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의인의 죽음 57:1,2
바로 앞장에서 이사야는 파수꾼들을 비난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백성들의 전반적인 어리석음과 몰상식한 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1) 이세상에서 선한 사람들도 죽게하는 하나님의 섭리 : 이세상에서는 의인들도 죽을수밖에 없다.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도 죽음을 피할수는 없다. 의인들에게 있어서 의로움이 죽음의 고통을 벗어나게 할수는 있지만 죽음자체를 면하게 할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때를 면하게 하기위해서 종종 그사랑하시는 자들을 취하여 가신다. 즉 귀한 자들을 죽게하심으로 데리고 가시는 반면 패역한 자들은 남게하심으로 계속해서 그 악한 세대를 괴롭게 하신다.
(2) 이러한 섭리를 소홀히 여기는 부주의한 세상 사람들 :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이 죽는 것을 공적인 손실로 슬퍼하는 자들은 매우 드물다. 즉 의인이 죽는 것을 공적인 경고로 주목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어린자녀들은 부모의 죽음을 당해도 거의 슬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엇을 잃었는지 알지못하기 때문이다.
(3) 죽음을 당하는 의인들의 행복 : 의인은 화액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줄. 대홍수가 다가오고 있을때 그들은 방주로 부름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대한 진노를 내리실때 그심판을 돌이키기 위하여 자신의 몸으로 막고있던 자들을 데려가신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대사들을 본국으로 소환시키심은 전쟁을 일으키시려는 징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의인은 죽음으로써 '평안에 들어가며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게'된다. 끝까지 정직하게 살다가 죽는 사람들은 이와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것이다. 그때 그들의 영혼은 평안을 누리게 된다.
Ⅱ. 백성에 대한 질책 57:3-12
하나님께 속한 의로운 자들을 죽게하는 악한 세대가 신랄한 책망을 받고있다. 이것은 당연한 책망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들을 받아들일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1) 그들의 이름과 직함이 기소를 받고있다(3절). 그들은 '무녀의 자식 곧 간음자와 음녀의 씨'라는 규탄을 받고있다. 마법과 음행은 죄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떠나 악마와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순종의 자식들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라, 이리로 가까이 오라. 그러면 내가 네게 너의 파멸을 알려줄 것이라. 다시말해서 너희는 패역의 자식 곧 궤휼의 씨라"(4절).
(2) 그들이 힐책을 받게된 구체적인 범죄들.
1)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조소 : 그들은 냉소만 보내는 세대였다(4절).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너희는 그것이 너희가 학대하는 불쌍한 선지자들을 희롱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을 희롱하는 것이라." 그들은 선지자들에게 입을 삐쭉거리고 혀를 내밀므로써 선한 행동을 위하여 마련된 모든 율법에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 즉 그들은 하나님 선지자들을 공손히 대하지 않았다.
2) 우상숭배 : 이것은 유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기전에 범했던 가장 악한 죄였다. 그러나 그들은 포로생활로 겪었던 고통을 통하여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사야 시대에는 우상숭배가 만연했다. 아하스(혹자는 여기에서 언급하는 것이 바로 아하스의 우상숭배라고 생각한다)와 므낫세의 가증스러운 우상숭배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① 그들은 망령이 든것처럼 우상을 좋아하여 그것을 섬기는 일에 온갖 정열을 다 쏟아부었다(왕상 18:26,28). 그들은 '모든 푸른 나무아래'와 빈터와 그늘진 곳을 가리지않고 우상을 숭배했다. 왜냐하면 장소들이 그들이 섬겼던 우상들을 더 보기좋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② 그들은 우상을 섬기는데 있어서 야만적인 행동을 했을뿐 아니라 천륜을 어기는 잔인한 행동까지도 서슴치않고 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자식들을 죽여서 우상들의 희생제물로 바쳤다. 즉 그들은 이와같이 흑암의 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어둡고 외진 장소인 골짜기와 바위틈에서 자기들의 자식을 살해했다.
③ 그들은 우상숭배에 지칠줄 몰랐다.
첫째, 그들은 골짜기의 신들을 물가에서 섬겼다(6절). 골짜기가운데 매끄러운 돌중에 너희 소득이 있으니. 그들은 매끄럽게 조각된 돌을 보면 언제든지 그것을 숭배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마치 우상들이 너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기나 하는 것처럼 너희가 전제와 예물을 그것들에게 드리는구나." 우리는 과연 참된 하나님을 우리의 분깃으로 삼고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마실 것과 먹을 것으로 그를 섬겨야 한다. 이것은 그것들을 폐하지않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먹고 마심으로써 그를 섬기는 것을 나타낸다. 여기에서는 이와같은 그들의 사악한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서 정당한 분노를 발하시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내가 어찌 이를 용인하겠느냐. 이와같이 자기가 준 선물로 바알을 섬기는 백성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내버려두시겠는가? 이말을 "내가 어찌 이들을 긍휼히 여기겠느냐"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이들에 관하여 후회해야겠느냐"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둘째, 그들은 산들의 신들도 섬겼다(7절). "네가 높고 높은 산위에 네 침상 곧 너의 우상과 네 우상의 신전과 제단을 베풀고 그곳에서 영적인 간음을 범했도다. 그리고 네가 아랑곳하지 않고 그리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도다."
셋째, 그들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집안의 신들 곧 문과 문설주까지 섬겼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해야할 '문과 문설주뒤에'(8절) 우상의 기념표를 두었다. 이것은 그들이 우상들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쏟고있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것들을 자녀들의 마음속에 새겨두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마음이 완악해질정도로 악을 행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갔을 때처럼 공공연히 큰무리를 이루어 우상의 전으로 나아갔다. 이것은 뻔뻔스러운 창기와 같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자를 위하여 몸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그들은 또한 그들의 침상 곧 우상의 신전을 넓히기까지 했다. "네가 네 자신을 위하여 이방인들의 신전에서 본을 떠 만든 신전이 그들의 신전보다 더크도다"(왕하 16:10). "네가 그우상 및 우상숭배자들과 동고동락하기로 언약을 맺으며 그들의 침상 곧 우상의 신전을 볼때마다 그것을 좋아했도다."
3) 그들은 외국의 도움을 신뢰하고 이방의 강대국들과 수교를 맺는 것에 대해서도 책망을 받았다(9절). "네가 왕에게로 나아갔도다"(한글개역에는 왕이 몰렉으로 표현되었음-역주). 혹자는 왕이란 말을 왕의 의미가 있는 몰렉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않다면 이말은 아하스가 자기 궁전으로 데려갔던 앗수르의 왕이거나 히스기야왕이 달랬던 사자들의 왕인 바벨론왕을 의미할수도 있다. 그들이 이와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동맹을 맺음으로써 강해지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얼굴을 아름답게 꾸며서 강대국의 왕에게 좋게 보이거나 그들이 호의를 얻고자 했던 왕들에게 선물로 바치기위하여 기름과 향품을 가지고 갔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비굴해졌으며 그들의 왕관과 나라의 영광을 티끌속에 묻어버리고 말았다. 네가...음부까지 스스로 낮추었으며. 그들은 자기들의 인접국인 이방 나라들에게 아첨을 하고, 또 모든 것에 충족하시며 자기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할때에 그 이방나라들에게 의지함으로서 그자신을 비굴하게 만들었다.
(3) 그들의 죄를 가중시키는 것들.
1) 그들은 악한 행동을 하는동안 수없이 좌절로 지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깨달으려 하지않았다(10절). 네가 길이 멀어서 피곤할지라도. 이말은 "네가 헛되고 거짓된 것속에서 참된 만족과 행복을 찾기위하여 무모한 일을 해왔다"는 뜻이다. "네가 길이 많아서 피곤하다"(혹자는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단 하나의 올바른 길을 떠난 자들은 수많은 갈래의 길속에서 끝없이 방황하며 자기들이 추구했던 수많은 허구속에 휩싸여 자신을 상실해버리고 만다.
2) 그들은 자기들이 가고있는 길이 죄악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해도 그길에서 감각적인 쾌락과 세상적인 유익을 맛보았기때문에 그길로 들어선 것을 후회할수 없었다. "네 힘이 소성되었으므로,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다'(호 12:8)고 말했던 에브라임과 같이 네가 조금도 슬퍼하지 않는도다." 죄를 범하고서 번영을 누리는 것은 죄에서 개심하려 할경우 큰장애가 된다.
3) 그들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보잘것 없는 존재로 대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던 이유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너무 무서우며 근엄하신 분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자기들과 더 친근해질수 있는 신들을 가져야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네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로하여 놀랐기에 거짓을 말하며(11절). "내가 너를 두렵게 한것이 무엇이냐?" 그러나 여기에서 확실한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는 나를 생각지않으므로 내가 말한 것이나 행한 것을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않은 것이로다. 너는 네 마음속에 그것들을 새겨두지 않았도다. 만약 네가 나를 두려워했다면 너는 당연히 그것들을 명심하고 있었을 것이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내와 관용을 기화로 죄를 범하여 더욱더 강퍅해졌다.
(4) 그들의 죄값을 치르기위하여 그들을 부르기로 하신 하나님의 결심(12절) : "네가 자랑하고 있는 너의 의를 내가 선포하여 세상에 보이리라. 그리고 너 자신도 당황할정도로 너의 의를 수치스럽게 하리라. 내가 네 소위를 보이리라. 그러면 결국 네 소위가 네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못하게 될것이라."
Ⅲ. 우상의 허무함 57:13-16
(1) 하나님께서는 우상과 피조물이 그 경배하는 자들을 구원하기에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를 보여주신다(13절). "네가 고통을 당하여 부르짖으며 도움을 청할때 네 동무로 너를 구원하게 하라. 네가 동무로 삼은 너의 우상신과 네가 그토록 신뢰했던 동맹군으로하여금 너를 구원하게 하라. 너는 그들이 줄수 있는 것외에는 아무런 구원도 기대하지 말라." 그것은 다 바람에 떠가겠고. 그들은 자기 스스로 겨와같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바람에 급히 날려가게될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그들을 충족시키고 남을만한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신다. "나만을 의뢰하는 자는 영육간에 복을 누리며 이승과 저승에서 복을 누릴 것이라." 하나님의 섭리를 의뢰하는 자들은 현세적인 이익을 얻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과정을 밟고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들에게 유익이 될만큼 많은 땅을 소유하게 될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뢰하는 자들은 거룩한 이익을 얻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길을 취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을'것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교회의 특권을 누리며 결국에는 천국의 기쁨을 얻게될 것이다. 그들은 어떤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1) 하나님을 의뢰하는 포로들은 해방될 것이다(14절). 장차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즉 그의 말씀이 사자들과 그의 섭리의 모든 사역자들은 '돋우고 길을 수축하라'고 말할 것이다. 구원을 위하여 예비된 하나님의 때가 오면 구원을 이루게 하는 길은 평탄해지고 장애물들은 제거될 것이다. 이것은 복음과 복음의 은혜가 우리로하여금 이세상을 통하여 더나은 세상으로 갈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 놓은 것에 대한 언급이다. 신앙의 길은 이제 돋우어져 있다. 그것은 대로와 같다. 이제 말씀 사역자들이 해야할 일은 백성들을 그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을 의뢰하는 참회자들은 소생할 것이다(15절). 하나님의 영광이 다음과 같은 점에서 밝히 드러나고 있다.
① 그의 위대성과 위엄 : 그는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는 분이시다. 그는 지존무상한 분으로서 그와 같거나 그에게 비교될만한 피조물이 없다. 마찬가지로 이표현은 만유에 대한 그의 절대적 지배권과 모든 것에 대해 명령과 심판을 내려야하는 그의 명백한 권리를 암시하고 있다. 그는 불멸하시며 변함이 없는 분이시다. 그의 본성은 무한히 정직하시다. 그의 이름또한 거룩하시므로 그를 알고자하는 모든 사람은 그를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알아야 한다.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온세상으로 하여금 그것을 알게하리라." 하나님께 용무가 있는 자는 누구나 그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일컬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이처럼 높은 곳에 거하시지만 비천한 자들도 소중하게 대하신다.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하늘을 타신 그분은 가난한 과부와 고아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셔서 자신을 낮추신다(시 68:4,5).
② 그의 은혜와 자비 : 그는 겸손히 회개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는 그들이 비록 가난하고 멸시를 받으며 사람들에게 짓밟힌다해도 그들을 간과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그들의 마음에 대한 특성을 언급하고 있다. 즉 그는 고난을 당하면서 그고난에 순응할뿐 아니라 자기들의 처지에 신경을 쓸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관심을 보여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의 식구에게 하듯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방문하고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그들과 대화를 나누신다. 지극히 높은 곳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낮은 자의 심령속에도 거하시며, 영원히 거하실뿐만 아니라 매우 신실하게 거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기뻐하신다. 그는 그들의 심령을 다시 살리신후 그들에게 말을 하고 그의 은혜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그들속에서 역사하실 것이다.
3) 그와 다투는 자들이 그를 의뢰한다면 그들은 구원을 받으며 호의를 얻게될 것이다(16절). 그는 참회하는 자들의 심령을 소생시켜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히 다투는 것을 원치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자기의 백성들에게 화를 내지 않겠다는 약속은 하지않았다. 그들의 죄가 그를 진노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않으면 그들은 진노의 막대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영원히 다투려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쉽사리 화를 내지도 않듯이 화를 오랫동안 내지도 않으신다. "만일 내가 영원히 다툰다면 나의 지은 그영과 혼이 내앞에서 곤비할 것이라."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의 육신을 위해 주시기도 하지만 주로 그들의 영혼에 관심을 기울이고 계시다. 곧 그는 백성들의 영혼이 곤비하지 않고 은혜와 위로를 받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Ⅳ. 하나님의 크고 겸손하신 자세 57:17-21
이스라엘 백성은 17,18절에서는 한 특정인물로 언급되고 있으나 두부류로 구분되고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각기 다른 방법으로 대하고 계시다. 두부류란 평강을 약속받고 있는(19절) 평강의 아들과 또 평강을 해치려는 악인들을 나타낸다(20,21절).
(1) 이백성이 죄로 말미암아 받았던 정당한 책망 : 그의 탐심의 죄악을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17절). 탐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사이에 만연되어 있던 죄였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던 자들도 이러한 영적 우상숭배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는 탐심의 특성 때문이다. 즉 탐심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돈을 신처럼 섬기게 된다(골 3:5).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탐심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섬기는 일에 돈을 아낌없이 바쳤다(6절). 실제로 우상을 섬길때 나타나는 그들의 후한 태도나 그밖의 모든 일속에 나타나는 그들의 탐심가운데 어느것이 더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탐심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매우 진노케하는 죄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치셨고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의 탐심을 책망하셨으며 그들이 탐닉하고 갈구하던 바로 그대상들을 통하여 그들을 징벌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와같은 책망을 당할때 그들로부터 자신을 숨기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때 만일 그가 우리에게 그자신을 드러내신다면 우리는 그징계를 더 잘 참아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우리로부터 그자신을 숨기셔서 우리에게 아무런 선지자도 보내지않고 위로의 말씀도 해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우 비참한 존재가 될것이다.
(2) 이러한 책망을 받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인 완악한 태도 :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여기에서 언급된 마음의 길이란 악한 길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인간에게 역사하시지 않는한 어떠한 고통으로도 그들을 개혁시키기에는 매우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3) 그들의 완고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다시 보여주신 놀라운 긍휼.
1) 그들가운데 대다수는 패역한 행동을 했지만 그들중에는 다른 사람들의 완고한 태도를 애도하던 사람들도 더러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기억하셔서 그대다수의 사람들과 영원히 다투지 않기로 결심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는 풍부하셔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받은 고통을 보상받고도 남는다. 내가 그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줄 것이라(18절). 죄가 많은 곳일수록 은혜는 더욱 풍성하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다음 평강을 주실 것이다. "내가 그의 길을 보니 그가 결코 제 스스로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를 돌이키리라."
① 하나님께서는 그의 부패하고 악한 성품을 고쳐주실 것이다. 이처럼 고질적인 영혼의 병도 없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그병도 나을수 있다.
②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그들은 사울과 같이 패역한 행동을 범하여 위협과 살육을 일삼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더좋은 마음을 갖고 행동하도록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③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상실해버렸던 위로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들을 놀라울정도로 개혁시킨 다음 그들을 놀라운 방법으로 구속해주셨다.
2) 이백성이 포로로 끌려갔을때 그들중 일부는 선한 무화과와 같았고 일부는 악한 무화과와 같았다. 따라서 그들의 포로생활은 그들에게 유익이 되기도 했고 '환난'이 되기도 했다(렘 24:8,9). 이와같이 그들이 포로생활에서 풀려났을때에도 그들중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었다. 따라서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역시 그들에게 유익이 되기도 했고 해가 되기도 했다.
① 포로생활로부터 본토로의 귀환은 그들중 선한 사람들에게 평강이 되었다. 이평강은 장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전파될 평강의 한징표였다(19절).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평강이 있을지어다. 창조는 무로부터 이루어진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패역한 행동을 하는 자들로하여금 찬양을 하게하는 것은 분명 무보다 더 못한 것으로부터의 창조이다. 이를 위하여 평강이 공표될 것이다.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것은 그들이 포로생활속에서 수많은 양심의 가책과 정신적 동요를 받은후 생겨나는 양심의 평강 곧 경건한 마음의 안전과 평정이다. 그가 우리에게 평강을 말씀하실때 우리는 그에게 찬양으로 말해야 한다. 이평강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다. 그것은 전파하는 입술과 기도하는 입술의 열매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그리스도의 입술의 열매이기도 하다(엡 2:17).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이말은 그가 가까이에 있는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오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그는 당시대의 사람들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후세대에게도 오셨다.
② 그들중에서 악한 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귀환할수 있다해도 그귀환을 통해 아무평강도 얻지 못했다(20절). 악한 자는 바벨론에 있든 예루살렘에 있든 장소에 상관없이 늘 불안하게 산다. 악한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지못할 것이므로 그의 위로로도 고침을 받지못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항상 바다와 같이 폭풍이 몰아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그들은 돌이킬수 없을정도의 부패한 행동을 했다. 그러한 행동들은 고쳐지지 않았고 또 그들은 그 자제되지 않는 욕정으로 말미암아 요동하는 바다와 같이 되었다. 둘째로 그들의 양심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들은 가인과 같이 죄와 진노를 매우 염려하고 있었다. 가인은 항상 땅이 흔들리는 곳에서 살았었다. 이사야 선지자가 전에도 언급했고(48:22) 또 여기에서 다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21절)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한것은 분명 진리가 아닐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한 하나님과 화해할수 없기 때문이다.
# 핵심
57:1-21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악상을 지적한다. 당시 대다수의 백성은 우상숭배에 빠져 방황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의한 자들에 대해 심판을 선언하고, 겸손히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베푸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선포한다.
돌숭배(57:6)
대부분 사막으로 이루어져 물이 귀한 지역에 거했던 이스라엘인들은 풍성한 잎사귀를 가진 나무와 더불어, 흐르는 물과 그로인해 둥글게 마모된 골짜기의 돌멩이들을 신비롭게 여겼다(참조, 창 28:18). 그들은 그것을 얻고자 먼골짜기를 찾아다녔고, 그것을 발견하면 서로 차지하려고 제비뽑아 소유를 결정하기까지 했다. 돌숭배는 돌에 기름을 붓고 신으로 숭배하는 아라비아인들의 관습을 본받은 것이다. 지금도 근동 지방에서는 골짜기의 매끈한 돌을 취하여 신으로 숭배하며 돌에 기름을 붓고 곡물을 바친다.
# 묵상
의인의 죽음의 의미 ( 57:1 )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시기전에 의인들을 먼저 데려가신다는 것은 곧 심판이 임박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악인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공의로 통치하신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의인은 재앙전에 죽음을 당하여 무덤에서 편히 쉬게되지만 악인은 재앙을 당하게 될것이라는 사실조차 깨닫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형태 ( 57:3-6 )
본문은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에 대한 기록입니다. 마술, 마법 등에 빠졌으며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고, 이방신상을 숭배하고, 인신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히 여기시는 것은 우상숭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출20:3-6). 따라서 성도는 모든 죄를 경계하되 특별히 우상숭배의 죄를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사람 ( 57:15, 16 )
하나님께서는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하십니다. 이러한 자는 영혼에 상처를 입고 낮아져 있는 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인생의 슬픔과 염려를 아는 사람이며, 무엇보다도 하늘에 계신 지극히 높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그들가운데 임재해 계심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거하신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신비가 아닐수 없습니다. 높은데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었습니다.
악한 마음의 특성 ( 57:17-58:4 )
죄로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도 더욱 패역한 길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스스로 할수 있는 것이라곤 늘 더러운 악을 솟쳐내며, 하나님을 찾는다고하나 진심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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