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환난중에서의 간구 57:1-6
이 시편의 표제에는 '알다스헷', 곧 '멸하지 말라'라는 새로운 단어가 하나 들어있다. 어떤사람들은 이 말도 이 시편에 붙여진 이미 알려져있는 어떤 곡조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있다. 또 어떤사람들은 이 말을 이 시편의 상황과 내용에 적용시켜서 생각한다. '멸하지 말라.' 즉 다윗은 이 당시 굴속에서 사울을 죽일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났고 그의 신하들도 그렇게하기를 몹시 바랐으나 그를 죽이려고 하지않았다. 다윗은 '그를 죽이지 말라'고 말한다(삼상 24:4,6). 혹은 '멸하지 말라'는 이 말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사 사울에게 죽임을 당케하시지 않았다는 뜻일수도 있다. 하나님은 사울이 다윗을 핍박하도록 내버려두셨으나 여전히 '그를 멸하지 말라'라는 하나님의 규제를 두셨다.
(1)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 그리고 기도로써 자기의 힘을 북돋우고 있다(1,2절).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세리도 이렇게 기도하였다(눅 18:13). 다윗은 여기서 자신을 하나님의 긍휼에 맡기기위해서 다음의 사실들을 고백한다.
1)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사실 : 내 영혼아 주께로 피하되(1절).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에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뢰를 겸손히 고백한다. 병아리들이 맹금이 막 덮치려고 할때 어미닭의 날개아래 숨듯이 '내가 주의 날개 그늘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가기까지 피하리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에 의지하여 자신을 위로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암탉이 본능적으로 자기 어린새끼들을 보호하듯이 그 성품에 의해 자기 백성을 보호하고 구원하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2)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는 사실(2절) :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구원과 도움을 바라고 부르짖나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나의 영혼을 들어올리며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겠나이다."
3)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기대한다는 사실(3절) :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구원하실지라. 하나님을 자신의 유일한 피난처로 삼고 믿음과 기도로 그에게 피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방법으로 자기가 뜻하는 때에 그들을 구원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할수 있다. 다윗이 땅위에서 피난처를 찾지못하고 아무런 도움도 구할수 없었을때, 어떤 길을 바라는가 주의하여 보라. 그는 그 길을 하늘에서 찾는다.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하는 자들은 위로부터 모든 선한 것을 기대할수 있다.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의 은혜를 받는 것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25:10).
(2) 그는 원수들의 악의와 권세를 묘사한다(4절). 내 혼이 사자중에 처하며. 그는 그를 치기위한 원수들의 악의에찬 계획들을 기술하며(6절), 그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저희가 내 걸음을 장애하려고(즉 나를 사로잡아 다시는 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나이다. "내 앞에 웅덩이를 파놓아 내가 모르는채 그속에 곤두박질하여 떨어지도록 하였나이다." 그러나 그 결과를 보라.
첫째, 그것은 실제로 다윗에게 약간의 동요를 일으켰다.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둘째, 그것은 오히려 그들 자신을 파멸시켰다. 그들이 다윗을 위해 웅덩이를 팠으나 '그들이 스스로 그중에 빠졌다.'
(3) 그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위대한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기도한다(5절).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내 자신과 나의 권익은 어찌되든지간에 그렇게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땅의 모든 거민들로 주를 알고 찬송하게 하소서."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특별한 권익보다도 그것에 더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윗은 극심한 고난과 치욕가운데 빠졌을때에도 '여호와여 나를 높이소서'라고 기도하지 않고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높이소서'라고 기도하였다. 다윗의 후손인 그리스도께서도 이렇게 근심에 빠졌을때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으나 이내 그 간구를 철회하시고 그대신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요 12:27,28).

Ⅱ. 찬송으로 변한 기도 57:7-11
이 시편의 곡조는 여기서 아주 묘하게 변한다. 다윗의 기도와 탄식은 여기서 믿음의 활발한 작용으로 말미암아 갑작스럽게 찬양과 감사로 바뀐다.
(1) 그는 찬양의 의무를 이행하기위해 어떻게 자신을 준비하는가(7절).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억울했던(6절) "내 영혼이 바로 세워졌나이다. 아니, 들어 올려졌나이다." '내 마음이 확정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을 의뢰하므로'(112:7;사 26:3) 모든 일에 대해 각오가 되어있다는 뜻이다. "내 마음이 노래하고 찬송하도록, 즉 전심으로 여호와를 섬기도록 확정되었나이다."
(2) 그는 찬양의 의무를 이행하기위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북돋우는가(8절). 내 영광아 깰지어다. 즉 나의 혀(우리의 혀가 곧 우리의 영광이며 그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쓰일때보다 그것에 더 큰영광은 결코없다) 혹은 나의 영혼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 둔하고 졸린듯한 기도는 결코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할 것이다.
(3) 그는 찬양하는 일을 매우 기뻐하며 심지어 자랑하기까지 한다. 그는 '만민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열방중에서 주를 찬송할' 것을 결심한다(9절). 이 말은 다음 두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첫째, 그는 그의 거룩한 노래로 세상을 울려서라도, 모든 사람으로하여금 그가 하나님의 선한 은혜를 입고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있는지를 주목하게 하려고 하였다.
둘째, 그는 다른사람들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그와 함께 해주기를 열망한다. 그는 '만민중에서' 공공연히 하나님을 찬송하려고 한다. 다윗은 온세계 교회에 충만하고 또 세상끝날까지 그러할 그의 시편속에서 여전히 '만민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열방중에서 주를 찬송하고' 있다고 일컬어 질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찬송할때 그의 시편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4) 그는 찬양하기위해 어떻게 찬양의 소재를 준비하는가(10절).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이루 다 생각할수도 없고 표현할수도 없을만큼 크니이다."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그러므로 너무나 광대해서 미처 다 깨달을수가 없나이다. 과연 어느 눈이 궁창에 싸여있는 것까지 꿰뚫어 볼수 있겠나이까."
(5) 결국 그는 하나님의 이룸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어떻게 하나님께 맡기는가(11절).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 핵심
57:1-11
본시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아둘람 동굴에 피신해 있을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참조, 삼상 22:1-5). 목숨의 위협을 당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신뢰가 넘치고 있다. 환경을 초월한 다윗의 믿음을 엿볼수 있는 소중한 시편이다.

# 묵상
나를 위하여 이루시는 하나님 ( 57:2 )
나를 위하여 이루시는 하나님이란 다윗으로하여금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한 하나님의 섭리를 뜻합니다. 또한 성도를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악인을 의로 심판하십니다.
영혼이 짓밟힌 다윗의 고백 ( 57:6 )
다윗이 내 영혼이 짓밟혔다고 고백한 것은 난관으로인해 좌절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때 다윗은 사울의 칼날을 피하여 동굴속에 숨어있었고,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위해 혈안이 되어 백성돌보는 일을 전폐하고 다윗을 추격하였습니다. 때문에 다윗은 사울의 칼날을 피하여 도망쳐도 숨을만한 피난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다윗은 대적자들의 갖은 술수에 시달리는 상황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을 간구합니다. 결국 다윗의 간구대로 대적자들은 스스로 판 함정에 빠졌습니다. 다윗은 도피 생활중 이같은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자신의 신앙근간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때 생기는 일 ( 57:8 )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담대히 의지하는 자는 심령의 평안과 기쁨을 누릴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자이시요, 신실한 목자이심을 믿는 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새벽을 깨울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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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원수들의 악의에 대한 호소 56:1-7
다윗은 이 시편에서, 자신이 두려움과 어리석음으로인해 블레셋인들의 손아귀에 떨어졌을때에도(오류! 하이퍼링크 참조가 잘못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음을 보여준다. 이 시편은 '믹담' 곧 '다윗의 황금 시'라고 불린다. 다른 시편들에도 이와같은 표제가 붙어있지만 이 시편은 그 표제안에 특유한 어떤 것을 담고있다. 즉 이것은 "멀리있는 침묵하는 비둘기"라는 뜻을 나타내는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인 것이다. 어떤사람들은 이 표제가 멀리날수 있는 비둘기의 날개를 원했던 다윗 자신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그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방황하며 먼나라에서 은신처를 찾지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골짜기의 비둘기처럼 슬퍼하며 우울하게 지내었다. 그러나 그는 잠잠하였다. 즉 하나님께 불평하지도 않았고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수단들에 대해서 욕하지도 않았다.
(1) 그는 그가 그의 원수들을 두려워하지 않을수 없었던 이유를 제시하면서 그들의 악의를 하나님께 호소한다(1절).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 간구는 우리가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 구하는 모든 선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긍휼을 얻을수 없었기때문에 하나님께 긍휼을 얻을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는 잔인한 사울의 손에서 피하였으나 또다시 잔인한 블레셋인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여 이제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가 망하겠나이다. 나를 교만히 치며 수로써 나를 압도하려 하는 자가 많사오니 지극히 높으신 주여 이것을 주목하시고, 그들이 교만히 행할때에 주께서 그들보다 높으심을 나타내소서." 그들은 매우 잔인하였다. 그들은 거듭 '그를 삼키려고' 하였다(1,2절). 그들은 모두가 합심해서 이 일을 하였다. 또 모여(6절). 그들은 수가 많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졌지만 헤롯과 빌라도가 연합하여 다윗의 후손을 대적했듯이 함께 연합하여 다윗을 대적하였다. 그들은 매우 강력해서 하나님이 그를 도우시지 않으면 그로서는 그들을 감당할수 없었다. 저희가 나를 교만히 치며(2절). 압제하니이다(1절). "나는 그들에게 압도되어 위축되었으며 거의 죽게 되었나이다." 그들은 교활하고 간교하였다. 숨어(6절). "그들은 그들의 계획을 더욱더 효과적으로 달성하기위해 그것을 숨기나이다. 그들은 굴속에 있는 사자처럼 숨어서 내 종적을 살피나이다." 즉 "그들은 나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수 있는 것을 찾기위해 매서운 눈으로 나의 모든 언행을 주목하나이다." 그들은 매우 심술궂고 악의에 차 있었다. 저희가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5절). 즉 "나를 모함하기위해 결코 한적이 없는 말을 했다고 억지로 갖다 붙이기위해 내 말을 왜곡하여 하나이다." 그들은 지칠줄 모르고 쉬임없이 이런 악을 행하였다. 그들은 항상 그의 생명을 엿보았다. 그들이 노린 것은 생명, 곧 그의 귀한 생명이었으며 그들이 갈망한 것은 바로 그의 죽음이었다(6절).
(2) 그는 하나님안에서 그리고 그의 약속과 능력, 섭리안에서 자신을 격려한다(3,4절).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3절), 곧 내가 안팎으로 두려워 몹시 떨때에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리이다(4절). 그러면 그로 말미암아 내 두려움이 사라지리이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의 찬양의 제목으로 삼을 결심을 한다. 내가 하나님을...찬송하올지라. "그가 행하신 일뿐만 아니라 하신 '말씀'도 찬송하리라". 어떤사람들은 그의 '말씀'을 그의 섭리, 곧 그가 명령하고 정하시는 모든 일로 생각한다. "내가 하나님께 대해 좋게 말할때 나는 그가 행하시는 모든 일에 대해서도 그와 함께 좋게 말할 것이라." 그는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때문에 그를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무시하려고 한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4절). "그러므로 나는 안전하고 평안하도다."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사람의 팔이 우리편이 될때 우리가 그것을 의지해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팔이 우리를 치려고 뻗쳐졌을때에도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3) 그는 자기를 교만히 친자들의 멸망을 예견하고 있으며 또 예언한다(7절). 저희가 죄악을 짓고야 피하오리이까. 그들은 강포와 사기로 또 불의와 반역의 술책으로 사람들의 심판을 피한 것처럼 또한 하나님의 심판도 피할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들이 피할수 있겠는가? 아니, 결코 그들은 피하지 못할 것이다. 죄인들의 죄는 결코 그들의 방위 수단이 되어주지 못할 것이다.

Ⅱ. 고통중에서의 위로 56:8-13
다윗은 여기서 자신의 고통과 두려움의 날에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사실로 자신을 위로한다.
(1)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특별히 주목하셨다(8절). 나의 유리함을(옛 번역대로 하자면 나의 '훨훨 날아다님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다윗은 이때 청년에 지나지 않았지만(30세이하) 이미 여러곳을 옮겨다니는 경험을 하였다. 아버지 집에서 왕궁으로, 또 왕궁에서 야영지로 옮겨갔고 이제는 사냥꾼에게 쫓기는 산새처럼 추적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거동을 자세히 살피시고 그의 피곤한 모든 발걸음을 밤낮으로 계수해주셨다는 이 사실에서 위로를 얻었다. 그는 유리하는 동안 자주 울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8절). "그리하여 그것이 보존되고 기억되게 하소서. 아니 나는 나의 눈물이 '주의 책에', 즉 주의 기억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아나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자신들의 죄때문이거나 고통때문에 흘리는 눈물을 담고 기록해두는 그릇과 책을 가지고 계시다. 하나님은 그들을 연민과 자상한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주신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고통가운데서 함께 고통을 받으시므로 그들의 영혼이 곤경에 처해있음을 알고 계시다. 바울은 디모데의 눈물을 잊지않았다(딤후 1:4).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슬픔을 잊지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괴로움을 허락했던 그 날수대로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며,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 자들로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하실 것이다. 뿌려진 눈물은 진주가 되어 나올 것이다.
(2) 그의 기도는 그를 돕고 격려해줄뿐만 아니라 그의 원수들을 물리치고 쳐부술수 있을만큼 강력할 것이다.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9절). 그러므로 "나에게는 기도와 눈물밖에는 다른 무기가 필요없나이다." 이같이 아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위하심이니이다(한글개역 난외주 참조-역주) 곧 "나의 소송을 변호하시고,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기 때문이니이다. 이같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니 누가 나를 대적하여 이기리이까?" 우리는 무릎을 꿇을때에, 즉 기도할때에 가장 잘 싸울수 있다(엡 6:18).
(3)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이 그로하여금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할 것이다(10,11절). 여기서 그는 앞에서 한말을(4절) 깊은 열정과 함께 되풀이한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10절). 즉 "내게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는 그 약속을 굳게 의지할 것이니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11절). "비록 나는 사람들이 할수만 있다면 내게 어떠한 일을 하리라는 것을 잘알고 있지만(1,2절) 그들은 결코 나를 해치지못할 것이니이다."
(4) 그는 하나님께 서원하였다(12절).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12절). "그 서원은 내게 지워진 짐으로서가 아니라 내가 자랑하는 휘장으로서 내게 있나이다." 하나님께 서원함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즉 주의 만찬에서 갱신된 세례의 서원이나 때때로 회개와 징계아래서 행하는 서원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쁘게 여겨야할 사실이다. 우리는 이런 서원들에 의해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게되는 것이다.
(5) 그는 하나님을 찬송할 기회를 더욱더 누리게될 것이다.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12절). 이것은 그의 서원을 이행하는 한가지 행위이다. 왜냐하면 감사의 서원은 당연히 긍휼을 구하는 기도에 따르며 긍휼히 허락되었을때 그 서원이 이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께서(금방이라도 나를 사로잡을 것같은) 사망에서 내 생명(영혼)을 건지셨나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다면, 즉 예방하시는 은혜로써 죄를 범하는데서 우리를 구원하셨거나 용서하시는 긍휼로써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셨다면,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죄의 삯인 사망에서 구원하셨다고 고백해야 한다. "주께서 나로 실족치않게 하시리이다. 주께서 더 큰일을 행하셨으니 보다 작은 일도 행하시리이다. 주께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으니 또한 주께서 그 일을 계속해서 행하시고 마침내 완성하실 것이니이다." 섰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하나님이 그를 붙드시기를 기뻐하시지 않는다면 더이상 서있을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결코 그의 백성을 광야에서 죽게 하기위해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것이 아니다. 개심을 통해서 그 생명을 죄와 같이 무서운 사망에서 건지시는 그분은 "그 생명을 천국에 이르기까지 보존하시는 일"에 실패하지 않으실 것이다.

# 핵심
56:1-13
본시편은 다윗이 가드왕 앞에서 미친 척하며 위기를 모면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것 같다(삼상 21:10-15). 본시편을 통해 그는 겹겹이 닥치는 위기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구원과 도우심을 의지하는 굳건한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표제의 요낫 엘렘 르호김은 여러가지로 해석되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멀리있는 상수리나무에 앉은 비둘기’라는 해석이다. 이것은 곡조명이라기보다는 원수의 위협을 피하여 멀리 도망다니는 다윗의 신세를 묘사한 표제로 추측된다.

# 묵상
긍휼을 간구할수 있게하는 확신 ( 56:1-13 )
다윗은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피하는 생활을 하는동안에 많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특히 다윗의 정적인 사울뿐만 아니라 이방 족속들도 다윗이 어떤말을 하든지 곡해하며 다윗을 적대시하였습니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다윗은 이들과 맞대응할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망명자의 신세였으며 유리하는 자를 신뢰하지 않는 편견과 선입견을 근본적으로 불식시킬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유리하는 다윗이 적대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할수 있는 무기는 단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 하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믿고 의지하였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힘입어 악행자를 분명히 벌하신다는 하나님의 공의를 의지하였습니다. 이렇듯 다윗이 하나님의 공의를 의지하여 긍휼을 간구할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자신을 버리지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확신은 신앙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대적자의 핍박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했습니다.
유리하는 생활 ( 56:8 )
다윗이 말하는 유리하는 생활이란 대적자들을 피하여 다니는 망명생활, 부득이한 사정에 의한 도피 생활을 뜻합니다. 다윗은 이 과정에서 고난받았지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체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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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고난에 대한 탄원 55:1-8
1. 기도하는 다윗(1)
기도는 모든 상처의 약이 되며 모든 고통속에서 허덕이는 영혼에게 위로가 된다.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때에 숨지마소서(1절). 만일 우리가 기도할때 진심으로 하나님께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사정과 우리의 마음을 드러낸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숨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그의 은총과 위로를 숨기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기대할수 있다.
2. 탄식하는 다윗(2,3)
다윗은 슬픔의 사람이었으며 종종 눈물의 사람이었다는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2절). 내가 근심으로(혹은 묵상, 우울한 명상으로) 편치 못하여(슬퍼하여), 탄식하오니. "나는 그런 한숨과 신음소리를 참을수가 없나이다. 그리고 주위사람들에게 나의 고통을 나타내는 다른 표현들을 억제할수가 없나이다." 이는 원수의 소리와...연고라. 이는 후대 대제사장들이 폭도를 선동하여 다윗의 후손에 대해 '그를 없이하라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지르게 한것같이, 허세를 부리고 소리를 지르며 백성들을 충동질하여 다윗을 대적하게 하고 그를 그의 궁전과 수도에서 쫓아내버린 압살롬도당의 위험과 모욕때문인 것이다.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하며. 그들은 그를 미워하였기때문에 그를 추악한 자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도 그를 미워하게 하려고 애썼다. 이 사실이 그를 슬프게 했다. 더욱이 그가 백성들의 총아로서 '다윗', 곧 '사랑받는 자'라는 그의 이름에 부합되던 때를 기억할때 그것은 그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3. 떨며 크게 당황하는 다윗(4-8)
우리는 다윗이 압살롬의 음모와 백성들의 변절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다윗은 매우 담대하고 용기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다윗이었지만 그 위험이 의외로 크고 급박하자 사기를 잃고 말았다. 이때 다윗의 마음은 그속에서 심히 아파하였으며 사망의 위험이 그에게 미쳤다(4절). 마음의 두려움과 몸의 떨림이 그에게 이르렀고 공포가 그를 압도하였다(5절). 때때로 다윗은 신앙때문에 전혀 두려움이 없었고 그래서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있을때에도 '사람이 내게 무엇을 할수 있으리요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담대하게 말할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때는 두려움이 그를 이기고 압제하였다. 그 이유는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이라도 언제나 신앙이 한결같이 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두려움속에서 사막으로, 즉 원수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않고 그들의 압제가 보이지않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리로 물러가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는 기도중에는 하나님께, 묵상하는 중에는 자신에게, 탄식하는 중에는 친구에게 이 말을 하였다(6절). 내가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 그는 날개가 없으면 도망갈수 있는 길이 전혀없다고 생각될만큼 원수들에게 완전히 포위당했다. 그래서 그는 힘차게 나는 매와 같은 새가 아니라 빨리나는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하고 바란다. 그는 먹이를 덮치기위해서가 아니라 맹금같은 그의 원수들에게서 도망하기위해 날개가 있으면 하고 바란다. 비둘기는 낮게 날면서 할수 있는한 빨리 은신처를 찾는다. 다윗은 이렇게 날기를 바랐다. 그는 '폭풍과 광풍을', 즉 온 성읍을 휩싸고 있던 소요와 폭동을 그리고 그가 지금 당하고 있는 위험을 피하려고 하였다.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6절). "그곳이 아주 멀리 떨어진 황량하고 소름끼치는 광야라고 할지라도 아무데든지 가서 조용히 쉬리로다"(7절).

Ⅱ. 원수들의 악의를 고발함 55:9-15
다윗은 여기서 그에 대한 악한 음모를 꾸민 원수들에 대해 하소연한다. 그들의 음모는 그의 믿음을 없애지 못했지만 그의 지혜는 막아버렸다.
1. 그가 묘사하는 원수들의 성품
그들은 극악한 무리들이었다. 그들에 대한 그의 묘사는 압살롬과 그의 공범자들에게 아주 잘 들어맞는다. 그는 이상하게도 압살롬과 가까워지고 자기에게서는 멀어진 예루살렘 성에 대해 한탄한다. '그 신실한 성읍이 창기가 되었도다!' 다윗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밖에 아무것도 볼수 없었다(9절). 즉 '강포와 분쟁이 주야로 성벽위에 두루다니고 있음'을 보았다(10절). 성중에는 죄악이, 곧 모든 종류의 악이 있었다. 속임수와 간계 그리고 온갖 모양의 배신행위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았다'(11절). 하나님의 제사장들의 본부인 예루살렘이 그처럼 악한 가르침을 받았는가? 예루살렘이 자신의 유명한 창건자인 다윗에게 이처럼 배은망덕하며 그를 구박하여 그곳에 거하지 못하게 할수 있단 말인가? 그는 그 음모의 주모자들중의 한사람으로서 질투심을 조장하고 그와 그의 통치에 대해 허위진술을 하며 온 성읍을 부추켜 그를 대적하도록 만드는 일에 매우 열심이었던 사람에 대해 한탄한다. 누가 그 일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였는가? 그는 불공대천의 원수도, 시므이도(참조. 삼하 16:5-13) 아니었고 그에게 충성을 거부한 자들중의 어느누구도 아니었다. 이들중의 한사람이었다면 그는 그 모욕을 참을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서는 그보다 나은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장 가까운 친우로다(13절). 갈대아 역본은 여기서 의미하고 있는 사람으로 아히도벨을 지적한다. 우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14절). 즉 많은 시간을 신앙적인 대화로 함께 아주 즐겁게 보냈다는 의미이다. 혹은 해몬드 박사의 해석대로 다음과 같은 의미로 볼수도 있다. "우리는 함께 만나 집회에 참석하였으며 거룩한 의식의 자리에서 동료의 표시로서 서로 손을 잡았도다. 또한 우리는 공중예배에도 함께 참석하곤 하였도다." 무리와 함께하여 하나님의 집안에서 다녔도다. 보이는 교회안에서는 언제나 선과 악이, 건전한 곳과 건전하지 못한 것이 뒤섞여 있어왔고 앞으로도 역시 그럴 것이다. 우리는 두가지의 신성한 것, 즉 신앙과 우정을 장담해온 어떤사람들에게 슬프게도 속임을 당할지라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지 말아야 한다. 다윗 자신도 매우 현명한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속고 말았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볼때 우리는 이와 비슷한 실망들을 더 잘참을수 있을 것이다.
2. 그들을 대적하는 그의 기도
(1) 그는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쌓던 자들을 흩으셨듯이 그들을 흩으시기를 기도한다(9절). 주여 저희를 멸하소서 저희 혀를 나누소서. "그들사이에 의견의 불일치를 일으키시어 서로 충돌하게 하소서." 하나님은 종종 교회의 원수들끼리 사이를 갈라놓음으로써 파멸시키신다. 어떤사람들이든 간에 그들을 파멸시키는데는 분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없다.
(2) 그는 하나님께서 다단과 아비람을 처치하셨듯이(민 16:30) 그들을 멸하시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게 하소서, 그들이 산채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소서.' 그들이 죽어 장사되게 하소서. 순식간에 완전히 파멸되게 하소서. 이는 그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악이 있기때문이며 저희중에는 죄악이 있기때문이니라."

Ⅲ. 하나님께 대한 신뢰 55:16-23
(1)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려는 그의 결심을 계속해서 밀고나간다(16절). "그들이 스스로를 굳게 지키기위해 원하는 방책을 쓰게하라. 강포와 분쟁으로 자기들을 지키게하라. 나는 기도할 것이라. 기도속에서 내가 위로를 얻었으므로 나는 이것을 따르겠노라.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에게 나를 맡길 것이니라. 그러면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실 것이라."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17절). 즉 "내가 묵상하리니." 그는 자주 기도할 것이다. 즉 매일 그리고 하루에도 세번씩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기도할 것이다. 하루 세끼 식사가 몸에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루 세번의 엄숙한 기도 또한 영혼에 적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일로 여기지않고 즐거움으로 여기게될 것이다. 하루 세번 기도하는 것은 다니엘의 습관이었고(단 6:10) 정오는 베드로의 기도시간 중 하나였다(행 10:9).
(2) 다윗은 하나님께서 때가되면 그의 기도에 대해 평화의 답변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1) 그는 구원받을 것이며 두려움은 방지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소망속에서 기뻐한다(18절). 저가 내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즉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실 것이라." 다윗은 마치 구원이 이미 이루어지기라도 한듯이 구원을 확신하고 있다. 다윗은 엘리사처럼 자기가 불병거와 불말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서 이렇게 의기양양해 한다. '나와 함께한 자가 나를 대적하는 자보다 많도다'(참조. 왕하 6:16,17).
2) 그의 원수들은 보응을 받고 파멸될 것이다.
① 다윗은 여기서 그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실 것이라고 믿는 이유로서 그들의 성품을 제시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19절). 그들은 변치아니하며. "그들은 그들의 지속적인 형통함에 어떤환난이나 장애물이 없으며 그들을 비천하게 만드는 고난도 전혀 없었기때문에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이니이다." 그들은 배반을 잘하고 거짓된 인물들이어서 가장 신성하고 엄숙한 약속도 지키려하지 않는다(20절). 그들은 속으로는 해를 꾀하면서도 겉으로는 우정을 가장하는 비열하고 위선적인 자들이다. 그 입은(필시 다윗은 여기서 특별히 아히도벨을 두고 말하는것 같다)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21절). 그 말들에 매우 악한 계획이 담겨있어서 그것은 마치 찌르려고 '뽑은 칼'과 같았다.
② 다윗은 여기서 그들의 파멸을 예언한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보응하시리로다(19절).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피흘리게 하였고 또한 죽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공의롭게 그들을 죽이실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속여 그 몫의 절반을 빼앗아갔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23절).
(3) 다윗은 그 자신과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로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도록 격려한다.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23절). "나는 주의 섭리와 능력, 자비를 의지하고 내 지혜나 힘으로 공로를 의지하지 않겠나이다. 피를 흘리게하여 속이는 자들은 한창때에 끊어지나 나는 주께 대한 믿음으로 안연히 살 것이니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22절). "짐을 지고있는 제가 어떤사람이든 또 무슨 짐을 지고있든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70인역에는 '너희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라'고 되어있다. 베드로 사도도 이 구절을 그의 서신에서 인용하고 있다(벧전 5:7). 염려는 짐이며 마음을 번뇌케한다(잠12:25). 하나님께 짐을 맡겨버리는 것은 그의 섭리와 약속을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이 약속될 것이다.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지탱해주실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염려와 두려움을 일으키는 고난에서 우리를 즉시 자유롭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감당할수 없는 시험은 당하지않도록 해주실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죄인이 요동하거나 흔들리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즉 어떠한 고난에 의해서든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의무이행이나 하나님안에서 위로얻기를 그만두게 할만큼 그들이 흔들리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 핵심
55:1-23
원수의 공격을 당하면서 하나님앞에서 탄식하는 내용이다. 특히, 가까웠던 친구의 배신을 슬퍼하고 있다. 다윗은 이같은 상황에서 절망감을 느꼈지만, 곧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회복했다. 다윗의 이러한 경험은 가룟유다의 배신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경험과 유사하다(참조, 마 26:47-56). 이 시편의 역사적인 배경은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아마도 압살롬의 반역과 관련이 있는것 같다.

# 묵상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 55:3 )
본문에서 원수란 다윗이 특별히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을 위시하여 천재적인 모사 아히도벨과 그들의 군대를 가리킵니다. 또한 원수란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어두움의 세력들을 가리킵니다.
혀를 나눔 ( 55:9 )
혀를 나눈다는 것은 악인을 혼란케하여 악을 도모하지 못하게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불의한 세력들이 발호(跋扈)하여 악행이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으로 불의를 제하여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다윗은 이와같이 악인에 대한 처리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겼던 것입니다. 혀를 나눈다는 표현은 바벨탑사건을 연상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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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원수들의 악의에 대한 탄원 54:1-3
(1) 다윗은 이때 큰곤경에 처해있었다. 십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사울에게 와서 다윗이 있는곳을 알려주며 그를 사울의 손에 넘겨주겠다고 약속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은 천국에 이를때까지는 결코 안전이나 편안함을 기대하지 말아야한다. 이 사람들은 얼마나 믿을수 없고, 얼마나 쓸데없이 남의 일을 간섭하는 인물들인가!
(2) 그는 하나님께 구원과 구출을 빈다(1,2절).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이외에는 의지할 것이 없었고 하나님의 힘이외에는 의지할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두가지를 자신의 피난처와 의지할 것으로 삼는다. 그는 도망가는 중이었으므로 하나님께 진지하게 말할기회가 없을때조차도 때때로 하늘을 향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내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기도를 들으시고 내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3) 그는 그의 원수들의 특성에서 탄원의 구실을 끌어낸다(3절). 그들은 '외인'이다. 십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이름에는 어울리지않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했던 것보다 더비열하고 야만스럽게 나를 대했나이다." 그들은 '강포한 자'였으며 특히 사울이 그러한 자였다. 그는 왕으로 자신의 권력을 자신의 훌륭한 신하들을 보호하는데 사용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을 파멸하는데 악용했던 것이다. 그들은 무섭고 험악했다. 그들은 미워하여 그가 잘못되기를 바랐을뿐만 아니라 한무리가 되어 그를 치려고 일어섰다. 즉 그들의 힘을 합하여 그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였다. 그들은 극심한 악의를 품고있었다. 강포한 자가 내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3절). 즉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싸우는 것이 곧 하나님과 싸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Ⅱ. 감사의 고백 54:4-7
기도를 통하여 다윗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1) 그는 하나님이 자기편이라고 확신하였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라(4절). 사람들과 마귀가 우리를 파멸하려고 꾀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한 그들은 뜻을 이루지못할 것이다. 주께서 내생명을 붙드는 자와 함께하시나이다. 118:7절과 비교해 보라. '여호와께서 내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중에 계시도다.'
(2)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편을 드시기때문에 그의 원수들이 자기앞에서 넘어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5절). 주께서 나를 감시하는 내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나에게 끼치려고 계획한 악을 그들의 머리위에 갚으실 것이라." 다윗은 그들에게 악으로 갚으려고 하지는않았으나 하나님께서 그렇게하시리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나는 귀먹은 자같이 듣지못하나 주께서 들으시리이다.' 하나님께서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다'고 말씀하셨다고해서 우리가 직접 보복해서는 안된다. 그는 '주의 성실하심으로 저희를 멸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이것은 악의에서 나온 기도가 아니라 신앙의 기도이다. 왜냐하면 그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하고 다만 그 말씀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3) 그는 그가 경험한 하나님의 모든 선하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을 약속한다(6절).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감사하는 마음과 입술로 주의 이름에 감사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즐겨받으시는 제사이다.
(4)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미 이루어진 사실로서 말한다(7절). "내가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며 주께서 나를 건시셨다고 말하리이다. 그때 이것이 내 노래가 될 것이니이다." 내 원수가 보응받은 것을 나로 목도케하셨나이다. 이것은 그들이 제거되고 파멸하는 것을 본것이 아니라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전하여지므로(삼상 23:27,28) 그들이 물러가지 않을수 없게된 것을 보았다는 말이다. 다윗은 다만 자신이 안전하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그는 사울이 군대를 철수시키는 것을 본것이 그의 바람, 즉 그의 원수가 보응받는 것을 목도한 것이다. 이 사실은 어쩌면 다윗이 예표하고 있었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신 상태에서 겪는 모든 고난에서 그를 구원하려고 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 구원을 완전히 확신하셨다. 그 이유는 비록 우리가 아직은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그의 모든 원수가 그의 발등상이 되어서 보응받는 것을 목도하기까지 그가 통치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 핵심
54:1-7
무고히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추적에서 벗어나기위해 애쓰는 다윗의 암담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하나님의 개입으로인한 대적의 파멸과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는 내용이다. 본문의 역사적인 배경은 삼상 23:19; 26:1절에 나온다.

# 묵상
외인인 십사람들 ( 54:3 )
원래 십사람들은 유다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수15:55). 하지만 다윗을 사울에게 밀고하고 하나님을 떠난이들은 다윗에게 있어 이방인과 다를바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나 악행을 일삼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외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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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타락한 인간의 무지 53:1-6
(1) 죄의 진상 : 이것은 증명되었는가? 그렇다. 하나님이 그 증인이시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의 모든 죄악성이 하나님앞에서는 벌거벗은듯이 드러난다.
(2) 죄의 책임 : 이세상을 지금처럼 악한 세상으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이 죄이다(3절).
(3) 죄의 근원 : 사람들이 어째서 그렇게 나빠졌는가? 그것은 확실히 '저희 눈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나쁜 행실은 나쁜 행동원리로부터 나온다.
(4) 죄의 어리석음 : 이처럼 타락한 생각을 품고있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무신론자들은 이론에 있어서나 실천에 있어서나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다. 하나님을 찾지않는 자들은 하나님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짐승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성의 능력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신앙을 받아들일수 있는 능력에 의해서 짐승과 구별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죄악을 행하는 자'는 실로 아무것도 알지못한다고 말할수 있다(4절).
(5) 죄의 추악함 : 죄인들은 부패한다(1절). 그들의 성품은 타락하고 망쳐진다. 또한 고상한 성품일수록 그것이 타락했을때는 더욱 나빠진다.
(6) 죄의 결과 : 죄가 마침내 사람을 얼마만큼 야만스러운 상태에 이르게 하는가를 보라. 사람들의 마음이 죄에 속아서 강퍅해졌을때 그들의 뼈중의 뼈인 그 형제들에게 대한 잔인성을 보라. 그 형제들이 '그들과 함께 미친듯이 마구 날뛰려고' 하지않는다는 이유때문에 그들은 그 형제들을 '떡먹듯이 먹어'버렸다. 그들은 짐승같이 되었을뿐만 아니라 육식수라도 된것처럼 그들을 먹었다.
(7) 죄에 따르는 두려움과 수치(5절) : 하나님을 원수로 삼은 자들은 크게 두려워하게 된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한다'(잠 28:1). 이 두려움의 이유를 생각해보라. 그것은 하나님이 이전에 그의 백성을 '대하여 진친 저희의 뼈를 흩으셨기' 때문이다. 즉 저희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저희의 군대를 흩으셨을뿐만 아니라 완전히 파괴하셨기 때문이다.
(8) 성도들의 믿음과 그들의 소망, 그리고 커다란 악을 치유하시는 능력(6절) : 한 구주가 오실 것이며 그에게서 큰구원 곧 죄로부터의 구원이 올 것이다.

# 핵심
53:1-6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불의한 삶을 사는 사람의 우매함을 지적하고 있는 시편이다. 표제에 언급된 마할랏은 악기의 일종이거나 ‘슬픈 운율’을 뜻하는것 같다.

# 묵상
하나님을 떠난 자 ( 53:1-6 )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보호에서 벗어나면 결코 자유로워질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죄의 종노릇하는 것입니다(롬6:1-5). 따라서 하나님을 떠난 자는 주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권리를 잃고 수치와 경멸을 당하게 됩니다(창3:6-10).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살수 없습니다(요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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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악인의 운영에 대한 경고 52:1-5
표제는 이 시편에 관계된 이야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삼상 22:1-23).
(1) 다윗은 그 사건을 놓고 세도가 당당한 이 오만한 자에게 공정하게 따진다(1절). 도엑은 그가 사울의 종들을 부렸던 것을 보면 직책상 '상당한 지위에 있었던 자'(한글개역에는 '강포한 자'- 역주)로서 사울의 집의 가신이었던것 같다. 그는 자신이 해를 끼칠수 있는 권세를 지녔다는 사실에 대해 자랑했을뿐 아니라 실제로 저지른 해악에 대해서도 자랑하였다. 그런데 어째서 그말에 뒤이어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있도다'라는 말이 나오는지 정확히 알수 없다. 하나님의 인내와 관용은 죄인들이 마음을 강퍅하게 먹고 계속해서 자기들의 악한 일을 고집하는데 악용되었다. 하나님이 항상 그들에게 선을 행하시므로 그들은 악을 자랑한다. 그러나 도엑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끊임없는 그 인자하심은 그의 죄의 더욱 악함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선을 행하시는도다. 그리고 그점에서 하나님을 닮은 자들은 자신들이 그러하다는 것을 자랑할만하도다. 그러나 너는 끊임없이 해를 끼치는도다. 그점에서 너는 전혀 하나님을 닮지도 않고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이도다. 그런데도 너는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자랑하는도다."
(2) 다윗은 하늘의 법정에서 그를 강력하게 비난한다(2-4절). 다윗은 그에 대해 그의 혀의 악함과 그의 마음의 간사함을 죄로 고발한다. 그는 다음의 네가지 점을 들어 도엑을 고발한다.
1) 악의 : 그의 혀는 '악'을 행한다. 즉 바늘처럼 찌를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삭도같이' 벤다.
2) 거짓말 : 그는 '간사한 혀'(4절)를 가지고 이같은 해를 끼쳤다. 그는 거짓말을 사랑하였고(3절) 그 날카로운 삭도, 곧 그의 혀로 '간사를 행하였다'(2절). 그는 어떤 사실을 말하였으나 진실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실을 곡해하여 그것에 대해 다르게 말한다면 '우리가 말한것 중에 어떤것은 사실이었다'고 말한다고해서 우리가 거짓말한 죄에서 면제되지는 않을 것이다.
3) 그 죄의 간교함 :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2절). "네 혀가 네 마음이 꾀하는 악을 말하는도다."
4) 죄에 대한 애착 :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즉 "너는 악을 사랑하는도다. 너는 진실을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거짓말을 함으로써 사울을 기쁘게하려고 하는도다."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기회가 있을때를 기뻐하지 않고 해를 끼칠기회가 있을때를 즐거워하는 자들은 도엑과 같은 자들이다.
(3) 다윗은 도엑이 그 자신의 악함때문에 파멸당할 것이라고 그의 파멸을 예고하며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공표한다(5절).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시리라. "이는 네가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멸하고 죽였기 때문이니라." 도엑은 여기서 다음과 같은 운명에 처해진다.
1) 교회에서 쫓겨날 것이다.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너의 거처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장막에서 뽑아내실 것이라." 하나님의 종들에게 그처럼 많은 해를 끼친 그가 하나님의 집의 모든 특권을 빼앗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다. "너는 네가 이 세상에서 아주 깊이 뿌리를 박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도다. 하지만 너는 다음과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Ⅱ. 다윗의 신앙고백 52:6-9
다윗은 이 당시에 큰곤경에 처해있었다. 도엑이 그에게 끼친 해악은 그의 고통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우리는 고난가운데서도 담대히 행하는 그의 모습을 보게된다.
(1) 다윗은 도엑의 멸망을 내다보고서 의기양양해 한다. 의인들이 도엑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주목하여 보고 그것에 대해 말할 것이다.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말할 것이다.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리로다(6절). "저희가 하나님의 공의를 경외할 것이라."
2) 도엑을 부끄럽게 하기위해 말할 것이다. 그들은 그를 비웃을 것이나 어리석은 자들처럼 무의미하게 웃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자가 그를 비웃듯이'(2:4) 비웃을만한 분명한 이유를 가진 자로서 정당하게 비웃을 것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7절). 도엑의 번영이 파괴된 원인은 다음 두가지였다.
첫째, 그는 그의 번영을 반석위에 세우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였다.' 이처럼 하나님과 신앙이 없이 자기들의 권세와 부로써 스스로를 지탱하려고 생각하는 자들은 불쌍하게도 스스로를 속이는 자들이다.
둘째, 그는 그의 성공을 모래위에 세웠다. 그는 자신의 부가 성공을 지탱해 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여러해 쓸만큼 쌓였다'고 생각한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였다.'
(2) 다윗은 자신의 안정성을 생각하고서 의기양양해 한다(8,9절). "이 강포한 자는 뿌리채 뽑힐 것이라. 하지만 '나는' 심기워 뿌리를 내리고 든든히 서서 번성하는 '푸른 감람나무 같도다.' 그는 하나님의 거처에서 쫓겨나지만 나는 그안에서 굳게설 것이라." 그러면 우리가 푸른 감람나무와 같이 되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1) 우리는 하나님안에서 믿음과 거룩한 확신의 생활을 해야한다. 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2) 우리는 하나님안에서 감사와 거룩한 기쁨의 생활을 해야한다(9절).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즉 내게 대한 주의 약속을 이루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3) 우리는 하나님을 기대하고 겸손히 의지하는 생활을 해야한다.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 "나에 대한 주의 은총을 발견하기를 바라면서 또 그것을 위해 정해진때까지 기꺼이 기다리면서 주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모든 길에서 주를 섬기겠나이다. 이는 주의 이름이 성도앞에서 선하기 때문이니이다."

# 핵심
52:1-9
사악한 자가 필경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될 것이라는 주제를 노래하는 시편이다. 표제에 밝힌대로 본시편은 삼상 21:7; 22:9,10절을 그 역사적인 배경으로 하고있다.
인간의 본성(52:3)
문명은 날로 발달하고 있다지만 선보다 악을 사랑하는 인간의 본성이 바뀌어 선한상태로 진보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계몽주의 이후에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질서있고 선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갈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각종 범죄로 몸살을 앓고있으며, 범죄는 오히려 더욱 흉포하게 되어 가는 실정이다. 인간은 거짓과 속임과 악을 행하는 본성에서 놓여나지 못했다.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만이 이같은 본성을 교정할수 있다.

# 묵상
다윗 피난시 놉땅에 일어난 사건 ( 52:1, 2 )
다윗이 놉땅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로 피신했을때 도엑이 사울에게 밀고하여 아히멜렉 일가 85명이 학살되는 사건(삼상21:1-9)이 있었습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을 사울왕의 심부름꾼으로 알고 환대하였으나 도엑은 이런 사실을 숨기고 아히멜렉을 모함하였습니다. 악한 음모는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날카로운 비수와도 같습니다(약3:1-12).
도엑 ( 52:7 )
도엑은 악행으로 지위와 기반을 확보하려는 자로서, 자신의 출신 성분을 보완하고 왕의 신임을 얻기위해 술수를 썼습니다. 특히 그는 아히멜렉 대학살사건을 지위 향상과 정치적 기반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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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죄사함을 구하는 다윗의 간구 51:1-6
이 시의 표제는 다윗의 실족이라는 아주 슬픈이야기와 관계가 있다.
첫째, 이 시에서 그가 슬퍼하는 죄는 이웃의 아내와 저지른 어리석고 사악한 죄였다. 다윗의 이 죄는 모든 사람에게 경고를 주기위해 기록되었다. 즉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둘째, 이 시에서 그가 표현하는 회개는 그로 죄를 깨우치게 하고자 하나님에게서 보냄을 받은 나단의 사역을 통해서 일어났다. 어떤 잘못이라도 저지른 자들은 호된 책망을 그들이 받을수 있는 가장 큰친절로 생각하고 지혜로운 책망자를 그들의 가장 귀한 친구로 여겨야한다. '죄인들로 나를 치게 하라. 그것이 내게 좋은 기름이 되리로다'(141:5).
셋째,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서 전심으로 하나님께 자비와 은혜를 구한다.
넷째, 이때에 그는 신적인 영감에 의해서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의 움직임을 이 시편에다 옮겨놓았다.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나타난다.
(1) 다윗의 겸손한 청원(1,2절) : 그의 기도는 우리 구주께서 말씀하신 비유가운데서 회개하는 세리의 입에 두신 기도와 똑같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 다윗은 자신의 악한 행실을 선한 행실로 상쇄하려고 하지않는다. 그는 자신의 공로가 자신의 죄를 보상할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에 매달려 오직 죄사함과 평안만을 구한다. 하나님이여...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1) 이 긍휼을 구하기위한 그의 구실은 무엇인가?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제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게는 주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 곧 불행한 자를 동정하시는 주의 선하신 본성을 좇아 베푸시는 주의 값없는 긍휼하심과 그 긍휼하심의 풍성함외에는 주께 이유로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나이다."
2) 그가 구하는 특별한 긍휼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죄사함이다. "채무자가 빚을 갚거나 채권자가 면제해줄때 빚이 장부에서 지워지거나 선이 그어지듯이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나단은 다윗이 회개하자마자 곧 그에게 그의 죄가 사하여졌다고 안심시켰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리이다'(삼하 12: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말갛게 씻기시고 나를 깨끗이 하소서 내 죄과를 도발하소서'하고 기도한다.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셨으나 그는 자신을 용서할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끈덕지게 용서를 구한다.
(2) 다윗의 회개의 고백(3-5절).
1) 그는 하나님앞에 아주 기꺼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다. 나는 내 죄과를 아노니. 그는 전부터 이렇게 하는것이 자신의 양심을 편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있었다1(32:4,5). 나단이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말하자 다윗은 '옳소이다'라고 말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노라.'
2) 그는 그 죄를 깊이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하며 슬퍼하고 부끄러워하였다. 내 죄가 항상 내앞에 있나이다. "내 죄가 언제나 나를 마주 대하고 있나이다."
① 그는 그의 자범죄를 고백한다(4절).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아주 훌륭한 사람일수록 일단 죄를 지으면 다른 어떤사람들보다 회개의 본을 보여야 한다.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을 공표하여, 이후로 그가 고난을 당할지라도 아무도 하나님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잘못을 행했다는 말을 하지못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그는 여호와는 의로우시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진실한 회개자들은 모두가 자신을 정죄함으로써 하나님을 의로우시게 할것이다. '주는 우리에게 하신 모든 일에 의로우시나이다.'
② 그는 자신의 원초적인 타락을 고백한다(5절). 내가 죄악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다윗은 다른 곳에서는 그의 몸의 놀라운 구조에 관해 말한바 있다(139:14,15). 몸은 '기이하게 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기서 그의 몸이 죄악중에 출생하였다고, 몸이 죄와 함께 얽혀서 지어졌다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으로 지은 것과 같지않다. 우리가 본래의 순결함과 의로운 상태로부터 비참하게 떨어진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몹시 슬퍼해야 한다. 이것이 소위 '원죄'인데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그 죄가 우리의 기원만큼 오래됐고 우리의 실제적인 모든 죄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다시 타락하려는 성향이다.
(3)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다윗의 인정(6절) : 여기서 그 은혜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의('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즉 주께서는 우리로하여금 아주 정직하고 성실하며 우리의 신앙고백에 진실되게 하려고 하신다)와 우리안에서의 그의 선한 역사('주께서 내 은밀한 곳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혹은 알게 하셨나이다)를 모두 의미한다. 진리와 지혜는 사람을 훌륭하게 만드는데 매우 효과가 클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친히 우리안에서 이루시되 우리 마음을 깨우치사 우리로 그렇게하도록 만드는 정규적인 방법으로 이루신다. 다윗은 회개를 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 대한 그의 마음이 바르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반드시 받아주시리라고 믿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힘을 주시어 그가 그의 은밀한 곳에서 '마음에 숨은 사람'(벧전 3:4) 곧 새사람으로 다짐한 그의 결심을 이룰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랐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알게하시어, 이후로는 시험하는 자의 계획을 분별하여 피할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랐다.

Ⅱ. 다윗의 기도〔1〕 51:7-13
(1) 다윗의 기도내용 : 그는 여기서 하나님께 많은 청원을 올리는데 만일 우리가 거기에다 "그리스도를 보아서"라는 말을 덧붙이기만 한다면 그것들은 다른 어떤기도에 못지않게 복음적인 것이 될것이다.
1)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깨끗이 제하시고 그 죄로인해 물든 어려움도 깨끗이 제해주시기를 기도한다(7절).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하소서. 여기서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의식상의 특성을 암시한다. 즉 문둥병자나 사체를 만져서 부정하게 된 자들을 물이나 피 혹은 둘다를 우슬초 다발에 묻혀 그들에게 뿌림으로써 정결케하여 더러움으로인해 묶인 구속에서 풀려나게 하는 의식의 특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그런 의식을 통해서 이전의 특권을 다시 누릴 것이라고 안심하고 믿었듯이 내게도 주의 은총과 주의 교제하는 특권이 회복될 것이라고 나로 확신하게 하소서." 그러나 그 기도는 복음의 은혜에 기초하고 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하소서.' 즉 정결케하는 물이 우슬초다발에 묻혀 뿌려지듯이 살아있는 믿음에 의해 우리 영혼에 뿌려지는 그리스도의 피로써 정결케 해달라는 말이다. 율법에서는 시체를 만진 자는 하나님의 집뜰에 들어올수 없게되어 있다. 이같은 죽은 행실 곧 우리에게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어지게 하는 범죄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서 우리의 양심을 정결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이다(그러므로 그것을 '뿌린 피'라고 말한다, 히 12:24).
2) 그는 그의 죄가 용서되어서 사죄의 즐거움을 맛볼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는 먼저 그가 깨끗하여지기전에는 위로받기를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죄, 곧 고통의 쓴뿌리가 제거되면 그는 믿음으로 이렇게 기도할수 있다. 나로 즐겁고 기쁜소리를 듣게하사(8절). "나로 주께서 지으시고 말씀하시는 근거가 충분한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죄에 대해서 참으로 통회하는 마음의 고통이 부러진 뼈의 고통에 비유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때리고 상처를 내는 종의 영이나 치료하고 싸매는 양자의 영이나 다 동일한 영이시다.
3) 그는 완전하고 실제적인 사죄를 구한다. 이것이 바로 그가 그의 즐거움의 근거로서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9절). 주의 얼굴을 내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죄를 보고 노하시어 죄과대로 나를 처치하지 마소서. 내 죄가 항상 내앞에 있사오니 내 죄를 주의 등뒤로 던지소서. 내 모든 죄악을 주의 장부에서 도말하소서. 안개가 햇빛에 말라 사라지듯이(사 44:22) 내 죄악을 도말하소서."
4) 그는 거룩케하시는 은혜를 구한다. 그의 중대한 관심사는 그의 타락한 본성이 변화받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내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하소서(10절). "쇠약해지는 영적인 힘을 회복케하소서." 어떤사람들은 "내안에 변치않는 영을 새롭게하소서"라고 해석한다. 그는 이 문제에 있어서 자신에게 모순과 변덕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여, 앞으로는 나를 굳게 붙드셔서 결코 주를 떠나지 않게하소서"라고 기도한다.
5) 그는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에게 선한 뜻을 두시고 그안에서 선한 역사를 진척시켜 주시기를 구한다(11절). "주께서 몹시 싫어하여 두고 볼수 없는 자처럼 나를 주앞에서 쫓아내지 마소서."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그의 성령을 거두어 가시면 우리는 망하고만다. 사울이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슬픈 예이었다.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서 떠났을때 그의 죄악이 얼마나 심했고 그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했는가? 다윗은 그 사실을 알았기때문에 이와같이 간절히 구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서 내 자식들과 내 왕위와 내 생명을, 그리고 그밖에 무엇을 거두어 가실지라도 주의 성신은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6) 그는 거룩한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해서 내려주시기를 구한다(12절).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 곧 그의 구주 하나님과 영생의 소망안에 있는 즐거움외에는 어떤것도 참되고 견실한 즐거움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는 금방이라도 죄에 빠지거나 낙망에 떨어질것 같나이다. 여호와여 나를 붙드소서. 내 힘으로는 부족하나이다. 내가 홀로 버려진다면 틀림없이 나는 망할 것이니이다."
(2) 다윗의 서약(13절) : 내가 범죄자에게도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그 자신이 범죄자였기때문에 그들에게 경험적으로 말할수 있었고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께 자비를 얻었기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도를 가르칠수 있었다.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Ⅲ. 다윗의 기도 〔2〕 51:14-19
(1) 다윗은 죄책을 면해주시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 그는 감사함으로 자랑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실삼아 이 두가지를 간절히 청원한다. 그가 여기서 사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는 구체적인 죄는 피흘린 죄이다. 즉 우리아를 암몬 자손의 칼에 죽게 만듦으로써 그가 죄책을 지고있던 죄이다. 그는 만일 하나님이 그를 구원해주신다면 '그의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하나님은 사죄하는 자비와 예방하는 은혜에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그 은혜를 이용하겠다고 약속한다(15절). "주여, 내가 죄인들을 가르치고 교훈할수 있도록 내 입을 열어주소서. 뿐만아니라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게 하사 내가 찬양으로 넓어진 마음을 가질수 있게하소서." 죄악이 그의 입술을 닫아버렸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 마음속에 있는 말을 거의 털어놓지 못하였다. 죄때문에 말을 못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사죄의 확신은 '에바다' 곧 '열려라'는 말을 효과적으로 해준다. 입술이 열렸을때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것 말고 무엇을 말해야 하겠는가?
(2) 다윗은 통회하는 마음의 제사를 드린다. 그는 짐승들로 제사를 바치는 것이 그 자체로는 하나님께 아무런 이익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16절). 그 제사가 죄를 보상할수 없듯이 하나님은 그에 대한 사랑과 의무를 표현하는 마음으로 드리지않은 제물들에서는 아무런 만족을 얻으실수 없다. 그는 또한 하나님께서 참된회개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시는지를 알고있다(17절).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그것은 심령속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일로서 마음이 찢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마음이 절망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필연적으로 갖는 수치와 슬픔에 빠지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마음이다. 그것은 요시아의 마음처럼 부드럽고 하나님의 말씀에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죄의 속죄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것만이 유일한 속죄 제사이다. 그것외에는 죄를 없앨수 있는 제사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찢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제사이다.
(3) 다윗은 시온과 예루살렘을 위해 중보기도를 한다.
1) 하나님의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18절) :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즉 "시온에서 예배하는 모든 자에게, 주의 이름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모든 자에게 선을 행하소서. 그들이 나의 죄와 같이 그처럼 상처를 주고 쇠약하게 만드는 죄에 빠지지않게 보호하소서.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모든 자를 보호하고 구원하소서." 자신이 직접 영적인 고통가운데 지내본 사람들은 그와 같은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동정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줄 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를 잊지말아야 한다. 아니 우리의 선생께서는 매일 기도속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소서'라고 기도를 시작하도록 우리를 가르치셨다.
2) 하나님의 교회의 명예를 위하여(19절) : 그들은 순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마련한 모든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장막에 와서 주의 제단에 어린양과 수양뿐만 아니라 가장 값비싼 제물인 수소도 드릴 것이다. "주께서 그 제물들을 기뻐하시리이다." 주의 열납을 방해하려고 위협하던 죄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을때 우리가 그와 같은 기대를 갖는 것은 옳은 일이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공중집회를 통해서 갖는 교제를 생각하는 것, 즉 그들이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영접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다.

# 핵심
51:1-19
다윗의 회개시이다. 다윗의 생애에 큰오점을 남겼던 무서운 범죄(간음죄와 살인죄)를 그 배경으로 한다(참조, 삼하 11장; 12:1-14).

# 묵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 51:1-12 )
다윗이 신앙영웅이 될수 있었던 것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될수 있었던 것은 범죄후 즉각적으로 진실하고 겸손한 참회를 했고, 어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주만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영웅의 위대성이란 죄를 짓지않는 그의 완전한 인간성에 있지않고, 죄를 즉시 고백하여 죄에서 벗어나는 그의 신앙적 순결성에 있습니다. 이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도 연약한 본성때문에 불가피하게 범죄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이때 즉각적이고 진실하게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본 시의 배경 ( 51:1 )
본 시는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후 이를 숨기기위해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게한뒤 나단선지자로부터 경고받은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삼하11, 12장). 다윗은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을때 이를 물리치지 않고 자기 옷을 찢으며 회개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다윗이 자신의 죄과를 항상 마음에 두고 철저하게 회개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범죄한 다윗이 가장 두려워한 것 ( 51:11 )
범죄한 다윗은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과 보호의 손길에서 쫓겨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다윗은 죄과로인한 형벌을 감면해달라는 기도는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형벌을 받을지언정 주의 언약밖으로는 추방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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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심판하시는 하나님 50:1-6
아삽은 이 시에 곡조를 붙인 악장(the chief musician)이었을뿐만 아니라 직접 이 시를 지은 사람인듯 싶다. 왜냐하면 우리는 히스기야 시대 사람들과 '다윗과 선견자 아삽 시로' 하나님을 찬송하였다는 것을 읽을수 있기 때문이다(대하 29:30).
(1) 만왕의 왕의 이름으로 법정이 베풀어졌다(1절).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그는 엘(El), 엘로힘(Elohim), 여호와(Jehovah),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시며 자비로우신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하나님은 재판장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은 심판하려 세상에 오셨다. 성령은 심판의 영이시다. 온땅이 이 법정에 출두하도록 부름을 받는다.
(2) 심판이 열리고 재판장이 참석하셨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실때 그것이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에서 비치시고 그 오른손에는 불같은 율법이 있도다'(신 33:2)라고 말해졌었다. 그렇듯이 이제 하나님이 사람들의 위선을 책망하시고, 그의 복음을 보내어 율법의 제도를 폐지시키시기 위해 오실때 그것은 여기서 다음과 같이 말해진다.
1) 전에 시내산 꼭대기에서 그렇게 하셨듯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실 것이다'(2절).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시온에서 확정되었으므로 하나님을 노하시게 만든 백성들에 대한 그의 심판은 시온에서부터 선고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시온에 거하시므로 하나님이 '시온에서 빛을 발하신다'고 말할수 있다. 영적예배를 세우는 복음은 '시온에서부터 나오게'(사 2;3;미 4:2) 되어있었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게'(눅 24:47) 되어있었다. 여기서 시온이 '온전히 아름답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거룩한 산이었기 때문이다. 거룩함은 실로 온전한 아름다움이다.
2) 그는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고' 죄인들에게 그의 노여움을 보이시고 의식법이라는 칸막이 벽을 헐어버리실 것이다. 이 사실은 이제 더이상 숨겨지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날에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고' 그의 율법을 들으려고 하지않던 자들에게 그의 심판을 듣게하실 것이다.
3) 그의 모습은 위엄있고 두려울 것이다. 그앞에는 불이 삼키고.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그의 말씀을 비난하는 자들에게로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하여 죄인들이 시온에서 자기들의 죄때문에 깜짝 놀라게될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의 왕국이 세워져야 할때가 이르자 그리스도께서는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눅 12:49). 성령은 불의 혀같이 갈라진 혀의 모양으로 주어졌고 매우 소리가 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에 의해 알려졌다(행 2:2,3). 마지막 심판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불꽃중에 나타나실 것이다(살후 1:8).
4) 시내산에서 그가 '천만 성도'에게 내려오셨던 것처럼 이제 그는 '윗 하늘에 반포하여' 이 엄숙한 소송절차를 주목하게 하실 것이다(4절).
(3) 무리들이 소환받는다(5절). 나의 성도를 네(영어성경은 '내'로 되어있음-역주) 앞에 모으라. 이 말은 다음 둘중의 하나로 이해할수 있다.
1) 실제로 성도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수 있다. 하나님은, 율법은 행하지 않으면서 제사만 드리는 자들의 예배를 거절하실지라도 제사로 '그와 언약을 맺고' 또 제사제도의 목적에 주의를 기울이고 부응하는 자들은 은혜로 영접하실 것이다. 불쌍한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의 영접을 받기위해 그와 언약을 맺을수 있는 것은 제물, 곧 위대한 희생제물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만(율법의 모든 제사의 가치는 그에게서 나온다) 가능하다.
2) 이 말은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라고 불린(출 19:6)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신앙고백을 한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수 있다.
(4) 이 엄숙한 심판의 결과가 예고된다(6절).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그 하늘은 심판의 증인으로 부름받았다(4절). 하늘에 있는 자들이 할렐루야를 외칠 것이다. 하늘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 곧 그의 지혜와 능력을 선포하며(19:1) 또한 그에 못지않게 '심판장'이신 하나님의 영광, 곧 그의 공의를 선포할 것이다. 하늘은 19:3절에서 나오는 말처럼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이 두가지 영광을 큰소리로 선포한다.

Ⅱ. 형식적인 자세의 무익함 50:7-15
하나님은 여기서 의식법을 지키는 것으로 신앙의 전부를 삼고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다.
(1) 하나님은 자기와 이스라엘 사이의 본래의 계약을 내세우신다.
(2) 그는 율법의 제사를 무시하신다(8절).
1) 이것을 율법아래서의 제사의 실형을 회고해 보는 말로 간주할수 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과 논쟁하셨다. 그러면 그 논쟁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유대인들은 그들이 제단에 가져온 많은 제물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서 그들에게 그들의 제물을 필요로하지 않았다고 밝히신다.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을(9,10절) 마음대로 쓰실수 있는 그가 무엇때문에 수소나 수염소를 필요로 하시겠는가? 무한히 스스로 충족시키실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가 그에게 무엇인가를 더해 드리기에는 전적으로 불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제물로 아무런 득도 보지않으셨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13절). 그들의 제물이 그 자체로 그리고 그것들이 지닌 본래의 우수한 점에 의해서 하나님께 어떤 즐거움이나 찬양을 드릴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한한 영이신 분이 우리 몸처럼 음식에 의해서 생명을 유지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일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보다 낫다.
2)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서 이 제사들이 폐지될 것을 내다보는 말로 간주할수 있다. 하나님이 메시야의 왕국을 세우실때에는 제사와 예물로써 하나님을 예배하는 옛방식을 폐지하실 것이다. 그는 더이상 제물을 '항상 그앞에'(8절) 두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는 더이상 그를 예배하는 자들에게 수소나 수염소를 그에게 가져와서 제단에 사르도록 요구하시지 않을 것이다(9절).
(3) 그는 기도와 찬양이라는 가장 나은 제사에 주의를 돌리게 하신다. 기도와 찬양은 율법아래서 모든 제사보다 앞서 드려졌고 다른 무엇보다도 강조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복음아래서 그것은 개혁의 시기까지 부과되었던 감각적 의식들을 대신한다. 그는 여기서 제사가 무시되고 폐지된때에 무엇이 선한 것이고,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14,15절).
1)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 고백하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은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는' 제사이다(51:17). 죄를 버리지않고 드린 속죄제물은 열납되지 않는다.
2)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를 인해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매일, 매일 자주(하루에 일곱번씩 주를 찬양하리이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겸손하고 고마운 마음에서 나온 감사기도라면 그것은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다'(69:30,31).
3) 우리는 그와 맺은 언약을 이행해야 한다.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네 죄를 버리고 네 의무를 더 잘 이행하라." 해몬드 박사는 이 말을 복음의 주요한 의식인 성만찬에 적용한다. 즉 우리는 성만찬때, 우리를 구원하기위해 아들을 보내신 그의 위대한 사랑을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장차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의 모든 예표대신에 이미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복된 기념물을 갖는 것이다.
4) 우리는 환난날에 신실하고 열렬한 기도로써 하나님을 불러야 한다(15절).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Ⅲ. 악인들에게 주어진 경고 50:16-23
하나님은 시편 기자를 통해서 그의 백성들에게 그를 바르게 예배하는 방법을 가르치신 다음 악인들에게로 말머리를 돌리신다.
(1) 그들에 대한 비난.
1) 그들은 신앙의 명예와 특권을 침해하여 빼앗았다고 비난받는다(16절). 악인에게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경건한듯 보이나 사실은 불경스런 자들이 신앙이라는 가면에 어떤 칭호를 붙이고 있는지를 보이는 것은 그들에 대한 도전이다. 어떤사람들은 그것이, 메시야의 왕국과 앞부분에서 언급된 복음적인 예배방법이 세워질때에 유대교회의 선생과 지도자였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예언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 위대한 혁명을 맹렬히 반대하였고 모세의 자리에 앉음으로써 그들이 가졌던 모든 권세와 권리를 사용하여 그것을 방해하려고 하였다. 거룩하신 우리 구주께서 그들에 대해 하시는 말씀(마23장)이나 바울의 설명(롬 2:21,22)을 보면 이 훈계가 그들에게 아주 잘 들어맞는 것을 잘 알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례를 전하기위해 그것을 떠맡았으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미워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복음을 거절하고서 율법을 설명하기위해 어떻게 해야했는가? 그러나 이 말은 늘상 죄악을 저지르면서도 경건을 고백하는, 특별히 경건을 전하는 모든 자들에게 적용될수 있다.
2) 그들은 신앙의 법과 훈계를 어기고 깨뜨렸다고 비난받는다.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그들은 교훈하기를 좋아하고 다른사람들에게 그들이 해야할바를 말하기를 좋아하였다. 이렇게 하는것이 그들의 자만심을 만족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교훈받기는 싫어하였다. 이는 이렇게 하는것이 굴욕스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네가...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3) 그들은 악한 죄인들과 연합한다(18절). 네가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너는 그를 책망하기보다는 그의 행실을 찬성하며 그의 몹쓸 장사에서 얻은 이득을 나누기를 바라는도다." 간음하는 자와 동료가 되며.
4) 그들은 계속해서 혀로 악한 죄를 짓는다(19절). 네 입을 악에게 주고. 즉 "악에 몰두할뿐만 아니라 모든 악한 말에 전념하는도다." 네 혀도 궤사를 지으며. 즉 "거짓말하며 비방하는도다"(20절).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내 형제를 야비하게 욕하고 그에 대해 거짓 설명을 하며 네가 판사석에 앉아있는 재판관처럼 권위를 가지고서 이런 일을 하는도다. 네가 멸시하는 자의 자리에 앉아서 마땅히 존경하고 친절히 대해야할 사람을 비웃고 중상하는도다."
(2) 이 비난의 증거(21절) :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그 사실은 부인하기에는 너무나 명백하고 그 잘못은 용서받기에는 너무나 나쁜 짓이다. 네가 이 일 행한 것을 하나님이 아시며 네 마음도 알고 계시도다."
(3) 재판장의 인내와 그 인내에 대한 죄인의 악용 : 내가 잠잠하였더니. 즉 "네 죄악의 길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고 네 생각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노라. 네 악한 행실에 대한 선고를 늦추고 속히 실행치 않았노라." 그의 인내가 더욱 놀라운 것은 죄인이 그 인내를 그와같이 악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침묵을 동의로 여기고 그의 인내를 묵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처형이 더 오랫동안 연기되면 연기될수록 그만큼 그들의 마음은 더 강퍅해진다.
(4) 위선자들의 두려운 운명에 대한 정당한 경고(22절) :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하나님이 너희의 모든 죄를 아시고 그것을 일일이 기록해 두시며 너희가 악용한 인내는 더욱 큰진노로 변하리라는 것을 생각하라. 만일 너희가 이를 생각지않고 그 생각으로써 마음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가 너희를 찢으시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5) 이 두려운 운명을 예방하는 방법에 관한 충분한 교훈.
1)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그를 영화롭게 한다'는 것을 배운다. 제사를 드리는 자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그와같은 영적인 제사는 하나님께 열납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든 제사에 명령된대로 하나님께 찬양을 들려야 한다. 제물이 신성한 불로 태워지듯 찬양이 거룩하고 경건한 애정의 불꽃으로 불붙여지는 것을 보라.
2)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은 또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 행위를 옳게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는 말을 듣는다. 감사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는 생활이 더 낫다.

# 핵심
50:1-23
아삽의 교훈시이다. 형식적인 예배를 책망하고 실천적인 경건이 뒷받침되는 참된예배를 드릴 것을 교훈하는 내용이다. 아삽은 여두둔, 헤만과 함께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성전 찬양대를 이끌었던 찬양 대장이다(대상 6:39). 당시에 그들은 음악적인 기교만으로 찬양을 이끌었던 사람과는 달랐다. 그들은 선견자로 불렸고(대하 29:30),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시편을 작곡하기도 했다.

# 묵상
여호와께 대한 백성들의 마땅한 자세 ( 50:1-6 )
여호와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요4:24). 이것은 곧 자신의 삶전체를 하나님이 기뻐받으실 산제사(롬12:1)로 드리라는 사도바울의 메시지와도 연결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론과 실천, 형식과 내용이 조화된 참생명력이 있는 신앙이어야 하는 당위성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올바른 자세 ( 50:14, 15 )
하나님앞에 예배드리는 자는 감사함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짐승이 필요해서 인간에게 희생 제사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희생제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드리는 예배자의 올바른 예배 자세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드리는 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심령의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위선자들의 악행 ( 50:16 )
위선자들은 정욕과 이해타산을 우선하고 하나님의 율례와 교훈을 멸시합니다. 뿐만아니라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폐기합니다(마15:6). 그리하여 위선자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자기와 같이 평범하고 유한한 인간으로 동일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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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함 49:1-5
본문은 세상이 헛되며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시편 기자의 머리말이다.
(1) 그는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1,2절).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 교훈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들에게만 특별히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빛도 이 교훈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이 교훈을 알아들을수 있으니 그들이 죽게될때 그들의 재산이 아무도움도 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이 세상의 부를 지나치게 기뻐함으로인해 위험에 빠지듯이 세상의 부를 지나치게 열망함으로인해 위험에 빠지게 된다.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그는 지혜와 지식을 말해야 했다. 따라서 그의 말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로 말미암아 지혜로와지고 총명하게될 것이다. 그 교훈은 그 자신이 직접 충분히 음미하였던 것이다.
(2) 그는 스스로 주의를 기울인다(4절).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그의 말이 '비유'라고 일컬어졌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상징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지혜로운 강화로서 매우 교훈적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솔로몬의 잠언에 관해 사용된 것과 똑같은 단어이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자들은 먼저 자신들이 배워야한다.
(3) 그는 내용을 할수 있는한 명백하고 감동적으로 말하겠다고 약속한다.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어떤사람들은 그의 말이 명백하지 않고 수수께끼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에게 보이는 것들의 헛됨과 보이지않는 것들의 실재와 중요성을 말하면 그들이 "아니, 그는 수수께끼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얘기한다. 또한 다른사람들은 그의 말을 잘 이해하였으나 그 말에 감동되지 않았다. 그 말이 그들에게 결코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위하여 수금으로 그의 말을 풀려고 하였다. 즉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을 끌어당기기위해 그러한 방법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허버트는 "한편의 설교가 날려보낸 사람을 한편의 시가 찾아낼수 있다"고 말한다.
(4) 그는 그 비유를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말을 시작한다.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내가 어찌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사 8:12) 곧 세상사람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랴. 내가 어찌 근심과 박해의 날에, 즉 나를 걸어 넘어뜨리려고 애쓰는 자들의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날에 또 그들이 내게 해를 끼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때에 두려워하랴? 내가 왜 자신의 재산을 힘으로 믿고있는 자들을 두려워해야 하겠는가? 나는 그들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 왜냐하면 그들이 그것으로 나를 파멸시킬수 없기 때문이라." 우리 뒤꿈치의 죄악이, 혹은 우리 걸음의 죄악, 즉 우리의 지난 죄악이 우리를 따라 에울 것이다(5절). 즉 우리앞에 가지런히 놓일 것이다. 이날에 세상의 악인들은 두려워할 것이다. 세상을 떠나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큼 세상에 마음을 두고있는 자들에게 두려울 것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는 선인이야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랴(23:4).

Ⅱ. 세상 재물의 허탄함 49:6-14
(1) 그의 몫이 이생뿐인 세상사람들의 정신과 길에 대한 묘사(17:14) : 사람은 이세상에서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그것에 의해서 더나아질수가 있다. 즉 그것에 의해서 그의 마음에 사랑과 감사와 순종이 더욱 풍부해질수 있고 그것을 가지고서 선을 행할수 있다. 그 선행은 훗날 그에 대해 셈할때 풍성한 열매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세속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람이 재물을 가졌기때문이 아니라 재물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겨 그것에 희망을 걸기 때문이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6절). 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몫과 행복으로서 의지한다. 그들의 금이 그들의 소망인 것이다(욥 31:24). 따라서 그것은 그들의 산이 된다. 그래서 우리 구주께서도 부자가 구원받기 어렵다고 설명하신다(막 10:24).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참조. 딤전 6:17).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그들의 땅의 이름을 지음으로써 자기들이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설사 그땅에 그들이 지은 이름이 그대로 보존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잘것없는 명예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땅은 흔히 주인이 바뀔때마다 그 이름이 바뀌곤 한다. 저희의 속생각에 그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들은 이러한 생각으로 스스로 즐거워한다.
(2)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증거 :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13절). 하나님은 재물이 여러해 쓸만큼 쌓였고, 따라서 자신이 그것을 누리게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친히 선언하셨다(눅 12:19,20).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유전되는 병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 병을 치료하기전까지는 천성적으로 그 병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다 내어놓을지라도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목숨을 건질수가 없고 그 친구가 죽게 되었을때 그를 위해 속전을 바칠수도 없다(7-9절). 영원한 생명은 이세상의 재물로 얻기에는 너무나 값진 보석이다. 우리가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것이 아니다(벧전 1:18,19).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모든 재물로도 할수 없는 일을 우리를 위해 하실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어떤 것보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스도는 형제나 친구, 아니 아무리 귀한 신분이나 권리를 가진 사람이라도 우리를 위해 할수 없는 일을 행하셨다. 그러므로 아비나 형제를 그보다 더사랑하는 자들은 그에게 합당하지 않다. 어떤부자들은 지혜롭고 또 지략이 있으나 그들이 그들의 책략과 수완을 다 발휘할지라도 죽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 타격을 모면하지 못한다. 또 어떤사람들은 어리석고 미개하다. 이들은 비록 세상에서 선을 행하지는 않지만 큰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그럴지라도 죽음이 그들을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술책을 써서 해악을 끼치는 지혜로운 자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에 의해 멸망하고 사라질 것이다. 그들의 재물이 그들이 죽어가는 때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못할 것이다(12절).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어떤사람이 최고의 지위, 곧 세상에서 이를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행복한 지위에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해보라. 그때에라도 그는 장구치 못한다. 그의 명예는 한없이 계속 가지 않는다. 그것은 지나가는 그림자이다. 죽음 저편에서의 그들의 상태는 매우 비참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오만한 죽음에게 이렇게 물을수 있다. '너의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죽음은 오만한 죄인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너의 재물이, 너의 화려함이 어디에 있느냐?" 거룩함의 아름다움은 다른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소멸시키는 죽음도 건드리지 못하고 조금도 그것을 손상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Ⅲ. 하나님의 백성의 특권 49:15-20
(1)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몇가지 타당한 이유가 여기에 제시된다. 다윗이 여기서 죽음 저편에 있는 행복한 상태에 대해 즐거운 기대를 갖듯이 만일 그들이 그런 즐거운 기대를 지니고 있다면 그런 두려움을 가질 까닭이 없다(15절). 죽음으로부터 영혼이 구속함을 받고 영광에 이르게되는 것을 믿음으로 소망하는 것은 임종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도움과 기쁨이 된다. 그들은 다음 두가지를 소망한다.
1)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음의 권세에서 구속하시기를 바란다. 이 말에는 첫째, 영혼이 몸과 함께 무덤에 내려가지않도록 보존해달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죽음은 하나님의 선고(창 3:19)에 의해서 몸을 지배하는 권세를 쥐고있다. 죽음은 그 권세를 집행하는데 있어서 아주 잔인하다(아 8:6). 그러나 죽음이 영혼에 대해서는 그같은 권세를 쥐고있지 않다. 죽음은 몸을 죽이고 가두며 소멸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때 영혼은 전보다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활동하며 담화한다(계 6:9,10). 영혼은 물질이 아니므로 소멸되지 않는다. 죽음이 촛농을 깨뜨릴지라도 그속에 켜있는 촛불은 끄지 못한다. 둘째, 이 말에는 몸과 영혼을 부활때에 다시 결합시켜달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은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15절). 그러므로 첫번째 사망에는 쏘는 것이 없고 그 죽음이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2) 하나님이 그들을 영접해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그들을 영접하실수 있도록 그들의 영혼을 구속하신다(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그가 그들을 그의 은총가운데로 영접하시고 그의 나라안으로, 그들을 위해 마련한 처소(요 14:2,3), 곧 영원한 처소로 불러들이실 것이다(눅 16:9).
(2)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세상에서 악인의 번영과 권세를 두려워하지 말아야하는 이유가 제시된다.
1) 그는 죄인의 번영을 시기하기가 아주 쉽다고 가정한다. 즉 그는, 죄인은 부자가 되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마음대로 부릴수 있고 또 명령만 하면 모든 것을 손에 넣을수 있다고 전제한 것이다. 그들은 매우 태평하며 안심하고 있다(18절). 저가...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즉 그는 자기가 세상에서 성공했기때문에 매우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신자들은 진리의 하나님안에서 자기를 축하한다(사 65:16).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실때 자신들이 복되다고 생각한다. 세상사람들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서 자기를 축하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재물이 많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것 가운데서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것에 박수갈채를 보내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전쟁을 선포하실때에도 스스로에게 평안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자랑하였으나 너희는 그 사람처럼 자랑하지 말고 너희를 위해 바르게 행하여라. 그러면 너희가 영원한 복을 확보할때 사람들에게는 칭찬을 받지않을지라도 하나님에게 칭찬을 받을 것이며 그것은 너의 영원한 명예가 될 것이라."
2) 그는 형통하는 죄인들의 결국을 내다보도록 우리를 지도함으로써 그 유혹의 힘을 충분히 물리칠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73:17). 그가 죽을때는 또다른 세계로 간다. 그러나 그가 그처럼 오랫동안 쌓아올린것 중 아무것도 가져가는 것이 없을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은혜는 우리가 올라갈때 함께 올라가는 영광이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영광도 우리를 뒤따라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즉 그가 그말을 찬성하고 그 행실을 본받은 그의 세속적인 악한 조상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아니한(슥 1:4) 그의 열조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영화속에 있는 우준한 자, 사악한 자는 해아래 있는 어떤것 못지않게 정말 보잘것 없는 자들이다. 멸망하는 짐승같도다(20절). 자신을 짐승처럼 만드는 자는 차라리 짐승이 되는 것이 낫다.

# 핵심
49:1-20
교훈을 베푸는 지혜시. 물질을 의지하는 삶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을 주제로 제시한다.
소유에 관한 가르침(49편)
본시는 물질적인 부를 소유하는 일자체를 정죄하지 않으며, 반대로 가난 그 자체를 미덕으로 추켜 세우지도 않는다. 다만 물질에 너무 의지하며 부유하게 되려는 일에만 소망을 두는 삶의 자세가 잘못된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물질만 풍족하면 만사가 형통하고 심지어 영원한 안전이 보장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위험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 묵상
재물의 능력 ( 49:1-20 )
본문은 재물이 우리를 죽음에서 건질수 없고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써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수 있음을 노래한 시입니다. 시인은 여기서 재물은 허탄한 것이며, 무력한 것이며, 유한한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재물을 자랑하거나 부러워하지 말아야합니다. 지나치게 재물을 탐닉하지 말아야하며 지나치게 재물을 구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물질을 소망으로 삼는 자 ( 49:6 )
물질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는 자의 특징은 물질이 많음으로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물질을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습니다. 재물에 소망을 두는 자들은 재물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재물의 지배를 받게됩니다. 그래서 결국 물질로 신을 삼고 물질에 인생의 소망을 두는 사람의 최후는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못하는 자 ( 49:19, 20 )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못하는 자란 세상에서 부와 명예를 누리면서도 주의 말씀을 좇아 지혜와 명철을 얻지못한 자들을 지칭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지혜대신 물질을 신으로 여기며 살다가 멸망하는 우매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귀한 비밀을 깨달을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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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Ⅰ. 시온의 아름다움과 힘 48:1-7
여기서 예루살렘의 명예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점이 언급된다.
(1) 시편 기자는 시온에 대해서 이제까지 그가 세상의 어느 장소에 대해서 말했던 것보다 더 애정어린 말을 하였다. '이는 나의 영원히 쉴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132:13,14). 이 성은 '큰 왕'(2절), 곧 온땅의 왕의 '성'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특별히 그곳에 계심을 밝히기를 기뻐하셨다. '하나님이 유다에 알린바 되셨으며 그 이름은 온이스라엘에 크시도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은 광대하시다'(1절).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말이 예루살렘과 그안에 있는 모든 기구에 쓰여졌기(슥 14:20,21)때문에 예루살렘은 '그의 거룩한 산'이라고 일컬어졌다. 하나님은 거리에서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왕궁안에서도 피난처로 알려지셨다. 이런 모든 이유때문에 예루살렘 그리고 특별히 성전이 세워져있는 시온산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터가 높고 아름다우며' '온세상의 즐거움'으로 칭찬을 받았다(2절). 그 터는 무한하신 지혜자께서 그곳을 성소의 위치로 택하셨을때 모든면에서 마음에 흡족히 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곳을 아름답게 만든 것은 그것이 거룩한 산이라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거룩함에는 아름다움이 있기때문이다. 시온산은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해 있어서 그쪽에서 불어닥치는 차갑고 매서운 바람으로부터 성을 보호해주는 차폐물 역할을 하였다.
(2) 세상의 열왕이 예루살렘을 두려워하였다. 예전에도 그들이 그들의 원수인 이스라엘을 두려워할 이유가 충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치려고 모였었다(4절). 열왕은 예루살렘에 대해 기뻐해야 하였으나, 오히려 시기하여 쉽게 그 성의 주인이 될 것을 의심치않고 함께모여 앞으로 행진해 나아갔다. 야곱의 장막의 광경이 발람을 놀라게 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던 생각을 버리게했던 것처럼(민 24:2) 예루살렘의 광경은 갑자기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그들의 격정을 저지시켰다. 저희가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갔도다(5절). 예루살렘에 몹시 두려운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 광경이 그들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와 그 성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에 관해 들었던 것을 생각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능자의 상대가 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떨림과 고통이 저희를 잡았다'(6절). 그들이 예루살렘을 보고 사로잡힌 공포가 여기서는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에 비유되었다. 또한 이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대한 그들의 계획이 좌절된 것이 함대가 폭풍을 만나서 산산이 파괴된 두려운 일에 비유되었다(7절).

Ⅱ. 교회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48:8-64
(1)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견고히 하라. 우리가 이전의 섭리, 즉 옛적에 행하신 것을 들은대로 오늘날 우리시대에 행하시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시며 예루살렘은 우리 하나님의 성으로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고 특별한 관심을 보이시는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그 사실을 보았으며, 우리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고 그의 선하심을 보았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그의 염려와 관심을, 즉 그가 '예루살렘을 두르시는 불벽이요 그 중에 거하시는 영광'이시라는 사실을 보았다.
(2) 이로 말미암아 교회의 안정성과 영속성에 대한 우리의 소망을 북돋우라. 우리 하나님의 성에 대해서 들은 것을 우리가 본것과 비교해 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성을 영원히 견고케하시리라고 결론지을수 있다. 이 사실은 예루살렘에서 성취되지 않았고(그 성은 오래전에 파괴되었고 그 모든 영광은 사라졌다) 복음교회안에서 이루어졌다.
(3) 이로 말미암아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선한 생각을 가득 채우라. 우리가 들었고 보았고 또 기대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주의 전가운데서' 모일때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깊이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수 있다(9절).
(4)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큰일들의 영광을 그에게 돌리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그 사실들을 언급하라(10절).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예루살렘에서뿐만 아니라 땅끝까지 미쳤나이다." 주의 이름이 미치는 곳까지 찬송도 따라갈 것이며 마침내 땅의 모든 끝이 그를 찬양하는 데에까지 이를 것이다(22;27;계 11:15). 어떤사람들은 주의 '이름'을 두고서 특별히 그의 영광스런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로 이해한다. 그 이름과 같이 찬송도 그리할 것이다. 이는 모든 피조물이 심지어 땅끝까지도 하나님의 지배를 받기때문이다.
(5) 교회의 모든 지체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그의 교회를 위하여 행하시는 일에서 위로를 얻으라(11절). "시온산은 기뻐하라. 성소를 시중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게다가 모든 유다의 딸들 즉 성읍들, 그리고 그 거민들아 기뻐하라. 여인들은 공적인 축제때 하는 것과 같이 노래하고 춤추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큰구원을 감사함으로 축하하라."
(6) 교회의 아름다움, 능력 그리고 안정성의 실례와 증거들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그 관찰결과를 정확하게 전달하라(12,13절). 너희는 시온을 편답하고. 어떤사람들은 이 말을 승리예식에 관계된 것으로 본다. 이 예식에 참여한 자들은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면서 성벽을 돌아야 한다(느헤미야 12:31절에서 유다의 방백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이렇게하는 가운데서 망대를 계수하고 성벽을 자세히 보아야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이루신 최근의 놀라운 구원을 찬미해야 한다. 그들은 망대와 성벽이 아주 튼튼해서 그중 하나도 모인 열왕들에게 손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놀라움을 가지고 주목해 보아야한다. 이 사실을 그의 거룩한 성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의 놀라운 예로서 '후대에 전하라.' "네 마음을 그 성벽에 두라." 이 말은 시온의 주요 성벽은 그들이 볼수 있는 감각적인 대상물이 아니었고 그들이 소망을 두어야하는 신앙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칼빈은 그들이 여기서 망대와 성벽 그리고 예루살렘 궁전들의 자세한 설명을 후손에게 전달하도록 지시받고 있는 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모든 것들이 다 파괴되어 더이상 아무것도 볼수 없게되리라는 뜻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렇지않다면 그것들의 묘사와 역사를 보존해야할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성전건물에 찬탄하고 있을때 그들의 선생은 그들에게 잠시후면 그 모든 것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4:1,2). 그러므로 "네 마음을 그 성벽에 두라"는 이 말은 반드시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 교회는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축성된 반석위에 세워졌고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분의 보호를 받는다.
(7) 하나님안에서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이 있다는 확신가운데서 승리하라.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14절). 이것을 후대에 전하라. 즉 '이 하나님' 곧 우리를 위해 그처럼 큰일을 행하신 분이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전하라. 그가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면 '그가 우리를 인도하시리라.' 즉 언제나 성실하게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죽음 위로(어떤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우리를 죽음이 미치지않는 곳에 세울때까지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우리를 죽음을 '넘어서'(또 어떤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우리를 죽음 저편에 있는 행복에 이르기까지, 더이상 죽음이 없을 생명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실 것이다.

# 핵심
48:1-14
46편처럼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시온(예루살렘)을 노래하는 시편이다. 하나님으로 피난처를 삼는 사람은 그분의 구원과 인도하심을 받는다고하는 것이 본시의 주제이다.

# 묵상
시온산의 상징 ( 48:1 )
예루살렘은 택한 백성, 곧 교회의 상징입니다. 또한 예루살렘은 오늘날의 교회와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나라를 예표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아름다움과 강건함은 모두가 하나님의 내재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시온성 ( 48:1-14 )
본문은 대적의 침범에서 시온을 구한 구원을 축하한 찬송시로서 승리하는 교회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산 시온으로 알려진 예루살렘은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도성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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