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신포도의 속담 18:1-9
때때로 악한속담이 선한예언을 낳는다.
(1) 이 악한속담은 포로로 사로잡혀있던 유대인들사이에 주로 쓰였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비난하는 것이었다. "너희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황무해진 현재 '이스라엘땅'에 대해 이속담을 사용하는구나."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리다고함은 어찜이뇨(2절). "우리가 조상들의 죄때문에 벌을 받는다면 그것은 마치 아비가 신포도를 먹은 것으로인해 아들의 이가 시린것만큼이나 불합리하나이다. 만일 사람이 어떤것을 잘못먹거나 잘못마신다면 단지 그사람만이 그것으로인해 고통을 겪어야하지 않겠나이까." 하나님께서는 종종 아비의 죄를 아들에게 돌리실 것을 말씀하셨었다. 특별히 우상숭배의 죄가 그러했는데 이는 그렇게함으로 그죄의 악함을 나타내고자 한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현재와 같은 파멸이 있게된 것은 므낫세와 그이전의 다른 여러왕들의 죄를 주목하셨기 때문이라고 선포하셨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것을 하나님을 비난하는 자료로 삼았다.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들은 신포도를 먹은 것이다. 그것은 죄인들의 이를 시게 한다. 즉 양심이 깨어나면 그것은 입맛을 형편없게 만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이들이 아비의 어리석음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자기들이 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당해야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항의하였다.
(2) 이속담에 대하여 정당함 답변이 주어진다. "네아비가 너보다 앞서 먹었던 그 신포도를 너도 먹었음을 네자신의 양심이 너에게 증거하리라. 그렇지않다면 네이가 시지 않았으리라." 만일 그들이 아비의 전철을 밟지않고 죄악의 양을 채우지 않는다면(마 23:32) 하나님께서는 아비의 죄때문에 아들을 벌하시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 아비의 악행때문에 재난을 당하는 것은 단지 현세에서일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당하는 자들에게 그환난이 선이 되게하실수 있다. 그러나 아들은 결코 아비의 죄때문에 영적이며 영원한 고통(본문에는 죽음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자신의 절대적인 주권을 주장하신다. 모든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4절). 만물을 조성하신 하나님은 특별한 의미에서 영혼의 아버지이시다. 이는, 모든사람의 영혼에는 그의 세상이 찍혀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처음 창조하실때도 형상을 찍으셨으며 그들이 거듭날때도 그러하셨다. 그는 사람의 속에 영혼을 만들어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비와 아들 모두에게 호의를 품고 계시며 아무에게도 고통을 주시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모든영혼에 자비를 베푸사 아무도 자신의 태만에 의하지 않고는 죽지않도록 해주셨다. 죄는 곧 영혼의 행위이므로 죄에 대한 형벌은 '영의 환난과 곤고'이다(롬 2:9). 사람이 만일 의로와서 법과 의를 따라...행할진대 그는...정녕 살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5,9절).
1) 의인은 제 2계명을 범하는 죄를 짓지않도록 자신을 주의깊게 지킨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는 '산에서 제물을 먹는'것조차 하지않았다. 즉 우상에게 드린 제물을 먹음으로 우상숭배자들과 교제하는 일을 결코 하지않았다(고전 10:20).
2) 의인은 제 7계명을 범하는 죄를 짓지않도록 자신을 주의깊게 지킨다. 그는 항상 육체의 욕망을 이성과 덕성으로 극복할 것이다.
3) 의인은 제 8계명을 범하는 죄를 짓지않도록 자신을 주의깊게 지킨다. 그는 거짓으로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억탈하지 아니한다'(7절). 의인은 이웃의 궁핍을 자기가 이익을 얻을기회로 삼지않으며 오히려 기꺼이 이웃들의 이익뿐 아니라 손해에도 동참할 것이다. 이것이 이웃에 대하여 의인이 취할 태도이다. 그리고 이같은 성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는 하나님께도 마찬가지로 행하여야 한다(9절). 이러한자가 의인이며 그는 정녕 살것이다.

Ⅱ. 악인의 재앙과 선인의 형통함 18:10-20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사람의 혈통이 상황을 변경시키지 못한다고 하는 심판의 일반적인 법칙을 보여주고 계시다.
(1) 경건한 부모가 악한자녀를 갖는경우와 악한부모가 경건한 자녀를 갖는경우가 종종 있다.
1) 악한사람은 경건한 아비의 자식이라할지라도 그의 죄악으로인하여 멸망할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그의 선한아비가 두려워하였던 온갖 죄에 빠진 것으로 가정되어 있다. 이러한 사람은 그가 비록 선한아비의 자식이라할지라도 멸망하게 될것이다.
2) 의인은 악한아비의 자식이라할지라도 복을 누리게될 것이다. 비록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다할지라도 자식이 그포도와 관계하지 않는다면 그는 아비때문에 결코 화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은혜를 받지못한 아비만이 그의 죄로인해 죽을것이며 은혜를 받은 아들은 결코 그 아비로인한 화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2) 선지자는 그들에게 "너희는 하나님께 큰과오를 범한 것이 아니냐"고 힐문한다. "이처럼 진상이 명백하도다.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천만에, 그렇지 않도다. 만일 누구든지 '법과 의를 행한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19절). 그러나 이백성이 이아비의 죄가운데로 나아가 법과 의를 행치 않았으므로 마땅히 그들자신의 죄로인한 고통을 받은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조상들이 자기들에게 남겨준 악한것들에 대해서는 불평할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에 대해서는 결코 부당한 것으로 불평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우리의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애 5:7). 악한가문에 저주가 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이키면 임하였던 저주가 그치게 되는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회개치않고 돌이키지 않는사람이 멸망가운데 처하게 되는것은 자업자득이다. 따라서 심판의 확실한 법칙이 반복된다. 범죄하는 그영혼은 죽을지라(20절). 죽음이외의 다른결론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재판관들에게 내리셨던 지시대로(신 24:16) 친히 행하실 것이다. 아들이 만일 아비의 전철을 밟지않는다면 아비의 죄로인해서 죽지 않으리니 영원히 죽지않을 것이다. 또한 아비역시 자기의 의무를 행하려 힘쓰며 죄를 방지한다면 아들의 죄로인해서 죽지않을 것이다. 지금은 구름이 덮여 어두운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의의심판이 드러나는 날에 '의인의 의'는 온세상 앞에서 '자기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즉 영원한 위로와 영광으로 옷입고 면류관을 쓰게될 것이다. 그리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되,' 사슬처럼, 짐처럼, 그리고 끝없는 웅덩이로 침전하는 납으로 만든 산처럼, 영원한 혼돈가운데로 돌아갈 것이다.

Ⅲ. 회개할 것을 권고함 18:21-29
여기에 하나님의 통치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또다른 심판의 법칙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안에 일어나는 변화에 따라서 상급을 주시기도 하고 형벌을 주시기도 하는것을 보여주신다. 이세상에 사는동안 우리는 항상 시험을 받는다. 그시험은 생명이 다할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1) 심판의 법칙은 여기서도 이전에 기록되었던 것만큼이나 확실히 설명되어 있다. 이내용이 전에 이어서(참조. 겔 3:18이하) 여기서도 두번에 걸쳐(21-24절, 26-28절) 재차 반복되고 있는이유는 그것이 생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1) 악한사람들에게 악에서 돌이키라고 하는 분명한 권고가 주어졌다. 21절, 27절에는 만일 악인이 돌이키면 정녕 살것이라는 보증이 주어져 있다. 회개의 첫단계는 '헤아리는' 것이다.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28절). 이러한 헤아림은 반드시 죄에 대한 혐오를 낳는다. 그렇다면 그는 들릴라나 림몬의 당에 대한 모든미련을 버리고 모든죄에서 돌이켜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과 그에 대한 의무로 돌이켜야 한다. 이와같이 죄에서부터 하나님께 돌이킨 자들은 '그영혼을 보전할 것이다'(27절). 회개하고 돌이킨 죄인들은 장래의 순종이 결코 과거의 불순종을 보상할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자비를 베풀고 용서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며 그의 기뻐하시는 뜻인 것이다(23절).
2) 의로운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로움에서 떠나지말라고 하는 분명한 경고가 주어졌다(24-26절).
(2) 이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정당성을 이스라엘족속의 타락한 양심에 호소하신다. 그들이 하나님께 던진 비난은 참람한 것이었다(25,29절). 하나님께서 그들과 가지신 쟁론은 매우 은혜로운 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는 이 참람한 자들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정죄하시기보다 오히려 깨닫게 하고 구원하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Ⅳ. 회개할 것을 촉구함 18:30-32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를 보라. 은혜의 날과 하나님의 인내의 날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께서는 결국 '각사람의 행한대로' 심판하실 것이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은혜를 베풀기위하여 기다리시고 회개를 촉구하시며 회개할경우 용서하시리라는 약속을 해주신다.

# 핵심
18:1-32
포로생활을 하고있는 백성에게, 그들이 겪는 고난은 그들 각개인의 죄로인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회개를 촉구하는 대목이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의(18:21,22)
성경에 언급된 의의 주요개념은 윤리적 차원의 올바름이나 정의를 초월한다. 그기준이 하나님의 의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속성을 지니고 계시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의를 삶속에 구현할 것을 요구하셨다(레 11:45). 이러한 의미에서 율법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지침서였다(신 6:20-25). 그러나 아무도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수 없으므로(시 143:2),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의 제물로 삼으사 누구든지 그구속의 은혜를 믿어 의롭다함을 얻게하신다(롬 3:28; 갈 2:20).

# 묵상
이스라엘땅에 대한 속담 ( 18:2 )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하는 이속담은, 아비의 죄악으로인해 아들이 심판당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것은 자신의 죄라기보다는 그들의 조상의 죄값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처사에 대해서 불공평하게 생각하여 불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녕 살게될 의인 ( 18:9 )
‘그는 의인이니 정녕 살리라’라는 이말씀은, 하나님의 율례를 좇으며 규례를 지켜 진실히 행하는 자는 의인으로 간주되어 현재의 심판과 미래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의 의인이란 믿음으로인해 의인으로 인정받은 자를 말합니다(행2:4; 롬1:17).
악한아들을 구원할수 없는 아비의 선 ( 18:10-20 )
사람은 각각 자기의 의로인해 구원받고 자기의 악으로인해서 멸망받습니다. 즉 인간이 개별적 존재이듯이 선악간의 행위에 대한 책임도 개별적으로 감당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부모는 믿음의 자녀를 만들어야 그자녀가 진정으로 축복받은 사람이 될수 있습니다. 또한 아비가 불의해도 그자녀가 아비의 불의에서 떠나 하나님의 법도대로 선한삶을 살아간다면 그는 분명코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반열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은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정녕 죽게될 죄인 ( 18:13 )
악을 행한 의인은 반드시 죽을것인데, 성경은 그것을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간다’는 식으로도 표현합니다.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한 댓가를 스스로가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죄가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아간의 죄는 공동체가 아이성전투에서 패배하게 했지만(공동체에 대한 영향), 아간의 죄때문에 죽은것은 그자신이었고, 그의 죄에 동참한 가족들역시 그들자신의 죄로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수7장).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 18:23 )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그행한 모든죄에서 돌이켜 떠나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15:20)고 하셨습니다.
공평치않은 이스라엘의 길 ( 18:25-30 )
하나님의 행동방식은 죄인을 죽이시고 의인은 살리시는 것이지만, 그러나 인간은 자기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은 섬기지않고 무익한 존재인 우상을 섬기므로 공평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기에 의인은 그행위의 선행으로 보전받고 악인은 그행위의 죄악때문에 멸망당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과 고난을 당할때 그책임을 하나님께 돌릴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신앙생활에 돌려야 마땅합니다.
새롭게할 마음과 영 ( 18:31, 32 )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거듭남을 뜻합니다. 우리인간은 타락했기때문에 자신의 능력으로는 선을 행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새마음과 새영을 주셔야 하나님의 의에 가까이 갈수 있습니다. 성도는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수 없음을 알아야합니다(요3:3-5).

# 해설
죄인에 대한 개별적 심판 ( 18 )
유다백성들은 그들이 열조의 죄악을 따라 열조들과 동일하게, 아니 그보다 더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았습니다(참조, 겔2:3-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은 죄가 없는데 조상이 지은죄로 말미암아 불공평한 하나님께 벌을 받고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리기위해 본장에서 그생각의 부당성을 설명하십니다.
1. 인간들의 편견과 오만
1) 죄는 전가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유다백성들은 조상들의 죄가 부당하게 그들에게 전가되었기때문에 그들이 부당한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께 범죄한 자는 그죄가 삼사대까지 이른다는 말씀(참조, 출20:5)에 근거한것 같습니다. 한편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유다백성들같이 다른사람의 죄와 의는 전가되기때문에 죄를 지은사람과 관련된 자는 그죄값을 물려받고 의로운 사람과 관련된 사람은 그의의 덕택을 본다고 믿고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a.아내의 악을 자손에게 보응하심(신34:7)
b.열조의 죄로 쇠잔함(레26:39)
2) 나는 무죄하다
다른사람의 죄가 전가되었기때문에 자신이 죄값을 넘겨받음으로 심판의 고통을 받는다는 생각의 배후에는 인간이 버릴수 없는 깊은병, 곧 교만의 병이라는 것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생각은 자신은 죄가 없다는 것을 암암리에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사람들의 마음한편에는 이런본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a.죄책의 전가(창3:12)
b.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요일1:8)
3) 나의 고난은 억울하다
자신은 무죄한데 다른사람의 죄값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진사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자신이 받는 고통은 부당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유다백성들도 그렇게 생각했거니와 그와같은 선상에 있는 모든사람들도 동일하게 자신들이 받는 고통은 부당하다고 내심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결코 무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의 고통을 달게 받지않고 불평합니다.
a.스스로 의롭게 여김(욥40:8)
b.죽기를 간구한 요나(욘4:3)
2. 하나님의 답변
1) 죄는 개인적이다
유다백성들과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여 죄는 전가된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비는 그자식을 위해 죽음을 당하지 아니하며 자식들은 그아비로 인하여 죽지않고 오직 각사람은 자기죄에 죽음을 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참조, 신24:16). 아비의 죄로인해 삼사대가 벌을 받는다는 출20:5절의 말씀은 본래 아비의 죄에서 그자녀들이 떠나지않으면 그자식들도 같은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a.각사람은 자기죄로 심판을 받음(신24:16)
b.아들의 이는 결코 시리지 않음(렘31:29)
2) 공의의 하나님은 반드시 범죄한자만 심판하신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은 다른사람의 죄를 인하여서가 아니라 오직 그사람의 죄를 인하여 그만을 심판하십니다. 이심판의 법칙은 도중에 변경된 것이 아니며 변경될것도 아닙니다. 이법은 영원한 것입니다. 각인은 오직 그가 지은 죄값을 따라 심판받습니다(참조, 계20:11-15).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a.행한대로 보응을 받음(사3:11)
b.자기행위를 따라 심판받음(계20:12)
3) 범죄한자라도 돌이켜 의를 행하면 구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각인을 개별적으로 심판하신다고해서 범죄한 모든사람이 반드시 심판받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연약한지라 범죄할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과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을 아시사 용서의 기회를 주십니다. 용서의 기회란 회개할때 허용됩니다. 죄인인 그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가 다시 의를 행할때 용서가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a.놀라운 용서(사1:18)
b.본래 범한죄가 기억되지 않음(겔33:16)
3. 신약적 접근
1) 모든인간은 죄인이다.
유다백성들만이 하나님께 범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인간은 하나의 예외도없이 하나님께 범죄한 죄인들입니다(참조, 롬3:10-18).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기죄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는 알지못한채 하나님이 부당하기때문에 자신들이 죄가운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심화되어 하나님은 없다는데까지 이릅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죄를 덮어버리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죄가 없어지고 그렇게되면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a.선을 행하는자가 없음(시14:3)
b.의인은 없음(롬3:10)
2) 모든인간은 심판아래 있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죄를 부정해도 인간의 죄는 실제적인 것이요 시체이기때문에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없어지지 않는 죄는 범죄한 인간에게 죄값을 물립니다. 죄값은 사망입니다(참조, 롬6:23). 사망은 육체의 사망에서 멈추지않고 영혼마저 다시 헤어나올수 없는 고통의 장소로 가는 둘째사망까지를 포함합니다(참조, 계20:11-15).
a.본질상 진노의 자녀(엡2:3)
b.반드시 있는 심판(히9:27)
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를 구원하신다
앞에서 하나님은 범죄한자가 회개하면 죄를 용서하심을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구약시대에 그것이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정적인 용서였지 죄의 본질에 대한 용서는 아니었습니다. 죄본질의 용서, 곧 속죄는 인간의 회개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속죄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본질의 해결이 가능합니다(참조, 히9:1-26).
a.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에 이름(요3:16)
b.다른이름이 없음(히9:27)
결론
모든인간은 하나님앞에 죄인입니다.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모든인간은 저주아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저주에서 벗어날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신 저주를 받아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과 구원사역을 믿고 그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안에서 의롭고 복된삶을 살아야합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20장 - study  (0) 2022.12.05
에스겔 19장 - study  (0) 2022.12.05
에스겔 17장 - study  (0) 2022.12.05
에스겔 16장 - study  (0) 2022.12.05
에스겔 15장 - study  (0) 2022.12.04

# Study

Ⅰ. 독수리와 포도나무의 비유 17:1-21
에스겔 선지자는 '수수께끼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베풀라'는 명령을 받았는데(2절), 이는 그들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즉시 그들에게 의미를 말해주는 것을 볼때 그사실을 알수가 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들로 그것을 더잘 기억하여 다른사람들에게 말해줄수 있도록 하기위해 수수께끼나 비유로 메시지를 전해야 했다. 사역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선을 행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고 일상적인 것을 설교로 이끌거나, 설교를 일상적인 담화로 엮을수 있어야 한다. 그는 이 수수께끼를 '패역한 족속에게' 해설하라는 명을 받았다(12절).
(1) 느부갓네살은 얼마전 '여고냐'로 불리우기도 하는 여호야긴을 사로잡아 갔다. 그때 여호야긴의 나이 18세로 예루살렘을 치리한지 3개월 되었을때이며 방백들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이다(왕하 24:12). 이것이 비유에서는 독수리가 백향목의 연한가지 끝을 꺾어 장사하는 땅, 즉 상고의 성읍으로 옯겨가는 것으로 나타났다(3,4절). 그것은 12절에 설명되어 있다. 즉 바벨론왕이 예루살렘왕을 사로잡아 가는데, 마치 둥지를 만들기위하여 가지를 꺾으려고 하는 가장 사나운 매를 그 연한가지가 감히 상대할수 없었던것 이상으로, 그는 감히 바벨론왕에게 저항할수가 없었다. 이비유에서 느부갓네살은 새들의 왕으로, 즉 다른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큰독수리'로 표현되어 있다. 그의 통치는 독수리의 길고 큰날개처럼 멀리까지 광대하게 뻗어있었다. 백성들의 수효는 중다하였다. 즉 수놓은 것처럼 '채색이 구비'하였던 것이다. 예루살렘은 레바논 곧 집들의 숲이며 왕가는 '백향목'이며, 여야긴은 그 '가지끝' 곧 '그 연한가지 끝'이다. 바벨론은 '장사하는 땅'이자 '상고의 성읍'이다.
(2) 바벨론왕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간뒤 그의 삼촌 시드기야를 대신 그자리에 앉혔다(5,6절). 그의 본래이름은 "여호와의 선물"이란 뜻을 가진 '맛다니야'인데, 느부갓네살이 시드기야로 바꾸었다. 시드기야는 "여호와의 의"라는 뜻이다. 이사람은 '그땅의 종자', 즉 바벨론 방백이 아닌 본토인이었다. 그는 '옥토'에 즉 아직 존재해있는 예루살렘에 심겨졌다. 바벨론왕은 그것을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물가에 심었던' 것이다. 그것은 습한 땅에서 매우 잘자라기는 하나 결코 당당한 나무로 자라지는 못한다. 그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이나무를 돌보았는데 그이유는 그것을 자라게 하기는 하되 너무 크게 자라지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그 왕족중에 하나를 택하여'(13절에 그사실이 나타나 있다) 만일 그가 계속 속국으로 남아있을경우 나라와 왕의 권세를 가지게 하겠다고 '언약을 세웠다.' 그로 맹세케하고. 즉 그로하여금 그자신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실한 속국이 될것을 맹세하게 하였다(대하 36:13). 또 그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갔나니. 이는 그언약의 수행으로 장수들을 잡아감으로 왕이 동맹을 깨뜨릴 유혹에 빠지지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보게된다(14절). 이는 나라를 낮추어. 즉 강력한 이웃나라에게는 두려움이 안되도록, '스스로 서지못하게' 하여 바벨론의 경쟁상대가 되지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언약만 지킨다면 그나라를 계속 존속케하려고 하였다. 죄가 유다왕가에 얼마나 슬픈변화를 가져왔는지 보라. 한때는 주변의 모든나라들이 유다의 족속이었던 때도 있었다.
(3) 시드기야가 바벨론왕에게 충성을 다하는동안은 잘지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온나라를 개혁시키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그의무를 지켰다면 그는 곧 이전의 위엄을 회복했을 것이다(6절). 이나무는 자라났다. 그리고 처음에는 '수양버들 가지처럼' 심겨졌다고 했으나 그것에 대한 설명은 이후에 거의 나타나있지 않고 오히려 '퍼져서 높지아니한 포도나무'가 되었으며 그과실은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아무 쓸모없는 높은 백향목이 되느니 높지아니할지라도 널리 퍼지는 포도나무가 되는것이 더낫다. 느부갓네살은 포도나무 가지가 자신을 향해있고 또 포도나무 덩굴이 벽을 타듯이 자신을 의지하고 있는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뿐만아니라 그는 이포도나무의 과실가운데서 자기몫을 취하였다. 또한 뿌리는 그의 발아래 있어서 그의 마음대로 하였다. 유대인들은 기뻐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는 그들이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를 내는' 자신들의 포도나무아래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악한백성에게 심판을 점차로 임하게하사 회개할 기회를 부여하시는 것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나라를 낮추셨는데 이는 혹시 그들이 겸손해질수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4) 시드기야는 자신이 잘지내고 있음을 깨닫지못하고 바벨론왕의 속국이 되는것을 참지못하여 애굽왕과 은밀히 동맹을 맺었다. 만일 그가 신실하게 행동하였더라면 그는 '아름다운 포도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애착을 두고 신뢰한 또다른 '큰독수리' 하나가 있었으니 곧 애굽왕이었다(7절). 이 두주권자, 즉 바벨론왕과 애굽왕은 맹금인 두 '큰독수리'였다. 이 애굽의 큰독수리는 '날개가 큰'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나라는 바벨론처럼 그렇게 광대한 영토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큰독수리는 '털이 많은'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즉 많은부와 많은군대를 가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실제로 '많은털'일뿐 그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드기야는 자유롭게 될것을 약속받으면서 자신을 애굽왕의 속국으로 만들었다. 이제 이 포도나무는 은밀히 애굽왕을 향하여 '뿌리를 발하였다.' 그리고 잠시후에 공개적으로 '그를 향하여 가지를' 뻗쳤다. 즉 그와 동맹맺기를 무척 원한다는 암시를 그에게 주었다. 이는 '큰물가'에 심기웠으므로 아무도움도 받을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심긴 두둑으로 물을 받기'위한 것이었다. 이것에 대해서 15절에 설명이 되어있다. 시드기야는 '그의 사자를 애굽에 보냄으로' 바벨론왕을 배반하였다. 즉 그는 바벨론왕과 싸우기위해 애굽왕에게 말과 군대를 구하였던 것이다.
(5)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가 바벨론왕을 배반한 것으로인해 그와 그의 나라에 비참한 멸망이 있을것을 경고하신다. 이것은 비유속에서 포도나무의 '뿌리가 빠지고 실과가 떨어지며 그잎사귀가 시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9,19절). 그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즉 완전히 마르게될 것이다. 그가 언약을 깨뜨리고도 그배반에 마땅한 형벌인 보복을 피할수 있을 것인가?
1) 그의 파멸은 하나님의 맹세에 의해 비준된다. 나 주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그가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였은즉...죽을 것이라(16절).
2) 그것은 그가 지은죄의 흉악성으로 미루어보아 정당한 것이다. 그는 자기를 왕으로 삼아주고 또자신을 쉽사리 포로로 잡아갈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백으로 삼아준 은인에 대해 배은망덕하였다. 또한 그는 거짓되이 행했다. 그가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였은즉(15,16,18,19절). 그가 바벨론왕에게 속해 있겠노라고 한 맹세는 엄숙한 맹세였다는것이 강조되고 있다. 그가 이미 손을 내어밀어(18절). 손을 내어미는 행위는 바벨론왕과 동맹한 자로서 또한 친구로서 마음을 연합한다는 증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가 내맹세를 업신여기고 내언약을 배반하였은즉(19절). 왕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한 것은 특별히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 것으로 간주된다(전 8:2). 맹세를 깨뜨린 시드기야의 죄는 하나님께서 그머리에 돌리실 죄이며(19절)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20절). 비록 느부갓네살이 거짓신들을 숭배하는 자이긴 했으나 그래도 참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경배하는 자가 언약을 파기했을때 그것을 보수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야말로 모든사람이 지켜야할 빚이기 때문이다. '맹세를 업신여기고 언약을 배반하는' 자는 '피하지 못할 것이다.'
3) 죄에 대한 형벌이 내려진다. 그가 바벨론왕을 배반하였으므로 바벨론왕은 그의 실질적인 정복자가 될것이다(16절). 하나님께서 친히 바벨론왕과 함께하셔서 그를 치실 것이다. 내그물을 그위에 베풀며(20절). 그는 애굽왕을 의지했으나 애굽왕은 아무 실질적인 도움도 주지못할 것이다. 바로가 그 큰군대와 무리로도 그전쟁에 그를 도와주지 못하리라(17절). 애굽군대가 접근해오자 갈대아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망을 풀고 물러갔으나 다시 그곳을 쳐서 점령하였다. 비록 시드기야가 그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정예군대를 데리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래도 그들은 모두 대적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도망할 것이다(21절). 이것은 성읍이 깨뜨려지며 모든군사가 도망하게 되었을때(렘52:7) 성취되었다.

Ⅱ. 메시야에 대한 약속 17:22-24
인간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약속을 무효로 만들지는 못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성취할 또다른 '다윗의 씨'를 찾으실 것이다.
(1) 다윗의 집은 다시 칭송을 받을 것이다. 즉 재가운데서 또다른 불사조가 일어날 것이다. 경고하는데 사용된 나무의 비유가 여기서는 약속으로 나타나고 있다(22,23절). 이약속은 다윗의 집안의 한가지인 스룹바벨이 포로상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의 머리가 되어 성읍과 성전을 재건하며 교회와 나라를 재건하게 되었을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메시야의 왕국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이었다(눅 1:32).
1)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의 집안을 회복시키는 일을 행하신다. 느부갓네살은 자기에게 의지하고 있는 다윗은 집안을 재건하려고 했었다(5절). 그러나 그가 심은 나무는 말라버렸고 뽑혀졌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자, 다음에는 내가 심으리라."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가지를 취하여 심으리라.
2) 다윗의 집안은 '그높은 새 가지끝에서' 꺾은 한 연한가지 가운데서 소생된다. 스룹바벨이 그러하였다. 그에게 기대할만한 것은 단지 '작은일의 날'(슥 4:10)이었으나 그앞에서 큰산들이 평지가 되었다. 우리주 예수는 '백향목 꼭대기의 높은가지'이다. 즉 뿌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으며 하늘에 가장 가까우시다. 이는 그의 나라가 이세상에 속한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새 가지끝에서' 취한바 되셨으며 '연한' 나무이시고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사 53:2, 한글개역에는 '줄기'로 되어있음-역주)이자 여호와께서 심으신 의의 가지이시다.
3) 이가지는 빼어난 산에(22절), 즉 '이스라엘의 높은산에'(23절) 심어진다. 그는 스룹바벨을 그곳으로 인도하여 개가를 부르게 하셨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예수를 일으키셔서 산중에 흩어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을 모으게 하시며 그를 거룩한산 시온에서 왕으로 세우시고 시온산에서부터 복음을, 즉 예루살렘에서부터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게 하셨다. 그때에 최초로 기독교회가 선것이다. 그보다 훨씬전에는 유대의 교회들이 있었다.
4) 거기서부터 그것은 멀리 또 널리 퍼지게 된다. 유대나라는 스룹바벨의 시대에 매우 미미하게 시작하였다. 즉 쉽게 뽑힐것 같은 연한가지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뿌리를 박고 퍼져서 얼마후에는 많은나라들, 즉 '각양새'가 그아래 깃들이게 되었다. 이방인들이 교회로 모이게된 사실이 곧 '각양새'가 와서 '그가지 그늘아래 거한다'로 표현된 것이다(참조. 단 4:21).
(2)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24절).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신 것과 사람들가운데 그의 나라를 세우신 것은, 만물이 무한한 지혜와 전능한 섭리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진리를 가장 확실히 설명해 준다. '들의 모든나무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될 것이다.
1) 하나님께서 낮추고 말리시고자 하시는 나무는 그렇게 될것이다.
2) 하나님께서 높이고 무성케하시고자 하는 나무는, 그것이 현재 아무리 낮고 말라있다 할지라도 그렇게 될것이다. 지금은 그처럼 거대하게 보이는 느부갓네살의 집은 멸절되고, 지금은 그처럼 보잘것없이 보이는 다윗의 집은 다시 흥왕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유대민족은 지금은 연약하게 보이나 강한나라가 될것이다. 사단의 나라는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하나 결국 무너질 것이며 그리스도의 나라는 업신여김을 받으나 다시 서게될 것이다.

# 핵심
17:1-24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유다왕 시드기야가 하나님대신 외세를 의지한 것이 멸망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밝힌다. 본장의 내용은 B.C. 597년 바벨론의 2차 침공사건과 시드기야가 바벨론과 맺은 조약을 파기하고 애굽에 도움을 청한결과 B.C. 586년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멸망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 묵상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 17:1-6 )
본문에서 ‘채색이 구비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독수리’는 고대근동의 여러나라를 정복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을 가리키며, 독수리가 끝을 꺾은 백향목의 연한가지는 느부갓네살이 잡아간 18세의 여호야긴왕을, 그리고 그가 옥토에 심은 포도나무는 바벨론이 세운 시드기야왕을 상징합니다. 이비유는 당시 이스라엘이 처한 정치적 상황뿐만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에서 나온것임을 알게 합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독수리와 같이 매서운 바벨론에게 대항하지 않아야만이 하나님의 포도원, 곧 이스라엘이 전멸당하지 않을것임을 누차 경고했습니다.
두번째 등장하는 독수리 ( 17:7-10 )
이것은 애굽왕을 가리킵니다. 시드기야는 주전 589년경 자신을 왕으로 세운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과 동맹을 맺었습니다(왕하24:20). 그러나 그독수리는 포도나무를 시들지않게 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동풍이 부딪힐때 곧 바벨론이 침입하면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당하게 됩니다. 동풍은 ‘시로코’로 불리는 건조한 열풍으로, 모래와 먼지를 몰고오기 때문에 나쁜결과를 가져오는 바람이었습니다. 이예언대로 바벨론과 싸운 갈그미스전쟁에서 애굽의 바로 호브라는 전사하고 예루살렘성은 곧 함락되었습니다.
유다의 멸망이 선포된 이유 ( 17:11-21 )
그것은 그들이 바벨론왕과 세운 언약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야는 애굽에 사신을 보내고 동맹을 맺으면서 바벨론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다는 멸망하고 말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과의 언약을 자신과의 언약이라고 지적하시는 것은, 시드기야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언약은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유다백성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뜨렸기에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피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연한가지와 각양새 ( 17:22-24 )
백향목꼭대기에서 높은가지를 취하여 심고, 그높은 새 가지끝에서 연한가지를 꺾어, 높고 빼어난 산에 심는다고 하는것은, 백향목으로 상징되는 다윗가문에서 그리스도가 연한가지, 곧 겸손하시고 신분이 낮은 출신으로 탄생하신다는 것을 예표합니다. 그 그리스도는 높고 빼어난산, 곧 시온산에서 오십니다. 그리고 때가되면 각양새 곧 열방이 그에게로 나아올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마13:22).

# 해설
독수리 비유 ( 17 )
겔15-18장은 세개의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의 범죄와 그 범죄로인한 멸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가지 비유란 포도나무 비유, 결혼비유, 독수리 비유입니다. 본장은 그 세가지 비유가운데 마지막 세번째 비유인 독수리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은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것과 그뒤에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것을 예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두 독수리와 포도나무
1) 처음 큰독수리와 포도나무
에스겔은 겔17:3-6절에서 큰독수리 한마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가지를 취하여 장사하는 땅으로 가져가고 그땅의 종자를 옥토에 심음으로 그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그 큰독수리에게 향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예언은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공격하여 점령한뒤 여호야긴을 포로로 끌고갈 것(참조, 왕하24:8-16)과 그뒤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워 유다가 풍요와 안정을 누리면서 바벨론을 섬길것을 의미합니다.
a.시드기야의 등극(왕하24:17)
b.여호야긴이 사로잡힘(대하36:10)
2) 두번째 큰독수리와 포도나무의 배반
처음 큰독수리 이외에 또다른 큰독수리가 예언에서 언급되는데 처음 큰독수리를 향하던 포도나무가 나중 큰독수리에게 뿌리를 향합니다. 이것은 바벨론을 섬기던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을 섬길것을 에언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시드기야는 그를 왕으로 세운 느부갓네살을 배반하고 애굽왕 바로와 화친하였습니다 (참조, 왕하24:20).
a.시드기야의 배반(왕하24:20)
b.애굽의 원군(렘37:5)
3) 배반한 포도나무의 쇠망
처음의 큰독수리를 배반하고 나중의 큰독수리에게 돌아서는 포도나무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배반한 그포도나무가 배반으로인해 시들어버리고 급기야 뽑히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말씀은 애굽과 화친한 유다의 국력이 쇠할뿐 아니라 급기야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함으로 유다나라가 지구상에서 사라져 없어질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시드기야를 끝으로 유다는 멸망하였습니다.
a.양식이 진함(왕하25:3)
b.백성의 죽음(대하36:17)
2. 언약의 중요성
1) 유다보존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 바벨론
에스겔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가운데 유다가 애굽을 의뢰하면 쇠퇴하고 바벨론을 의뢰하면 홍왕한다는 내용이 있음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을 의뢰하면 살고 애굽을 의뢰하면 죽는이유는 패악한 애굽보다 의로운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악을 징벌하시고 유다를 구할 도구로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참조, 겔29:18-20).
a.하나님의 종 느부갓네살(렘27:6)
b.하나님을 위해 수고한 느부갓네살(겔29:20)
2) 바벨른과의 언약파기는 하나님과의 언약파기
바벨론은 하나님의 도구였으므로 유다가 바벨론과 맺은언약은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따라서 시드기야가 유다의 왕으로서 바벨론왕 느부갓네살를 섬길것을 약속하고도 그약속을 어긴것은 하나님과 맺은약속을 어긴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볼때 시드기야와 유다백성이 그들의 바벨론과 맺은언약을 파기하고 애굽으로 돌이킨 것은 중대한 죄악이었습니다.
a.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 약속(대하36:13)
b.백성의 언약멸시(대하36:16)
3) 배반의 종말은 멸망
바벨론과의 약속파기 이전에도 유다백성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불법을 자행하였습니다. 그것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의 파기였습니다. 그런데 유다백성은 끝까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내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한편 이처럼 인간과 인간이 맺은언약도 하나님과 직접맺은 언약만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속에 대해서는 신의를 지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범죄하지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a.백성의 멸절(대하36:17)
b.나라를 잃음(대하36:20)
3. 약속된 메시야왕국에 대한 예언
1) 백향목 높은가지를 얻음
유다에 대한 심판예언이 있은뒤 하나님은 다시 유다의 회복을 예언하십니다. 그 예언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끊어진 높은가지(참조, 겔19:14)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통치를 할 다윗의 후손이 일어나(참조, 겔34:23)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메시야왕국에 대한 예언 그것입니다.
a.다윗의 후손(마1:1)
b.만왕의 왕(계19:16)
2) 이스라엘 높은산에 이름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높은산은 시온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 산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와 성전이 세워질 하나님의 성산을 지칭합니다(참조, 계14:1). 따라서 포로됨에서 회복될 것이라는 이예언의 말씀은 메시야가 하나님나라의 왕으로 세워지는날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유다와 및 모든성도는 그나라 백성이 될것입니다.
a.다윗의 성 시온(왕상8:1)
b.왕을 시온에 세움(시2:6)
3)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음
앞에서 유다라는 포도나무는 가지가 마르고 뽑힐것이 예언되었습니다. 그런데 회복의 날 그가지가 다시 무성하여 열매를 맺고 각양새가 그아래 거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민족들에 의해 채워지며(참조, 계7:9) 그들이 참된 풍요와 평강을 누리게될 것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예언은 이미 성취되었고(참조, 스1:1-11;눅17:21) 또 성취될 것입니다(참조, 계21:1-5).
a.끊치지 않은 실과(겔47:12)
b.풍성한 열매(계22:1-2)
결론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자기백성일지라도 그들이 범죄하면 징계하십니다. 그리고 징계뒤에 살길을 허락하십니다. 살길은 통상 신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주변사람들을 통해 제시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비밀을 깨달지 못할때 더 큰진노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비밀을 깨달아 하나님이 우리 죄인에게 주시는 생명의 길이 현실적으로 무엇인지 깨달아 그길을 걸어 생명에 이르는 지혜로운 백성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19장 - study  (0) 2022.12.05
에스겔 18장 - study  (0) 2022.12.05
에스겔 16장 - study  (0) 2022.12.05
에스겔 15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4장 - study  (0) 2022.12.04

# Study

Ⅰ. 비참하고 보잘것 없었던 이스라엘의 시초 16:1-5
지금 에스겔은 바벨론에 사로잡힌 자들가운데 있다. 그러나 포로들의 유익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편지를 썼던 예레미야처럼(렘 29장), 에스겔도 예루살렘의 유익을 위해 글을 썼다. 예레미야는 포로들을 위로하기위해 글을 썼는데, 에스겔은 예루살렘 거민에게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수치를 줄 목적으로 글을 쓸것을 지시받고 있다.
(1) 그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2절). 예루살렘으로 그가증한 일을 알게하여. '그가증한 일'이 곧 그들의 죄이다. "그죄목을 그들앞에 일일이 열거하라." 우리는 스스로 지은죄를 알아야한다. 그래야만 그죄를 회개할수 있는 것이다.
(2) 예루살렘으로 그가증한 일을 알게하는 것은 전에 하나님께서 그곳을 위해 행하셨던 위대한 일들을 생각나게 하기위해 없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본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처음 세우셨을때의 모습이 얼마나 보잘것없었으며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에 얼마나 쓸모없었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본문에서 예루살렘은 유대민족과 교회를 대신해서 쓰이고 있는데, 비천한 태생으로 밖에 버려진 아이에 비유되고 있다.
1) 유대민족의 혈통은 비천하였다. 네 근본과 난땅은 가나안이요(3절). "너희는 애초부터 가나안족속의 정신과 기질을 갖고 있었느니라." 가나안에 거하던 족장들은 그곳에서 '나그네요 우거한 자'에 불과하였으며 그들이 가진 땅이라고는 묘지외에는 한뼘의 땅도 없었던 것이다. 사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유대인들의 아비요 어미이긴 했으나 그들은 아모리족속과 헷족속과 함께 거주했을 뿐이었다. 가나안을 지배하고 있던 아모리족속과 헷족속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부모처럼 여겨지고 있다(창 23:4,8). 그들은 이웃 가나안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창 13:7;34:30). 족장들은 가나안땅에 맨처음 왔을때 '이나라에서 다른민족에게로'(시 105:13), 마치 이농장에서 저농장으로 소작을 하러가듯이 유리하였다. 그족장들의 조상은 갈대아우르에서 '다른신들을 섬겼었다'(수 24:2). 심지어 야곱의 가족들가운데도 '이방신상'이 있었다(창 35:2).
2) 이스라엘자손이 증가하여 한백성으로 자라나기 시작했을때, 그들은 그들에게 주기로 약속되었던 그땅에서 쫓겨났다. 기근이 그들을 그곳에서 몰아냈던 것이다. 애굽은 그들이 내던져진 넓은 들판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혹독한 억압을 받았으며 그들의 생활은 한층더 비참하였다. 이스라엘민족은 긍휼히 여김받지 못함으로인해 옷도 입지못하고 강보로 둘리지도 못한 갓난아이처럼 멸망할 운명에 처하였었다(4,5절). 네몸이 꺼린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사람들에게 가증히 여겨졌었다(창 43:2; 46:34). 모세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오므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고 말하였었다(신 9:24).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전혀 유순하지도 않았고 다루기 쉽지도 않았으며 어떤 훌륭한 모습으로 다듬어지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셨는데 이는 그들에게서 어떤매력이나 가망성을 보셨기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의 보시기에 좋은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Ⅱ.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셨던 수많은 영광과 은총 16:6-14
하나님께서는 유대민족을 매우 주목할만한 민족으로 세우시면서 그들을 위해 많은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다.
(1)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그들이 파멸당할 찰나에 구원하셨다(6절).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시는 자들은 죽지않고 살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세상을 보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하셨다. 그는 회개케하는 은총으로 인생에게 '살라'고 말씀하신다.
(2) 그는 그들에게서 사랑스러운 점을 전혀 발견하실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자와 부드러운 사랑으로써 그들을 사랑스럽게 여기셨다. 내가 네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때가 사랑스러운 때라(8절). 우리를 구속하시려고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며 성결케하시려고 성령을 보내사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신 것은 바로 우리 구주이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다.
(3) 그는 그들을 그의 보호아래 두셨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독수리가 그 날개위에 새끼를 업는것 같이'(신 32:11,12) 그들을 돌보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사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실때, '그의 옷으로 덮으셨다.'
(4) 그는 그들이 애굽에서 멍에를 메었던 그치욕을 깨끗하게 해주셨다(9절). 그들이 '강한 손과 펴신 팔'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영화로운 자유함으로 인도받았을때, 그들의 노예상태의 불명예는 벗겨졌다.
(5) 그는 그들을 증대케하사 한백성으로 세우셨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옷으로 그들을 덮으신 것이 언급되기전에 기록되었다(7절). 왜냐하면 그들이 아직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동안 그들의 수가 심히 중다해졌기 때문이다.
(6) 그는 그들이 자신과 언약을 맺도록 허락하셨다. 이것은 시내산에서 이루어졌다. "나 하나님과 이스라엘사이에 언약이 맺어져서 인준되었을 그때에 너는 내게 속하게 되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백성으로 부르셨으며 자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부르셨던 것이다.
(7) 그는 그들을 아름답게 꾸미고 치장하셨다. 이처녀, 곧 유다민족은 자신의 장신구들을 잊는법이 없으며 그것들이 풍족한 것에 만족해한다(10-13절). 우리는 이것들을 세부적으로 적용시킬 필요가 없다. 그녀의 수놓은 옷은 갖가지 장식물로 꾸며졌다. 이것은 그들의 교회와 나라를 장식하는 하늘의 모든축복들에 대한 상징으로 생각할수 있다. 그들은 순식간에 '심히 아름다워졌다'(7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셨던 율법과 규례는 그들에게 있어서 '머리의 은혜스러운 장식과 목의 금사슬'과 같았다(잠1:9). 하나님께서 그들가운데 세우신 성소는 그들의 머리에 씌운 '아름다운 관'이었다. 즉 그것은 거룩한 아름다움이었다.
(8) 그는 그들을 진미로 풍족히 먹이셨다. 그들은 가나안에서 가장좋은 밀로 만든 떡을 마음껏 먹었었다(신32:13,14).
(9) 그는 그들로하여금 이웃나라들 가운데서 큰명성을 얻게하셨으며 강력하게 만드셨다. 네가...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13절).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명성이 이방인중에 퍼졌음은(14절). 솔로몬의 지혜, 그리고 솔로몬의 성전은 바로 그민족의 명예였다. 유대교회와 유대왕국의 모든특권들을 종합해볼때, 우리는 그것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가운데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이었음을 인정할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것을 영적으로 적용할수 있다. 성화된 사람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며 그들자신도 그사실로 위로를 얻을수 있는 것이다.

Ⅲ. 그들의 배은망덕과 우상숭배 16:15-34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큰은총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몹시 사악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사악함은 본문에, 멸망에서 구원받은 아름다운 처녀의 추잡하고 수치스러운 생활로 묘사되어 있다. 그들이 저질렀던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가장 성나게 하는 죄악이었다. 이 우상숭배는 솔로몬의 시대 말기에 시작되었는데, 그때부터 포로로 잡혀갈때까지 계속되었다. 비록 우상숭배가 때로는 그것을 일소시키려는 왕들에게 얼마간 저지당하기는 했었지만, 한번도 완전하게 금지된 적은 없었다. 우상숭배는 여기서 매춘과 간통의 비유로 묘사되고 있다. 왜냐하면 첫째, 그것이 하나님과의 혼인언약을 깨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그것은 마음을 타락시키고 더럽히며 사람의 영적인 부분을 예속시키기 때문이다. 셋째, 그것은 양심을 타락시켰기 때문이다.
(1) 이 죄의 원인.
1) 그들은 점점 교만하게 되었다(15절).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가 그 화려함으로인해 이득을 얻으리라 기대하였도다." 네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솔로몬은 우상숭배를 허용하였고 그아내들과 그들의 친척들에게 만족을 주었다.
2) 그들은 자기들의 기원을 잊어버렸다(22절).
3) 그들은 이해력과 결단력이 모자랐다(30절). 인간의 정욕이 강한것은 그마음이 연약하다는 증거이다.
(2) 그죄의 세부사항.
1) 그들은 자기들의 눈에 띄는 모든 우상들, 심지어 예배하도록 유혹하는 우상들조차도 모조리 숭배하였다. 그들의 모든이웃들이 시키는대로 그들은 행하였던 것이다(15절).
2) 그들은 그들의 우상신전과 아세라와 산당들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값지고 화려한 의복으로 장식하였다(16,18절).
3)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 주셨던 보석들로, 예배하기위한 여러상을 만들었다(17절).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우리에게 금과 은을 주신이는 하나님이시다. 금과 은은 하나님의 것이기때문에 우리는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영화롭게 해야하며, 그것의 처분을 그에게 맡겨야 한다. 가이사의 모습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적은 푼돈이지만 그위에는 하나님의 모습이 들어있는 것이다.
4)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셨던 좋은물건들로 그들의 우상을 섬겼다(18절).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앞에 베풀며. "그것들을 그우상들이 제단위에 베풀었도다. 너희가 내식물 곧 고운밀가루와 기름,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먹였던것, 즉 가나안땅에 흐르던 꿀로 우상을 섬기는 굶주린 제사장들을 융숭히 대접하며, 그것들로 우상들에게 바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였도다. 만물을 알고 계시는 이는 그것도 아시느니라."
5) 그들은 자기자식들을 우상들에게 제물로 바쳤다. "너희가 몰록에게 자녀들을 취하여 그들을 바친다는 표시로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을뿐만 아니라,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20절). 이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돌이킬수 없는 죄악이었다. "그들은 나의 자녀들(21절) 곧 너희가 나를 위하여 낳은 자녀들이니라"(20절). 하나님께서는 모든영의 아버지이시며, 특히 이성을 지닌 영은 그의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 곧 인간의 생명을 부당하게 앗아가는 행위는 생명의 하나님께 대한 몹시 무례한 짓이다. 하나님을 위해 태어난 자식들을 이렇게 마귀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다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짓인가! 우리는 가시적인 교회의 구성원들의 자녀를 하나님을 위해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로 여겨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하며, 하나님을 위해 그들을 양육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데려가시고자 한다면 기꺼이 하나님께 그들을 드려야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것으로 그가 원하시는 일을 하시지 않겠는가?
6) 그들은 그우상들을 영화롭게 하기위해 여러신전을 세웠다. "너희가 사사로이 이같은 모든악을 행한후에 그것을 선포할정도로 뻔뻔스러워지기에 이르렀도다. 이제 너희는 얼굴을 붉힐줄도 모르는도다"(23-25절). 너를 위하여 누를 건축하며. 어떤역본은 이 누를 '기생의 집'이라고도 읽는다. 그들은 우상의 신전도 세웠다. 네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그들의 하나님을 떠난 유다나라는 주위에 있는 나라들의 신들에게 빠져듦으로해서 이웃의 이교도들의 눈에조차 자신을 비열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3) 이 죄악을 더욱 가중시킨 것.
1) 그들은 자기들의 압제자요 박해자였던 나라들의 우상들을 맹신하였다. 그나라들은 애굽과 앗수르였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의 징책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강퍅하였다(27절). "내가 내손을 네위에 펴서 너를 놀라게 하고 경고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하시려고 그의 손을 그들위에 펴시기전에 그렇게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조금 약한 심판을 통해서, 인간들을 회개케 하신다. 이것이 바로 그의 방법이다.
3) 그들은 영적인 행음에 물릴줄 몰라 하였다. 네가...오히려 부족히 여겨(28절). 오히려 족한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29절).
4) 그들은 우상숭배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들였다. 그들은 형상과 제단을 만드는데 많은돈을 내놓았으며, 그것들을 수종들도록 다른나라들로부터 제사장들을 고용함에 있어 많은돈을 투자하였다. 이러한 일은 31-34절에서 매우 강조되고 있다. 이모든 사실을 통해서 예루살렘은 자기들의 가증스러움을 깨달을수는 없었는가? 아무리 사람들이 더나아질수 있고 더좋은 일을 할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시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어떠한지를 우리는 여기서 경이와 두려움으로 알게된다.

Ⅳ. 심판이 올것에 대한 경고 16:35-43
예루살렘은 이 극악한 간음으로 유죄판결을 받음으로써 처벌을 당하게 된다. 이것은 엄숙하게 예고되고 있다(35절). 신앙을 버린 교회는 음부와 같다. 예루살렘이라도 우상숭배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 신실한 성읍이 어찌하여 음부가 되고 말았는가!
(1) 36절과 43절에 그범죄가 진술되고 혐의의 조목들이 집약되어 있다.
1) 그들은 우상숭배로인하여 첫째돌판의 첫번째 두계명을 범하였다. 예루살렘은 이 '정든 자' 즉 모든 '가증한 우상'과 행음하였다.
2) 그들은 그들의 죄없는 어린아이들을 살해함으로써 둘째돌판의 첫번째 두계명을 범하였다. 네자녀의 피를 그우상에게 드렸은즉(36절).
3) 그들의 비열한 배은망덕 역시 그들의 죄악을 심화시켰다. "네가 어렸을때를 기억지 아니하고, 멸망할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때에 네가 받았던 자비를 기억지 아니하도다"(43절). 네가...나를 격노케 하였은즉. "네가 나를 분노케 하였을뿐만 아니라 몹시 슬프게 만들었도다."
(2) 일반적인 선고가 내려진다. 내가 또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여인을 국문함같이 너를 국문하여(38절). 이 간음과 살인이라는 두죄악은 수치스러운 죽음으로 처벌되었다. 이범죄는 공개적인 수치를 당해야 한다(37절). 예루살렘의 재난은 그친구들에게는 슬픔이요, 그적들에게는 기쁨이 될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유익을 걷어차 버리는자들은 벌거벗게될 것이다. 너를 돌로치며 칼로 찌르며(40절). 예루살렘성벽이 돌에 맞아 부서지고 그거민들이 칼에 맞아 죽었을때, 이선고가 글자그대로 집행되었다. 그들이 네 누를 헐며(39절). "그들이 마치 탕녀들의 집을 부수듯이 불로 너의 집을 사르리라"(41절). 높은대가 제거되지 않은 것은 유다 열왕가운데 가장 훌륭한 통치기간 중에도 골치거리였는데, 이제 갈대아군대가 그것들을 훼파하게 될것이다. 바벨론 유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음행을 영원히 그치게 만들었다. 그것은 우상숭배하는 그들의 성벽을 효과적으로 치유하였다. 그리한즉...내투기가 네게서 떠나고 마음이 평안하여 다시는 노하지 아니하리라(42절).

Ⅴ. 소돔과 사마리아의 비유 (겔16:44-59)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선지자를 통하여 보여주신다.
(1) 예루살렘이 그 '어미'만큼 악하다는 사실이다. 이 '어미'란 예루살렘이 있기전 그땅을 점유하고 있던 저주받은 가나안족속을 가리킨다. 어미가 어떠하면 딸도 그렇다(44절). 그어미는 '남편과 자녀를 싫어하였으며' 간부에게서 볼수 있는 모든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그딸의 성격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땅으로 이끄셨을때, 하나님께서는 그땅에 저희보다 전에 있던 자들(그땅이 그들을 토해냈기때문에 저희보다 전에 있던 자들이라고 한것이다. 레 18:27,28)의 가증한 것들을 따라 행동하지 말것을 저희에게 특별히 경고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행위를 익히고 본받았다. '저희의 어미는 헷사람이요 아비는 아모리사람이라'(45절)고 불리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브라함과 사라보다는 헷사람과 아모리사람을 더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2) 그녀 곧 예루살렘이 그녀의 자매들인 소돔과 사마리아보다 더 사악하다는 사실이다. 이들도 간부들이었으며, 자기조상들의 신들에 대해 싫증을 느꼈고, 새로운 신들을 만들어서 새로운 신앙풍습을 들여왔다.
1) 예루살렘의 자매들(45절) : 사마리아는 '형'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그곳이 상당히 많은부분에 있어서 이스라엘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있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의 이성읍과 촌락들은 영적인 간음으로인해서 최근에 멸망당했다. 소돔과 그성읍에 인접한 마을들은 예루살렘의 '아우'였는데 그곳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보다는 작은 성읍이었으며 소돔은 육적인 간음으로인해서 오래전에 멸망하였다(유 1:7).
2) 예루살렘의 죄는 그자매들 특히 소돔의 죄와 닮았다(49절).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그들이 '다른색을 따라간 것'은 소돔의 가장 극악한 죄였는데 본문에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본문에 언급된 죄악들은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추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더욱 극악한 범죄를 유발시켰다. 교만함은 천사를 마귀로 만들어버려 여호와의 동산에서 세상의 지옥으로 쫓겨나게한 가장 큰죄였다. 탐욕은 여기서 '식물의 풍족함'이라 불리우고 있다. 게으름, 곧 '태평함'은 일하기 싫어하고 안일함을 좋아하는 것을 가리킨다. 게으름은 더큰 죄를 짓게 만든다. 고인물은 썩으며 앉아있는 새는 그물치는 자의 표적이 되는 법이다.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이말은 소돔이 가난한 자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그들의 팔을 꺾어버렸음을 의미한다고 볼수 있다.
3) 예루살렘의 죄악은 소돔과 사마리아의 죄악을 증가하였다. 하나님의 총애를 받던 그거룩한 성읍의 사악함은 예루살렘이 누린 특권과 여러은총들을 받지못했던 소돔과 사마리아의 사악함보다 더 하나님을 노하시게 만들었다(48절). 사마리아는 네 죄의 절반도 범치 아니하였느니라(57절). 사마리아는 그렇게 많은 우상들중 절반도 섬기지않았고, 그렇게 많은 선지자들중 절반도 죽이지 않았다. 네가 그들보다 가증한 일을 심히 행한고로 너의 가증한 행위로 네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느니라(51절). 예루살렘은 건방지게도 소돔과 사마리아를 감히 논단하였다. 성실성을 간직하고 있던 옛날에 예루살렘은 그들을 논단하였다(52절). 그들이 악하였지만, 예루살렘이 더 악하였다는 사실은 그들의 죄를 어느정도 경감시켜줄 것이다. 이러한 사실때문에 예루살렘은 몹시 수치를 당해야만 했다. "형과 아우를 논단하여 그들에게 수치스러운줄 알라고 소리지르던 네가 이제 네수치를 담당할지니라. 이는 네가 그들보다 더욱 가증한 죄를 범하였음이니라"(52절). 우리의 죄로인해서 다른사람들까지도 죄를 짓도록 조장하는 것보다 더수치스러운 죄는 없다. 그들은 그이웃들을 몹시도 멸시했었다. 네가 교만하던 때에 네아우 소돔을 네입으로 말하지도 아니하였나니(56절). 만일 유대인들이 서로에게 또한 그자녀들에게 소돔의 불경건과 불의에 대해 하늘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에 관하여 자주 진지하게 말하였더라면, 그들이 소돔의 전철을 밟는것을 방지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4)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사마리아를 능가하는 사악함을 보인 예루살렘을 다음과 같이 황무케하셨으며 이제도 황무케하고 계시다.
① 예루살렘은 이미 오래전에 수치를 당했으며, 그이웃들 가운데서 멸시받는 자리에 떨어졌다.
② 예루살렘은 이제 사로잡힌 상태에 있거나 아니면 그상태로 치닫고 있다. 이는 그 음란함때문만이 아니라(58절) 신실치 못함과 언약을 배반함때문이기도 하였다(59절). 하나님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신봉하려고 하지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이라고 계속해서 인정해주실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③ 사악한 유대인들의 사로잡힘과 파멸은 소돔과 사마리아의 경우처럼, 취소할수 없는 일이 될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53절과 55절을 하나의 경고로 보고있다. 소돔과 사마리아는 그들의 옛땅으로 겨로 되돌려지거나 돌아갈수 없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거민들도 돌아오게 되리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거기 남아있던 자들을 '세상 모든나라 중에 흩어서 그들로 환난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렘24:9,10).

Ⅵ. 참회하는 남은자에 대한 자비로운 약속 16:60-63
죄에 대해 가장 수치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자각과 가장 무서운 심판이 언급된후에, 본장의 종결부분에서는 후세대들을 위한 자비가 언급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나온자들에 대해 분노를 발하사 그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할것을 맹세하셨을때 "그러나 너희자녀들은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계시다. 어떤이들은 소돔과 사마리아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이 회복되리라는 말씀을 하나의 약속으로 생각하고 있다(53,55절). 그러한 생각은 한때 소돔에 거했던 롯의 후예인 모압자손과 암몬자손을 소돔으로 이해한다면 가능하다(렘 48:47;49:6). 그러나 이 종결부분의 말씀은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의 귀중한 약속이다. 비록 이약속은 참회하고 개심한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옴으로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지만, 복음시대에는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그시대에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온열방에 이르기까지 죄를 회개하여 용서받으라고 전파될 것이다.
(1) 이 자비는 하나님자신과 하나님께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신 것에 근거를 두고있었다(60절).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내가 그언약을 다시 회복하리라. 비록 네가 언약을 배반하였을지라도(59절) 나는 그것을 기억하리니, 그것이 다시 살아나리라."
(2) 그들은 이 자비를 받기위해 예비해야 하며, 합당하게 되어야 한다(61절). "네가 네행위 곧 악한행위를 기억할지라. 내가 네 마음속에 그행위들을 생각나게 하고 네앞에 나열할 것이니 네가 그것들로 부끄러워할 것이라."
(3)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자비를 남겨두셨다.
1)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언약을 맺으려 하신다(60절).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이말씀은 62절에서도 다시 언급되어 있다. 내가 네게 내언약을 세워서. "내가 언약을 다시 세우되, 이전보다 더 확고히 세우리라."
2) 하나님께서는 교회공동체에 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끌어들이려 하신다(61절). "네가 네 자매들 곧 너의 사방에 둘러있는 이방민족들과 네형과 아우 곧 고대와 현대의 민족들을 접대하리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저희가 시온과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복음으로 양육되고 교육받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이웃들이 예루살렘을 '어미'라고 부르리라. 저희가 네딸들이 되겠지만 네언약으로 말미암거나 유대종교로 개종할 것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신앙으로 귀의함으로 말미암으리라." '네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질수도 있다. "네가 그들을 네멋대로 할수 있는 피정복민들로 여겨서는 안될지니라. 그들은 내언약 곧 너의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언약을 통해 네딸들이 되리라. 내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성부가 되리니 저희가 서로 자매가 되리라."
(4) 이일은 다음과 같은 결과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이를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62절). 내가...너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하리니. "이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시며 자기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리라. 그사실이 너에게 위로가 될것임을 네가 알리라."
2) 이를통해 그들은 범죄한 사실에 대해서 더욱 겸손해질 것이다(63절). "이는 네가 행한 모든 범과들을 기억하여 더욱 놀라게 하여, 다시는 하나님께 반대하여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는 오로지 너로하여금 부끄러움으로인해 영원히 순종케하려 함이니라."

# 핵심
16:1-63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번영하는 왕국으로 성장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줄곧 죄악으로 대응한 선민들의 패역한 모습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신생아에게 소금을 뿌리는 풍습(16:4)
근동지방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을 끊자마자 산파가 그아이에게 소금과 기름과 물을 뿌려 문지르고 7일동안 강보로 쌌다. 7일이 지나면 아이를 씻은후에 다시 깨끗한 강보로 쌌는데, 그것은 일종의 정결의식이었다고 한다.
결혼선물(16:33)
고대 근동지방에서 결혼선물은 신랑이 신부측에게 주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이삭의 신부감으로 선택된 리브가에게 은과 금, 의복을 주었다(창 24:53). 결혼선물은 야곱이 라헬과의 결혼을 허락받기위해 일했던 것처럼 봉사의 형태일수도 있었다(창 29:18). 본절에서는 선물을 받아야할 신부입장에서 오히려 선물을 주었음을 지적함으로써, 유다의 강렬한 음행의지를 부각시킨다.
속담(16:44)
히브리어로는 ‘마샬’이며, 문자적으로 ‘골수에 사무치는 말’을 뜻한다. ‘마샬’은 ‘잠언’(전 12:9), ‘비유’(시 49:4)로도 번역되며, ‘속담’으로 번역될때에는 대개 부정적인 맥락에서이다(삼상 24:13).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와 관련해서도 이표현이 사용되었다(신 28:37; 왕상 9:7).

# 묵상
이스라엘의 실체(16:1-5)
본래 이스라엘은 그근본과 태어난 땅이 가나안이요, 아비는 아모리사람, 어미는 헷사람으로, 꺼린바 되어 들에 버리운 고아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하나님께 선택받은 선민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에스겔의 이러한 예언은 참으로 큰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언약하여 하나님께 속하게 된 이스라엘(16:8)
본문의 이표현은 결혼서약때 사용하는 말로, 구약은 종종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부부관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들과의 언약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신부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부부’로 설정되었기에, 이스라엘이 이방신을 섬기는 것을 음행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함께 행음한 지나가는 자(16:15)
본문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행음한 지나가는 자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어 곁에서 함께 살면서 영원히 그들을 보살펴줄 자가 아니라 지나가 버리고말 자, 곧 우상을 가리킵니다. 즉 이스라엘은 남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아세라, 담무스 등의 우상을 섬긴 음란한 아내였던 것입니다.
몰렉(16:20-22)
이는 모압인들의 신으로서,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시대 이후부터 자녀를 신의 희생제물로 삼는일을 금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은밀히 그의식을 치러왔는데, 그대표적인 사람이 아들을 몰렉에게 바친 므낫세왕입니다(왕하21:6).
열방과 이스라엘의 행음(16:25-29)
애굽, 블레셋, 앗수르, 갈대아와의 음행은 당시 이스라엘에 유행하던 종교적 혼합양상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블레셋의 바알이나 애굽신, 앗수르나 갈대아의 신을 섬겼습니다. 이는 또한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당시 고대근동의 강국을 의지한 정치적행태를 비난한 것이기도 합니다.
음부같은 유다백성(16:37-43)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에 대해 이방인들의 손에 벌거벗김을 당하고 열방이 보는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41절의 ‘여러 여인’이란 예루살렘의 패망을 지켜보는 주위의 다른성읍들을 가리킵니다. 이는 비유적 표현으로서, 하나님앞에서 범죄하여 창기처럼 된 유다백성은 음행하듯 섬기며 사랑하던 이방인들의 우상으로 말미암아 결국 크게 형벌을 받게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죄악된 행실로인해 오히려 그올무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 죄를 사랑하는 자는 결국 죄의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어렸을때(16:43)
이말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때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자신들을 구원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여 풍성한 삶을 살게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형과 아우를 의롭게한 유다(16:52)
여기서 형은 사마리아이며 아우는 소돔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그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다는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지은죄가 너무나 커서 오히려 상대적으로 사마리아와 소돔이 의롭게 여겨지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사마리아와 소돔을 죄인들로 규정하고 상대조차 하지않았는데 이는 신약시대에도 계속되었습니다(요4장).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가 더커서 오히려 소돔과 사마리아의 죄악이 작아보인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바리새인인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의롭게 여겼으나 하나님이 의롭게 여기신 것은 자기죄를 알고 통회하는 죄인이었습니다(눅18:13).
이스라엘과 맺으신 새언약(16:60-6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새언약을 맺으시는 이유는 그들이 어렸을때, 즉 출애굽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때문이며, 또한 그들로하여금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고 하나님을 기억하며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긍휼때문에 죄를 용서받고 다시 하나님의 신부로 회복됩니다. 인간은 그의 언약(61절), 곧 율법과 선한행위로는 결코 의롭게 되지못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용서의 은혜에 의해서만 의롭게 됩니다(엡2:8).
창기만도 못한 이스라엘(16:30-34)
본문에서 이스라엘을 창기만도 못하다고 한것은, 창기는 선물과 값을 받고 행음하지만 이스라엘은 오히려 선물을 주고 값을 주며 행음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지아비대신에 외인과 사통하는 아내처럼 모든우상을 섬기고, 또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은혜와 복의 소산을 그들에게 바쳤습니다.

# 해설
결혼비유 ( 16 )
앞장인 제15장이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여 그들의 죄악과 그죄악으로 인한 징계를 언급했다면 본장은 이스라엘을 비천한 가운데서 건짐을 받아 성장한뒤 만군의 왕이신 여호와의 왕후가 되는 은총을 입은뒤에도 배은하고 우상을 섬김으로 징계를 받는다는 비유의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내용위에 본장은 그래도 이스라엘이 약속의 백성이라 결국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1. 은혜를 통한 구명과 영화로운 결혼
1) 이스라엘의 비참한 초기상태
이스라엘이 아직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이전에는 민족이라고 할만한 숫자도 구성하고 있지못했고(참조, 창46:1-27) 국가를 구성할만한 땅도 가지고있지 못했습니다(참조, 창23:1-20). 그이전에는 더욱더 상태가 심각해서 우상을 섬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상태에 있었습니다(참조, 수24:2). 이스라엘은 그초기에 그어떤 이방나라와 비교도 안될만큼 초라하고 힘이 없고 연약했던 것입니다.
a.모든 민족중 가장 적음(신7:7)
b.압제받은 이스라엘(출1:13-14)
2) 하나님의 구명과 양육
이스라엘이 그러한 연약하고 열악한 상태에 있을때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하셨습니다(참조, 창12:1-3;신7:7). 그리고 그들을 선택하여 노예된 상태에서 건져 독립을 주시고(참조, 출12:29-51) 그들에게 땅을 주셨습니다(참조, 수6:1-수12:24). 한마디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생명을 건져주시고 그들이 부요할수 있는 기반과 명예를 제공해주신 것입니다.
a.애굽 구출작전(출3:8)
b.창대케 하심(창12:2)
3) 결혼을 통해 왕후가 됨
이스라엘이 독립을 하고 많은인구를 가지게 되었으며 영토를 취함으로 명실상부한 국가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완전한 자기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을 하나님의 영원한 반려자로 삼으심으로 천지의 대주재되신 하나님의 왕비가 되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주변 모든국가와 대등하게 나설수 있는 강대한 국가가 되었습니다(참조, 왕상4:29-왕상10:29).
a.뭇나라의 흠모(왕상4:34)
b.성자 하나님의 신부(계21:2)
2. 배은의 음행
1) 주위 민족의 우상을 섬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스라엘에게 있어 하나님은 민족적 생명의 은인이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께 모든섬김을 다하여도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은혜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이 금지하신 주변나라와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던 이방신들을 섬기고 그우상들에게 그들의 풍요와 안전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정신적, 영적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a.바알숭배(왕상16:31)
2) 주변국가의 힘을 의뢰함
이스라엘의 배은의 음행은 우상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상은 물론이고 주변 열강의 힘을 의뢰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열강의뢰로 가장먼저 꼽힌나라는 애굽이며, 그다음으로는 앗수르와 블레셋 등의 강대하고 부요한 나라들이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힘과 재물을 가진 나라에 아부하며 그들에게 자신들의 안전과 풍요를 의지하며 시작한 것입니다.
a.애굽신뢰(출14:12)
b.앗수르의뢰(왕하16:7)
3) 음행하되 돈을 주고 음행함
보통 일반적으로 창기들은 돈을 받고 성을 팝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남편을 떠나 간음하는 이스라엘은 그반대였습니다. 그녀는 돈을 받고 그녀의 성을 팔지않고 오히려 그녀의 돈을 주어가면서 성을 구걸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에게 모든것을 주실수 있는 만군의 여호와를 버려두고 그들의 소유를 주면서까지 헛된 이세상의 우상들과 강자들에게 그들의 정조, 곧 영혼을 구차하게 구걸했던 것입니다.
a.조공을 바친 호세아(왕하17:3)
b.값주고 음행을 함(호8:9)
3. 자매의 비교할수 없는 음행과 회복
1) 북이스라엘의 음행
솔로몬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의 두나라로 분열하였습니다. 북쪽나라는 르우벤지파를 중심으로하여 열지파가 모여 사마리아를 수도로 한뒤 국호를 북이스라엘이라 하였습니다. 이런면에서 북이스라엘은 두지파로 구성된 남쪽나라보다 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형된 북이스라엘은 단한명의 선한왕도 배출하지 못할만큼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와 악을 자행했습니다.
a.앗수르와의 음행(겔23:5)
b.애굽과의 음행(겔23:8)
2) 남유다의 더한 음행
남쪽나라는 유다와 베냐민 두지파를 중심으로 모여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뒤 국호를 남유다라 하였습니다. 남유다는 간간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때가 있었으나 우상을 숭배하기는 북이스라엘 못지않았으며 주변열강을 섬기는데 있어서는 북이스라엘을 능가하였습니다. 그들은 애굽, 앗수르 더나아가 바벨론을 섬겼으며 그들이 숭배하는 우상을 닥치는대로 숭배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아우 남유다가 형 북이스라엘보다 음행의 정도에 있어서 더심하다고 경책하고 있습니다.
a.앗수르 연애(겔23:12)
b.바벨론과의 음행(겔23:17)
3) 언약을 통한 회복
이스라엘의 모든백성들은 거의 예외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백성을 징계하시나 징계가 그치면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그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실때에 그들을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삼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참조, 창17:1-8). 신실한 하나님은 그거룩하고 영광된 이름을 위하여 그약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참조, 겔20:14). 또한 일향 미쁘신 하나님은 한번 사랑하는 자는 끝까지 사랑하십니다(참조, 요10:28-29).
a.영원한 언약(창17:7)
b.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단9:4)
결론
인간은 그본성이 악하여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도 입어도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하나님께 다가갈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이를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베푸실때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의에 이를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나 의로 하나님께 이르고자 하지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곧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이르도록 해야합니다(참조, 요3:16;행4:12). 그러면 일향 미쁘신 하나님은 그러한 믿는자를 영원히 구원하십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18장 - study  (0) 2022.12.05
에스겔 17장 - study  (0) 2022.12.05
에스겔 15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4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3장 - study  (0) 2022.12.04

# Study

Ⅰ. 포도나무 비유를 통한 예루살렘멸망의 예고 15:1-8
추측컨대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성읍이었으며, 그것이 멸망하는 것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예루살렘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심으로써 그들에게 답변하신다. 만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을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귀중한 나무이다. 예루살렘이 바로 그렇게, '순전한 참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기웠었다(렘 2:21).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만일 거룩한 성읍으로서 그특성에 알맞는 열매를 맺었더라면, 성읍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모두의 영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열매를 맺지못했다면 그것은 가시나무와 찔레나무처럼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될것이다. 삼림중 여러나무 가운데있는 그포도나무 가지가 나은것이 무엇이랴(2절). "만일 포도나무가, 재목으로 쓸목적으로 심은 삼림의 나무들이 거의 열매를 맺지못하듯, 열매를 맺지못한다면 과실나무가 아니지 않는가?" 어떤 과실나무들은 결실하지 못한다면 그나무를 목재로 활용할수 있지만, 포도나무는 그런종류에 들지않는다. 그러므로 만약 포도나무가 과실나무로서의 목적을 이룰수 없다면 아무가치가(목재용 나무로도) 없는 것이다.
(1) 이비유가 본문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들포도나무 또는 결실이 없는 포도나무는 전혀 무익하다. 그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수 있겠느냐(3절). 식물중에 어떤것은 뿌리가, 어떤것은 씨나 열매가, 어떤것은 잎사귀가, 또 어떤것은 줄기가 우리에게 매우 유용하다. 이처럼 나무들가운데는 참나무와 삼나무처럼 열매는 맺지못하나 단단한 나무가 있다. 또한 어떤것들은 포도나무처럼 약하지만 결실이 매우 풍성한 것도 있다. 열매맺지 못하는 나무가 무엇을 제조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면 그것은 불에 던질 화목이 될뿐이다(4절). 아무데도 쓸데없는 나무라면 이방법 외에는 달리 용도가 없는 것이다.
(2) 이비유가 예루살렘에 적용되고 있다. 그 거룩한성은 무익하고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그성은 포도원에 있는 포도나무처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의의열매가 풍성하였었다.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예배가 지켜질때에는 즐거운 포도열매를 많이 거두어 들였었다. 그리고 이러한 예배가 계속되는동안에는 하나님께서 그주위에 울타리를 두르셨으며, 그것은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사 5:7)가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때때로 물을 주시며 밤낮으로 간수하셨다'(사 27:3). 그러나 그것은 이제 타락한 이방 포도나무, 곧 '삼림중 여러 나무가운데 있는 포도나무'가 되어버려, 메스껍고 해로운 들포도를 맺는(사 5:4) 야생종이 되었다. '그들의 포도는 쓸개 포도니 그송이는 쓰다'(신 32:32). 이는 그들이 범법함이니라(8절).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여 속였던 것이다. 유대민족은 거룩한 백성으로 알려졌으나, 그들이 사악해지자 그때부터는 무익하게 되어버렸다. 그들은 그들의 유익함을 모두 잃어버리고 이방인의 발아래 짓밟혀 태양아래에서 가장 천하고 멸시받는 백성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의 은총의 영광에 대한 열매를 맺지못하는 자들은 그의 분노의 불을 붙일 땔감이 되고말 것이다(6절). '예루살렘 거민'은 썩어버려 귀찮은 포도나무가지와 같았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하실 것이다(7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의 모든계획을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그땅을 황무케 하리니. 그러므로 '그들이 그불에서 나와도 불이 그들을 사를' 것이다(7절). 그들은 고향에서 재난을 겪다가 바벨론으로까지 가서 재난을 겪게될 것이다.

# 핵심
15:1-8
쓸모없는 포도나무 비유이다. 유다백성의 배타적인 선민의식을 불식시키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그들이 무익한 존재임을 밝힌다.

# 묵상
쓸모없는 포도나무 ( 15:1-8 )
본문에서 삼림속의 포도나무란 하나님나라에 속하지않고 열방속에서 그들과 같은 죄된 삶을 살아가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도나무인 이스라엘로하여금 포도의 결실, 즉 그들이 제사장족속이 되어 열방을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여, 불쏘시개로 삼아 성령강림의 불을 지피우고자 하셨으나 이스라엘은 죄악에 빠져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에 던질 화목같이된 이스라엘을 불로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받지못한 가지는 심판날에 영원히 타는 불속에 던지워집니다(요15장).

# 해설
포도나무 비유 ( 15 )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불법과 강포를 행하는 유다백성에게 진노의 재앙을 내릴것을 직접적인 언어를 통해 또는 상징적 행동을 통해 선포하셨습니다. 본장은 포도나무 비유라는 상징적 언어를 통해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패역한 유다를 버리시고 징계하실 것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1. 포도나무의 특성
1) 재배식물
포도나무는 자연상태에서는 열매를 맺기가 힘듭니다. 포도나무는 연약하기때문에 그것에게 물과 양분을 주고, 뿌리를 파헤치는 여우로부터 지켜주며, 버팀목을 세워주고, 바람으로부터 막아주는 등의 재배의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 한마디로 포도나무는 스스로 열매맺지 못하기때문에 보호의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 이손길이 없을때 포도나무는 줄기를 제대로 뻗지못하고 열매도 제대로 맺지못합니다.
a.모든 백성중에서 보호하심(수24:17)
2) 가지식물
포도나무의 외형적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계절은 겨울입니다. 포도나무는 땅속에 묻혀 보이지않는 뿌리부분을 제외하고나면 가늘고 긴 줄기밖에 거의 없는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커다란 잎사귀들로 덮여있어 무성해보이나 그잎들이 다 떨어지고나면 앙상한 가지만 남게됩니다. 겨울에 드러난 그모습은 그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를 가지고있지 않은 모습입니다. 같은 줄기식물인 넝쿨식물처럼 끈으로도 사용할 가치도 없으며 기둥나무처럼 목재로 사용할 가치도 가지고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a.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심은 가지(사60:21)
b.예수는 포도나무 성도는 가지(요15:5)
3) 많은열매
포도나무가 나무자체로는 아무런 모양도, 가치도 가지고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자체의 생장력으로는 자라지도 열매를 맺지도 못하여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수고하여 포도를 재배하는 이유는 그나무가 사람에게 유용한 열매를 풍성하게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그열매가 향기와 달콤한 음료와 충분한 양분을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a.포도열매를 거두라(레25:3)
b.포도원을 심고 그열매를 먹음(왕하19:29)
2. 이스라엘과 포도나무
1) 연약함
앞에서 우리는 포도나무의 특성을 살펴볼때 포도나무는 연약한 가지식물이라는 것을 언급한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백성을 그러한 포도나무에 비유한 것은 유다백성이 그와같이 연약한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다백성의 조상인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민족보다 수효에 있어서도 적었으며(참조, 신7:7) 그민족의 탄생때에도 거주할 땅조차 가지지 못한채 애굽에게 학대받던 연약한 민족이었습니다(참조, 겔16:1-7).
a.가장적은 이스라엘 민족(신7:7)
b.약한것을 택하여 강하게 하심(고전1:27)
2) 쓸모없음
유다의 조상들인 이스라엘 백성의 최초조상인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던 데라의 아들이었습니다(참조, 수24:2). 그러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민족을 이루었으나 땅도, 군대도, 법률도 가지고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자신들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자체로는 이방민족들처럼 법률을 만들거나 문화를 발달시켜 인류사회에 공헌할 여력도 없었으며, 더욱이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수도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은 처음 그자체의 상태로는 인류와 하나님께 아무런 가치없는 민족이었습니다.
a.피투성이 같은 이스라엘 민족(렘16:6)
b.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롬3:23)
3) 순종과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있음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포도나무가 그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도 가지고있지 않았으며 재배의 손길이 있어야만 생존할수 있음에도 사람이 그것을 재배한 이유는 그것이 사람에게 유용한 열매를 제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유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그민족 자체로는 연약하고 아무런 쓸모도 없었음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여 은혜를 베푸신 것은 그들에게서 하나님만을 섬겨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동시에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이세상에 심기를 기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때 유다의 존재가치는 하나님 섬김과 이웃사랑이었습니다.
a.제사보다 순종을 좋아하심(삼상15:22)
b.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함(히11:6)
3. 버려지는 포도나무
1) 이유
전술한바와 같이 유다의 존재가치는 그들이 하나님만을 섬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방백에게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고 불법을 행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의를 짓밟았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열매없는 포도나무를 하나님께서는 버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a.버렸으니 버림(호4:6)
b.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마21:19)
2) 경과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존재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유다백성을 징계하시는 방법은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군대를 사용하여 유다를 침공하게 하심으로써 열매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를 찍어 불에 넣듯이 유다를 칼로 죽게하고 전화속에 불타게 만들었습니다(참조, 겔5:2).
a.불에 타는 예루살렘(왕하25:9)
b.살육당한 유다백성(대하36:17)
3) 결과
언약을 파기하고 교만하며 선민의식 속에서 자기의 의무를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징계를 받아 멸망하자 유다는 그교만이 꺾이고 선민의식을 박탈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만국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유다는 비참한 종말을 맞게된 것입니다.
a.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마24:51)
b.말라지고 불에 살라짐(요15:6)
결론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의 말로는 다 비참한 멸망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없는 나무는 철저하게 버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한가지 희망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징계는 새로운 시작을 여는 기회라는 것입니다(참조, 겔11:16-20).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심판이 오기전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다며 그것을 달게받고 새로운 출발의 기회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17장 - study  (0) 2022.12.05
에스겔 16장 - study  (0) 2022.12.05
에스겔 14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3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2장 - study  (0) 2022.12.04

# Study

Ⅰ.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정죄 14:1-11
(1) 이스라엘의 장로중 몇명이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의 계시를 알고자하여 그에게 부탁하였다. 장로 두어사람이 나아와 내앞에 앉으니(1절). 그들에게 호된 답변이 주어짐으로 인해서, 그들이 그선지자를 옭아맬 계획을 꾸몄으리라고 추측해 볼수 있다.
(2)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그들의 본색을 가르쳐주신다(3절). 그들은 우상숭배자들이었으며, 그들이 거짓신들에게서 어떤계시를 받으려 했던것처럼 단지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에스겔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사람들이 자기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이것은 영적 우상숭배에 대한 설명으로 볼 수 있다. 즉 세상의 부귀와 육체적 쾌락에 애정을 쏟는자들, 돈을 신으로 섬기는자들, 자기들의 배가 그들의 신인자들, 이들은 우상을 자기마음에 들여놓은 자들인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결과야 어떻게되든 죄를 계속짓기로 결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내가 이방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렘 2:25). 이것이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말일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적대행위를 계속하는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평강의 응답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3)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하라고 에스겔에게 지시하신다(4절). "자기우상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연합하면서 나에게 묻고자하여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저의 거짓경건이 아닌 진짜 범죄에 따라 저에게 응답하리니 이것이 모든 이스라엘족속에 대한 나의 방침임을 저들로 알게하라." 나 주여호와가 말하노라...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그우상의 많은대로 응답하리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들자신의 마음의 정욕에 내어맡기실 것이며 그들의 범죄의 분량이 찰때까지, 그들자신을 사악한 마음에 내어맡기도록 버려두실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밝혀내사 심판하신다면 그심판은 온전히 그들이 마음에 품었던바에 따라 행해질 것이다. "오 이스라엘아! 너희가 스스로 파멸하는도다."
(4) 이답변은 '이스라엘 족속' 모두에 대한 것이었다(7,8절). 이것은 이스라엘족속 각개인 뿐만아니라(4절), '이스라엘가운데 우거하는 외인'과도 관계된 답변이다. 개종자들일지라도 그들이 신실하지 않으면 묵과되지 않을 것이다. 위선자들은 우상들과 교제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심판을 통해 응답하실 것이다. 그사람을 대적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를 본보기로 삼으실 것이다. 즉 이일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났으면서도 하나님께 묻는체하는 자에게 임할 것이다. 그위선자는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였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의 백성가운데서 끊으실' 것이다.
(5) 이 거짓경건자들을 은근히 후원하여 예언하였던 거짓선지자들의 운명이 선언된다(9,10절). 이 위선적인 질문자들은 에스겔이 그들에게 기분좋은 대답을 해주지않자 만족할만한 답변을 해줄 다른선지자들을 만나기를 희망한다. 만일 그들이 다른선지자들을 만나려고 한다면(아마 그렇게 할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한 형벌로서 거짓선지자들에게 그들을 속이도록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손을 펴서 내백성 이스라엘가운데서 그를 멸할 것이라(9절).
(6) 이 두려운 운명을 방지하기위해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권면이 주어진다(6절). 그런즉...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너희가 사모하고 있는 가증한 것들로부터 돌이키라. 그러면 여호와께서 너희질문을 환영할 것이라."
(7) 거짓선지자들과 거짓성도들은 그들중 몇명이 이미 본보기가 된것처럼, 백성전체가 회심하여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하기위하여, 모두 멸망할 것이다(11절).

Ⅱ. 하나님께 범죄한 나라에 임할 재앙 14:12-23
(1) 국가적인 범죄는 국가적인 심판을 불러 일으킨다. "어느나라가 내게 범죄하여 악습과 사악함이 만연하고 심한 불경건과 부도덕이 온통 퍼졌을때, 그에 대한 형벌로 내가 손을 그위에 펴리라"(13절).
(2) 하나님께서는 죄에 물든 나라들을 벌하시기위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심판하신다. 본문에는 '네가지의 중한 벌'이 서술되어 있다.
1) 기근(13절) : 일반은총을 물리치고 거두는 것은 그자체가 심판으로 충분하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이 이땅에 해마다 내는 소산 곧 사람과 짐승을 위한 양식을 끊으사 이들을 끊으신다.
2) 사납고 해로운 짐승들 : 내가 사나운 짐승으로 그땅에 통행하여 적막케하며 황무케하여 사람으로 그짐승을 인하여 능히 통행하지 못하게 한다 하자(15절).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으로부터 돌이켜 반역할때, 짐승들이 그힘으로 인간을 대적하여 일어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레 26:22).
3) 전쟁 : 하나님께서는 죄로 물든 나라들을 종종 칼로 징책하신다(17절). 칼아 이땅에 통행하라.
4) 온역(19절) : 이것은 때때로 성읍의 인구를 멸절시키는 무서운 질병이다.
(3) 하나님을 신앙하던 사람들이 그를 배반할때, 그들은 마땅히 그들위에 내릴 심판을 예기할수 있어야 한다.
(4) 대개 죄로인해 파멸이 다가오는 곳에도 극소수의 선한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느 '불법한' 나라에서조차 '노아, 다니엘, 욥'과 같은 세인물들이 있을수 있는 것이다. 다니엘은 포로로 사로잡혀 갔다(단 1:6). 예루살렘에 거하던 사람들중 분별력이 있는 사람들가운데 몇몇은, 만일 다니엘이 (그들이 바벨론왕궁에서의 다니엘의 명성에 대해서 많이 들었던) 예루살렘에 거하기만 했더라면 그곳이 다니엘로인하여 용서받을수도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아니라, 비록 너희가 옛날 노아와 우스땅의 욥처럼 험악한 세대와 장소에서 뛰어나게 선한사람이었던 다니엘과 함께있다 하더라도 형벌이 연기될수는 없느니라."
(5) 하나님께서는 매우 사악한 곳에 거하는 소수의 경건한 사람들로인해서 종종 그곳에 자비를 베푸신다. 예루살렘의 지지자들이 이것을 기대하는 것이 본문에 암시되고 있다.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쟁변하실 것이라. 많은사람들이 그들의 죄악을 범죄의 분량을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가운데 기도로써 민족이 지은 범죄의 분량을 비우는 자들이 없겠는가?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망시키시느니 악인을 의인과 함께 보존하실 것이라."
(6) 노아, 다니엘, 욥과 같은 사람들은, 할수만 있다면 범죄한 백성들에게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도록 설복할 것이다. 노아는 자신의 신실성을 지켰다. 그러므로 비록 가족들가운데 하나가 사악한 자(함)였을지라도, 노아로인하여 그가족이 방주로 들어가 구원받았던 것이다. 욥은 자기자녀들과 친구들을 위하여 강력한 기도를 드린 사람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기도할때 그의 속박을 돌이키셨다. 예루살렘 거민들과 동포이며 고난을 함께 나누었던 다니엘은 매우 겸손하고 즉각적이며 계속적인 기도를 한 사람으로서 노아와 욥처럼 하늘나라에 큰관심을 갖고있었다.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전처럼 위대하고 선한사람들을 세우사 우대하고 선한일을 행하시지 않겠는가?
(7) 백성의 죄가 극에 달하여 하나님의 뜻이 그들을 멸망시키고자 하신다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의 경건과 기도라해도 쟁변을 그만두도록 설복시킬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이 세사람이 거기있을지라도...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리라.
(8) 비록 경건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다른사람들을 구하도록 손을 쓸수는 없지만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신의 생명만 건질 것이다.' 공동의 재난으로 같이 고통을 당하긴 하지만 그것이 그들을 사악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도리어 그들을 성결케하며 이롭게 한다. 그러므로 설사 그들의 몸은 건질수 없다할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구원받게 된다.
(9)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가장 황폐하게 만드실때조차도 자신의 자비를 기억케하시기 위해 몇명을 남겨두신다(22,23절). 철저히 파괴되도록 운명지워진 예루살렘에도 남은자들로서 사로잡혀간 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곧 새로운 세대의 씨가 될 것이었다. "젊은이들이 승리한 적들에 의해 끌려나와 포로로 잡힌 너희에게로 나아올 것이라." 그들은 친구들중 많은사람들이 그들보다 앞서 바벨론으로 갔음을 인하여 그곳으로 더욱 기꺼이 갈것이다. "그들이 올때 너희가 그들의 행동과 소위를 볼것이라. 너희는 그들이 개심할 것을 약속하며 죄를 모조리 참회하고 회개의 겸손한 신앙고백을 하는것을 듣게될 것이라. 또한 그들이 개심한 증거를 보게될 것이며 그들이 당한 환난이 그들에게 이로왔음을 보게될 것이라." 그행동과 소위를 보면...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너희가 잘 이해한다면 내가 예루살렘에 내린 모든재앙에 대하여 오히려 위로를 받을 것이라." 내가...무고히 한것이 아닌줄을 알리라. "너희는 내가 정당한 진노를 발하였음을 알게되리라. 또한 내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일에는 은혜로운 계획이 있었음도 알게되리라."

# 핵심
14:1-23
우상을 숭배하는 장로들을 책망하는 한편 백성을 향해 회개할 것을 권면하면서, 심판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남은자의 구원을 약속한다.
이스라엘가운데 우거하는 외인(14:7)
언약적인 관점에서 ‘외인’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외의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사용되는 용어였다. 그러나 그들중에는 이스라엘 족속가운데 들어와서 개종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된 자들이다(레 16:29,30; 민 15:13-16).

# 묵상
이스라엘의 두어 장로 ( 14:1-3 )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앞에 두었기때문에 그들을 용납지 않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므로(삼상16:7),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우상을 더 신뢰하는 가증스러운 그들을 용납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우상숭배자가 당할 징계 ( 14:8, 9 )
여호와께서 친히 그사람을 대적하여 그들로 놀라움과 감계와 속담거리가 되게하고, 그의 백성중에서 끊어지게 하십니다. 이말은 곧 하나님께서 그우상의 숫자대로 응답하심으로써 그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고 수치를 당하게하여 하나님의 백성가운데서 내어쫓기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노아, 다니엘, 욥 ( 14:14 )
본문에서 이들이 언급된 것은 노아, 다니엘, 욥이 죄악이 가득한 세계속에서 살면서도 의로운 자라고 인정받은 사람들이며,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의 심판날에 살아남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을 구원받을수 있었습니다. 이로볼때 하나님께서는 의로운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을 멸망하시기로 이미 작정하셨음을 알수 있습니다.
자기의 의 ( 14:20 )
이말은 하나님의 절대적 의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신 믿음의 정도를 가리킵니다. 이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롬3:10-12, 23). 오직 하나님께서는 그분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을 가진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하셨습니다(롬4:3, 11-13). 다윗역시 의인에 대하여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죄의 가리움을 받은자’(시32:1)라고 정의했습니다.
위로가 될 남은 자녀들의 행동 ( 14:22, 23 )
유다인들이 살아남은 자녀들을 보고 위로받게 되는까닭은, 그들의 행동을 보면 하나님의 형벌이 무고한 것이 아님을 알게되며 또 극심한 죄악에 비해 그들이 받은 형벌이 가볍다는 것을 알게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인류의 멸망을 위한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것임을 남은자들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 해설
필연적인 하나님의 심판 ( 14 )
예루살렘에서만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는 죄악이 있었던것이 아닙니다. 본토에서 우상을 숭배함으로 징계를 받아 머나먼 이방땅에 포로로 끌려와서도 우상을 숭배하는 죄악이 있었습니다. 본장은 그처럼 포로로 잡혀와 있으면서도 우상을 숭배하는 그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장 후반부는 죄인이 타인의 의로 구원받을수 없다는것, 다시말하면 죄인에 대한 심판의 절대성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1. 은밀한 우상숭배에 대하여
1) 바벨론 포로중에 있는 유다
백성가운데 장로들이 예루살렘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여쭤보려고 에스겔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사실이 궁금해서 에스겔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찾았으나 속으로는 이방의 신들과 돈을 사랑하는 거짓신앙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a.은밀한 우상숭배(겔8:10-11)
b.두주인을 섬길수 없음(마6:24)
2) 마음의 우상을 버려야 인정하심
대답을 거절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마음속에 감추고있는 우상을 버리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올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렇지않고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올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심중을 보십니다(참조, 잠16:2). 그러므로 아무리 겉으로 경건한 척하여도 본심이 세상것을 향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우상숭배자입니다.
a.마음이 멀리떠남(사29:13)
b.버리고 나를 좇으라(마19:21)
3) 버리지않으면 멸망함
외식하는 신앙인들에게, 외형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척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하나님 아닌것을 의뢰하고 섬기는 자들에게 대하여 그들이 돌이키지 아니할때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은 멸망입니다(참조, 겔14:9). 예수께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참조, 마23:1-36). 형식적으로만 하나님앞에 나와있고 그마음은 여전히 세상과 그 죄악된 것에 있는자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자와 동일한 것이기때문에 멸망에 이를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a.대대로 벌을 받음(출20:5)
b.아나니아와 삽비라(행5:4-5)
2. 죄인에 대한 심판의 절대성
1) 타인의 의로 구원받지 못함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아무리 하나님앞에 의로운 사람이 있다할지라도 그사람의 의로인해 죄인이 죄용서함을 받아 그죄에서 구원받을수 없다는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선포하신 이유는 죄인에게 반드시 그죄값을 치르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그 근거는 하나님께서 모든인간을 독립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사실과 율법을 통해 한사람의 의나 죄는 다른사람에게 전가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참조, 신24:16). 이러한 이유와 근거로인해 노아의 의도 다른사람을 구원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a.죄의 삯은 사망(롬6:23)
b.죽음뒤엔 심판이(히9:27)
2) 어떠한 심판으로부터도 구원받지 못함
범죄한 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리시는 그어떤 종류의 재앙으로부터도 면제될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칼의 재앙을 내리시기로 하셨다면 칼로부터 피할수 없습니다. 기근의 재앙을 내리시기로 했다면 기근으로부터 제외될수 없습니다. 그것은 질병, 짐승, 자연재해 그어떤 것이라도 동일합니다. 죄인는 죄에 해당하는 죄값을 치뤄야만 합니다.
a.피할수 없는 심판(사20:6)
b.지옥의 판결을 피할수 없음(마23:23)
3) 단하나의 예외
그 어떤사람의 의도 다른사람의 죄를 속죄할수 없습니다. 죄는 죄를 지은 당사자가 죄값을 치러야만 해결가능합니다. 그런데 단한가지의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의 제물로 바쳐질때입니다. 그때 그리스도의 의로 그를 믿는 모든자들은 죄를 완전히 속죄받고 의롭다 인정받을수 있습니다(참조, 요3:16;롬5:8-11;롬5:18-21).
a.많은사람의 대속물(마20:28)
b.인간의 피를 담당하심(벧전2:24)
3. 하나님의 긍휼
1) 소수를 남기심
죄인을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은 또다른 일면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랑의 측면이 다른일면입니다.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시면서도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범죄한 유다를 징계하시어 그들을 멸망시키시면서도 그가운데서 비록 소수이지만 일부를 보존시키신다는 것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참조, 겔12:16).
a.조금 남겨두신 은혜(사1:9)
b.남겨진 양의 무리(렘23:3)
2) 자녀에게 은혜를 다시 베푸심
하나님께서는 아비의 죄를 자식에게 전가시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말씀을 기억하시사 유다백성의 범죄를 그자녀들에게까지 연결시키지 아니하십니다. 자녀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킬때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자녀들이 돌이키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a.가나안에 들어가는 자녀들(민14:31)
b.평강할 자녀들(사54:13)
3) 택한자를 다 구원하심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절정은 유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징계가운데서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택하신 모든백성들을 정하신때에 다 구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참조, 겔11:16-20).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겨 고난가운데서 일으켜 한민족으로 모으시고 친히 그들의 성소가 되어주시며 새신을 주어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게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는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과 은혜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a.하나님의 백성이 됨(겔11:20)
b.빼앗지 못함(요10:29)
결론
죄인은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합니다. 어떠한 의인도 그심판에서 건져낼수 없습니다. 겉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해서 그심판에서 벗어날수 있는것도 아닙니다. 오직 마음중심으로부터 육체에 이르기까지의 전인격으로 대속주되신 그리스도를 믿는가운데 하나님을 섬길때 심판에서 떠나 영생에 이를수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16장 - study  (0) 2022.12.05
에스겔 15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3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2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1장 - study  (0) 2022.12.04

# Study

Ⅰ. 거짓선지자에 대한 경고〔1〕 13:1-9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중에는 거짓선지자들이 있었다.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중에서 가증한 일이 있음을 보았나니'(렘 23:14). 바벨론에서 사로잡혀간 자들가운데도 그런 거짓선지자들이 있었는데 예레미야는 이들에 대해 말하기를 '너희중 선지자들에게 혹하지 말라'(겔 29:8)고 하였다. 에스겔은 백성이 그들에게 귀기울이지 않도록 경고하고자 그들을 쳐서 예언해야 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라는' 분명한 지시를 받았다. 그들은 실상은 이스라엘을 속이는 자들이었음에도, 마치 자기들외에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자가 없다는듯 스스로 '이스라엘의 선지자'라고 불렀다.
(1) 에스겔은 그들에게 그들의 죄를 밝혀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들은 여기서 '우매한 선지자'(3절)라고 불리운다. 그들은 우매하게도 경건한 선지자들의 여호와 하나님의 허락도 없이 주제넘게 선지자의 직무를 차지하였다.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께서는 맡기시지도 않은일에 뛰어드는 자들을 인정하시리라고 기대할수 있겠는가? 그들은 '자기마음에서 나는대로 예언하는' 자들이었으며(2절), 자기들이 조작해서 예언하는 자들이었다(6절).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비난하였으며 그존귀함을 헐뜯고 신뢰성을 약화시켰다. 스스로 선지자인체하는 이들이 거짓말쟁이었음이 밝혀질때 무신론자와 불신앙자들도 그들이 모두 그런자들이라는 사실을 유추해낼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그런자들이었다. 여호와가 보낸자가 아니라(6절). 자기심령을 따라(3절). 그들은 자기들이 교활하게 날조하거나 열광하고 격앙하여 상상해낸 결과를 하나님으로부터의 메시지로 전달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것이 없었으며' 어떠한 천상의 이상도 접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즉(8절). 그들이 보고 말한것은 모두 단순한 허위였다. 그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것을 점쳤으니(9절). 그들은 참선지자들이 보듯 이상을 본체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허탄한 묵시를 보는' 그들의 공상의 산물이었거나, 그들의 궤계로 꾸며낸 것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아는것이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거짓것을 보았고 '거짓것을 점쳤던' 것이다. 그들은 매우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아무런 선도 행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안전을 위해 이리저리 둘러대며 달아났으므로 마치 '황무지에 있는 여우같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돌리도록 중재를 해야했으나 그들은 기도하는 선지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백성들로하여금 회개하고 개심하도록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삼고 그렇게함으로써 하나님과 백성들사이에 다리의 역할을 해야했다(한글개역에는 '성벽을 수축한다'고 되어있음-역주).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하면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기는커녕 단지 어떻게하면 백성들을 즐겁게 해줄것인가를 획책하였던 것이다.
(2) 에스겔은 이러한 죄들로인해 그들을 쳐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들이 선지자의 자격을 가진체 했다고해서 이러한 죄들이 사함받을수는 없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든 특권들로부터 제외되는 선고를 받게되었다. 즉 그들은 그러한 모든특권들을 박탈당하는 판결을 받는다(9절). 그들을 쳐서 내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앞으로 다시는 그들의 권면을 구하는 일이 없도록, 즉 그들과 의논하는 일이 없도록 그들의 우매함이 명확히 드러나게 될것이다. 경건한 예배를 위한 하나님의 백성의 공회에 그들은 들어오지 못하게될 것이다. 그들은 포로로 살다가 죽을것이며 자식없이 죽게될 것이다.

Ⅱ. 거짓선지자에 대한 경고〔2〕 13:10-16
(1) 거짓선지자들이 백성들을 어떻게 속였는가. 그들이 내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함이라(10절). 그들은 우상숭배자들 및 기타 죄인들에게 그들이 행하고 있는 일에는 아무런 해악이나 위험도 없다고 말하였다. 이런식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했던 것이다.' 이것은 얄팍하고 취약한 담을 쌓는것에 비유되고 있다. 또한 우리구주 예수의 비유(마7:26)에 나타나는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도 비교할수 있다. 이러한 집은 잠시동안은 안식처와 방호물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폭풍우가 몰려오면 무너져버릴 것이다. 한 거짓선지자가 그런담을 쌓았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대해 전혀 노여워하지 않으시며 예루살렘이 현재 그성읍을 위협하고 있는 세력들을 눌러 이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매우 기분좋은 것이었으므로 이렇게 주장한자는 그것을 매우 마음에 들어하였다. 거짓선지자들은 그생각을 더욱 그럴듯하고 믿음직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쌓아놓은 담에 그들은 회칠을 하였다. 그러나 그 회반죽은 양생이 되지않은 것이었다(흠정역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음-역주). 그러므로 이런식으로 쌓아놓은 담은 압력이 가해지고 그압력이 더욱더 세어지면 흔들리고 기우뚱거리다가 점차로 무너져버릴 것이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어떤식으로 깨우침받을 것인가. 이 하나님의 심판은 진리에 따른것임이 분명하다. 유다에 대한 갈대아군대의 급습과 그들의 예루살렘포위는 '폭우가 내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시드기야의 반역에 분개한 느부갓네살과 그의 방백들의 노여움은 그침공을 몹시 두려워할만한 것으로 가공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진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폭풍은 그담을 붕괴시켜 버릴 것이다. 그것이 무너지리라...폭풍이 열파하리니(11절). 우박덩이로 훼멸하리라(13절). 회칠한 담을 내가...땅에 넘어뜨리고 그기초를 드러낼 것이라(14절). 그담이 부실하고 취약하다는 사실은, 그것을 쌓은자들에게 경고된 질책으로인해 분명해질 것이다. 인간의 분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을 흔들수 없으나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이 하나님에 대적해서 세워놓은 것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담을 쌓고 회칠한 자들은 그것이 무너질때 그밑에 깔려버릴 것이다. 담이 무너진즉 너희가 그가운데서 망하리니(14절). 속인자들과 속은자들 모두가 이렇게 멸망할때 당연히 조롱거리가 될것이다(12절). "그담이 무너질때, 참선지자들을 신뢰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것에 칠한 회가 어디있느뇨'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나라의 환난들이 곧 끝나리라고 너희가 약속하고 보장했던 모든것들이 어떻게 되었느냐?" 그들이 너희에게 이같이 말하리라. 담도 없어지고 칠한자들도 없어졌다(15절). "너희의 희망은 사라지고 그희망을 지지하던자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까지도 사라져 버렸느니라"(16절).

Ⅲ. 거짓 여선지자들에 대한 경고 13:17-23
하나님께서 자기백성들에게 그의 신을 부어주사 그들의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마귀도 거짓말을 하는 영으로 역사하면 거짓선지자들 뿐만아니라 거짓 여선지자들의 입에서도 거짓이 나오게 된다. 너 인자야 너의 백성중...부녀들을 대면하여 쳐서 예언하여(17절). 그여인들은 예언의 영이 있는체하며 거짓선지자들과 같은 소리를 지껄였다. 그여인들도 '자기마음에서 나는대로 예언하였던' 것이다. 그녀들은 마음에 맨먼저 떠오르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따라서 에스겔 선지자는 '그들을 대면하여 쳐야' 했다.
(1) 이 거짓 여선지자들의 죄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었다. 그들은 의견을 들으려는자들과 조언을 얻고자 오는자들, 그리고 자신들의 장래일을 들으려는 자들에게 계획적인 거짓말을 하였다. 너희가...나를 내백성 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서(19절). "너희가 거짓말을 합리화시키려고 백성중에서 내이름을 욕되게 하였도다." 그런데 그들은 '두어웅큼 보리와 두어조각 떡을 위하여' 이런짓을 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얼마안되는 것, 곧 '두어웅큼 보리와 두어조각 떡을 위하여' 너희를 즐겁게 해줄 거짓예언을 너희에게 팔려고 하는구나. 그거짓 예언은 얼마안되는 떡이나 보리보다도 못한 것이니라." 그들은 백성들에게 항상 두려운 마음이 들게하였으며 허세를 부려 그들에게 겁을 주었다. 너희가...내백성의 영혼을 사냥하면서(18절). 너희가...영혼을 사냥하는(20절). 이런식으로 그들은 구원에 관해 염려하고 있는 불안한 심령들을 미혹시켰다. 그들은 정직하고 선한사람들을 낙담시켰으며 사악하고 불경스러운 자들을 격려하였다(19절). "너희는 죄인들에게 그들의 사악한 행위가운데 생명이 있다고 약속하며 그짓을 계속 행하더라도 평강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도다. 이로써 그들의 손을 굳게하고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도다." 그들은 자기들의 예언을 설명하기 위한 표적들(하나냐에게서 볼수 있다. 렘28:10), 곧 그들의 성에 어울리는 표적들을 보여줌으로써 참선지자들을 흉내내었다. 방석을 모든 팔뚝에 꿰어매고. 이것은 그들이 환난에 대한 불안때문에 동요하지 않고 잠을 잘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건을 키가 큰자나 작은자의 머리를 위하여 만드는. 젊은이와 늙은이, 또는 신장으로 구분되는 크고 작은사람 등 모든연령의 사람들이 그대상이었다. 이수건들은 자유나 승리의 상징으로, 그들이 갈대아인들에게서 구원받으리라는 것을 암시하였다. 혹자는 이러한 것들을, 점칠때 사용하던 미신적인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즉 이 거짓 여선지자들은 겨드랑이에 방석을 끼고 머리에 수건을 얹어 마술을 걸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백성들을 미혹시키고 속이기위해 사용하던 방법들에 대해 친히 선포하신다(20절). 그들은 자기들이 하던 일로인해 당황하게 될것이다(23절).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구원받을 것이다. 그방석을 내가 너희팔에서 떼어버리고...너희수건을 찢고, 기만은 드러날 것이며 그들의 사기행위는 간파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은 더이상 그들의 손아귀에서 예전처럼 사냥되지 않을 것이다.

# 핵심
13:1-23
조속한 귀환과 번영을 약속했던 거짓선지자들의 실상을 폭로하고 그들에게 임할 저주를 선포한다. 그들은 백성에게 거짓된 희망을 갖도록 종용했으며, 참된회개를 못하도록 방해했다.
회칠한 담(13:10)
허술한 담을 고급스럽게 보이기위해 석회따위로 칠한것을 가리킨다. 그회칠은 오랜시간이 지나면 벗겨진다. 본문에서는 백성에게 안전과 번영을 약속했던 거짓선지자들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 묵상
황무지에 있는 여우같은 자들 ( 13:1-7 )
이는 바로 자기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무너진 성에 올라가지도 않고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심판날에, 안전하지 않은 성, 곧 불의와 우상숭배속에 살아가는 백성에게 경고나 책망을 하지않은 것을 비유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이들은 바로 거짓선지자들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 ( 13:9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영적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규례를 온전히 지켜 의를 이루어야 포로귀환 명부(스2장)에 올라가게 되고 이스라엘땅으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육적 이스라엘이 아닌 영적 이스라엘 곧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아 생명의 족보, 곧 생명책에 그이름이 기록된 자만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수 있습니다(계20:15).
회칠 ( 13:10-16 )
이말은 거짓선지자들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평강이 있다고 선포하여 죄가운데 살게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예레미야시대에도 하나님의 징벌을 외치는 그에게 맞서 평강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자신의 생각일 뿐이었고, 그들은 백성들을 속이면서도 아무런 거리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렘6:12-15). 예수께서도 속은 온갖 죄악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겉으로만 의로운체하는 자들을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책망하셨습니다(마23:27).
책망받는 부녀들 ( 13:17-19 )
이들이 책망을 받은이유는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기위해 방석을 모든 팔뚝에 꿰어매고 수건을 키가 큰자나 작은자를 위해서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방석이나 수건은 마술의식에 필요한 마법의 띠나 부적 등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자기마음대로, 생각나는대로 예언을 했습니다. 그들은 두어웅큼의 보리와 두어조각 떡을 위하여 하나님을 그의 백성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듣는 백성에게 거짓말로 지어서 죽지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못할 영혼을 살렸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결과,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셔서 엎드러지고 거꾸러지게 하십니다.
죽지아니할 영혼과 살지못할 영혼 ( 13:19 )
전자는 하나님께서 심판날에 살리실 의로운 자들을, 후자는 영원히 멸망받을 악한자들을 가리킵니다. 거짓예언자들은 의인은 오히려 책망하여 고난당하게 만들었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복과 평강을 빌어주어 그들이 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 해설
거짓선지자에 대한 경고 ( 13 )
이세상에는 어디에나 거짓을 말하고 종교적 사술을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다사회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장은 그러한 유다의 거짓선지자들과 종교적 사술을 사용하는 자들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리라는 것을 예언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거짓선지자의 종류
1) 거짓예언자
이스라엘과 유다사회는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등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백성들에게 전달한 대표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하면서 거짓예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거짓예언자라고 합니다. 유다시대에는 이런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참조, 렘23:16-32). 이들은 거짓으로 진리를 욕되게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동시에 백성들을 멸망으로 인도했기때문에 그죄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한편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말을 전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우리는 영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져 그러한 자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a.자기마음으로 말미암은 것(렘23:16)
b.양의 옷을 입은 거짓선지자(마7:15)
c.의의일꾼으로 가장하는 사단의 일꾼(고후11:15)
2) 점쟁이
유다사회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앞날을 내다본다고 하는 점쟁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예언을 한다는점에 있어서는 거짓예언자들과 같았으나 거짓예언자들이 유다사회의 운명에 대해 거짓을 예언한다면 이들은 개인의 운명을 예언한다는점에서 달랐습니다. 이들은 그들에게 찾아오는 자들에게서 몇푼의 돈을 받기위해 하나님의 섭리의 영역에 대해 함부로 지껄였습니다. 또한 듣기좋은 말을 하여 더많은 돈을 얻어내기위해 거짓을 남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오는자들의 영혼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의 죄또한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a.복술을 하지말며(레19:26)
b.진실치 않은것을 보는 복술자(슥10:2)
c.만국을 미혹하는 복술(계18:23)
2. 거짓선지자의 특징
1) 신의 이름을 사칭함
거짓예언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사칭하여 거짓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래야만이 자신들의 말을 사람들에게 속여 믿게 만들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점을 치는 무당들도 꼭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더라도 각종신의 이름으로 장래의 일들을 말하였습니다. 인간은 그 마음속에 신을 두려워하는 막연한 마음과 신이 인간의 것을 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신의 이름으로 예언을 해야만 사람들에게 권위와 설득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a.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출20:7)
b.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렘23:17)
2) 거짓을 진리로 위장함
거짓선지자들이 가지는 두번째 특성은 그들이 거짓을 말하면서도 결코 거짓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말이 거짓이라고 말하기는커녕 반드시 이루어질 진리라고 사람들을 속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사실을 토로하기위해 그럴듯한 증거들로 치장합니다. 가장 그럴듯한 치장은 앞에서 말한 특징 곧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은 말을 치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치장을 하여도 그들의 말의 본질은 악이기때문에 영안으로 보면 금방 거짓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a.여호와의 말씀이라 함(겔13:6)
b.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임(마24:27)
3) 돈을 사랑함
거짓선지자들이 가지는 세번째 특징이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돈을 탐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리를 선포하는 이들은 영적인것, 곧 의와 생명을 바라보기때문에 이세상 것을 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은 그러한 것과 멀리 떨어져 이세상 것을 탐합니다. 이세상 것으로 대표되는 동시에 세상것을 획득하는데 용이한 수단이 되는것은 돈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돈을 사랑합니다.
a.돈을 위하여 점치는 자(미3:11)
b.돈을 사랑하는 점치는 자의 주인(행16:19)
3. 거짓선지자에게 내려지는 징벌
1) 지혜를 박탈당함
거짓선지자들에게는 사람을 속이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재주는 거짓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지혜와 그것을 믿도록 전달하는 지혜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본래 지혜란 하나님을 바로알아 하나님을 바로 섬기도록 하기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입니다(참조, 창1:26-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술한바와 같이 거짓선지자들은 그지혜를 본래 목적에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데 사용하고 사람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일에 사용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지혜를 박탈당합니다.
a.거짓선지자의 위에 어둠이 임함(미3:6)
b.부모가 찌름(슥13:3)
2) 악인에 의해 멸망당함
하나님은 악인을 벌하실때 악인을 사용하십니다(참조, 계17:16). 하나님은 악인으로 악인을 멸망케 함으로 악이 자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악인을 죽이는 것도 의로운 일이 아니기때문에 하나님은 악인에게 그일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아무튼 거짓선지자들은 그들이 쌓아놓은 거짓의 탑에 깔려 죽습니다.
a.아말렉 소년에게 죽은 사울(삼하1:8-10)
b.짐승에게 멸망당하는 음녀(계17:16)
3) 영벌에 처해짐
거짓선지자들의 마지막 종말은 두말할여지도 없이 영원한 둘째사망에 처해지는 것입니다. 그들은 회복의 가능성도 없이 영벌에 처해지는 것입니다(참조, 계21:8). 하나님은 거짓을 말하며 그것으로 뭇영혼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들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a.거짓을 말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둘째사망(계21:8)
b.다른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음(겔1:9)
결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다고 하는곳에는 언제나 진리가 아닌것을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여 선포하는 자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말은 거짓이기때문에 미혹되는 자들을 멸망으로 이끕니다. 유다시대에도 그랬고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을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 그들의 비진성을 간파하여 미혹되지말아야 하겠습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15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4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2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1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0장 - study  (0) 2022.12.02

# Study

Ⅰ. 에스겔이 행동으로 나타낸 예조 12:1-16
아마도 에스겔은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보았던 이상을 곰곰이 생각해봄으로써 그이상이 다시한번 자기에게 임하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상을 보았다는 기록은 더이상 찾아볼수 없다. 다만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을 뿐이다. 우리는 황홀경이나 무아지경에 빠지지않더라도 하나님과의 친교를 계속 유지할수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선지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지시받았다.
(1) 그는 유다왕 시드기야에게 임박한 포로생활에 대해 징조와 행동으로 보일것을 지시받았다. 이일은 예언되어진 것이었으며, 이미 포로가 된 자들에게 대한 예언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드기야가 왕좌에 있는한, 자기들을 머지않아 구원해주리라는 희망을 갖고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로하여금 시드기야가 그들의 구원자가 되기는커녕 멀지않아 그들과 함께 고통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게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을 준비시키기위해 그는 먼저 그들에게 징조를 보여주어야 했다. 즉 먼저 그들의 눈에 말한후에 그들의 귀에 말해야 하였다. 그는 눈먼 백성을 가르치듯 징조로써 그들에게 알려야했다. 그는 이사하기 위해(3절), 모든 생활필수품을 준비하고 여행비용과 의복을 갖추어야 했다. 그는 정착하지 못하고 강제로 떠나가야 하는 사람처럼 처소를 한곳에서 다른곳으로 옮겨야 하였다. 이일은 그가 낮에 백성들의 목전에서 해야할 일이었다. 그는 모든 가재도구들을 밖으로 내다가 짐을 꾸려 가져가야 했다(4절). 그리고 문들과 대문들은 모두 잠겼지만 보초가 지키고 있었으므로, 그는 '성벽을 뚫고' 자기물건들을 성벽의 틈을 통해 은밀히 운반해내야 하였다(5절). 그는 자기 물건들을 자신의 어깨에 메고 남의 눈에 띄지않도록 캄캄한때에 날라야했다. 그는 '저물때에 그목전에서' 두려움에 떨며 몰래 나가되 '포로되어 가는자같이' 나가야 하였다(4절). 그는 매우 큰슬픔의 표시로 얼굴을 가리워야했다(6절). 그는 자기나라를 떠나는 비참하게 파산한 사람처럼 나가야했다. 이렇게 에스겔은 그자신이 그들에게 징조가 되어야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3절). 그들이...혹 생각이 있으리라. "그들이 보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들의 헛된 자만심을 벗어버리리라."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지시에 즉시 순종하였다(7절). 내가 그명대로 행하여.
(2) 그는 그러한 징조와 행동에 대해서 설명할 것을 지시받았다. 선지자는 낯설고 기괴한 일을 행함으로써 그들이 그행동의 의미를 묻도록 해야했다. 선지자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야했다(10절). 이것은 예루살렘왕...에 대한 예조라.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러나 네가 한일은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말하여 그들이 예루살렘에 거하는 그들의 동료들의 운명을 알아차릴수 있게하라." 나는 너희징조라(11절). 그사람들은 포로로 잡혀 옮겨갈 것이다(11절). 내가 행한대로 그들이 당하여 사로잡혀 옮겨갈지라. 그들이 강제로 자기집에서 끌려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왕이 도망가려 할것이나 그것 또한 헛수고일 뿐이리라." 왜냐하면 그역시 사로잡혀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에스겔은 왕을 통해 구원받으리라고 마음속에 기대하였던 자들에게 그일을 예언하였다. 그는 자기물건을 스스로 운반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왕을 짐군으로 만드실수 있다. 왕의 홀을 지니고 다니던자가 이제는 스스로 자기물건을 등에 지고 캄캄할때에 그성읍을 몰래 빠져나갈 것이다. 궁전으로 통하는 모든대로는 적군이 면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무리가 성벽을 뚫고 행구를 그리로 가지고 나가고(12절). 왕은 자기얼굴을 복면으로 가리워 변장하여 눈으로 땅을 보지못한채 도망가려 할것이다. 그러나 그는 잡혀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13절).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왕이 바벨론왕을 보게될 것이며 그가 바벨론으로 가게되리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에스겔은 왕이 바벨론에 끌려가서 거기서 죽을 것이지만 그땅을 보지못하리라고 말하였다. 한사람은 그가 바벨론왕을 볼것이라고 하였고, 다른사람은 그가 바벨론을 보지못하리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이 두사람의 말이 모두 진실이었음이 판명되었다. 즉 그는 바벨론왕을 립나에서 보게되었는데 거기서 그는 반역죄에 대한 선고를 받았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그는 두눈을 빼임당했으므로 바벨론으로 끌려갔을때 그땅을 볼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앞서 바벨론으로 잡혀간 자들을 볼수 없게되자 그들은 그를 만났어도 아무런 기쁨도 느낄수 없었다. 왕의 호위병들은 모조리 뿔뿔히 흩어질 것이다(14절). 내가 그호위하는 자와 부대들을 다 사방으로 흩고 또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이로써 그는 무력하게 남게될 것이다. 내가 그들을 이방인가운데로 흩으며 열방중에 헤친후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15절). 그렇지만 흩어진 시드기야의 군대중 몇사람은 피하여 살아남을 것이다(16절). 그들로 이르는 이방인중에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리니. 그때에야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인정할 것이며, 자기들의 죄를 고백할 것이다. 그리고 그사실을 통해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만한 점이 남아있음이 나타나게될 것이다.

Ⅱ. 국토가 황폐해질 것에 대한 예언 12:17-20
여기서 다시 선지자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황무해질 것에 대하여 그들에게 징조를 보이게 된다. 그는 특히 무리가운데 있을때에, 근심하고 두려워하면서 먹고마셔야 하였다(17,18절). 이것은 그가, 예루살렘이 포위당하고 있는동안 그거민들에게 닥칠 비참한 상황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예루살렘 거민'이 자기들이 버티지못할까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적군의 공격을 항상 예상하고 있기때문에, 그가 보여준 것처럼 근심하고 놀라면서 먹고 마시게 되리라는 것을 그들에게 말해주어야 하였다(19,20절). 한나라에 있어서 도덕이 쇠퇴하게 되면 그나머지 모든것들도 부패하게 된다. 그리고 이웃지간에 서로 물고뜯을때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를 삼켜버릴 원수들을 보내시는 것은 공의로운 일이다.

Ⅲ. 모든예언이 속히 이루리라는 말씀 12:21-28
이 안일하고 조심성없는 백성들을 회개와 개심으로써 각성하도록 일깨우기위하여 갖가지 방법이 사용되어 왔었다. 그들이 멸망하리라는 예언들은 이상을 통해 확증되었으며, 징조를 통해 설명되었다. 그러나 본문에는 그들이 어떤식으로 죄책감을 회피했는지에 대해서만 기록되고 있을 뿐이다. 즉 그들은, 비록 이렇게 경고된 심판이 마침내 오기는 올것이지만 그것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그들 스스로 그리고 서로간에 말하였던 것이다.
(1) 그들이 말한것 중에 하나는 '이스라엘 땅에서' 속담이 되어버렸다(22절). 날이 더디고.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멸망이 아직도 이르지 않았으니, 절대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두번 다시 우리는 선지자의 말을 믿지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상처를 입기보다는 마음에 놀랐기 때문이라." 또한 다음의 것도 속담이 되어버렸다. 묵시가 응험이 없다. "묵시가 이루어지려면 아직도 멀었도다. 그묵시는 굉장히 먼훗날에 일어날 일에 관한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때문에 골치를 썩일 필요가 없도다"(27절). 그들을 회개하도록 인도해야할 하나님의 너그러우심이 그들을 죄가운데 완악해지게 한것이다.
(2) 선지자는 그들에게, 그들이 스스로를 속일뿐이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어야 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날과 모든묵시의 응함이 가까우니(23절).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않을지니(28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헛된 소망으로 들뜨게 하였던 거짓속담들과 거짓예언들을 분명히 잠잠케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족속중에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있지 못하리라(24절).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신 모든말씀을 분명히 그리고 아주 속히 이루실 것이다. 그는 큰위엄을 보이시며 이말씀을 하신다(25절). 나는 여호와라.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자들은 허탄한 묵시를 보지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의 말을 이행하심으로써 그말을 확증하신다. "너희가 모든묵시의 응함을 보게될 날이 가까우니라(23절)."

# 핵심
12:1-28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않는 유다백성을 향해, 행구를 옮기며 두려움가운데 음식을 먹는 상징적 행동을 통해 심판의 확실성을 강조한다.
행구(12:3)
‘포로들에게 속한 것들’ 또는 ‘포로로 끌려간 이들이 갖고있는 꾸러미’를 의미한다. 곧 포로로 잡혀가는 무리들이 생활필수품을 묶어만든 짐꾸러미를 가리킨다. 여기서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행구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유다백성이 포로로 끌려갈 것임을 비유적으로 알려주신 것이다.

# 묵상
징조 ( 12:6 )
‘미리 보이는 조짐’, ‘전조’라는 의미를 담고있는 이말은 초자연적인 사실이나 특별한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상징, 계시 등을 통해서 앞으로 되어질 일에 대해서 예감하게 하는 것이며, 그목적과 의미를 알게함으로써 앞으로 닥칠일을 미리 준비하게 합니다. 특히 성경에서의 징조란 꿈이나 환상 또는 초자연적인 사건 등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섭리를 알고 구원 혹은 심판을 대비하게 하는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하나님말씀의 전파자로서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의미에서 선지자 자신이 징조가 된다고 한것입니다.
그물과 올무 ( 12:13 )
그물과 올무란 여호와께서 심판을 내리시는것 또는 그도구를 상징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그물과 올무에 걸려 예루살렘왕이 죽으리라는 본문의 예언은, 바로 바벨론군대를 피해 도망치는 시드기야왕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멸망당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남은자의 존재이유 ( 12:16 )
그들로하여금 이방인들중에서 자기의 모든 가증한일, 곧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한 일을 자백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그들의 자백을 통해 이방인들이 여호와가 하나님이신줄 알게하려는 것입니다.
패망당시 유행했던 속담 ( 12:22-28 )
‘날이 더디고 모든묵시가 응험이 없다’ 하는말은 하나님의 심판날을 예언하는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조롱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알지못한채 언제까지나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우상숭배와 불의를 자행했습니다. 또 ‘아들의 묵시는 여러날 후의 일이다’라는 것은 자기들 세대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지 않을것이라는 자기 기만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결코 더디게 이루어지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정하신때, 그의 말씀대로 실행됩니다.

# 해설
심판으로 임할 기근예고 ( 12 )
앞장인 11장에서는 유다방백들이 예루살렘에서 도망치다 바벨론군대에 잡혀 처참한 죽음을 당할것을 말씀으로 선포하는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본장은 같은내용이 에스겔의 상징적 행동으로 선포되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단지 덧붙여지는 것이 있다면 유다방백과 함께 유다거민들도 그재앙에 포함될 것이라는 사실과 도망하는도중 공포에 떨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선포된 심판은 속히 시행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1. 이사의 비유
1) 패망을 의미
예레미야는 맑은날에 홍수를 대비하여 배를 건조한 노아와 같이(참조, 창6:22) 예루살렘이 아직 평안한 가운데 있을때에 마치 패전한 백성이 적군을 피해 도망하는 것같이 필수품만을 보따리에 싼뒤 밤에 성벽을 뚫고 성밖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 예레미야의 상징적행동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이 바벨론군대에 의해 패망할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도망은 패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a.예루살렘의 패망(렘4:20)
b.유다에 이를 패망(겔7:25)
2) 밤중에 도주할 것을 의미
예레미야의 야간이사 행동이 말해주는 두번째의미는 유다의 방백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전쟁에서 패한뒤 실제로 개구멍을 통해 황망히 도주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온 유다백성들이 적군앞에서 비굴하게 수치를 드러낼 것을 이 상징은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만한 자에게 이처럼 비참에 빠지도록 벌하시는 법입니다.
a.야반도주(왕하25:4)
b.예루살렘성에서 끌어내심(겔11:9)
3) 도망하다 살육당할 것을 의미
도망하는 유다방백들과 백성들위에 그물을 치고 올무에 걸리게 한다는 것(참조, 겔12:13)은 그들이 도망에 성공하지 못하고 바벨론군대의 추격망에 걸려 죽음을 당하거나 형벌을 당할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조차 그들을 벌하지 못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자들에게(참조, 겔9:9;겔11:3) 참혹한 죽음의 형벌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한편 이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어 도망하다 잡힌 시드기야는 눈이 뽑히고 그아들들과 방백들은 살육당하였습니다(참조, 왕하25:1-9;왕하25:18-21).
a.도망하다 잡혀죽음(렘52:27)
b.뒤를 따라 칼을 빼심(겔5:2)
2. 떨며 식음하는 비유
1) 멸망의 근심가운데 놓임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또다른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명령은 떨면서 음식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음료를 마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세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번째의미는 유다백성들이 바벨론의 공격에 의해 멸망을 목전에 두고 예루살렘 성내에서 근심하는 가운데 음식과 물을 마시리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조국의 군대는 힘이 없고 침략군의 군대는 강성하여 언제 마지막 보루가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하에서는 어느때에 적의 칼에 죽을지 모르므로 극도의 불안과 공포속에 휩싸이게 될것입니다. 따라서 그 상황속에는 결코 편안히 식음을 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a.주의 얼굴을 가리우면 근심에 싸임(시30:7)
b.민답중에 물을 되어 마심(겔4:16)
2) 도망의 고통가운데 놓임
도망자의 불안과 공포와 고통은 도망자만이 느낍니다. 도망은 잡히면 끝장이 되는 외길의 긴급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예루살렘함락과 함께 유다의 방백들과 백성들은 적군이 없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기위해 도주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도주를 보고 바벨론의 군대는 가만있지 않습니다. 바벨론군대는 그들을 추격합니다. 그때 그들은 예루살렘 성내에서 느낀것보다 더심한 불안과 고도의 고통에 시달릴 것입니다.
a.두렵게 하심을 당할때 황망함(시88:15)
b.악인의 공포(계7:16)
3) 황폐함의 적막가운데 놓임
유다는 바벨론군대의 군화에 의해 짓밟히고 약탈당함으로 황폐하게될 것입니다(참조, 겔12:20). 황폐한 땅에서 느끼는 적막감 또한 불안과 공포 그것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절망에서 오는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다가 겪어야할 이모든 고통은 그들의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대신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그들이 그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마지막때에 그리스도밖에 있는 자들이 고통을 받아야하듯이 말입니다(참조, 마25:30).
a.가인의 공포(창4:14)
b.하갈의 고통(창21:14-16)
3. 묵시의 필연적 성취와 속진성
1) 묵시성취의 필연성
에스겔서의 전반부는 거의가 범죄한 유다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른 대선지서들도 대부분 이스라엘과 유다가 받을 죄값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심판의 메시지가 계속해서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선지자들이 심판은 없다고 떠들어댔으며 백성들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예언이 반드시 실행될것을 힘주어 선포하십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기때문에 한번 선포된 것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a.경영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심(사14:24)
b.여호와의 말이 불변의 보증(겔39:8)
c.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짐(마6:10)
2) 묵시성취의 속진성
하나님의 묵시는 반드시 이루어질뿐 아니라 속히 이루어집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묵시는 이루어져도 더디 이루어지므로 아직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나(참조, 마25:47-51) 그것은 얕은꾀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는 인간이 생각치 못하는때에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집니다. 그때 준비하지 못한자들은 영원한 죽음의 고통을 맛보아야만 할 뿐입니다.
a.악의 재앙은 속히 임함(잠24:22)
b.도적같이 오는 심판의 날(벧후3:10)
c.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22:20)
결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리고 속히 악인을 심판하러 오십니다. 그때 심판의 주가 오시면 악인들은 하나님을 피해 도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서 도망할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사로잡혀 사단과 함께 지옥형벌에 처해지게될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속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것입니다. 이고통을 피하려거든 지금 당장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되시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의 말씀을 따라 의의삶을 살아야합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14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3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1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0장 - study  (0) 2022.12.02
에스겔 9장 - study  (0) 2022.12.02

# Study

Ⅰ. 예루살렘 거민에 대한 분노의 말씀 11:1-13
1. 예루살렘 방백들의 방심(1-3)
선지자는 환상중에, 이 방백들이 앉아서 회의하고 있던 성전문에 이르게 되었다. 주의 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여호와의 전 동문 곧 동향한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그문에 이십오인이 있는데(1절). 그들은 예배를 타락시킨것 때문이 아니라 그릇된 정치를 한것 때문에 비난받는다. 선지자는 여기서 그들중 두사람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중에서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를 보았으니. 어떤학자들은 예루살렘이 24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위에서 언급된 이들은 각구역의 총독들로 한명의 의장과 함께 일종의 의회를 구성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사람들은 불의를 품고(2절). 그들은 치안유지라는 미명아래, 백성들을 죄가운데 완악해지게 만들었으며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을 없애버렸다. 그들은 '이 성중에서 악한꾀를 베풀었다.' 즉 백성들로하여금 선지자들을 침묵시키고 바벨론왕을 반역하여 최후까지 성을 사수하도록 백성들을 선동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한말로 고발당한다(3절). 그들은 선지자들의 경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토록 자주 선지자들이 경고했던 우리성읍의 멸망은 가깝지 아니하다." 사단은, 다가올 심판을 의심스럽고 불확실한 일로 여기게끔 사람들을 설득할수 없을때에라도, 그심판을 멀리 떨어져있는 일로 여기게끔 그들을 설득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렇게 결론내린다. "이 성이 멸망할때가 가깝지않으니 우리는 집을 건축하도록 하자. 우리가 존속하리라는 것을 확신하자. 왜냐하면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될'것이기 때문이라." 이말은 다음과 같은점을 의미하는 속담투의 표현이다. "이 성안에서 우리는 끓는 가마속의 고기처럼 안전하다. 성벽은 우리에게 놋벽과 같이 될것이며, 가마가 그밑의 불때문에 어떤손상도 입지않듯, 성주위의 포위군에게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으리라." 아마도 이것은 '화목제의 고기'와 관련이 있는것 같다. 고기를 삶고 있는동안 그것을 가마에서 꺼내는 것은 매우 큰범죄였다(참조. 삼상 2:13,14). 그러므로 그러한 말은 그들이,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읍이며 자신들은 그성의 거룩한 백성으로 아무간섭도 받지않으리라고 생각하였기때문에 더욱 방심하고 있었음을 암시해준다.
2. 그들을 방심상태에서 깨우치기위해 취해진 방법(4-12)
그들을 깨우치기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경고로서 그들에게 임하였다(4절).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그들을 쳐서 예언하고 예언할지니라. "그들의 미망을 깨우쳐주라. 이 죽어 마른뼈들 위에 예언하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여. 이렇게하여 그는 권능과 용기로 충만케 되었던 것이다. 가라사대 너는 말하기를. 즉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주목하고 계심을 그들에게 알려야 했다(5절). 너희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너희가, 악화되리라는 것을 잘알고 있는 일을 보기좋게 꾸며대면서 이러한 결심을 하게된 은밀한 이유를 나는 아노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입에서 나온 것뿐 아니라 우리마음에 떠오르는 것도 아신다. 다시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한 것뿐만 아니라 생각한 것까지도 모두 아신다. 너희가 이성읍에서 많이 살육하여 그시체로 거리에 채웠도다(6절). 이제 이 살육당한 시체들이 이 가마속에 남겨지게될 유일한 고기가 될것이다(7절).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성읍을 버리실정도로 그를 노하시게 하였으며, 그가 가버리시더라도 자기들의 정책과 힘으로 충분히 잘해낼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로하여금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는 어떠한 평화도 없다는 것을 알게하실 것이다. "그들로 이모든 것이 그들의 죄에 대한 당연한 형벌이며 그들에 대한 나의 공의로운 심판의 계시임을 알게하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10,12절).
3. 이 각성케하는 말에 바로 이어진 각성케하는 섭리(13)
이에 내가 예언할때에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기로. 이일은 환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예언이 공표될때에 실제로 그일이 일어나리라는 보증인것 같다. 블라댜의 죽음은 이예언의 완전한 성취에 대한 한 보증이였다. 비록 블라댜의 급사가 에스겔의 예언을 확증해주는 것이었지만 에스겔은 그일에 깊은관심을 갖고 마치 블라댜가 자신의 친척 또는 친구라도 되는것처럼 몹시 슬퍼하였다. 내가 엎드리어 큰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칼을 피해 남은자가 하늘의 직접적인 손길로 이렇게 죽어야 하나이까?"

Ⅱ. 포로된 자들에 대한 위로의 말씀 11:14-21
시온의 동쪽에 있던 자들을 일깨우기 위한 교훈을 받았던 선지자 에스겔은 이제, 바벨론에서 시온을 기억하며 애곡하는 자들을 위한 위로의 말씀을 받게된다.
(1)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을 떠났던 경건한 자들은 예루살렘 거민에게 업신여김과 모욕을 당하였다(15절).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그들은 네형제요 친속이라. 그들은 이스라엘 온족속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만이 계속해서 성실하였음으로인하여 그들을 매우 중시하신다. 그들은 에스겔과 한가족 한민족뿐 아니라 한영에 속한 자들이었다. 편히 지내는 자들이 초라해진 자기형제들을 경멸하였다. 그들은 형제들을 그들교회의 구성원가운데서 삭제해버렸다. 그형제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바벨론왕에게 항복하였다는것 때문에 그들은 형제들을 제명하였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떠나라 이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하신 것이라. "우리는 너희와는 조금도 관계를 갖지 않을 것이니라. 너희는 바벨론왕에게 항복해서 너희토지를 몰수당하였으므로 우리가 그토지를 소유할 권리를 갖게된 것이니라."
(2)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로운 약속을 하신다. 그들을 미워하며 내쫓았던 자들은 "여호와께서 영광나타내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으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기쁨을 보이실 것이다(사 66:5). 하나님께서는 그의 손이 그들을 쳐서 내쫓았음을 시인하신다(16절).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가운데로 쫓고 열방에 흩었으나. "그들이 버림받은 백성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그들을 위해 자비를 준비하였도다." 그는 그들에게 성전이 없는것을 보상하실 것이다(16절).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예루살렘에 있던 자들은 성전을 갖고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계시지 않았다. 그러나 바벨론에 있던자들은 비록 성전은 없었으나 하나님이 함께계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환난을 멀지않아 끝내시고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 그들 혹은 그들의 자녀들을 다시 이끌어내사 그들자신의 땅에 정착케하실 것이다(17절). "너희는 족장들이 가졌던 권리를 갖게될 것이며 너희뒤를 잇는 자들은 재산을 소유하게 되리라." 그들의 포로생활은 우상숭배라는 병에서 그들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안에 좋은 행동원리를 심으실 것이며, 그것이 훌륭하게 실행되도록 만드실 것이다(19절). 이것은 복음적인 약속이며, 하나님께서 하늘의 가나안을 위해 계획하신 모든사람들에게 선한 일이다. 성결케된 모든사람들은 '새 신'을 갖게된다. 그들은 새로운 원리와 법칙에 따라 행동하며 새로운 목적을 추구하게 된다. 새이름이나 새얼굴도 '새 신'이 없이는 아무소용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며 약속에 의한 그의 선물이다. 그들의 행동은 그원리들과 일치할 것이다. "그들이 모든 생활속에서 내율례를 좇으며, 신앙적인 모든 예배의식에 있어서 내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20절). 하지만 은총이 없는자들은 어떻게 평안을 누릴수 있겠는가? 그들의 마음은 미운것과 가증한 것을 좇았다. 그들은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마음으로 좇았던 것이다.

Ⅲ.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감 11:22-25
하나님의 임재가 예루살렘성과 성전으로부터 떠나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에게 위임되어 그가 그것을 완전하게 통치받자, 전과 같이(겔 10:19) '그룹들이 날개를 드는데 바퀴도 그곁에 있었다'(22절). 여호와의 영광은 '성읍 동편산', 곧 감람산으로 이동하였다(23절). 그들은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과 맞서서 이 산위에다 그들의 우상을 세웠었다(왕상 11:7). 그산에서는 성의 전경을 완전히 볼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로 움직이사 그가 전에 말씀하셨던 것을 성취하셨다(신 32:20). '내가 내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끝내 멸망할 것을 예견하사 그성을 보시고 우셨던 것도 이산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은, 만일 그들의 날에 그들이 자기들의 평화에 속한 일들을 알고자한다면 그것을 알려줄수 있도록, 가까운 곳에 계시려고 그리로 이동하셨다. 이환상이 선지자에게서 떠난다. 이상이 나를 떠난지라(24절). 그는 그것이 하늘의 이상이었음을 믿어 의심치않으며, 그것이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산위를 바라보았다. 그를 무아지경중에 예루살렘으로 데려갔던 신이 그를 갈대아로 되돌아가게 하였다. 왜냐하면 그곳이 그가 일할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달할 말씀을 하나도 숨김없이 고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으며 바벨론에 거하는 것이, 그의 분노와 저주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것보다 나은 일이었다.

# 핵심
11:1-25
예루살렘에 남아서 악을 행하는 백성에 대한 심판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절망속에 있는자들에 대한 위로를 수록한 내용이다. 이예언은 B.C. 597년경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발생한 제2차 바벨론 포로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을 비롯하여 여호야긴왕과 귀족들 및 많은백성을 잡아갔다(왕하 24:8-16; 단 1:1-4). 그때 예루살렘에 남아서 재앙을 면한자들은 포로된 자들을 업신여겼다.
마음을 헤아리시는 하나님(11:5)
하나님은 창조주요 역사의 주로서 장래일을 다 아실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생각까지 꿰뚫어 보신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고 증거했다. 따라서 인생은 하나님앞에서 거짓과 위선을 버리고 늘 진실하고 충성된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

# 묵상
성전 동문의 25인의 죄악 ( 11:1, 2 )
이들은 불의를 품고 성중에서 악한꾀를 베풀었습니다. 여기서 악한꾀란 느부갓네살에 대한 반란음모와 애굽과의 동맹을 말합니다. 바벨론이 세운 유다왕 시드기야와 그의 방백들은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예레미야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항하여 백성으로하여금 철저한 파멸을 당하게 만든 반바벨론주의자들이었습니다.
성이 안전하다고 착각한 유다인들 ( 11:3 )
유다백성들은 하나님의 지상임재 처소인 예루살렘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성곽은 결코 이방군대의 침략도 받지않고, 또한 함락되지도 않는다는 그릇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나 외적모양이 아니라 중심이요, 내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용이 없이 형식만 가지고 외식하는 자들을 엄하게 다스리십니다.
성읍이 가마가 된다는 생각 ( 11:3-9 )
본문의 말씀은, 집이 튼튼하고 성읍이 견고해서 안전하다는 그들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즉 성이 함락당하고 패망이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위험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불의를 자행하여 살육한 시체들이 오히려 안전한 고기요, 그들이 가마와 같이 견고하다고 생각되던 그성읍에서 끌려나올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유다를 국문하시는 여호와 ( 11:11, 12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변경에서 유다를 국문하신다는 본문말씀은, 성읍에서 칼로 죽임을 당하지않고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변경에서 죽임을 당하리라는 뜻입니다. 이 예언대로 갈대아군사가 시드기야를 끌고 바벨론으로 가던중에 이스라엘 변경에서 그를 심문하고 목전에서 그의 두아들을 살해했습니다(왕하25:4-8).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 11:18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까닭은 이스라엘안에 모든 미운물건과 가증한것, 곧 우상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들과의 계약은 서로에게 성실성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을 구원하셨으나, 이스라엘은 구원자 하나님을 잊고 우상에게 몸과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통해 언약관계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 해설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 ( 11 )
10장에서 보면 유다의 범죄가 너무 심각하므로. 하나님께서 성전 동문으로 떠나시고 계십니다(참조, 겔10:18-22). 그런데 하나님께서 떠나시려고 하는 그장소에서 에스겔은 유다의 방백들이 불법과 강포를 행하면서도 자신들은 벌을 받지않을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본장은 그러한 그들에 대해 심판이 임할것을 예언하는 내용을 담고있습니다. 그러나 다른한편으로는 예루살렘이 멸망한뒤에 이방땅으로 끌려간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것도 예언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1. 방백들의 죄악
1) 살인
방백이란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을 일컫습니다.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은 백성들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 일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본장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증언에 의하면 그런직무를 담당하고 있는 유다의 방백들은 그들의 직무와는 반대되게 오히려 백성들을 착취하고 심지어는 불의한 방법으로 그들을 살육하였습니다(참조, 겔11:6).
a.아합의 살인(왕상21:10)
b.목자들의 강포(겔34:4)
2) 이방인의 규례를 지킴
다른나라의 방백들과는 달리 유다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기때문에 백성들로하여금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을 지키도록 선도해야할 책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장에서 언급되는 방백들은 이십오인의 방백, 즉 최고위 지도자들이었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들을 계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백성들보다 더 하나님의 율례를 떠났으며, 떠나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이방인의 규례를 지켰습니다(참조, 겔11:12). 유다의 방백들은 그 어느나라의 법보다 의롭고 인도적인 율법을 떠나 불완전하고 심지어 비윤리적인 이방인이 법도를 따라 전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a.이방인의 신을 섬김(왕상16:31)
b.이방인보다 더 악을 행함(겔5:6)
3) 교만함
유다방백들이 지은 세번째죄악은 교만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불법을 행하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결코 안전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무시한 것입니다(참조, 겔11:3).
a.유다의 교만(겔7:24)
2. 방백들의 멸망과 선지자의 호소
1) 예루살렘에서 끌려나옴
유다의 방백들이 그들의 위치에서 떠나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불법을 행하며 살인을 자행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자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이 특별히 그들에게 선포되었습니다. 선포된 예언의 말씀은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평안가운데 거하리라고 말하였으므로 예루살렘에서 끌려나와 공포속에 있게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예언은 성취되어 유다의 방백들은 예루살렘성벽에 뚫린 뒷구멍으로 빠져나가 도망하면서(참조, 겔12:8-12) 바벨론군대에 의해 잡힐때까지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보냈습니다(참조, 렘39:4).
a.도망예언의 성취(왕하25:4)
b.도망예언(겔12:12)
2) 도망가다 잡혀 죽음을 당함
유다의 방백들이 예루살렘성을 몰래 빠져나가 도망친 이유는 외국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보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국경으로 달렸습니다. 그러나 국경도처에서 그들은 바벨론군대에게 잡혀 죽음을 당했습니다(참조, 렘39:5-7). 본장은 바로 이사실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였고(참조, 겔11:11) 앞에서 설명한대로 이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a.시드기야의 잡힘(왕하25:6)
b.방백들의 죽음(렘52:27)
3) 에스겔의 탄식
유다방백들이 악을 행하므로 멸망할 것을 에스겔은 예언하였고 그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거하기위해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예언이 끝나는 동시에 방백가운데 한사람을 본보기로 죽이셨습니다. 이에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눈치챈 에스겔이 오히려 놀라 하나님께 과연 유다백성을 다 멸할 것인가를 걱정하는 가운데 반문하였습니다. 비록 범죄하는 악한 자들이었지만 자기의 동족이었기에 동족의 잘못됨 앞에서 동정의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선지자의 갸륵한 사랑의 모습을 엿볼수 있는 장면입니다.
a.에스겔의 호소(겔9:8)
b.스데반의 사랑의 기도(행7:60)
3.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 대한 은혜
1) 본토 남은자의 이기적 탐욕
<겔11:14 >이하는 겔11장에서 두번째내용이 언급되는 부분입니다. 이부분은 예루살렘이 멸망된 뒤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뒤 유다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는 본토에 남습니다(참조, 왕하25:21-22). 그런데 본토에 남은자들이 본토땅을 독차지하기 위하여 바벨론땅에 끌려간 자들은 하나님께 범죄하였기때문에 저주를 받아 그렇게 된것이라고 매도하면서 그들에게 영원히 본토를 떠나라고 말합니다(참조, 겔11:15). 우리는 여기서 멸망함을 당하고도 여전히 동족의 아픔을 외면한채 이세상 것에 대한 탐욕만을 채우려하는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a.이웃사랑(레19:18)
b.이를 탐하는 자는 생명을 잃음(잠1:19)
c.버려야할 탐욕(엡5:3)
2) 반박하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약속
본토백성들의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 하나님이 보호하시려는 남은 자들이었습니다(참조, 겔12:15).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본토에 남은자들의 그릇된 생각에 반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시 모이는 축복과 새 신을 주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구원이 주어질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한편 이예언의 말씀은 영적으로 이세상에 흩어져있는 이방인들가운데의 하나님의 백성들, 곧 성도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입을것을 의미합니다.
a.마음에 법을 둠(렘31:33)
b.이방중에 남아있는 자(겔6:8)
c.새로운 피조물(고후5:17)
결론
지도자된 자는 그에게 주어진 직무를 충성되이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할때에 백성과 함께 복된 하나님의 사회를 만들수 있습니다. 한편 동족이 고난가운데 있을때에 그고난을 외면하고 자기이익만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족의 아픔에 동참하며 자기의 것을 나누어써야 하나님의 나라가 그가운데 임합니다. 이와같이 모든사람이 제위치에서 각자 주어진 의무를 다할때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어집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13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2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0장 - study  (0) 2022.12.02
에스겔 9장 - study  (0) 2022.12.02
에스겔 8장 - study  (0) 2022.12.02

# Study

Ⅰ.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 10:1-7
(1) 하나님의 장엄하심이 영광스럽게 나타난다. 눈으로는 볼수 없는 세계의 존재가 본문에서는 그것의 광채와 아름다움에 대한 어렴풋한 묘사들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것들은 그림이 생명과는 비교될수 없듯이 진리와 본질과는 비교될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위 궁창에(1절). 그궁창은 그의 '권능의 궁창'이며 조망의 궁창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부터 '인생을 굽어 살피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보좌에 앉아계시다. 하나님의 영화로우심과 통치하심은, 인간의 마음으로 느끼거나 받아들일수 있는 가장 뛰어난 관념도 무한히 초월한다. 그의 영광의 현현은 구름으로부터 눈부신 광채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성전'과 '안뜰'에는 '구름'과 어두움이 가득찼으나, 그 바깥뜰에는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가득하였다'(3,4절). 이렇게해서 '그의 손에서 광선이 나오는데 그권능은 그속에 감취어져 있었다'(합 3:4). 하나님보다 뚜렷한 존재는 없으며 하나님보다 신비로운 존재도 또 없다. 하나님께서는 빛으로 자신을 가리우시며 궁창을 어둡게 만드신다(참조. 겔1장).
(2)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지시가 더 하달된다. 본문에서 우리는 그룹들사이에서 꺼낸 숯불을 그 성읍위에 흩어 성을 재로 만들라는 명령을 볼수 있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 성전문지방에 임하니(4절). 이것은 각성읍의 문에서 열렸던 재판정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아계시다. 하나님이 가는베옷 입은 사람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그룹밑 바퀴사이로 들어가서 그속에서 숯불을 두손에 가득히 움켜가지고 성읍위에 흩어라 하시매(2절). 이것은 갈대아인들에 의해 성읍과 성전이 불타는 것을 암시한다. 속죄제가 드려지던 하나님의 단은 경멸되어졌었다. 선지자 에스겔은 이환상을 처음 보았을때, '숯불과 횃불이 생물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것'을 주목하였다(겔 1:13). 그런데 거기서 이 불이 취해진 것이다(7절).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깨끗케하시는 단련하는 자의 불로 타오르는 영혼은 하나님의 속성에 속한 것이다.

Ⅱ. 성전을 떠나시는 하나님의 영광 10:8-22
에스겔이 보았던 하나님의 영광의 환상에 대한 기록이 더나타나는데, 이는 그영광이 떠나가는 것을 보여주려 함이다.
(1) 에스겔은 '그발강가에서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성소에서 빛나고 있는것을 본다. 에스겔은 현세의 통치가운데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는 것을 본다. 이 세상사를 관리하는데 있어서 천사들의 기능은 생물들과 바퀴들사이의 밀접한 관계로 묘사되고 있다. 마치 병거가 그것을 모는 사람이 하는대로 움직이듯, 바퀴들은 생물들의 모든 움직임에 따르고 있다. 생물들가운데 그리고 바퀴들가운데에 존재하는 신은, 천사들의 직무와 이 현세에서 일어나는 모든사건들을 통해 그자체의 목적을 수행하는 무한한 지혜를 의미한다. 선지자는 이환상이 그가 그발강가에서 보았던(15,22절) 것과 같은 환상임에 주목한다. 이세상은 쉬이 변화한다. 세상사의 추이는 '바퀴'로 묘사되고 있다(9절). 이바퀴들의 모양은 '마치 바퀴안에 바퀴가 있는것 같았다'(10절). 이것은 바퀴들의 움직임이 뒤얽히고 모순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바퀴들 상호간에 섭리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로 의존하며 그모두가 단하나의 공동목표를 지향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는 섭리가운데는 놀랄만한 조화와 일치가 있다(13절). 내가 들으니 그바퀴들을 도는 것이라 칭하며(한글개역 난외주에는 '그바퀴들에게 돌라하며'로 되어있다-역주). 바퀴들은 여러방향으로 움직이긴 하지만, 하나의 신에 의해 하나의 목표로 유도되므로 그들 모두가 하나같다. 섭리의 움직임들은 한결같고 일정하다. 또한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섭리가 이행한다. 그룹들이 행할때에는...돌이키지 않고 행하되(11절). 각기 곧게 앞으로 행하더라(22절). 하나님께서는 모든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도록 지시하신다. 모든사건들은 눈먼 운명의 바퀴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이 가득한 섭리의 바퀴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이다.
(2)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성소에서 떠나시는것을 본다.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이 오래도록 거하시던 곳이었으므로 이것은 슬픈광경이었다. 여호와의 영광은 성전문지방에 임했었다(4절). 그러나 이제는 성전문지방을 떠나서 에스겔이 지금 환상으로 보고있는 그룹들위에 머물렀다(18절). 그리고 이내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19절)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때에 그곁에 있는 바퀴들은 그들에게 끌려가지 않고 그들곁에서 함께 행하였다. 이러한점에서 '생물의 신이 바퀴가운데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뜰에서 자기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었다. 그룹들이...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위에 덮였더라(19절). 이는 그전을 곧 떠나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돌아오도록 중재하는 자가 혹시 없을까하고 보시려는듯 떠나기를 싫어하시며 여러번 멈추어 서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화나시게 하는 백성이라도 그들로부터 떠나시기를 더디하신다. 그러므로 그가 노여워하시며 떠나시고자 할때에라도 그들이 회개하고 기도하기만 한다면 자비하심으로 그들에게 돌아오려 하시는 것이다.

# 핵심
10:1-22
숯불을 예루살렘 성읍에 뿌리는 환상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환상을 통해 예루살렘멸망의 명백한 징조를 보여준다.
그룹(10:7)
히브리어로 ‘케룹’이며,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수호하고 섬기는 천사를 가리킨다. 성경에서 그룹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에덴동산을 지키는 천사들로서이다(창 3:24). 이들은 성막의 앙장장식에 등장하기도 하고(출 26:1), 지성소안에 있는 언약궤위에 마주보는 모습으로 조각되기도 했다(출 25:22).

# 묵상
숯불을 성읍위에 흩는 행위 ( 10:2-8 )
하나님께서는 가는베옷 입은 사람에게 그룹밑 바퀴사이에서 숯불을 두손에 가득히 움켜가지고 성읍위에 흩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처럼(창19:24, 25) 이스라엘을 불로 심판하시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땅에 불을 던지기위하여, 즉 세상을 심판하기위해 오셨으며(눅12:49), 최후심판을 위해서 다시오실 것입니다(딤후4:1).
성전문지방을 떠난 여호와의 영광 ( 10:18 )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문지방을 떠난다는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가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안의 법궤위 시은소를 당신의 지상 임재처소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통해 택한 백성, 이스라엘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거룩하고 신령한 교제를 가지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성전문지방을 나서신다는 것은 이제 이스라엘과의 거룩한 관계를 중단하시겠다는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범죄하는 자는 이렇게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는 처참한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 해설
불심판 ( 10 )
제9장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우상숭배와 불법을 행하는 유다백성에 대한 심판을 천사에 의해 집행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면, 본장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과 그룹사이에서 취한 숯불로 유다백성을 심판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쉽게말하면 본장은 하나님의 공의로 말미암아 유다백성이 심판받는 것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의 보좌
1) 영광의 광채
살육하는 기계를 가진 심판의 집행자를 부르시어 심판을 준비하시고자 하실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영광가운데서 나타나셨습니다(참조, 겔9:1-3). 숯불심판을 내리시려 하는 이시점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영광가운데 나타나십니다. 한편 이때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은 광채를 발하여 부위를 환히 비추었습니다(참조, 겔10:4). 이것은 심판주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거룩하고 공의로우시며 진실되고 영화로우신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a.광채로인한 숯불(삼하22:13)
b.해같이 빛나는 얼굴(마17:2)
2) 절대 섭리
하나님의 영광은 그룹들위에 계셨으며 그룹들의 곁에는 바퀴가 있었습니다(참조, 겔10:9). 바퀴는 하나님의 섭리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바퀴는 곧게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바퀴주위에는 하나님의 통찰력을 상징하는 눈들이 달려 있었습니다(참조, 겔10:9-12). 이렇게 볼때 심판의 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섭리는 불변하고 오류가 없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본문에 언급되어 있는 상징적 묘사들은 그러한 의미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a.말씀하신바를 이루심(민23:19)
b.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심(사37:32)
3) 그룹들
하나님의 영광을 모시고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수행자들은 네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첫째얼굴은 황소이며, 둘째얼굴은 사람, 셋째는 사자이고, 넷째는 독수리였습니다. 이것은 각기 충성, 지혜, 통치권, 민첩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속성들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a.속죄소의 그룹들(출25:18)
b.그룹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삼상4:4)
2. 불심판
1) 숯불
그룹들곁에 있는 바퀴들사이에는 맹렬히 타는 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속에는 불꽃을 일으키는 숯불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숯불은 하나님의 공의와 공의에 의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불은 사물을 태워 소멸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나타내는데 종종 사용되며, 특히 숯불은 무엇을 정결하게 하기위해 태우는 것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입니다(참조, 사6:7-8;히10:29;유1:7).
a.여호와의 코에서 나오는 불에 숯이 핌(삼하22:9)
b.숯불모양의 생물(겔1:13)
2) 성읍위에 흩음
하나님께서는 가는베옷 입은 사람에게 명령하여 그룹밑 바퀴사이에 있는 불속에서 숯불을 취해 그것을 가득히 움켜쥐고 예루살렘 성읍으로 가서 예루살렘 성위에 흩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서 가는베옷 입은 사람은 겔9장에서 살육하는 기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한 천사와 동일시될수 있는 하나님의 심판의 집행자입니다. 그리고 숯불을 예루살렘 성읍에 흩었다는 것은 예루살렘 성읍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불에 타는가운데 멸망당할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성은 바벨론군대에 의해 불에 타고 그거민들은 살육당하였습니다(참조, 왕하25:9;왕하25:18-21).
a.소돔과 고모라위에 떨어진 유황불(창19:24)
b.머리위의 숯불(롬12:20)
3) 교훈
흔히 우리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만 생각하려 합니다. 그래야만 날마다의 범죄속에서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위안을 얻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되지 않는 가운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생각은 우리를 파멸로 이끌어갈 뿐입니다. 하나님은 죄가운데 거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자를 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속이지말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심도 깨달아 입으로만 믿지말고 행동으로도 의를 나타내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림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지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a.하나님은 소멸하는 불(히12:29)
b.행위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약2:17)
3. 영광의 떠나심
1) 성소에서 올라가심
이스라엘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은 성소내에 마련된 지성소에 거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이 지성소에서 올라가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떠나가심을 의미합니다.
a.사울을 떠나신 여호와(삼상16:14)
b.실로의 장막을 떠나심(시78:60)
2) 성전문지방에서 떠나 그룹위에 머무심
하나님의 영광은 지성소에서 떠났을뿐만 아니라 성소의 문지방에서도 떠나 그룹들위에 모셨습니다. 바야흐로 하나님께서 성소를 완전히 떠나시고 계신 것입니다. 에스겔이 본 이환상은 유다백성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히 지키지 아니하므로 완전히 떠나실 것을 말해줍니다.
a.그룹을 타고 날으심(삼하22:11)
b.영광의 그룹(히9:5)
3) 바깥동문에 머무심
성전의 동문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중심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그룹들을 타고 이문까지 도달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제 완전히 성전을 떠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서 떠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참조, 고전6:19).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시고 떠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떠나지 아니하시도록 온전하고 거룩한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a.사마리아를 떠나지 아니하심(호10:5)
b.의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심(히13:5)
결론
하나님의 영광은 아름답고 밝으며 영화롭고 거룩하여 인간을 그와같이 만드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떠나고 떠나실뿐만 아니라 공의로 심판을 내리시사 멸망케 만드십니다. 이사실은 부인할수도 거역할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그말씀대로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가운데 거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12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1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9장 - study  (0) 2022.12.02
에스겔 8장 - study  (0) 2022.12.02
에스겔 7장 - study  (0) 2022.12.02

# Study

Ⅰ. 멸망시키는 준비 9:1-4
(1)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자들에게 대령하라는 소환령이 떨어진다. 오랫동안 지키고 보호하라는 명을 받아왔던 하나님의 천사들은 이제는 그성읍을 황폐하게 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천사들은 파괴하는 천사로서, 진노의 대행자들로서 아주 가까이에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화염검을 들고 생명나무가 있는 길목을 지키는 천사처럼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있기 때문이다.
(2) 이 소환령에 따라 그들이 등장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즉시 '여섯사람'이 나왔다. 이들 한사람 한사람은 예루살렘성에 있는 주요한 성문 하나하나에 해당한다(2절). 바벨론왕의 군대를 구성하고 있던 여러민족들(어떤이들은 이민족들이 여섯민족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군대의 사령관들은 천사들의 손에 있는 '살륙하는' 기계라고 불리울만하다. 이 살인무기를 든 천사들은 '북향한 윗문길에서 쫓아나왔다'(2절). 이는 갈대아인들이 북쪽에서 오기 때문이다(렘 1:14). 혹은, 투기의 우상이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세워져있었기 때문이다(참조. 겔 8:3,5).
(3) 파괴를 담당한 천사들가운데 특별히 한명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심판에 자비가 섞여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천사는 그들 여섯명의 천사에 속하지 않았으나 그 여섯명과 어울려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절). 이천사는 제사장들이 입던 '가는 베옷'을 입고있었으며 고대의 변호사나 법률가들의 서기관들이 소지하고 있었던 '서기관의 먹그릇'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그리고 이천사는 다른 여섯명의 천사들이 살육하는 무기를 사용하듯이 자기의 먹그릇을 사용하였다. 여기에서 펜의 존귀함이 칼의 존귀함보다 뛰어난점이 나타나 있다. 이천사는 하나님의 정의의 화염검에서 자신의 백성들을 건지시는 중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사실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천사는 대제사장처럼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계 29:8) 선지자처럼 서기관의 먹을 지니고 있다. 생명책은 어린양의 책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록해두신 율법과 복음의 큰일들이 어린양의 기록이다. 즉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의 계시인 것이다. 온땅을 휩쓰는 파괴자들과 파멸의 한가운데에 우리의 중보자이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다.
(4) 하나님의 영광이 그룹들위에 계시지않고 떠난다. 어떤사람들은 여기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영광은 선지자가 환상중에 그룹위에 있는것으로 보았던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에스겔은 '그룹위에 머물러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즉시 올라'가 버리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떠나가시면 천사들에 관한 환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5) '가는 베옷을 입은' 자에게 내려진 분부는 전체적인 파멸에서 남은 경건한 자들을 구하라는 것이었다. 이구원자는 파괴하는 자들처럼, 소집명령을 받고 파견된 자가 아니었다. 이구원자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면전에 대령할 준비가 항상 되어있는 자였다. 살아남아 구원받을 자들이 다른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인가? 구원을 받게될 이 남은자들은 곤경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로 부르짖는 사람들로서 '탄식하며 우는 자들이었고 마음속에 탄식을 지니고있는 자들이었다. 이들 소수의 경건한 사람들은 이 가증스런 것들의 악함을 증거하고 그것들을 극복하기위하여 자기들이 할수 있는 모든일들을 행하였던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경건하고 공정한 마음을 가지고있는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라는 명령이 주어진 것이다. 너는 예루살렘 성읍중에 순행하여 그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자의 이마에 표하라(4절). 사람의 영혼가운데 작용하는 은혜의 역사는 이마위에 있는 표시가 될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표를 자기가 찍은것으로 인정하시고 그표로써 자기백성들을 아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들의 이마위에 표를 새기실 것이며 그들의 한숨을 기록하시며 그들의 눈물을 병에 담아두실 것이다.

Ⅱ. 형집행의 시작 9:5-11
(1) 파괴를 담당한 자들에게 각자 맡은바 임무에 따라 실행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1) 그들은 모든것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명령은 기근과 질병으로 특히 갈대아군대가 가는곳마다 그칼에 의해 수만의 생명이 살육됨으로써 성취되었다. 무한히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그렇게 엄격하도록 만들다니, 죄는 얼마나 악한 것인가. 너희는 그뒤를 쫓아...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5절). 죄가운데 살면서 개심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죄가운데에서 멸망하고 말것이다. 그들은 쉽게 멸망을 피하려고 하나 피하지못할 것이다.
2) 파괴를 담당한 자들은 구원하기로 표시된 자들에게 털끝만큼의 상처도 입히지 말라는 주의를 듣는다. 이마에 표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그런자들을 위협하거나 무섭게 하지도 말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강하게 하고 복을 얻게하리라'고 약속하셨었다(렘 15:11). 따라서 애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울부짖었던 자들은 어느누구도 갈대아사람들의 칼날아래 쓰러진 자가 없었다고 생각할수 있다. 로마사람들에 의하여 당한 예루살렘 최후의 멸망시 그리스도인들은 펠라(Pella)라고 불리웠던 한마을에서 모두 보호를 받았으며 어느누구도 죽지않았다.
3) 파괴를 담당한 자들은 '성소에서부터 시작하라'는 지시를 받는다(6절). 하나님으로하여금 이러한 심판을 내리시도록 하나님을 자극했던 사악한 것들이 그곳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천사들은 그곳에서부터 파괴하기 시작해야만 했다. 하나님의 성전은 회개한 죄인들을 위한 성소요 도피처이며 보호성이지, 여전히 죄가운데에서 행하고 있는자들을 위한 은신처가 아니다.
4) 그천사들은 성읍으로 들어가라는 지시를 받는다(6,7절).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그곳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2) 천사들은 분부받은대로 준행하였다. 이들은 '성전앞에 있는 늙은자들' 곧 장로들로부터 일을 시작하였다. 이는 자기들의 방안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던 칠십명의 노인들이었거나(참조. 겔 8:12), 성문과 제단사이에서 태양에게 절을 올렸던 스물다섯명의 노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악을 행하던 사람들이었다.
(3) 여기에 심판을 가볍게 해달라는 선지자의 중보기도가 나온다(8절). 그들이 칠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에스겔은 간신히 자기가 멸망을 피하게 된것이 하나님의 선하심 덕택이요 자기의 공로때문이 아니라는 태도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생명을 부지하고 이세상에서 삶을 누리고 존속하고 있는것이 우리로하여금 각자 있는처소에서 선을 행하도록, 즉 기도로써 선을 행하도록 하기 위함인줄 우리도 알아야할 것이다.
(4)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약하게 해달라는 선지자의 청을 거절하신다(9,10절). 하나님께서는 선지자가 원하는 것쯤은 언제나 기꺼이 들어주실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이번경우는 허락할수 없었다. 이는 자신의 공의를 그르침이 없이는 들어줄수 없는 성격의 요청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죄인들은 우상숭배할때에 합리화하였던 것처럼 불경건한 무신론적 원칙으로 또 합리화하고 있었다(참조 겔 8:12). 여호와께서 이땅을 버리셨으며. "우리를 버리사 마음대로 하도록 두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땅의 문제에 더이상 상관치 아니하실 것이라. 우리가 어떤 나쁜짓을 하여도 그는 보지 아니하실 것이라." 이처럼 하나님의 정의를 무시하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비를 기대할수 있겠는가?
(5) 시온에서 애통하고 있던 자들을 구하기위한 보호령이 나온다(11절).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먹그릇을 찬 사람'이 자기가 하고 온일에 대하여 보고를 드렸다. 이사람은 그땅의 죄악을 인하여 은밀히 슬퍼하며 애곡했던 모든사람들을 찾아 이마위에 표시를 해놓았다. 주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 핵심
9:1-11
유다백성의 죄악에 대한 심판으로 잔혹한 살육이 감행될 것을 밝힌다. 이러한 심판예언은 묵시문학적 표현과 유사한점이 많으며, 최후심판에 대한 예표라고 할수 있다.

# 묵상
여섯사람의 환상 ( 9:1-4 )
에스겔이 본 살육하는 기계를 들고 나아오는 여섯사람의 환상은, 이스라엘땅에 임할 끔찍하고도 처참한 대학살에 대한 예언입니다. 즉 우상숭배의 죄악때문에 파괴의 천사들은 성소로부터 대학살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최후심판날에 있을 멸망과 죽음을 연상시키는 묵시문학적 표현입니다(계14:14).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의 사명 ( 9:5-11 )
여섯사람 가운데 가는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은 예루살렘 성읍중에 순행하여 그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인하여 탄식하며 우는자의 이마에 표하는 사명을 맡았습니다. ‘표’는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뉘우치는 자에게 구원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보증으로, 죽임을 면케한 가인의 표(창4:15)와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가족을 보호한 유월절의 양의 피와 같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구원의 상징인 십자가는 모든 믿는자들의 구원의 표시입니다.

# 해설
예루살렘 심판예언 ( 9 )
8장에서 에스겔은 환상을 통해 유다백성들이 우상의 종류나 장소,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전민족적으로 우상을 대대적으로 숭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본장은 이제 그와같이 모든 유다백성들이 어디서나 닥치는대로 온갖 우상들을 숭배하자 하나님께서 심판의 사자들을 보내 의로운자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심판하시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심판의 준비
1) 영광의 출현
하나님의 심판은 거룩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은 엄중한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심판은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유다를 향한 심판이 집행될때 하나님께서는 그영광을 친히 드러내시어 엄중하고 공정하게 심판하십니다. 마치 마지막때에 모든백성들을 심판하실때와 같이(참조, 계20:11) 영광되고 공의로운 심판의 격식을 갖추신 가운데 유다를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하나님은 그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참조, 겔9:3).
a.북방에서 오는 심판의 빛(겔1:4)
b.심판의 보좌(계20:11)
2) 집행자를 부르심
하나님은 심판의 주관자이십니다. 심판의 집행은 하나님의 심판을 보좌하는 천사에 의해 행해집니다(참조, 계14:14-20). 이러한 심판의 형식이 갖추어지도록 하기위해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향한 심판의 장에서도 그심판을 집행할 집행자를 부르십니다(참조, 겔9:1). 그리고 심판이 어김없이 집행될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이 완벽하게 집행될수 있는 준비를 시행하신 것입니다.
a.집행자 표출(계6:5)
b.집행의 명령(계14:18)
3) 의인을 인치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불공정한 심판을 하지 아니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 가운데 하나님을 의뢰하는 소수를 악인들과 함께 멸하지 아니하십니다. 또 하실수도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중에서 악인의 악행을 탄식하며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의인들이 이마에 인을 쳐서 그들이 억울한 심판을 받지않도록 하셨습니다(참조, 겔9:4). 이로써 하나님의 심판은 완벽하게 준비되었습니다.
a.양피의 표징(출12:7)
b.인침(계7:3)
2. 심판의 집행
1) 긍휼이 없음
심판집행의 준비가 완료되자 집행자가 집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심판이 집행될때 어떠한 긍휼도 베풀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진노를 쏟아부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집행될때에는 인간의 모든사정은 고려되지 않습니다. 오직 고려되는 것은 심판이 집행되기전까지 심판을 받을대상이 악의편에 섰느냐 의의편에 섰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전자일경우에는 가차없는 진노가 내려집니다.
a.위로하지 않음(렘16:7)
b.긍휼을 베풀지않는 심판(겔5:11)
2) 차별이 없음
심판이 집행될때 드러나는 또하나의 특성은 심판의 대상에 대한 차별이 없게 시행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어린아이나 연약한 여자이기때문에 심판이 유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인간이 다 받아들일만한 구원의 조건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앞에서 인간이 가진 조건에 의한 차별이란 예외는 있을수 없습니다. 오직 죄인에겐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참조, 계20:12).
a.모든자가 살육당함(대하36:17)
b.큰자든지 작은자든지(렘16:6)
3) 지도층으로부터 시작됨
에스겔이 하나님으로부터 들은바에 의하면 심판은 모든사람들에게 차별없이 진행되되 순서에 있어서는 성전앞의 늙은자들로부터 시행됩니다. 늙은자란 백성의 장로들과 성전의 제사장들, 곧 지도자들을 지칭합니다. 그들은 백성들보다 더 부패하였으며 또한 백성들의 부패를 막지못한 죄로인해 누구보다도 먼저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이 함락되던날 지도자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고 더참혹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a.왕가의 수난(왕하25:7)
b.왕가와 귀인들이 죽음 당함(렘39:6)
3. 심판의 변
1) 여호와는 없다
긍휼없고 차별없는 단호하고 냉정한 심판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러한 심판을 내리실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십니다. 그이유는 유다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렸다고 거짓을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거짓은 자신들의 죄악을 하나님께 전가시킨 있을수 없는 극악한 죄악이었습니다.
a.말씀을 멸시함(대하36:16)
b.하나님이 없다함(사29:15)
2) 악에는 공의로
따라서 악을 심판하셔야 그분이 가라앉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그러한 극악한 유다백성을 심판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면 벌을 내리시기로 약속하셨기에(참조,신28-신30) 그약속을 이행하시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인해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a.행위대로 갚으심(사59:18)
b.보복의 하나님(렘51:56)
3) 집행자의 복명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고 심판에 대한 정당한 근거가 있었기에 심판은 집행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심판은 집행자의 충성된 순종으로 말미암아 집행되었습니다(참조, 렘9:11). 하나님의 말씀은 한치의 어김도없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a.식언치 않으심(민23:9)
b.말한것은 반드시 이루심(겔22:14)
결론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고 정확하며 완전합니다. 또한 심판은 철저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시행됩니다. 따라서 악인은 그앞에서 죽을수밖에 없고 의인은 그앞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고(참조, 갈2:16) 의롭게된 가운데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서 구원함을 입도록해야 하겠습니다.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 11장 - study  (0) 2022.12.04
에스겔 10장 - study  (0) 2022.12.02
에스겔 8장 - study  (0) 2022.12.02
에스겔 7장 - study  (0) 2022.12.02
에스겔 6장 - study  (0) 2022.12.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