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이사야 1장 10절~20절]
10절 -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절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절 -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절 -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절 -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절 -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절 -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절 -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절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절 -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절 -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1.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무엇이라고 부르십니까? 또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10절)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소돔의 관원들, 고모라의 백성들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법에 귀 기울이라고 요구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넘치는 죄악 때문에 아브라함 시대에 멸망한 성읍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읍 안에 의인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성적 죄악이 난무해 극도로 타락한 성읍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끈질긴 간구에도 유황불로 심판을 받아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소돔의 관원들, 고모라의 백성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유다 백성들의 행위가 유황불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에 별로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유다 전역은 이미 죄로 물들었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셨지만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 유다 백성들의 대표적인 죄는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기로 하는 순간에 죄는 넘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을 죄라고 여기지 않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로 빠져 드는 지름길입니다.

2.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하는 종교 행위를 싫어하십니다(11~15절상).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15하~17절)
유다 백성들은 번제과 월삭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 성회로 모이는 것, 기도하는 것 등 일체의 종교 행위들을 규정에 따라 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종교 행위들을 싫어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유다 백성들의 악행 때문입니다.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채 종교적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짐승들을 끌어왔고, 월삭 즉 매월 첫날에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안식일을 꼬박꼬박 지켰고, 대회나 성회를 거창하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행위가 성전의 마당만 밟는 것이라며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에 그들의 기도도 듣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런 종교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역겨움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종교 행위보다 그들의 삶을 먼저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죄를 지으면서 거룩하게 예배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예배 이전에 선행을 배우고, 공의를 구하며, 연약한 사람들을 도와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고 손발과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귀로 말씀을 열심히 들었지만, 손발로 말씀을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와 기도에 대해 귀를 막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으면 하나님도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3. 유다 백성들은 죄를 짓고 법정에 끌려온 죄인과 같습니다. 죄가 가득한 그들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18절)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향해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고 초청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의 죄가 사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라’는 단어는 법정에서 재판장이 피고를 일으켜 세울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피고는 재판장 앞에 일어 서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죄를 지어 법정으로 끌려온 가련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심판에 앞서 최종적으로 회개의 기회를 한 번 더 주십니다. 유다 백성들은 마지막 기회를 붙잡아 하나님의 사랑과 자신의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의 죄가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양털과 같이 희어지고 깨끗해질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초청을 외면하지 말고 일어서서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다시 한번 기회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더라도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최후의 순간에 용서하기 원하시며, 그분의 백성들을 깨끗이 하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의 얼굴을 피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죄사함을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위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오라’고 계속 부르고 계십니다.

4. 내가 드리는 예배와 유다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를 비교해 봅시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진 않습니까?
유다 백성들은 제사를 빼먹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제사는 껍데기뿐이었고,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예배도 그럴지 모릅니다. 우리는 형제, 자매들과 화해하지 않고 예배드리며, 삶은 엉망진창인데도 거룩한 양의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예배드릴 때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예배드릴 수 있지만, 하나님이 그 예배에 속지 않으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5. 죄를 반복해 지을 때, 나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그 죄에 대해 반응하는 나의 자세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대부분이 같은 문제로 넘어집니다. 어제 괴롭혔던 문제들이 오늘 다시 발목을 잡고, 내일에도 넘어뜨릴 것입니다. 문제는 같은 죄가 반복되면서 죄책감이 더 많이 쌓이거나, 그 죄에 무덤덤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책감에 휩싸이면 자존감을 잃고 하나님 앞에 죄 고백하기를 꺼리게 됩니다. 한마디로 염치가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죄에 대해 무덤덤해지면 그 죄를 고백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두 가지는 모두 바람직한 경우가 아닙니다. 죄가 반복되더라도 주저하지 말고 그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아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고난의 종, 예수 그리스도

[이사야 53장 1절~7절]
1절 -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절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절 -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절 -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절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절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절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1. 이사야 선지자가 가리키는 ‘그’, 곧 메시아의 모습은 어떠합니까?(2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이사야가 말한 ‘그’는 ‘고난의 종’을 가리키며, 그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모습은 연한 순같이 연약해 보이고, 마른 땅에서 힘들게 나온 뿌리같이 볼품이 없었습니다.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어서 사람들이 흠모하고 따를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 묘사는 예수님에게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변방의 갈릴리 지역, 특히 나사렛을 천시했습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나다나엘에게 소개했을 때 나다나엘이 보인 반응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시큰둥하게 말했습니다(참조, 요 1:46). 사람들이 볼 때 예수님은 나사렛 출신일 뿐만 아니라, 목수 출신의 천한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천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2. ‘그’, 곧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3절)
사람들은 그를 멸시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얼굴을 돌려 그를 외면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미쳤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천사 가브리엘이 말해 준 사실이었고, 마리아도 그것을 믿었기에 예수님의 어머니로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런 마리아도 아들 예수님이 미쳤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예수님을 데리러 온 적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의 비방이 심했으면 그랬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이 겪으신 고난은 그 정도 비방으로 그친 게 아닙니다. 나중에 예수님은 제자에게 배반당하시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채찍으로 맞으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를 지고 해골 언덕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울부짖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받으신 고난, 사람들이 그분께 보인 반응은 정말 처절한 것이었습니다.

3. ‘그’가 왜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까?(4~5절)
그의 고난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겪으셨습니다.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며,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대신한다’는 개념은 기독교에만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십자가는 버림받는 현장이었습니다. 십자가는 로마 시대에 가장 흉악한 죄인을 죽이는 형틀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십자가에서 죽는 죄수를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두 손과 두 발에 못이 박히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셨습니다. 채찍으로 맞기도 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의 허물,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대신 겪으신 결과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를 건지신 것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노예가 많이 있었습니다. 노예는 값으로 평가되어 물건처럼 매매되었습니다. 우리는 노예 시장에 나온 노예와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 몸값으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모든 고난이 ‘나 때문’이라는 깨달음을 가져야 합니다.

4. 어떤 사람들은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셨다’라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4절).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분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만한 죄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고난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얻는 첫걸음은 자신의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죄를 깨달으면 겸손하게 되고, 겸손한 사람만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사실이 그들에게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나오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겸손히 죄인인 자신의 실존을 깨달아야 합니다.

5. 예수님이 고난을 받아들이신 모습을 묵상하고, 우리는 어떻게 그분을 따라야 할지 나눠 보십시오(참조 7절).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이유는 우선 그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고난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실 때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하셨는데(참조, 마 26:46), 이는 우리를 고난의 자리로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가 받아야 할 고난을 여러 곳에서 언급했습니다. 빌립보서 1:29절을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자신이 먼저 고난의 길을 걸으며,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고난을 받을 때 7절 말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침묵 가운데 고난 받으신 예수님처럼 해야 합니다. 말없이, 묵묵히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메시아의 고난이 선물한 우리의 평화

[이사야 53장 4절~12절]
4절 -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절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절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절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절 -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절 -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절 -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절 -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절 -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그(메시아)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십니다. 그의 찔림과 상함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그는 잠잠한 양같이 입을 열지 않고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갑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질고를 당하게 하신 것은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 찔림과 상함 (4~5절)
이사야는 메시아에 대한 전망을 '종의 노래'를 통해 선포합니다. 53장은 네 번째 종의 노래로서 메시아가 당할 십자가 수난을 매우 구체적으로 예언합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 때문에 못과 창에 찔리시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채찍에 맞아 몸이 상하십니다. 예수님이 고통 당하심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얻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죄에 대하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이 마땅히 당할 고난을 당한 것처럼 그분의 징벌을 당연시합니다.
* 묵상 질문
메시아의 찔림과 상함은 후일 십자가 사건에서 어떻게 나타났나요?
* 적용 질문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이는 누구이며, 그를 위해 무엇을 희생할 수 있나요?

2. 곤욕과 심문 (6~8절)
예수님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침묵하시며 순종하십니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이나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습니다. 새벽 3시경 붙잡혀 오전 9시경 십자가에 달릴 때까지 불법 재판, 십자가 사형 언도, 군인들의 모욕과 채찍질을 당하시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신 채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셔야 했습니다. 그분이 당하신 고난은 '마땅히 형벌받을'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이 심히 괴로운 중에도 입을 열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애매한 고난을 당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3. 사망과 무덤 (9~12절)
메시아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은 후일 그대로 성취됩니다. 예수님은 악인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시신은 부자였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안치됩니다(마 27:59~60).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성취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고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 묵상 질문
메시아가 행하실 일은 장차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나요? 메시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한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마땅히 형벌받을 허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아직도 죄를 온전히 자복하지 못하는 저를 성령께서 긍휼히 여겨 주소서. 예수님이 끝까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던 것처럼, 오로지 사명을 따라 사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이사야 61장 1절~11절]
1절 -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절 -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절 -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4절 -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5절 -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절 -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7절 -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8절 -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9절 -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10절 -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11절 -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

말씀 포인트 : 오늘 말씀은 ‘메시아의 소명과 사역, 여호와의 종의 소명과 사역’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말씀의 핵심은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메시아가 마음에 상처를 입고 포로로 갇혀있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며 황폐한 성읍을 다시 세우신다는 복음의 비밀과 진수를 담고 있습니다.

1) 주 여호와의 신이 여호와의 종에게 임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1~3절)
하나님은 그의 종에게 사명을 주시며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여호와의 종의 사명은 가난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며,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며, 포로 된 자들에게 자유를, 갇힌 사람에게 해방과 놓임을 선포하고,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며,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찬송의 옷을 입게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한 마디로 종합하면 ‘회복’입니다.
아버지가 오면 자녀들의 억울함과 고난이 해결되고, 자녀의 영광이 회복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통해 친히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그들을 여호와께서 손수 심으신 ‘의의 상수리나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께 뿌리를 얻는 백성은 하늘을 얻고, 땅을 얻으며, 하나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 깊은 뿌리를 내린 의의 나무는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보람된 삶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2) 여호와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종들에게 기쁨이 넘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10~11절)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해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주셨고 의의 겉옷을 주셨는데, 이 옷은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보물로 단장한 것 같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여호와의 종에게는 ‘여호와의 제사장, 우리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칭찬과 명성이 덤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면 행복해 집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힘이 납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당신의 의와 찬송을 열방 가운데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나타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 때, 여호와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종들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3) 우리 가족에게는 어떤 기름 부으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가족에게 기름 부으심이 임하면 어떤 면에서 좋을까요?
기름 부으심이란 첫째,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의 의미가 기름 부으심입니다. 전능자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전능자로부터 택함을 받은 것은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누군가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나를 만나기 원하고, 나를 통해 중요한 일을 맡길 때,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기름 부으심의 두 번째 의미는 사명입니다. 할 일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사람은 일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위대한 부르심에 대한 위탁이 바로 기름 부으심의 의미입니다.
기름 부으심의 세 번째 의미는 기쁨입니다. 기름 부으심은 여호와의 동행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동행은 여호와의 종들에게 든든한 보장이 되며, 언제나 기쁨이 솟아나게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함이 안전이요 평강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 가족이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으심을 받게 되는 것은 가장 큰 복 중의 복이 될 것입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사야 57장 14절~21절]
14절 - 그가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15절 -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16절 -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17절 -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18절 - 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19절 -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20절 -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21절 -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말씀 포인트 : 하나님은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죄악 된 삶을 인정하고 통회하는 사람에게 새 길을 열어 주시고, 고통 속에서 건져 주시며, 죄된 본성을 치유해 주십니다. 우리의 죄된 본성이 하나님에 의해 다뤄진 후의 상태가 바로 ‘평강’입니다. 하나님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긴장된 삶을 사는 그분의 백성을 향해 평강을 베푸십니다.

1) 하나님이 죄를 인정하고 통회하는 백성에게 먼저 행하시는 두 가지 일은 무엇인가요?(14~15절)
하나님은 죄를 지은 후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회개하는 백성을 돕기 위해 먼저 막힌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길을 만드시고 여시는 분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입니다. 그분께 가면 답이 있습니다. 그분께 가면 문이 열립니다. 그분께 나아가면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백성의 마음을 세워 주시기 위해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고통을 아십니다. 백성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삶이 자꾸 엉키고 꼬여서 방황하게 되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통회하고 자복해야 합니다. 그분께 나아가면 막힌 혈관이 뚫리듯이, 파괴된 도로가 보수되듯이 시원하게 길이 열릴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부분을 고쳐 주시려 하나요?(17~18절)
성경은 우리가 탐심과 분노의 노예이며,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는 이기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리에게는 탐욕의 본능이 있습니다. 자꾸 갖고 싶어 합니다. 빨리 얻고 싶어 합니다. 높이 오르고 싶어 합니다. 많이 가지고 누리려 합니다. 또한 우리 안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습니다. 분노는 좌절에서 기인합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꺾이고 좌절될 때 분노가 생기게 됩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포기해야만 할 때, 이루고 싶었던 일을 참고 견디어야 할 때, 우리 내면에 분노가 쌓이게 됩니다. 그 분노가 처리되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 있다가 어느 날 사소한 사건을 통해 터져 나오게 됩니다. 다루어지지 않는 분노는 시한폭탄과 같아서 전혀 상관도 없는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이러한 탐욕과 분노의 뿌리가 바로 이기주의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나의 원대로 하고 싶은 이기주의적인 뿌리가 깊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이런 깊은 상처들을 고쳐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상처로 얼룩져 늘 불안하고 불만이 가득한 우리를 평강으로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3) 우리 가족 중에 하나님의 평강과 위로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하나님이 그에게 평강을 주시면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될까요?
현대인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늘 불안합니다. 늘 외롭습니다. 늘 두렵습니다. 쓸데없이 불안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해합니다. 증상은 알고 있으나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평강이 없습니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조정하려 하니까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믿고 맡겨야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신실한 분이십니다. 믿을만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예배드려도 불안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옷이란 신분과 자격 그리고 역할을 상징합니다. 환자는 환자복을 입고, 운동선수는 운동복을 입으며, 의사는 가운을 입고, 판사는 법복을 입습니다. 죄인들은 죄수복을 입습니다. 어떤 옷을 입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의 옷, 평강의 옷이 있습니다. 그 옷을 입으면 주님이 우리를 평강에서 평강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출처 : 생명의 삶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이사야 54장 1절~8절]
1절 -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2절 -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3절 -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4절 -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절 -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절 -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7절 -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절 -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말씀 포인트 : 본문은 이스라엘의 해방과 환희를 노래한 이사야 52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선택받은 모든 성도가 메시아의 대속적 승리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회복될 것을 약속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을 통해 이스라엘에는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좋은 아버지, 즉 하나님이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크게 번영할 것과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과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인해 잠시 버려졌지만 다시 회복될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이 장막 터를 넓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2~3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장막 터를 넓히고 휘장을 널리 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좌우로 퍼져 나가고, 이스라엘 자손이 뭇 나라를 차지하며, 버려졌던 성읍들이 회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제부터 이스라엘의 지경을 넓게 하시고 새로운 땅과 나라를 주실 것이라는 복된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백성의 터를 넓혀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경계는 우리가 측량할 수 없을만큼 넓고 큽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터를 넓혀야 합니다.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크게 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이스라엘의 큰 수치와 부끄러움은 하나님에 의해 어떻게 회복되나요?(4, 7~8절)
죄인의 특징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입니다. 수치와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의 특징은 숨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 나타나는 것을 꺼리고, 사람들을 피해 다닙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수치 가운데 두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부끄러움을 보지 않으십니다. 허물을 덮어 주시고, 수치를 가려 주십니다. 버려진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모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영원한 자비로 긍휼히 여겨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런 놀라운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3) 우리 가족이 갖고 있는 수치와 부끄러움 중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회복시켜 주셔야 할 부분이 있다면 함께 나누고 기도합시다.
사람들에게는 감추고 싶을만큼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경험들이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품고 있는 수치스러운 일도 있습니다. 수치감은 인격에 손상을 입은 상처로, 자신의 존재를 부끄러워하게 되는 병입니다. 그러나 수치감은 감추면 감출수록 증상이 심각해질 뿐입니다. 수치감은 인정과 존중, 격려와 축복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의 칭찬과 인정을 받을 때, 특히 하나님의 인정과 격려를 경험할 때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우리 가족의 수치를 다루시기를 원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꼭꼭 감추었던 수치를 덮어주시고, 상처를 치유하시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족은 그 수치와 직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루시기 원하시는 나의 수치감, 하나님이 다루시기 원하시는 우리 가족의 수치감은 무엇인지 진실한 마음으로 나누어 봅시다.


출처 : 생명의 삶

사랑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이사야 53장 7절~12절]
7절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절 -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절 -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절 -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절 -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절 -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말씀 포인트 :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으시고, 주먹과 손바닥으로 맞으시며, 갈대로 맞으셨습니다. 또 침 뱉음을 당하시고 온갖 조롱과 모욕을 당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고통의 순간에 예수님께서 아무 말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스스로 변호하거나 방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없이 우리를 향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1) 예수님이 입을 열지 않으신 순간은 어떤 때였나요?(7절)
예수님은 곤욕을 당해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의 차원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우선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고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보통 사람도 달리지 않는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또 제자들로부터 배반당한 고통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홀로 남았다는 고독처럼 견디기 힘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분이 가장 비천한 자들로부터 조롱받는다는 것도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게다가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며 죽게 되는 육체적 고통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곤욕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입장을 변호하거나 방어하지 않으셨고 철저히 잠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총독의 심문을 받을 때에도(참고 마 27:12~14), 헤롯 왕의 심문을 받을 때에도(참고 눅 23:8~9)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음소리가 가장 크고 말도 많이 하게 될 고통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2) 예수님이 자신의 고통스런 십자가를 지신 일을 만족하게 여기신 이유는 무엇인가요?(11절)
예수님께서 곤욕을 당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으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신께서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신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사랑으로 고난을 받으셨고, 사랑하고 계시다는 감격이 그분으로 하여금 입을 열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 땅의 많은 어머니와 아버지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땀 흘려 수고하면서도 당신들의 고통을 가슴에 묻습니다. 그것을 일일이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는 빌라도 총독과 헤롯 왕 및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예수님께 대해 승리한 것처럼 착각했던 근시안적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거대한 구원의 파노라마를 조망하시면서 그 모든 것을 위해 자신을 바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까지도 예수님께는 거룩한 기쁨이었습니다.

3) 예수님은 잠잠히 우리를 향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참 사랑에 말이 필요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엔 말이 필요 없습니다. 말이란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곳에서 발생합니다. 회사의 직원들은 말이 많습니다. 기대한 것보다 보수가 적을 때, 근무 환경이 열악할 때 경영자들을 비판하고 공격합니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나와 단체로 목소리를 높입니다. 경영자들도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늘어놓으면서 직원들을 압박합니다. 서로 확성기의 볼륨을 높입니다. 이런 충돌로 인해 세상이 온통 시끄럽습니다. 이런 모습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나 참 사랑에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자식들이 자는 방이 추울까봐 새벽에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던 예전 부모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말없는 사랑을 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따스한 햇볕, 내리는 단비, 소리 없이 우리를 감싸는 공기, 맑은 하늘, 피어나는 꽃들, 익어가는 열매들 모두가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고백들입니다. 이제 우리도 말없는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면서 말도 많으면 그 사랑은 가짜입니다. 주님과 이웃을 말 없는 사랑과 헌신으로 섬겨야겠습니다.


출처 : 생명의 삶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

[이사야 52장 1절~10절]
1절 -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2절 -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3절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4절 -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5절 -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
6절 -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7절 -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8절 -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9절 -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10절 -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말씀 포인트 : 새 옷을 입기 위해서는 더러운 옷, 낡은 옷을 먼저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구원과 회복의 영광스러운 직분을 다시 위임하시려 합니다. 그러기 위해 이스라엘의 과거 티끌을 과감히 벗기고 아름다운 주님의 옷을 입히기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옷을 입고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에 대한 벅찬 감격을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좋은 소식을 전하고 구원을 공포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전하는 복음의 사람들이 될 것을 선언하십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보좌에 앉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가요?(1~2절)
성경은 이스라엘이 먼저 깨어날 것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안주에서, 나태함에서, 안일함에서, 형식적 예배 가운데에서, 우상 숭배 가운데에서 깨어나 중심을 잡기 원하십니다. 새 옷을 입기위해 해야 할 일은 더러운 옷을 벗고 몸을 깨끗하게 씻는 일입니다. 요시야 왕은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통해 솔로몬 왕 이후 약 300년을 이어 내려왔던 모든 우상을 수거해 헐고, 빻고, 쏟아 버리고, 더럽게 하고, 깨드리고, 불살랐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그분의 백성이 해야 할 일은 단호하며 즉각적인 돌이킴과 회개입니다.

2)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새로운 약속은 무엇인가요?(6~10절)
첫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름’은 ‘존재’를 의미합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존재를 새롭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통치를 만방에 알리는 파수꾼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 할 일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 일을 하나님이 맡기셨다면 그 일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스럽고 복된 일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는 것처럼 흥분되는 일은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움직이시며 계획하시며 역사하시는 현장을 보는 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놀라운 복을 이스라엘에게 주기 원하십니다.

3) 우리 가족이 하나님께 받은 특별한 복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복을 어떻게 세상에 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그 옷의 이름은 그리스도입니다. 옷은 자격과 신분을 나타냅니다. 학생들은 교복을, 의사들은 가운을, 법관들은 법복을, 운동선수들은 운동복을 입습니다. 잠을 잘 때는 잠옷을 입습니다. 죄인들은 죄수복을 입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전신갑주를 입습니다. 의로운 일을 하기 위해, 거룩한 일을 하기 위해 그 옷을 입는 것입니다. 이 옷은 믿음의 전신갑주입니다. 이 옷은 세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 번 입으면 벗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옷은 어디서나 우리를 보호하고 지키는 방어 수단이 되고, 때로는 적들을 공격하여 섬멸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구원을 전하고 선포하는 가족이 되기를 다짐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내 영광을 다른 이에게 두지 않으리라

[이사야 48장 1절~11절]
1절 - 야곱의 집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너희는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다의 허리에서 나왔으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기념하면서도 진실이 없고 공의가 없도다
2절 - 그들은 거룩한 성 출신이라고 스스로 부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며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나
3절 - 내가 예로부터 처음 일들을 알게 하였고 내 입에서 그것들이 나갔으며 또 내가 그것들을 듣게 하였고 내가 홀연히 행하여 그 일들이 이루어졌느니라
4절 -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
5절 -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예로부터 네게 알게 하였고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것을 네게 듣게 하였느니라 그것을 네가 듣게 하여 네가 이것을 내 신이 행한 바요 내가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명령한 바라 말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6절 -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7절 -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8절 -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9절 -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10절 -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11절 -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말씀 포인트 :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늘 변함이 없으셨건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해 등을 돌리고 거짓 예배를 드리며 우상의 권세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심하게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다른 존재에게 두시길 원하지 않으시며, 그의 백성을 통해 바른 예배를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통로로 세우셔서 온 열방이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새로운 계획을 세우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이 열방 가운데 선포되고, 하나님을 향한 바른 예배가 천하만국에 세워질 것을 기대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십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경고를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요?(1~5절)
거룩한 백성이라 칭함 받은 이스라엘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성실하지도 않고 의로운 생활도 없이 거짓 맹세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배 행위는 있었지만, 바른 예배의 삶은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에게 계시하셨건만, 이스라엘은 완악했고 목을 곧게 하며 우상 숭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계시를 무시하며 죄악 가운데 방종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책망하시며 새롭게 변화될 것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2) 하나님이 새롭게 행하실 일 속에 담긴 비밀은 무엇인가요?(9~11절)
사랑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그런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신의를 저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또 다른 새로운 일들을 계획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은 화내는 일을 미루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다음으로 이스라엘을에 대한 심판을 돌이키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고난의 풀무 불 가운데서 연단 받고 택함 받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것이란 놀라운 비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비밀을 이스라엘에게 전하며 소개해 주고 계십니다.

3)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선택하셨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우리 가족에게 가장 기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가족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택함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예배 받기 원하시기 때문에 바른 예배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거룩한 백성이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선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족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선포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은 우상을 버리는 일입니다. 둘째로 오직 하나님만을 참된 신으로 인정하며 그분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우리 가족에게 품으신 소망과 뜻을 찾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사와 달란트, 비전을 마음껏 활용하여 하나님의 놀랍고 새로운 새 일의 동반자로 우리 가족을 부르고 계십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체험하는 믿음의 가정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비전을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출처 : 생명의 삶

보라, 새 일을 행하리라

[이사야 43장 14절~22절]
14절 -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절 -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16절 -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7절 -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18절 -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절 -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절 -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절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22절 -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말씀 포인트 : 하나님은 과거에 우리가 지은 죄를 모두 지우시고 기억치 아니하시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광야에 물을 내고 사막에 강이 나는 기적을 일으키시며 우리를 새롭게 도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경험할 때 우리의 입술에 찬송이 끊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1)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시기 전에 어떤 일들을 먼저 행하실까요?(16~18절)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기 전에 하시는 첫 번째 일은 모든 대적을 멸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초강대국 바벨론의 세력을 무력하게 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바벨론 세력이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대상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러한 강한 세력과 우리를 만나게 하실까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두 번째 일은 우리의 과거를 정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옛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죄는 우리를 과거로 도피하게 하고 과거에 머무르게 하며,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게 합니다. 그런 죄의 모습으로는 새 일을 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지우시고 덮으셔서 우리를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십니다.

2)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19~20절)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며, 들짐승과 승냥이와 타조가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며, 주님의 택하신 백성에게 생명수를 마시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봅니다. 죄가 들어와 파괴된 세상인데도, 대자연의 장엄함은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일은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길이 없는 광야에 길을 만드시고, 물이 없는 사막에 오아시스와 샘을 솟아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정을 새롭게 하고 나를 새롭게 할 것입니다.

3) 우리 가족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나요? 우리 가족은 특히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내 백성, 나의 택한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실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아무나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선택하셨다면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며,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위해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 가정의 미래는 확실히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목적 두 가지를 이야기하십니다. 첫째, 하나님을 위해 지으셨으며, 둘째,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 지으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재능, 재산, 시간, 열정, 소유는 모두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 가족을 통해 찬송 받기 원하십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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