코 부당한 것으로 불평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우리의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애 5:7). 악한가문에 저주가 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이키면 임하였던 저주가 그치게 되는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회개치않고 돌이키지 않는사람이 멸망가운데 처하게 되는것은 자업자득이다. 따라서 심판의 확실한 법칙이 반복된다. 범죄하는 그영혼은 죽을지라(20절). 죽음이외의 다른결론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재판관들에게 내리셨던 지시대로(신 24:16) 친히 행하실 것이다. 아들이 만일 아비의 전철을 밟지않는다면 아비의 죄로인해서 죽지 않으리니 영원히 죽지않을 것이다. 또한 아비역시 자기의 의무를 행하려 힘쓰며 죄를 방지한다면 아들의 죄로인해서 죽지않을 것이다. 지금은 구름이 덮여 어두운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의의심판이 드러나는 날에 '의인의 의'는 온세상 앞에서 '자기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즉 영원한 위로와 영광으로 옷입고 면류관을 쓰게될 것이다. 그리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되,' 사슬처럼, 짐처럼, 그리고 끝없는 웅덩이로 침전하는 납으로 만든 산처럼, 영원한 혼돈가운데로 돌아갈 것이다.

Ⅲ. 회개할 것을 권고함 18:21-29
여기에 하나님의 통치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또다른 심판의 법칙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안에 일어나는 변화에 따라서 상급을 주시기도 하고 형벌을 주시기도 하는것을 보여주신다. 이세상에 사는동안 우리는 항상 시험을 받는다. 그시험은 생명이 다할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1) 심판의 법칙은 여기서도 이전에 기록되었던 것만큼이나 확실히 설명되어 있다. 이내용이 전에 이어서(참조. 겔 3:18이하) 여기서도 두번에 걸쳐(21-24절, 26-28절) 재차 반복되고 있는이유는 그것이 생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1) 악한사람들에게 악에서 돌이키라고 하는 분명한 권고가 주어졌다. 21절, 27절에는 만일 악인이 돌이키면 정녕 살것이라는 보증이 주어져 있다. 회개의 첫단계는 '헤아리는' 것이다.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28절). 이러한 헤아림은 반드시 죄에 대한 혐오를 낳는다. 그렇다면 그는 들릴라나 림몬의 당에 대한 모든미련을 버리고 모든죄에서 돌이켜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과 그에 대한 의무로 돌이켜야 한다. 이와같이 죄에서부터 하나님께 돌이킨 자들은 '그영혼을 보전할 것이다'(27절). 회개하고 돌이킨 죄인들은 장래의 순종이 결코 과거의 불순종을 보상할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자비를 베풀고 용서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며 그의 기뻐하시는 뜻인 것이다(23절).
2) 의로운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로움에서 떠나지말라고 하는 분명한 경고가 주어졌다(24-26절).
(2) 이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정당성을 이스라엘족속의 타락한 양심에 호소하신다. 그들이 하나님께 던진 비난은 참람한 것이었다(25,29절). 하나님께서 그들과 가지신 쟁론은 매우 은혜로운 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는 이 참람한 자들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정죄하시기보다 오히려 깨닫게 하고 구원하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Ⅳ. 회개할 것을 촉구함 18:30-32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를 보라. 은혜의 날과 하나님의 인내의 날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께서는 결국 '각사람의 행한대로' 심판하실 것이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은혜를 베풀기위하여 기다리시고 회개를 촉구하시며 회개할경우 용서하시리라는 약속을 해주신다.

# 핵심
18:1-32
포로생활을 하고있는 백성에게, 그들이 겪는 고난은 그들 각개인의 죄로인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회개를 촉구하는 대목이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의(18:21,22)
성경에 언급된 의의 주요개념은 윤리적 차원의 올바름이나 정의를 초월한다. 그기준이 하나님의 의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속성을 지니고 계시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의를 삶속에 구현할 것을 요구하셨다(레 11:45). 이러한 의미에서 율법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지침서였다(신 6:20-25). 그러나 아무도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수 없으므로(시 143:2),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의 제물로 삼으사 누구든지 그구속의 은혜를 믿어 의롭다함을 얻게하신다(롬 3:28; 갈 2:20).

# 묵상
이스라엘땅에 대한 속담 ( 18:2 )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하는 이속담은, 아비의 죄악으로인해 아들이 심판당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것은 자신의 죄라기보다는 그들의 조상의 죄값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처사에 대해서 불공평하게 생각하여 불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녕 살게될 의인 ( 18:9 )
‘그는 의인이니 정녕 살리라’라는 이말씀은, 하나님의 율례를 좇으며 규례를 지켜 진실히 행하는 자는 의인으로 간주되어 현재의 심판과 미래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의 의인이란 믿음으로인해 의인으로 인정받은 자를 말합니다(행2:4; 롬1:17).
악한아들을 구원할수 없는 아비의 선 ( 18:10-20 )
사람은 각각 자기의 의로인해 구원받고 자기의 악으로인해서 멸망받습니다. 즉 인간이 개별적 존재이듯이 선악간의 행위에 대한 책임도 개별적으로 감당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부모는 믿음의 자녀를 만들어야 그자녀가 진정으로 축복받은 사람이 될수 있습니다. 또한 아비가 불의해도 그자녀가 아비의 불의에서 떠나 하나님의 법도대로 선한삶을 살아간다면 그는 분명코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반열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은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정녕 죽게될 죄인 ( 18:13 )
악을 행한 의인은 반드시 죽을것인데, 성경은 그것을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간다’는 식으로도 표현합니다.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한 댓가를 스스로가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죄가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아간의 죄는 공동체가 아이성전투에서 패배하게 했지만(공동체에 대한 영향), 아간의 죄때문에 죽은것은 그자신이었고, 그의 죄에 동참한 가족들역시 그들자신의 죄로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수7장).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 18:23 )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그행한 모든죄에서 돌이켜 떠나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15:20)고 하셨습니다.
공평치않은 이스라엘의 길 ( 18:25-30 )
하나님의 행동방식은 죄인을 죽이시고 의인은 살리시는 것이지만, 그러나 인간은 자기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은 섬기지않고 무익한 존재인 우상을 섬기므로 공평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기에 의인은 그행위의 선행으로 보전받고 악인은 그행위의 죄악때문에 멸망당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과 고난을 당할때 그책임을 하나님께 돌릴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신앙생활에 돌려야 마땅합니다.
새롭게할 마음과 영 ( 18:31, 32 )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거듭남을 뜻합니다. 우리인간은 타락했기때문에 자신의 능력으로는 선을 행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새마음과 새영을 주셔야 하나님의 의에 가까이 갈수 있습니다. 성도는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수 없음을 알아야합니다(요3:3-5).

# 해설
죄인에 대한 개별적 심판 ( 18 )
유다백성들은 그들이 열조의 죄악을 따라 열조들과 동일하게, 아니 그보다 더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았습니다(참조, 겔2:3-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은 죄가 없는데 조상이 지은죄로 말미암아 불공평한 하나님께 벌을 받고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리기위해 본장에서 그생각의 부당성을 설명하십니다.
1. 인간들의 편견과 오만
1) 죄는 전가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유다백성들은 조상들의 죄가 부당하게 그들에게 전가되었기때문에 그들이 부당한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께 범죄한 자는 그죄가 삼사대까지 이른다는 말씀(참조, 출20:5)에 근거한것 같습니다. 한편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유다백성들같이 다른사람의 죄와 의는 전가되기때문에 죄를 지은사람과 관련된 자는 그죄값을 물려받고 의로운 사람과 관련된 사람은 그의의 덕택을 본다고 믿고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a.아내의 악을 자손에게 보응하심(신34:7)
b.열조의 죄로 쇠잔함(레26:39)
2) 나는 무죄하다
다른사람의 죄가 전가되었기때문에 자신이 죄값을 넘겨받음으로 심판의 고통을 받는다는 생각의 배후에는 인간이 버릴수 없는 깊은병, 곧 교만의 병이라는 것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생각은 자신은 죄가 없다는 것을 암암리에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사람들의 마음한편에는 이런본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a.죄책의 전가(창3:12)
b.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요일1:8)
3) 나의 고난은 억울하다
자신은 무죄한데 다른사람의 죄값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진사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자신이 받는 고통은 부당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유다백성들도 그렇게 생각했거니와 그와같은 선상에 있는 모든사람들도 동일하게 자신들이 받는 고통은 부당하다고 내심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결코 무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의 고통을 달게 받지않고 불평합니다.
a.스스로 의롭게 여김(욥40:8)
b.죽기를 간구한 요나(욘4:3)
2. 하나님의 답변
1) 죄는 개인적이다
유다백성들과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여 죄는 전가된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비는 그자식을 위해 죽음을 당하지 아니하며 자식들은 그아비로 인하여 죽지않고 오직 각사람은 자기죄에 죽음을 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참조, 신24:16). 아비의 죄로인해 삼사대가 벌을 받는다는 출20:5절의 말씀은 본래 아비의 죄에서 그자녀들이 떠나지않으면 그자식들도 같은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a.각사람은 자기죄로 심판을 받음(신24:16)
b.아들의 이는 결코 시리지 않음(렘31:29)
2) 공의의 하나님은 반드시 범죄한자만 심판하신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은 다른사람의 죄를 인하여서가 아니라 오직 그사람의 죄를 인하여 그만을 심판하십니다. 이심판의 법칙은 도중에 변경된 것이 아니며 변경될것도 아닙니다. 이법은 영원한 것입니다. 각인은 오직 그가 지은 죄값을 따라 심판받습니다(참조, 계20:11-15).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a.행한대로 보응을 받음(사3:11)
b.자기행위를 따라 심판받음(계20:12)
3) 범죄한자라도 돌이켜 의를 행하면 구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각인을 개별적으로 심판하신다고해서 범죄한 모든사람이 반드시 심판받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연약한지라 범죄할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과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을 아시사 용서의 기회를 주십니다. 용서의 기회란 회개할때 허용됩니다. 죄인인 그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가 다시 의를 행할때 용서가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a.놀라운 용서(사1:18)
b.본래 범한죄가 기억되지 않음(겔33:16)
3. 신약적 접근
1) 모든인간은 죄인이다.
유다백성들만이 하나님께 범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인간은 하나의 예외도없이 하나님께 범죄한 죄인들입니다(참조, 롬3:10-18).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기죄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는 알지못한채 하나님이 부당하기때문에 자신들이 죄가운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심화되어 하나님은 없다는데까지 이릅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죄를 덮어버리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죄가 없어지고 그렇게되면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a.선을 행하는자가 없음(시14:3)
b.의인은 없음(롬3:10)
2) 모든인간은 심판아래 있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죄를 부정해도 인간의 죄는 실제적인 것이요 시체이기때문에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없어지지 않는 죄는 범죄한 인간에게 죄값을 물립니다. 죄값은 사망입니다(참조, 롬6:23). 사망은 육체의 사망에서 멈추지않고 영혼마저 다시 헤어나올수 없는 고통의 장소로 가는 둘째사망까지를 포함합니다(참조, 계20:11-15).
a.본질상 진노의 자녀(엡2:3)
b.반드시 있는 심판(히9:27)
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를 구원하신다
앞에서 하나님은 범죄한자가 회개하면 죄를 용서하심을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구약시대에 그것이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정적인 용서였지 죄의 본질에 대한 용서는 아니었습니다. 죄본질의 용서, 곧 속죄는 인간의 회개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속죄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본질의 해결이 가능합니다(참조, 히9:1-26).
a.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에 이름(요3:16)
b.다른이름이 없음(히9:27)
결론
모든인간은 하나님앞에 죄인입니다.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모든인간은 저주아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저주에서 벗어날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신 저주를 받아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과 구원사역을 믿고 그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안에서 의롭고 복된삶을 살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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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독수리와 포도나무의 비유 17:1-21
에스겔 선지자는 '수수께끼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베풀라'는 명령을 받았는데(2절), 이는 그들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즉시 그들에게 의미를 말해주는 것을 볼때 그사실을 알수가 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들로 그것을 더잘 기억하여 다른사람들에게 말해줄수 있도록 하기위해 수수께끼나 비유로 메시지를 전해야 했다. 사역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선을 행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고 일상적인 것을 설교로 이끌거나, 설교를 일상적인 담화로 엮을수 있어야 한다. 그는 이 수수께끼를 '패역한 족속에게' 해설하라는 명을 받았다(12절).
(1) 느부갓네살은 얼마전 '여고냐'로 불리우기도 하는 여호야긴을 사로잡아 갔다. 그때 여호야긴의 나이 18세로 예루살렘을 치리한지 3개월 되었을때이며 방백들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이다(왕하 24:12). 이것이 비유에서는 독수리가 백향목의 연한가지 끝을 꺾어 장사하는 땅, 즉 상고의 성읍으로 옯겨가는 것으로 나타났다(3,4절). 그것은 12절에 설명되어 있다. 즉 바벨론왕이 예루살렘왕을 사로잡아 가는데, 마치 둥지를 만들기위하여 가지를 꺾으려고 하는 가장 사나운 매를 그 연한가지가 감히 상대할수 없었던것 이상으로, 그는 감히 바벨론왕에게 저항할수가 없었다. 이비유에서 느부갓네살은 새들의 왕으로, 즉 다른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큰독수리'로 표현되어 있다. 그의 통치는 독수리의 길고 큰날개처럼 멀리까지 광대하게 뻗어있었다. 백성들의 수효는 중다하였다. 즉 수놓은 것처럼 '채색이 구비'하였던 것이다. 예루살렘은 레바논 곧 집들의 숲이며 왕가는 '백향목'이며, 여야긴은 그 '가지끝' 곧 '그 연한가지 끝'이다. 바벨론은 '장사하는 땅'이자 '상고의 성읍'이다.
(2) 바벨론왕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간뒤 그의 삼촌 시드기야를 대신 그자리에 앉혔다(5,6절). 그의 본래이름은 "여호와의 선물"이란 뜻을 가진 '맛다니야'인데, 느부갓네살이 시드기야로 바꾸었다. 시드기야는 "여호와의 의"라는 뜻이다. 이사람은 '그땅의 종자', 즉 바벨론 방백이 아닌 본토인이었다. 그는 '옥토'에 즉 아직 존재해있는 예루살렘에 심겨졌다. 바벨론왕은 그것을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물가에 심었던' 것이다. 그것은 습한 땅에서 매우 잘자라기는 하나 결코 당당한 나무로 자라지는 못한다. 그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이나무를 돌보았는데 그이유는 그것을 자라게 하기는 하되 너무 크게 자라지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그 왕족중에 하나를 택하여'(13절에 그사실이 나타나 있다) 만일 그가 계속 속국으로 남아있을경우 나라와 왕의 권세를 가지게 하겠다고 '언약을 세웠다.' 그로 맹세케하고. 즉 그로하여금 그자신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실한 속국이 될것을 맹세하게 하였다(대하 36:13). 또 그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갔나니. 이는 그언약의 수행으로 장수들을 잡아감으로 왕이 동맹을 깨뜨릴 유혹에 빠지지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보게된다(14절). 이는 나라를 낮추어. 즉 강력한 이웃나라에게는 두려움이 안되도록, '스스로 서지못하게' 하여 바벨론의 경쟁상대가 되지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언약만 지킨다면 그나라를 계속 존속케하려고 하였다. 죄가 유다왕가에 얼마나 슬픈변화를 가져왔는지 보라. 한때는 주변의 모든나라들이 유다의 족속이었던 때도 있었다.
(3) 시드기야가 바벨론왕에게 충성을 다하는동안은 잘지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온나라를 개혁시키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그의무를 지켰다면 그는 곧 이전의 위엄을 회복했을 것이다(6절). 이나무는 자라났다. 그리고 처음에는 '수양버들 가지처럼' 심겨졌다고 했으나 그것에 대한 설명은 이후에 거의 나타나있지 않고 오히려 '퍼져서 높지아니한 포도나무'가 되었으며 그과실은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아무 쓸모없는 높은 백향목이 되느니 높지아니할지라도 널리 퍼지는 포도나무가 되는것이 더낫다. 느부갓네살은 포도나무 가지가 자신을 향해있고 또 포도나무 덩굴이 벽을 타듯이 자신을 의지하고 있는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뿐만아니라 그는 이포도나무의 과실가운데서 자기몫을 취하였다. 또한 뿌리는 그의 발아래 있어서 그의 마음대로 하였다. 유대인들은 기뻐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는 그들이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를 내는' 자신들의 포도나무아래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악한백성에게 심판을 점차로 임하게하사 회개할 기회를 부여하시는 것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나라를 낮추셨는데 이는 혹시 그들이 겸손해질수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4) 시드기야는 자신이 잘지내고 있음을 깨닫지못하고 바벨론왕의 속국이 되는것을 참지못하여 애굽왕과 은밀히 동맹을 맺었다. 만일 그가 신실하게 행동하였더라면 그는 '아름다운 포도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애착을 두고 신뢰한 또다른 '큰독수리' 하나가 있었으니 곧 애굽왕이었다(7절). 이 두주권자, 즉 바벨론왕과 애굽왕은 맹금인 두 '큰독수리'였다. 이 애굽의 큰독수리는 '날개가 큰'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나라는 바벨론처럼 그렇게 광대한 영토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큰독수리는 '털이 많은'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즉 많은부와 많은군대를 가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실제로 '많은털'일뿐 그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드기야는 자유롭게 될것을 약속받으면서 자신을 애굽왕의 속국으로 만들었다. 이제 이 포도나무는 은밀히 애굽왕을 향하여 '뿌리를 발하였다.' 그리고 잠시후에 공개적으로 '그를 향하여 가지를' 뻗쳤다. 즉 그와 동맹맺기를 무척 원한다는 암시를 그에게 주었다. 이는 '큰물가'에 심기웠으므로 아무도움도 받을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심긴 두둑으로 물을 받기'위한 것이었다. 이것에 대해서 15절에 설명이 되어있다. 시드기야는 '그의 사자를 애굽에 보냄으로' 바벨론왕을 배반하였다. 즉 그는 바벨론왕과 싸우기위해 애굽왕에게 말과 군대를 구하였던 것이다.
(5)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가 바벨론왕을 배반한 것으로인해 그와 그의 나라에 비참한 멸망이 있을것을 경고하신다. 이것은 비유속에서 포도나무의 '뿌리가 빠지고 실과가 떨어지며 그잎사귀가 시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9,19절). 그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즉 완전히 마르게될 것이다. 그가 언약을 깨뜨리고도 그배반에 마땅한 형벌인 보복을 피할수 있을 것인가?
1) 그의 파멸은 하나님의 맹세에 의해 비준된다. 나 주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그가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였은즉...죽을 것이라(16절).
2) 그것은 그가 지은죄의 흉악성으로 미루어보아 정당한 것이다. 그는 자기를 왕으로 삼아주고 또자신을 쉽사리 포로로 잡아갈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백으로 삼아준 은인에 대해 배은망덕하였다. 또한 그는 거짓되이 행했다. 그가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였은즉(15,16,18,19절). 그가 바벨론왕에게 속해 있겠노라고 한 맹세는 엄숙한 맹세였다는것이 강조되고 있다. 그가 이미 손을 내어밀어(18절). 손을 내어미는 행위는 바벨론왕과 동맹한 자로서 또한 친구로서 마음을 연합한다는 증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가 내맹세를 업신여기고 내언약을 배반하였은즉(19절). 왕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한 것은 특별히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 것으로 간주된다(전 8:2). 맹세를 깨뜨린 시드기야의 죄는 하나님께서 그머리에 돌리실 죄이며(19절)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20절). 비록 느부갓네살이 거짓신들을 숭배하는 자이긴 했으나 그래도 참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경배하는 자가 언약을 파기했을때 그것을 보수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야말로 모든사람이 지켜야할 빚이기 때문이다. '맹세를 업신여기고 언약을 배반하는' 자는 '피하지 못할 것이다.'
3) 죄에 대한 형벌이 내려진다. 그가 바벨론왕을 배반하였으므로 바벨론왕은 그의 실질적인 정복자가 될것이다(16절). 하나님께서 친히 바벨론왕과 함께하셔서 그를 치실 것이다. 내그물을 그위에 베풀며(20절). 그는 애굽왕을 의지했으나 애굽왕은 아무 실질적인 도움도 주지못할 것이다. 바로가 그 큰군대와 무리로도 그전쟁에 그를 도와주지 못하리라(17절). 애굽군대가 접근해오자 갈대아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망을 풀고 물러갔으나 다시 그곳을 쳐서 점령하였다. 비록 시드기야가 그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정예군대를 데리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래도 그들은 모두 대적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도망할 것이다(21절). 이것은 성읍이 깨뜨려지며 모든군사가 도망하게 되었을때(렘52:7) 성취되었다.

Ⅱ. 메시야에 대한 약속 17:22-24
인간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약속을 무효로 만들지는 못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성취할 또다른 '다윗의 씨'를 찾으실 것이다.
(1) 다윗의 집은 다시 칭송을 받을 것이다. 즉 재가운데서 또다른 불사조가 일어날 것이다. 경고하는데 사용된 나무의 비유가 여기서는 약속으로 나타나고 있다(22,23절). 이약속은 다윗의 집안의 한가지인 스룹바벨이 포로상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의 머리가 되어 성읍과 성전을 재건하며 교회와 나라를 재건하게 되었을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메시야의 왕국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이었다(눅 1:32).
1)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의 집안을 회복시키는 일을 행하신다. 느부갓네살은 자기에게 의지하고 있는 다윗은 집안을 재건하려고 했었다(5절). 그러나 그가 심은 나무는 말라버렸고 뽑혀졌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자, 다음에는 내가 심으리라."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가지를 취하여 심으리라.
2) 다윗의 집안은 '그높은 새 가지끝에서' 꺾은 한 연한가지 가운데서 소생된다. 스룹바벨이 그러하였다. 그에게 기대할만한 것은 단지 '작은일의 날'(슥 4:10)이었으나 그앞에서 큰산들이 평지가 되었다. 우리주 예수는 '백향목 꼭대기의 높은가지'이다. 즉 뿌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으며 하늘에 가장 가까우시다. 이는 그의 나라가 이세상에 속한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새 가지끝에서' 취한바 되셨으며 '연한' 나무이시고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사 53:2, 한글개역에는 '줄기'로 되어있음-역주)이자 여호와께서 심으신 의의 가지이시다.
3) 이가지는 빼어난 산에(22절), 즉 '이스라엘의 높은산에'(23절) 심어진다. 그는 스룹바벨을 그곳으로 인도하여 개가를 부르게 하셨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예수를 일으키셔서 산중에 흩어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을 모으게 하시며 그를 거룩한산 시온에서 왕으로 세우시고 시온산에서부터 복음을, 즉 예루살렘에서부터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게 하셨다. 그때에 최초로 기독교회가 선것이다. 그보다 훨씬전에는 유대의 교회들이 있었다.
4) 거기서부터 그것은 멀리 또 널리 퍼지게 된다. 유대나라는 스룹바벨의 시대에 매우 미미하게 시작하였다. 즉 쉽게 뽑힐것 같은 연한가지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뿌리를 박고 퍼져서 얼마후에는 많은나라들, 즉 '각양새'가 그아래 깃들이게 되었다. 이방인들이 교회로 모이게된 사실이 곧 '각양새'가 와서 '그가지 그늘아래 거한다'로 표현된 것이다(참조. 단 4:21).
(2)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24절).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신 것과 사람들가운데 그의 나라를 세우신 것은, 만물이 무한한 지혜와 전능한 섭리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진리를 가장 확실히 설명해 준다. '들의 모든나무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될 것이다.
1) 하나님께서 낮추고 말리시고자 하시는 나무는 그렇게 될것이다.
2) 하나님께서 높이고 무성케하시고자 하는 나무는, 그것이 현재 아무리 낮고 말라있다 할지라도 그렇게 될것이다. 지금은 그처럼 거대하게 보이는 느부갓네살의 집은 멸절되고, 지금은 그처럼 보잘것없이 보이는 다윗의 집은 다시 흥왕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유대민족은 지금은 연약하게 보이나 강한나라가 될것이다. 사단의 나라는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하나 결국 무너질 것이며 그리스도의 나라는 업신여김을 받으나 다시 서게될 것이다.

# 핵심
17:1-24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유다왕 시드기야가 하나님대신 외세를 의지한 것이 멸망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밝힌다. 본장의 내용은 B.C. 597년 바벨론의 2차 침공사건과 시드기야가 바벨론과 맺은 조약을 파기하고 애굽에 도움을 청한결과 B.C. 586년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멸망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 묵상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 17:1-6 )
본문에서 ‘채색이 구비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독수리’는 고대근동의 여러나라를 정복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을 가리키며, 독수리가 끝을 꺾은 백향목의 연한가지는 느부갓네살이 잡아간 18세의 여호야긴왕을, 그리고 그가 옥토에 심은 포도나무는 바벨론이 세운 시드기야왕을 상징합니다. 이비유는 당시 이스라엘이 처한 정치적 상황뿐만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에서 나온것임을 알게 합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독수리와 같이 매서운 바벨론에게 대항하지 않아야만이 하나님의 포도원, 곧 이스라엘이 전멸당하지 않을것임을 누차 경고했습니다.
두번째 등장하는 독수리 ( 17:7-10 )
이것은 애굽왕을 가리킵니다. 시드기야는 주전 589년경 자신을 왕으로 세운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과 동맹을 맺었습니다(왕하24:20). 그러나 그독수리는 포도나무를 시들지않게 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동풍이 부딪힐때 곧 바벨론이 침입하면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당하게 됩니다. 동풍은 ‘시로코’로 불리는 건조한 열풍으로, 모래와 먼지를 몰고오기 때문에 나쁜결과를 가져오는 바람이었습니다. 이예언대로 바벨론과 싸운 갈그미스전쟁에서 애굽의 바로 호브라는 전사하고 예루살렘성은 곧 함락되었습니다.
유다의 멸망이 선포된 이유 ( 17:11-21 )
그것은 그들이 바벨론왕과 세운 언약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야는 애굽에 사신을 보내고 동맹을 맺으면서 바벨론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다는 멸망하고 말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과의 언약을 자신과의 언약이라고 지적하시는 것은, 시드기야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언약은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유다백성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뜨렸기에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피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연한가지와 각양새 ( 17:22-24 )
백향목꼭대기에서 높은가지를 취하여 심고, 그높은 새 가지끝에서 연한가지를 꺾어, 높고 빼어난 산에 심는다고 하는것은, 백향목으로 상징되는 다윗가문에서 그리스도가 연한가지, 곧 겸손하시고 신분이 낮은 출신으로 탄생하신다는 것을 예표합니다. 그 그리스도는 높고 빼어난산, 곧 시온산에서 오십니다. 그리고 때가되면 각양새 곧 열방이 그에게로 나아올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마13:22).

# 해설
독수리 비유 ( 17 )
겔15-18장은 세개의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의 범죄와 그 범죄로인한 멸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가지 비유란 포도나무 비유, 결혼비유, 독수리 비유입니다. 본장은 그 세가지 비유가운데 마지막 세번째 비유인 독수리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은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것과 그뒤에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것을 예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두 독수리와 포도나무
1) 처음 큰독수리와 포도나무
에스겔은 겔17:3-6절에서 큰독수리 한마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가지를 취하여 장사하는 땅으로 가져가고 그땅의 종자를 옥토에 심음으로 그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그 큰독수리에게 향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예언은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공격하여 점령한뒤 여호야긴을 포로로 끌고갈 것(참조, 왕하24:8-16)과 그뒤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워 유다가 풍요와 안정을 누리면서 바벨론을 섬길것을 의미합니다.
a.시드기야의 등극(왕하24:17)
b.여호야긴이 사로잡힘(대하36:10)
2) 두번째 큰독수리와 포도나무의 배반
처음 큰독수리 이외에 또다른 큰독수리가 예언에서 언급되는데 처음 큰독수리를 향하던 포도나무가 나중 큰독수리에게 뿌리를 향합니다. 이것은 바벨론을 섬기던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을 섬길것을 에언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시드기야는 그를 왕으로 세운 느부갓네살을 배반하고 애굽왕 바로와 화친하였습니다 (참조, 왕하24:20).
a.시드기야의 배반(왕하24:20)
b.애굽의 원군(렘37:5)
3) 배반한 포도나무의 쇠망
처음의 큰독수리를 배반하고 나중의 큰독수리에게 돌아서는 포도나무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배반한 그포도나무가 배반으로인해 시들어버리고 급기야 뽑히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말씀은 애굽과 화친한 유다의 국력이 쇠할뿐 아니라 급기야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함으로 유다나라가 지구상에서 사라져 없어질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시드기야를 끝으로 유다는 멸망하였습니다.
a.양식이 진함(왕하25:3)
b.백성의 죽음(대하36:17)
2. 언약의 중요성
1) 유다보존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 바벨론
에스겔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가운데 유다가 애굽을 의뢰하면 쇠퇴하고 바벨론을 의뢰하면 홍왕한다는 내용이 있음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을 의뢰하면 살고 애굽을 의뢰하면 죽는이유는 패악한 애굽보다 의로운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악을 징벌하시고 유다를 구할 도구로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참조, 겔29:18-20).
a.하나님의 종 느부갓네살(렘27:6)
b.하나님을 위해 수고한 느부갓네살(겔29:20)
2) 바벨른과의 언약파기는 하나님과의 언약파기
바벨론은 하나님의 도구였으므로 유다가 바벨론과 맺은언약은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따라서 시드기야가 유다의 왕으로서 바벨론왕 느부갓네살를 섬길것을 약속하고도 그약속을 어긴것은 하나님과 맺은약속을 어긴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볼때 시드기야와 유다백성이 그들의 바벨론과 맺은언약을 파기하고 애굽으로 돌이킨 것은 중대한 죄악이었습니다.
a.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 약속(대하36:13)
b.백성의 언약멸시(대하36:16)
3) 배반의 종말은 멸망
바벨론과의 약속파기 이전에도 유다백성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불법을 자행하였습니다. 그것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의 파기였습니다. 그런데 유다백성은 끝까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내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한편 이처럼 인간과 인간이 맺은언약도 하나님과 직접맺은 언약만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속에 대해서는 신의를 지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범죄하지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a.백성의 멸절(대하36:17)
b.나라를 잃음(대하36:20)
3. 약속된 메시야왕국에 대한 예언
1) 백향목 높은가지를 얻음
유다에 대한 심판예언이 있은뒤 하나님은 다시 유다의 회복을 예언하십니다. 그 예언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끊어진 높은가지(참조, 겔19:14)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통치를 할 다윗의 후손이 일어나(참조, 겔34:23)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메시야왕국에 대한 예언 그것입니다.
a.다윗의 후손(마1:1)
b.만왕의 왕(계19:16)
2) 이스라엘 높은산에 이름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높은산은 시온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 산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와 성전이 세워질 하나님의 성산을 지칭합니다(참조, 계14:1). 따라서 포로됨에서 회복될 것이라는 이예언의 말씀은 메시야가 하나님나라의 왕으로 세워지는날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유다와 및 모든성도는 그나라 백성이 될것입니다.
a.다윗의 성 시온(왕상8:1)
b.왕을 시온에 세움(시2:6)
3)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음
앞에서 유다라는 포도나무는 가지가 마르고 뽑힐것이 예언되었습니다. 그런데 회복의 날 그가지가 다시 무성하여 열매를 맺고 각양새가 그아래 거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민족들에 의해 채워지며(참조, 계7:9) 그들이 참된 풍요와 평강을 누리게될 것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예언은 이미 성취되었고(참조, 스1:1-11;눅17:21) 또 성취될 것입니다(참조, 계21:1-5).
a.끊치지 않은 실과(겔47:12)
b.풍성한 열매(계22:1-2)
결론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자기백성일지라도 그들이 범죄하면 징계하십니다. 그리고 징계뒤에 살길을 허락하십니다. 살길은 통상 신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주변사람들을 통해 제시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비밀을 깨달지 못할때 더 큰진노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비밀을 깨달아 하나님이 우리 죄인에게 주시는 생명의 길이 현실적으로 무엇인지 깨달아 그길을 걸어 생명에 이르는 지혜로운 백성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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