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구함 28:1-5
다윗은 아주 열심히 다음과 같은 점들을 기도한다.
(1) 그는 방금 곤경에 처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비롭게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기를 기도한다(1,2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지금 나는 주께서 때맞추어 오시어 구원하시지 않으면 곧 망하게 되어 다급해진 자처럼 부르짖나이다.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며' 그리고 주의 은총의 표증들을 내가 받지못한다면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으리이다'(즉 나는 죽어서 망해버린 자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후원자가 되시지않으면 나의 소망과 도움은 사라지고 말것입니다."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2절). 이는 그곳으로부터 평화의 응답을 받기위한 것이다. 휘장안에 있는 지성소가 여기서는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소'라고 불렸다. 거기에는 언약궤와 속죄소가 있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두그룹 사이에 거하시면서'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곳이였다(민 7:89). 그곳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우리는 우리의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고 손을 들어 그를 향해야 한다.
(2) 그는 자신이 악인의 운명을 면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성소에 나아가오니 '악인과 행악하는 자와 함께 나를 끌지마옵소서'(3절). 여호와여 결코 나를 멋대로하도록 내버려두지 마소서.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 할지라도 악인들이 나를 파멸시키기위해 사용하는 그런 속임수와 반역의 술책을 내가 쓰지않도록 하소서."
(3) 그는 행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내리기를 간구한다(4절). 저희의 행사와 그 행위의 악한대로 갚으시며. 이것은 격정이나 보복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원수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우리의 의무와 어긋나는 말도 아니다. 다만 그는 자신이 행악하는 자를 결코 좇지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을 뿐이다. 이미 잘못한 일을 회개로써 바로잡지 않는다면 반드시 셈할 날이 올 것이고,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악한 행실을 고집하는 각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보응할 것이다. 그것은 특별히 파괴자들의 파멸에 대한 예언이다. 저희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그러하오니 여호와여 저희에게 그 행사대로 갚으소서."
(4) 그는 그들이 여호와와 그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멸시하기때문에 파멸당하리라고 예언한다(5절).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것을 통하여 사람의 자녀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말씀하시는 그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세상과 저세상에서 '파괴하시고 건설치 아니하실' 것이다. 어째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의심하는가? 그것은 다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그안에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이 분명히 나타나는, 그의 손으로 지으신 것들을 생각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Ⅱ. 응답받은 성도의 감사와 찬송 28:6-9
(1)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는 믿음안에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라고 기도하였고(2절), 또 바로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음'을 감사한다(6절). 믿음안에서 기도하는 자들은 소망안에서 기뻐할 것이다. 우리는 기도로 얻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찬송을 드려야한다.
(2) 그는 하나님에 관계된 모든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자신을 격려한다. 이것이 평안을 얻는 방법이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오는 유익을 경험했다. 내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7절). "내가 여호와 곧 그의 능력과 약속을 의지한 것이 이제까지 헛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현재도 도움을 받고있고 전에도 종종 도움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가 기대한 도움을 정하신때에 주셨을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도 내가 그를 의지한 그 자체가 내게 도움을 주고 용기를 잃지않도록 나를 지켜주셨다"(27:13).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3) 그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소유하게 되는 그 유익을 기뻐한다(8절). 여호와는 저희의 힘이시오. "나의 힘이실뿐만 아니라 믿는 모든 자의 힘이시다." 하나님이 저희의 힘이시오 또 우리의 힘이시며 그리스도가 저희의 주시오 또 우리의 주시라는 이 사실은 바로 우리와 모든 성도들과의 영적연합을 나타낸다(고전 1:2).
(4)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짧지만 포괄적인 기도로 끝을 맺는다(9절).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사실 그들이 자기 백성이지만 자기 백성으로서가 아니라("내 백성을 구원하시고 내 산업에 복을 내리소서"라고 하지않는다) 주의 백성으로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주의 기업은 그의 백성들이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에게서 구원해주시기를 구한다.
2) 하나님께서 모든 선한 것으로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기를 구한다.
3) 하나님께서 '그들을 길러'주시기를 구한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르게 지도하시고 선을 위해 그들의 일을 다스리소서. 그들을 기르시고 다스리소서. 지혜와 이해심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할 목자와 통치자들을 그들위에 세우소서."
4)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원토록 들어'주시기를 구한다. 즉 그들을 모든 근심과 고난에서 드시고 또 그 시대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오는 모든 시대의 백성들에게 영원토록 이렇게 해주시기를 기도한다.

# 핵심
28:1-9
의인이 악인에게 고난받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개입을 요청하는 시편이다.

# 묵상
성도에게 가장 두려운 일 ( 28:1 )
불의가 득세하는 현세상에서 성도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외적인 핍박이나 환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귀를 막지 아니하시고 응답하신 사실을 특별히 기뻐하며 찬양했습니다. 성도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고난중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용기를 낼수 있습니다.
기도의 주체이신 하나님 ( 28:1 )
‘내게 귀를 막지마소서’라는 말에서 얻을수 있는 교훈은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기도의 응답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있다는 사실, 그리고 기도는 인간이 해결할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할수 있게 하는 방편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기도생활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마26:41).
하나님께 미리 감사한 다윗 ( 28:6-9 )
압살롬에게 쫓기던 다윗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미리 감사한 이유는, 다윗은 현재 도움을 간구하는 중이지만 그 도움을 이미받은 것처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참신앙은 미래의 것을 성취하여 고난가운데서도 현재 그것을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욥은 원인모를 극심한 재난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욥1:13-22).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30편 - study  (0) 2020.08.03
시편 29편 - study  (0) 2020.08.03
시편 27편 - study  (0) 2020.08.02
시편 26편 - study  (0) 2020.08.02
시편 25편 - study  (0) 2020.08.01

# Study

Ⅰ. 신앙의 용기와 만족 27:1-6
(1) 다윗은 살아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안에서 승리를 거두며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한다.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다윗의 신하들은 다윗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불렀다(삼하 21:17). 그리고 그는 실제로 타오르며 비추는 등불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달처럼 자기는 빛을 반사한 것뿐이라고 고백한다.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비추신 빛을 사람들에게 반사하였다는 것이다.
2) "그는 '나의 구원'이시니 나는 그 안에서 안전하고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다."
3) "그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라. 즉 그는 위험에 노출된 내 생명의 보호자이실뿐만 아니라 약한 내 생명의 힘이시다."
(2) 그는 불굴의 용기로 원수들을 이기고 승리한다. 어떠한 용기도 신앙의 용기만한 것은 없다. 하나님이 그를 위하시면 누가 그를 대적할수 있으리요?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그의 원수들이 '그의 살을 먹으려고' 왔으나, 즉 그렇게 마음먹고 또 성공할수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왔으나 그들은 넘어졌다. 그가 그들을 치므로 그들이 넘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족하여 넘어졌다.' 그들은 몹시 당황하고 의기소침해져서 계획을 계속 밀고 나갈수가 없었다. "그들의 수가 많아 '군대'를 이루었을지라도, 그들이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즉 한군대가 한사람을 대적할지라도 내 마음은 두렵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면 군대라도 우리를 해칠수 없다. 아니,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는 이 확신속에서 나는 안연할수 있다. "하나님은 나를 숨기시되 엔게디 요새(삼상 23:29)에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숨기시리라. 이제 내 머리가 내 원수들 위에 들릴 것이니라. 이는 그들의 창이 내 머리에 미치지 못하도록 할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배하도록 나를 높이는 것이니라."
(3) 그는 거룩한 의식들안에서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를 갖기를 진정으로 기도한다(4절).
1) 그가 바라는 것은 곧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집뜰에서 묵었는데 다윗은 자기가 그들중의 한사람이기를 바랐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기를 열망하나. 그곳 말고 달리 어디에 거해야 하겠는가? 우리가 찬송드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복이 되시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평생토록 우리의 할일로 삼아야 한다.
2) 그는 이 일을 몹시 갈망하였다. "이것은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고' 또 구하는 '한가지 일'이다." 만일 그가 하나님께 오직 한가지 일만을 구해야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것을 구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무엇보다도 이것을 마음에 두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그 전에서 사모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집에 거하려고 하였다. 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어느정도 알고있었다. 여호와의 거룩하심이 곧 그의 아름다움이다(110:3). 그의 선하심이 곧 그의 아름다움이었다(슥 9:17). 그의 모든 속성의 조화가 곧 그의 본성의 아름다움이다. 하나님의 집에서는 어떤 일도 그를 성가시게 굴지 못할 것이다. 다윗의 후손의 한사람인 요아스는 여호와의 집에서 6년동안 칼을 피해 숨어 목숨을 보존했을뿐만 아니라 왕위에 오르기위해 준비할수 있었다(왕하 11:3). 성전은 느헤미야에게도 도망가 숨기에 안전한 곳으로 여겨졌었다(느 6:10). 그러나 믿는 자들의 안전은 성전벽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안에 있고 그들의 즐거움도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다.

Ⅱ.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열망 27:7-14
다윗은 본문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나타낸다.
(1) 여러가지 기원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그의 열망을 나타낸다. 그가 지금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수 없을지라도 어디에 있든지간에 그는 기도로써 은혜의 보좌에 이르는 길을 찾을수 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을때' 곧 마음으로뿐만 아니라 열심있는 자로서 '소리로' 부르짖을때 들으소서." 우리가 기도하고 믿는다면 하나님은 자비롭게 들으시고 응답해주실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은혜의 보좌로 부르신 그 부르심을 생각하고 그것을 굳게 붙잡는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8절). 원문에는 '주에 대해 말하되'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먼저 그 말씀을 곰곰히 생각하고나서 몇번이고 되풀이하여 자신에게 교훈한다(그것은 교훈을 받는데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한번 말씀하시는 것을 두번 듣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의 얼굴을 찾으라 하셨을때에 묵상중에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라'라는 경건한 결심을 했었던 사실을 다시 돌이켜보고 있는 것이다. 주께서 손을 펴시면 모든 생물의 소원이 만족케될 것이다(145:16). 그러나 살아있는 영혼의 소원을 만족시키는 것은 오직 그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뿐이다(4:6,7). 그는 자신이 마땅히 하나님의 노여우심을 살만한 자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아무리 징계하셔도 좋으니 그의 면전에서 쫓아내지는 마시기를 간청한다. 나를 버리지말고 떠나지 마옵소서(9절). "내게서 주의 능력의 행사를 거두지 마소서. 만일 그러하시면 나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게 대한 주의 선의의 표증들을 거두지 마소서. 만일 그러하시면 내게 아무런 낙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11절). 즉 "나를 향하나 주의 섭리의 의미를 깨닫게하셔서 실수하지 않고 바른 길을 걷도록하시며 바른 길을 걸을때 주저하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걸을수 있도록 하소서." 그는 원수를 인하여, 혹은 (난외주의 해석대로)엎드려 그를 기다리는 자들을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받기를 구한다. 내 생명을 내 대적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12절). "여호와여 그들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하소서. 왜냐하면 그들이 노리는바는 내 생명이오며 내게는 그들의 양심을 다스리는 주의 능력외에는 그들을 막을 방벽이라곤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위증자가' 내 명예를 빼앗는것 이상을 원하여 '나를 치려'합니다. 그들은 '악을 토하는' 자이며 그들이 갈망하는 것은 곧 피인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뢰를 나타낸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10절). 즉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깝고 가장 친하기때문에 아주 당연히 도움을 기대할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내가 부모없는 불쌍한 고아와 같이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되었을때, 이미 죽었거나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곤경에 처해있는 나를 도울 힘이 없거나, 또는 내게 불친절하고 무관심하여 도우려고 하지않을지라도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산 자의 땅에서 여호와의 은혜를 보리라'는 것을 믿었다. 만일 그 은혜를 보지 못하였다면 그는 고난을 받는 가운데 용기를 잃고 말았을 것이다. 여호와의 은혜안에서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은 때가 되면 그 은혜를 보면서 행할 것이다. 산 자의 땅을 보리라는 것보다는 산 자의 땅에서 여호와의 은혜를 보리라는 것이 그가 받은 위로이다. 왜냐하면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는 육체적인 쾌락이 주는 어떤 것보다도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더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산(살아있는)자의 땅'이라고 불릴수 있는 곳은 하늘에 있다. 이 땅은 죽어가는 자의 땅이다 영생에 대한 소망만큼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재난가운데서도 용기를 잃지않도록 지켜주는 것은 없다. 그동안에 그는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14절). 원래의 의미는 '네 마음을 강하게 하시리라', 즉 네 영혼을 지켜주시리라는 뜻이다. "그 힘을 받으면서 믿음과 기도로 그리고 겸손히 그의 뜻을 받아들임으로써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네가 무엇을 하든지간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게으르지 말라." 여호와를 바라는 자들은 당연히 충분한 용기를 가질 것이다.

# 핵심
27:1-14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굳센믿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 묵상
환난중에도 담대한 다윗 ( 27:1-6 )
다윗은 평생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극한의 전쟁터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황(情況)속에서도 완벽하게 구출해주시는 하나님의 보호를 절실하게 체험했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환난중에도 담대할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다윗은 포학한 맹수에 비유되는(욥19:22) 대적들의 위협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앙망함으로 은혜를 입었던 것입니다.
반복되는 구원호소 ( 27:7 )
다윗이 구원을 확신하면서도 반복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한 이유는 일차적으로 그가 처한 상황이 현실적으로 환난중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윗은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반복하여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입니다.
부모와 여호와 하나님의 극단적인 대조 ( 27:10 )
다윗이 부모와 여호와 하나님을 극단적인 대조법으로 비교한 의도는 인간관계의 무상함과 하나님의 영속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는 인간적인 관계에서 가장 신뢰할수 있는 대상이지만, 하나님과의 절대 신뢰관계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는 단절될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된다는 사실을 성도는 알아야합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29편 - study  (0) 2020.08.03
시편 28편 - study  (0) 2020.08.02
시편 26편 - study  (0) 2020.08.02
시편 25편 - study  (0) 2020.08.01
시편 24편 - study  (0) 2020.08.01

# Study

Ⅰ. 하나님의 선한 판단을 의지함 26:1-5
이 시편은 다윗이 자기를 매우 나쁘게 말하고 그에게 많은 죄를 거짓되이 뒤집어 씌우는 사울에게 핍박을 받을때 지은 듯하다. 이 시편에서 그는 사람들에게서 비난을 받으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다. 그러면 이때 다윗이 행한 일을 살펴보라.
(1) 그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에 호소한다(1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즉 "주께서 나와 나를 비난하는 자 사이의 재판관이 되소서." 다윗은 자기의 죄에 대한 비난에는 결백을 주장할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죄악이 크므로 하나님께서 무한한 긍휼로 그를 용서치 아니하시면 자기는 파멸하고 만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위선자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들의 진실함에 증거자가 되신다는 사실은 진실한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
(2) 그는 하나님의 정확한 조사를 부탁한다(2절).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품질이 좋은지 나쁜지 금을 시험하듯이)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그는 가슴에 창이 달려있어서 아무나 마음을 들여다볼수 있기를 바랄만큼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신앙심을 갖고있었다.
(3) 그는 자신의 성실을 엄숙하게 주장한다(1절).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나의 대화는 나의 신앙고백과 일치하였고 대화의 한부분은 신앙고백의 일부분이었습니다." 그의 성실함의 증거들이 여호와를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신뢰하도록 그를 고무하였던 것이다. 요동치 아니하고. 신앙에 진실한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요동치아니할 것이다. 즉 그들은 신앙을 저버리지 아니할 것이다.
1) 그는 하나님과 그의 은혜에 끊임없이 관심을 두었다(3절).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규칙으로 삼아 스스로를 다스렸다. 내가 주의 진리중에 행하여. "주의 법에 따라서 행하였사오니 그 이유는 주의 법이 진리이기 때문이니이다."
2) 그는 헛된 어두움의 일들이나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과 전혀 교제를 갖지않았다(4,5절). 나쁜 무리를 피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정적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며 동시에 우리를 그가운데서 보존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내가 그들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그들과 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 위선자의 무리는 누구 못지않게 위험한 자들이므로 피해야할 자들이다. 행악자들은 자기들의 함정에 빠지도록 꾀어내려고 하는 목표물들에게 시치미를 떼고 호의를 지닌척 한다. "그들이 그럴듯하게 말할지라도 그들의 말을 믿지아니하리이다." 때때로 그가 나쁜 사람들과 사귀는 일을 피하지 못했을지라도 '그들과 동행하려고'는 하지않았고 그런 자들을 자신의 친구로 삼으려고도하지않았다. 라틴어 역본에는 '나는 악의를 품은 자들의 교회를 미워하였나이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선한 사람들이 협력하여 서로를 잘되게 하고 그만큼 더 선한 일을 할수 있게 하듯이 나쁜 사람들은 협력하여 서로를 못되게 하고 그만큼 더 악한 일을 하도록 만든다.

Ⅱ. 거룩한 의식가운데 기뻐함 26:6-12
(1) 다윗은 그의 성실함에 대한 또하나의 증거로서 그가 하나님의 거룩한 의식들에 대해 품은 진실한 애착심을 언급한다.
1) 그는 거룩한 의식들을 준비하는 일에 매우 신중하고 성실하였다. 내가 무죄하므로(무죄함가운데서) 손을 씻고. 우리는 거룩한 의식을 준비할때 위선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명하고 그 비난에 대해 우리의 무죄를 주장할(이것은 '손을 씻는' 행위로 표시되었다, 신 21:6)수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새롭게 회개함으로써 자신을 정결케하도록 애써야 한다.
2) 그는 그 의식에 참여하는 일에 매우 부지런하고 진지하였다. 주의 단에 두루다니며. 이 말은 제물이 드려지고 있는동안 제단주위를 돌았던 제사장들과 또 제물을 바치는 자들이 멀리서 마찬가지로 그와같이 행함으로써 거행되고 있는 의식에 대한 근면한 관심과 충실한 참여를 나타내었던 관습을 암시하고 있다.
3) 그는 하나님의 의식에 참여할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삼았다.
4) 그는 이 일을 기쁘게 행하였다. "여호와여 주는 '내가 주의 계신 집' 곧 주께서 그의 백성들가운데 자신의 거처로 삼으시기를 기뻐하시고 그들의 존경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신 장막, 즉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는줄을 아시나이다."
(2) 다윗은 자신의 완전함의 증거들을 제시하고는 자신이 악인의 운명에 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9,10절). 내 영혼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그들은 '살인자'로 피에 목마르고 피흘리는 해악을 끼치며 그들의 손에는 언제나 악독함이 있나이다. 비록 그들이 그들의 악함을 이를지라도(왜냐하면 '그 오른손에는' 그들이 공의를 굽게하기 위해서 받은 '뇌물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그들의 형편이 결코 더나이지지는 못할 것이니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세상을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아무소용이 없기' 때문이니이다." 그는 악인과 같은 운명에 처해질까 두려워한다.
(3) 다윗은 거룩하고 겸손한 확신을 가지고서 자신을 여호와의 은혜에 맡긴다(11,12절). "다른 사람들은 어찌할지라도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리이다." 그는 그와같이 행할수 있도록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위로를 얻을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내려달라고 기도한다. "내 원수들의 손에서 나를 구속하시고 죽든지 살든지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는 자신의 안전함을 기뻐한다. 내 발이 평탄한데 섰사오니. "나는 그곳에서 넘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곳에서 떨어지지도 않으리이다." 그는 비록 지금은 그가 공적이니 의식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그의 백성들의 회중가운데서 하나님을 송축할 기회를 얻게되리라고 기대한다.

# 핵심
26:1-12
하나님앞에서 일생동안 바른 삶을 살겠다는 결심이 구구절절이 배어있는 시편이다. 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좁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마 7:13,14)의 심령을 노래한 것이기도 하다.

# 묵상
‘완전하다’는 의미 ( 26:1 )
완전하다는 말은 하나님께 적용될때 무흠함을 가리키지만, 인생에게 적용될때는 절대성결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에 따라 사는 의인의 순수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때문에 본문에서 자신을 완전하다고 고백한 다윗의 표현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윤리적으로 악한 일을 행하는 원수들과 비교해 볼때 상대적으로 보다 완전한 자신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윗이 이처럼 자신의 완전함을 말하고 있는 것은 현재 당하고 있는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함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다윗이 교만한 마음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굳건한 믿음에 근거하여 이같이 기도했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다윗의 확신 ( 26:3 )
다윗이 험곡과 같은 환난에서 벗어나 평탄한 곳에 이르렀다고 확신할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가운데 확신을 얻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시31:22). 성도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이에 안전한 곳에 이르고, 응답받음으로인해 찬양합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28편 - study  (0) 2020.08.02
시편 27편 - study  (0) 2020.08.02
시편 25편 - study  (0) 2020.08.01
시편 24편 - study  (0) 2020.08.01
시편 23편 - study  (0) 2020.08.01

# Study

Ⅰ. 신앙고백과 기도 25:1-7
여기에는 다윗이 하나님을 열망하고 그를 의지한다는 고백이 나온다. 그는 종종 그와 같은 고백으로 시를 시작하곤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감동시키려는 것이다.
(1) 그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열망을 고백한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1절). 하나님을 예배할때 우리는 영혼을 들어 그를 우러러보아야 한다. 기도는 영혼이 하나님께 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옛부터 "네 마음을 세워라"는 말이 경건에 필요한 요구로 사용되어 왔었다.
(2) 그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의지를 고백한다(2절).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그의 양심은 그가 결코 자신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을 신뢰하지 않았다고 증거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신앙고백으로써 스스로 기뻐한다. "주께 대한 나의 신뢰로인해 '나도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일상적인 어떤 근심들때문에 나의 그 신뢰가 흔들리지 않게하소서. 요컨대 나로 내가 주를 의지하고 있는 점들에 대해 실망하지 않게하소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맡긴 것을 지키소서."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무고히'란 의미는 원래 헛되이라는 의미이다. 사람을 죄에 빠뜨리는 유혹이 약하면 약할수록 사람이 그로인해 떨어지게 되는 타락은 그만큼 더 심하다. 순전히 죄짓기위해서 죄를 짓는 자들이 가장 악한 죄인들이다.
(3) 그는 그가 마땅히 행해야할 길에 하나님의 지시를 구한다(4,5절). 그는 여기서 몇번씩이나 하나님께 자기를 가르쳐달라고 기도한다. 나를 가르치소서. "좋은 말로나 좋은 견해로가 아니라 '주의 도'로 '주의 길'로 '주의 진리'로, 곧 당신이 내게로 오시는 그 길-그 길은 '모두가 인자와 진리'이다-과 내가 당신을 향하여 걷는 그 길을 가르치소서."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나를 가르치소서. 의심스러운 경우들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키시려고 하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구원의 하나님이시니(5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면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분이 가르침도 주실 것이다.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종이 자기 주인말고 누구에게서 지시를 기다리며 누구를 종일 바라겠는가?
(4) 그는 자신의 어떤 공로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무궁한 긍휼하심에 호소한다(6절).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것을 기억하옵소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치소서. 왜냐하면 그것이 '영원부터 있었기' 때문입니다."
(5) 그는 자신의 죄를 사하여주실 것을 간구한다(7절).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치 마시고. "나를 변호해주는 당신의 긍휼하심을 기억하시고 나를 거스려 말하는 나의 죄를 기억치 마소서."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실때에는 '다시는 그것을 기억치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은 절대적인 사면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또 잊으신다.

Ⅱ. 하나님의 약속 25:8-14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약속과 다윗의 기도가 뒤섞여 나온다. 앞부분에는 기도가 많이 있었는데 뒷부분에서도 그것을 보게될 것이다. 그러나 이 중간 부분에서 그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묵상한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를 일러주는 가장 최선의 근거일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기도에 대해 주어지는 즉석의 응답이다. 약속에 의거하여 기도하도록 하라. 그러면 그 약속이 기도에 대한 응답인 것을 알수 있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기때문에 우리의 기도도 응답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약속이 중간에서 다소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이며 7절에 이어졌어야할 것처럼 보이는 한가지 기도를 보게 된다. 그것은 '나의 죄악을 사하소서'라는 기도이다. 그는 거듭 탄원함으로써 이 기원을 강조한다.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나의 죄악이 중대하기 때문이오니 만일 주의 무한한 긍휼하심이 개입하시어 용서치 아니하시면 나는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제 본문에 나타난 중요하고도 귀한 약속들을 살펴보라.
(1) 이 약속들은 비록 과거에는 죄인이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있는 자들에게 확실한 것이다. 그들은 비록 육신의 연약함으로인해 때때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지만 그러나 잘못을 범했을때는 언제고 진실하게 회개하고 항시 믿음으로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모심으로써 그 언약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자들이다. 그를 경외하고(12,14절) 그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경의를 가지고 그를 예배하는 자들은 그의 권위에 복종하고 그에게 즐거이 순종한다.
(2) 이 모든 약속을 확실하게 하는 두가지 사실이 있다.
1) 하나님의 완전하신 본성 : 우리는 말하는 사람의 인격을 보아서 그 약속을 평가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을수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선하시고 올바르시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그의 약속은 그와 매한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2) 그의 모든 언행이 완전하신 본성과 일치함(10절) : 여호와의 모든 길은(즉 그의 모든 약속과 섭리는) 인자와 진리로다. 그의 모든 길은 하나님 자신과 같이 선하고 올바르다.
(3) 약속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그들이 마땅히 행해야할 길에서 그들을 가르치고 지도하실 것이다. 이 사실은 그 자체가 다윗의 기도에 대한 한가지 답변이기때문에(4,5절) 매우 강조되어 있다.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내게 가르치소서. 우리는 현재상황에 적합한 약속에 우리의 생각을 온전히 집중시켜야 한다.
① 하나님은 '그 길에서 죄인들을 가르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인이어서 가르침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르침을 갈망할때 그는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 곧 충분한 근거가 있는 양심의 평안에 이르는 길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그들에게 가르쳐주실 것이다.
② '그는 온유한 자,' 즉 겸손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자, 배우기를 간절히 원하고 하나님의 지도를 따르기로 정직하게 결심하는 자를 '지도하실' 것이다. 그는 이들을 '공의로' 즉 기록된 말씀의 규칙으로 지도하실 것이다.
③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즉 하나님께서 택하시거나 선한 자가 택할 그 길을 저에게 가르치실 것이다. '그 택할 길'이란 말은 어떻게 생각하든 결국은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택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그들을 평안하게 만드실 것이다(13절).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어떤 역본에는 '선함중에 거한다'라고 되어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생각하는 자들은 마음이 평안할 것이다.
3) 하나님은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에게 유익한 것을 주실 것이다.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그들의 자녀들은 그들이 세상을 떠날때 그들의 기도의 대가로 더나은 것을 대접받을 것이다.
4) 하나님은 그들이 그 자신과의 은밀한 교제에 들어오도록 허락하실 것이다(14절).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 왔는지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요 7:17).

Ⅲ. 다윗의 탄원 25:15-22
다윗은 그가 이제까지 묵상해왔던 약속들에서 용기를 얻어 이 시편을 시작할때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를 열망한다는 신앙고백으로써 끝을 맺는다.
(1) 그는 그가 지금 처해있는 곤경을 하나님앞에 드러내 놓는다. 그의 발이 그물에 걸린채 뒤엉켜 완전히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그 곤경에서 벗어날수 없었다(15절).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16절). 다윗이 자신은 '외롭고 고독하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의 신하들이나 군사들을 의지하지 않고, 마치 그가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서는 도움이나 구원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의 근심이 많아서' 점점더 마음이 우울해지고 걱정스러워졌다(17절).
(2) 그는 이 곤경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음을 말한다(15절). 내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항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의 발은 오랫동안 그물에 걸려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고백을 되풀이한다(20절).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치말게 하소서. 또한 하나님을 바란다는 고백을 되풀이한다(21절). 내가 주를 바라오니.
(3) 그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간절히 간구한다.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즉 "여호와여, 모든 것을 사하소서 내 모든 죄악을 제거하소서." 그가 하나님께서 자기가 당하고있는 고통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시기만을 구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기뻐하시는대로 그것을 처리하소서." 그러나 자신의 죄에 대해서 그는 충분한 용서를 구하고 있다. 내게 돌이키사...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그는 매우 곤란중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에 관해 기도한다. 나를 곤란에서 이끌어내소서. 구원의 길이 열려있으나 아무데도 보이지 않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 길을 찾아내시거나 만들어 내실수 있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간청한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아무리 위대한 공적을 쌓은 사람들이라도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을 입지않았더라면 멸망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불행을 탄원하는데 그로인하여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게되었다. 그는 또한 원수들의 죄악에 대해 탄원한다. "여호와여 저들을 살펴보소서. 저들은 매우 잔인하오니 저들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는 자신의 성실함을 호소한다(21절). 비록 그가 하나님앞에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을지라도 그의 원수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잘못한 일이 없다고 단언한다. 악한시대에는 성실함이 최고의 안전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구속하소서. 다윗은 근심이 많았기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해주시기를 열심히 구했다. 그럴때에도 그는 하나님의 교회의 곤란을 잊지않는다.

# 핵심
25:1-22
전체적으로 개인적인 참회의 시지만, 마지막 구절은 공동체 전체에 적용되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각 구절의 첫자를 히브리어 알파벳순서에 맞추고 있는 시편이다.
친밀함(25:14)
(히, 소드) ‘비밀’, ‘은밀한 것’ 등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14절 상반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각을 털어놓으신다’는 뜻이다. 아울러 언약을 보이신다는 말씀은 언약을 반복해서 나타내신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생애가 이 구절의 정확한 예를 제공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생각을 숨기지 않으셨으며(창 18:17,18),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할때마다 언약을 재확인해 주시곤 했다(창 15,17장).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지않는 사람을 벗처럼 친밀하게 대하신다.

# 묵상
하나님께 용서를 간구한 다윗 ( 25:1-11 )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는데 있어서 가장 큰장애가 죄악임을 깨달았습니다(사50:1).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염치불구하고 믿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특히 그는 여호와의 자비와 공의에 기초하여 이같은 간구를 드리고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은총은 죄를 회개하는 자의 심령위에 풍성하게 내려집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27편 - study  (0) 2020.08.02
시편 26편 - study  (0) 2020.08.02
시편 24편 - study  (0) 2020.08.01
시편 23편 - study  (0) 2020.08.01
시편 22편 - study  (0) 2020.07.31

# Study

Ⅰ. 세상을 다스리는 섭리의 왕국 24:1,2
(1) 우리는 오직 하늘만 여호와의 것이고 이 땅은 우주만물 가운데 지극히 적고 하찮은 부분에 지나지 않기때문에 무시할수 있으며 또 하나님도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리도 주장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1)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땅을 주셨을때는 여전히 그땅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계시면서 단지 그들을 소작인으로 생각하시고 빌려주신 것뿐이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다 여호와의 것이로다(1절). 광산과 거기에서 나오는 자원들, 숲속의 모든 짐승들, 수많은 언덕에 노니는 가축들, 우리의 땅과 집, 그리고 이 땅위에 사람의 기술과 근면함으로 이루어진 모든 발전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것들이 은혜의 왕국안에서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사람의 영혼에는 헛되고 헛되며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섭리의 왕국에서는 그것들이 충만하다.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2) 이 땅에 사람의 거처하는 부분은 특별히 그의 것이다. 세계와 그중에 거하는 자. 우리 자신도 우리의 것이 아니며 우리의 몸도, 영혼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2) 땅은 명백한 권리에 의해서 여호와의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 터를 바다위에 세우셨고 강들 위에 건설하셨기' 때문이다(2절). 하나님은 땅을 만드시되 사람이 사용하기에 적합하도록 만드셨다. 모든 물질은 그의 것이다. 이는 그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것을 만들어내셨기 때문이다. 형상도 그의 것이다. 이는 그가 그의 영원한 지혜와 그 마음의 생각을 따라 그것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땅을 세우시고 확정하셨으며 존속하게 하신다. 그래서 한세대는 가고 한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는 것이다(전 1:4).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는 지속적인 창조이다(119:90).

Ⅱ. 교회를 다스리는 은혜의 왕국 24;3-6
이 시편 기자의 명상은 이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으로부터 갑자기 그 터가 바다위에도 강들 위에도 세워져있지 않은 또다른 세계의 중대한 사실들까지 확장된다.
(1) 이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다. 우리는 이곳에 잠시만 있을뿐이며 곧 이 자리를 떠나야 한다. 그때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인가?' 장차 천국에 오를 자 누구이며 그에 대한 전조로 지금 거룩한 율법안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있는 자 누구인가? 영원의 속성과 기원 그리고 그 불멸성을 알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을 보고서 만족한채로 앉아있지 않을 것이다. "높은 곳, 즉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그 산에 올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만나시는 그 거룩하고 행복한 곳에서 거할수 있기위해서는 나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2)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이러하다. 그것은 장차 은혜와 영광가운데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그의 백성들의 특성이 잘 말해준다. 그들은 추잡한 모든 죄악에서 자신을 지키는 자들이다. 그들의 '손은 깨끗하다'. 기도하기 위해 모은 손은 깨끗한 손임에 틀림없다. 그 손에는 부당한 소득의 얼룩이 묻어있지 않으며 그밖에 사람을 더럽히며 거룩한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다. 그들은 겉으로 선하게 보이는 것처럼 안으로도 선한 양심을 지닌 자들이다. 그들의 마음은 진실하고 믿음으로 정화되었으며 하나님의 형상과 뜻에 순응하며 청결하다(참조. 마 5:8). 그들은 이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쓰지않는, 즉 '마음을 헛된 데에다 돌리지'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정직하게 행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기도하는 백성이다(6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모든 시대마다 이같은 자들, 곧 이런 특성을 지닌 자들이 남아있다. 그들은 '대대에 주를 전할' 자들이다(22:30). 우리가 올라가야 하는 곳은 바로 여호와의 산이며 그 길은 오르막길이므로 우리는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들처럼 있는 힘을 다내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연합하여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찾는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이겨 '이스라엘'이라는 또다른 이름을 얻은 야곱이 하나님을 구하여 찾은 것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이다. 바울은 개심하자마자 곧 '제자들을 사귀었다'(행 9:26). 영어성경 난외주에는 6절에 '오,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이여'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어 그뜻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준다. 그들은 진실하게 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그들은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들 가운데서 그들이 받을 영적축복들이다. 그들이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은 바로 의이다(마 5:6). 그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구원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Ⅲ. 두 왕국을 다스리시는 영광의 왕 24:7-10
여기에서는 전에 한번 말한 것을 또한번 말하는데 이러한 반복은 시에서는 흔히 쓰는 표현법이다. 영광의 왕이 들어오시도록 몇번씩이나 요청되었다. 문들은 활짝 열릴 것이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8,10절).
(1) 여기에 묘사된 이 찬란한 입장은 다윗이 친 성막이나 솔로몬이 지은 성전으로 언약궤를 장엄하게 들여오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듯 싶다. 왜냐하면 성전을 짓기위한 재료를 다 준비하였을때 다윗은 당연히 그것을 봉헌하기 위한 시편도 준비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문들은 '영원한 문들'이라고 일컬어지는데 그 이유는 그 문들이 휘장에 불과한 성막의 문보다는 훨씬더 오래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안에서 이와같이 하나님을 환영해야 한다. 그 문들은 하나님앞에서 열려야 한다.
(2) 이 구절들은 속죄소가 달린 언약궤가 예표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이 입장을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시고 그곳에서 그가 환영받으시는 것에 적용해 볼수 있다. 그때 참으로 '영원한' 문들이라고 일컬어질수 있는 천국의 문들이 그를 위하여 열렸음에 틀림없다. 우리의 구속자께서는 그 문들이 닫힌 것을 보셨으나 그는 자기 피로써 죄를 속하사 권세를 지닌 자로서 '성소에 들어갈' 자격을 얻으셨다(히 9:12). 그는 단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들어갈 것을 요구하셨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를 위해 선구자로서 들어가시어 '믿는 모든 자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입장을 그리스도께서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사람들의 영혼에 들어가시므로 그 영혼으로 그의 성전이 되게 하시는 것에 적용해 볼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영혼에 임재하시는 것은 언약궤가 성전에 있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사람들의 영혼을 거룩하게 한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계 3:20). 그리스도께서 단순히 손님으로서 들어오도록 허락받으시는 것뿐만 아니라 정당한 주인으로서 그곳을 차지하실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는 그리스도께 마음의 문을 열어야할 필요가 있다. 복음은 우리에게 영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영혼에 들어오게 하시고 호산나를 부르며 그를 환영하라고 요구한다. '오시는 이를 찬송하라.'

# 핵심
24:1-10
전통적으로 예수님 승천일에 불렸던 시편이다. 다윗이 법궤를 시온성으로 옮기면서 불렀던 노래로 추정된다(참조, 대상 13:8).

# 묵상
영광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 ( 24:1-10 )
본문에서 시인 다윗은 여호와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강하고 능하신 하나님, 전쟁에 능하시고 영광의 왕이신 여호와이심을 노래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의 주인이시요,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항상 그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마음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26편 - study  (0) 2020.08.02
시편 25편 - study  (0) 2020.08.01
시편 23편 - study  (0) 2020.08.01
시편 22편 - study  (0) 2020.07.31
시편 21편 - study  (0) 2020.07.31

# Study

Ⅰ. 성도들의 찬미 23:1-6
(1) 하나님이 자기의 목자라는 사실로부터 시편 기자는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것중에 어느것도 부족하지 않다는 점을 추론해 낸다(1절). 다윗 자신이 목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젖양을 지키는 중에' 택함을 입었었다(78:70,71). 따라서 그는 선한 목자가 자기 양떼를 향하여 가지고있는 관심과 부드러운 애정에 대하여 경험적으로 잘알고 있었다. 그는 양떼들이 목자를 얼마나 필요로하는가를 기억하고, 한마리의 양을 구하기위하여 생명까지 무릅썼던 적을 회상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예로들면서 그는 자기 백성에 대하여 하나님의 돌보심을 입증하고 있다. 우리 구주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말씀하셨을때(요 10:11) 아마 이 구절을 인용하신 듯하다. 그는 양떼를 자기 우리로 들이시고 그들을 위해 온갖 것을 다 베풀어주신다. 우리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이 자기의 목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다윗은 과감하게도 이렇게 말할수가 있었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구절에는 표현된 것보다 더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다. 즉 단순히 '내가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내가 필요로하는 것은 모두 주어질 것이라. 또한 만일 내가 원하는 것을 받지못한다면 그것은 내게 합당하지 못하거나 혹은 내게 유익이 되지 못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정하신 때에 받게될 것이라고 결론지으리라"라는 의미도 담겨있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대하여 선한 목자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신다는 사실로부터 기자는 자기가 빠질지도 모르는 가장 큰위험이나 곤경에서라도 해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없다는 점을 추론하고 있다(2-4절). 하나님의 초장에 뛰노는 양떼와도 같이 축복받은 성도들을 보라.
1) 그들은 좋은 곳에 놓임받아 평안히 거하게 된다. 그가 나를 푸른초장에 누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로부터 이생의 평안함, 곧 아버지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일용할 양식을 받는 기쁨을 누린다. 이렇게 커다란 풍성함도 사악한 자들에게는 메마른 벌판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정욕을 만족시켜 주는 것들만 즐기는 자들이다. 반면에 일상적인 모든 기쁨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경건한 자들에게는, 비록 이세상에서는 지극히 적은 소유만 누린다할지라도 그것이 푸른초장이 된다(37:16;잠 15:16,17).
2) 그들은 좋은 곳으로 평안히 인도함받는다.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양육받는 자들은 그의 인도하심에 따라야만 한다. 그는 그들의 눈과 길과 심령을 자기 백성들에게 음식과 휴식을 제공하실뿐만 아니라 새로운 힘과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고여있어서 썩고 더러운 물가가 아니요, 급하게 굽이쳐 흐르는 물가도 아니요, 사나운 바다도 아닌 조용히 흐르는 물가로 인도하신다. 왜냐하면 조용하면서도 계속 흘러가는 물은 하나님께로 향하여 흘러가면서도 조용한 영혼에 가장 잘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의의 길이라 함은 의무의 길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길에서 그는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시며 양심과 섭리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의무를 지키는 길은 진정 기쁘고 즐거운 길인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셔서 걷게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그 길을 걷지못할 것이다.
3) 어떤것이 그들을 괴롭힐지라도 그들은 적절한 도움을 받는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한번 범죄하였을때에는 다윗의 마음이 자신을 괴롭혔고 또다른 죄를 범했을때에는 나단을 보내어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말해줌으로써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소생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죄에 빠질만한 고난을 주실지라도 그들이 계속 그 죄에 빠진채로 있게 하시지 않는다. "나의 평생에 예닐곱가지의 고통을 통하여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였으므로 나는 끝까지 주를 버리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내가 죽음의 위협속에 있을지라도, 즉 골짜기와 같이 깊은 위험의 한가운데에 있을지라도 나는 평안하도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을 가정하는 중에서도 두려움을 경감해주는 네개의 단어가 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것은 단지 사망의 '음침함'일 뿐이다(흠정역에는 '그림자'로 되어있다-역주). 그안에는 실질적인 해악이 없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독사나 칼이라하더라도 그림자만 갖고서는 물거나 죽일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로, 그것은 참으로 깊고 어둡고 더러운 음침한 골짜기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골짜기는 열매가 풍성하며, 마찬가지로 죽음 그 자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의 열매가 된다.
셋째로, 그것은 골짜기를 '다니는' 것에 불과하다. 즉 기분좋고 즐겁게 다니는 것이다. 그것은 골짜기를 통과해 지나가는 것이며 그 골짜기안에서는 아무도 잃어버려진바 되지않고 반대편의 향기로운 산에 모두 안전하게 도달할 것이다.
넷째로, 그 골짜기안에는 하나님의 자녀를 해칠 것이 전혀없다. 죽음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낼수 없다. 즉 죽음이 우리의 육신을 죽이기는 하나 우리의 영혼에는 손대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선한 목자는 단순히 지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골짜기너머로 자기 양떼를 보호하며 인도해 가실 것이다. 그의 존재는 양떼들에게 큰위안이 된다.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즉 목자들의 지팡이, 혹은 양들을 계수할때 양을 그 밑으로 통과시키는 막대기(레 27:32), 혹은 양들을 소요시키는 개들을 쫓기위해 목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를 예로들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신이 안위하신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3) 이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풍성한 선물로부터, 그의 자비가 한결같으심과 영원하심을 추론해낸다(5,6절). 주께서...내게 상을 베푸시고. "주께서 내게 영육간에 필요한 모든 것과 이생과 앞으로 영원히 꼭 필요한 것들을 베풀어 주셨나이다." 음식은 맛이 있고 상은 하나가득 베풀어져 있으며 잔은 가득 채워져 그가 배고프면 먹을수 있고 그가 목마르면 마실수 있다는 의미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것은 나와 내 친구들 모두에게 충분하나이다." 기름으로 머리에 바르셨으니. 그는 1절에서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하였지만 이제는 좀더 적극적으로 말하고 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이제 체험을 통하여 그의 소망은 솟아나고 그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올때 물을 내던 반석이 계속 그 진을 따라온 것처럼, 선하심과 인자하심도 자기를 따라 오리라는 확신을 가진 것이다. 그것은 그의 평생동안 따라올 것이며 심지어 마지막까지라도 그러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녕' 확신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평생토록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를 것이며 인생이 끝나는 날, 나는 더나은 세상으로 옮겨져서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이다.' 그곳은 거할 곳이 많은 위에 계신 내 아버지의 집이니이다."

# 핵심
23:1-6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선하심을 노래하는 시편으로서, 그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짧지만 깊이 있게 표현한 내용이다.
목자이신 하나님(23:1)
하나님을 목자에 비유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목자가 양떼와 같이 지내듯이 하나님도 자기 백성과 항상 함께하신다(사 40:11). 또한 양떼가 양식과 물을 얻고 사나운 맹수로부터 보호받기위해 전적으로 목자를 의지해야 하듯이 하나님의 백성도 그분께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목자로 비유한다(요 10:11,14). 이것은 하나님이 그 백성의 목자로 오실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였다(겔 34:7-16,23).

# 묵상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 23:4 )
본문에서 다윗은 여호와의 보호하심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라 고백합니다. 성도들가운데는 고난을 당할때 어찌할줄 모르고 낙심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럴때에는 모든 것을 선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의 삶입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床)을 베푸시리라’ ( 23:5 )
당시에는 귀빈이나 친한 벗에게 연회를 베풀고 향유를 머리에 발라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리라는 의미는, 곧 하나님께서 성도를 구원의 상에서 얼굴을 마주 대하시며 음식을 먹도록 역사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고전11:25).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25편 - study  (0) 2020.08.01
시편 24편 - study  (0) 2020.08.01
시편 22편 - study  (0) 2020.07.31
시편 21편 - study  (0) 2020.07.31
시편 20편 - study  (0) 2020.07.31

# Study

Ⅰ. 환난에 대한 불평 22:1-10
1. 하나님이 물러가신 것에 대한 슬픈 불평(1,2)
(1) 이것은 다윗에게 혹은 다른 하나님의 자녀에게 적용될수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으므로 도움도 받지못하고 응답도 받지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면서 밤낮으로 계속하여 진정으로 자비로운 응답을 간구하며 부르짖는다. 영적인 버림받음은 성도에게 가장 혹심한 고난이다.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병들고 가난하게 하시나이까?"라고 부르짖는 것은 불만과 속됨을 느끼게 할 것이지만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그의 행복을 묶어두려는 표현이다. 만일 확실한 신앙을 원한다면, 우리는 믿음에 집착하여 살아가야 한다. "하여튼, 하나님은 선하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가 나를 죽이신다 할지라도 나는 그를 의지하리이다."
(2)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께 적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불평의 첫마디는 그가 십자가에 달렸을때 하나님앞에 이렇게 토로했기 때문이다(마 27:46). 어떤사람들은 그가 소리내어 말하지는 않았다해도 속으로 시편 전체를 반복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는 그의 고난가운데서 아버지께 열심히 부르짖었다. 낮에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었고, 밤에 동산에서 고민하고 계시면서 부르짖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죄를 짊어지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는 죄에 대한 진노하심과 불쾌하심을 그에게 부과하셨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하셨다'(사 53:10).
2. 지금까지 받은 격려(3-5)
주는 거룩하시나이다. "주님의 섭리중 어떤점에 있어서도 불의하거나 거짓되거나 불친절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주의 환난당하는 백성중에 구원하시기위해 즉시 찾아오시지 않는다할지라도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과 맺은 계약에 신실하시며, 압제자들의 불의를 지지하지 않으시니이다"(합 1:13). 이스라엘의 찬송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님은 주의 영광과 은혜를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시며, 주의 백성들이 찬송으로 주께 드리는 성소에서 주의 백성과 특별히 함께 계시기를 즐겨하시나이다. 거기에서 주는 언제나 경외받으실 준비가 되어 계시며 회막에 대해 '여기는 나의 영원한 안식처이다'라고 말씀하셨나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잠시동안 귀머거리가 되신 것처럼 보인다할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찬양을 매우 기뻐하심으로 적당한때에 그들의 생각을 바뀌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바랄지어다. 나는 그를 찬양하리라." 다윗은 이전 세대에 살던 성도들의 믿음과 기도로써 유익을 얻었던 경험을 통해 위로를 받을 것이다(4,5절).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주께 부르짖어...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주께서는 합당한때에 나를 건지실 것이나이다. 이는 주께 소망을 둔 사람은 아무도 그의 소망으로인해 수치를 당한 적이 없으며, 주를 찾은 자 중에 아무도 헛되이 주를 찾았던 자가 없기 때문이니이다. 그리고 주는 여전히 동일하시나이다."
3. 또다른 근심에서 생겨난 불평(6-8)
그것은 사람들의 멸시와 비난이다. 이 불평은 전에 하나님이 물러가셨을때와 같이 결코 비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실한 영혼을 아프게 했던 것처럼, 이것도 매우 여린 고결한 영혼에게 상처를 주고있다. 사람은 기껏해야 벌레에 불과하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만일 그가 벌레라고 자처하지 않았다면 그가 벌레처럼 짓밟힘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악인, 불경스러운 자, 안식일을 범한 자, 귀신들의 왕과 동행한 자로서 비난받았다. 또한 그는 멸시당했다. 즉 천하고 하찮은 사람으로, 주목할만한 가치가 없는 자로, 자기 나라에서 명성이 없는 자로, 가난한 기능공의 혈통을 지닌 자로 멸시당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자는 하층민들 뿐이며, 관원이나 바리새인들은 없었다. 그는 어리석은 자라고 조롱받았고 다른 사람들을 속일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는 자라고 조롱당하였다. 다윗은 때때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이유로 조소를 당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서 이것은 문자그대로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하나이다(8절).
4. 이 불평에 대해 받은 격려(9,10)
사람들은 나를 멸시하나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셨나이다.' 우리에게 가르치기위해서 다윗과 다른 선한 사람들은 앞에서 말했듯이(4절) 하나님이 그들의 열조의 하나님이실뿐만 아니라, 그들이 태어남으로부터 그들을 돌보기 시작하신 그들의 요람의 하나님이시었다고 스스로 격려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결코 버리지않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진다. 도움받지 못하고 쓸모없이 무력한 상태에 있는 우리를 위하여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섬길수 있도록 우리를 양육시키시고서 우리를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일찍이 어떻게 베풀어졌는가를 보라.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만일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거기서 죽었거나 태어날때에 질식당했을 것이다. 내 모친의 젖을 먹을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나를 위하여 영양을 공급해주시고 내가 당할 위험에서 나를 보호하셨나이다. 그것이 일생동안 주님께 나의 소망을 두게 하셨나이다." 태의 축복이 이루어진 것처럼 모친의 젖을 먹는 축복은 우리 전 삶의 축복에 대한 증거가 된다. 우리를 먹이어 살리신 그분은 결코 우리를 굶주리게 하시지 않을 것이다(욥 3:12). 내가 날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아마도 그것은 팔일째에 할례를 가리킬 것이다. 그때 그는 그의 양친에 의해 계약되어진 그의 하나님께 맡겨졌다. 왜냐하면 할례는 계약보증의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용기를 주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모두에게 선하게 베풀어주셨으며, 끊임없이 보호하시고 공급하셨다는 것을 확신할수 있다.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10절). "내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주는 나를 위하여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고 유익하게 나를 돌보셨나이다. 이세상에 나올때부터 오늘날까지 그리하셨나이다." 이 사실은 우리 주 예수에게 적용시킬수 있다. 즉,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분의 성육신과 탄생을 돌보셨던 하나님의 섭리에 적용시켜볼수 있다. 다시말해서 그는 마굿간에 태어나서 구유에 누우시고, 헤롯의 악의에 의해 곧 애굽으로 도망하게 되었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던 것이다.

Ⅱ. 원망과 간구 22:11-21
(1)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기록되어 있다. 다윗은 실제로 자주 고난을 당했으며 대적들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여기에 세부적으로 열거된 대부분의 특별한 상황들은 결코 다윗에 대한 사실들이 아니다. 따라서 심한 굴욕을 당하신 그리스도께 적용되어져야 한다.
1) 그는 자기 친구들에게 버림받는다. "환난과 고통이 가깝고 도울 자 옹호할 자 없나이다"(11절). 그의 모든 제자들은 그를 버리고 도망했기때문에 그는 혼자 포도주틀을 밟았다.
2) 그는 그의 대적들에게 모욕당하고 에워싸임을 당하였다. 대적들의 힘과 맹렬함은 바산의 힘센 소인 황소에 비유되었다(12절). 그러한 자들이 그리스도를 박해한 대제사장과 장로들이었다. 그들이 또 더럽고 탐욕스러우며 쓰러뜨리기에 지칠줄 모르는 개에 비유되었다(16절). 그를 해하려고 악한 것을 모의하는 무리가 있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잡으려는 방법과 수단을 모의하기위해 공회에 앉은 대제사장들이었다.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16절). 그들은 거대하고 위협적이다(13절). "내게 그 입을 벌림이 나를 삼키려고 한다는 것을 보여주나이다."
3) 그는 십자가에 못박힌다. 유대인들 중에서는 결코 사용되지 않았지만 그의 죽음에 대한 방법이 묘사되었다. 악한 무리가...내 수족을 찔렀나이다(16절). "저주받은 나무에 내 수족이 못박혔나이다."
4) 그는 죽어가고 있다(14,15절).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그는 고통과 고뇌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내마음은 촛밀같아서 내속에서 녹았으며(14절). 내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같고 내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15절). "최소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기위해 나는 이제 막 음부로 떨어지려 하나이다." 죄인의 생명이 상실되었으므로 희생제물이 그것을 대속해야 했다. 아담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는 '너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고 표현되었다. 죽음에 복종한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유사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주께서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5) 그는 벗김을 당하였다. 벗김을 당하는 수치는 직접적인 죄의 결과였다. 따라서 우리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때 벗김을 당하신 것은 그의 의의 두루마기를 우리에게 입히우시고 우리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나지않도록 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수 있다.
① 이와같이 벌거벗겨졌을때 그의 몸은 어떻게 보였는가? 내가 내 모든 뼈를 셀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17절). "지나가는 구경꾼들과 행인들이 나의 뼈를 보고 놀라며, 나를 동정하는 대신에 이러한 비참한 광경을 보고 즐거워하나이다."
② 그들이 그에게서 취한 옷으로 무엇을 했는가? 저희가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18절). "저희가 각 군병의 몫으로 나의 옷을 나누며, 솔기없는 옷이라고 제비뽑나이다." 이러한 상황은 완전히 성취되었다(요 19:23,24).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커다란 예가 전혀 못되었다 할지라도, 이것은 그에 관해서 나타난 성경이 성취된 중요한 일례이다. 이와같이 성경이 기록된대로 그리스도는 고난당하신 것이다.
(2) 죽음의 고통가운데 있는 그리스도는 그 잔이 그에게서 지나가기를 기도하였다. 여기에 있는 다윗의 기도가 그것의 모형이 된다. 그는 하나님을 '나의 힘'이라고 부르고 있다(19절).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11절).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19절). "모든 사람이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하더라도 여호와여 주는 그리하지 마옵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히 5:7), 그로하여금 그의 일을 완성할수 있게 하셨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그의 영혼을 내 유일한 것이라 부른다. '내 영혼은 내 유일한 것이니이다.' "내가 돌볼 것은 오직 유일한 영혼이니, 만일 내가 그것을 소홀히 한다면 나는 더 큰수치를 당할 것이니이다." 그는 칼에서 구원받기를 기도한다. 즉 사방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화염검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여호와여 그것에서 내 영혼을 구하소서. 비록 내가 내 생명을 잃는다할지라도 내게서 주의 사랑을 잃지않도록 하소서. 나를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이것들은 옛적 사단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호와여 나를 그 공포에 압도되지않도록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21절). "내 기도에 응락하여 나를 그에게서 구원하셨나이다." 우리가 괴로움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과연 들소뿔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찢기우지않도록 사자의 입에서 우리가 구원받을 것이라는 소망으로 용기를 갖으라. 이 그리스도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가 비록 고난당하였지만 아버지께서 그를 사흘만에 죽음의 티끌에서 일으키셨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그를 십자가에서 내려오도록 하신 것보다도 더 큰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그 이유는 그를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했다면 그의 사업을 못하게 방해한 것이 되지만, 부활은 그것을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Ⅲ. 하나님께 대한 노래 22:22-31
불평의 첫마디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에 의해 발설되어진 것처럼, 승리의 첫마디도 그에 의해 표현되었다(히 2:12). 이것은 자신의 말인 것이 분명하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22절).
여기에는 그리스도께서 고난가운데 속죄하시고 승리하신 것에 대해 다섯가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 그는 세상에 교회를 가지실 것이다. 그가 그 씨를 보게될 것이라는 것이 여기에 암시되어 있다(사 53:10). 하나님의 성호를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또한 명확하고 오류가 없는 영원한 복음을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에게로 나아올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나아갈 것이다. 이와같이 부름받은 자들은 그의 형제로서 그와 매우 가깝고 귀중한 관계에 들어가게될 것이다. 믿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거룩하게 함을 입은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이다(히 2:11). 이러한 그의 형제들은 큰회중에 연합될 것이다. 그러한 회중이 우주적인 교회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지명된 전체 가족, 즉 모든 자녀들은 흩어진 곳에서 모여 하나가 될 것이다(요 11:52;엡 1:10). 또한 그들은 집단의 일원인 좀더 작은 모임으로 연합될 것이다. 이들은 야곱과 이스라엘의 자손으로 여겨질 것이며(23절), 비록 이방인들이라할지라도 그들에게 아브라함의 축복이 임할 것이다(갈 3:14). 복음교회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불려진다(갈 6:16).
(2) 하나님은 그 교회로 말미암아 그안에서 크게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는 쾌히 다음과 같이 내다본다.
1) 하나님은 그에게 모일 교회에 의하여 영광받으실 것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찬양할 것이며(23절), 실제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참조. 118:2-4;135:19,20).
2) 하나님은 구속자와 그의 사업안에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내가 주를 교회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다(히 2:12). 우리의 모든 찬양들은 구속사업에 집중되어야 한다.
(3) 겸손하고 은혜로운 모든 영혼들은 그분안에서 충만한 만족과 행복을 받을 것이다(26절). 많이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많은 감사가 있을 것이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찾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며 그 소망가운데서 그를 찾는동안도 그를 찬양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헌신된 영혼들은 항상 그와 함께 행복할 것이다.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4)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와 함께 사람들중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모든 구석에까지 미칠 것이다(27,28절). 오랫동안 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을 고백하는 백성이었지만, 이제는 나누었던 담이 무너지고 이방인들이 세상 사방끝으로부터 교회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이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예언되었다. 그들이 회심할 것이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진지한 반성은 참된 전향의 첫단계가 되며 훌륭한 단계이다. 우리는 충분히 자신을 고려한 끝에 돌아서야 한다. 탕자는 먼저 본심으로 되돌아 온후 그의 아버지께로 갔다.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온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를 섬기는 무리속에 들어가도록 허락될 것이다. '저희가 주앞에 경배하리니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재물을 드림이라'(말 1:11;사 66:23). 열방의 모든 족속이 하나님께 경배해야 하는 이유는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이다(28절).
1) 자연의 왕국은 주 여호와의 것이며, 그의 섭리가 열국을 다스리신다.
2) 은혜의 왕국은 주 그리스도의 것이며, 중재자이신 그가 열국들의 통치자로 임명되었다. 또한 그는 그의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 그리스도안에서는 높은 자와 낮은 자, 부한 자와 간난한 자, 속박된 자와 자유로운 자들이 모두 만나게 된다. 그리스도는 많은 위대한 자들로부터 경의를 받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가난한 자도 그의 복음을 받을 것이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어' "먼지가운데 앉아 자기 영혼을 살릴수 없는 자(113:7)도 거름 무더기에서 일으키시므로, 가난한 자의 왕이 되는 것을 그의 영광으로 여기는 주 예수앞에 절하리로다"(72:12). 우리 자신의 영혼을 살아있게 할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우리의 지혜이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을 영원히 살도록 구원하시고 지키실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 의탁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이다.
(5) 그리스도의 교회나 그와 함께 사람들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왕국은 대대로 끝까지 계속될 것이다.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30절). 상속을 보존하기에 충분한 남은 자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그는 이전세대의 사람들에게 대하셨던 것과 같이 후세대의 그들에게도 대해주실 것이다. 그들은 와서 그들의 날에 일어나서, 지나간 세대의 덕을 지킬뿐만 아니라 장차올 세대에서 영혼들의 행복에 기여할 것이다. 그들은 그 세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것이다.
이것을 찬양함에 있어서 우리는 모든 이름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의 이름안에서 개가를 불러야하며, 다른사람들이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에서 그를 찬송하고 있을때, 땅에서도 그를 찬송하는 백성들이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 핵심
22:1-31
본 시편은 예수님의 수난을 예언한 시로서 신약성경에 많이 언급되는 내용이다(마 27:35,39,43,46; 요 19:23,24,28; 히 2:12). 표제의 아얠렛샤할은 ‘새벽의 도움’이란 뜻의 곡조명인것 같다.
바산의 힘센 소(22:12)
바산은 길르앗 북쪽지역에 속했던 곳으로, 비옥한 목초지로 유명했다. 이곳에서 자라는 가축들은 힘이 세고 몸집이 컸다. 본문은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이들을 상징하는 말로도 쓰였다(암 4:1). 여기서도 의인을 박해하는 악인을 상징한다.

# 묵상
메시야 예언시의 내용 ( 22:1-31 )
본문은 다윗 개인의 고통체험을 바탕으로하여 택한 백성들의 대속을 위하여 십자가형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담고 있습니다. 다윗의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삶에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예시되었는데, 이 예언은 약 1000년후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다윗의 비유 ( 22:3-18 )
다윗이 대적들을 황소, 사자, 개 등으로 비유한 이유는 대적들의 잔인하고 야비한 성격때문입니다. 다윗은 이 비유를 통해 대적들이 사탄의 도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암3:4).
용기있게 기도할수 있는 이유 ( 22:3-21 )
다윗이 환난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용기있게 기도할수 있었던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보호하시므로 찬송을 받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3절). 하나님은 다윗의 조상들이 간구했던 기도가 부끄럽지않도록 응답하셨습니다(4, 5절). 그래서 다윗도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이 조롱과 멸시를 받자 기도했던 것입니다(6-8절). 또한 다윗은 태어날때부터 하나님께 택함받은 하나님의 종임을 확신했기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할수 있었습니다(9-11절). 나아가 대적이 강한데 비해 자신은 매우 연약하고 비참한 상태에 있었기때문에 기도를 하지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성도는 주변상황이 어렵다하더라도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고난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비밀 ( 22:22-31 )
하나님께서는 생명이 끊어질정도로 극심한 환난과 무수한 역경속에서도 다윗이 하나님의 구원은총을 찬미할수 있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이처럼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지는 구원역사와 하나님나라의 완성은 어떠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24편 - study  (0) 2020.08.01
시편 23편 - study  (0) 2020.08.01
시편 21편 - study  (0) 2020.07.31
시편 20편 - study  (0) 2020.07.31
시편 19편 - study  (0) 2020.07.31

# Study

Ⅰ. 왕의 성공과 영예에 대한 축하 21:1-6
다윗은 본문에서 자신의 기쁨이 자기의 군대의 힘이나 성공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과 구원에 있었던 것임을 고백한다. 그는 또한 신하들에게 자기와 함께 기뻐하게 하고 그가 얻은 모든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지시하고 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왕의 기쁨에 대해 그에게 축하한다. "왕이 즐거워하시니 우리도 그러하니이다." 그들은 그들의 왕을 즐겁게 한 것들에 대해 하나님께 모든 찬미를 드리고 있다. 주께서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2절).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3절). 여기서 시편 기자는 이 복들이 앞으로 자신이 가게될 길로 주어진 것이라고 간주한다.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빨리 더풍성하게 올때, 우리가 기도하거나 준비하기도 전에 주어질때, 더구나 우리가 그 반대의 경우를 두려워하고 있을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우리를 앞지르셨다고 진정 말할수 있을 것이다.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또한 대적이 그것을 벗기려고 했을때 주께서 그것을 지키셨나이다. 왕이 위험한 원정을 떠날때 생명을 주께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생명뿐 아니라 영영한 장수를 허락하셨나이다. 그가 기대한것 이상으로 주께서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셨을뿐만 아니라 미래의 복된 불멸과 그의 허리에서 나올 메시야로 그의 나라가 지속될 것을 그에게 확신시켜 주셨나이다. 주께서 그를 위해, 그리고 그를 통해 역사하신 구원이, 모든 이웃 왕들을 능가할정도로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나이다." 모든 선한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영광은 바로 주의 구원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으로하여금 인류에게 모든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하심으로써 그를 만족케하셨다(6절). '주께서 그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이 되게 하시나이다'(다른 역본에는 이렇게 되어있다-역주). "주께서 그로하여금 온세상에 영원한 복이 되게 하셨으니, 그안에서 세상사람들이 복을 받고 또 받으리이다." 예언의 영이 여기에서 어떻게 점차적으로 그리스도의 고유한 면모를 드러낸다는 이유는 세상의 어느 누구도 영원히 복을 받을수 없으며 더욱이 영원한 복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Ⅱ.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 21:7-13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그와 그들을 위해 행하신 것을 기쁨과 찬양으로 되돌아보도록 이제까지 가르쳤던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훨씬더 많은 것을 행하시리라는 사실을 믿음과 소망과 기도로써 내다보도록 그들을 가르치고 있다.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리이다(1절).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리이다.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7절) 우리는 용기를 얻을 것이니이다."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기쁨과 확신은 우리의 모든 기쁨과 확신에 근거한다.
(1) 그들은 다윗 왕국의 견고함을 확신하고 있다. 왕은 자신의 업적이나 힘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인자함으로 요동치' 않는다(7절).
(2) 그들은 다윗 왕국에 존재하고 있는 회개하지 않고 무자비한 모든 대적들이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다윗의 팔을 축복하시어 얻은 성공은 주위에 있는 그의 모든 대적들로부터 그를 안전케 해주실 것이라는 보증이었다. 다윗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를 분리시켜 놓았기때문에 그들이 다윗을 미워했다. 그들은 빛을 미워했기때문에 그리스도를 미워했다. 다윗과 그리스도는 아무런 연고없이 미움을 받은 것이다. 그 미움은 곧 하나님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요 15:23,25). 저희는 너를 해하려하여 계교를 품었으나(11절). 그들은 다윗에게만 대항하여 싸우는 것처럼 위장했지만, 사실 그들의 적의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다윗을 왕으로 삼지 않으려는 자들은 사실상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저희는 계교를 품었으나 이루지 못하도다'(11절). 그들의 악의는 무력하여 허사를 경영하였다(2:1). 그들이 발견한 것은 다음과 같다(8절). 네 오른손이 너를 미워하는 자를 발견하리로다. "비록 우정을 가장하고 고백하여 교묘하게 속인다할지라도 발견하실 것이며, 이 왕국의 신실한 신하들과 섞여 거의 구별할수 없다할지라도 발견하실 것이고, 의에서 벗어나서 그들의 은밀한 장소로 도망한다할지라도 주님의 손은 그들이 어디 있든지간에 발견하리로다." 저희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저희 자손을 인생중에서 끊으리로다(10절).
(3) 이러한 확신가운데서 그들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어(13절), 만군의 주님이시며 모든 영의 아버지로서 즉각 발휘하는 그의 능력으로 그를 위해 행해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 핵심
21:1-13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시이다.

# 묵상
힘이 되는 하나님의 이름 ( 21:1 )
다윗이 전쟁에서 병거와 말의 힘대신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힘으로 삼은 이유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힘이 될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환난날에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여 그대로 승리를 얻었습니다(삼하12:30).
최후 승리를 얻은 메시야 ( 21:9 )
최후의 승리를 얻은 메시야는 소돔과 고모라에 내렸던 유황불 심판으로 대적들을 소멸하실 것입니다(벧후2:6). 성도는 환난중에도 최후승리를 이루실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위로받아야 하겠습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23편 - study  (0) 2020.08.01
시편 22편 - study  (0) 2020.07.31
시편 20편 - study  (0) 2020.07.31
시편 19편 - study  (0) 2020.07.31
시편 18편 - study  (0) 2020.07.29

# Study

Ⅰ. 왕을 위한 기도 20:1-5
다윗을 위한 이 기도는 다윗의 시라는 표제를 달았다. 친구들의 기도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특별히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를 친구들에게 말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바울은 종종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주기를 그의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1) 그들이 왕을 위하여 하나님께 구하도록 가르침 받은 것은 무엇인가. 환난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1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5절). 다윗은 종종 환난의 날, 좌절과 곤궁의 날, 그리고 짓밟히고 곤혹스런 날을 당하였다. 그가 머리에 쓰고 있던 면류관이나 자비로운 마음으로 환난에서 제외될수 없었다. 우리는 다른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기를 원해야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직접 기도하는 것을 대신해서는 안되며 단지 우리의 기도를 보충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야곱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너의 대적이 미치지않는 곳에 너를 두시리라." 성소에서 나온 긍휼은 가장 자비로운 긍휼이다(2절).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3절). "여호와께서는 네가 재물과 기도로 하나님께 간구하였던 것을 기억하시고 승리와 성공을 너에게 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전에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사 희생제물을 사르셨던 것처럼,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제물을 열납하셨다는 충분한 증거를 보여주실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의 영혼가운데 경건하고 거룩한 사랑의 불을 붙이시고 그것으로 우리 마음이 타오르도록 하신다면, 그때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네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4절). 그들은 믿음으로 간구할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 그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선한 왕을 위한 이러한 탄원에 대해 화평의 응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였는가(5절). 우리가 너의 승리로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는 신하로서 우리 임금의 보존과 번영을 기뻐하리라."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다윗을 위한 이 기도들은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이며, 그분안에서 그 예언들은 완전히 응답되었다. 그는 우리 구속을 위한 사역을 담당하시고 어둠의 권세와 싸우셨다. 그의 영혼이 심히 슬퍼하신 환난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 즉 그의 경외심으로인하여(히 5:7) '성소에서 그를 도와주셨다.'

Ⅱ. 승리의 개가 20:6-9
(1) 경건한 다윗은 선한 백성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승리하게 된다(6절).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바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줄 이제 내가 아노니. 이는 그가 야곱의 자손의 마음을 요동케하여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답하시리로다. 성소는 바로 하늘의 모형이었다(히 9:23). 그곳에 보좌를 마련하셨는데 이것은 속죄소로 예표되고 있다.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저에게 응답하시리로다. 하나님은 결코 편지나 입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그의 오른손, 곧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시는 힘으로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위해 행하시는 것을 통해 그에게 응답하셨음을 보이실 것이다.
(2)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안에서, 그분과의 관계속에서, 그리고 그들에게 보여주신 그의 계시가운데서 승리의 개가를 올린다. 이 세상사람들은 이차적인 근거를 신뢰하며, 그들에게 미소만 짓는다하더라도 모든 것이 잘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병거나 말을 의지하여, 그것들을 전장에 많이 끌고 오면올수록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는 병거나 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그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갖고있다 할지라도 그것에 성공에 대한 우리의 소망을 두지않으리라. 오직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병거와 말을 의지한 자들은 엎드러지고, 그 병거와 말은 그들을 구원해주기는커녕, 그들을 패망하게하여 정복자의 희생물이 되도록 촉진시켰다(삼하 8:4). 그러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우리는 똑바로 서서 우리의 땅을 지킬뿐만 아니라 일어나서 적과 싸워 땅을 차지하며 승리를 얻었다.
(3) 그들은 호산나 곧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때에 왕은 응답하소서'라는 말로 왕을 위한 그들의 기도를 끝맺고 있다(9절). 이 구절은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왕에게 복을 내리소서"라는 의미 곧 하나님께서 왕에게 복을 내려주시기를 바라는 그들의 기도로 볼수 있다. 한편 "우리가 왕에게 공의와 자비를 구할때 왕이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게 하소서"라는 의미 곧 왕으로하여금 저희를 축복하게 해달라는 기도로도 볼수 있다. 치리자들로부터 유익을 얻고자하는 자들은 이와같이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다른 피조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이다.

# 핵심
20:1-9
전쟁을 앞두고 승리를 기원하는 시편이다.

# 묵상
출전을 앞두고 회중과 더불어 간구하는 왕 ( 20:1-9 )
본문에서 출전을 앞두고 회중과 더불어 간구하는 왕은 일차적으로 다윗왕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모형이기때문에 왕은 구속사적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곧 다윗왕의 승리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과 승리를 볼수 있으며, 장차 임할 하나님나라에 대한 비전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22편 - study  (0) 2020.07.31
시편 21편 - study  (0) 2020.07.31
시편 19편 - study  (0) 2020.07.31
시편 18편 - study  (0) 2020.07.29
시편 17편 - study  (0) 2020.07.29

# Study

Ⅰ. 피조물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19:1-6
시편 기자는 이 구절들에서, 온 세상에서 날마다 볼수 있는 것들로부터 육안으로 볼수 없는 하나님의 것들에 대해 숙고하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눈으로 볼수 있는 하늘의 구조와 아름다움 그리고 천체의 질서와 작용속에서 탁월하게 빛나고 있다.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이 예는 하늘이 있음을 보면서도 "하나님은 없다"하며, 결과를 보면서도 "원인은 없다"라고 말하는 무신론자들의 어리석음을 보여줄뿐만 아니라,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하나님만을 가리킬뿐인 하늘의 빛에 대해 영광을 돌리는 우상숭배자들의 어리석음과 그들의 상상력의 헛됨을 보여주고 있다.
(1) 피조물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그것들은 우리에게 여러면으로 유용하고 도움이 되지만, 그것들이 하는 일중 하나님께서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보다 더중요한 일은 없다(1절). 그것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손으로 지어진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모든 변천과 운동에는 분명히 시작이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스스로를 만들수 없었으며, 만일 그렇게 할수 있었다면 그것은 모순이다. 그것들은 우연한 원자의 충돌에 의해 생겨질수는 없다. 그러므로 영원하며 무한히 지혜롭고 유력하며 선하실수밖에 없는 창조주가 그 피조물들에게 있어야 한다. 창조물의 탁월함에서 그것을 만드신 위대한 창조주의 무한한 완전하심을 추론할수 있다. 또한 하늘이 찬란하게 빛나는 것에서 창조주가 빛이시라는 것을 추론할수 있다. 우주의 광대함은 하나님의 광대함을 나타낸다. 그 높음은 그의 초월성과 주권을 말해 준다. 이 땅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은 그의 지배와 섭리, 그리고 우주적인 은혜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같이 이 모든 것들은 그의 전능하신 능력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2) 어떤 것들이 이것을 선포하는가.
1) 하늘과 궁창 : 이곳은 대기가 있는 드넓은 공간이며 행성들과 항성들이 있는 영역이다. 사람은 신체구조상 짐승들보다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즉 짐승들은 그들의 영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처럼 아래를 내려다보고 산다. 반면에 사람은 똑바로 서서 위를 향하고 산다. 왜냐하면 그의 영혼은 곧 위로 올라가야 하고 그의 생각은 위로 향해야하기 때문이다.
2) 낮과 밤의 규칙적인 연속(2절) : 날은 날에게 밤은 밤에게. 낮과 밤은 빛과 어둠사이를 처음 나누신 하나님의 영광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계속적인 운동으로 말미암아 그 자신을 영광스럽게 할뿐만 아니라 우리를 흡족하게 하신다. 아침의 빛이 그날의 일을 돕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녁의 황혼은 밤의 안식을 돕는다. 매일 낮과 매일 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하며 자기의 증거를 끝마치고나면, 다음 낮과 밤에게 그것을 물려주어 다시 하나님의 선을 말하게 한다.
3) 태양의 빛과 영향력 : 이 태양은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천체중에서 가장 뛰어나며 이세상에서 가장 유용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이 없다면 세상은 모두 동굴이 되고 사막이 될것이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4절). 천체는 천군이라 불리고 있다. 그러므로 진지에 있는 병정들처럼 장막에 거한다는 표현은 적절하다고 할수 있다. 영광스러운 피조물은 가만히 있도록 지어지지 않고 하늘 이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끝까지 운행하도록 되어있으며(적어도 우리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한날동안의 주기를 완성하기위해 다시 같은 지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그러한 불변성과 항구성때문에 우리는 해가 언제, 어디에서 떠오를 것인가 정확한 시간을 확실히 예고할수 있는 것이다. 그 해는 나타날때 매우 찬란하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5절). 신랑은 최대한도로 화려하게 꾸미고 아름답게 장식하여, 신랑 자신이 즐거워할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해는 자기의 길을 즐겁게 달린다. 그것은 사람에게 봉사하기위해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같이' 행한다.
(3) 누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가. 세상의 모든 곳에 선포된다(3,4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땅에 통하고(자오선이라 추측된다) 그 말씀이 세계끝까지 이르도다. 즉 자신의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그 자신의 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설명하는 것을 들을수 있을 것이다.

Ⅱ.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성 19:7-14
하나님의 영광, 즉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은 창조의 역사속에 충분히 나타나있으나 하나님의 계시속에 그리고 그 계시로 말미암아 훨씬 많이 나타난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와 그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알려주는 길잡이로서, 밤이나 낮보다 그리고 우리가 숨쉬는 공기나 햇빛보다 우리에게 훨씬더 유용하며 유익한 것이다.
(1) 시편 기자는 여섯 문장속에서(7-9절) 하나님의 말씀의 탁월한 특성들과 유용성을 설명해 준다. 그 각문장에서 여호와라는 성호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하나님의 계시를 총괄적으로 생각해 볼때 교훈, 약속, 특히 복음으로 간주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명칭이 본문에 여섯가지로 나온다.
1)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7절). 즉 그 율법은 모든 타락에서 완전히 떠났고 모든 선으로 완전히 채워져있으며, 의도된 목적에 전적으로 합당하다(딤후 3:17). 그것에는 더하거나 빼낼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영혼을 소성케하고,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우리 하나님께, 그리고 우리 의무로 돌이키게 하는데 유익하다.
2)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그것은 확실히 살아있는 위로와 영원한 소망의 토대이다. 그것은 우둔한 자들까지도 그들의 영혼과 영원을 위해 지혜롭게 만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하나 겸손한 자들,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기꺼이 가르침을 받고자하는 자들을 지혜롭게 해줄 것이다(25:9).
3)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8절). 선악의 영원한 규범과 원리에 정확히 일치한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므로 마음을 기쁘게 한다. 그리스도의 손안에서 볼수 있는 율법은 우리에게 기뻐할 이유를 준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마음에 기록되면 우리의 정직한 마음을 회복시킴으로써 영원한 기쁨을 위한 토대를 세워준다.
4)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그것은 성령이 우리의 눈을 밝게 해주기위해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것은 우리로하여금 우리의 죄와 불행을 보고 깨닫게 해주며, 의무의 길로 우리를 지시한다.
5)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9절;119:9). 의식법은 사라진지 오래이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은 항상 존재한다. 시간이 도덕적인 선과 악의 본질을 변경치는 못할 것이다.
6)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그의 모든 교훈은 무한한 지혜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모든 규례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2)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인하여 가지게 된 큰가치와 큰유익,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갖게된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10,11절). 그는 세상의 모든 재물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소중히 여긴다. 금은 땅에서 나온 것이며 세속적인 것이지만 은혜는 하늘나라의 형상이다. 금은 육체와 한대의 기쁨을 위한 것이나 은혜는 영혼과 영원에 대한 관심을 위한 것이다. 믿음으로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에게 달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달다. 감각적인 쾌락은 헛된 것으로서 금방 식상할 것이며 결코 만족을 주지못할 것이다. 그러나 신앙적인 즐거움은 본질적인 것으로서 만족감을 주며 거기에는 별로 위험성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이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할 의무와 우리가 피해야할 위험을 경고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후뿐만 아니라 지키는 가운데서도 보상이 있으며, 복종에 대한 즉각적인 큰보상이 따른다.
(3)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탁월함에 대해 말한다.
1) 그는 자기의 죄를 회개하게 된다. 왜냐하면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계명이 이처럼 거룩하고 정의롭고 선하나이까? 그렇다면 자기의 허물을 깨달을 자 누구리이까? 어느 누가 할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할수 없나이다." 그는 거룩한 율법의 올바름에 입각하여 자기 죄를 자기의 허물이라고 부를줄 알게된다. 계명을 범하는 것은 우리가 준해서 행해야할 규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탈선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알고있는 것보다 우리의 사악을 더많이 알고 계시다.
2) 그는 여기에서 죄에 대항하여 싸우기위해 기도하게 된다. 자기의 범죄를 모두 구체적으로 열거할수 없음을 발견한 그는 "여호와여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부르짖고 있다.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은 없다. 즉 세상에서 비밀인 것뿐만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깨닫지못하는 것일지라도 하나님께는 감추어질 것이 전혀없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결점으로 인한 죄를 용서받기위하여 기도한후에 범죄를 짓지않게 되기를 간구한다(13절). 그의 간구는 다음과 같다.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그는 범죄를 이렇게 일컫고 있다. 왜냐하면 어떤 제물로도 그것을 속죄할수 없기 때문이다(민 15:28-30).
3) 그는 그의 생각과 애정이 주께 열납되기를 겸손히 간구한다(14절). 그리고나서 그는 하나님께서 그가 한일을 받아주시기를 빈다. 그의 봉사는 '그의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었으며 하나님께 드린 그의 거룩한 사모함이었다. 그의 관심사는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께 열납되는 것이었다. 만일 우리의 봉사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 핵심
19:1-14
하나님이 인간에게 두가지의 위대한 선물, 즉 피조세계와 율법(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을 찬양한다. 바꾸어말해서, 자연세계를 통한 하나님의 일반계시와 성경을 통한 특별계시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찬양을 돌리고 있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19편)
자연세계에 대한 관찰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지성적인 존재가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게 만든다. 사도바울도 롬 1:19-21절에서 그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으며, 헬라의 시인 아라투스(Aratus)도 인간을 관찰하면서 모든 인간이 ‘신의 소생’(행 17:28)이라고 했다. 이처럼 일반계시는 피조세계에서 살고있는 모든이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구원을 얻는 신앙에 이르는 것은 특별계시인 성경의 증거를 통해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해야만 가능하다.

# 묵상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위한 설명 ( 19:1-10 )
율법, 증거, 교훈, 계명, 도, 규례 등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하여 자연안에 계시된 일반계시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들을 위해 친히 말씀을 통한 특별계시를 주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만 영안을 밝히 뜰수 있고, 하나님을 바로 알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 ( 19:11 )
다윗이 자기 자신을 여호와의 종으로 부른 의도는 자신의 왕에 대한 소명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이는 자신의 왕됨이 강탈하거나 침략해서 된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소명의식은 어떠한 어려움과 재난속에서도 피난처가 될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전생애를 하나님께 맡기고 인간적인 명예나 권세보다는 하나님의 품에 자신의 마음을 맞추고 확실한 소명의식과 함께 살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죄 ( 19:13 )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죄는 고범죄(자범죄)입니다. 고범죄란 의지가 박약하여 짓는 잘못이 아닌 적극적인 범죄를 가리킵니다. 이같은 고범죄는 사람을 주장하여 자신의 노예로 삼습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21편 - study  (0) 2020.07.31
시편 20편 - study  (0) 2020.07.31
시편 18편 - study  (0) 2020.07.29
시편 17편 - study  (0) 2020.07.29
시편 16편 - study  (0) 2020.07.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