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의인의 죽음 57:1,2
바로 앞장에서 이사야는 파수꾼들을 비난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백성들의 전반적인 어리석음과 몰상식한 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1) 이세상에서 선한 사람들도 죽게하는 하나님의 섭리 : 이세상에서는 의인들도 죽을수밖에 없다.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도 죽음을 피할수는 없다. 의인들에게 있어서 의로움이 죽음의 고통을 벗어나게 할수는 있지만 죽음자체를 면하게 할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때를 면하게 하기위해서 종종 그사랑하시는 자들을 취하여 가신다. 즉 귀한 자들을 죽게하심으로 데리고 가시는 반면 패역한 자들은 남게하심으로 계속해서 그 악한 세대를 괴롭게 하신다.
(2) 이러한 섭리를 소홀히 여기는 부주의한 세상 사람들 :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이 죽는 것을 공적인 손실로 슬퍼하는 자들은 매우 드물다. 즉 의인이 죽는 것을 공적인 경고로 주목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어린자녀들은 부모의 죽음을 당해도 거의 슬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엇을 잃었는지 알지못하기 때문이다.
(3) 죽음을 당하는 의인들의 행복 : 의인은 화액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줄. 대홍수가 다가오고 있을때 그들은 방주로 부름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대한 진노를 내리실때 그심판을 돌이키기 위하여 자신의 몸으로 막고있던 자들을 데려가신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대사들을 본국으로 소환시키심은 전쟁을 일으키시려는 징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의인은 죽음으로써 '평안에 들어가며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게'된다. 끝까지 정직하게 살다가 죽는 사람들은 이와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것이다. 그때 그들의 영혼은 평안을 누리게 된다.

Ⅱ. 백성에 대한 질책 57:3-12
하나님께 속한 의로운 자들을 죽게하는 악한 세대가 신랄한 책망을 받고있다. 이것은 당연한 책망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들을 받아들일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1) 그들의 이름과 직함이 기소를 받고있다(3절). 그들은 '무녀의 자식 곧 간음자와 음녀의 씨'라는 규탄을 받고있다. 마법과 음행은 죄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떠나 악마와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순종의 자식들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라, 이리로 가까이 오라. 그러면 내가 네게 너의 파멸을 알려줄 것이라. 다시말해서 너희는 패역의 자식 곧 궤휼의 씨라"(4절).
(2) 그들이 힐책을 받게된 구체적인 범죄들.
1)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조소 : 그들은 냉소만 보내는 세대였다(4절).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너희는 그것이 너희가 학대하는 불쌍한 선지자들을 희롱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을 희롱하는 것이라." 그들은 선지자들에게 입을 삐쭉거리고 혀를 내밀므로써 선한 행동을 위하여 마련된 모든 율법에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 즉 그들은 하나님 선지자들을 공손히 대하지 않았다.
2) 우상숭배 : 이것은 유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기전에 범했던 가장 악한 죄였다. 그러나 그들은 포로생활로 겪었던 고통을 통하여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사야 시대에는 우상숭배가 만연했다. 아하스(혹자는 여기에서 언급하는 것이 바로 아하스의 우상숭배라고 생각한다)와 므낫세의 가증스러운 우상숭배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① 그들은 망령이 든것처럼 우상을 좋아하여 그것을 섬기는 일에 온갖 정열을 다 쏟아부었다(왕상 18:26,28). 그들은 '모든 푸른 나무아래'와 빈터와 그늘진 곳을 가리지않고 우상을 숭배했다. 왜냐하면 장소들이 그들이 섬겼던 우상들을 더 보기좋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② 그들은 우상을 섬기는데 있어서 야만적인 행동을 했을뿐 아니라 천륜을 어기는 잔인한 행동까지도 서슴치않고 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자식들을 죽여서 우상들의 희생제물로 바쳤다. 즉 그들은 이와같이 흑암의 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어둡고 외진 장소인 골짜기와 바위틈에서 자기들의 자식을 살해했다.
③ 그들은 우상숭배에 지칠줄 몰랐다.
첫째, 그들은 골짜기의 신들을 물가에서 섬겼다(6절). 골짜기가운데 매끄러운 돌중에 너희 소득이 있으니. 그들은 매끄럽게 조각된 돌을 보면 언제든지 그것을 숭배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마치 우상들이 너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기나 하는 것처럼 너희가 전제와 예물을 그것들에게 드리는구나." 우리는 과연 참된 하나님을 우리의 분깃으로 삼고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마실 것과 먹을 것으로 그를 섬겨야 한다. 이것은 그것들을 폐하지않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먹고 마심으로써 그를 섬기는 것을 나타낸다. 여기에서는 이와같은 그들의 사악한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서 정당한 분노를 발하시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내가 어찌 이를 용인하겠느냐. 이와같이 자기가 준 선물로 바알을 섬기는 백성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내버려두시겠는가? 이말을 "내가 어찌 이들을 긍휼히 여기겠느냐"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이들에 관하여 후회해야겠느냐"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둘째, 그들은 산들의 신들도 섬겼다(7절). "네가 높고 높은 산위에 네 침상 곧 너의 우상과 네 우상의 신전과 제단을 베풀고 그곳에서 영적인 간음을 범했도다. 그리고 네가 아랑곳하지 않고 그리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도다."
셋째, 그들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집안의 신들 곧 문과 문설주까지 섬겼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해야할 '문과 문설주뒤에'(8절) 우상의 기념표를 두었다. 이것은 그들이 우상들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쏟고있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것들을 자녀들의 마음속에 새겨두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마음이 완악해질정도로 악을 행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갔을 때처럼 공공연히 큰무리를 이루어 우상의 전으로 나아갔다. 이것은 뻔뻔스러운 창기와 같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자를 위하여 몸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그들은 또한 그들의 침상 곧 우상의 신전을 넓히기까지 했다. "네가 네 자신을 위하여 이방인들의 신전에서 본을 떠 만든 신전이 그들의 신전보다 더크도다"(왕하 16:10). "네가 그우상 및 우상숭배자들과 동고동락하기로 언약을 맺으며 그들의 침상 곧 우상의 신전을 볼때마다 그것을 좋아했도다."
3) 그들은 외국의 도움을 신뢰하고 이방의 강대국들과 수교를 맺는 것에 대해서도 책망을 받았다(9절). "네가 왕에게로 나아갔도다"(한글개역에는 왕이 몰렉으로 표현되었음-역주). 혹자는 왕이란 말을 왕의 의미가 있는 몰렉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않다면 이말은 아하스가 자기 궁전으로 데려갔던 앗수르의 왕이거나 히스기야왕이 달랬던 사자들의 왕인 바벨론왕을 의미할수도 있다. 그들이 이와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동맹을 맺음으로써 강해지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얼굴을 아름답게 꾸며서 강대국의 왕에게 좋게 보이거나 그들이 호의를 얻고자 했던 왕들에게 선물로 바치기위하여 기름과 향품을 가지고 갔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비굴해졌으며 그들의 왕관과 나라의 영광을 티끌속에 묻어버리고 말았다. 네가...음부까지 스스로 낮추었으며. 그들은 자기들의 인접국인 이방 나라들에게 아첨을 하고, 또 모든 것에 충족하시며 자기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할때에 그 이방나라들에게 의지함으로서 그자신을 비굴하게 만들었다.
(3) 그들의 죄를 가중시키는 것들.
1) 그들은 악한 행동을 하는동안 수없이 좌절로 지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깨달으려 하지않았다(10절). 네가 길이 멀어서 피곤할지라도. 이말은 "네가 헛되고 거짓된 것속에서 참된 만족과 행복을 찾기위하여 무모한 일을 해왔다"는 뜻이다. "네가 길이 많아서 피곤하다"(혹자는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단 하나의 올바른 길을 떠난 자들은 수많은 갈래의 길속에서 끝없이 방황하며 자기들이 추구했던 수많은 허구속에 휩싸여 자신을 상실해버리고 만다.
2) 그들은 자기들이 가고있는 길이 죄악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해도 그길에서 감각적인 쾌락과 세상적인 유익을 맛보았기때문에 그길로 들어선 것을 후회할수 없었다. "네 힘이 소성되었으므로,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다'(호 12:8)고 말했던 에브라임과 같이 네가 조금도 슬퍼하지 않는도다." 죄를 범하고서 번영을 누리는 것은 죄에서 개심하려 할경우 큰장애가 된다.
3) 그들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보잘것 없는 존재로 대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던 이유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너무 무서우며 근엄하신 분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자기들과 더 친근해질수 있는 신들을 가져야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네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로하여 놀랐기에 거짓을 말하며(11절). "내가 너를 두렵게 한것이 무엇이냐?" 그러나 여기에서 확실한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는 나를 생각지않으므로 내가 말한 것이나 행한 것을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않은 것이로다. 너는 네 마음속에 그것들을 새겨두지 않았도다. 만약 네가 나를 두려워했다면 너는 당연히 그것들을 명심하고 있었을 것이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내와 관용을 기화로 죄를 범하여 더욱더 강퍅해졌다.
(4) 그들의 죄값을 치르기위하여 그들을 부르기로 하신 하나님의 결심(12절) : "네가 자랑하고 있는 너의 의를 내가 선포하여 세상에 보이리라. 그리고 너 자신도 당황할정도로 너의 의를 수치스럽게 하리라. 내가 네 소위를 보이리라. 그러면 결국 네 소위가 네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못하게 될것이라."

Ⅲ. 우상의 허무함 57:13-16
(1) 하나님께서는 우상과 피조물이 그 경배하는 자들을 구원하기에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를 보여주신다(13절). "네가 고통을 당하여 부르짖으며 도움을 청할때 네 동무로 너를 구원하게 하라. 네가 동무로 삼은 너의 우상신과 네가 그토록 신뢰했던 동맹군으로하여금 너를 구원하게 하라. 너는 그들이 줄수 있는 것외에는 아무런 구원도 기대하지 말라." 그것은 다 바람에 떠가겠고. 그들은 자기 스스로 겨와같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바람에 급히 날려가게될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그들을 충족시키고 남을만한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신다. "나만을 의뢰하는 자는 영육간에 복을 누리며 이승과 저승에서 복을 누릴 것이라." 하나님의 섭리를 의뢰하는 자들은 현세적인 이익을 얻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과정을 밟고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들에게 유익이 될만큼 많은 땅을 소유하게 될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뢰하는 자들은 거룩한 이익을 얻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길을 취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을'것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교회의 특권을 누리며 결국에는 천국의 기쁨을 얻게될 것이다. 그들은 어떤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1) 하나님을 의뢰하는 포로들은 해방될 것이다(14절). 장차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즉 그의 말씀이 사자들과 그의 섭리의 모든 사역자들은 '돋우고 길을 수축하라'고 말할 것이다. 구원을 위하여 예비된 하나님의 때가 오면 구원을 이루게 하는 길은 평탄해지고 장애물들은 제거될 것이다. 이것은 복음과 복음의 은혜가 우리로하여금 이세상을 통하여 더나은 세상으로 갈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 놓은 것에 대한 언급이다. 신앙의 길은 이제 돋우어져 있다. 그것은 대로와 같다. 이제 말씀 사역자들이 해야할 일은 백성들을 그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을 의뢰하는 참회자들은 소생할 것이다(15절). 하나님의 영광이 다음과 같은 점에서 밝히 드러나고 있다.
① 그의 위대성과 위엄 : 그는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는 분이시다. 그는 지존무상한 분으로서 그와 같거나 그에게 비교될만한 피조물이 없다. 마찬가지로 이표현은 만유에 대한 그의 절대적 지배권과 모든 것에 대해 명령과 심판을 내려야하는 그의 명백한 권리를 암시하고 있다. 그는 불멸하시며 변함이 없는 분이시다. 그의 본성은 무한히 정직하시다. 그의 이름또한 거룩하시므로 그를 알고자하는 모든 사람은 그를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알아야 한다.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온세상으로 하여금 그것을 알게하리라." 하나님께 용무가 있는 자는 누구나 그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일컬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이처럼 높은 곳에 거하시지만 비천한 자들도 소중하게 대하신다.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하늘을 타신 그분은 가난한 과부와 고아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셔서 자신을 낮추신다(시 68:4,5).
② 그의 은혜와 자비 : 그는 겸손히 회개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는 그들이 비록 가난하고 멸시를 받으며 사람들에게 짓밟힌다해도 그들을 간과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그들의 마음에 대한 특성을 언급하고 있다. 즉 그는 고난을 당하면서 그고난에 순응할뿐 아니라 자기들의 처지에 신경을 쓸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관심을 보여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의 식구에게 하듯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방문하고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그들과 대화를 나누신다. 지극히 높은 곳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낮은 자의 심령속에도 거하시며, 영원히 거하실뿐만 아니라 매우 신실하게 거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기뻐하신다. 그는 그들의 심령을 다시 살리신후 그들에게 말을 하고 그의 은혜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그들속에서 역사하실 것이다.
3) 그와 다투는 자들이 그를 의뢰한다면 그들은 구원을 받으며 호의를 얻게될 것이다(16절). 그는 참회하는 자들의 심령을 소생시켜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히 다투는 것을 원치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자기의 백성들에게 화를 내지 않겠다는 약속은 하지않았다. 그들의 죄가 그를 진노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않으면 그들은 진노의 막대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영원히 다투려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쉽사리 화를 내지도 않듯이 화를 오랫동안 내지도 않으신다. "만일 내가 영원히 다툰다면 나의 지은 그영과 혼이 내앞에서 곤비할 것이라."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의 육신을 위해 주시기도 하지만 주로 그들의 영혼에 관심을 기울이고 계시다. 곧 그는 백성들의 영혼이 곤비하지 않고 은혜와 위로를 받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Ⅳ. 하나님의 크고 겸손하신 자세 57:17-21
이스라엘 백성은 17,18절에서는 한 특정인물로 언급되고 있으나 두부류로 구분되고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각기 다른 방법으로 대하고 계시다. 두부류란 평강을 약속받고 있는(19절) 평강의 아들과 또 평강을 해치려는 악인들을 나타낸다(20,21절).
(1) 이백성이 죄로 말미암아 받았던 정당한 책망 : 그의 탐심의 죄악을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17절). 탐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사이에 만연되어 있던 죄였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던 자들도 이러한 영적 우상숭배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는 탐심의 특성 때문이다. 즉 탐심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돈을 신처럼 섬기게 된다(골 3:5).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탐심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섬기는 일에 돈을 아낌없이 바쳤다(6절). 실제로 우상을 섬길때 나타나는 그들의 후한 태도나 그밖의 모든 일속에 나타나는 그들의 탐심가운데 어느것이 더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탐심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매우 진노케하는 죄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치셨고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의 탐심을 책망하셨으며 그들이 탐닉하고 갈구하던 바로 그대상들을 통하여 그들을 징벌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와같은 책망을 당할때 그들로부터 자신을 숨기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때 만일 그가 우리에게 그자신을 드러내신다면 우리는 그징계를 더 잘 참아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우리로부터 그자신을 숨기셔서 우리에게 아무런 선지자도 보내지않고 위로의 말씀도 해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우 비참한 존재가 될것이다.
(2) 이러한 책망을 받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인 완악한 태도 :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여기에서 언급된 마음의 길이란 악한 길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인간에게 역사하시지 않는한 어떠한 고통으로도 그들을 개혁시키기에는 매우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3) 그들의 완고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다시 보여주신 놀라운 긍휼.
1) 그들가운데 대다수는 패역한 행동을 했지만 그들중에는 다른 사람들의 완고한 태도를 애도하던 사람들도 더러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기억하셔서 그대다수의 사람들과 영원히 다투지 않기로 결심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는 풍부하셔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받은 고통을 보상받고도 남는다. 내가 그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줄 것이라(18절). 죄가 많은 곳일수록 은혜는 더욱 풍성하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다음 평강을 주실 것이다. "내가 그의 길을 보니 그가 결코 제 스스로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를 돌이키리라."
① 하나님께서는 그의 부패하고 악한 성품을 고쳐주실 것이다. 이처럼 고질적인 영혼의 병도 없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그병도 나을수 있다.
②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그들은 사울과 같이 패역한 행동을 범하여 위협과 살육을 일삼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더좋은 마음을 갖고 행동하도록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③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상실해버렸던 위로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들을 놀라울정도로 개혁시킨 다음 그들을 놀라운 방법으로 구속해주셨다.
2) 이백성이 포로로 끌려갔을때 그들중 일부는 선한 무화과와 같았고 일부는 악한 무화과와 같았다. 따라서 그들의 포로생활은 그들에게 유익이 되기도 했고 '환난'이 되기도 했다(렘 24:8,9). 이와같이 그들이 포로생활에서 풀려났을때에도 그들중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었다. 따라서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역시 그들에게 유익이 되기도 했고 해가 되기도 했다.
① 포로생활로부터 본토로의 귀환은 그들중 선한 사람들에게 평강이 되었다. 이평강은 장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전파될 평강의 한징표였다(19절).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평강이 있을지어다. 창조는 무로부터 이루어진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패역한 행동을 하는 자들로하여금 찬양을 하게하는 것은 분명 무보다 더 못한 것으로부터의 창조이다. 이를 위하여 평강이 공표될 것이다.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것은 그들이 포로생활속에서 수많은 양심의 가책과 정신적 동요를 받은후 생겨나는 양심의 평강 곧 경건한 마음의 안전과 평정이다. 그가 우리에게 평강을 말씀하실때 우리는 그에게 찬양으로 말해야 한다. 이평강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다. 그것은 전파하는 입술과 기도하는 입술의 열매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그리스도의 입술의 열매이기도 하다(엡 2:17).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이말은 그가 가까이에 있는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오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그는 당시대의 사람들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후세대에게도 오셨다.
② 그들중에서 악한 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귀환할수 있다해도 그귀환을 통해 아무평강도 얻지 못했다(20절). 악한 자는 바벨론에 있든 예루살렘에 있든 장소에 상관없이 늘 불안하게 산다. 악한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지못할 것이므로 그의 위로로도 고침을 받지못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항상 바다와 같이 폭풍이 몰아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그들은 돌이킬수 없을정도의 부패한 행동을 했다. 그러한 행동들은 고쳐지지 않았고 또 그들은 그 자제되지 않는 욕정으로 말미암아 요동하는 바다와 같이 되었다. 둘째로 그들의 양심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들은 가인과 같이 죄와 진노를 매우 염려하고 있었다. 가인은 항상 땅이 흔들리는 곳에서 살았었다. 이사야 선지자가 전에도 언급했고(48:22) 또 여기에서 다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21절)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한것은 분명 진리가 아닐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한 하나님과 화해할수 없기 때문이다.

# 핵심
57:1-21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악상을 지적한다. 당시 대다수의 백성은 우상숭배에 빠져 방황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의한 자들에 대해 심판을 선언하고, 겸손히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베푸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선포한다.
돌숭배(57:6)
대부분 사막으로 이루어져 물이 귀한 지역에 거했던 이스라엘인들은 풍성한 잎사귀를 가진 나무와 더불어, 흐르는 물과 그로인해 둥글게 마모된 골짜기의 돌멩이들을 신비롭게 여겼다(참조, 창 28:18). 그들은 그것을 얻고자 먼골짜기를 찾아다녔고, 그것을 발견하면 서로 차지하려고 제비뽑아 소유를 결정하기까지 했다. 돌숭배는 돌에 기름을 붓고 신으로 숭배하는 아라비아인들의 관습을 본받은 것이다. 지금도 근동 지방에서는 골짜기의 매끈한 돌을 취하여 신으로 숭배하며 돌에 기름을 붓고 곡물을 바친다.

# 묵상
의인의 죽음의 의미 ( 57:1 )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시기전에 의인들을 먼저 데려가신다는 것은 곧 심판이 임박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악인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공의로 통치하신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의인은 재앙전에 죽음을 당하여 무덤에서 편히 쉬게되지만 악인은 재앙을 당하게 될것이라는 사실조차 깨닫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형태 ( 57:3-6 )
본문은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에 대한 기록입니다. 마술, 마법 등에 빠졌으며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고, 이방신상을 숭배하고, 인신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히 여기시는 것은 우상숭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출20:3-6). 따라서 성도는 모든 죄를 경계하되 특별히 우상숭배의 죄를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사람 ( 57:15, 16 )
하나님께서는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하십니다. 이러한 자는 영혼에 상처를 입고 낮아져 있는 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인생의 슬픔과 염려를 아는 사람이며, 무엇보다도 하늘에 계신 지극히 높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그들가운데 임재해 계심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거하신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신비가 아닐수 없습니다. 높은데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었습니다.
악한 마음의 특성 ( 57:17-58:4 )
죄로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도 더욱 패역한 길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스스로 할수 있는 것이라곤 늘 더러운 악을 솟쳐내며, 하나님을 찾는다고하나 진심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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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의무의 권면 56:1,2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사 우리에게 오실때 우리는 의무적으로 그를 만나러 가야 한다.
(1)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말씀해주고 계시다(1절). 나의 구원이 가까워왔고. 산헤립 혹은 바벨론으로부터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현될 큰구원을 예시해주는 것이다.
1) 복음적인 구원은 여호와의 구원이다.
2) 그구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계시된다. 이 하나님의 의를 사도바울은 자기 자랑의 근거로 삼고있다(롬 1:17). 율법은 모든 죄인들을 정죄하는 하나님의 의를 계시했지만 복음은 그죄로부터 모든 성도들을 면제케하는 것을 계시했다.
3)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구원의 날이 오기 오래전부터 그날이 오고있음을 알고있었으며 또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주시했다.
(2)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우리의 의무를 통하여 그가 기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계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서는 안된다. 곧 "우리는 구원이 가까이에 있음을 알고있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고싶은대로 살아도 좋노라. 왜냐하면 이제는 구원을 잃어버리거나 구원에 이르지 못할 위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따위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한 것으로 바꾸어 놓는 행위이다. 오히려 구원이 가까이 왔을때는 이와 반대로 죄에 대한 경계심을 배로 늘려야 한다. 여기에서 다가오는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갖추거나 준비해야할 것으로 요구되는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모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정직하고 공정해야 한다. 너희는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1절). 하나님은 우리를 진실로 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에게 진실로 대해야 한다.
2) 우리는 안식일을 경건하게 지켜야 한다(2절).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을 도적질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 못된다. 공의와 심판이 이웃에 대한 사랑의 결과라고 할수 있는 둘째 돌판에 새겨진 모든 의무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처럼 안식일 성수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결과라고 할수 있는 첫째 돌판에 새겨진 모든 의무들을 대표한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날과 다른 날을 구별함으로써 이교도와 그들 자신을 구별했을 것이다.
3) 우리는 죄와 아무런 관계를 맺지말아야 한다. "그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이말은 신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명예로나 자기 이웃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더나아가서 하나님을 노엽게 하거나 자기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어떤 일도 하지않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이다. 안식일을 가장 잘지키는 것은 일주일내내 선한 양심을 잃지않는 것이다. 거룩한 대화를 함으로써 우리의 얼굴이 사람들앞에서 빛난다면 이것은 우리가 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음을 나타낼 것이다.

Ⅱ. 진실한 자에 대한 격려 56:3-8
이사야 선지자는 여기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면서도 큰실망을 안고 수고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격려하고 있다.
첫째,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라는 이유로 실망을 당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여호와께 연합'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정해 주셨는지에 대해 의혹을 품고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방인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3절). 그들은 약속의 언약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이방인들이었기때문에 아무런 분깃이나 몫도 얻지못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나를 그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며 나를 그들중 하나로 인정하지 않으시거나 나로하여금 그들과 같은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
둘째, 이스라엘에 속하여 있으나 자녀들을 낳지 못하기때문에 낙담을 한 사람들도 있다. 고자는 스스로 '나는 마른 나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식이 없거나 자식을 결코 얻을것 같지 않기때문에 아무쓸모도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였다. 더욱더 슬픈 일은 고자들은 제사장이 될수 없었고(레 21:20) 회중에 들어갈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신 23: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자들로하여금 그들이 복음 교회와 영적인 제사장이 되는 것으로부터 배제되었다는 생각을 하지않도록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규례속에 있는 간막이 벽을 제거하심으로 이방인들을 허용했듯이 의식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배제되었던 사람들도 허용하셨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격려를 베풀어주신다.
(1) 교회와 언약의 자손이라는 영예를 얻었으나 자기의 자식이 없는 사람들.
1) 그들의 성품은 얼마나 선한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키도록 명령했기때문에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킨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는다. 은혜의 언약은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공언된다. 따라서 그의 언약을 굳게 잡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자신을 포기하여 그의 백성이 되라는 제의를 진정으로 수락하는 것이다. 우리는 범죄자가 도피처인 지성소로 달아나 제단의 뿔을 굳게 잡는 것처럼 그언약을 굳게 잡아야한다.
2) 비록 그들이 가족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이 선한 성품에 부응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들은 다음의 약속을 받게될 것이다(5절).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자들에게는 내가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줄것이라." 인간은 아들과 딸로부터 안식처와 가문의 이름을 얻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사람들은 그보다 더좋은 안식처와 이름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은 전자의 결핍을 메꾸고도 남는다. 비록 그들에게 가정의 음악이 되게하는 자녀들은 없지만 그들은 안식처와 이름을 얻게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통하여 그들에게 안식처와 이름을 주실 것이다. 즉 그는 몸소 그들의 안식처와 이름이 되어주실 것이다. 그는 그의 집안에서 그들에게 안식처와 이름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곳에서 안식처를 얻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맺고있는 관계와 그리스도에 대해 갖고있는 관심과 영생에 대해 품고있는 소망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서 받는 축복된 장소와 축복된 이름이다. 그것은 결코 '끊치지 않는 영영한 이름'이 될것이다.
(2) 이방인의 자녀들.
1) 여기에 그들이 이제 교회의 환영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이 언급되고 있다(6,7절).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나올때 그들은 그들의 이웃을 데려와도 상관없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의 집안에 그들 모두를 수용할 충분한 공간을 마련해주실 것이다. 그들은 또한 이방인의 아들들도 다음과 같이 행할때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집안에서 안식처와 이름을 얻게된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첫째, 그들이 다른 신들을 버릴 때이다.
둘째, 그들이 왕을 대하는 신하와 장군을 대하는 군병들처럼 충성과 순종의 맹세로 하나님께 나아올 때이다.
셋째,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친구로서 즉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는' 친구로서 그에게 연합될 때이다. 그를 섬기고 그를 사랑하는 것은 그와 동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때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요일 5:3). 그들이 하나님께로 올경우 그들에게 세가지가 약속되고 있다.
① 도움 :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7절). 이말의 뜻은 다음과 같다. "나는 그들이 올때 환영을 받도록 명할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부추켜 그들을 오도록 할것이며 그들에게 나에게로 오는 길을 보여주어 그들을 인도할 것이라."
② 열납 :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되리니. 비록 그들이 이방인의 아들이라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개의치않고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받으신다.
③ 위로 : 그들은 영접을 받을뿐 아니라 그기쁨까지 누리게될 것이다. 내가...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것이며. 슬픔에 젖은 영혼이 기도하는 집에서 기쁨을 얻는 예는 매우 많다.
2) 여기에서는 수많은 이방인들이 교회로 나아오리라는 내용이 약속되고 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것임이라. 이제 이집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약속되고 있다.
① 이집은 희생제물을 드리는 집이 아니라 기도하는 집이 될것이다.
② 이집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될것이다. 이것은 베드로가 직접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세상에 전함으로써 성취되었다. 곧 '각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줄 깨달았도다'(행 10:35). 율법에는 가까이 오는 이방인들이 죽을 것이라고 거듭거듭 선포되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이제 더이상 나그네와 타국민들로 간주되지 않을 것이다(엡 2:19). 그리고 여기에서(8절) 암시하고 있는 것은 부름을 받은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한몸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대로, 요 10:16) '한무리가 되어 한목자에게'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인도될 것이다. 교회는 성장하는 몸과 같다. 우리는 신비로운 몸이 완전하게 될때까지 더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인도되리라는 소망을 가질수 있다.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요 10:16).

Ⅲ. 신자들에 대한 책망 56:9-12
이사야 선지자는 이제껏 위로의 말을 하다 갑자기 여기에서부터 다음 세장에 걸쳐 책망을 하고있다. 그러므로 그가 여기에서 새로운 설교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백성들에게 적당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포로생활을 하고있는 그들을 구해주실 것이라고 확신시켰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본문을 통하여 그들이 어떤 죄를 범하고 어떻게 하나님께 도발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 하나님께서 황폐케하는 심판을 명하신다(9절). 하나님의 목초지에 거하는 양들은 이제 도살장에 있는 양과 같이 되어 그의 공의의 희생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들의 짐승들'과 '삼림중의 짐승들'은 양들을 잡아먹으러 오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 이것은 주로 바벨론 군대에 의해 유대인들이 멸망을 당하고 재난받은 것을 가리키겠지만 훗날 로마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유대 나라가 파멸을 당한 것을 가리키는 것일수도 있다. 로마 군대는 양들을 파멸시키려는 삼림의 짐승들처럼 유대인들에게 밀어닥쳐서 그들의 안식처와 나라를 아주 없애버렸다.
(2) 이러한 심판을 받았던 이유가 여기에 설명되고 있다. 양무리의 파숫꾼들이 되어야할 목자들이 배반을 하고 자기들에게 맡겨진 일을 소홀히 했다. 그래서 양들은 쉽사리 야수들의 제물이 되었다. 이것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이나 그들을 이용하여 통치하던 제사장들을 가리킬수도 있다. 이것은 또한 악한 방백들,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던 요시아의 아들들이나 그들 밑에서 자기들에게 맡겨진 일을 소홀히 할뿐 아니라 여호와를 더욱더 진노케했던 악한 관원들을 가리킬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구주께서 활동하던 시대에 나라의 파숫꾼이었던 자들, 곧 메시야의 임재를 백성들에게 알려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를 배척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가리킬수도 있다. "화있을진저 땅아! 너의 안내자들이 그와 같구나!"
1) 그들은 자기들이 해야할 일에 대하여 무지할뿐 아니라 스스로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못하여 가르치기에 부적합한 자들이다. 그파수꾼들은 소경이요(10절). 그들은 파수꾼이 되기에 부적합한 인물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을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 표현하신다(마 15:4). 들의 짐승들이 양을 마구 잡아먹으러 와도 파수꾼들은 소경들이라 그들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들은 '다 무지하며'(10절) '몰각한 목자들'이라(11절) 양에 관련된 일을 하지 못한다.
2) 그들은 위험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눈먼 파수꾼들인 것처럼 그위험을 경고하지도 못하는 '벙어리 개'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향해 짖을뿐 아니라 물기까지 했다. 곧 그들은 양들로 걱정케하면서도 늑대나 도적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항도 하지못했던 것이다.
3) 그들은 게으르고 안일에 빠져있으며 잠자기를 좋아했다.
4) 그들은 탐욕스러웠다.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줄을 알지못하는 자요(11절). 그들의 관심은 단지 그들이 해야할 일에 있지않고 그들이 얻게될 것에 있었다. 그들은 어느누구 할것 없이 자기의 길만 바라보고 자기의 사욕을 채우는 일에만 관심을 쏟으며 공공의 복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선전하고 자기의 편을 유리하게 만드는 일에 관심을 쏟으면서도 공공복지에 대해서는 소홀히하거나 아예 제쳐놓기 일쑤다.
5) 그들은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주연을 벌여 흥청망청하는 일에만 몰두했다(12절).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그들은 백성들을 유혹하여 자기들과 함께 술을 마시도록 함으로써 그들이 책망했어야 했던 자들을 더악하게 만들었다. 술꾼이랍시고 그 스스로 백성들과 연합하여 그들을 술취하게 하는 자들이 어떻게 술을 취하는 것을 해롭다고 생각할수 있겠는가!
6) 그들은 자기들이 계속해서 번영을 누리며 안락한 생활을 할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우리는 오늘같이 내일도 향락을 즐길수 있을만큼 많은 것을 얻게될 것이라."

# 핵심
56:1-12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선포하고,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타락상을 책망하는 대목.

# 묵상
자녀보다 나은 기념품 ( 56:5 )
자녀보다 나은 기념품이란 말씀은 자녀를 얻는 것보다 더좋은 이름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좋은 이름을 남기고 영원히 기억되는 것은 자녀를 얻는 것보다 좋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공동체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좋은 이름을 얻게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의 이름이 기억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 ( 56:7 )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게된 이후로 제사보다는 말씀과 기도가 예배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방인에게 알려진 성전은 제사드리는 곳이라기보다는 기도하는 곳으로서의 의미가 강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율법주의자, 교권주의자들의 외식 등으로 타락하고 장사꾼에 의해 더럽혀졌을때 숙정을 통해서 기도하는 집이요, 내면의 신앙행위를 드러내는 곳으로서의 성전의 역할을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요2:13-19).
파수꾼 ( 56:10 )
파수꾼은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들은 파수꾼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민족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직시하지 못함으로인해 경고의 소리를 외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개의 역할은 짖는 것입니다. 참된 선지자는 거짓을 볼때 죄를 지적하고, 불의를 볼때 대항하여 싸워야합니다. 주의 종들은 이시대의 불의와 거짓을 막아야합니다. 또 하나님의 성전(고전3:16; 6:19)인 우리 몸이 세상 것으로 더러워지지 아니하도록 날마다 정결케하여 기도하는 집으로 손색이 없어야합니다. 성도는 이시대의 파수꾼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기도함으로 자신을 지키며 또한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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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복음으로의 초대 55:1-5
(1)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새언약을 통하여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준비하신 양식을 취하도록 초대를 받았다.
1) 초대받은 대상 : "모든 사람"(한글개역에는 이말이 생략되어 있음-역주). 즉 유대인들뿐 아니라 가난한 자와 불구자, 발을 저는 자와 눈먼 자라고 할수 있는 이방인들까지도 모두 초대되었다. 그리고 길가에 있든 산울가에 있든 관계없이 부름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초대되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일반적으로 생명을 제의해야 한다. 그리고 복음시대에는 이방인에게도 초대장이 보내져야 한다. 복음의 언약은 스스로 거부하지 않는한 아무도 제외시키지 않는다.
2) 초대받기 위한 자격 : 그들은 목마른 자들이어야 한다. 세상과 그즐거움에 만족하는 자들, 곧 자기의 공로를 의지하여 의를 이루려고 하는 자들은 목마른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아무런 궁핍도 느끼지 않으며 영적으로 고통이나 불편을 전혀 느끼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그리스도에게 초대되어 안식을 얻는 것처럼 목마른 자들은 물가로 초대된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실때 먼저 그은혜를 바라는 갈급한 마음을 갖게하신다(시 81:10).
3) 초대받은 장소 : 물로 나아오라. 이것은 곧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는 누구에게나 공개된 샘이고 물을 내는 반석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성례, 곧 우리의 하나님의 도성을 기쁘게 하는 시냇가로 나오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그것은 포도주와 젖같이 중요하며 차고 넘칠정도로 기운을 소생시켜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치유시키는 물, 곧 생명수가 있는 곳으로 오라는 뜻이다. 우리 구주께서 그것을 말씀하셨다(요 7:3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4) 초대받은 목적.
① 너희는 와서 사먹되. 이는 곧 "너희는 와서 사라 그 거래조건 때문에 머뭇거리지도 말고 그조건에 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말라"라는 뜻이다.
② 너희는 와서 사먹되. 이것은 또한 "너희는 먹음으로써 너희 자신의 소유를 더늘리라"는 뜻과 같다. 왜냐하면 먹는 것이 사서 두는 것보다 더 소유를 늘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5) 초대되어 제공받은 음식 :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포도주와 젖은 갈증을 덜어줄뿐 아니라 신체에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정신을 소생시키기까지 할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많은 것을 공급해주신다. 곧 우리는 물론 나아와서 그물로 인하여 기쁨을 얻을뿐 아니라 그곳에서 포도주와 젖까지도 발견하게될 것이다. 이포도주와 젖은 유다 지파의 주산물이었다. 우리는 이포도주와 젖을 얻기위하여 우리가 지닌 웅덩이물 아니 우리가 지닌 독을 없애야 한다.
6) 이 양식의 값 : 돈없이 값없이 와서 젖을 사라. 돈없이 산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을 암시하는 것이다.
① 우리에게 제공된 선물은 어떤 값도 매길수 없을만큼 귀하다.
② 그것들을 제공하는 분은 우리를 필요로하지도 않으며 또 우리의 보상도 필요로하지 않으신다.
③ 우리에게 제공되는 것들은 이미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돈이 아니라 그자신의 피로 그것들을 사셨다(벧전 1:19).
④ 우리는 그약속의 공로로 환영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천국이 우리에게 속한 것이라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에 영원토록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2) 우리는 이러한 초대를 수락하도록 진심으로 요청받는다.
1)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제안에 경청하도록 설득을 받는다. 나를 청종하라. 즉 "내 말을 듣고 그말을 네게 적용시키라(2절). 곧 너희가 관심을 갖고 있을때와 같이 귀를 기울이고 내 조건을 따르라"(3절).
2) 하나님은 우리를 설득하시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쟁론을 하신다.
① 만일 우리가 이초대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말할수 없는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너희가 나와 더불어 돈없이도 포도주와 젖을 먹을수 있는데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돈을 쓰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마른 떡보다 못한 것을 위하여 수고하며 애를 쓰느냐? 그것은 너희를 배부르게 못할 것이라." 이세상에 속한 것들은 양식이 되지도 않고 영혼을 위하여 필요한 양식도 못된다. 그것들은 배부르게 못하는 것들이다. 이세상에 속한 자들은 이처럼 불확실하고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것들을 위하여 돈을 사용하며 수고를 한다.
② 만일 우리가 이초대를 수락하고 그초대에 응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될것이다. "만일 네가 그리스도의 말을 듣는다면 너는 좋은 것을 먹게될 것이라. 그것은 건강에 좋을뿐 아니라 기쁨을 주기까지 하고 그자체로도 좋으며 너를 위하여 유익할 것이라."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과 약속, 선한 양심, 하나님의 선한 영의 위로는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잔치와 같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것에 대해 확신할수 있다.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은혜롭게도 우리에게 이모든 것을 보증해주고 계시다.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며 그것을 통하여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를 베풀리라." 이언약으로 얻는 유익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했던대로 다윗에게 허락한 은혜다(시 89:28,29). 솔로몬은 다윗에게 허락되었던 이은혜를 '주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이라고 하면서 그은총을 기억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청했다(대하 6:42).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다윗을 우리는 메시야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언약을 통해 얻는 은혜는 모두 메시야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즉 그모든 은혜는 그의 손으로부터 우리에게 배분되는 것이다. 그는 언약의 중보자이시며 보증인이시다. 그것들은 확실한 은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안에서 그약속들은 모두 가하며 아멘으로 응답될수 있기 때문이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수락하도록 초대받게된 모든 다른 약속들까지 성취하실 분으로 약속되었다(4절). 그는 확실한 은혜를 받아 언약의 모든 축복과 유익을 얻은 다윗과 같은 존재였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호의를 받을만한 것이 전혀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셨다. 우리는 먹을 물이 있는 물가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할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사 물가로 나아갈수 있는 '인도자'가 되게 하셨다. 우리는 또한 어찌해야 할바를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사 우리로하여금 해야할바를 보여주고 그것을 할수 있도록 하는 '명령자'가 되게 하셨다. 다시말해서 그리스도는 그의 교훈을 통하여 명령자가 되시고 그의 모범적인 행동을 통하여 인도자가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에게 순종하고 그를 따르는 것이다.
(4) 잔치의 주인이 정해졌기때문에 다음으로 정해져야할 것은 손님을 채우는 일이다. 이방인들이 이잔치에 초대될 것이다. 네가 알지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5절). 즉 "네가 전에는 부름을 받지못했고 또 너의 나라로 인정을 받지못했던 나라를 부를 것이다." 그들은 부름을 받고 나아올 것이다. 너를 알지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세상에서 하늘로 올리우시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로 나아오게 하시는 그리스도께 그를 믿는 이방인들이 모여들 것이다. 이방인들이 이처럼 그리스도에게로 몰려드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시는 것은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시며 그의 약속에 충실한 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그의 유업으로 주심으로 그를 영화롭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Ⅱ. 회개와 개혁에 대한 권고 55:6-13
여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와 맺어진 은혜의 언약이 상술되고 있다. 하나님의 선의에 대한 이 은혜로운 발견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약이나 신약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구별이 바벨론 포로에게 국한된다는것 역시 부당하다. 여기에서는 모든 사람, 곧 행복에 목말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과 약속이 주어지고 있다(1절).
(1) 복음의 조건위에서 용서와 화평과 모든 행복을 불쌍한 죄인들에게 주겠다는 은혜로운 제의가 주어지고 있다(6,7절).
1) 그들은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들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게될 것이다(6절).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때에 그를 부르라. 이말은 곧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하여 그에게 기도하라. 네가 필요로하는 그밖의 모든 것을 위하여 그에게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제 그의 인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그의 말씀이 우리를 부르고 있으며 그의 영이 우리와 다투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이제는 우리의 유리한 점과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은혜받을만한 때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은 회개하고 개심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죄가 용서받을 것이다(7절). 여기에 회개하지 않은 자들인 '악인'과 '불의한 자'를 부르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이 악인은 엄청난 죄를 짓고 살며 불의한 자는 명백한 의무를 소홀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도 이구원의 말씀이 보내지며, 회개하는 죄인들이 하나님을 용서하는 하나님으로 발견하는 것이 가능케 되었다. 회개에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① 회개하는 것은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다. 즉 회개하는 것은 죄를 범하지않는 것이다. 거기에는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불의한 자는 '그생각을 버려야' 한다. 참된 회개는 근원적인 변화를 일으켜 악한 마음을 제거해 준다. 우리는 사람이나 사물에 관한 우리의 그릇된 판단을 바꾸고 부패한 상상을 하지않으며 불결한 마음의 은신처가 되고 있는 위선을 포기해야 한다.
② 회개하는 것은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회개란 반역을 꾀했던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 불행은 긍휼의 대상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신 긍휼이 있다.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다시말해서 우리가 죄를 무수히 범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풍성히 우리를 용서해주실 것이다.
(2) 이 제의를 수락하고 그위에서 온힘을 다하도록 우리에게 격려가 주어지고 있다.
1) 하늘을 쳐다볼때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숭고하고 초월적이며 그의 생각과 방법이 무한히 우리의 생각과 방법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8,9절). 악한 자들은 그들의 악한 방법과 생각을 버리고(7절) 하나님의 방법과 생각에 부응하는 방법과 생각을 갖도록 요구받는다. 왜냐하면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과 방법은 너희와 같지 않노라. 너희의 생각과 방법은 아래에 속한 것들에 불과하지만 나의 생각과 방법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높도다. 너희가 만일 진실로 회개한다면 너희의 생각과 방법역시 높아질 것이며 너희는 위에 속한 것을 바라게될 것이라. 죄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화해하지 않을까하여 늘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토록 비열하고 빈번하게 그들이 공격했던 자와 화해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런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같지않도다. 내 생각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너희의 생각보다 높도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화를 잘내시며 용서하시기를 꺼리신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그가 한번 용서하면 두번 다시 용서하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한다. 베드로는 일곱번씩 용서해주는 것을 대단한 일로 생각했으나(마18:21)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는 죄인을 항상 용서하시는 긍휼로 맞아주신다. 우리는 용서해준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잊지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하여 주실때 더이상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
2) 이세상을 내려다볼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강하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10,11절). 하나님께서는 눈에게도 "땅에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즉 그는 눈이 오는때와 양과 기간까지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는 '적은비와 큰비도 그같이 내리게' 하신다(욥 37:6). 그의 말은 그뜻을 이루지 않는한 다시 그에게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온땅은 물을 공급받게 된다. 온땅에 물을 공급하는 것은 그땅에서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그는 '싹이 나게하여 열매가 맺게'하셔서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땅의 소유자와 그가족의 생계를 유지시킬뿐 아니라 씨뿌리는 자에게도 다음해의 양식을 얻도록 종자를 주신다. 농부는 먹는 자인 동시에 씨뿌리는 자도 되어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그가 가진 것은 곧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내 말은 섭리를 통해서처럼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도 강력하게 시행될 것이라."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이와같은 긍휼과 은혜의 약속들은 성도들의 영혼에 대해 실제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왜냐하면 비가 땅에 내려 열매를 맺게하는 것처럼 긍휼과 은혜의 약속은 그들을 성결케하며 그들에게 위로를 줄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이세상에 오시는 것은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는 것과 같이(호 14:5) 헛되지 않을 것이다.
3) 우리가 특별히 교회에 대해 주시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얼마나 큰일을 하셨으며 또 하실 것인가를 깨닫게될 것이다(12,13절).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① 이것은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그들의 본토로 귀환하는 것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그들은 포로생활에서 벗어나 그들의 본토로 인도받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바벨론으로부터 기쁨과 평안함을 가지고 떠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지나가게될 모든 나라들로부터 선의와 선한 소망을 받을 것이다. 작은 산들과 그곳의 거민들도 '노래를 발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본토로 돌아올때 그본토에서도 환영을 받을 것이다.
②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이상의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영영한 표징이' 될것이다. 즉 유대인들을 바벨론에서 구속하는 일은 복음시대에 관한 약속들을 비준하는 것이다. 그구속은 또한 약속된 축복을 예표하며 그축복에 대한 표징이 될것이다. 복음의 은총은 죄와 사단의 속박을 받고있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그들은 나아가며 인도함을 받을 것이다.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시 14:7). 그구속은 인간의 성격을 매우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가시나무와 찔레나무처럼 불을 지피는데에만 쓰이는 자들도 잣나무와 화석류처럼 품위있고 유익하게 될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시나무와 엉겅퀴대신 그가 기뻐하는 나무들을 기르시는 것은 율법의 저주가 제거되고 복음의 축복이 소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은혜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다. 왜냐하면 은혜의 언약으로 받은 현재의 축복은 곧 영원한 언약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 핵심
55:1-13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초청에 즉각 응답할 것을 요구하며, 죄악된 삶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올 것을 권고한다.
새언약을 세운 이유(55:3)
하나님이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들은 백성의 범죄로 말미암아 파기되고 말았다(24:5; 호 6:7). 이렇게 과거의 언약이 파기된 상황에서 하나님이 여전히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계속해서 구원을 베풀기를 원하신다면, 당연히 새로운 언약이 필요하다. 그 새언약이 본문에 언급된 ‘영원한 언약’이다(참조, 렘 31:31-33). 따라서 새언약의 체결은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자비와 사랑을 증거한다.

# 묵상
포도주와 젖 ( 55:1 )
하나님의 은혜를 뜻하며, 그은혜는 곧 사죄의 은총을 가리킵니다. 여호와의 종의 죽음으로인해서 이미 값이 지불되었으므로 용서는 누구에게나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목마른 자는 누구나 오라는 것은 곧 복음의 보편성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은 사람 ( 55:4 )
다윗입니다. 그는 오실 메시야의 표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은 자신을 본 자는 곧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6:46).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 ( 55:6 )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신 때를 말합니다. 또한 만날만한 때란 죄인이 회개하고 죄에서 돌아서겠다고 하는 결단을 내리는 때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를 찾는 이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청종하는 자를 가까이하십니다(잠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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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교회의 확고부동한 토대 54:1-5
만일 이본문을 포로생활을 하다가 귀환한 유대인들에게 적용한다면 그것은 본토에 정착한후 그들의 민족성장에 관한 예언이 될것이다. 예루살렘은 그동안 아이를 낳지못하는 아내 혹은 쓸쓸하고 고독한 미망인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성은 다시 사람들로 충만해지고 성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게될 것이다. 그리고 황폐해진 성은 다시 보수되며, 오랜 세월동안 이방인인 바벨론 사람들이 부당하게 차지하고 있었던 재산들도 의로운 자들에게 반환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의 남편이 되어 그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받았던 포로생활의 수치가 잊혀지고 그로인하여 감소되었던 그들의 인구도 다시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본문을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적용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본문은 사람들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하나님의 왕국, 곧 세상속에 세워진 하나님의 도성에 적용해야 한다.
(1) 그리스도교가 생기기 오래전에 세상사람들이 갖고있던 신앙은 저급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그신앙은 잉태치못하는 자와 같고 남편과 자식들 모두 잃어버리고 고독에 잠겨있는 여인과 같은 상태에 놓여있었다. 교회역시 작은 영역에 머물러 있었기때문에 거의 아무런 결실도 맺지못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보다 더저급한 신앙을 갖고있었고 지리멸렬하여 수가 줄어든 가정의 자녀들과 같았던 하나님의 자녀들 역시 먼타국으로 흩어져 있었다(요 11:52).
(2) 이와같이 저급한 상태에 머물러있던 신앙이 복음의 전파와 그리스도 교회의 설립으로 말미암아 다시 회복되었다.
1) 많은 무리들이 우상숭배를 그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섰다. 그들은 교회에 속한 자녀들로서 말씀을 통하여 다시 태어났으며 새롭고 거룩한 자연의 참여자들이 되었다. 특히 유대인 교회보다 이방인 교회에서 이와같은 실례들이 더많이 발견되었다. 교회가 증가되는 것은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며 힘을 준다. 한죄인이 회개해도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까지 매우 기뻐하는데 하물며 한민족이 회개한다면 그기쁨은 얼마나 더 클것인가?
2) 교회의 영역이 이전보다 훨씬더 확장되었다(2,3절).
① 여기에서 교회의 현상태가 장막과 같은 상태로 전제되고 있다. 즉 교회는 옛약속을 기업으로 물려받은 자들처럼 장막에 거주한다. 장막이란 순식간에 철거되어 이동될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경우 어디에서건 곧바로 세워질수 있다.
② 교회의 상태가 장막의 상태와 같다는 것은 분명 성장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장막과 같은 상태에 놓였다해도 그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복음을 처음으로 전파하던때에도 이와 같았다. 그때 사도들의 일은 모든 열방을 제자화하고 더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위하여 이장막의 끈을 연장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또한 확장된 장막의 무게를 지탱할수 있는 말뚝들을 강화시켜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교회의 수효가 늘어날수록 교회는 부정과 부패에 물들지않고 일곱기둥을(잠 9:1) 지탱할수 있도록 더많은 경계를 해야만 한다.
③ 어디를 가도 교회가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행 19:20)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권능을 베풀고 계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복음은 세계도처에 전파되었다. 그러므로 동서를 막론하고 교회들이 있다.
3) 이것은 교회의 위로와 영광이 되었다(4절).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이말은 "네가 이전과 같이 협소한 땅과 적은 자녀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4) 이것은 또한 하나님이 교회에 대하여 남편으로서의 관계를 맺고 계신 것에 기인한다(5절).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지으신 분이며 그에 의하여 교회는 한백성을 이루게 되었다. 다시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구속자이며 그를 통하여 교회가 가장 가혹한 종살이인 죄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났다. 이는 하나님 자신이 교회를 자기의 아내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다.' 그는 또한 구약교회의 여러가지 사건들을 관장하셨을뿐 아니라 구약교회와 맺은 언약의 중재자이기도 하셨다.

Ⅱ. 교회의 번성 54:6-10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있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해주시겠다는 예언이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것은 은혜의 언약을 받은 모든 신도들을 위하여 예비된 하나님의 위로의 한징표이다.
(1)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전에 겪었던 고난과 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회고가 언급되어 있다(6-8절).
1) 교회의 처지가 얼마나 비통했었나. 교회는 비록 '소시에 아내 되었다'해도 버려진 여자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었거나 혹은 거절을 당하고 불만으로 가득찬 자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내된 자들조차도 버림을 받은 것처럼 보일수 있다. 이것이 직유법으로 설명되고 있다(7,8절).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로 오랫동안 계속해서 고난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신다면 이것은 그가 그들을 버리신 것처럼 보이게할 것이다. 그들의 대적들은 실제로 이와같이 해석하고 있다(시 71:11). 사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시고 그들로부터 자신의 얼굴을 숨기신 것은(62:17) 그들에게 진노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받아야했던 진노와 또다른 민족들이 그러한 죄로 응당 받아야했을 진노에 비교하면 적은 진노에 불과했다. 그들이 받은 진노의 기간은 한순간에 불과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노하기를 더디하시는만큼 긍휼을 베푸는데 신속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이 그들에게 오실뿐 아니라 위로까지 해주심으로 그들에게 다시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나.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모으신 것은 그들의 공로때문이 아니고 그스스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큰긍휼'(7절)과 '영원한 자비'(8절)로 자기의 백성들을 모으신다.
(2) 미래의 위험에 대한 예견과 그위험에 상관치 않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은혜와 그의 영원하신 인애가 언급되어 있다. 이는 은혜의 언약이 맺어졌기 때문이다.
1) 이언약은 '노아의 홍수'때의 약속, 곧 두번 다시 그와같은 홍수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약속과 같이 확고하다(9절;참조. 창 8:21,29;9:11).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비록 그를 진노케한다해도 그의 약속을 지키셨다. 이와같이 은혜의 언약은 거역할수 없다.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2) 이언약은 가장 견고한 피조물보다 더확고하다(10절).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하박국 3:6절을 참조하라. 산들도 때에 따라서는 지진으로 흔들릴뿐 아니라 갈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일로도 파기되지 않는다. 비록 우리의 친구들이 우리를 좌절케해도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지않으시며 그의 자비함도 우리를 떠나지않는다. 세상의 왕들과 통치자들이 주께 대항한다면 그들은 죽음을 당하며 자기들의 지위를 잃게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결코 그의 백성들로부터 떠나지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사랑하는 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언약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긍휼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세워졌기때문에 변경되지도 않으며 침해를 받지도 않는다.

Ⅲ. 시온의 영화 54:11-17
이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매우 귀중한 약속들이 언급되고 있다. 곧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당하고 있는 자기의 백성들을 계속해서 사랑하실뿐 아니라 그들로 그들이 이제껏 누렸던 번영보다 더 큰번영을 누리게 해주실 것이다. 앞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자신을 낮추고 또 높이들리는 내용을 대했었다. 이제 여기에서는 교회가 낮아지고 또 높아지는 내용을 대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고난을 당하면 그와 함께 통치하기도 할것이기 때문이다.
1. 고난을 당하는 교회(11)
"너희 곤고하고 궁핍한 자들이여, 파도에 휩쓸리기 쉽고 구원의 소망도 기대하기 힘든 배처럼 광풍에 요동하는 너희 무리들이여!" 이것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훗날 돌아와서 다시 안디오커스의 폭정하에 시달림을 받았던 유대인들의 처지를 언급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것은 또한 폭풍속에서 죽을뻔했던 제자들처럼 그리스도 교회와 신자들의 처지이기도 하다.
2. 하나님의 약속의 영광을 누리는 교회(12-17)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기의 교회가 겪고있는 고통과 곤경을 주목하시고 위로해 주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난을 당하거나 동요를 일으킬때 이와같은 하나님의 위로를 경청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당하는 모든 고난을 보시고 함께 고통해 하시며 또 교회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시겠다는 보장을 하심으로써 교회를 격려하고 계시다.
(1)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1) 이것은 한도성을 비유하여 약속되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 곧 하늘의 예루살렘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예루살렘이 파괴되어 쓰레기더미에 지나지 않지만 앞으로는 아름다워지고 또 이제까지보다 더 화려하게 꾸며질 것이다. 그성을 쌓는데 필요한 돌들도 견고할뿐 아니라 귀한 돌로 마련될 것이다. 그리고 그기초는 '청옥'으로 장식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뿐 아니라 사도와 선지자들에 의해 놓여진 기초는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하기 때문이다. 이집 혹은 도성의 성전의 창들은 '홍보석'으로 만들어지고 성문들은 '석류석'으로 만들어지며 모든 성곽은 '보석'으로 꾸며질 것이다(12절). 하나님께서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의 교회를 지으셨기때문에 신약교회의 영광은 유대 교회의 영광보다 훨씬더 뛰어날 것이다. 이는 신약교회가 무한할정도로 귀중한 성령의 은사와 은혜를 받고있기 때문이다.
2) 교회를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들은 바로 지식과 성결과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이다. 인간은 바로 이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소생되었으며 회복되었다. 이것들이 바로 복음성전을 아름답게 장식할 청옥과 홍마노와 석류석과 보석들이다. 즉 복음성전은 이것들과 함께 '이 터위에' 세워질 것이다(고전 3:12).
① 교회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충만할때 매우 영광스러워진다(13절).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그들은 하나님께서 임명하실뿐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와 축복에 따라 수고하는 자들에 의하여 교훈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의 영혼을 조명해주는 성령에 대한 약속을 나타낸다. 우리 구주께서는 이말을 인용하여 복음의 은혜에 적용시키셨다(요 6:45).
② 교회는 그구성원들이 서로 사랑과 일체감을 지니고 살때 매우 영광스러워진다.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교훈을 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는다(살전 4:9).
③ 교회는 성결이 유지될때 매우 영광스러워진다. 왜냐하면 성결이야말로 어떤 것보다 교회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4절). 너는 의로 설 것이며. 관습을 개혁하고 순결을 회복하며 적절하게 사회정의를 수행하고, 사람들가운데 정직하고 공정한 풍토를 조성하는 것은 교회나 국가를 튼튼하게 하며 안정시키는 것이다.
(2) 지금은 교회가 위험속에 놓여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보호와 안전을 약속하신다. 교회안에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14절).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이것은 악뿐 아니라 악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없어진다는 뜻이다. 교회밖에도 아무런 다툼이 없을 것이다. 비록 다투려는 시도들이 있을지라도 그시도들은 어느것 하나라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15절). "그들은 반드시 함께 모여 너에게 대적할 것이므로 너는 그것을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일은 그들에게 허용되어 있다. 따라서 지옥에 악마가 존재하고 그곳으로부터 핍박자가 나오는한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경계를 소홀히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의 무모한 시도는 결국 그들을 파멸시키고 말것이다. 누구든지 모여 너를 치는 자는 너를 인하여 패망하리라. 우리는 교회의 안전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의지할수 있다. 무기를 만드는 장인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철과 놋쇠를 다루어(출 31:3,4) 전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수 있는 기술을 주셨다. 장인은 숯불에다 철을 달구어 쉽게 다룰수 있도록 풀무질을 한다. 이는 철을 단단하게 만듦으로써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들에게 '쓸만한 기계'를 제조하여 주기 위함이다. 철기시대는 바로 전쟁의 시대였다. 그러나 장인을 창조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의 손을 묶어 원수의 계획을 좌절시킬 것이다. 또한 그들이 교회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병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를 창조한 분도 하나님이시다. 군인들은 스스로 자기들의 빛나는 칭호를 자랑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파괴하고 진멸하는 자'로 부르신다. 왜냐하면 파괴하며 진멸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능과 수고와 경험으로인하여 군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을 지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그자신의 목적과 계획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인 교회의 안전과 관련되어 있다(17절).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즉 그기계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해를 끼칠만큼 날카롭지 못하며 오히려 그것을 사용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쓰여질 것이다. 전쟁무기들이 날카롭지 않을때 송사를 일으키는 혀들이 생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고히 고소하여 사람들앞에 가증스러운 존재로 만들고 정부에 대해서는 해로운 존재로 부각시킨다. 유대인들의 원수들은 그와같이 행함으로써 바사의 왕들을 격동시켜 그로하여금 유대인들을 대적하게 만들었다(스 4:12;에 3:8). "그러나 너는 이 모욕적이고 위협적인 혀들을 선행으로 잠잠케 하라"(벧전 2:15). 곧 "너는 네 대적들의 양심을 통하여 네가 그들의 주장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드러낼수 있는 일을 행함으로써 그들을 잠잠케 하라."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하나님의 종들은 곧 그의 아들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의 영원한 기업이다(시 119:111).

# 핵심
54:1-10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번영에 관한 예언이다.

# 묵상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맺은 새언약 ( 54:10 )
화평케하는 언약입니다. 이평화의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평화가 확고부동하고 영원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언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근거하는데, 이새로운 언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화평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얻게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사이에 더하는 화려한 채색 ( 54:11 )
이는 예루살렘으로의 귀환과 재건이 놀라울만큼 화려한 것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새예루살렘의 화려함은 그도시가 완전히 새로운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도시로 찬란함을 입게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에스겔이 환상에서 본, 하늘에서 내려온 신부같이 단장한 모습의 새예루살렘을 연상시킵니다.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않는 여호와의 종들 ( 54:12-17 )
그들을 해치려는 세력들도 하나님의 피조물로 그분의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악한 세력들이 여호와의 종들에게 해를 가하는 일들이 있으나,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하나님의 종들에게 유익이 되고, 더욱 귀한 은혜를 얻게하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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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메시야가 받을 굴욕 53:1-3
이사야 선지자는 52장의 끝부분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인가운데서 호의적으로 영접되리라는 것을 예견하며 예언한바 있다. 이제 그는 여기에서 놀랍게도 유대인들이 메시야의 임재에 대해 이미 통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지않으리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1.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그들의 경멸(1)
이것은 사도들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거의 복음을 전파하지 못한 사실에 적용될수 있다(롬 10:16).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미리 말했던 선지자들을 믿은 사람들도 거의없었다. 실제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을때 관원이나 바리새인중에서 그를 따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평민들 중 여기저기서 모여들었던 사람들만이 그를 따랐다. 그리고 사도들이 온세상에 이소식을 전했을때 사방에서 그소식을 믿었으나 거의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이소식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수많은 사람들가운데서 진심으로 그소식을 영접하고 그권능에 복종하는 사람은 거의없다. 그들은 말씀과 함께 수반되는 하나님의 권능과 그말씀을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성령의 사역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속에 있는 빛에 대항하여 거역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해 버렸기때문에 복음을 믿지않는다.
2.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그들의 경멸(2,3)
(1) 그가 처했던 비천한 상태와 그가 자신을 낮추고 비웠던 정도 : 그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나타내신 특성은 유대인들의 메시야관과 전혀 부합되지 않았다. 그의 태생은 매우 위대하고 존귀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그렇지 못했다. 그는 다윗의 자손이었으나 그탁월한 왕족의 세력이 몰락했을때 출생했다. 그리고 그후예인 요셉도 가난한 목수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로인하여 본문에서는 그를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로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유대의 북쪽지방인 갈릴리의 비천한 가문, 곧 메마른 땅과 같이 선한 것이 나올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던 촌락에 자리잡고 있을뿐 아니라 뛰어난 것이나 위대한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할수 없었던 가문에서 태어나셨다. 그는 공개적으로 오실뿐 아니라 장엄하며 굉장한 모습을 지니고 오실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그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앞에서 성장했다. 그는 '연한 순'같이 조용하고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가운데서 자라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곡식이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어떻게 자랐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막 4:27). 그는 얼굴이나 풍채가 특히 아름다워 그를 본 모든 사람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런 종류의 모습이 전혀없었다. 즉 그가 불구이거나 기형으로 생겼다는 뜻이 아니고 사람들이 성육하신 하나님속에서 기대할수 있는 특별히 고운 모양이나 풍채도 그에게는 없었다는 뜻이다. 모세는 태어났을때 축복의 전조로 간주될만큼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을 가졌었다(행 7:20;히 11:23).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았을때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다(삼상 16:12). 그러나 세상에 드러난 우리 주 예수의 모습은 그속에 칭송할만한 것이 전혀없었다. 그리고 그의 복음도 '지혜의 권하는 말'로 전파되지 않고 전혀 꾸밈없는 말로 전파되었다. 그는 또한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초대하여 즐거운 생활을 만끽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그는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였다. 그의 형편은 여러면에서 비참했다. 그는 제대로 한곳에 정착하지도 못했고 머리둘 곳도 없었으며 헌금으로 그날그날 살아갔고 방해와 위협까지 받았으며 자기에게 대적하는 죄인들의 행동을 참고 지냈다. 그의 심령은 온유하여 슬픈 인산들을 드러냈다. 그는 슬픔에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자세히 알고 그슬픔을 진심으로 동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 그에 대한 사람들의 경시 : 그에게는 모든 열방의 흠모를 받기에 충분한 거룩한 아름다움과 선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살았던 사람들가운데 대부분은 이러한 아름다움을 바라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적인 눈으로만 식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악한 사람으로 알려져 사람들에게 거부를 당했다.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3절). 그런데 이말은 '그가 얼굴을 가리운 사람같아서'라고도 해석할수 있다. 그것은 그가 그의 위엄으로 드러나는 영광을 은폐하고 그영광을 베일로 가렸기 때문이다. 곧 우리가 그베일을 꿰뚫고 그의 영광을 올바로 볼수 없었기때문에 그는 우리에게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Ⅱ. 메시야의 수난 53:4-9
(1) 본문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천하게 되신 상태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언급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진정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정도로 스스로 천하게 되셨다.
1) 그는 질고와 슬픔을 당하셨다. 그는 그슬픔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지 않으셨다. 그는 그슬픔으로 인하여 움추리지도 않으셨고 그속에 잠겨있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그는 끝까지 견디면서 '다이루었다'라는 말을 하기까지 하셨다.
2) 그는 매를 맞고 상처를 입으셨다. 그는 '징벌을 받고 맞으며 고난을 당하셨다.' 그는 악을 행하는 자로 거부를 당하고 온갖 악평을 다 들음으로써 혀로 매를 맞았다. 그리고 마침내는 손으로 매를 맞았다.
3) 그는 채찍질을 당하셨다. 그는 아무리 악한 자라도 40대이상을 허용하지 않는 유대의 관용적인 율법에 따라 채찍질을 당한 것이 아니라 로마 사람들의 관례대로 채찍질을 당하셨다. 빌라도는 십자가에 못박는 것만큼이나 심한 채찍질을 그에게 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채찍질은 아직 십자가에 달리는 것의 전조에 불과한 것이었다. 결국 십자가에서 그는 손과 발과 허리에 상처를 입으셨다.
4) 그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뿐 아니라 능욕을 당하기까지 하셨다(7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서는 그자신의 뜻을 잃지않으셨다.
5)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가셨다'(8절). 그는 행악자로 소송을 당했다. 그는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갔으며 죄수가 되었다. 그는 재판을 받고 비난을 받았으며 심리를 거친다음 정죄를 받았다.
6) 그는 우리로서는 이해할수 없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산 자의 땅에서 끊어졌다.' 그의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느나(왜냐하면 그는 세 사람중 가장 흉악한 죄인이기라도 한것처럼 두 강도사이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기 때문이다) '그묘실은 부자와 함께 되었다'(왜냐하면 그는 존귀한 공회원인 요셉의 묘실속에 장사되었기 때문이다).
(2) 이일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면서 "이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그는 어떤 악을 범했는가?"라고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대적들은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라고 생각했다(4절). 그들은 그를 미워하여 핍박까지 했기때문에 하나님이 이일을 행하신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그는 '하나님에게 매를 맞았다'(10절). 혹은 비록 그가 매를 맞고 고난을 당했을지라도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고 고난을 당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일의 의미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1) 그는 이와같이 가혹한 대우를 받을만한 일을 결코 하지않았다. 비록 그가 국가에 반역을 하고 선동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고소를 당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그는 '강포'를 행치않았고 오히려 선을 행하며 다니셨다. 그는 또한 사기꾼이라는 죄목으로 고소당했지만 '그입에 궤사가' 전혀없었다(9절). 베드로전서 2:22절와 비교해 보라. 그는 결코 말이나 행동으로 죄를 범하지 않았다. 그를 정죄한 재판관도 그에게 전혀 죄가 없음을 인정하였고 또 그를 처형한 백부장도 그가 분명 의인이라는 것을 고백했다.
2) 그는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때에도 그입을 열지 않았다'(7절). 그는 자신의 무죄를 탄원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며 죽고자 하셨다. 위대하고 거룩한 목적을 이루기위하여 그가 자발적으로 복종한 이고난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치욕은 제거되었다. 그는 그의 지혜로 이선고를 회피하고 또 그의 권능으로 이처형에 저항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기록된대로 고난을 받아야했다. 그것은 그가 이명령을 그의 아버지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끌려갔다. '털깎는 자앞에 잠잠한 양같이' 아니 "도살자앞에서도 잠잠한 양같이" 끌려갔다. 그는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그가 그의 아버지의 뜻에 순응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가 거룩히 구별받은 것은 그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그의 생명 곧 영혼을 희생물로 바친 이 고귀한 공로때문이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신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우리를 대신한 것이다. 이 내용이 본문을 통해 아주 명백하고 충분하게 주장되고 있다.
① 우리 모두가 하나님앞에서 다 죄인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6절).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행하여. 모든 사람들은 각기 그자신의 수많은 죄로 말미암아 기소를 받게된다. 우리는 진정 양과 같이 잘못 행해왔다. 양들은 아무데로나 가기 쉬우며 집으로 잘 돌아오지도 못한다. 이것이 우리의 참된 특성이다. 우리는 각기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 자기의 길로 나아감으로써 우리 자신의 뜻을 세워 하나님과 그의 뜻에 겨루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죄의 악한 특성이다.
② 우리의 죄는 바로 우리의 질고이며 우리의 슬픔이다(4절).
③ 우리 주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우리를 죄의 결과로부터 구원하고자 세우심을 입으셨고 또 그임무를 수행하셨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킨 것은 그죄를 우리에게서 없애기 위함이다. 즉 우리가 복음의 은혜에 순종할경우 우리는 율법의 저주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곧 속죄제물)를 지실때 우리의 모든 죄는 그리스도에게 맡겨진 것이다. 이처럼 그는 무거운 죄의 짐에 눌려서 자기에게로 나오는 자들을 편하게 해줄수 있는 역량을 갖고계시다(참조. 시 40:6-12).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어느누구도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에게 지울 권세가 없다. 왜냐하면 그죄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범해졌고 또 그리스도는 아무 죄도 알지못하는 하나님 자신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게 놓여진 짐은 바로 '우리 무리의 죄악'이었다. 이는 그리스도안에 모든 사람을 구속할수 있는 많은 예물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예물은 스스로 배척하지 않는한 어느누구도 배척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그런데 그가 성부께 동의하셨을까? 물론 그는 동의하셨다. 이런질문을 하는 이유는 7절 말씀의 참뜻이 "그러이 강요되자 그가 응했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④ 그는 우리의 빚을 짊어지셔야 하기때문에 그형벌을 받으셨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4절).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우리의 슬픔까지도 당하셨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결코 심한 압박을 받지않도록 우리에게서 그죄를 거두어 가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우리의 죄는 그의 머리에 박힌 가시와 같고 그의 손과 발에 박힌 못과 같으며 그의 옆구리를 찌른 창과 같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의 죄악이 바로 그의 죽음을 초래한 원인이었다. 이것은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때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고한 8절 말씀과 동일한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⑤ 그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결과는 평화와 치유이다(5절).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엡 2:14).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통하여 우리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기때문에 우리를 편안케하고자 고난을 당하셨다. 이고난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치유를 받는다. 왜냐하면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죄는 위법행위를 나타내며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죽음의 선고를 받았다. 죄는 또한 하나의 질병이며 이것은 직접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사망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질병을 치유해주신다. 그는 채찍에 맞으심으로, 영혼에 이상이 생겨 발생된 우리의 타락을 극복케할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건강하게 해주는 하나님의 성령과 은혜를 값주고 사셨다. 이는 우리로 하나님을 섬기기에 적합케하기 위해서이다. 이리하여 죄는 더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않게되고 우리는 그병을 악화시키는 것에 대한 저항력을 갖게되었다.
⑥ 그에게 주어진 궁극적인 결과는 그의 부활이었다. 그는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셨고 우리의 의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다. 그는 부활함으로써 '다시 죽지 않으신다.' 즉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한다'(롬 6:9). 죽었던 그가 다시 사실뿐 아니라 영원히 사신다.

Ⅲ. 하나님의 뜻 53:10-12
앞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증거했다. 이제 본문에서 그는 그에 따른 영광을 예언하고 있다.
(1) 그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보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 보라.
1) 그는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고난에 복종하셨다(10절).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하셨은즉. 사람들은 그가 매우 큰죄를 범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는다고 생각했다(4절).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2) 그는 죄인들을 대신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물로 드렸다. 그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는 친히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위하여 왔다고 설명해주셨다(마 20:28). 우리는 우리대신 그를 대속물로 삼을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자신을 친히 대속물로 내주셨다.
3) 그는 자신을 우리의 죄의 삯으로 친히 내어주셨다(12절).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그는 물을 버리듯 자기의 영혼을 버리셨다. 그는 우리의 구속과 구원을 위하여 자기의 영혼을 버려야만 했기때문에 자기의 영혼을 전혀 소중하게 여기지않고 내어주셨다.
4) 그는 친히 죄인들이 받는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내어준 것은 죄인들을 위한 중재자가 되기 위함이었다(12절). 그는 '범죄자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다.' 즉 그는 행악자로 정죄를 받았을뿐 아니라 두명의 악명높은 범죄자와 함께 처형되었다. 그것도 마치 그가 세명가운데 가장 흉악한 죄인이기나 한것처럼 그들가운데 끼여 처형되었다. 실상 그는 일생동한 범죄자가운데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는 안식일을 범한 자, 술취한 자,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등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난을 당하는 중에도 범죄자들, 곧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다시말해서 그는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주옵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그들을 용서해주셨을뿐 아니라 그들외의 모든 다른 범죄자들까지도 용서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그의 기도는 보복이 아닌 긍휼을 구하기 위하여 부르짖는 그의 피맺힌 탄원이었다.
(2) 그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이 약속되고 있다.
1) 그는 그를 섬기고 그의 이름을 전할 시를 얻을 것이다(시 22:30). 참된 신자가 바로 그리스도의 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렇게하도록 그들을 그에게 주셨다(요 17:6).
2) 그는 살아서 그의 씨를 볼것이다. 그리고 그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들도 살게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3) 그는 몸소 이가족의 일을 계속 돌볼 것이다. 그날은 길것이요(10절). 그리스도는 그의 가족의 보호를 어떤 자에게도 맡기지않을 것이다. '그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할 것이다'(사 9:7). 이는 그가 영원히 사시기 때문이다.
4) 그의 큰과업은 기대한만큼 응답을 받을 것이다.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하나님의 목적은 성취될 것이며 일점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5) 그는 그속에서 직접 풍성한 만족을 얻을 것이다(11절).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그는 그것을 미리볼 것이다(그것은 그렇게 해석될수 있다). 그는 자기의 고난을 예상하면서 그결실도 기대할 것이다. 그는 불쌍한 죄인들이 변화를 받고 구원을 얻게될때 그결실을 보게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를 세우는 것과 그에게 주어진 모든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을 통하여 그의 영혼의 수고에 대한 복된 결실을 보고 계시며 또 보게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다음의 사실들을 주목해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망으로부터 우리가 얻는 큰특권은 죄로부터 의롭게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멸망시킬수 있는 죄로부터 면제를 받았고 또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값을 주고 우리의 의를 구해 주셨다. 즉 그는 우리를 위하여 중재를 하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성령으로하여금 우리안에서 증거케함으로써 우리의 의를 구해주셨다. 우리가 의로워지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 다시말해서 그리스도와 은혜의 언약에 동의하는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믿음이란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참된 믿음도 있을수 없다. 우리를 의롭게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믿음은 하나님의 종인 동시에 우리의 보증인이기도 하신 그와 관련되어 있다. 그가 하나님의 종과 우리의 보증인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 위함이다. 그는 스스로 의로우신 분이며 우리가 받은 모든 의도 그의 의에 속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그자신이 짐으로써 우리로하여금 그짐에 깔리지않도록 우리를 구해주셨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분명 성자 하나님에게 승리를 안겨주실 것이다. "내가 그를 존귀한 자 가운데 두고 그를 매우 높이며 그에게 모든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을 줄것이다." 그리스도는 정복을 통하여 영광을 누릴 것이다. 그는 군주와 권세자, 죄와 사단, 사망과 지옥, 세상과 육신을 정복하셨다. 이것들의 세력은 매우 강하지만 그는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그들의 이권을 빼앗아버리셨다. 그리고 그는 그에게 인도될 수많은 자발적이고 신실하며 충성스러운 그의 신하들에게 그전리품을 나누어 주신다. 그러므로 12절의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하리라'한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많은 자들을 그에게 주며 그는 많은 자들을 전리품으로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열방을 유업으로 주며' 그의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게' 하실 것이다(시 2:8).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로잡은 자를 끌고'(시 68:18) 오셨을때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선물을 사람들대신 받으셨기 때문이다.

# 핵심
53:1-12
인류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사 처절한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메시아의 희생을 예언한다.
속건제물이 되신 그리스도(53:10)
속건제는 원래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성물(聖物)을 더럽혔을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다(레 5:14-6:7). 이제사는 단순한 배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벌금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같은 점에서 그리스도께서 속건제물이 되신다는 것은 그의 죽음에 인간의 죄값을 보상하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속건제물 되심에 대해서만 언급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속죄제물과 화목제물로도 드려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화해와 용서를 이루셨고 구원사역의 절정을 이루셨다.

# 묵상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 ( 53:4 )
이는 우리의 죄와 그죄에서 비롯된 형벌을 뜻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반역죄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우리의 죄를 대신해 형벌받으셨습니다.
고난당하는 여호와의 종 ( 53:5, 6 )
여호와의 종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으로인해 고초와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그가 우리의 질고를 대신 지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었습니다. 바로 여호와의 종은 우리의 죄를 인한 희생제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대제사장 가야바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주장하면서 한사람이 죽음으로 온백성을 구한다고 했습니다(요18:14).
속건제물로 드리는 그영혼 ( 53:10 )
속건제는 속죄와 배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제사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죄에 대한 속죄와 그죄값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대속적 죽음에 의해서 해결되었습니다. 본문은 바로 이사건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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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바벨론에서의 구원을 약속하심 52:1-6
(1)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들의 구원을 인하여 기운을 낼것을 말하고 있다(1,2절). "너희는 절망의 잠에서 깨어나라. 기운을 차리고 자신과 서로를 격려하라. 너희는 불신의 잠에서 깨어서 너희위를 쳐다보고 너희주위를 둘러보라. 그리고 그약속들을 들여다보고 너희를 위해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대한 일들에 대하여 기대를 가지라. 너희는 무지의 잠을 깨라."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확신을 주신다.
1) 그들은 포로생활을 통하여 개혁될 것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1절). 그들의 우상숭배하는 관습이 더이상 도입되지 않거나 아니면 적어도 정착하지 못하게 될것이다. 이와같이 복음의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피와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하게 되었으며 참으로 거룩한 도성이 되었다.
2) 그들이 포로상태에서 구원을 받고, 다시는 침략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 대항하여 옴이 없을 것이니라"(본문이 이렇게 해석되기도 함).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진다면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막아서 접근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스스로를 더럽힌다면 안티오커스가 그들의 성전을 더럽히고 로마인들이 성전을 파괴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한동안 평화를 지속할 것이다. "너희는 기뻐할 준비를 하라."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는 곡하는 상복을 입고 나타나지 말라. 얼굴표정을 새롭게 하고, 웃는 얼굴을 하라. 이제부터는 기쁘고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하리라. 너희는 해방될 준비를 하라. 즉 너희의 거만한 압제자들이 너희를 티끌속에서 짓밟거나(51:23), 아니면 너희가 스스로 슬픔에 못이겨 티끌속에 딩굴었지만, 이제 너희는 티끌을 떨어버릴지니라."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2절). "오 예루살렘아! 모든 노예표식을 없애버려라."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즉 "네 자신의 자유를 선언하라." 복음은 공포에 묶인 자들에게 자유를 선언하고 자기들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그들의 임무라고 규정한다. 과거에는 약하고 죄의 무거운 짐에 눌려있었지만 이제 그리스도안에서 해방을 찾은 자들은 그속박에서 벗어날수 있다. 왜냐하면 '아들이 저희를 자유케하면 저희가 참으로 자유하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일어서신다.
1) 그들을 압제하던 갈대아 사람들도 산헤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10:6,7).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즉 "나와 너희들이 그일로 인하여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도다"(3절). 바벨론 사람들은 그들로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비난하고 욕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를 그토록 오랫동안 거저 가지고 있었으나 결국 너희를 거저 반환할 것이라. 약속된대로(45:13) 너희가 돈없이 속량되리라."
2) 그들은 전에도 유사한 재난속에 빠진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또다시 이 압제자들의 손에 들어가게 된것은 애석한 일이었다(4절). 내 백성이 이왕에 애굽에 내려가서. 즉 이스라엘 백성은 서로의 우호관계로 그곳에 정착하고자 내려갔으나 애굽 사람들은 그들을 종으로 삼고 혹독하게 통치하였다. 그들은 그때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리라고 생각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앗수르 사람들은 공연히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였으며 열지파를 포로로 잡아갔다. 그후에 곧 다른 앗수르왕 산헤립이 스스로 유다의 모든 성곽과 도성의 주인이 되었다. 바벨론 사람들은 자기들의 왕이 앗수르의 한분파였기에 어떤면으로는 앗수르 사람들이라고 불릴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들이 이유없이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한 것이다.
3) 하나님의 백성이 침해를 받았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되었다(5절). 내 백성이 까닭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포로된 자들은 너무 기가 죽어서 하나님을 찬양할수 없었다. 옛애굽 사람들이 그들로 한숨짓게 만들었던 것처럼(출 2:23).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었다'("그들로 부르짖게 만들었으며" :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문맥에 맞다-역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애굽에서 행하셨던 것처럼(출 3:7,8) 그들을 구하러 내려오셨다. 열방들은 하나님의 백성보다 자기들이 더강하다는 이유로, 하나님보다 자기들이 더강하다고 하나님을 모독하면서 자기들을 내세웠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건질 능력이 없는양 기고만장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 백성의 압제자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찬양하지도 않고 또 내 백성으로 찬양하게 하지도 않기때문에 내가 그들을 구하러 내려갈 것이라."
4)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건지심으로 자기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신다(6절). "내 이름이 이와같이 욕을 당하였으므로 내가 일어서리라."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즉 "내 이름이 여호와임을 알리라."

Ⅱ. 해방으로인한 기쁨 52:7-12
유대 백성을 바벨론으로부터 건지심과 7절 내용의 복음전파에 대한 적용(바울사도에 의한, 롬 10:15)은 그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로인한 인류의 구속에 관한 하나의 모형과 예표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암시해 준다.
(1) 여기서 그것을 기쁨으로 환영받아야할 하나님의 큰축복으로 말해지고 있다.
1) 그들에게 해방의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이 예루살렘 주위에 둘러선 산들을 넘어올때 그들은 성대한 환영을 받을 것이다(7절). 그들은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소수에게 형제들이 곧 그들에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말해주기위해 예루살렘으로 직접 갔거나 아니면 사자들을 보낸 유대인들중 어떤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시온에게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고 말한 것은 하나의 증거로서 선포되어진 것이었다. 우리는 이말을 복음전파에 적용시켜야 한다. 이것은 평화와 구원의 선포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진실로 기쁜 소식이며, 우리의 영적 원수들에 대한 승리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영적 속박에서부터 해방됨을 선포해주는 좋은 소식인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맨처음 이소식을 가져오셨으며(눅 4:18;히 2:3), 본문도 그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갈보리 산위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2) 시온의 파숫꾼들이 기뻐할 것이다(8절). 파숫꾼들은(62:6) 하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세상에서 찬송이 되게 하실 그때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며 하나님께 계속해서 기도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성곽위에 세우신 사람들이다. 그들은 망대위에 서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을 기다렸다(합 2:1). 따라서 좋은 소식이 왔을때 그들이 맨먼저 그것을 받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 그들의 찬양에 동참하도록 하기위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할 것이다.' 그들은 예언과 사실, 약속과 성취사이의 정확한 일치를 보게될 것이다. 즉 그들이 눈과 눈을 마주대하고 보듯이 하나님의 약속들이 하나하나 성취되는 것을 볼것이다. 그리고 한분 하나님께서 약속을 말씀하시고 그약속에 대한 성취를 이루신 사실에 대하여 만족하게 여길 것이다. 앞절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또한 복음시대에 적용하면, 이것은 복음사역자들 위에 성령을 부어주심에 관한 약속이라고 할수 있다. 이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서 그들을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신다. 따라서 그들은 의견이 완전히 일치될 것이며 보편적인 구원에 관한 위대한 일에 대해 하나가 될것이다. 그때에 시온의 황폐한 곳은 기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놀라온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9절).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예루살렘의 구속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이다(눅 2:38). 하나님은 이것에 대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10절).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즉 그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과시하셨다.
(2) 자유가 선포될때, 하나님의 백성은 가능한한 빨리 서둘러서 바벨론에서 나와야했다.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11절). 즉 "떠나라, 바벨론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곳이 아니라"(스 1:5). 그리고 이것은 아직까지 죄와 사단의 속박가운데 있는 모든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들에게 선포해 놓으신 그자유를 활용하라고 하시는 부르심이기도 하다. "너희는 주의해서 바벨론의 오염은 어떤 것이라도 너희에게서 떨어버리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너희는 너희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지하라"(12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그들은 적당하게 서둘러야 하였으며, 마치 추격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소심하고 믿음이 없이 서둘러서는 안되었다. 고레스는 그들을 명예롭게 석방시킬 것이며, 그들은 명예롭게 귀환하고 숨어서 빠져나오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앞에 행하시며. 즉 하나님께서 그들 선두를 인도하시고 후미를 보호하실 것이다.

Ⅲ.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서술 52:13-15
본문에서 시작되어서 다음장 끝까지 이어지는 이 예언은 이 이상 분명할수 없을만큼 명백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유대인들 중에는 이것을 예레미야에 관한 예언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약간 있었지만, 고대 유대인들은 이것을 메시야에 관한 예언으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전도자 빌립은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이내용은 다른 사람아닌 바로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한 것이라는 사실을 논쟁의 여지가 없게 만들어 놓았다(행 8:34,35).
(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 그리스도를 임명하셨음을 인정하신다. 그는 그일에 임명되었다. "그는 '내 종'이라 내가 그를 고용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붙들리라." 그리스도는 그의 일에 있어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고 아버지의 나라의 유익을 위해 봉사하였다. 내 종이 형통하리니(혹은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리니). 이는 '지혜와 총명의 신이 그위에 강림할' 것이기 때문이다(11:2).
(2) 하나님께서는 그의 비하와 존귀에 관하여 간단하게 보여주신다. 그의 근심때문에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다.' 그가 채찍질당하고 뺨을 맞으며 가시관을 썼을때, '그수치와 침뱉음을 피하려고 얼굴을 돌리지 않았을때,'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다.' 그는 '간고의 사람'이었다. 그의 간고는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낮추었기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높이시고 높이셨던가! 이것을 표현하는데 세가지 단어가 사용되었다(13절). 받들어 높이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즉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며, 사람들이 그를 찬양할 것이고, 또한 그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가장 높은 자보다 더높이, 하늘보다 더높이 되실 것이다. 열방이 그를 인하여 더 낮게될 것이다. 이는 '그가 그들에게 피를 뿌렸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안에서 한샘이 열렸기때문에(슥 13:1), 뿌려진 피가 그들의 양심을 깨우쳐 그들을 정결케할 것이다. 그는 이일을 세례를 통하여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도들을 보내셔서 모든 민족들에게 세례를 주고 물을 뿌림으로써 제자를 삼게 하셨을때 이약속이 성취되었다.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15절). 즉 그들은 이전에 하던 식으로 그리스도를 반대하여 그들의 입을 열지못할 것이다. 그들은 겸손과 존경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말씀과 율법을 받게될 것이다.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것이요. 복음은 열왕과 열방들의 경의를 불러일으킬 일들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발산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또한 깨닫게될 것인데, 이것은 이전에는 그들에게 전파되지도 또 그들이 듣지도 못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육적인 유대인들처럼 자신들의 환상에 따라 메시야를 찾는 자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셨으며, 약속된대로 메시야를 찾는 자들에게 그 기대이상으로 충족시켜 주셨다.

# 핵심
52:1-15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거두어질때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되어 영화롭게 되는,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대목이다.
값없이 팔린 이스라엘(52:3)
하나님이 선민의 불의를 징계하실 도구로 사용하기위해 바벨론에게 권세를 허락하셨지만, 바벨론은 스스로의 정복욕에 사로잡혀 그들을 지나치게 압박하였다. 유다를 정복한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와 마찬가지로 잠시 권세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망각하고, 그권세를 남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폭력은 필요이상의 가혹한 횡포이며, 약소민족을 괴롭히는 제국의 교만이며, 궁극적으로는 선민을 멸절시켜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무산시키려는 사단의 궤계가 그배후에서 작용한 것이다(14:12-14).

# 묵상
목의 줄을 스스로 풀 시온 ( 52:2 )
이말은 시온 예루살렘 특히 포로들을 염두에 둔 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자유케 될것임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여호와의 구원이 가까우니 힘을 얻으라고 격려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속량된 방법 ( 52:3 )
이스라엘은 값없이 팔린 것처럼, 돈없이 속량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인해서 우리는 값없이 거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돈없이, 값없이 얻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값싼’ 것이 아니므로, 은혜받은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생활의 열매가 요구됩니다.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는 말씀의 의미 ( 52:8 )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신다’고 하는 것은 포로의 귀환과 예루살렘의 재건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눈이 마주본다’는 것은 그토록 오랫동안 기대하고 고대하던, 그러나 현실로는 이루어질것 같지않던 일들이 이제는 눈으로 볼수 있는 현실이 된다고 하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나라의 도래 곧 이스라엘의 해방이 눈으로 볼수 있는 현실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10절).
종의 형통함 ( 52:13 )
KJV에 의하면 ‘형통’이란 ‘신중하게 처신하다’, ‘번영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는 ‘뜻을 이루다’ 곧 ‘구원사명을 완수하다’라는 뜻입니다. 형통함의 결과로 종은 높이 들리고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사람과 같이 되었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존귀하게 하셨습니다(빌2:5-11). 낮추는 자를 높여주시는 하나님의 법칙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종의 모습 ( 52:14, 15 )
그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놀랄 지경이었습니다. 종의 이러한 모습은 열방중에서도 지극히 작고 보잘것없는 이스라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때문에 그종의 모습이 비웃음을 받을정도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그종의 사역으로인해서 열방이 놀래고 입을 다문다고 하는 것은 그가 존귀해질 것임을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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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성도들에게 믿을 것을 권고함 51:1-3
하나님의 백성은 '의를 좇는' 사람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을 찾을수 있는 것은 오직 의의 길뿐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그들에게 그들의 근본과 처음에 그들이 미약했던 모습을 돌아보도록 지시하신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를 생각하여 보라 "갈대아 우르의 우상을 숭배하는 가문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것을 생각해 보라. 12지파의 두령과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때의 그 노예신분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한민족으로 조성하실때 '너희를 파낸 우묵한(진흙같은) 구덩이를 생각해 보라.' 너희를 '떠낸' 그바위는 얼마나 단단하며 감동받기 힘들며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는 얼마나 초라하였는가!"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 마음은 자신에 대한 낮은 생각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높은 생각으로 가득차게될 것이다. "너희 조상(믿는 모든 자와 그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의를 좇는 모든 자의 조상, 롬 4:11)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너희가 잘 행한다면 너희는 모두 그의 딸이다)를 생각하여 보라. 그가 혈혈단신으로 부름을 받아 어떻게 복을 받고 창성케 되었는지 생각하라. 그리고 여기에서 용기를 얻어 너희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라.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함으로 무엇을 얻었는지 알아보아라. 그리고 그에게서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을 좇는 본을 받아라." 본문은 그들에게 그들의 현재 눈물은 종국에는 기쁨으로 끝나리라는 확신을 가져다준다(3절).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위로하실 시간과 방법을 찾아내실 것이다. 교회의 최대의 위로는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섬길수 있게될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동산같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시며 그들에게 기뻐하는 마음을 주실 것이다. '그안에서 의의 열매와 함께 기쁨과 즐거움이 있으리라.' 이는 사람이 거룩하여지면 질수록 더욱 선을 행하며 더욱 기쁨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Ⅱ. 참된 종교가 퍼질 것을 말씀하심 51:4-8
하나님의 의와 구원의 영속성.
(1) 이 위로는 "내가 나를 위해 따로 떼어놓았고 나를 인정하고 또한 내가 인정하는 '내 백성'과 '내 나라'에 속하는" 것이다. 그들은 '의를 아는' 백성이며, 진리와 거짓 선과 악에 대한 옳은 판단을 내릴수 있는 백성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안에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으므로, 선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만큼 선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 의를 알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율법을 가진 자라도 큰환난에 빠지며 비방과 멸시를 당할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2) 하나님의 백성에게 속한 위로가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1)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에 전파될 것이다. 이는 '율법'이 즉 복음의 율법, 그리스도의 율법, 믿음의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2:3). 이것은 장차 세상을 다스릴 그자유의 율법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유익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 곧 '만민의 빛'을 위하여 세상에 뿌리를 깊이 박을 것이다.
2) 이율법은 사람의 아들들에게 예비된 길을 열어줄 것이다(5절). 이는 그들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고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의가 없으면 구원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가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하나님의 구원이 있을 것이다.
3) 이 구원과 공의는 곧 나타날 것이다. 내 의가 가깝고. 이것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가까이 있다(롬 10:8).
4) 이복음의 의와 구원은 유대 나라에 한정되지 않고 이방에까지 확장될 것이다.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하나님의 입의 심판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자들은 그의 팔의 심판으로 멸망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와같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되는 반면, 또다른 사람들과 섬의 거민들은 그를 앙망하며 그의 복음과 복음의 위로는 물론이거니와 복음의 계명까지 환영하게 될것이다. 많은 무리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더해지리라는 것이 그들의 한가지 위로였다. 그들이 '내 팔' 곧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여호와의 팔'(53:1)을 의지하리라는 말씀이 추가되어 있다.
5) 이 의와 구원이 영원히 있을 것이다(8절). 이것은 땅위의 모든 나라에 퍼질 것이며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세대에까지 지속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며' 두루마리같이 말릴 것이다. 땅은 '옷같이 헤어질 것이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지나가고 없을때 곧 모든 육체와 육체의 영광이 풀같이 시들어 버렸을때에도 '여호와의 말씀은 영영히 있을'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그리스도의 의와 구원에 묶어둔 사람들은 세상의 날들이 끝나게 될때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게될 것이다.
(3) "하나님의 의와 구원이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면 너희로 시온의 노래를 부르도록 명하며, '너희 하나님이 지금 어디있느냐'고 경멸조로 묻는 자들의 비방을 두려워말며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리스도때문에 받는 심한 말 한마디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해 거의 아무것도 참을수 없는 사람이다.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그들은 아주 잠잠해질 것이다(8절).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헤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50:9). 그들은 양털같이(혹은 모직옷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그들의 비방의 거짓은 드러나고 진리가 승리를 거둘 것이다. 구름이 태양을 가릴수는 있어도 태양의 진행을 결코 방해하지는 못한다.

Ⅲ. 하나님 백성의 기도와 위로 51:9-16
(1)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일해주시기를 바라는 기도 :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9절). 여호와의 팔은 그리스도이시다. 혹은 하나님 자신의 일어나심이다(시 44:23).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려고 팔을 펴시는 것을 "여호와의 팔이 깨신다"는 것으로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을 필요로하는 분이 아니시며 어떤 자극을 받으실 필요가 있는 분도 아니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장차 하나님께 영광이 될만한 이와같은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나심을 겸손하게 호소할수 있는 여지를 우리에게 남겨주신다. 교회의 현재 형편은 좋지 못하다. 즉 원수들은 많고 강력한 반면 교회들은 수가 적고 유약하다. 그래서 교회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순전히 하나님의 팔의 능력에만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2) 이 기도를 강화하는 호소.
1) 그들은 그들의 전례들 즉 조상들의 경험들 곧 조상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위대한 일들을 제시하였다. "여호와의 팔이여 우리를 위해 나타나소서. 여호와의 팔은 애굽 사람들에게 이적을 행하셨나이다. 무시무시한 재앙을 차례로 내리셔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인 바로를 '찌르셨나이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적을 행하셨나이다. '바다를 말리시고 길을 내어 구속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셨나이다'(10절)." 과거의 경험은 기도에 있어서 좋은 제목이 된다. '주께서 하셨나이다. 혹은 주께서 아니하시겠나이까'(시 85:106).
2) 그들은 약속들을 제시하였다(11절).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다시말하면 이것은 35:10절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이렇게 하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보충설명할수 있겠다.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죄인들이 죄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자녀의 영광된 자유로 옮겨질때, 그들은 새장에서 풀려난 새와 같이 노래를 부르며 나아올 것이다. 신자들의 영혼은 육체의 감옥에서 구속함을 받을때 노래하면서 하늘의 시온으로 올라간다. 우리를 위하여 마지막에 이와같은 기쁨을 예정해두신 그분께서 우리가 곤경에 처해있을때 우리의 상황이 필요로하는 이와같은 구원을 이루시려고 하지 않으시겠는가?
(3) 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응답(12절) :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위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위로로 응답하신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시는 권능으로' 즉시 응답치 않으신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의 말씀'으로 응답하신 것처럼(슥 1:13) 우리에게 응답하신다면, 우리는 감사로 넘칠수 있어야 한다. 그의 백성을 위로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라. 그는 이일을 자기 손으로 직접 하신다. 나여늘 나여늘. 곧 "내가 내가 이일을 하리라."
1) 하나님은 겁쟁이들을 꾸짖으심으로 위로하신다.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두려워하며...두러워하느냐(12,13절).
① 그들의 두려움의 불합리함 : 두려움을 허용하는 것은 우리의 수치이다. 너희는 어떠한 자이기에...두려워하느냐. 이처럼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죽을 사람을 풀같이 될 사람을 말라서 발에 밟히고 먹혀질 인자를' 두려워하느냐." 우리는 모든 사람을 죽을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자들도 약하고 죽은 존재로 볼수 있어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들이 죽을 사람 곧 오늘 여기 있다가 내일은 없어질 그런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생각해보라. '항상 종일' 두려워하는 것은(13절) 불합리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위험은 항상 있는 것이며 겁나는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것은 신중한 자세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항상 불안해하며 나무 잎사귀가 흔들릴때마다 놀라는 것은 우리를 일평생동안 '매여 종노릇'하게 만든다(히2:3). 필요이상으로 두려워하는 것도 불합리하다.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있느냐. "그것은 순간에 사라지며 네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끝나버리니라." '애굽왕 바로는 시끄러운 소리에 불과하며' 바벨론왕 역시 별다를 것이 없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던 성난 압제자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없다. 그러므로 이들도 그렇게 될것이다.
② 그두려움의 불신앙 : 너는...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그는 온세상의 조성자이시니라." 사람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두려움은 하나님을 잊었다는 무언의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람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안절부절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압제자들이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한다는 식의 생각을 갖는다면 이미 우리는 과거에 가진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경험과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수많은 간섭을 잊어버린 것이며, 하나님의 산에 있는 자비의 기념비, 우리에 대한 여호와이레를 망각한 것이다.
2) 하나님은 속박가운데 있던 자들을 위로하신다(14,15절).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그리고 "쫓겨났던 자기 나라로 돌아가리라." 그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구덩이'에서 죽지 아니할까(죄수로 죽지 않을까)하는 것과 어떻게 하면 '식량이 핍절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들중의 어떤 사람들은 이제 이것이 자신들의 과오였음을 알게되었다. 그들은 시간이 지체됨을 견디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릴수 없었다. 즉 그들은 즉시 풀려나지 않는다면 필경 구덩이 속에서 죽고말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옥에 갇혔을때 그것을 자신들의 찬양할 기회로 삼았다. 따라서 옥문이 활짝 열렸을때 그들은 지체하지 않았던 것이다. 곧 이어서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할수 없었던 일을 그들을 위해 하시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위협적인 폭풍을 잔잔하게 하시며 그들을 포구로 안전하게 데려가실 길을 모색하실 것이다.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과거에도 오랫동안 알고있었던 하나님의 이름이었다.
3)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백성을 위로하시는데, 이들은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알린 말씀을 의지한 자들이다. 선지자들이 말한 그 구원이 즉시 오지 않았거나 혹은 그들의 기대에 맞게 오지 않았을때, 그들은 낙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본문에 나와있는 것과 같이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에게 말씀하신 내용으로 격려를 받았다(16절).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이것은 내가 하늘나라를 세울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다(12절). 하나님은 이일을 그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의 복음을 통해서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이 말한 내용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하라고 위탁하신 것임을 밝히신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으므로 너와 네 말을 받는 자는 나를 받는 것이라.' 성령께서 그들이 말할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계시하셨다(벧후 1:21;고전 2:13).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것은 선지자들뿐만 아니라 기독교, 즉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특별하신 보호를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둔것은 한나라가 한성읍을 건설하기 위함이 아니고, 새창조가 될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기' 위한 것이라." 한걸음 더나아가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이루어질 위대한 일과 이땅에 그의 거룩한 신앙을 세우는 것에 대한 언급으로 간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만드셨다(히 1:2).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시며, 다시 하늘을 조성하시고 땅의 기초를 놓으실 것이다. 비록 죄가 온피조세계를 무질서속으로 빠뜨렸다해도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죄를 지심으로 모든 것의 질서를 다시 세우셨다.

Ⅳ. 유대 민족이 해방될 것을 말씀하심 51:17-23
이것은 죄의 잠에서 깨라는 부르심(물론 그들이 구원을 준비하기위해 이것도 필요하지만)이라기보다 절망의 혼수상태에서 깨라는 부르심이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혔을때, 그들의 환난의 고통이 너무나 컸기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위로가 될만한 것을 생각할 심적 여유조차 없었다.
(1)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깊은 비탄속에 있었다.
1)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적아래 놓여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분노의 잔'을 예루살렘의 손에 주셨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고 진노의 쓴열매를 맛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분노의 잔은 그잔을 받게되는 자들에게 '공포의 잔'이 될것이다. 성경은 '실로 그(그잔을) 찌끼까지라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시 75:8)라고 말하고 있다. 간음의 잔이 있은 곳은 어디에나 예루살렘이 우상을 숭배하였을때 분노의 잔이 그의 손에 있었던 것처럼, 조만간에 분노의 잔이 있게될 것이다.
2) 재난가운데 있는 예루살렘을 마땅히 도와주어야할 자들이 도리어 저를 실망시켰다(18절). 예루살렘은 비틀거리고 매우 불안정하였다. 그는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으며, 더욱이 이렇게 불행한 상황에서 무엇을 말하며 또 해야할지 알지 못했다. 그가 낳아서 기른 모든 아들중에는 그를 인도할 자가 없었고, 아무도 그를 고난가운데서 도와주기위해 손을 빌려주지 않았으며 위로의 말을 해주지도 않았다. 이 두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19절). 예루살렘의 절망과 파멸을 완전하게 하기위해 두가지 일, 즉 '기근과 칼'이 따라왔다. 이로인하여 그성읍은 황폐화되었고 주민들은 살해당했다. 예루살렘에게 임한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일'(47:9), 이 두가지는 후에 바벨론에게 닥칠 재난과 동일한 것으로 위로가 필요한 가련한 상황이었다. "네가 환난가운데서도 고집불통이니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그를 위로할 자들이 오히려 고통주는 자가 되었다(20절).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의 재산을 간수할 인내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난에 답답하여서 자신들을 땅바닥에 던지고, '온거리 모퉁이에 누웠다.' 그들은 거기에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 누워서' 어떻게 해보기위해 안달하고 소리지르며 바둥거렸지만, 자신들의 감정과 불만으로 사태만 더욱 악화될 뿐이었다. 고집세고 급한 성질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그들과 싸우시는지 결코 묻지않고 다만 그들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짜증만 있을 뿐이다.
(2) 본문은 예루살렘의 고통이 결국에는 끝이나며, 이것이 예루살렘의 핍박자들에게로 옮겨가리라는 약속을 보여주고 있다(21,23절). "그러므로 너 곤고한 자여 이말을 들으라. 네 주 여호와 네 하나님(너를 도우실수 있는 여호와)은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 곧 너와 언약을 맺고 너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시작하신 그는 그백성을 신원하시는(그백성의 소송을 변호하시는) 자이시며 자기 백성을 대적하는 일을 자신에게 대적하는 것으로 간주하시는 하나님이시라." 그백성의 소송은 하나님 자신의 소송이며, 또한 그가 그사건을 맡으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변호하실 것이다. "내가 나의 분노의 잔, 곧 쓴잔을 내 손에서 거두어서 네게서 떠나가게 하리라." 이제 그들의 핍박자와 압제자가 그들이 마셨던 그잔을 마시게될 것이다(23절). 여기에서 신약의 바벨론은 옛압제자 바벨론의 전철을 답습하면서 사람들의 양심을 압제하며 사람들을 고문하고 죄된 복종을 강요하였다. 바벨론의 상황은 예루살렘에 못지않게 될것이다. 다니엘의 박해자는 다니엘의 사자굴에 던져질 것이다.

# 핵심
51:1-8
여전히 외세의 위협을 받으며 절망의 자리에서 탄식하는 백성에게 구원의 하나님을 청종하고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라고 권하는 말씀. 하나님은 만민을 심판하실 것이며, 구원받은 자들은 영원토록 안전하게 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 묵상
여호와에게서 발한 율법 ( 51:4 )
여기서의 율법은 ‘계시된 교훈’ 혹은 ‘구원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는 구원과 공의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신 여호와로 말미암아 구원은 시작되고 또 반드시 완성됩니다(계1:8).
사람의 훼방과 비방 ( 51:7 )
이는 약소 민족인 이스라엘을 모독하고 비방한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의 죄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습2:8). 그들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뻐하고 박수를 쳤던 모압과 에돔입니다. 또한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사는 사람들을 비웃는 악인들을 가리킵니다.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 51:9 )
하나님께 대하여 신인동형론(神人同論)적인 표현이 사용된 이구절은 선지자의 기도문입니다. 여호와의 팔은 곧 여호와의 능하신 오른팔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구원사적 활동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여호와는 졸거나 주무시지도 않는 분이시므로(시121:4), 이표현은 여호와의 도움을 부르짖는 소리로 이해될수 있습니다.
풀같이 될 인자 ( 51:12 )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예비하는 학대자들로, 풀같이 금방 시들고 말라버릴 인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인자는 전능하며 우리의 구원자되신 하나님과 비교하여 연약하고 허무한 존재인 인간을 가리킬때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에스겔서, 다니엘서 그리고 신약성경에서처럼 메시야의 인성을 가리킬때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당할 두가지 일 ( 51:19 )
이방의 침입으로인한 멸망과 기근으로인한 국토의 황폐화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사야의 이러한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아직도 하나님밖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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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대의 죄가 불행을 초래함 50:1-3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고백한 자들은 심하게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될때 하나님에 대하여 불평하기 쉽다. 그러나 본문에 그들의 불평에 대한 응답이 나와있다.
(1) 하나님편에서 먼저 분쟁을 일으켰다는 증거를 그들에게 제시하라는 요구가 나타나있다(1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남편이 되셨다. 그당시 아내가 싫증나면, 그아내를 내어버릴수 있는 권한이 남편에게 부여되어 있었다(신 24:1;마 19:7).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그렇게 대우하셨다고 말할수 없었다. 지금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떨어져있는 것이나, 많은 날동안 그들이 에봇이나 제단, 희생제사 없이 지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누구의 허물이었는가?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버지가 되셨다. 그당시 아버지는 빚을 청산하기 위해 자녀들을 채주에게 노예로 팔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팔렸고 그후에는 로마에게 팔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빚을 갚기위해 그들을 파셨는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노예로 삼은 자들에게 빚을 지지 않으셨다.
(2) 그들의 멸망의 장본인은 그들 자신이라는 고발이 나타나있다.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즉 "너희는 죄악의 즐거움과 너희 자신들의 비열한 욕망의 만족을 인하여 팔렸느니라. 너희는 악을 행하기위해 자신을 팔았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원수들의 손에 파신 것은 정당한 것이니라"(대하 12:5,8).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을 그들의 우상숭배 때문으로, 결국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이르렀다. 이런 것이 그들로하여금 팔림을 당하게 되고 내어침을 당하게 한 죄악들이었다.
(3) 이요구와 고소에 대한 확증이 나타나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아오셔서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셨다. 즉 그들의 환난을 방지하고 그환난에서 그들을 건져내시기위해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업수이 여겼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그것을 내 탓으로 돌리느냐? 그러면 어디 말해보아라."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쩜이뇨(2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오셨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한 경고를 조금이라도 존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셨다'(대하 36:16,17).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그에게 보내셨다. 그러나 그가 '자기 땅에 오메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알려고하지 않았기때문에 평화에 속한 일들을 알지못하였다. 이 죄악때문에 그들은 내어침을 당하고 그들의 집은 황폐한채로 남게되었다(마 21:41;23:37,38;눅 19:41,42).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안에 능력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연유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전능하셔서 큰사망으로부터라도 그들을 회복시키실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그리스도안에 능력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연유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끝까지 구원하실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이사람이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거늘 능히 우리를 구원할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손이 짧으냐, 혹은 연약하냐?" 전능자에게 한계가 있을수 있는가? 위대한 구원자가 되신 그가 구원할수 없겠는가? 우리 주님께서 때때로 믿음의 능력에 관하여 하신 말씀들 곧 '믿음은 산들도 옮기고, 무화과나무를 바다에 심게도 한다'는 것도 이것과 다를바 없는 것이다. 그들의 믿음이 그같은 일들을 행할수 있었다면, 의심할 것도 없이 자신들을 구원할수도 있을 것이다.

Ⅱ. 메시야의 사역 50:4-9
자신이 구원하실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또한 자신이 그렇게하시기를 원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가 자신에 관한 어떤것 즉 역경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로서 자신의 사역을 계속 수행하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격려하고 또 힘을 주시리라는 것을 의심치 아니하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본문을 생각할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다윗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자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1) 훌륭한 설교자 : 이사야는 선지자로서 자질을 갖춘 자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선지자들보다 뛰어나게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전하게 되기위해 다음의 자격을 갖추었다.
1) 그는 어떤 교훈을 전할 것이며 또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하는 것을 아는 '학자의 혀'를 가졌다(4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학자의 혀를 주셨는데 이것은 약한 자들과 죄의 무거운 짐에 눌리는 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마 11:28). 고통당하는 양심들을 위로하며 불쌍한 영혼들의 갖가지 상황에 대하여 적절하고 명확하게 말할줄 아는 사역자의 최선의 지식이 무엇인지 살펴보라. 이렇게 하는것은 하나님의 은사이다.
2) 그는 교훈을 받는 학자의 귀를 가졌다. 선지자에게는 학자의 혀만큼이나 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정확하게 말씀을 말하기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을 주의깊게 들어야하기 때문이다(겔 3:17). 먼저 학생이 되지않고서는 결코 선생이 될수 없다. 그리스도의 사도들도 처음에는 제자들이었다. 학자처럼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는 우리가 본시 잘졸고 소홀히 들으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침마다' 깨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아침 시간은 우리의 영혼이 가장 활기를 갖는 시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적절한 시간이라고 할수 있다. 모든 백성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갔다(눅 21:38). 그리스도께서는 아마도 아침에 가르치셨던것 같다.
(2) 참고 고난당하는 자(5,6절) : 약한 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하도록 임명되는 자에게는 해야하는 어려운 일과 겪어야되는 어려운 고난이 있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그가 어려움과 난관을 예견하였을지라도 즉 비록 종으로서 고생을 하고 끊임없이 섬겨야한다는 것을 예견하셨을지라도, 그리고 아주 천한 자리에까지 자신을 낮추셔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망치거나 회피하거나 절망하지 않으셨다. 그는 자기를 부인하고 복종하셨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이것은 아주 심한 고통과 모욕이었다.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이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당하셨는데 이는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자신의 의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3) 용기있는 용사(7-9절) : 구세주는 그의 겸손과 인내뿐만 아니라 그의 용기로도 유명하다. 그는 굴복하지만 정복자 이상이시다. 이사야 선지자의 지원자는 곧 그리스도 자신의 지원자이셨다(7절).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심으로(7절). 이말씀이 9절에 다시 반복된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게 도움을 주셨으며 그의 팔은 언제나 그의 우편에 있는 자와 함께하셨다. 나를 의롭다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이사야도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중상과 비방을 뒤집어 쓴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비방을 말아버리시고 그의 의를 빛같이 드러내실 것을 알고 그것을 무시하였다. 이일은 어쩌면 이세상에서 일어날 것이다(시 37:6). 그러나 아무리 멀다하더라도 그 큰날, 즉 육체와 이름이 부활하는 그때에 의인이 아침해처럼 빛을 발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즉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하시고 그가 내곁에 계시며 나를 지지해 주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줄 아노라. 그는 이런 확신속에서 모든 반대자들과는 달리 그것들을 무시하였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실 것이므로 나는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도다." 선지자는 용감하게 죄를 책망하고 죄인들을 경고하며(겔 3:8,9), 그의 예언의 진리를 주장하였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변함없는 절개와 흔들리지 않는 결심으로 중보자로서의 자신의 사역을 계속 수행하셨다. "율법이나 칼로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결투자로서 혹은 원고와 피고로서 나와 함께 설지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논쟁하기를 요청하였지만 그는 그들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선지자는 이것을 모든 성실한 목회자들을 대신하여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들은 메시지를 전할때 반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진리는 위대한 것으로서 승리를 거둘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을 대표하여 그들의 용사로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하나님이 의롭다하시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그리스도와 그의 선지자들의 의로운 대의가 모든 반대를 이길 것이다. 그 대적들을 '좀이 소리도 없이 감각도 없이 먹어치울' 것이다. 작은 물건이 그들의 멸망시키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Ⅲ. 여호와의 권면과 경고 50:10,11
'학자의 혀'를 가지고 있는 선지자는 그것을 여기에서 사용한다. 이것은 복음의 요약이다. "믿는 자는 잠시동안 어두움속에서 살더라도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나 믿지않는 자는 잠시동안 자신의 불빛안에서 살더라도 슬픔가운데 눕게될 것이다."
(1) 본문은 외로운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도록 격려해 준다(10절). 하나님의 자녀는 자식으로 갖게되는 두려움으로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엄위하심에 놀라고 혹 그를 진노케 하지나않나 염려하는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종의 목소리에 순종하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위대한 사역을 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기꺼이 받는 사람이다.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순종할 것이다. 빛의 자녀들과 빛의 상속자들이 때때로 암흑가운데서 살며 한동안 빛을 조금도 보지못하는 일을 겪게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와같이 어두움속에 있는 자는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그의 좋으신 성품과 지혜, 능력, 그리고 그의 선하심을 의뢰하라."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이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앞에서 행하면(비록 그가 어두운가운데 처해있다 할지라도 그렇게 할수 있다), 그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족함을 알게될 것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굳게잡고,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신 것처럼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부를 것이다.
(2) 뻔뻔스러운 죄인들에게 자신들을 의뢰하지 말라는 경고가 주어졌다(11절). 그들은 '불을 피우고 그 불꽃가운데로 들어가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를 의지하며 하늘로부터 온것이 아닌(나답과 아비후처럼) 불로 자신들의 향을 사른다. 그들은 '횃불을 둘러 띠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를 신뢰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신뢰하지 않기때문에, 자신들의 행복을 하나님의 은혜에 두지않고 자신들의 세상적인 소유와 향락에 둔다. 피조물의 위로는 불꽃과 같아서 단명이며 금방 사라져간다. 본문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불꽃가운데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세상을 자기의 위로로 삼고 자기의 확신을 자신의 의로움으로 삼는 자들은 종국에는 쓴맛을 보게된다. 경건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과정이 암울할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평강과 영원한 빛이 될것이다. 악인에게는 그과정이 즐거울수 있으나 그마지막은 흑암이 될것이다.

# 핵심
50:1-11
본문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여호와의 종의 아름다운 순종과 거룩한 희생을 통한 승리를 노래한다.

# 묵상
어미를 내어보낸 이혼서 ( 50:1 )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렸다고 탄식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음을 강조하시는 응답입니다(시44:13; 렘14:19). 이스라엘이 버림받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그들의 조상과의 언약을 파기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야곱 그리고 다윗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불순종한 이스라엘 자신이었습니다.
하수가 광야가 된다는 말씀 ( 50:2 )
이것은 출애굽때의 10가지 재앙과 기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강을 마르게 하시고 피로 변하게하는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의 하나님이 경건한 자나 의인을 찾으려했지만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희망을 선포하고 구원을 약속해도 응답하는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조상이 경험한 사실인 출애굽의 기적을 되새기게 하셨습니다.
하늘을 입히는 흑암 ( 50:3 )
볼츠는 이 흑암과 굵은 베를 ‘모래폭풍’이라고 했고, 펠트만은 ‘폭풍에 휩싸인 구름’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일식현상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2절과 함께 바다와 하늘에서의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말씀하고 있는 본절역시 출애굽 당시 암흑의 재앙을 연상시킵니다.
여호와의 종이 받은 특별한 은사 ( 50:4 )
학자의 혀 곧 능변의 은사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이해의 은사 등입니다. 날카로운 혀같은 이 ‘종’은 예언활동을 위해 특별히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담대한 이유 ( 50:7-51:3 )
하나님의 사람이 담대할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의롭다하시며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편에 선 사람은 두려워하거나 수치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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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메시야에 대해서 말씀하심 49:1-6
(1) 앞장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야곱의 집을 향한 말씀이었다(1,12절). 그러나 본장은 섬들(다시말하면 이방인들, 왜냐하면 이방인들을 '이방의 섬들'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창 10:5)과 원방 백성들, 즉 '이스라엘 나라의 외인'이자 멀리 떨어져있는 자들을 향한 말씀이다. 이들로 복음을 듣게하라. 구속자에 관한 소식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졌고 유대인들이 그소식에 귀를 막고 있을때 그들은 복음에 귀를 기울였다.
(2) 구원의 위대한 제정자가 하늘에서 그의 권위를 나타내신다.
1) 하나님께서 그를 지명하셨다.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이름을 말씀하셨으며. 즉 "나를 지명하여 구세주가 되게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그를 예수 곧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로 부르셨다(마 1:21). 이런말은 구세주의 표상인 여러 선지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언급되었다(렘 1:5). 바울은 사도직을 위하여 그의 어머니의 태로부터 구별되었다(갈 1:15).
2)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일에 적합하게 만드셨다. 내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즉 어두움의 권세들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도록, 사단을 정복하도록, 그리고 하나님께 반역한 자들과 다시 충성스럽게 되돌리기위하여 빛나는 화살과 하나님의 칼이 되게 하셨다. 이칼은 '좌우에 날선 검'이다(히 4:12).
3) 하나님께서는 그일을 위하여 그를 예비하셨고 그를 세우셨다. 나를 그손 그늘에 숨기시며. 이것은 다음의 사실을 의미한다.
① 은폐 :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을 불러들이심은 의식율법과 구약의 모형들의 그림자속에 오랫동안 감추어온 것이었다.
② 보호 : 다윗의 집은 하나님의 섭리의 특별한 보호 대상이었다. 이것은 복음의 복이 그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년시절에 헤롯의 광란으로부터 보호를 받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승인하셨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사실상 이것의 의미는 "하나님의 왕자"다. 어떤 사람들은 본문을 이렇게 본다. "너는 나의 종이라(그리스도가 그러하셨다, 42:1). 내가 너로인하여 이스라엘중에서 영광을 받으리라." 이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 곧 택자이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들의 구원안에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3) 그는 자신의 사역의 분명한 성공을 확신하였다.
1) 그는 첫출발에서부터 절망에 부딪혔다(4절).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즉 "하나님께서 낯설뿐만 아니라 무관심한 자들은 여전히 그상태로 남아있구나. '내가 불렀으나 그들은 거절하였고', 내가 거절하는 백성들에게 내 팔을 내밀었구나." 이것은 이사야의 원망이었다. 예레미야에게도 동일한 유혹이 있었고, 그도 '내가 더이상 수고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었다(렘 20:9). 이것은 또한 많은 신실한 목회자들의 불평이기도 하다. 그들은 빈둥거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였고 정력을 아끼지않고 자신을 소모하였다. 그러나 이모든 수고가 헛일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회개하려고 하지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본문은 유대인들의 고집을 지적하는것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중에 몸소 다니시면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고, 수고하며 그의 정력을 쏟아부으셨다. 그러나 그나라의 통치자들과 백성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을 배척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업신여김을 받으셨다면, 목회자들이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전혀 이상스러운 일이 아니다.
2) 그는 절망가운데서 다음의 것을 생각하고는 스스로 위로를 받았다. 즉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대의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녕히 나의 신원이 여호와께(만물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나는 그의 종이라). 자신들의 노고에 비하여 보잘것없는 성공을 하게되는 모든 신실한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이 그리스도의 위로는 그들 모두에게도 위로가 될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있으며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곁에서 하나님과 동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의 길을 아시는도다. 내가 내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고 또 멸망하는 자들의 피를 그들 머리위에 그대로 있게 했는지에 대한 나의 판단은 여호와께 있도다." 비록 그노고가 상대에게 있어서는 헛것이라 할지라도, 사역자 자신이 성실하였다면 그자신에게 결코 헛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를 저주한다 할지라도 여호와께서는 그를 의롭다 하시고 인정해주실 것이다. 사역은 여호와께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신의 방법대로 자신의 시각에 의해 그들로 성공하게 하실 것이다.
3)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그이상의 응답을 들었다(5,6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으로 쓰기로 계획하신 자들을 조성하시고 준비시키심에 있어서 아무도 모르는가운데 심지어는 그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신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반역하고 떠나간 '야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위해' 예정된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러므로 육체를 따른 야곱의 씨가 먼저 다루어지고, 그들을 돌아오게 하기위한 방편이 사용되어야 하였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말씀이 먼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보내졌다. 그러나 야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치않는다면 즉 이스라엘이 모아지기를 원치않는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눈에 영광스럽게 보일 것이다. 유대 백성들가운데 그리스도의 설교로인하여 회개한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대개의 사람들은 그를 욕되게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영광스럽게 만드시기위해 그의 세례시에, 그리고 변화산에서, 하늘로부터 그에게 말씀하시고 천사들을 보내어 그를 섬기게 하셨으며 심지어 그의 수치스런 죽음까지도 영광스럽게 만드셨다. 더욱이 그의 부활은 말할것도 없다. 그가 고난당할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이 되셨다. 그러므로 말할수 없는 온갖고초를 겪으시는 중에서도 그는 죄짓지 아니하고 낙망하지 않았다. 그의 '힘을 돕기위해' 하늘로부터 그에게 천사가 왔다(눅 22:43). 신실한 목회자들이 비록 자신의 수고의 열매를 보지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받으실 것이며 그렇게 될때 참으로 영광스럽게 될것이다.
② 복음이 세상의 눈에 영광스럽게 될것이다. 즉 열방이 기쁨으로 복음을 영접할 것이다(6절). 메시야는 원래 야곱을 돌아오게 하시기위해 예정된 것으로 보인다(5절). 그러나 이것은 다른 것과 비교해 볼때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방의 빛으로 삼아'는 곧 "이방에게 빛으로 주어서"라고 할수 있다. 이런이유로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 부르는 것을 배웠고(눅 2:32), 바울사도의 설명은 그문맥을 푸는 열쇠를 가져다준다(행 13:47). 바울은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고 하셨기때문에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방향을 바꾸어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고 말한다. 이가운데서 구세주가 참으로 영광스럽게 되셨고 비록 그가 야곱의 모든 지파를 일으키셨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방세계에 그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 그에게 훨씬 큰영광이 되었다. 이약속은 부분적으로 이미 성취되었고, 또한 미래에 완성을 보게될 것이다.

Ⅱ. 메시야 사역의 성공을 약속하심 49:7-12
(1) 메시야의 비하와 영광에 대한 설명이 나타나 있다(7절). 그는 '사람에게 멸시를 당한 자'이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바 된' 자였다(53:3). 그는 사람을 구원하고 존귀케 하기위해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기고 멸시하였다. 그를 멸시하였을뿐만 아니라 미워하였다. 그는 또한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이었다. 그들은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못박게 하소서'라고 소리질렀다. 또한 그는 '관원들에게 종이된 자'였다. 즉 노예처럼 발에 밟혔고 능욕당했으며 채찍에 맞았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러나 헤롯왕은 그를 두려워하여 '세례요한이라' 말하였고 귀족들, 관원들, 천부장들은 와서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땅의 큰자들이 그리스도를 위하고 그에게 충성을 바친다면, 이것은 인간 세상에서 그의 왕국에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방을 유업으로 주신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2) 그리스도는 그가 구원하기로한 자들을 위해 축복을 마련해 두셨다. 하나님께서는 사역하시는 그리스도를 인정하시고 그의 곁에 서계실 것이다(8절). 어두움의 세력가들은 자신들의 때에 그리스도를 그의 사역에서 격리시키기위해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계시며, 사방에서 공격해 올지라도 인간세상에서 그의 왕국을 보존하실 것이다.
1) 그는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평화조약의 보증이 되실 것이다. 내가...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하나님은 그의 안에서 만물을 자기와 화목케하신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그분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다.
2) 그는 교회의 부패를 일소하시고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그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하리라. 포로생활에서 귀환하였을때 유대의 성읍들이 황폐한채로 있었고, 또한 지나간 타락의 시대에 한국가로서의 유대 나라의 교회가 황폐한채로 있었지만, 복음전파의 열매로 다시 새롭게 되어질 것이다.
3) 그는 사람들의 영혼을 죄와 부패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런 자유안으로 인도하여 낼것이다. 그는 사단의 권세아래 묶여있는 죄수들에게 '나오라'고 말할 것이다(9절). 용서의 자비는 율법의 저주로부터의 해방이며, 소생시키는 은혜는 죄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다. 두가지 모두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 그는 '나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성자이시므로 우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될것이다.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즉 네 자신을 보이라. "볼뿐 아니라 보여주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네 자신에게는 위로가 되게하라."
4) 그는 자신이 자유를 주어 행복의 정착지로 갈수 있게한 자들에게 또한 편안한 행로를 마련해주실 것이다(9-11절). 이구절은 유대인의 귀환을 위한 준비를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모든 영적 이스라엘이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인 인도하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수 있다. 세상은 그 추종자들을 허물어진 저수지나 여름이면 물이 마르는 개울가로 인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샘물가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그들은 이미 마련된대로를 발견할 것이다(11절).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5) 그는 사방에서 그들을 전부 모아서 그들로 다시 한몸이 되게하실 것이며 서로 격려할수 있게하실 것이다. 전에 그들은 원수들이 기뻐하는대로 흩어져서 자신들끼리 어떤 연합을 갖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들을 집으로 모으실 하나님의 때가되면 한영이 그들 모두에게 생기를 줄것이다(12절). 혹자는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과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땅에서 오리라. 시님땅은 에스겔 30:15,16절에서 "신"이라고 부른 애굽의 주요 성읍들가운데 하나였다.

Ⅲ. 교회에 대한 위로 49:13-17
하나님의 백성의 귀환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원한 구원(전자는 후자의 상징이다)은 기쁨의 큰제목이 될것이며 하나님께서 교회를 돌보시는 자상한 돌보심에 대한 위대한 증거가 될것이다.
(1) 어떤 사건도 우리에게 이것보다 더나은 찬양과 감사의 노래를 하게하는 것을 제공할수 없다(13절). "하늘에 있는 것들아 기뻐하라. 땅과 산들아 기뻐뛰며 소리질러 노래하라"(롬 8:19,21). 이는 하나님께서 근심중에 그백성을 위로하셨기 때문이다.
(2) 어떤 사건도 이보다 더확실한 논증으로 교회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히 자상하신 관심을 우리에게 증명해줄수는 없다.
1) 교회는 때때로 환난으로인해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의심하는 자리에 처하곤 한다(14절). 환난가운데서 시온은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더이상 나를 돌보지않으신다"고 말하였다. 이교도들은 그들만의 생각으로 '여호와께서 이땅을 버리셨다'(겔 8:12)고 말한다. 또한 믿음이 약한 자들 역시 낙담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버리셨다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섭리와 공의에 대해서처럼 그의 약속과 은혜에 대해서도 의심할 이유가 없다.
2) 환난후에 갖는 교회의 승리가 이문제를 의심할수 없게 해준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시온을 위하여 어떤일을 하시기 원하시는지를 말해준다(17절). 교회를 버렸던 교회의 벗들이 다시 교회로 모여들 것이다.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교회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기꺼이 교회로 합류할 것이다. "너의 건축자들이 서두를 것이라"(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즉 "너의 집들과 성벽과 특히 성전을 세울 자들이 서두를 것이다." 전에 위협하던 교회의 원수들은 이제 쫓겨나서 그에게서 떠나갈 것이다. 큰파괴자인 이세상의 임금은 그리스도에게 쫓겨났으며 그의 모든 노력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시온의 생각은 전혀 근거없는 고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시지도 그를 잊어버리시지도 않으셨으며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도 않으신다. "너는 내가 너를 잊은 것으로 생각하는구나." 여인이 어찌 그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어머니는 자기 자식에게 관심을 기울일수밖에 없다. 아기는 그의 한부분이자 자신에게서 아주 최근에 떨어져나간 부분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미가 자식을 잊어버린다 하자, 그렇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를 잊지아니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자신의 교회와 백성을 한결같이 돌보고 계시다(16절).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이것은 어떤 사람이 무엇을 잊지않기 위해 손이나 손가락에 끈을 묶어두는 습관이나 혹은 이름을 새긴 반지를 끼고다니는 습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그들을 손에 도장처럼 새겨두시며 언제나 그들과 그들의 유익을 위해 마음을 쓰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의 성벽이 항상 내앞에 있나니. 즉 "너의 허물어진 성벽이 비록 보기좋은 광경은 아닐지라도 항상 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속에 있을 것이라. 재건될 너의 성벽의 계획과 형태가 항상 내앞에 있어서 그것에 따라 성벽이 분명히 재건될 것이다."

Ⅳ. 이방가운데 교회가 서게됨 49:18-23
여기에 두가지가 약속되어 있는데, 이것은 먼저 유대인들의 귀환후 유대 교회의 회복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전파로 말미암아 교회가 설립되었을때 더완전하게 성취되었다.
(1) 교회는 교회에 더해진 큰무리들로 채워질 것이다. '네 자녀들이 속히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이 약속되었다(17절).
1) 사방에서 무리들이 교회로 모여들 것이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모여 네게로 오느니라(18절). 이것은 유대 교회를 향한 특정한 장소로의 유입을 의미한다. 그당시 예루살렘이 유대인 공동체의 중심이었으므로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러나 복음아래서 그것은 믿음과 사랑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인 교회로의 영적인 유입을 의미하게 된다.
2) 이렇게 교회에 더해지는 사람들이 교회의 부담이나 수치가 되지않고 오히려 교회의 힘과 장식이 될것이다.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교회에 더해지는 사람들이 그들의 교제에 있어서 진지하고 거룩하며 본이 된다면, 그들은 교회의 장식이 되는 것이다.
3) 전에 버려지고 황폐하게 되어 '거민이 없던'(5:9;6:11) 나라에 다시 사람들이 살뿐만 아니라 넘치게될 것이다(19절).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 즉 그런상태로 오래 방치되어 있던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 즉 너와 함께 멸망당하였던 너의 땅이 이제 사람으로 가득차게 되어 거할곳이 없게되리라." 이와같이 인간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이 전에는 가난했고 거의 사람이 없었지만, 그리스도의 교회가 설립됨으로인하여 다시 부요하게 되며 사람이 차게되었다.
4) 새로운 회심자들이 신기하게 늘어나고 몇갑절이 될것이다. 예루살렘이 칼과 기근과 포로로 많은 자녀를 다 잃어버린후 즉 자라나는 새로운 가족, '고난중에 낳은 자녀'(20절), 아벨대신에 주신 다른 씨인 셋과 같은 자녀들을 가지게 될것이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손실을 보충하시고 교회안에서 그를 섬길 씨하나를 자신을 위해 확보하실 것이다. 선지자의 생도들이 불평하였던 것처럼(왕하 6:1), 이제 그자녀들이 비좁다고 불평할 것이다.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이 들어왔을지라도, 오히려 자리가 남아있을 것이다. 즉 현재 들어온 자들에게 자리가 충분할뿐만 아니라 더많은 사람이 들어올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눅 14:21,22). 어미는 그의 가족증가에 깜짝 놀랄 것이다(21절). 그는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누가 양육하였는고'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자녀의 애정을 가지고 그에게 쏟았지만, 그는 그들을 위해 전혀 수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장성한 그들이 그에게 맡겨졌다. 교회는 언제나 눈에 뛸만큼 큰것은 아니다. 오히려 황폐하게 되고 교인이 거의 없는때도 있다. 그러나 다른면에서 볼때 이황폐한 상태가 영구히 계속되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신다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일으키실수가 있다. 어떤때는 한국가가 순간에 태어나는 것과 같은 아주 희한한 방법으로 이일이 이루어지기도 한다(66:8).
5) 이일이 이방인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질 것이다(22절). 유대인들속에서 그교회가 설립되리라고 예상하였지만 이제 그유대인들이 끊어져버렸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향하여 종일 그의 손을 펴셨지만 소용이 없었다(65: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열방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그의 기호를 세울 것이다.' 즉 영원한 복음을 전파하실 것이다.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그들은 그들중에 있는 시온의 아들들이 자기들 땅으로 돌아올때, 그들을 도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로 돌아오도록 하시기위하여 비록 이방인들중에서라도 호의를 가진 사람들을 일으키실수 있다. "네가 '누가 나를 위하여 이무리를 낳았는고' 묻느냐? 그들은 이방인들가운데서 낳고 양육받았으니 이제는 너의 가족이 될것이라."
(2) 교회는 열방가운데서 유익된 위치를 점하게 될것이다(22,23절). "열왕이 네 양부가 되어 너의 아들들을 품에 품고갈 것이다"(모세처럼, 민 11:12).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것이며. 이약속은 유대인들의 귀환후 그들에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즉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와 같은 바사 왕들가운데 몇사람이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격려하였으며 왕비 에스더는 포로상태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에게 유모가 되었고, 그자식을 불꽃에서 건져내기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았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도 오랜 포로생활 끝에 콘스탄틴과 그의 대모 헬레나와 같은 몇몇 왕과 왕비들에게 복된 대우를 받았다. 그후 데오도시우스나 다른 황제들도 할수 있는한 모든 힘을 다해서 교회를 돌보았다. 이세상에 있는 교회는 유아상태에 있으며, 왕들과 정치가들의 권세안에 있다. 이것은 그들로 교회를 크게 봉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교회의 이익을 반대하여 일어서는 다른 왕들은 굴복될 것이다.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약속은 이곳에서 빌어간것 같다(계 3:9). '사단의 회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앞에 절하게 하리라.'

Ⅴ.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구원하심 49:24-26
(1) 유대인의 해방의 약속은 기대할 것이 되지못한다는 반론이 제기될지도 모른다. 이는 그들이 강한 자의 수중에 있는 먹이가 되었으므로 구출될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24절). 그들을 합법적인 포로였다.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그들이 범죄하였기때문에 포로로 잡힌 것이 정당하였고, 국가 법에 의할지라도 그들이 전쟁에서 붙잡혔기때문에 속전을 치루거나 포로교환이 있을때까지 포로생활을 하는 것이 마땅하였다. 한편으로 원수들이 그들을 보내기를 거절하고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할때 이렇게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 스스로 자포자기하는 투로, 아니면 감사의 표현으로 이렇게 말한다. "누가 용사의 손에서 전리품을 빼앗을 생각을 하겠는가? 그러나 이일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의 구속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2) 하나님은 이반론에 분명한 약속으로 응답하셨다. "용사들이 아무리 강하다하더라도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강포자들이 아무리 포악하다 하더라도 '강포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라." 그들이 아무리 완력을 휘두른다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과 구원에 관한 경륜을 중단시키지는 못할 것이다(25절). 그리고 더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압제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며, 그렇게하심으로 압제당한 자들을 위해 구원사역을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사로잡는 자를 사로잡으심으로'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로 잡은 자들을 포로로 만드심으로 포로된 자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26절). 내가 너를 학대하는 자로 자기의 고기를 먹게하며 새술에 취함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하리니. 즉 거만한 바벨론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쉽게 먹이가 될것이다. 외부의 침입으로 시작된 그들의 멸망은 자신들이 내부분열로 끝이날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태워버릴때까지 서로 물고 먹을 것이다.' 사람들이 때로 자신들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한지 보라. 그들은 피를 갈구할뿐만 아니라 마치 피가 달콤한 포도주인양 아주 유쾌하게 들이마신다.
(3) 바벨론의 멸망으로인한 결과가 나타나있다.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인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스라엘이 버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 한구원자가 있다는 사실을 온세상에 드러내실 것이다.

# 핵심
49:1-7
여호와의 종 메시아가 하나님께 부름받은 구원자이심을 이방 백성에게 선포한다.
손바닥에 새김(49:16)
어떤일을 반드시 기억하기위해 손에 표시를 하거나 무늬를 새기는 관습을 가리킨다. 손바닥은 수시로 볼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향해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라고 말씀하신 것은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관심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 묵상
손그늘에 숨기신 칼같은 입 ( 49:2 )
본문에서 ‘나’라고 지칭되고 있는 사람은 택함받은 예언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할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해석하는 그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찌르는 칼과 표적을 맞추는 잘다듬어진 화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가차서 주어진 사명을 완수할수 있을때까지 그종을 은밀히 감추시고 보호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골수에 사무치며 심중에 불이 붙는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님께서도 때가 이를때까지 당신이 메시야이심을 감추셨습니다.
여호와께 달린 신원 ( 49:4 )
신원을 뜻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법’, ‘판결’, ‘관리’ 등으로 번역됩니다. 여기서는 다른 사람에게는 외면당한 예언자의 활동에 대한 정당화 즉 판결과 보상이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신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성도의 고통에 대해서도 신원하십니다(롬8:34).
은혜의 때 ( 49:8 )
은혜의 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특별한 시기로서, 본래 50년마다 맞이하는 희년을 가리킵니다. 또한 하나님이 포로된 이스라엘을 자유케하는 때를 가리킵니다. 종말론적으로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믿는 자들이 구원받는 때를 가리킵니다. 이때는 또한 불의를 자행하던 악인들에게는 심판과 죽음의 때요, 참고 기다리며 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축복과 영원한 삶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잡혀있는 자 ( 49:9 )
잡혀있는 자는 영적우매에 사로잡혀 있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대속적인 죽음을 죽으셨는데, 이는 영적우매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에게 자유함을 주고 생명을 부여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요10:10). 또한 흑암중에 있는 자에게 빛을 비추시기 위함입니다(요1:5, 9).
고난중에 낳은 자녀 ( 49:20 )
고난중에 낳은 자녀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출애굽사건을 통해서 구해내신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민족을 이룬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와 죄악으로인해서 하나님을 떠난 자녀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구원받은 이방 성도들도 이 고난중에 낳은 자녀에 해당됩니다.
양부와 유모가 될 열왕과 왕비들 ( 49:23 )
양부와 유모가 될 열왕과 왕비들에서 자녀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문은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 민족이 시온으로 돌아올수 있도록 배려하고 보호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이 예언대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귀환하도록 도운 것은 바사제국의 왕 고레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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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다의 위선을 책망함 48:1-8
(1) 많은 유대인들이 종교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하여 위선적인 고백을 하였다.
1) 그들의 경건의 고백은 하늘높이 치솟았고, 그들은 아주 더러운 마음을 매끈한 가면으로 가리웠다.
① 그들은 '야곱의 집'이었다. 그들은 가시적인 교회안에서 그들의 자리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노라."
② 그들은 명예로운 이름인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하나님에게 왕자가 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은 스스로 왕족임을 자랑하였다.
③ 그들은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다.' 즉 다른 지파가 반역을 하였을때 하나님께 붙어있었던 충성된 지파의 소속이었다.
④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다.' 이렇게함으로 하나님이 참하나님이심을 인정한 것이다.
⑤ 그들은 찬양과 기도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불렀다.'
⑥ 그들은 스스로 '거룩한 성'이라(한글개역에는 '거룩한 성 백성'으로 되어있음-역주) 칭하였다.
⑦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하나님의 약속들과 하나님께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것을 자랑하였으며 '여호와를 의뢰하였다'(미 3:11).
2) 이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경건의 고백은 형편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은 전부 헛것이었다. 즉 이런 고백을 하는 그들의 마음은 진실하지도 옳지도 못하였다.
(2)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수단을 사용하셔서 그들로하여금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하시고 우상에게로 돌아서지 못하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많은 훌륭한 율법들을 주셨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로하여금 죄에 빠지지않도록 해주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분명한 예언과 분명한 섭리를 주셨다. 이모든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붙어있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1)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들에게 놀라운 예언을 주셨다(3절). 내가 옛적에 장래사를 고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먼저 예언되지 않고 발생한 일이 없다(애굽에서의노예생활, 해방, 가나안의 정착 등). 지금은 비록 그들이 바벨론에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지만, 이 재난역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들에게 분명히 경고하신 것이었다(레 26:31이하;신 28:26이하,29:28).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며, 그들의 본토로 다시 귀환할 것을 그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신 30:4이하;레 26:44,45).
2)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놀라운 장래 일을 보여주시는 특혜를 주셨다(6절). 이제부터 내가 새일...을 네게 보이노니. 하나님께서는 그당시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새로운 일들을 보여주셨고, 그일들을 이루셨다. 이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시지 않으셨더라면, 감추어질 일들이었다. 다시말하면 고레스왕과 유대 백성이 바벨론에서 놓임을 받을 정확한 시각에 관한 예언과 같은 일들이다. 이일들을 하나님께서 '이제 창조하셨다'(7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들에게 이일이 요원하게 생각될때 즉 너희가 이일을 기대할 근거가 전혀없을때(7,8절) 이일이 아주 불가능하게 보일때, 내가 이일에 대해 너희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감추어진 일들을 보여주시고, 그들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6절).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즉 "너희가 예언의 말을 들었으니 이제 그완성을 보라. 이래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은 너희에게 위대한 하나님이셨다고 고백하지 않겠느냐? 이것을 고백함으로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너희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느껴라."
(3)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런 방법을 사용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이 자신들과 자신들의 우상에 대하여 자랑할 것을 예상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렇지 않았더면 네 말이 내 신의 행한바요 내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의 명한바라 하였으리라(5절). 그러나 이일을 우상에게 돌려서 하나님을 모독하지 않은 자들은 스스로 교만해져서 자신의 지혜로 이일을 예견한양 허풍을 떨었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고집스럽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참으셨다.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여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4절).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의 멍에에 굴복할수도, 하나님의 뜻에 굽힐수도, 하나님의 섭리로써 다스려질수도 없다. 네 아미는 놋이라. 즉 "너는 뻔뻔스러우며 얼굴을 붉힐줄 모르고 자신의 양심을 길에 불쑥 끼어들기를 좋아하는 자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셨으나 그들은 듣지않았고 알려고하지도 않았다. 네가...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이것은 잘못된 평가가 아니다. 이는 그들이 가나안을 향하여 행군을 시작하자마자 살인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네가 궤휼하고 궤휼하여...패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Ⅱ.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심 48:9-15
바벨론에 포로로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도대체 구원받을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않았기에 이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격려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을 좌절하게 하는 요인으로는 다음 두가지가 있었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그일을 하실만큼 그들은 가치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둘째, 그일 자체에 내포되어있는 많은 어려움들이다. 그러나 이제 이 두가지 실망의 요소가 모두 제거되었다.
(1) 그들이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이일을 하시려고 하였다(9-11절).
1) 그들이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존재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포로생활도 그들의 불의에 대한 처벌대가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혹은 오히려 화를 억제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그의 손을 멈추시려고 하시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내이름을 위하여. 즉 이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진 백성이므로 만약 그들이 끊어져버린다면, 원수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영예를 위하여. 또한 이렇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의 명예를 높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2) 그들이 타락하고 성미가 고약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그들을 위해 의도하신 자비에 맞게 그들을 개조하시기를 원하셨다.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이것은 네가 영광의 그릇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왜 그들을 고통가운데로 이끄시고, 그토록 오랫동안 그안에 머물게 하셨는지에 대해 설명해 준다. 이것은 그들을 끊어버리기 위함이 아니고 그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부분적으로 제련되었고, 비록 철저하게 제련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취하신 것이다. 내가...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그후에 내가 위대한 일들을 위해 너를 정하였노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그릇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고난의 풀무가운데 있을때 그들안에서 은혜의 한역사가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일을 하시려는 것은 그들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 의무를 지고 계셨기때문이 아니라 그들로 이방인들의 오만 무례한 승리감에 오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을 정복하였을때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정복한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모세는 이말로 자주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여호와여 저 애굽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겠나이까."
(2) 비록 그들이 자신들을 도울능력이 없었고 이일 또한 실현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이일을 하실수 있었다는 증거가 여기에 나와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부르심을 입었을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애굽에서(호 11:1) 부르심을 입었고 지금은 바벨론에서 부르심을 입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하실 것이다. 그 때에 그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홀로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12절). 나는 그니. 즉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수 있고, 선의 것을 하기를 원하는 그로라."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이제 '그'가 이일을 수행하실때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있겠는가? 그는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시며, 어떤 일이든 다 행하신 분이시다(13절). "그의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그가 그펴신 팔로 무엇을 하시겠느냐?"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무리들에 대한 명령권을 가지고 계시다.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 즉 천지가 천지의 조성자를 섬기는 일에 서로 돕는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신다면, 그들의 구원을 이룰 도구때문에 궁색하실수가 없는 것이다. "야곱의 집에 속한 '너희는 다 모여서' 이말을 듣고 위로를 받으라. '그들중의 누가' 즉 이방 신들가운데, 혹은 그들의 현자들가운데 누가 '이일을 예언하였느뇨', 혹은 누가 이일을 예언할수 있었느뇨?"(14절). 하나님을 능가해서 볼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능가해서 일할수 있는 자도 결코없다는 사실을 확신할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14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 영예를 주시고 그를 하나님의 백성을 구속하는 일에 도구로 만드셨으며 그일 가운데서 위대한 구속자 즉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모형이 되게 하셨다. 내가 그를 부르며(15절). "내가 그를 먼나라에서 데려왔고, 그의 의도를 초월하여 한걸음씩 그를 인도하였노라. 그러므로 내가 그를 끝까지 붙들리라." 고레스가 '하나님의 뜻을 바벨론에 행할 것이다.'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14절). 즉 고레스의 팔(그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팔)이 그들을 무너뜨릴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면 그가 그길을 형통하게 할것이기 때문이다(15절).

Ⅲ. 죄로인해 포로가 된것을 말씀하심 48:16-22
야곱과 이스라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도록 소집되어졌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자는 그의 비밀이 자기들과 함께하실 것을 신뢰할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자신이 이전에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을 위해 행하신 것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언제나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내가...그것을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은 그의 명령을 모호하거나 애매하게 전달하지 않으시고 이해될수 있게 하셨다(합 2:2). "그들이 처음 민족을 형성했을 그때부터 내가 거기 있었노라(그는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사사들을 일으키셨으며, 그들을 위해 자주 나타나셨던 것이다). 따라서 내가 여전히 거기에 있으리라."
(2) 그 선지자 자신이 자기의 임명사실을 천명한다.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그신을 통하여 나를 보내셨느니라"(16절).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자를 성령께서 보내신다.
(3)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은혜의 소식을 그들에게 보내신다. 이소식의 서언은 두려우면서도 고무적이다(17절). '너희의 구속자시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이 그것을 보여준다. 이같은 말씀은 율법의 초두에 나올뿐만 아니라 율법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은 약속의 초두에도 나오고 그약속에 확실성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안에서 성취하시고자 하는 선한 일이 여기 나와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신 그분이 그들의 교사가 되실 것이다.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나는 네게 평화가 임하게 되는 일을 가르치는도다."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자들을 가르치신다. 환난가운데서 건져내시기를 계획하신 자들에게 먼저 그환난을 통하여 유익을 얻도록 가르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눈을 밝혀주실 뿐만아니라, 그들의 발걸음으로 지도해 주신다. 또한 은혜로써 그들을 의무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섭리로써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
2)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가지고 계신 선한 뜻을 선포하신다(18,19절).
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을때, 그들이 순종하기를 진정으로 원하셨다(신 5:29).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18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은 '죄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고 맹세하신 내용을 확신시켜주는 것이다.
②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약 그들이 순종하였더라면 그들의 포로됨을 예방하였을뿐만 아니라 그들이 형통하게 되었고 그형통함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해 주신다.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즉 "너희가 일련의 자비, 곧 항상 마르지 아니하는 강의 맑은 물처럼 계속해서 이어지는 자비를 누렸을 것이라."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명예와 공의로운 판결에 '바다 물결같이' 모든 부면에 있어서 그힘으로 반대자들을 압도하였을 것이다. 그들의 의가 마치 그와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불순종가운데 있으며 그들의 형통의 물줄기는 단절되었고, 그들의 의는 압도당한 가운데 있었다. 그들의 청년들이 중다하게 되고 형통하게 되었어야 하련만 지금 그들은 포로생활에서 귀환하는 자들의 수요가 보여주는 것처럼(스 2:64), 매우 적은 수효에 불과하였다. 또한 그들이 순종하였더라면 이스라엘의 영광에 흠이 없었을 것이고 감히 누구도 손대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이름이 내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즉 지금 황무해있거나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이스라엘 땅처럼 되지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죄란 우리에게서 우리가 누리던 좋은 것들을 탈취해 갈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쌓아두신 좋은 것들을 얻지도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에 대해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하겠다(차라리 분노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자비의 특권밖에는 그들을 구원할 것이 없을 것이다.
3)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계획하신 위대한 사역, 즉 포로생활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실 것에 대해 확약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가 일하기 오래전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그들의 고토로 돌아갈 것이라고 선포하셨다(20절). "이것에 관한 소식을 말로써 '땅끝까지' 전파하라."이것은 온세상에 복음이 전파될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표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시는 자들은 곧 그가 비싸게 값주고 사신 자들이란 사실을 그들로 알게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나님께서 풀어주신 그끈들은 그들을 하나님께로 더단단히 묶었다. 우리를 구속하신 그 분은 우리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수 없는 권리를 소유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돌이키도록 계획하신 자들을 또한 돌보실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여정에 아무런 부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때에 그들로 목마르지 않게하시되. 그들이 움직일때마다 반석에서 나오는 물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데, 그들이 전혀 생각지못한 방법으로 행하실수 있다. 이기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인도하여 내시던때,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하신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모든 기사는 문자그대로 이루어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일은 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할때 실제로 다시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은 기적뿐만 아니라 희한한 섭리들을 허용하셔서 효과적으로 자신의 사역을 수행하신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를 위해 쌓아두신 은혜의 보고에 적용되는 말씀으로 마치 물이 반석에서 이스라엘에게 흘러나온 것처럼, 모든 좋은 것은 이 그리스도에게서 우리에게 흘러나온다. 왜냐하면 그반석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이 평강의 생각이라 할지라도(22절) '악인'에게는 즉 개혁되기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이 어찌 평강할수 있겠는가?

# 핵심
48:1-22
유다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패역한 백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오래참으사 유다 백성이 본국으로 귀환하게 될것을 약속하신다.
이스라엘의 구속자(48:17)
‘구속자’란 원어상 ‘기업무를 자’라는 뜻이다(룻 4: 1,3). ‘기업무를 자’는 근친이 이행해야할 의무규정과 연관을 가진다(레 25:25). 즉 가난한 친족이 빚때문에 땅을 팔았다가 살 능력이 없으면 그 근친이 값을 대신 치르고 사주어야할 의무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 기업무를 자가 되어주신다는 의미이다. 이약속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위해 친히 보혈을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희생을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다(벧전 2:18,19).

# 묵상
마음이 완악한 자들의 특징 ( 48:1-5 )
마음이 완악한 자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자신이나 자기가 섬기는 우상으로인해 이루어진 일이라고 오해합니다.
네가 알지못하던 은비한 일 ( 48:6 )
고레스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사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신비한 일들을 선전하고 증거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이라고 불리웁니다.
이스라엘을 멸하지않으신 하나님 ( 48:8, 9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는 칭함을 입은 자들임을 아셨지만 멸하시지 않은 까닭은,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명예를 위하여 노하기를 더디하고 참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오래참으시는 분입니다. 이는 죄인이 회개하여 당신께로 돌아서고 당신의 구원을 열방에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하나님 ( 48:12 )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은 지금 백성가운데 남은 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분이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날을 도래하게 하실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요, 영원한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의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 역시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라고 불리웠습니다(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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