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바벨론의 멸망 47:1-6
이들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에 보내신 것같이, 선지자를 통하여 바벨론에 사신을 보내신다. "바벨론이 멸망할때가 가까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이 회개함으로 멸망을 면하게 될것이며 평화가 지속되리라는 적절한 경고를 주신 것이다.
(1) 하나님께서 바벨론과 변론하심 : 바벨론은 하나님을 원수로 삼았다. 바벨론에게 보수자이신 의로우신 재판장이 '내가 보수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려주라. "내가 쉽게 저항할수 있는 사람의 힘으로 대하지 않고 저항할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대하리라. 뇌물에 매수되는 사람의 공의로 대하지 않고, 결코 어그러질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로 너를 대하리라."
(2) 이 변론의 특별한 배경 : 하나님이 바벨론에 대하여 자기 백성의 소송을 변호하실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바벨론 사람들의 손에 넘기셨다는 것과 자기 백성을 교화시키기위해 그들을 사용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이용하셔서 '내 기업을 욕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신다(6절). 그러나 바벨론 사람들은 이일을 너무 지나치게 수행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손아귀에 넣게 되었을때 야비하게도 그들을 비천한 노예로 취급하고 짓밟았으며,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이미 고통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고통을 더했으며, '늙은이에게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웠다.' "그들은 노동할 나이가 지났고, 멍에를 메면 필경 쓰러질 나이많은 늙은이들에게, 또한 직책이 장로인 사람들에게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웠도다."
(3) 이 변론의 두려움 : 바벨론이 지금 자신이 다투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안다면 두려워할만한 이유가 있다(4절). 그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모든 피조물을 통솔하시는 분, 따라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니라. 그는 우리와 언약관계에 있는 하나님이시다. 이 정의는 우리의 위대한 구속자, 그리스도에게도 알맞게 적용될수 있다. 그는 만군의 주인인 동시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다.
(4) 이 변론이 바벨론에게 미치는 결과 : 바벨론은 처녀처럼 아름다왔다. 그러자 주변의 모든 나라가 그에게 구애하였다. 그는 '곱고 아리땁다'고 칭함을 받았었고(1절), '열국의 주모라' 칭함을 받았었다(5절).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그의 모든 명예는 지나갔으므로 자신의 모든 위엄에 그는 안녕을 고해야만 했다. 또한 그의 모든 권력이 지나갔으므로, 자신의 모든 통치권에 안녕을 고해야만 했다.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사람이 자신의 명예나 권력을 남용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내려 티끌에 앉으라'고 하실수밖에 없다. 바벨론의 편안과 쾌락은 지나갔다.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 칭함을 받지못할 것임이니라. "네가 오히려 고된 노역에 놓일 것이며 궁핍과 고통을 느끼게 될것이라. 바벨론의 지위가 지나갔으니 노예상태와 쓰라린 속박에 놓이게 될것이라." 바벨론의 큰자들도 이제는 정복자들에게서, 전에 그들이 정복한 자들에게 적용하던 그법률을 적용받게 될것이라. 멧돌을 취하여 가루를 갈라(2절). "고된 노동을 시작하라. 그러면 너희가 땀을 흘리게 될것이므로 머리에 쓴 모든 것을 떨쳐버리게 될것이며 '면박을 벗게' 될것이라." 그들은 변덕스러운 주인의 비위를 맞추기위해 어쩔수 없이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들어내고' 걸어서 강을 건너야 했다. 이것은 그들에게 큰모욕이 될것이다. 바벨론의 모든 영광과 모든 번영은 사라져버렸다. 그들은 영광대신에 수치를 당하게 된다(3절). 그들이 주로 포로들에게 사용하는 비열하고도 야만적인 방법에 의해 '네 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다.' 번영대신에 '잠잠히 앉으며, 흑암으로 들어갈 것이다'(5절). '다시는 열국의 주모라 칭함을 받지못할' 것이기때문에 얼굴이 보여지는 것이 부끄러울 것이다.

Ⅱ. 바벨론 멸망의 원인 47:7-15
하나님께서 앞에서는 바벨론에게 멸망의 운명을 선고하시고, 여기서는 바벨론의 전성기때의 교만, 특히 점성가들의 예지와 충고에 대한 교만을 책망하신다.
(1) 바벨론의 교만과 자고함을 책망하신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외에 다른이가 없도다(8,10절). 이것은 바벨론 정부의 말이며, 또한 백성 총체의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 관하여, 자신의 자존하심과 자신의 무한하시고 비교할수 없는 완전하심과 자신의 유일하신 초월성을 말씀하실때 사용하신 '나는 하나님이라 나외에는 다른이가 없느니라'는 말과 동일한 말이다.
(2) 그들의 사치와 한가하게 사랑에 빠지는 것을 책망하시다(8절).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그들은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없었다. 아주 많은 풍부한 재산은 관능주의로 이끄는 큰유혹이 되며, 빵이 넘치는 곳에는 일반적으로 게으름이 넘친다.
(3) 그들의 세속적인 방심과 공허한 확신을 책망하신다.
1) 그들의 방심의 원인 : 그들은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안일함과 쾌락속에 자신들을 잠재우고, '내일도 오늘과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는 꿈만 꾸었다(사 56:12). 그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7절). "그들의 전성기의 종말이 시들어져가는 꽃이어서, 결국 말라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과 그들의 사악함의 종말이 결국에는 비통함이 될것이라는 사실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어떤 사람들은 '바벨론이 자신의 종말을 생각지 아니하였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2) 그들의 방심의 근거 : 그들은 자신들의 사악함과 지혜를 믿었다(10절). 그들이 기만과 압제로 탈취한 그들의 권력과 재물은 그들의 신뢰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든 반대자들에게 너무 가혹했다고 의심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그들은 대담하게 거짓을 말하고 죽이며, 거짓으로 맹세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일도 자행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라고 부르던 지혜와 지식은 그들을 유혹하였다.
3) 그들의 방심의 표현 : 이 교만하고 오만한 왕국은 자신의 안전을 확신하고 세가지를 말하였다.
①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7절). 신약성경의 바벨론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계 18:7).
② 나는 과부로 지내지 아니하며(8절). 이와같이 나는 권력과 부와 혼인하였기때문에 결코 이것들을 잃지않을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 왕국은 자신을 지지하고 보호해줄 다른 왕국, 자신의 남편이 될 다른 왕국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8절).
③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하나니(10절). 그러므로 나에게 책임을 물을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4) 그들의 방심에 대한 처벌 : 이것은 그들의 멸망이 될것이다. 한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9절). "너희가 무시하였던 바로 두가지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너희의 제왕들과 백성들이 끊어져버리므로 네가 더이상 정부나 국가가 되지못할 것이라." 이것은 갑작스러운 놀라운 멸망이 될것이다.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11절). 그러나 너는 이것에 대비할 시간도, 방법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그 근본을 알지못하고,' 어느쪽에 서서 방비해야 하는지 모를것이기 때문이다. 바벨론은 큰지혜와 지식이 있는 척하였다(10절). 그러나 그는 그의 모든 지식으로 위협적인 그멸망을 예견할수 없었고, 그의 모든 지혜로도 그것을 막을수 없었다. 사실 이사야와 다른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파멸에 대한 적절한 경고를 주셨지만, 바벨론은 이지시를 무시하였고 신뢰하려고 하지않았다.
(4) 그들의 점술, 즉 마술과 점성술을 책망하신다.
이것은 화를 자초하는 그들의 죄가운데 하나이다(9절). 네가 무수한 사슬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이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 "너희를 처벌하기위해 이재앙들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마술은 하나님께만 드려야할 그영광을 마귀에게로 돌리며, 하나님의 원수를 우리의 인도자로 삼는 하나의 죄악이다. 그런데 바벨론에서는 이것이 국가의 보호를 받았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들이 마술에 대하여 막대한 수고를 기울였던 사실을 책망하신다. 너는 젊어서부터 힘쓰던 진언과 많은 사슬을 가지고(12절). 바벨론에는 점성가들 혹은 별들을 보고 미래사를 예견하는 하늘을 관찰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천체를 보면서 천체를 만드신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이다. 또한 '별을 보는 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별들의 움직임 즉 결합과 대치의 모양을 통하여 국가와 왕국들의 운명을 읽는 자들이었다. 이모든 허풍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환난의 날에는 철저하게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게 되리라고 질책하신다. 그리고 바벨론이 점령되고 벨사살이 살해되던 그밤에 바벨론의 모든 점성가, 점술사들, 그리고 현자들이 그들의 운명을 선고하는 벽에 나타난 손가락때문에 당황하게 되었을때 점장이들은 혼이 빠지리라는 이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단 5:8). 바벨론이 몰락때, 현자들도 넘어지리라고 질책하신다(14절). "사르는 불앞에서 그들의 현자들을 위해 자리를 만들려고 바벨론의 현자들을 베어버릴 것이며, 따라서 '그들이 불에 타고 그 불꽃세력에서 스스로 구원치못할 것이다.' 마술을 행하던 점성가들은 사실 바벨론의 장사꾼들이었다. 왜냐하면 미래를 말하는 것이 바벨론의 최고의 교역품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중의 몇이 살해되었을때 나머지는 자기 나라를 버리고, '각기 소양대로 유리하였으며' 바벨론을 건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핵심
47:1-15
바벨론이 당할 수치를 설명하고, 바벨론이 심판받을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
갈대아와 바벨론(47:5)
여기서 언급되는 갈대아와 바벨론의 관계를 살펴보면, 갈대아가 바벨론의 전신임을 알수 있다. 갈대아는 B.C. 626년까지 앗수르의 지배를 받아왔다. B.C. 626년경 앗수르왕 앗술바니팔이 죽은후 갈대아 본토 족장의 하나인 나보폴라살이 백성의 지지를 얻어 갈대아 지역의 왕위에 올랐고, 국권을 회복한후 갈대아를 바벨론으로 개명했다. 그후 나보폴라살은 메대와 협력하여 니느웨를 점령했고, 그의 아들 느부갓네살 2세는 수리아와 팔레스타인 전역을 정복함으로써 바벨론의 판도와 영향력을 넓혀 놓았다.
바벨론의 점성가(47:13)
일찍이 바벨론인들의 천문학에 관한 지식은 헬라인들의 지식의 근원이 되었을정도로 뛰어났다. 당시 바벨론에서는 별을 보고 장래사를 점치는 점성술사들이 정부의 보호와 장려를 받고있었으며, 나라의 정책을 펴나가는데 있어서도 커다란 역할을 했고, 직접 정치에 관여하기도 했다. 점성술사들은 하늘을 몇구역으로 나누어 그징조를 살폈고, 별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여겼다.

# 묵상
열국의 주모 ( 47:5, 7 )
‘열국의 주모’란 말은 바벨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이같은 별명은 바빌로니아가 고대 근동을 제패하고, 그들의 수도 바벨론의 영화가 극에 달했을때 붙여진 별명입니다.
바벨론의 죄악 ( 47:9, 10 )
바벨론은 무수한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며, 자신들의 지혜와 지식을 의지하고 악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바벨론의 지혜란 곧 그들이 행한 점성술등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주술행위를 통해서 미래를 파악하고 보증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주술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외면했으며 인간의 힘이나 우상을 의지하는 악을 범했습니다. 이와같이 점성술등을 행하며 언제까지나 스스로가 고대 근동의 패권자라고 믿고 교만해진 것이 바로 그들의 용서받을수 없는 죄였습니다.
‘불’의 의미 ( 47:14 )
이는 더웁게할 숯불이나 그앞에 앉을만한 불이 아니라 태워버릴만큼 뜨거운 불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불은 투기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상숭배자, 마술사, 점성가 등 신앙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미래를 알고자하는 모든 악한 세력은 하나님의 불에 불태워집니다. 그리고 사단의 세력 역시 종말이 되면 영영히 그불이 꺼지지않는 지옥에 던져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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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자기 백성을 건지심 46:1-4
(1) 거짓 신들은 그들의 숭배자들을 틀림없이 실망시킬 것이다(1,2절). 벨과 느보는 바벨론의 유명한 우상이었다. 벨은 한임금을 신격화시킨 우상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느보도 한예언자를 신격화시킨 우상이라고 생각한다. 그이유는 느보라는 이름에 그런 의미가 담겨져있기 때문이다. 이렇게보면 벨과 느보는 바벨론 사람들의 제우스와 머큐리, 혹은 아폴로 신인 셈이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이우상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말씀하신다.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할때, 이신상들이 쓰러지게 된다. 높은 곳에 세워져있던 벨과 느보가 신전들을 약탈하는 군인들의 발앞에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다.' 그리고 신상에는 많은 은과 금이 씌워져 있었기때문에 군인들이 그것들도 다른 전리품과 함께 끌어냈다. 이것들을 다른 신상들과 함께 나귀에 실어서 다른 목재들(군인들은 이것들을 보물로 취급하기보다 목재로 취급한 것처럼 보인다)속에 섞어서 바사로 보냈다.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따라서 이것들은 모두 한결같이 무거운 짐에 불과하였으며 그들의 떼는 끝이났다.
(2) 그러나 참하나님은 그에게 경배하는 자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한민족으로 만드시고 그들에게 법률을 주셨다. 모든 선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너희는 '배에서 나고 태에서 난' 자들이다. 그리고 일찍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총을 베풀기 시작하셨으며, 줄곧 변함없이 은총을 베풀어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태에서부터 지금까지 품어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능력의 팔로, 그의 사랑과 불쌍히 여기심의 가슴으로 지금까지 품어오신 것이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섭리아래 연명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생명은 필연적으로 변함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유지되고 있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할 것이다.' "너희의 노년에도 너희 연약함때문에 유아기와 마찬가지로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 그때 이스라엘은 점점 쇠하여 가고있었다. 자신들이 부정한 행위를 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노년기를 서둘렀으며 재난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으로 계셨으며, 모세시대에 그들을 보호하셨던 그 영원한 팔로 그들을 안아주실 것이다(신 33:27). 그들이 어렸을때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것처럼, 이제 내가 독수리의 날개로 그들을 업어서 바벨론으로부터 이끌어낼 것이다. 연로한 이스라엘에게 하신 이약속은 모든 연령층의 이스라엘에게 적용된다.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너희가 일하기에 부적당하게 되는때에, 너희가 연약함으로 둘러쌓여 있는때에도, 또한 너희의 친척도 너희를 싫증내게 될지도 모를 그때에도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를' 계속 품을 것이라. 너희들은 변하겠지만 나는 동일할 것이라.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요.' 내가 너희를 안아올리고 안아서 내며, 결국 너희를 집으로 데려갈 것이라."

Ⅱ.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46:5-13
바벨론의 멸망으로인한 이스라엘의 구원이 다시 약속된다. 이것은 우상숭배자들과 압제자들의 죄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1) 우상을 만들고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 특히 이스라엘중에서 그렇게하는 자들의 죄를 지적하기 위하여.
1) 하나님은 하나님의 상이라고 생각하며 신상을 만든 그들을 문책하신다(5절).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어떤 피조물을 막론하고 그러한 피조물의 모양으로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신(Sprit)을 나타내려고 하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다. 지금까지 하나님과 유사한 존재를 본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생존할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2)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어서 그것에게 기도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폭로하신다(6,7절). 사람들은 금이 가족들을 궁하게 만들고, 가산을 약하게 만들지라도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낸다.' 그리고 그들은 신상의 재료로 삼거나 장색들에게 삯을 주기위해 '은을 저울에 단다.' 그들은 우상에 대하여 큰관심을 기울였다(7절).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이것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죽은 송장을 취급하는 방법이다. 그들이 신상들을 주춧대위에 두면 '그것이 서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신상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기위해 손을 들지도, 발자국을 떼지도 못하는줄 알면서도 신상에다 희망을 걸려고 애쓰지만 신상은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한다.' 그들은 대장장이가 만든 것을 신이라 부르기를 즐기고, 실제로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한다.' 그러나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이와같이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 일을 하겠는가?
3) 하나님은 이것을 그들 자신의 이성에 맡기시고, 스스로 판단하게 하신다(8절). 이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신상들이 얼마나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물건인지를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너희 자신이 들짐승이나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른임을 보이라. 이성을 가지고 행동하고 너희가 우상을 숭배할때 판단을 한 그와같은 너희 자신의 판단을 무시하고 경멸하도록 하라."
4) 그리고 다시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절대적인 증거를 제시하신다(9절). 나는 하나님이라 나외에 다른이가 없느니라. "너희는 옛적 일(곧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 민족생성 초기에 자기 백성을 위해 행하신 일)을 기억하라. 너희가 이일들을 기억한다면, '나는 하나님이라 나외에는 다른이가 없느니라'고 한 내용을 인정하게 될것이니라." 그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종말을 처음부터 고한 자'는 그분뿐이시기 때문이다(10절). 오래전에 전해주신 성경의 많은 예언들이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가운데 일부가 적절한때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나머지 예언이 정해진 시기에 완성될 것을 보증해준다. 고레스가 등극하게 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로상태에서 구원하게 된다는 그의 역할에 관한 이 특별한 예언의 성취도 이진리를 확증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략으로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신다.' 이것은 고레스를 가리킨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매나 독수리의 부리같은 코를 가졌다고 한다. 또한 다른 설에 의하면 그의 문장이 독수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후에 로마제국도 독수리를 문장으로 정하였는데, 마태복음 24:28절에 인용된 말씀은 로마제국을 자칭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고레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동방에서 왔다. "나의 종들, 선지자들을 통하여 '내가 말하였은즉', 내가 말한 것을 내가 경영한 것이라." 하나님께서 그의 선지자들에게 하지 않은 많은 것을 그의 경영안에 가지고 계시지만, 이모든 것이 그의 예언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속에 들어있는 것은 전부 그의 경영안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2) 하나님의 모략을 반대하는 자들의 죄를 지적하기 위하여 : 이예언들이 아주 속히 성취될 것을 여기에서 보증하신다(12,13절).
1) 이말씀은 '마음이 완악한' 자들에게 하신 것이다.
① 교만하고 고집센 바벨론 사람들에게 하신 것이다. 이들은 '의에서 멀리 떠난' 자들, 곧 스스로 말하기를 압제당하는 백성들의 탄원과 하나님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그들을 결코 가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이다.
② 겸비치 못한 유대인들에게 하신 것이다. 오랫동안 풀무속에 있었지만 아직까지 이들은 녹지않은 자들, 곧 광야에서 믿지못하고 불평하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선한 것들을 멀리하는 자들, 불신앙때문에 약속의 땅에 들어갈수 없었던 그들의 조상들과 같은 자들이다. 또한 이예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한 유대 나라에 적용될수 있다.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롬 9:31,32).
2)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이 추측이나 절망한다하더라도 계속 말씀하신다.
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분명히 구원을 이루실 것이다. 사람들이 그들을 공평하게 대우하지 않는다해도 하나님께서는 공평하게 대우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시온에 베푸실'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살기를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예루살렘이 안전과 방어의 장소가 되게하실 것이다.
② 이일이 매우 속히 이루어질 것이다.

# 핵심
46:1-13
바벨론의 대표적 우상이라 할수 있는 벨과 느보따위가 파괴되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실행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 묵상
벨과 느보 ( 46:1 )
벨은 본래 하늘의 신으로서 모든 신들의 아버지로 간주되었고, 후에는 바벨론의 수호신인 말둑에 동화되어 벨말둑이라고 불리웠습니다. 그리고 느보는 말둑의 아들로서 그가 중요한 신이었음은 느부갓네살이나 나보폴라살 등과 같이 ‘나부’와 결합된 이름이 많다는데서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신이 아니라 거짓 신이요, 우상이었으므로 참신이신 여호와에 의해서 멸망받았습니다.
옛적 일 ( 46:9, 10 )
여기서는 출애굽등 하나님의 구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출애굽사건은 잊혀진 과거의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망각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자체를 망각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은 장래사를 미리 보이심으로써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게 하셨습니다(창46:3, 4). 그러므로 옛적 일은 바로 구원에 대한 경험이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온전한 관계에 놓여있었을 때의 일을 말합니다.
동방에서 부를 독수리 ( 46:11 )
여기서의 ‘독수리’, ‘모략을 이룰 사람’은 바사 제국의 고레스 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략은 태초부터 계획된 것으로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략이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동방의 먼나라에 있는 고레스를 당신의 모략 곧 구원과 심판을 이룰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가깝게할 하나님의 의 ( 46:13 )
여기서 ‘의’란 다른 말로 하면 ‘구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구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며 낙심해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의가 가깝다’는 것은 ‘구원이 가까웠다’는 것이며, 이는 곧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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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고레스를 부르심 45:1-4
고레스는 메대 사람이며(어떤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메대왕 아스티아게스의 자손이었다. 고레스의 출생신분에 대한 이방 역사가들의 의견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어렸을때 부모가 밖에 내버렸는데 어떤 목동의 아내가 그를 죽음으로부터 구해주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다음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루디아 왕국의 왕 크로에수스가 고레스의 나라를 침략해왔을때 그는 격퇴하였다. 그리고 그는 크로에수스를 이긴 것에서 큰용기를 얻고, 곧 사르디스를 점령하고 스스로 부국 루디아와 그다음에는 루디아에 속한 여러 지방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사건은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다(왜냐하면 크로에수스는 이야기거리가 될만한 큰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삼촌 다리오와 바사 군대와 함께 그의 유명한 바벨론 침공을 이일이 있은후 거의 십년뒤에 행하였다. 당시 바벨론은 부유하고 강대한 국가가 되어있었다. 어떤 사람의 말에 의하면 성벽이 마차 6대가 나란히 달릴수 있을정도로 두터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고레스는 이곳의 지배자가 되려는 큰야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국 이일을 해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본문은 이런일이 일어나기 수년전의 기록이다.
(1)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하시려는 위대한 일들 : 하나님께서 그에게 권력을 부여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일을 위하여 그는 막강한 군주와 부유한 왕이 될것이며, 열국이 그에게 공물을 바칠 것이며 사람과 금전으로 그를 도울 것이다. 여기에서 고레스를 하나님의 '기름 받은'자라고 부르는데 이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위대한 사역을 위해 그를 예정하셨으며, 이일을 함으로써 그는 메시야의 모형이 되게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리사가 아람 사람을 향하여 활을 쏘라고 요아스의 손을 안찰했듯이(왕하 13:16),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아주시겠다고 보증하신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고레스는 다음과 같이 하였다.
1) 고레스는 그의 정복사업을 아주 멀리까지 확장할 것이며, 그에게 대적하려는 자들을 무력화시킬 것이다. 많은 인구를 가진 왕국들이 그에게 굴복할 것이다. 열국으로 그앞에 항복하게 하며. 왜냐하면 전쟁도, 승리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력한 왕들이 그앞에 넘어질 것이다. 열왕의 허리를 풀며. 이말씀은 벨사살에게서 문자그대로 성취되었다. 왜냐하면 벨사살이 벽에 글자쓰는 손가락을 보고 두려워할때,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했기 때문이다(단5;6). 큰성들이 그의 손에 항복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을 지키는 자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와 대결하는 것이 아무 의미없는 일임을 확신하고 '성문을 그앞에 열게'하실 것이다. 아무리 길고 아무리 어려운 원정도 그에게는 쉽고 당연한 것이 될것이다. '내가 네 앞서가서' 길을 거칠 것이 없이하고 그리로 너를 인도할 것이며, 그때에 험한 곳이 평탄케될 것이다. 혹은 어떤 사람들이 해석하는대로 산지가 낮아지고 평평하게 될것이다. 어떤 대적도 그앞에 견디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이임무를 주신 분이 그의 앞에 닫혀있는 놋문을 쳐서 부수며, 그문을 잠근 쇠빗장을 꺾으실 것이다(2절). 그리고 만약 헤로도투스가 기록한대로 바벨론성에 문지주와 문빗장이 동으로 된 100개의 청동문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말씀도 문자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그의 국고를 채워주실 것이다(3절). 네게 흑암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즉 이것은 그성의 주민들이 땅속에 묻어둔 금은보화를 말하는 것이다. 고레스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을 인정하고, 이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포로된 자들을 석방하였다(스 1:2). '여호와께서 세상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할' 의무를 내게 부여하셨다.
(2) 하나님께서 이모든 것을 고레스를 위하여 하신 목적.
1)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줄 알게하리라(3절). "나는 네가 태어나기 오래전에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이니라."
2) 이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해방을 받게하기 위함이다(4절). 비록 고레스가 하나님을 알지못하였지만, 하나님은 고레스를 그의 목자로 지명하셨다. 즉 그를 '고레스'라는 이름으로 부르셨고, 그의 '기름받은 자'라고 부르셨다. 왜 하나님은 고레스를 위해 이모든 일을 하셨는가. 이것은 그를 봐서 한것이 아니다. 그가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문제되지 않는다. 크세노폰(Xenophon)이 그의 책에서 고레스의 이름을 사용하여 한제왕의 영웅적인 미덕을 묘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역사가들은 고레스를 교만하고 잔인하며 피에 굶주린 사람으로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종 야곱'을 위함이었다. 고레스는 하나님의 종들의 유익을 위해 정사나 권세들을 정복하시고 헤아릴수 없을정도로 풍부한 것들을 맡으신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모형이었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엡4:8), 즉 다른 사람들을 사로잡은 자들을 사로잡고, '묶인 자들에게 옥문을 열어주셨다.'

Ⅱ. 유일하신 여호와 45:5-10
하나님은 여기에서 자신의 유일한 통치권을 주장하시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위하여, 고레스를 통하여 행하신 이모든 위대한 일안에서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1) 이교리는 다음 두가지 사실안에 들어있다.
1) 그이외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세상에서 우상숭배를 철폐시키는 근본적인 진리이다. 여기에서 크신 하나님께서는 위엄과 권위를 가지고 이진리를 세상에 선포하신다. 나는 여호와라 나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5절). "나처럼 자존하며 자족하는 존재가 없느니라." 고레스에게 '나는 여호와라 나외에는 다른 이가 없나니'라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① 그의 조상들의 우상숭배하는 죄에서 그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② 그의 전왕들가운데 어떤 왕들이 저지른 죄에 빠지지않도록 그를 지키시기 위함이다. 전왕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세계적인 제국을 건설하였을때, 자신들을 신격화시키고 백성들로 자신들을 숭배하도록 하는 죄를 범하였던 것이다. 즉 고레스로하여금 그도 사람에 지나지않는다는 사실과 하나님은 한분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신 것이다.
2) 하나님은 만유의 주이시며, 하나님없이는 성취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7절).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여기의 악은 죄의 악이 아니라(하나님은 죄를 지으신 분이 아니시다), 죄에 대한 처벌의 고통을 말한다. 빛과 어두움은 서로 상반된 것이며 하루를 주기로 매일 뒤바뀐다. 만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 두가지도 창조하셨다. 자연의 빛을 조성하신 분은(창 1:3) 지금 섭리의 빛을 조성하고 계시며, 격렬히 진동하는 자연 원리들가운데 평화를 만드시고 계시다. 그리고 단순한 결핍을 의미하는 자연의 어두움을 만드신 그분이 섭리의 어두움을 창조하신다.
(2) 이교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여기에서 증명되고 공포된다.
1)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위해 행하신 일을 통하여 증명된다.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5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지못하며 다른 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사람이라도 그가 원하신다면 사용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이말씀에 드러나 있다.
2)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그리고 바벨론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증거를 통하여, 온세상에 공포된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구원은 '여수룬이여 하나님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는도다'라는 말로 온세상에 선포되었다.
(3) 이교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활용되고 적용된다.
1) 잠잠히 기다리는 자의 위로를 위하여 적용된다. 즉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적용된다(8절).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같이 듣게할지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구원을 위한 성도들의 기도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지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편 44:4절에 하나님은 '구원을 명하시는' 분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은 이 위대한 사역 수행에 기여할 목적으로 창조되었다. 우리는 의없는 구원을 결코 기대할수 없다. 왜냐하면 이 둘은 함께 발생하는 것이며 또한 여호와께서 이들을 함께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를 죄안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우리에게 의로움과 성화를 이루심으로써 그는 구원을 이루셨다. 따라서 이 큰구원은 하늘로부터 온것이며, 우리가 마음을 열고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그결과는 의의열매를 맺게될 것이며 위대한 구원을 얻게될 것이다.
2) 이구원을 반대하는 교회의 원수들, 혹은 구원을 체념한 교회구성원의 책망을 위하여 적용된다(9절).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진대 화있을진저. 하나님께 도전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가게 허락하지 않으려는 무례한 바벨론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진저! 압제당하는 자들도 자신들의 지리한 포로생활에 실망하여 하나님과 다투지 말지어다!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수 있겠으며. "너는 왜 나를 저런 모양으로 만들지 않고 이런 모양으로 만드느냐고 할수 있겠는가." 이렇게 놀랍게 지음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탓하거나 하나님의 능력을 문제삼을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그의 손으로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가 지금 그의 손안에 있으면서 '그는 손이 없다'고 말할수 있겠는가? 어린아이가 부모를 탓하여 그의 아버지에게 '네가 무엇을 낳았느냐', 그의 어머니에게 '네가 무엇을 낳았느냐'고 묻는 것은 무례한 짓이다. "왜 나를 인간성의 약점과 인생의 고통을 벗어난 천사로 태어나게 하지 않았느냐."

Ⅲ. 포로된 자의 해방 45:11-19
포로상태에 있는 그백성이 자신들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구원의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할때, 하나님은 그들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게될 것을 확약하신다.
(1)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들의 환난의 문제를 문의하라고 말씀하신다(11절). 장래일을 내게 물으라. "선지자들에게 가서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보라. 파수꾼에게 밤이 어떻게 되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보라." 우리가 우리를 지으신 자에게 화를 내고 불평하며 다툴수는 없겠지만, 뜨거운 믿음의 기도로서 그분과 씨름할수는 있을 것이다. 기도의 힘과 하나님에 대한 기도의 설득력을 보라. '네가 부르짖을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있다 하리라'(사58:9).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막 10:51).
(2) 그들이 아주 낮은 상태에 떨어지고 도저히 자신을 도울능력이 없을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라고 권고하신다(12절).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시 124:8).
(3)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어떤일을 하실 것인가 말씀하고 있으며, 이것은 그들로하여금 더영광스러운 구속자에 대한 기대감도 갖도록 할것인데, 고레스는 이 구속자에 대한 하나의 모형이었다.
1) 그들에게 자유가 선포될 것이다(13절). 고레스는 이자유를 선포한 그사람이었다. 내가 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하리니. "나의 약속들을 따라서 그를 일으킨지라." 고레스가 하나님을 위해 해야하는 것은 두가지이다.
① 지금 폐허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도시 예루살렘을 재건해야 한다.
② 이스라엘은 비록 지금 포로상태에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다. 따라서 그는 아무 속전도 요구하지 말고 그들을 해방시켜야 한다. 고레스는 포로된 유대인들을 위하여 이일을 하였고, 그리스도는 포로된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바벨론의 속박보다 더심한 속박에 있는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기'(61:1)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았다.
2)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실 것이다. 그들은 빈손으로 나왔고, 재건의 비용을 부담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애굽과 다른 나라들의 수고가 '다 네게로 돌아와서 네게 속할 것이라'고 약속하였던 것이다(14절).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때와 마찬가지로 바벨론에서도 빈손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는 사람들은 부유해질 것이며, 하나님께서 심령을 일깨워 하늘의 시온에 가게 하신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그삶을 감당할수 있을 것이다(세상이 그들에게 유익한한 세상도 그들의 것이다).
3) 개종자들이 그들에게로 넘어오게될 것이다.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하리라. 이것은 그땅의 백성들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이 되었을때(스 8:17), 그리고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가려 하노라' 하였을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슥 8:23). 그러나 이것은 복음교회 안에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말과 행위에 복종하게 되었을때 완전히 성취되었다(롬 15:18).
(4) 그들이 볼수 있는 정도이상으로 하나님을 신뢰해야할 것을 가르친다. 선지자들은 이말씀을 그들의 입안에 두었다.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시다(15절). 하나님은 그들을 고난으로부터 이끌어내실때 스스로 숨어계셨다. 교회의 구원은 어떤 신비한 방법으로 수행된다. 즉 사람의 심령위에 역사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신을 통하여(슥 4:6), 또한 나약하며 성공할것 같지않은 도구, 다시말해서 미미하고 우연한 사건들을 통하여 수행된다. 비록 하나님께서 스스로 숨어계시지만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구원자이시라는 확신은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참조. 욥 35:14).
(5) 우상숭배자들과 다른 신을 섬기는 모든 자들을 정복하실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주신다(16절).
(6)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의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신다(17절).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의 튼튼한 망대가 되기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안에서 건짐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이 일시적인 구원이상으로 메시야에 의한 영원한 복으로의 회복인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였음에 틀림없다. "너희는 우상숭배자들의 분깃이될 무정한 수욕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구원을 받을뿐만 아니라(단12:2), 영원한 명예와 영광을 누리게될 것이라." 현재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로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사람은 장차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는 자로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 하나님은 그들이 영원히 하나님께 붙어있고 하나님을 떠나지 못하도록 묶어놓으신다. 우리가 섬기고 의지하는 여호와는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라는 사실이 자연의 빛과 계시의 빛을 통해 드러난다.
1) 이것은 자연의 빛에 의하여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기때문에, 정당하게 세상의 충성을 요구하실수 있다(18절).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그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때 '그터를 바다위에 세우셨으며'(시 24:2) 태초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세상을 만드셨으므로 '땅을 공간에 다셨다'(욥 26:7). 하나님은 세상을 사람에게 유익하게 만드셨다. 하나님은 그것을 인간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헛되이 창조하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을 어떤 목적을 위해 계획하셨다. 따라서 만일 어떤 사람이 있으나마나한 존재임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순전히 그사람 자신의 과오인 것이다.
2) 이것은 계시의 빛에 의하여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그는 홀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충분히 입증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자신에 대해 또한 자신의 뜻에 관해 드러내시는 것도 이사실을 입증한다.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19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은 명백하다. 이방인들은 토굴과 동굴에서 낮고 공허한 목소리를 사용하여 애매한 표현으로 자신들의 예언을 전달하였으며, 신접한 자들은 지절거리고 속삭였다(8:19).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시내산 꼭대기에서 분명하게 알아들을수 있고 사람이 이해할수 있게 전달하셨던 것이다. 그환상은 기록되어있고 분명하게 되어 있기때문에 누구든지 그것을 이해할수 있다. 만약 이것이 어떤 사람에게 모호하다면 그것은 자신의 탓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변호하실때 여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은밀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다'고 호소하셨다(요 18:20). 하나님은 말씀안에서 사람들에게 그를 찾으라고 하셨으므로 사람들의 믿음의 기도를 절대로 거절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사람들이 특별한 것을 기도했을때 그것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주시는 것이 적당치 못하다고 여기실때에도, 하나님은 그냥 두시지않으시고 이것에 상응하는 은혜를, 곧 심령의 위로와 만족을 주셨던 것이다.

Ⅳ.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 45:20-25
하나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신 의도는 다음과 같다.
(1) 우상숭배자들을 위하여 : 즉 그들에게 그들을 도울수 있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들을 도울수 없는 다른 신들을 섬기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말씀하셨다. 열방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오라. "유대 민족뿐만 아니라 고레스에 의하여 해방된 다른 민족들의 백성들아, 우상숭배에 반대하여 말하는 내용을 들으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비록 그들이 우상을 금으로 싸고 장식품으로 꾸미며, 그것을 신으로 삼는다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나무에 불과하다. 그들은 '능히 구원치 못하는 신에게 기도한다.' "그들을 모두 소집하라. 그리고 하나님과 바알사이의 대소송사건에 대한 재판이 다시 열린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말해주라. 나외에는 다른 신이 없느니라." 그외에는 통치할 존재가 없고 도와줄수 있는 존재가 없다. 그는 공정한 신이듯이 '구속자'이시다.
(2) 하나님의 신실한 경배자들이 누구든지간에 그들의 위로와 격려를 위하여(22절) : 비록 지금 하나님의 백성이 분산되어 잃어버리고 잊혀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들 모두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신다. "너희는 믿음과 기도로 '나를 앙망하라.' 자연너머의 것을 보라, 나를 쳐다 보라, 그러면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스도가 장대위의 놋뱀처럼 이땅에서 높이 들리실때, 그가 모든 사람들의 눈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킬 것이다.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하나님에게서는 맹세하실 더 큰이름이 없다, 히 6:13)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만물을 지으신 그는 당연히 만물의 주인이시라는 말씀과 모든 존재가 그로부터 생겨났으므로 당연히 그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말씀이 나갔은즉 세상의 왕국들이 하나님의 왕국이 되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약속하셨다. 이약속은 우리 주 예수의 통치때에 적용되었다(롬 14:10,11). 먼나라의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그의 은총을 간구할 것이다. 무릇 그를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리라(24절). 그들중에 어떤 자들은 그일을 부끄러워하며 회개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돌이킬수 없는 멸망을 당하게될 것이다. 사로잡힌 유대 백성들은 여호와안에서 의로움을(다시말하면 그들의 고통을 없애주고 그들에게 구원의 자격을 주는 은혜를) 얻었다. 또한 그들은 살아남아 피할수 있는 힘을 얻었다. 우리는 주 예수안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천거하는 의와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시작하고 수행할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유대 백성들은 여호와안에서 사람앞에 의로움을 얻고 그들의 하나님안에서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능력과 의를 인하여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참된 신자들 모두는 그안에서 의로움을 얻고 그안에서 기뻐할 것이다.

# 핵심
45:1-25
하나님이 고레스를 통해 바벨론의 포로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이방인들로 하나님을 알게하시려는 구원계획에 대한 예언이다.

# 묵상
기름부음을 받는 사람 ( 45:1 )
이스라엘에서는 왕, 제사장, 선지자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을 상징하는 의식입니다. 또한 초대 왕들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불렸습니다(삼상10:1; 16:13; 왕하19:10). 뿐만아니라 ‘메시야 역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도 여호와의 기름부으신 백성이라고 불리웠고(시89:38; 애4:20), 그리스도인들도 그사명을 위해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입니다(고후1:21, 22).
고레스를 도구로 사용하신 하나님 ( 45:3, 4 )
하나님께서 이방인인 고레스를 도구로 사용하신 것은 그를 통해 여호와가 이방까지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신줄을 알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레스의 띠를 동이신 여호와 ( 45:5 )
띠는 힘이나 능력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띠를 동이다’라는 말은 ‘싸울 태세를 갖추다, 무장을 하다’라는 뜻입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띠를 동이게 해주시겠다고 하는 것은 그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고레스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도구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열방을 물리칠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의와 구원 ( 45:8 )
의와 구원은 하나님의 활동 결과로써 포로된 자의 구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죄를 회개한 자들은 용서함을 받고 의롭다고 인정받으며, 죄의 포로상태에서 해방됩니다. 그 의는 인간의 행위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습니다(엡2:8).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 ( 45:15 )
‘주는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은 은밀하게 자신의 역사를 수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방법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말은 예상할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의 구원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구원역사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열방중에서 피난한 자들 ( 45:20 )
열방중에서 피난한 자들이란 정치적 파국을 피해 도망한 사람들 즉 바벨론에 있던 피난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은 이방인으로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들입니다. 이말씀은 신약시대에 허다한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옴으로 성취되었습니다(행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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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일하신 야곱의 하나님 44:1-8
본문에는 두가지 큰진리가 들어있다.
(1) 하나님의 백성은 특별히 그들과 하나님사이에 있는 언약으로인해 행복한 백성이다. 이들의 행복을 충족시키는 세가지 요인은 다음과 같다.
1) 그들과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이다(1,2절). 여기에서 이스라엘을 '여수룬'(의로운 자)이라고 부르신다. 이것은 실제로 나다나엘처럼 그속에 사악함이 없는 자들만이 이스라엘 백성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야곱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며 미움받고 있는 자들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과 함께 은혜가 개입한다. 나의 종 야곱아...이제 들으라. "이모든 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너희들과 다시 친구가 될것이라."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므로 그들을 위해 이러이러한 일을 행할 것이다(히 8:12).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 아주 고무적인 존재가 되었다.
①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다.
② 그들은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다. 하나님은 특별한 섭리아래 택한 그들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신다.
③ 그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창조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의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울 것이며 하나님 섬기는 일들을 도울 것이다.
2) 하나님이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보장하신 언약의 복이다(3,4절).
① 자신들의 영적인 결핍을 깨닫고 그결핍을 충족시킬수 없음을 깨달은 자들은 하나님안에서 넘치는 만족을 얻게될 것이다.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② 마른 땅과 같이 메마른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물을 공급받을 것이다.
③ 하나님이 부어주실 물이란 '성령'이다(요 7:39). 하나님께서 그의 종 그리스도를 보내시며, 그를 붙들어주시고 그의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붙들어주시리라는 사실은 새로운 언약의 위대한 약속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양자가 되는 특권을 받은 모든 자들에게 양자의 영을 주실 것이다. 이렇게하여 교회는 크게 성장할 것이며, 먼곳까지 퍼져나갈 것이다(4절).
3) 언약의 자기 본분을 기꺼이 다하겠다는 그들의 동의이다(5절). 그때에 여러 민족들이 유대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그들에게 연합하였다(슥 8:23). 물론 이것은 이방인들의 회심을 내다본 예언임에 틀림없다. 이회심을 개인별로, 여러 계층별로, 여러 민족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할것이며 하나님은 이들을 모두 환영하실 것이다(골 3:11).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것이며. "이제 사나 죽으나 나는 하나님의 것이 될것이라." 혹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칭할 것이며. 그리고 그들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며, 어떤 조건에서든지 하나님의 백성과 운명을 같이 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들은 이일을 아주 엄숙하게 행할 것이다. 사람들이 문서에 서명하고 증거로 그문서를 상대방에게 넘겨주듯이,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손으로 기록할'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계약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자주 말하면 할수록 더좋은 것이다(출 24:7).
(2)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행복한 백성인 것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위대하신 신이시며, 그만이 홀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이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자들에게 넘치는 만족을 주는 말씀이다(6-8절). 우리가 신뢰하는 하나님은 비교할수 없는 주권과 불가항력적인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자존하시며 자족하시는 '여호와'시며 하늘과 땅, 천사들과 사람들의 모든 무리의 주인이신 '만군의 여호와'시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시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왕으로 모시고 자신의 구속자로 맞이할 것이다. 그는 영원부터 즉 세상이 있기전부터 하나님이시며, 영원까지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창조하시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붙드시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다시 무로 변했을 것이다. 그분만이 홀로 하나님이시다(6절). 나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여호와이외에 신은 없다. 그는 모든 것에 충분하신 분이므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른 신에게 소망을 둘 필요가 없다. 태양빛을 받는 사람에게는 달이나 별이나 혹은 스스로 피운 모닥불의 빛이 필요없다. 그들은 다른 신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장차 일어날 이일들을 예언할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200여년전에 선지자를 통하여 미래의 일을 세상에 알리셨던 것이다.

Ⅱ. 우상숭배자의 어리석음 44:9-20
(1) 이교훈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우상숭배할 것과 현재 그들의 주인과 주관자된 자들의 기분 맞추는 것에 대한 강한 유혹을 물리치도록 무장시키기 위함이다.
2) 그들의 우상숭배 성향을 치료하기 위함이다. 우상숭배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빠지기 쉬웠던 죄이며, 하나님은 그들을 이죄에서 깨끗케 하시기위해 그들을 바벨론으로 보내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매는 말씀을 강화하는데 유용한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그매질을 설명하기에 유용한 것이다.
3) 이스라엘이 갈대아의 간역자들에게 말할 것을 주시기 위함이다. 갈대아 사람들이 '너희 하나님이 어디있느뇨'라고 이스라엘을 모욕할때 이스라엘은 '너희의 신은 무엇이뇨'라고 요구할수 있을 것이다.
(2) 우리는 우상숭배자들의 죄를 다음과 같은 조항에서 알수 있다.
1) 이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바보들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버리라고 우상숭배자들에게 주신 경고(9-11절) : 그들은 지혜를 짜고 손을 써서 우상을 구상하고 만들거나 새겨서 그것을 '그들의 기뻐하는 우상'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을 속이고 서로를 속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기뻐하는 우상은 무익한 것이어늘. 그것은 그들에게 복을 가져다주지도, 불행을 막아주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부어만든 우상은 전혀 무익한 것이다. 만약 그들이 양심적으로 판단한다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증인, 다시말해서 자신들이 잘못되었다고 증거하는 증인이 될것이다. 신상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만든 자가 누구뇨(10절). 미친 사람이나 정신빠진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우상을 만들생각을 하며, 자기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자신의 조물주라고 생각하겠는가? 이우상을 만든 '장색들은 사람이라' 즉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이기때문에 전능한 존재를 만들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2) 우상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 :
① 이일에 종사하는 인물들은 손재주있는 장사꾼들 즉 우리의 농기구나 달구지, 삽 등 일상용품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동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철공' 즉 철을 숯불에 불리는 힘든 작업을 하는 대장장이가 되어야 한다. 철공은 먹거나 마실시간을 내지 못하기때문에 '물을 마시지 아니하며' 곤비하게 된다(12절). 그는 장색이 준 모형에 맞게 우상에게 입힐 철판이나 거기에 필요한 모든 철제물건들을 망치로 쳐서 아주 꼭맞게 한다. '목공은' 목재일로 매우 신경을 쓰며 고생을 한다(13절). 그는 연장통을 가지고 온다. 왜냐하면 나무조각에 '줄을 늘여 재고', 톱질을 하거나 잘라버려야 할곳을 '붓으로 긋고' 처음에는 큰대패로, 다음에는 작은 '대패로 밀고' 모양과 크기에 맞게 정규로 그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하여 우상은 목공이 원하는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② 우상의 형태는 사람, 즉 가련하고 나약한 죽을 피조물의 모습이다. 이것이 그들에게 익숙한 가장 고상한 모습과 얼굴이다. 그들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우상을 만든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따라 만들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의 영혼을 만드셨을때 하나님은 인간에게 큰영광을 부여하셨다. 그러나 사람의 육체의 모양대로 사람들이 신을 만들었을때 그들은 하나님께 큰모욕을 돌리는 것이었다. 사람의 육체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지만 이것이 무한하신 영인 신에게 입혀진다고 가정한다면, 이것은 그를 더럽게 만들고 격하시키는 행위가 된다. 우상이 다 만들어지면 '집에 두게하거나' 그것을 위해 준비한 신전이나 거룩한 곳에 두게 하였다.
③ 대부분 신상을 만드는 재료는 신을 만들기에 빈약한 재료인 목재였다.
첫째, 이것은 숲속에서 베어낸 것이다. 이것은 거기서 다른 나무들사이에서 자랐으며, 다른 이웃 나무들보다 아름답거나 가치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백향목 혹 디르사나무와 상수리나무'였다(14절). 얼마전부터 자기를 위하여 한나무를 택해 두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나무를 다른 나무들보다 더 강하게 하고, 더 잘자라게 하기위해 이런저런 기술을 다사용하였던 것이다. 혹은 빨리 자랄수 있는 나무를 자기가 직접 심어서 하늘의 비에 자라나게 하는 것이 그의 이상에 더 적합할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의인과 불의한 자위에 내리는 하나님의 비를 맞고 자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경쟁자를 세운다면, 하늘의 하나님을 얼마나 모욕하는 것이 되겠는가!
둘째, 이나무의 가지는 땔감으로 밖에 쓰일 곳이 없다. 따라서 이가지와 우상을 만들때 잘라낸 토막들은 땔감으로 사용되었다(15,16절). 이것도 다른 나무들과 마찬가지로 불에 탈수 있다는 것은 그나무가 자신을 보호할수 있는 내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나무를 선택한 사람도 그것에 다른 나무들보다 큰가치를 부여하지 않았으므로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않고 그나무의 일부를 흔한 잡동사니처럼 불에 던져넣었던 것이다. 그나무는 벽난로의 땔감으로 사용된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15절). 그는 그나무의 편리함을 안다.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분명히 그나무는 땔감으로 사용되어야 마땅했다. 그러므로 그것으로 우상을 만드는 것은 그나무가 사람에게 줄수 있는 큰유익과 만족을 없애는 것이다. 그것은 부엌 땔감으로 사용된다. 고기를 구워 배불리기도 하며(16절). 그가 나무를 이런용도로 사용했다고해서 잘못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화덕을 달구는 땔감으로 사용된다.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하고(15절). 그런데도 아무도 그에게 잘못하였다고 꾸짖는 사람이 없다.
셋째, 이나무의 줄기는 우상 만드는데 사용될 것이다. 차라리 이것이 의자 만드는데 사용된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우상숭배자는 그것으로 우상을 만드는데 사용하기도 하고 땔감으로 건조시키기도 하였다.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그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15,17절).
3) 이문제 전반에 관한 결론(18-20절) :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들보다 더악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짐승들은 감각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지만, 사람은 이성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18절). 다른 것에서는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이문제에 있어서는 아주 미련하게 행동한다. 그들은 사고의 대원리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반역자들이다(19절). 그들은 마음에 생각도 없고. 그들은 자기 자신을 설득시킬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내가 그나무의 얼마로 불을 사르고 그 숯불위에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나무토막앞에 굴복하리요.' "감각도, 생명도, 기력도 없는 물건에게 엎드릴정도로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될것인가?" 이 우상숭배자들은 스스로를 속인 것이다(20절). 그는 재를 먹고. 그들은 재를 먹고 영양보충을 기대하는 사람처럼 크게 실망하게 될것이다. 죄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배신한 것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과 그들 가슴속에 있는 불신앙 때문이다. 그들중에는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고 스스로 설득해본 사람도 없으며 자기 영혼의 구원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도 없다. 자기 회의는 자기 구원을 향한 첫걸음이 된다.

Ⅲ.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심 44:21-28
(1) 야곱과 이스라엘의 의무 : 즉 지금 포로상태에 있는 그들이 구원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기위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의무. 우리의 관심사가 먼저 고난을 통하여 유익을 얻는 것이 된다면, 그후에 우리가 고난에서 벗어날 희망도 가질수 있게될 것이다. 그들의 의무는 '기억하라'와 '돌아오라'는 두단어로 표현되었다.
1) 야곱아...이일을 기억하라(21절).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을 기억하며 '너는 내 종'이므로 다른 주인을 섬겨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2)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22절).
(2) 지금 포로상태에 있는 야곱과 이스라엘에게 보장하신 은총 :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회개하여 돌아올때 그들에게 약속하신 여기의 내용은 영적인 의미에서 말한다면 하나님께 돌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기 시작할때 그분도 우리를 기억하실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를 먼저 기억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1)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이유.
①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구속하는 자들과 직접 싸우시는 것이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② 하나님이 그들을 한민족으로 조성하셨기 때문이다(24절). 그들은 한민족으로 성장하기 시작할때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하에 있었다.
③ 하나님은 이전에 그들을 구속하신 분이며, 지금도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나(23절). 지금도 그일을 행하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일을 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은 그가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시기 때문이다.
④ 이스라엘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실 것임이로다(23절). 그는 영광스럽게 하셨고 또다시 그렇게 하실 것이다(요12:28).
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막는 유일한 장애물이었던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셨기 때문이다(22절).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의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므로' 그는 포로의 멍에를 깨뜨리실 것이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은 구름처럼 하늘과 땅사이에 하나님께서 짙은 구름과 같은 죄를 용서하셨기때문에 하늘과의 교통이 다시 열려질 것이다.
2)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에게 수반될 우주적인 기쁨(23절) :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백성의 구속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지금은 세계가 짐을 지고 신음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타락의 속박에서 건짐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세계의 최대기관은 하나님의 왕국이다(시 96:11-13,98:7-9). 천사들도 그것을 기뻐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일을 행하셨기때문에 하늘이 노래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과 화해하실때 하늘에는 기쁨이 있다(눅 15:17). 비록 이방세계의 거민이라 할지라도 이기쁨을 나누어 가질때, 이찬양에 동참하게될 것이다.
3) 우리를 격려하심 : 비록 지금 교회의 구원의 길에 큰어려움이 많이 놓여있다 하더라도 구원의 때가오면 모두 쉽게 극복되리라는 소망을 가지도록 우리를 격려하신다. 네 구속자...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24절). 태초에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지금도 여전히 창조하시고 계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는 계속되는 창조이기 때문이다.
4) 바벨론의 예언자를 논박함으로써 그들을 당황케 하심(25절) :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바벨론으로부터 구해내심으로써 '거짓말하는 자의 징조를 폐하실 것이다.' 다시말하면 바벨론 왕조가 아직 생명이 길다고 거짓말하는 모든 선지자들의 표적을 폐하신다는 것이다. 바벨론의 가식된 선지자들뿐만 아니라 유명한 정치가들도 당황하게 만드실 것이다. 지혜로운 자를 물리쳐. 그리스도를 알게된 자들은 자신이 이전에 가졌던 모든 지식이 어리석은 것이었으며, 자신은 '자기 궤휼에 빠진 자'였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고전 3:19).
5)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게 하심 : 유대인들은 의심하였고, 유대인의 대적들은 멸시하였던 하나님의 예언을 분명히 증거할 것이다. 내 종의 말을 응하게 하며. 내가 여러차례에 걸쳐 내 백성에게 보낸 '내 사자의 모략을 성취하게' 할것이다(26절).
6) 현재 포로상태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계획해 놓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26-28절) :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이 한동안 폐허가운데 놓이고, 주민이 감소되고 아무도 살지않게 되어있었지만 이도시들은 다시 재건되고, 주민이 다시 살게될 것이라는 약속이 본문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거기 사람이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세상이 존재하는한 하나님께서 세상안에 교회를 두실 것이다. 유다의 성읍들에 대해서도 '중건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산헤립의 지도하의 앗수르 군대는 유다 성읍들을 그냥 점령하였을 뿐이다. 따라서 그군대가 패퇴하였을때 성읍은 고스란히 원래 소유권자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갈대아 군대는 성읍들을 황폐화시켰다. 주민들을 사로잡아가고, 성읍들은 자연히 쇠하게 버려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황폐화된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황폐한 곳을 복구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다(26절). 성전이 파괴되어지고 한동안 기초까지 파괴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지만 성전의 기초가 다시 세워질 것이므로 분명히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는 약속이 또한 본문에 나타나 있다. 성소의 파괴가 모든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의 파괴가운데 가장 비통한 부분이었던 것만큼, 성소의 회복과 재건은 예루살렘 구원에 있어서 가장 기쁨에 넘치는 부분이 될것이다. 구원의 길에는 아주 큰어려움들이 놓여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모든 것이 제거될 것이라는 약속이 본문에 나타나 있다(27절). 깊음에 대하여 이르기를 마르라...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실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바벨론에서 이끌어내실때에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큰 깊음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그들의 길을 지연시키고 심지어 막아버리려고 하느냐? 내가 너를 마르게 하리라." 고레스가 여러개의 운하로 유브라데 강을 마르게 하고, 그군대를 통과하게하여 바벨론을 점령하였을때 이말씀이 성취되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28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의 초장의 양떼이다. 그런데 지금 이양들은 늑대들가운데 있다. 즉 범죄때문에 갇혀있는 것이다. 이제 고레스는 하나님께서 이양떼를 해방시키기위해 고용하신 하나님의 목자가 될것이다. 바사의 제왕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목자인 것이 고레스에게는 훨씬더 명예로운 일이었다.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용도에 따라 사람을 쓰신다. 사람이 자신의 일만 하고 그이상의 것은 하지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바로 그들이 하는 일을 통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것이다.

# 핵심
44:1-28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선언 앞에서 절망할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위로와 풍성한 축복이 약속될뿐만 아니라, 허무한 우상과 달리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사역과 회복이 약속된다.
고레스(44:28)
캄비세스 1세와 만다네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의 사후에 메대를 정복하고 통일 메대-바사(페르시아) 제국을 창건한 인물이다. B.C. 539년경 고레스는 지나친 우상숭배로 국력이 쇠약해진 바벨론을 향해 정복의 손길을 뻗쳐 주연에 빠져있던 벨사살 왕을 죽임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단 5:30). 바벨론에 입성한 고레스는 B.C. 538년경에 조서를 내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인도자로 삼아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도록 조처했고(스 1:1,2), 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하였다.

# 묵상
여수룬 ( 44:2 )
이단어는 ‘곧은 자’(신32:15; 33:5, 26), ‘정의로운’, ‘의로운’이라는 말에서부터 파생된 말로 이스라엘을 높이는 경칭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고 부른 것은 ‘정의로운 이스라엘’, ‘의로운 나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구속의 대상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여수룬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나타내는 방법 ( 44:5 )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신앙을 나타내는 방법에는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신앙적 이름을 갖는 것으로도 행해집니다. 또한 손에 즉 그마음에 하나님의 이름을 쓰는 것과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불리우기를 기뻐하는 것 그리고 말씀의 순종으로 할례를 받는 것도 신앙을 나타내는 여러 방법들중의 하나입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인 하나님 ( 44:6 )
이말씀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자시요 마지막 심판자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11:30)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돌고도는 것이 아니라 처음과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더불어 살기위하여 천지창조와 함께 구원역사를 시작하셨고, 최후심판과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통해서 그것을 마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셨는데(계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졌고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 ( 44:6-8 )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자신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주장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외에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어리석은 인간들은 사탄의 세력이나 귀신, 자연만물을 신적인 존재로 여기고 섬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탄은 사람들을 미혹하며 자신을 따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심으로 자신의 존재와 유일성을 증거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의 비극 ( 44:9-20 )
수치를 당하고 미혹된 마음이 더욱 미혹되며 정직하게 살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셨다면, 성경에서 그런 사람들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해야 하며 그들에게 여호와만이 참하나님이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잊지않으시는 하나님 ( 44:21, 22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잊지않으시는 것은 그것이 그가 지으신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명하셔서 부르신 하나님은 어미가 그젖먹는 아이를 잊는다고할지라도 당신께서는 그의 자녀를 잊지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고 보호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허물과 죄를 구름이나 안개가 사라짐같이 완전히 도말하셨기때문에, 즉 하나님이 구속하셨기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아갈수 있었던 것입니다.
목자 ( 44:28 )
목자는 자기 양떼나 혹은 다른 사람의 양들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고대 근동의 왕들은 종종 목자(Shepherd)라고 불리웠습니다. 왕들은 목자처럼 양같은 백성들을 올바로 이끌고 안전하게 돌보며 풍성하게 먹여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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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증거 43:1-7
이장은 전장의 마지막부분과 순조롭게 연결되어 있다. 전장에서는 야곱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길로 행하려 하지않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렇기때문에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시리라는 말이 따라올 것으로 우리는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다음에 오는 말은 이것이다. 야곱아...이스라엘아...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비록 이스라엘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불순종하였으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을 계속 유지하시기를 원하시므로 그민족은 긍휼가운데 보존될 것이다. 이제 짙은 먹구름뒤에서 이와같이 갑자기 뚫고나온 태양은 만족스러운 놀라움과 함께 환하게 비칠 것이다. 여기에 표현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선의는 정직한 야곱과 기도하는 이스라엘의 모든 영적 자녀에게 넘치는 위로를 주고있다.
(1)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관심과 돌보심의 근거 : 야곱과 이스라엘이 비참한 죄악의 상태에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실 것이다.
1) 그들은 '그의 만드신바이며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엡 2:10). 하나님은 그들을 창조하셨으며 그들에게 생존을 주셨을뿐만 아니라, 그들을 한민족으로 만드시고 그들의 정부를 구성하셨으며 언약의 증서로써 그들을 조직하셨다.
2) 그들은 하나님께서 값주고 사신 민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속하셨다. 첫째로 애굽 땅에서 그들을 구속하였고, 다음에는 여러가지 다른 속박으로부터 '그사랑과 그긍휼로' 그들을 건지셨다(63:9). 더욱이 하나님은 그의 아들의 피로써 구속하신 자들을 돌보실 것이다.
3) 그들은 하나님께 특별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지명하셨다.
4) 하나님은 언약안에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이다(3절).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자들은 누가 또는 어떤 것이 대적하려고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2)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과거의 사례들.
1) 하나님은 그들을 값비싸게 사셨다.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주었노라(3절). 아사때에 구스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입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기보다 그들이 망하고 말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구스와 스바가 무엇인가? 그들의 모든 생축과 모든 재화를 그리스도의 피와 비교할수 있겠는가?
2) 하나님은 그들을 매우 귀하게 여기셨으므로 그들은 하나님께 있어서 매우 귀중한 존재였다(4절).
(3)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려는 사랑과 보호하심의 실례.
1) 그들의 어려움과 위험이 아무리 크다하더라도 그안에서 하나님께서 줄곧 그들과 함께하실 것이다(2절).
2) 하나님은 사람의 자녀들의 모든 이익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것이 되게하실 것이다.
3) 여러 다른 나라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두 모을 것이며, 그들이 그민족의 복을 함께 누리게 하실 것이다(5-7절). 이스라엘의 자손가운데 얼마만큼이 열방가운데로 흩어졌으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권고하신 자들은 모두 각처소로부터 모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조심스럽게 모아들이실 이스라엘의 자손은 누구인가?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표하신 자들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7절).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이름으로 일컫는다.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위하여 그들을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교회에 속한 자들은 하나도 잃어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Ⅱ. 우상에 대한 고소 43:8-13
여기에서 하나님은 우상숭배자들에게 그들의 거짓우상의 신성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라고 강력히 요구하신다.
(1) 그들의 우상은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였다. 그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는 사람의 얼굴과 기관과 기능은 있으나 실제로 이성과 상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지않으면 그들은 결코 자신들이 만든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을 것이다.
(2) 하나님께서 하나님측 증인을 소환하시고, 와서 증언하라고 하신다(10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7절).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나의 종, 나의 택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42:1).
1) 여기에서 하나님측 증인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리스도를 증거한 모든 선지자들과 위대한 선지자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증인이므로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에 관해 증거할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백성에게 특별히 메시야를 자신의 증인으로 주셨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전부터 하나님의 품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2) 이들이 증명해야할 요점이 무엇인지 살펴보라(12절).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는 자존하며 자족하는 자이다. 나는 너희들이 두려워하며 경배하고 신뢰하게될 그이다.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13절). 태초로부터란 시간의 첫날이전, 빛의 창조이전, 즉 영원으로부터를 의미한다. 우상이란 사람이 지은 신(즉 만들어진 신들, 오히려 가공의 신)이며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갈 4:8).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부터 존재하셨으며, 우상이나 우상숭배자들이 있기전부터(진실은 허위보다 오래된 것이다) 존재하셨다. 그리고 또한 영원까지 존재하실 것이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11절). 위대한 여호와는 현재도 있고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자이시다. 나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무한하고 무오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된 것에서 알수 있다. 내가 고하였으며...보였고(12절).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고하였으며 보이셨다. 하나님은 무한하고 불가항력적인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하나님은 '내가 구원하였으며 보였고'라고 말씀하신다. 이방의 신들은 역사가들에게 영감을 줄수 없었으며 예언자에게는 더욱더 영감을 줄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문제에 대해서도 소송을 일으키라고 요구하신다. '그들로 증인을 세워서' 그들의 진지함과 전능함을 증명하게 하라.

Ⅲ. 자기 백성들을 권고하심 43:14-21
(1) 하나님은 여기에서 자기 백성에게 용기를 주시기위해 다음과 같은 칭호를 사용하신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나는..너희의 거룩한 자요(14,15절). 따라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던 모든 말씀을 지키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즉 그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한민족으로 만드신 분이며 그들의 왕이시다.
(2) 하나님은 그들의 압제자의 세력을 꺾어버리실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켜 주신다(54:17).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한왕을 보내실 것을 고려하실 것이며, 그왕은 바벨론의 모든 귀족들과 모든 백성들의 세력을 꺾을 것이며 심지어 갈대아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할 것이다.
(3) 하나님은 과거에 그들이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데리고 나오실때에 그들을 위하여 행하셨던 위대한 일들을 상기시키신다(16,17절). 이일을 행하신 하나님은 너희가 바벨론에서 돌아올때 너희를 위하여 바다가운데로 길을 내신 분이시다.
(4) 하나님은 옛날에 행하셨던 일보다 더 큰일을 그들을 위해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들은 그기적들이 재현되는 것을, 아니 그것을 능가하는 기적들을 보게될 것이다(18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마치 이전에 행한 일들이 현재의 일보다 나은 것처럼 생각하고 현재 일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이 예언에 대한 해석은 렘 16:14,15,23:7,8절에서 잘나타나 있다. 이전의 은혜를 망각해서도 안되겠지만 새로운 은혜는 특별한 방법으로 더나은 가치를 부여해야할 것이다.
(5) 하나님은 그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실 것이며 그들이 땅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신다(19,20절). 정녕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바다가운데 길을'(16절) 내셨던 그런 능력으로 '광야에 길을' 내실 것이다. 그는 아무리 메마른 땅에서라도 물을 내실수 있으며, 이물로 그의 백성 그의 택한 자는 물론, 장차 그를 존경하게될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용과 올빼미)도 마시게 하실수 있다. 이것은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과 그리스도의 오심사이의 유대인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내다본 예언이며, 또한 복음의 은혜 특히 이방 세계에 드러내신 복음의 은혜를 내다본 예언이기도 하다. 전에는 들짐승 곧 시랑과 같이 거칠고 난폭하며, 타조처럼 둔했던 이방의 죄인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하게될 것이다.
(6) 하나님은 이모든 약속하신 복의 큰원인을 찾아내신다(21절). 이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그러므로 나는 이일을 그들을 위해 할것이며, 그들은 '나의 찬송을 부르게'될 것이라." 새하늘, 새땅, 새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것처럼 우리를 먹이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신다.

Ⅳ. 야곱을 책망하심 43:22-28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야곱의 잘못을 지적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생활로 이끄신 하나님의 공의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버렸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공정하게 그들을 거절하시고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셨다(28절). 그들은 구원받기전에 자신의 잘못을 시인해야 했다.
(1) 여기에 이스라엘의 죄가 고발된다.
1) 하나님께서 명하신 선을 태만히 함 :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은총을 내려주셨으며 그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시는지에 대해 언급한 21절과 비교하여 '그러나'라는 접속사와 함께 이 범죄내용은 어떻게 소개되는지 살펴보라. 그들은 하나님의 이모든 은총에 대하여 대단히 사악하게 행동하였다. 그들은 기도를 버렸다.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야곱은 기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호 12:4). 야곱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기도없이 생활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며 자신을 속이는 행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건생활에 점점더 싫증이 났다. 그들은 하나님께 번제드리기를 꺼려했다. 오히려 값싼 경건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값비싼 헌신의 행동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23절). 그러므로 더욱이 큰 희생제물인 소는 말할나위도 없다. 사탕수수 기름이나 창포 기름이 거룩한 기름 유향 향품으로 사용되었지만, 그들은 그 비용도 부담하려 하지 않았다(24절). 사실상 그들은 전혀 희생을 드리지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23절).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부담스럽지 않은 것으로 희생제물을 제정하셨다. 그렇기때문에 그것은 전혀 불평할 이유가 되지못하는 봉사였다. 나는 예물로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나는 그것으로 네게 짐스럽게 만들지 아니하였느니라." 유향으로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이스라엘에게 절기와 축복의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번거롭게 하는 날은 일년에 단하루뿐이었다. 그리스도의 쉬운 멍에에 비교한다면, 의식법의 각종 절차는 무겁다고 볼수 있다(행 15:10). 그러나 우상숭배자들이 그들의 거짓신들에게 하는 제사에 비교한다면 가벼운 것이라 할수 있다. 하나님은 몰록처럼 그들에게 자녀를 희생으로 드리도록 요구하시지는 않았다.
2)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악을 행함 : 너는...네 죄악으로 그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우리 욕망의 먹이와 연료로 만들어버린다면 이것은 우리의 죄악으로 하나님을 괴롭게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희생제물로 그들을 괴롭히지 않으셨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하나님을 괴롭혔다. 주인의 명령은 종을 피곤하게 만들지않았지만, 종들의 불순종은 주인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2) 무엇이 그들의 죄가를 더중하게 만들었는가(27절).
1) 그들이 불순종의 자식들이라는 사실이다.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2) 그들은 또한 불순종의 제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역하였나니. 그들의 교사들은 엄청난 더러운 죄의 죄책을 지고있다. 따라서 그백성들도 틀림없이 그선생들이 행하는대로 행동하도록 배웠을 것이다.
(3) 그 죄때문에 그들에게 발하신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가 무엇인가(28절). 내가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하며. 다시말하면 큰위엄을 가지고 성전사역을 집행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욕보게 하셨다. 그들은 죄악으로 자신을 더럽혀 하잘것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재난으로 그들이 욕을 보게하시며 그들을 비참하게 만드신 것이다(말2:9). 그들의 고귀한 지위도 마찬가지로 무너졌다. 야곱으로 저주를 당하게 하고 미움과 멸시를 당하게 하셨도다." 이스라엘로 비방거리가 되게하리라. "그들의 원수들로부터 모욕과 비웃음을 당하며 정복당하게 하시리라."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풍성한 자비는 무엇인가(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1) 하나님께서 기꺼이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자비로운 선언이 나타난 것은 아주 이상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책망이 이부분에서 극으로 치닫고있기 때문이다. 너는...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24절). 따라서 그다음에는 "나 곧 나는 너희를 멸망시킬 자니 나도 이제 더이상 너희를 돌보는 짐을 지지 않으리라"는 선언이 따라 나올 것으로 누구든지 생각하게 된다. '나 곧 나는 너희 죄를 사하는 자니(대하 7:14).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물을 용서해주시는 것이 허물로인해서 피곤해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키시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시고자 하신것 같다. 하나님은 믿고 회개하는 모든 자의 죄에 대하여 용서해주실 것을 말씀하신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마치 구름이 태양광선에 의해 없어짐같이(44:22), 또한 빚이 없어져서 다시는 빚쟁이를 괴롭히지 않는 것같이(즉, 보증인의 지불보증으로 그빚이 면제되었을때 장부상에는 빚이 청산된 것으로 두줄로 그어버린다) 허물을 도말하실 것이다.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그 죄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미래에 감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용서하실때 죄를 잊어버리신다. 이것은 우리안에 있는 어떤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위하여,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을 위하여 하시는 것이다.
2)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하고. 이말은 다음 두가지로 해석될수 있다.
첫째로, 교만한 바리새인에 대한 책망으로 이해할수 있다. 그는 자신의 공로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수 있다고 생각하고 거져주시는 은혜를 감사하려고 하지않는 자이다. "네가 마땅히 용서받을만한 근거로 제시한 것이 있으면, 나로 그것을 기억이 나게하라."
둘째로, 회개하는 세리에게 주신 격려의 말씀으로 이해할수 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들에게 한약속과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을 위해 이루신 속죄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게 하라." 이것이 화해하는 유일한 길이며 확실한 것이다.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렘 3:13).

# 핵심
43:1-7
구원약속으로 이스라엘을 위로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잊지않고, 그들을 이방가운데서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43:13)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아무도 방해하거나 저지할수가 없다. 그것은 그분이 절대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홀로 거룩하며, 홀로 선하시고, 홀로 의로우시다. 그러므로 홀로 모든 일을 계획하고, 통치하시고,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창조, 이적, 계시, 영감, 중생등의 절대적 능력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자연법칙과 섭리등을 통해 주권자로서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이다(단 4:35).

# 묵상
어려움을 당할때 취해야할 자세 ( 43:2-9 )
극심한 어려움을 만날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을때 물이나 풀무불과 같은 역경과 환난도 우리를 해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사명 ( 43:10-12 )
이스라엘의 사명은 여호와만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곧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행1:8). 이는 하나님과 더불어 안식의 삶을 살게하며 그의 사역에 동역자가 되게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일 ( 43:19 )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일이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회복입니다. 즉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으로 내려졌던 불행한 역사가 끝나고 이제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롭고 큰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앞에서 냉담하던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의 침략으로인해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잊고계시지 않았고, 그들을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우리를 향한 ‘새일’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지으신 목적 ( 43:21 )
하나님께 대한 찬송을 부르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증인이 되게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이요, 증거자가 되기위해서 선택되었습니다. 본래 모든 인생의 목적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증거는 쉼없이(사62:6), 성령의 능력을 받아(행1:8), 부끄러움과 두려움없이(딤후1:8)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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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메시야 예언 42:1-4
이구절들은 그리스도를 언급한 것이라고 확신할수 있다. 왜냐하면 복음서 저자가 이 예언이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분명히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마 12:17-21).
(1) 성부 하나님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
1)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신다. 그는 '나의 종'이다. 그가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중보자로서 종의 형상을 입히셨다.
2)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셨다. 그는 '나의 택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지혜로 그를 택하시고 공인하셨다.
3) 하나님께서 그를 신뢰하셨다. 그는 내가 의지하는 나의 종이다.
4)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셨다. 그는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이다. 성부 하나님께서 그를 지지하시고 그를 강하게 하셨다. 그리고 영원전부터 그를 기뻐하셨다.
(2) 그리스도 직책에 대한 자격 :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하나님께서 그의 임무를 완수할수 있게 하셨다(61:1).
(3) 그에게 맡기신 사역 :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즉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시고 이방인들도 와서 그언약의 복을 누리도록 하셨는데, 이 언약아래서 이세상에 한종교를 세우는 일이 그에게 맡기신 사역이었다.
(4) 온유함과 자비로 추구하는 그의 임무(2,3절) : 그는 이일을 수행할때 요란하게 떠들지않을 것이다. 자기앞에 나팔을 울리게하거나 뒤에 수행원을 대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반대자들을 만나더라도 그들과 다투지 아니할 것이다. 오히려 인내를 가지고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였다(히 12:3). 그의 왕국은 영적인 것이었으므로 그왕국의 무기도 육적인 것이 아니었고, 그 하나님도 화려하지 않았다. 그는 악한 자들에게 인내하실 것이다. 만일 그가 악한 자들을 궤멸시키기를 착수하신다면 그들은 상한 갈대처럼 될것이지만, 그는 그들에게 회개할 여유를 주실 것이다. 그들이 연기나는 삼뭉치처럼 아주 성가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65:5), 그는 예루살렘에서 참으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참으실 것이다. 그는 회의와 공포에 짖눌린 갈대 즉 '상한 갈대'와 같은 자들 그리고 '꺼져가는 등불' 마치 이제 막 불을 붙였지만 다시 곧 꺼져버리려는 초의 심지같은 자들을 멸시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숨은 뜻이 들어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오히려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목재가 되도록 강하게 할것이다. 또한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고' 오히려 큰불길이 되도록 불어일으킬 것이다.
(5) 용기와 끈기를 가지고 오래참으심(4절) : 그가 '다이루었다'라고 말할수 있을때까지 참으실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도들과 사역자들이 실패하거나 좌절하지 않게하시어 그들이 자신들의 사역을 완수할수 있을때까지 그는 세상에 공의를 세우실 것이다. 그는 이 세상안에 자신의 정부, 즉 사람들속에 자기를 위하여 하나의 교회를 세우고 그의 복음과 은혜의 능력으로 세상을 개혁할 것이다.

Ⅱ. 메시야의 임무 42:5
(1) 하나님께서 메시야와 언약을 세우시고 그에게 임무를 주셨다(5-7절).
1) 위대하신 하나님은 여기에서 왕적인 권위있는 칭호로 자신을 알리셨다(5절). 그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므로 모든 권력의 근원이시다. 위의 세계에서는 '그가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40:22), 아래세계에서는 땅을 베풀고 그것으로 거주지를 삼으시며, 당신의 능력으로 땅의 소산'을 베푸셨다. 또한 땅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하나님께서는 이성을 가진 영물의 여러가지 재능과 기능인 '신'을 그에게 주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자신과 메시야의 언약과 메시야에게 주신 임무에 대하여 이런 사실을 전제로 두셨는데,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조성자이신 하나님께 충성하도록 회복시키는 일이 구속사역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2) 그리고 메시야에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심에 대한 확신을 주셨다(6절). 메시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스스로 그 지위를 차지한 것이 아니다(히 5:4). 그가 고통중에 있을때 하나님이 하늘에서 천사를 보내어 그에게 힘을 주심으로써 이약속은 성취되었다.
3) 이사역의 크신 뜻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심으로써 새언약의 모든 복을 값없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복음을 통해서 이방인의 언어에 빛과 자유인 두가지 영광스러운 축복을 가져오셨다. 하나님은 그를 '이방의 빛이 되게하셨다.' 메시야는 말씀의 영을 통하여 목표를 제시하고, 마음의 영을 통하여 도구를 준비하신다. 고레스가 행한 것처럼 그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기위하여 보내졌다.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내며. 그러나 고레스가 한일은 옥문을 열고 그들에게 나갈수 있게 허용한 것이 전부이지만, 메시야는 그렇게 했을뿐만 아니라 그들을 이끌어내어 그들이 그자유를 사용할수 있도록 능력을 주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것을 행하셨다.
(2) 이약속에 대한 재확인.
1) 하나님은 자신의 권위로서 이약속을 하셨다(8절).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만일 그가 만물의 존재와 출생을 주신 여호와시라면, 이약속에도 존재와 출생을 부여하실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이전에 그의 교회에게 하셨던 약속을 이루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신다는 증거가 된다(9절).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일을 고하노라. "이제 내가 새로운 약속들을 할것이며, 새로운 은총을 내리노라. 너희가 지금까지는 옛언약의 복을 넘치도록 누렸지만 이제는 내가 과일이 풍성한 들판이나 이웃에 대한 지배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인 새언약의 복을 선포하리라. 복음이 전파됨으로 그일이 시작되기전이라도 내가 이전 일들의 모형과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노라."
(3) 기쁨과 찬양의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10절) : 여호와께 새노래로 노래하며. 그리스도를 '이방의 빛'으로 주신 것은(6절) 새로운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쁨과 감사로 찬양을 드릴 것이다.
1) '땅끝에서' 즉 예루살렘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 사는 자들이 찬양을 드릴 것이다.
2) '항해하는 자들'과 선원들이, 상인들이 찬양을 드릴 것이다. 유대인들이 바다가운데서 무역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만약 항해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를 부른다면 이들은 이방인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3) '섬들과 그거민들이' 찬양을 드릴 것이다(10절과 12절).
4) '광야와 거기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이 거하는 촌락들'이 찬양을 드릴 것이다. 섬들은 예루살렘의 서쪽에 있고 광야는 예루살렘의 동쪽에 있다.
5) '셀라의 거민들', 산꼭대기에 거하는 자들 즉 바위산의 거민들, '페트리아'(바위산)라고 부르던 아라비아 사막가운데 거민들이 찬양을 드릴 것이다.

Ⅲ. 메시야의 승리 42:13-17
이구절들은 장차 이방세계가 부를 노래로 볼수도 있고, 이방세계가 그노래를 부르도록 하시기위해 하나님께서 하려는 일에 대한 예언으로 볼수도 있다.
(1) 그는 자신의 능력과 영광가운데서 여느때보다도 더크게 나타나실 것이다. 그는 자신의 복음을 전파하셨을때, 사단이 견고한 진을 파하시는 놀라운 승리를 거두셨을때(고후 10:4) 이일을 이루셨다(13,14절). 내가 오랫동안 고요히하며 잠잠하여 참았으나. 이제 마귀의 왕국을 공격하시고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기위해 나가실 것이다. 이전쟁에서 그리스도는 계속해서 이기고 진군하셨으며 결국 승리를 거두셨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사역을 '전쟁'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병사들이었다. 여호와께서...분발하여. 그가 자신의 일을 위하여 우 숭배에 대하여 이전보다 맹렬한 질투를 나타내실 것이다. 그의 말씀을 전파하실때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일을 그리스도의 일꾼들을 통하여 하셨는데, 그들은 백성들의 심령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한번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말씀을 전파한 것이다(갈 4:19). 하나님은 그의 영을 통하여 승리하실 것이다. 이것에 대한 모형과 예표로서 하나님은 유대 민족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실 길을 마련하시기위해 그들을 압제하는 자들의 권력을 부숴뜨리실 것이며, 바벨론 왕조를 일시에 궤멸시키시며 삼켜버리실 것이다. 고레스의 바사 군대를 통하여 바벨론을 멸망시키실때 하나님께서는 '큰산과 작은산을 황무케하며' 그나라를 평평하게 만드시며, '그초목을 마르게 하실 것이다.' 그군대가 행군할 길을 만들기위해 늪지대와 낮은 구릉지대를 마르게할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이 전파될때에도 이와같이 어디로든지 갈것이다.
(2) 하나님은 그의 은혜와 은총을 나타내시며, 시온으로 가는 길을 묻는 자들에게 그길을 보여주시고, 또한 그길로 인도하실 것이다(16절). 그들의 알지못하는 첩경으로 인도하며.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과 행복으로 가는 길을 그들에게 보여주실 것이다. 바울의 회심도 이와같이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먼저 그를 치셔서 소경이 되게하신 후에 자기 아들을 나타내보이시고 그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게 하셨다. 흑암으로 그앞에 광명이 되게하며. 순종의 길에는 극복할수 없는 장애물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굽은데를 곧게하시며', 그길을 평이하게 하실 것이다. 이것에 대한 예표로서 하나님은 유대 백성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올때 그들을 그들의 고토에 다시 인도하실 것이다.
(3)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실 것이다(17절). 바벨론의 우상을 멸시하여 하나님을 섬기던 유대 민족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구원하시는 모습을 바벨론 사람들이 볼때,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부어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고 말한 것을 부끄러워하게 될것이다. 개혁의 시기에는 죄가 그모습을 감추게되는 법이다.

Ⅳ. 유대인들의 불신앙 42:18-25
지금까지 선지자는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을 격려하는 예언을 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믿지않는 유대인들에게 예언한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또 그리스도에게 배척을 받는 유대인들의 모형이다.
(1) 하나님은 이백성들을 부르신다(18절).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이 기쁜소식에 주의를 기울이라. 너희 소경들아 이 기쁨이 빛을 볼수 있게 눈을 크게 떠라." 귀머거리들에게 들으라고 하시고 소경들에게 보라고 하시는 이부르심은 한편 손마른 사람에게 그손을 앞으로 내밀라고 하신 명령과 같은 것이다. 손이 말랐기때문에 그손을 내밀수 없었던 그가 손을 내밀려고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그손이 고침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2) 하나님은 이백성들의 특징을 이렇게 말씀하신다(19,20절).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유대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고백했으며, 그들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하나님의 사자였다(말 2:7)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들은 귀머거리이며 소경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어리석음 즉 그들이 소경인 것과 그들의 고집, 즉 그들이 귀머거리인 것을 책망하신다. 그들은 심지어 이방인들보다 더나쁜 상태에 있었다.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의 사자라고 고백하는 자들이 영적인 것에 대해 눈멀고 귀먹은 상태가 다른 사람보다 더나빴던 것이다. 선지자는 유대 나라의 소경됨과 완고함을 계속해서 묘사하고 있다(20절). 우리 주님도 그와 동일하게 말씀하셨다(마 13:14,15).
(3) 이 백성들이 아무리 눈이 멀었고 귀가 먹었다하더라도, 하나님은 존귀하신 자신의 이름을 보존하실 것이다. 이말씀은 이방인을 부르시고 유대인을 버리신 것에서 성취되었다. 여호와께서...그 교훈을 크게하며 존귀케하려 하셨으나. 율법은 참으로 존귀한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율법에 순종함으로 율법을 크게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불순종을 처벌하심으로 율법을 크게하실 것이다.
(4) 하나님은 유대 민족이 고의적으로 소경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재앙을 보내실 것이다(22절). 도적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바벨론에서 회개하지 않고 행실을 고치지않은 자들은 영원한 포로생활의 형벌을 받았던 것이다. 그들의 죄때문에 그들은 모든 재산을 탈취당했다. 그들가운데 더러는 굴속에 잡혔으며 다른 사람들은 옥에 갇혔다. 그들이 이런 상태에 놓여있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것이다. 이말씀은 유대 나라가 로마군에게 완전히 멸망되었을때 성취되었다.
(5)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구원을 위해 그들을 권고하신다. 그들의 처지가 비참하기는 하지만, 절망적인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머거리였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매를 드시사 '너희중에 누가 이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고 알아보실 것이다(23절). 한가지 방법이 효과가 없다하더라도 다른 방법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금후로 영원토록 말씀을 들어야 한다. 환난속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라. 그환난의 도구가 누구이든지간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바라보라(24절). "과거에 하늘의 은총을 받고 땅위에서 지배권을 행사하던 야곱과 이스라엘 민족을 탈취를 당하게 하며, 지금과 같이 바벨론과 로마 사람들에게 노략물이 되게 하신 자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선지자는 다니엘 9:7,8절처럼 자신도 죄인인 것을 시인했다. 그죄가 가져오는 불행을 살펴보라. 죄는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켜 민족을 치게하며, 따라서 우주적인 대재난에 불을 붙이며 모든 것을 불속에 던져 버린다.

# 핵심
42:1-9
이스라엘로 대표되는 모든 성도들을 향한 메시아의 구원약속이 선포된다. 본문은 ‘여호와의 종의 노래’라고 불린다.
상한 갈대(42:3)
갈대가 상했다는 것은 바람과 같은 외부의 힘에 의해 반쯤 부러진상태를 의미한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한다’는 말씀은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연약한 자들을 가혹하게 다루지 아니하고,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일이나 고난을 부과하지도 않으시며, 더이상 자신의 삶에 대해 소망이 없고 소생할 기운도 없는 자들을 붙들어주실 것을 뜻한다.

# 묵상
하나님이 붙드시는 종의 임무 ( 42:1-4 )
바로 공의를 베푸는 것입니다. ‘의’란 말은 법에 근거한 판단이나 판결을 가리키는데, 이법은 세상법과는 다른 하나님의 법입니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 ( 42:3 )
이것이 상징하는바는 통회함으로 마음이 낮아진 자를 의미합니다. 즉 죄로 말미암아 죽을수밖에 없는 죄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롬3:23).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위해 당신의 귀중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새일 ( 42:9 )
대표적으로 구원사역을 들수 있습니다. 지난일이 심판의 사역이라면 포로된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은 바로 그들을 포로상태에서 구하시고 자유를 얻게하시는 일, 바로 새일인 것입니다. 죄에 빠져 늘 부패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위해서 계획하시고 2천년전에 이루신 가장 크고 놀라운 새일은 바로 하나님의 성육신(Incarnation) 사건이며 십자가에서의 대속사역입니다.
새노래로 드리는 찬송 ( 42:10-15 )
우리가 새노래로 하나님께 영원한 찬송을 드려야 하는 까닭은 오래참으셨던 하나님께서 이젠 용사처럼, 전사처럼, 해산하는 여인처럼 하나님의 일을 위해 직접 나서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처지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때문에 찬양해야 합니다(43:21).
그 교훈 ( 42:21 )
여기서는 율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당신의 율법을 주시어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것을 온세상에 전하게 하고자 하셨으나 이스라엘은 그것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의 삶을 통해서 율법을 증거하고 전하기보다는 율법을 받은 민족으로서의 특권만을 즐기려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로인하여 율법대신에 복음이 이세상에 들어왔고 온세상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장래사 ( 42:23 )
미래에 될일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해방시키실 구원계획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예비된 장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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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경고 41:1-9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기때문에 그들의 구원자로 고레스왕을 일으키신 사실은 모든 우상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이다.
(1) 우상숭배자들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경고하신다(1절). 이것은 21절에서 반복된다. 소송을 일으키라. 법정이 소집되고 섬들에게 소환장이 발부되었다. 그리고 여느때처럼 재판이 시작될때 정숙이 선포되었다. 내앞에서 잠잠하라. "때가 이르기까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우상의 변호인들에게 변호할만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지시하신다. "너희는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그들의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우상들의 명예를 위하여 증명하라. 자유롭게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
(2) 하나님은 자기를 경배하는 자들을 위하여 이전에도 하셨고, 또한 지금 하시려는 일들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특별히 우상들에게, 그들을 경배하는 자들을 위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물으신다.
1) 여기에서 증명되어야할 것은 다음과 같다.
①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며, 그는 태초에도 나중에 있을 자에게도 그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4절). 그는 무한하시며 영원하시며 변함이 없으신 분으로서 태초부터 세상을 다스리기 시작하여 시간이 끝날때까지 다스리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② 이스라엘은 그의 종이다(8절). 따라서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시고 들어쓰시며, 그들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며 계속적으로 받으시리라는 사실이다.
2) 이것을 증명하시려고 하나님은 다음의 사실을 보여주신다.
① 이 무시당하는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에서 불러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동방에서 일으킨 의로운 사람이다. 갈대아 역본에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동방에서 아브라함을 공식적으로 데려오신 분이 누구인가?' 이스라엘 민족의 명예를 보존하기위하여 그들의 위대한 조상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부르신다(8절). 또한 갈대아의 우상숭배 행위를 비난하기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우상숭배로부터 어떻게 불러내셨는가를 보여주셨다(수 24:2,3이하). 또한 바벨론의 포로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이 고토로 돌아갈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하기 위하여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그바벨론 땅에서 어떻게 데리고 오셨으며 그땅을 유업으로 주셨는가를(창 15:7) 돌이켜 보게하는 일은 적절하다 할수 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으로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었다(롬 4:3,11;고후 5:21;창 18:19). 하나님은 그를 동방, 가나안의 동쪽에 놓여있는 우르로부터 일으키셨으며 후에는 하란으로부터 일으켜 세우셨다. 하나님은 그를 죄악으로부터 일으켜 세우사 경건한 자가 되게 하셨으며, 이름이 없는데서 일으켜 세우사 유명한 자가 되게하셨다. 하나님은 그를 불러서 자기 발앞에 이르게 하시고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따르게 하셨다. 그는 '갈바를 알지못하고' 나아갔으나(히 11:8) 자기가 누구를 따르고 있는지는 알았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발앞에 가서 엎드리던지, 혹은 그의 발등상이 되어야한다. 하나님은 열국으로(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그앞에 굴복케하셨는데 헷족속도 그를 큰방백으로 인정하였다(창 23:6). 하나님은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셨다. 아브라함은 롯을 구출하기위해 그들을 정복하였던 것이다(창14장).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래같게' 하시므로 아브라함은 '그들을 쫓았으며' 하나님의 보호아래 평안히 그길을 지났던 것이다.
② 이제 오래지않아 동쪽으로부터 고레스를 일으키실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과거의 사실로서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실 것이다(참조. 45:13). 이것은 이렇게도 해석된다. "그를 자기 발앞에 이르게하실 것이라." 그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바를 행하시며, 그가 왕위로 나아감을 반대하는 민족들을 정복하게 하실 것이다. 그는 의자체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 될것이다. 하나님은 때가차면 그리스도를 일으켜 세우시고, 어두움의 세력들에 대하여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3) 하나님은 고집스럽게 우상숭배를 주장하는 우상숭배자들의 어리석음을 폭로하신다(5절). 섬들이 보고. 섬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위하여 하신 일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을 위하여 하신 일 즉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셔서 열방들을 다스리고 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는지 다보았던 것이다(출 15:14-16). 그들이 두려워하며 '함께 모여왔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도와 상의하여 어리석은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는 대신에 서로 계속해서 우상숭배를 하도록 격려하였다(6,7절). 이들이 서로 말한 내용은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의 신들의 명예를 계속해서 지키기를 만장일치로 가결하자"는 것이었다. 상인들은 서로 격려하여서 신상만드는 고급기술을 유지하기위한 조합에 가입하게 하였다. 그들은 신들이 보호를 받기위하여 옛날 신들에게만 의지한 것이 아니라 '근래에 일어나 새 신'을 또 만들었다(신 32:17). 따라서 목공은 자기가 맡은 목재 일을 끝냈을때 '금장색을 장려하여' 금도금이나 금박을 씌우도록 하였다. 그리고 신상이 금장색들의 손에 넘어왔을때 '마치로 고르게 하는 자.' 즉 금을 빛나게 하고 쳐서 얇게 펴는 사람은 모독질하는 '메질군'을 재촉하고 그에게 '땜질이 잘된다'(금을 입힐 준비가 다 되었다)고 말하였다. 아마 이것이 마지막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신상에 '못을 단단히 박아' 고정시켰다. 이제 하나의 금우상을 가지게된 것이다.
(4)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자기를 신뢰하도록 격려하신다(8,9절).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우상숭배자들은 자신을 무능력한 우상들의 보호아래 둔다.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신뢰하는 자들은 모두 우상과 같으나 '이스라엘아' 너는 더나은 주인의 종이로다." 이들은 하나님의 종들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자기에게 특별한 백성이 되도록 '택하셨다.' 이들은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벗'이라고 부르신 사실은 아브라함에게 큰영광이 아닐수 없다(약 2:23). 이스라엘 민족은 조상덕분에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번번히 하나님에게 반역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시지 아니하셨다. 따라서 이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Ⅱ. 이스라엘을 격려하심 41:10-20
본문은 비탄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종들의 두려움을 덜어주고 믿음을 격려하려는데 그목적이 있다. 우선은 포로중에 있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격려하기위한 것이지만, 또는 이성경의 위로의 말씀을 통하여 참고 견디며 충실히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자들이 희망을 갖게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두려워말라'는 경고, 충고, 위로의 말씀이 빈번히 반복되고 있다. '두려워말라'라는 구절이 13,14절에도 다시 나온다. 하나님의 백성이 겁약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어긋나는 것이다.
(1)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하나님으로서 자신들과 함께하심을 의지할수 있을 것이다. 나의...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어떤 사람들은 이말을 '손에 손을 잡고'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하나님이 그들의 안내자가 되신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약해질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일으키시고 격려해주시며 '오른손을 붙드실' 것이다(시 73:23). 그는 우리의 두려움을 잠잠케 해주신다. 네게 이르기를...두려워말라. 하나님은 이것을 말씀으로 거듭 확인해 주셨지만 이것으로 끝내지 않으실 것이다. 즉 하나님의 신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말씀해 주실 것이다.
(2) 원수들이 지금은 가공할만큼 두려움의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처리하실 날이 다가오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노를 발하고, 다투며(11절), 싸우고(12절), 미워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때에 하나님의 백성들과 다툰 자들은 유죄판결을 받게될 것이다. 그들은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다. 그 수치와 욕이 그들을 충분히 회개하게 만들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에 대해 진노할 것이다. 그들은 멸망할 것이다(11절). 즉 하나님의 심판과 권능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될것이다.' 12절에도 이내용이 반복되어 있다.
(3) 그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지금 그들이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오히려 두려움이 될것이며, 승리를 차지할 것이다(14-16절). 지금은 하나님께서 야곱과 이스라엘을 작게 하시고 아주 낮은 자리에 내려가게 하셨다. 즉 아주 작고 약하고 힘이 없어서 모든 사람에게 짓밟히고, 살기위해 땅속으로 들어갈수밖에 없는 존재인 '지렁이 같은 야곱'이 되게 하셨다. 야곱 곧 이스라엘의 왕은 자신을 '벌레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시 22:6). 간혹 하나님의 백성은 지렁이처럼 되기도 하지만 독사의 자식들인 원수들처럼 뱀이 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야곱의 비천한 상태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렁이같은 너 야곱아...두려워말라. "네 몸이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말아라."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혹자는 이구절을 '너 적은 사람들아'라고 해석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너 죽은 자같은 사람들아'라고 해석한다). "네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라." 이렇게 왜소한 야곱을 일으켜 세울 자가 누구인가? 우리는 여기에서 그대답을 듣는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하나님은 약한 자를 돕는 것을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셔서 스스로를 돕게하시고 '타작기계'로 삼으실 것이다. 다음을 주목하여 보라. 그는 하나의 도구이며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하나의 연장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타작기계'로 만드신다면, 소용에 맞게끔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 혹은 끝이 날카로운 기계로 만드실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의 명령과 권능을 힘입어 '산들을 쳐서 겨같게'하고 원수들가운데 가장 높고 가장 강하고 가장 고집센 자들을 타작할 것이다. 16절에는 은유법을 상용하고 있다. 타작을 한후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릴' 것이다. 이것은 마카비시대의 유대인들이 승리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어두움의 세력들을 정복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교회의 모든 원수들이 당할 최후의 운명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기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라'(계 2:26).
(4) 그들은 하나님안에서 넘치는 위로를 받을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넘치는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너는 여호와로인하여 즐거워하겠고(16절). 즉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와 그가 너희를 위해 행하신 일로인하여 '자랑하리라.'
(5) 만일 그럴경우가 발생한다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행군할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일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시 그들을 위해 일하실 것이다(17-19절). 포로된 자들이 바벨론에 있을때든지 거기에서 돌아올때든지 그들이 물이나 쉴곳을 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실 것이다. 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오는 사건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시는 사건의 예표이었다.
1) 이언약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주어졌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발견하였을때 하나님께서 충분히 그들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며, 모든 기도를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할수 있게된다.
2) 또한 이언약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영을 통하여 모든 신자들에게 적용되며, 이렇게함으로 신자들은 사는동안 위로를 받으며 결국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세상 여정을 가는동안 곤경에 처할때가 자주 있다고 가정되어 있다.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즉 그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다. 사람의 영혼은 이리저리 만족을 찾아다니지만 이세상에서는 곧 실망하고 말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슬픔을 보상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내가 여지껏 그들과 함께한 것처럼, 이 고난중에서도 함께있을 것이라." 우리가 이세상 광야에 있는동안 이약속은 우리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신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같은 것이 되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신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리하여 옛날 이스라엘과 같이 우리도 도무지 기대할수 없는 곳에서 신선한 물을 얻게될 것이다(18절).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내가 은혜의 강, 기쁨의 강, '생수의 강'을 내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이다(요 7:38,39).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광야를 저수지로 바꾸는 것과 같다.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심고(19절). "이는 내 백성이 숲속을 거니는 것처럼 수월하고 즐겁게 광야를 지나가게 하기 위함이라. 이나무들은 내 백성에게 이스라엘의 구름기둥 즉 더위를 막는 안식처가 될것이라."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는 신자들에게 이와같은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이방 광야에 그의 교회를 세우실때 사람들의 본성에 가시와 찔레가 백향목으로 변하는 것과 같은 큰변화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역사안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그것을 인정하게 될것이다(20절). 즉 이 놀라운 변화는 일반적인 자연현상을 넘어선 것이며, 전능자의 능력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될 것이다.

Ⅲ. 우상에 대한 재판 41:21-29
여호와께서는 여기에서 다시 선지자를 통하여 우상숭배자들에게 요구하신다. 너희 우상(숭배자)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너희 우상들이 신이며 경배할만한 가치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할만한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21절).
(1) 여기에서 우상숭배자들에게 하시는 요구는 그들의 지혜와 능력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지력과 일하는 능력은 사람의 기본 소양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신처럼 행세를 하려면 이런 것을 완벽하게 갖추고있어야 한다.
1) 그들은 우리가 예전에 알지못하였던 것을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줄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부지하다. 우리가 알려달라고 그들에게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①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22쩔). "너희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어떤 일을 한적이 있느냐?"
②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즉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밝히라는 것이다(22,23절). 하나님께서 알려주시지 않는다면 다가올 일을 확실하게 예언할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2) 그들은 우리가 우리 손으로 할수 있는 것을 아무것도 할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무능하다. 이 우상들에게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판결이 내려졌다(24절).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이렇게 해석한다. "그들이 행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너희를 택하여' 너희에게 신성을 부여한 자는 하나님께 가증한 자이라." 종이 자기 주인을 택할수 있는 자유가 있을수도 있으나 사람이 자기 하나님을 선택할 자유는 없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여기에서 자신이 참신이며, 하나님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계신다.
1) 하나님은 불가항력의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고레스를 일으키심으로 곧 이능력을 나타내실 것이다(25절). 내가 한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하며...해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고레스의 아버지는 메대 사람이며 어머니는 바사 사람이다. 그의 군대는 바벨론의 북쪽에 있는 나라인 메대 사람들과 동쪽에 있는 나라인 바사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하나님은 그를 들어 큰권력을 주실 것이며, 그는 바벨론을 정복할 것이다.
①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할 것이다('내 이름을 부르는 자'가 이렇게 해석될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유대 민족의 해방을 선포하고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선포함으로 이루어졌다.
② 모든 반대자들이 그앞에 엎드러질 것이다. 그가 이르러 방백들을...토기장이의 진흙을 밟음같이 밟을 것이니. 인간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북방에서 일어나셨다. 왜냐하면 나사렛이 가나안의 북부 지방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언약의 사자로서 그리스도께서는 동방에서 일어나셨다. 그는 하늘의 영예를 지니고 진흙같은 어두움의 권세를 누르시고 밟으셨다.
2) 하나님은 확실한 통찰력을 가지고 계시다. 거짓 신들은 통찰할수 없었을뿐만 아니라 앞날을 내다볼수도 없었다.
①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들의 가장된 신성이나 예언능력을 행사해보라고 요구하신다(26절).
② 그리고 이일을 행하며 이일을 내다보는 능력은 하나님 자신에게만 속하는 명예라고 말씀하신다(27절). 내가 기쁜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 이말은 구속사역에도 적용될수 있다. 즉 여호와께서는 화해의 기쁜소식을 구속사역 안에서 우리에게 주셨다.
3) 여기에 이재판에 대한 판결이 나와있다.
① 놀라운 역사를 예언한 우상은 아무도 없었다. 고레스가 바벨론의 포로상태에서 해방시킨 민족은 유대민족외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신들의 말이나 예언자들을 통해 이소식을 미리 전해들은 민족도 없었다. 어떤 민족의 신도 하나님께서 장차 메시야를 통하여 보여주실 것과 같은 구원의 도를 그들의 숭배자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② 거짓 신들을 변호하던 자들가운데 그들의 지혜와 능력의 실례를 제시하여 그들이 신이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증명할수 있었던 자는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묵묵부답에 대한 판결은 피고에게 불리하게 될수밖에 없다.
③ 그러므로 그들의 기소내용대로 판결이 내려졌다(24절).

# 핵심
41:1-20
이스라엘이 구원을 갈망할때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는 예언이다.
야곱의 왕(41:21)
이스라엘의 왕되시는 하나님을 가리킨다(44:6). 본절에만 사용된 이말은 당시 국가의 수호신으로 숭배되던 이방의 우상들과 달리 유일하고 참된 왕이신 하나님을 강조한다. 당시 이방 신들의 이름은 대부분 ‘왕’이라는 뜻과 연관을 맺고있었다. 예를들면 몰록은 ‘왕’이란 뜻이며, 멜카르트는 ‘그성읍의 왕’, 아드람멜렉은 ‘영광의 왕’, 바알은 ‘주’라는 뜻이다. 그러나 ‘야곱의 왕’은 이같은 이방 신들과 달리 이스라엘의 역사가운데서 계시하시는 인격적인 왕이실뿐만 아니라,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신다.

# 묵상
하나님이 두려워말라고 하신 이유 ( 41:10 )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말은 두려워말라는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두려움을 없애주는 외침입니다.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표현 ( 41:14, 15 )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가리켜 ‘지렁이같은 야곱’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말은 서로 조화를 이룰수 없는 표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각각의 역할에 맞는 호칭으로서, 전자는 바벨론에 멸망당하여 비천한 신세가 되어버린 유다를 그리고 후자는 새로운 심판도구로 사용될 유다를 가리킵니다.
구속자가 되시는 하나님 ( 41:14 )
히브리어로 구속자는 ‘고엘’인데, 이는 가족이나 씨족중에서 종이된 자를 다시 구해낼 의무를 지닌 사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해내실 분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한 이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속자이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련하고 빈핍한 자 ( 41:17 )
이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심령이 가난하거나 의에 목마른 사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물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생명수를 마시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역사 ( 41:18, 19 )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보여주신 이러한 역사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놀라운 일들이 발생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나무없는 산에 강이 흐르고 골짜기에 샘이 솟으며, 광야가 못이 되고 그곳에 무수한 과수가 자라는 것을 본 사람은 모두 그것이 보이지않는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고 감사하게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 있으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리라고 명령하면 그대로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이말씀은 폐허가 된 고국에서의 생활을 앞둔 포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이 낙원을 이루게될 것을 믿게하고 격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상들에게 소송을 제기하라 ( 41:21 )
하나님께서 우상들에게 소송을 제기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신됨을 드러내라는 뜻입니다. 우상이란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 ‘허무한 것’이므로 자신이 신임을 증거할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 거짓신은 하나님과 결코 비교될수 없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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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기쁜소식을 전파하라 40:1-2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라는 이임무와 지시는 비단 이사야 선지자에게 뿐만아니라 여호와의 모든 선지자들과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자들에게 내려진 것이다. 이말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자비를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특히 예루살렘이 파괴되어 포로로 잡혀갔던 당시의 선지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시이다. 포로된 자들을 격려하여 희망을 갖게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였다. 또한 이말은 성령께서 위로자와 그리스도인들의 기쁨의 조력자로 세우신 복음의 사역자들에게 자신들의 임무를 상기시키는 말씀이다.
(1)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체적으로 주신 위로의 말씀이다(1절). 선지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그의 백성을 위로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세상에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최악의 환경가운데서도 위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가 이사야서 전반부에서 본것과 같은 정죄의 말씀뒤에는 반드시 본문에 나타나있는 것과 같은 위로의 말씀이 따라온다. 그이유는 우리를 지으신 그분이 우리를 치료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 이것은 특별히 예루살렘에서 하신 위로의 말씀이다(2절).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이것을 속삭이지 말고,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즉 죄인들에게 그들의 죄악을 보여주고, 또한 성도들에게 위로를 보여주라. 예루살렘으로 이것을 듣게하라." '그 복역의 때' 즉 정해진 노예생활의 기간이 끝났다. 이제 전쟁이 종료되었다. 인생은 전쟁이다(욥 7:1). 성도의 생활은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전투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며, 언젠가는 끝이날 것이다. 그때 선한 군사들은 안식에 들어갈뿐만 아니라 보상을 받게될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고통의 원인이 제거될 것이다. 그리고 원인이 제거되었을때 결과도 끝나게될 것이다. 예루살렘에게 '그죄악의 사함을 입었다'고, 하나님께서 그와 화해하셨다고 말하라. "아들아 즐거워하라 너의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이말보다 더 큰위로의 말은 있을수 없다. 죄사함을 받는 그때에 사랑안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이 제거된다. 그모든 죄를 인하여(즉 예루살렘이 그모든 죄를 치유하기위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우상숭배는 큰죄악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하심으로 이죄악에서 깨끗케하시기를 작정하셨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우상숭배에서 격리될만큼 충분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포로생활의 고통은 그들의 마음속에 우상에 대한 강한 반감을 심어놓았으며, 이죄악을 깨끗하게 하는데 필요한 것보다 훨씬 강한 처방이었던 것이다. 진실하게 회개하는 자들은 참으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여러가지 고난안에서 '그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는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써 이루신 속죄가 죄의 대가보다 두배이상,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것이다.

Ⅱ. 구속을 위한 준비 40:3-8
시온에 은혜베푸실 때가 다가왔을때, 회개와 믿음으로 그들을 위해 마련해두신 은혜에 알맞게 준비시킬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글을 보는데, 우리는 이말을 포로시대의 선지자들 즉 구원의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포로된 자들에게 이구원에 대한 준비를 하라고 외치던 선지자들에게 적용시킬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례요한에게 적용되는 말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정돈시키기위하여 즉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1) 그는 백성들에게 죄에 대하여 회개할 것을 요구함으로 그들을 준비시켰다. 세례요한은 이것을 온유대와 예루살렘에 전파하고(마 3:2,5), 이렇게함으로써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였다'(눅 1:17). 하나님은 지금 자비의 길로 오신다(3-5절).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 이것을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에 적용시킨다면, 아무리 많은 어려움이 그들앞에 가로놓여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돌아올때에 이모든 어려움이 제거되리라는 약속으로 간주할수 있을 것이다. 이광야의 소리는 선구자들로하여금 길을 고르는 작업을 하게한다.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가 우리 영혼속으로 들어오시도록 준비하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부르심이다. 우리는 이와같은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자신을 정돈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여호와께서 들어오심에 방해가 될만한 것은 전부 없애버려라. 그리스도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라."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하라. 실의와 좌절때문에 그리스도안에 있는 위로를 얻지못하는 자들은 '돋우어야' 되는 골짜기들이며 자고한 마음때문에 그리스도안에 있는 위로를 얻지못하는 자들은 반드시 '낮아져야' 되는 언덕이며 산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도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며 불순종하는 자들은 곧게되어야 하는 굽은 길이다. 이일이 이루어졌을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5절). 포로된 자들이 구원을 받을 준비가 되었을때 고레스 왕이 구원을 선포할 것이다. 세례요한이 일정기간동안 회개를 전파하여 백성들이 여호와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었을때(눅 1:17) 메시야가 직접 그의 영광가운데 나타나셔서 여러가지 이적을 행하실 것이며, 요한이 죄인이라고 선언함으로 상처입혔던 자들을 은혜로써 안위하시고 싸매고 치료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은 이방을 비추는 빛이 될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오는 것은 이웃 백성들이 주목하여 보았던 것처럼(시 126:2),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볼 것이다.'
(2) 그는 어떤 피조물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믿게함으로 백성들을 준비시켰다. 구원에 관한 여러가지 예언과 약속이 성취될때, 여호와의 언약이 확실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사람의 능력이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앞에서 풀과 같이 될것이며, 시들어서 땅에 떨어지게될 것이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바벨론 사람들도 풀과 같을 뿐이다. 또한 사람의 능력이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돕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을 의뢰하여서는 안된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풀과 같을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구원하려 하실때에는 그들이 피조물을 의지하던 행위와 산과 언덕에서 구원을 찾던 행위를 모두 끊어버리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 곧 이제 나타날 여호와의 영광과 그의 은혜 곧 영광과 함께 우리에게 보내주시며 또한 우리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히 있을 것이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려는 우리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이 약하며 시들어져 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수 없다. 피조물의 모든 아름다움은 풀과 꽃과 같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행복을 공급해 주시는데 이행복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Ⅲ.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 40:9-11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리라'는 약속을 주셨다(5절).
(1) 이 영광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9절). 여호와의 영광에 대한 소식이 시온과 예루살렘에 나아있는 자들, 곧 전에 그땅의 포도원지기와 농부들이었던 가난한 자들에게 공포될 것이다. 그들은 형제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될 것이다. 또한 전에는 시온과 예루살렘에 속해있었지만 지금은 포로된 자들도 이소식을 듣게될 것이다. 시온이 '바벨론의 딸과 함께 거한다'고 표현되어 있다(슥 2:7). 시온은 거기에서 고레스의 관대한 정책발표를 들었다. 그리고 시온과 예루살렘이 이소식을 공포할 것이다(본문을 이렇게 해석할수도 있다). 그곳에 남아있는 자들, 이미 돌아온 자들은 이소식을 가능한한 크게 외쳐야 한다. 힘써 소리를 높이라. "유다의 성읍들과 그땅의 모든 거민들에게 말하라." 너희 하나님을 보라. "이는 우리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도다." 후에 유대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즉시 제단을 세우고, 예루살렘에서 다른 유다 성읍들에게 통지하여 와서 희생드리는 일에 그들과 동참하라고 초청하였다(스 3:2-4). 본문의 이 예언은 이 초청의 말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공공연하게 담대히 전파할때 완전히 성취될 예언이었다.
(2) 장차 나타날 그영광은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그는 매우 강하기때문에 누가 대항한다 할지라도 전혀 방해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고 의로우신 재판장으로서 모든 사람의 업적에 따라 보상하실 것이다.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앞에 있으며. 하나님은 행하신바를 친히 아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이시다(시 80:1). 또한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이시다(요 10:11).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그의 말씀은 양떼를 먹이는 꼴이며, 그의 법은 양들이 뛰노는 들판이다. 그리고 그의 사역자들은 작은 목자들이다. 그는 약하여 스스로 어떻게 할수 없는 양들과 '젖먹이는 암컷들을' 돌보신다. 선한 목자는 어린이들, 연약한 초신자들, 믿음이 약한 신자들과 슬픈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세밀한 관심을 기울이신다. 이들은 그의 양떼들이다. 그는 이 양들이 방황할때 모아들이시며 넘어질때 일으키시며 흩어질때 함께있게 하심으로 결국 함께 모아 안전하게 자기에게로 이끌어 주신다. 그리고 이모든 일을 손수하시므로 양들을 그의 손에서 빼앗아갈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요 10:28). 그는 양들을 자상하게 인도하실 것이다.

Ⅳ. 하나님의 크심 40:12-17
이본문은 이스라엘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기록한 목적은 바벨론에 포로된 자들을 격려하여 희망을 가지게 하고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의뢰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구원에 관한 기쁜소식을 받는 자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신앙심으로 가득차게 하기 위함이다.
(1) 하나님의 능력은 한이 없다(12절).
1) 하나님의 영역은 광대하다. 광활한 하늘을 바라보라. 그러나 위대하신 하나님은 '뼘으로 하늘을 재신다.' 그는 이세상에 있는 모든 물을 '손바닥으로' 헤아릴수 있으며, '땅의 티끌을 (한)되에 담으신다.' 혹은 세손가락으로 집는것 이상의 분량밖에 되지않는다.
2) 하나님의 힘은 무한히 커서, 상인들이 물건을 저울에 달아보는 것처럼 쉽게 산들을 옮기실수 있다. 하나님은 산들을 평형 저울에 달아놓으신 것처럼 정확하게 균형을 잡아놓으셨다.
(2) 하나님의 지혜는 헤아릴수가 없다(13,14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아무도 따라할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생각하지 않으신 어떤 것을 제안할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여호와께서 세상을 만드실때(요 26:13) 그에게 충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그에게는 이세상 통치에 대하여 조언하는 어떤 묘사도 필요하지 않다.
(3) 비교해보면 세상의 열국들은 아무것도 아니다(15,17절). 모든 크고 강력한 나라들과 가장 호사스러운 왕들과 가장 인구많은 왕국들을 보라. 많은 섬들 열방의 무수한 섬들을 보라. 하나님앞에서는 이것들이 광대한 바다에 비하여 '통의 한방울 물'같고, 땅의 모든 티끌에 비하여 '저울의 적은 티끌'(너무 적어서 저울이 움직이지도 않아, 무시될 정도의 양) 같다. 그가 '섬들을 먼지같이' 드시며 열방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므로 우리도 이것들을 이와같이 여겨야 한다. 하나님은 태초에 이모든 것을 아무것도 없는데서 이끌어내신 것처럼, 또한 쉽게 없이 하실수도 있다. 이것들은 모두 '빈 것'이다. 이단어는 창1:2절의 공허한 상태를 묘사하는 단어와 동일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이와같이 하찮은 것이지만, 이세상을 구원하시기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는 사실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웅변적으로 대변하는 것이라 할수 있다.
(4) 우리가 아무리 교회에서 봉사한다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 무엇을 더해드리는 것은 아니다(16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삼림은 그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하나님은 모든 찬양과 송축, 모든 번제와 희생보다 훨씬 높이 계시는 분이시다.

Ⅴ. 하나님과 우상비교 40:18-26
여기에서 선지자는 첫째, 우상들을 만들어놓고 이것들이 하나님을 닮았다고 말하며 충성을 바치는 사람들을 책망한다. 둘째, 피조물들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이들을 하나님보다 더두려워하고 더사랑하는 사람들을 책망한다. 선지자는 여기에서 같은 질문을 두번 한다.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하겠으며(18절).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25절). 이질문은 눈에 보이지않는 하나님에 대한 눈에 보이는 형상을 만들고 또 거기에 신성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보여준다. 또한 피조물을 하나님과 동일하게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보여준다. 교만한 사람들은 자신을 하나님과 같이 여기며 탐심이 많은 사람들은 돈을 하나님과 같게 만들어 버린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하나님보다 더귀중하게 생각하거나 사랑하며 두려워하거나 그안에 희망을 둔다면, 그피조물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며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모독이 된다.
(1) 이제 선지자는 우상이란 한낱 경멸의 대상일뿐이라고 설명해준다(19,20절). 우상들가운데 좀나은 종류를 생각해보자. 이것도 어떤 형편없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제작자가 원하는 모양대로 주물한후, 금신상이 되도록 하기위해 도금하였거나 겉에 금박을 입힌 것이다. 이것은 직공이 만든 것이기때문에 사람의 제작물이지 '참신이 아니다'(호8:6). 이것은 겉은 금이지만 속은 납이나 동이다. 따라서 비록 신성을 나타낸다하더라도 드러나보이는 것과 본질이 다르기때문에 이것은 기만이다. 너무 '궁핍하여' 자기 신에게 희생하나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자도 비록 청동이나 대리석으로 신상을 만들지는 못한다할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목상이라도 가지기를 원한다. 따라서 '썩지않는 나무를 택하고' 그것을 조각하여 자기의 신상을 만들 것이다. 좀나은 부류의 사람들은 사슬을 가지고 자기 신상들을 장식한다. 그리고 비록 나무우상을 가진 자들도 우상이 '흔들리지않도록' 배려한다. 이 우상숭배자들은 자기 자신들이 만든 그신상들('느후스단', 놋조각 혹은 나무 막대기)이 자기들에게 어떤 행복을 줄수 있으리라고 허황된 꿈을 꿈으로써 자신들의 이성을 얼마나 부끄럽게 만드는가! 또한 이들이 유일하시고 참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애하는 우리들을 얼마나 부끄럽게 만드는가! 이들은 자신의 우상들을 위해 어떤 지출도 아끼지 않는데,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되는 것을 낭비하는 것으로 여기고 얼마나 인색하게 굴었는가.
(2) 선지자는 하나님을 무한히 크시고 최고의 경배를 받으실만한 분으로 증명하기위하여 다음의 사실들을 제시한다.
1) 그는 사람들이 '주께 대하여 귀로 들은 것'을 증거로 제시한다(21절). "너희는 직관적으로 '알지못하느냐.' 태초로부터 조상들과 선진들에게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전승에 의해 아버지들과 선생님들에게서 '듣지 못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때부터 항상 인정되어온 사상, 즉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신들위에 크신 왕이시라는 사실을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에 관한 보이지않는 것들이 '창세로부터 분명히 보여 알게되어 있다'(롬 1:20). 우리는 조상들과 장로들에게 물을수 있을뿐만 아니라(신 32:7), '길가는 사람들'에게(욥 21:29) 맨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물어볼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신다. 하늘과 땅도 그의 관할하에 있다. 그는 땅위 궁창에 앉으시나니(22절).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하늘을 펴고 계시며, 또한 하늘이 두루마리같이 말려질 그날이 오기까지 계속 그렇게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커튼을 아침에는 열고 저녁에는 닫는 것처럼 쉽게 하늘을 펴신다. 그리고 이땅에 대하여 하늘은 '거할 천막' 같은데, 우리 머리위에 씌운 유리덮개와 같다. 하나님의 눈에는 수많은 이땅 거민들이 우리 눈의 메뚜기같이 작고 또 쉽게 부수어버릴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탐꾼들이 아낙 자손들앞에서 자신들을 메뚜기로 생각했다면(민 13:33), 그크신 하나님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이 되겠는가? 메뚜기는 잠깐동안밖에 살지못하며 개미와는 달리 아무렇게나 생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와같이 살아간다. 하나님을 거역하며 생동하는 사람들을 그의 능하신 손으로 반드시 끌어내리실 것이다(23,24절). 그들은 겨우 심기웠고 겨우 뿌리웠고. (흠정역에는 '하나님이 심으시지도 않고 씨를 뿌리시지도 않고'로 되어있다-역주.) 씨를 뿌리거나 묘목을 심는 것은 식물을 번식시키는 두가지 방법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씨를 뿌리시지도 심으시지도 않으신다면, 그리고 '그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는다면 그들은 권력을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2) 그는 '주께 대하여 그들이 눈으로' 본것을 증거로 제시한다(26절). 너희는 눈을 높이들어. "항상 이땅만 살피지 말고, 가끔 위를 보라. 하늘의 찬란한 빛들을 보고 누가 이것들을 창조하셨는지 생각해보라." 우리가 피조물중에서 보는 것이 우리를 창조주에게로 인도할 것이다. 우상숭배자들은 '하늘의 군중'들을 볼때, 그이상의 것을 보지못하고 일월성신에게 경배할 뿐이었다(신 4:19). 창조주께서는 마치 장군이 자기부대 병력을 출동시키듯이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내신다.' '저가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시 147:4). 그의 권세가 크고...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Ⅵ. 야곱을 꾸짖으심 40:27-31
(1)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 곧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불신앙때문에 바벨론에 포로된 자들을 책망한다(27절).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네 자신과 네 적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하느냐.
1) 선지자는 여기에서 그들을 '야곱아', '이스라엘아'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이것이 그들로하여금 불신앙을 부끄러워하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공인하신 백성으로서, 즉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는 백성으로서 이러한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2) 선지자는 그들과 변론하는 방법을 택하여 그들을 책망하였다. 우리가 어리석기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의 대부분은 그원인을 냉철하게 따져볼때 사라지게 된다.
3) 그들은 하나님에 관하여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팽개치신 것처럼 말하였다.
4) 그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절망적이라고 이야기 한것은 좋지않은 말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결론내리려고 하였다.
①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기를 원치않으신다.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현재 우리 경우에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라도 어떻게 할수 없을것 같은 그러한 어려움들이 많이있다.
② 하나님은 우리를 도울 능력이 없으시다.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못한다 하느냐. "내 소송사건은 일단 재판이 끝난 것이며 하나님 자신도 그원통함을 보상하실수 없는 것이라."
(2) 선지자는 그들에게 이모든 두려움과 불신앙을 잠잠하게 할수 있는 충분한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그들이 이미 알고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21절). 야곱과 이스라엘은 지식이 있는 백성이며, 이지식은 들음에서 얻은 것이다. 여러가지 다른 지식들가운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한두번 말씀하신 것을 들은적이 있었다. 그들은 '권능이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말을 여러차례 들었다(시 62:11).
1)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부패가 도무지 없기때문에 전능하신 분이다. 그는 시작과 끝을 초월해 계시므로 그에게는 변화가 도무지 없다. 그는 또한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이시다. 따라서 만물의 의로운 통치자이시며, 처음에 세상을 만드실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그의 교회를 구원하실 능력도 있으시다.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따라서 그의 명철의 끝으로 찾는 자들의 의도를 꺾어버리실수 있다. 누구도 감히 "하나님의 명철은 여기까지이며 더이상은 아니라"라고 말할수 없다. 곤비치 아니하겠고...피곤치 아니하리로다. 그는 모든 창조세계를 주관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신다. 그리고 그의 교회가 약해 쓰러졌을때 구원할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2)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시며 그들이 스스로 도울수 있도록 도우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힘이 되신다.
① 하나님은 약한 자를 도우실수 있다(29절).
② 하나님은 스스로 하려고하는 자들, 즉 겸손히 하나님께 매달리는 가운데 스스로 돕는 자들을 도우시며,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성공하도록 도우신다(30,31절). '소년'과 '장정'들은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강하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들도 '피곤하며 곤비해질' 것이며, 문제와 짐에 눌려서 '넘어지며 자빠지게' 될것이다. 즉 자신을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보게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며 자신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탁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될 것이다. 이들은 충분한 은혜를 받을 것이다. 새힘을 얻으리니.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실 것이라'(33:2). 그들은 이 은혜를 가장 선한 목적을 위해 쓸것이다. 그들은 위로 곧 하나님을 향하여 위로 치솟아오를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적인 사랑은 은혜를 입은 영혼이 타고오르는 독수리의 날개이다. 그들은 힘차게 앞으로 하늘까지 전진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이 행하고 열심히 그길을 달릴 것이다.

# 핵심
40:1-17
하나님이 이방의 포로생활 가운데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신다. 그들의 복역기간이 다하여 이제 곧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이 그들중에 임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왕의 길을 예비하는 자(40:3,4)
고대 근동에서 왕이 행차할경우에는 왕이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선발대가 먼저 파송되었다. 고르지않은 곳을 평탄케하고 왕의 여행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물들과 위험한 요인들을 제거함으로써, 안전하고 확고한 왕의 대로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광야와 사막지대가 많은 근동 지방에서 왕의 길을 예비하는 일은 필수적으로 행해진 관행이었다. 이와같이 왕의 길을 예비하는 선발대의 임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했던 세례요한의 임무에도 적용된다(눅 1:17).
인간의 죄로인한 하나님의 침묵(40:27)
유다 백성은 바벨론 포로기간동안 심한 고통으로 하나님께 호소했으나 하나님이 자신들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고 침묵하신다고 원망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은 그들의 죄악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을 일일이 기억하시며 언약에 따라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므로, 자기 백성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다만 범죄한 백성은 때가차기까지 자신의 죄에 대한 징벌을 받아야 했다(겔 7:3,4).

# 묵상
복역의 때 ( 40:2 )
바벨론 포로기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유다가 멸망당하여 포로로 끌려간 것은 그들의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때문임을 나타내기위해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포로였습니다. 유다는 주전 606년부터 바사왕 고레스가 즉위하던 해인 주전 536년까지 포로생활을 하게됩니다. 고레스는 이때 유다의 포로귀환을 명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 ( 40:3 )
예언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선지자가 전할 포로들의 해방소식을 가리키며, 종말론적으로는 메시야 도래를 선포하는 복된소식 즉 복음을 가리킵니다. 또한 신약시대에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천국소식을 전하는 세례요한의 복음선포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게하는 방법 ( 40:4 )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않은 곳이 평탄케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되게하는 것입니다. 이는 상하귀천이 없어지고 모두가 동등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요한 역시 메시야의 도래를 알리면서 이사야의 이말씀을 선포했습니다(눅3:4-6). 이 예언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종과 주인, 남자와 여자사이의 차별이 없어지고 평등한 사회가 되었습니다(갈3:28).
여호와의 신 ( 40:13 )
보편적이고 영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한 이것은 삼위일체중 성령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신을 지도한 자가 없다는 것은, 여호와가 바로 창조의 주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형상에 비길수 없는 하나님 ( 40:18 )
이는 십계명가운데 제2계명 곧 ‘우상을 섬기지말라’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때문에 어느것과도 비교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방 민족의 우상제조법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만든다는 것은 있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신을 만들수 없습니다. 오직 신령과 진리안에서 창조주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뿐입니다(요4:23).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 40:31 )
이는 자신의 육체적 힘을 믿지않고, 오직 여호와를 고대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갖고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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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히스기야의 자만 39:1-4
인간적인 정이나 예절로보면 친구들이나 이웃들이 기뻐할때 특히 병에서 나음을 기뻐할때에 함께 기뻐해주는 것이 도리이다. 바벨론 왕은 히스기야가 병에서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축하했다. 태양은 바벨론 사람들의 신이었다. 따라서 그날 해가 뒤로 십도 물러간 것이 히스기야을 위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그들은 히스기야에게 최고의 영광을 바쳐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바벨론 왕이 환심을 보인 것은 히스기야가 경건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옛날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과 동맹을 맺고 싶어하였던 것과 같이(창 26:28), 히스기야가 번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벨론 왕은 앗수르 왕의 대적이었다. 그러므로 앗수르 사람들이 히스기야의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약화되었기 때문에 바벨론 왕은 히스기야를 좋아하였던 것이다. 히스기야는 지혜있고 선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를 위한 기적이 하나씩 하나씩 일어났을때, 자신의 마음이 높아져서 교만의 덫에 빠지지않도록 지키는 일이 어려워졌다.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해주신 히스기야가 한낱 이방인 왕에게서 존경을 받은 것을 가지고 마치 이것이 그에게 무엇인가를 더해준 것처럼 지나치게 자랑스럽게 여긴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므로 이 교묘한 교만의 죄가 이미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있다고 생각할만한 단서를 발견하면, 여기의 히스기야처럼 우리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자.

Ⅱ. 하나님의 심판예언 39:5-8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사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신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온몸에 힘이 쭉빠지는 소식을 보내주신 것은 그가 마음의 교만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분명히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자기보물을 자랑하였을때 그의 행동은 마치 어리석은 여행자가 자기 돈과 금을 어떤 사람에게 다보여줌으로써 그가 유혹을 받아 그의 재물을 다빼앗아가는 도둑이 되게한 것과 같다고 말씀하였다. 만약 히스기야가 이 바벨론 왕의 후계자들이 후에 자기 가족과 왕국을 파멸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바벨론의 사신들을 이와같이 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선지자가 그에게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말하였을때 히스기야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하여 스스로 얼마나 답답하게 여겼을지 쉽게 상상해 볼수 있다. 불경건한 자들과 동맹맺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대가를 톡톡히 받고, 또 그로인하여 후회하게될 것이다. 바벨론이 간음과 우상숭배의 어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는 바벨론과의 우호관계를 매우 흡족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말았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그릇행한 것을 느낄수 있게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하게 여겼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범죄에 관한 하나님의 처벌을 들었을때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 핵심
39:1-8
히스기야의 교만으로인한 실수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선포된다.

# 묵상
므로닥발라단 ( 39:1 )
그는 바벨론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두번 왕위에 올랐는데(주전 722-710, 703-702) 앗수르를 적대하기위하여 고대 근동의 여러나라와의 유대 증진에 많은 힘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그는 사자를 보내어 유다를 정탐하게 했습니다.
히스기야가 불행을 예고받게된 원인 ( 39:2-7 )
하나님께서 베푸신 이적을 알릴기회를 얻게된 것보다 큰나라 바벨론과 동맹관계를 맺게될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온갖 보물과 무기고를 바벨론의 사절에게 숨김없이 다 보인 것은 하나님과 사람앞에서의 정직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과 한편이 되길 희망한다는 것을 강렬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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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히스기야가 병듦 38:1-8
사람이 아무리 위대하며 아무리 선하다할지라도 질병과 사망의 장중에서 벗어날수 없을 것이다. 땅위의 군주가운데 한사람이며 하늘의 은총을 입은 히스기야가 질병에 걸려 어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한 죽을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일은 히스기야가 한창 일할때에 일어났다. 앗수르 군대에게 대승을 거둔 바로 그때 이질병에 걸린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준비한다고해서 죽음이 더속히 다가오는 것은 아니나 단지 죽음을 좀더 수월하게 할뿐이다. 그리고 죽을 준비를 잘해놓은 사람은 또한 살 준비도 잘되어있는 사람이다. 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저는 기도할 것이요'(약 5:13). 기도는 개인적인, 국가적인 모든 상처를 치료하는 약이다. 고난은 우리로하여금 말씀을 가까이 하게 하며 기도하게 한다. 히스기야는 건강할때 기도하러 '여호와의 전에 올라갔다.' 이제 그가 병들어 침상에 눕게되자 그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였는데', 아마도 이것은 성전을 향해 돌아누웠다는 뜻일 것이다. 죽음에 접하게 될때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였다는 양심으로인하여 커다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의가 되어 하나님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근거는 되지못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중보자의 안에서 얻은 권리에 대한 증거로서 이것을 하나님께 겸손하게 아뢸수는 있을 것이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자신의 선한 행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한눈 팔지않고 정직한 마음으로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였는지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시도록 조심스럽게 간구한 것이다.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성실)과 전심(정직한 마음)으로 행하며(3절). 정직은 우리 복음의 완성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죽음을 준비하도록 경고하기위해 보내셨던 선지자를 그에게 다시 보내셔서 그가 병에서 회복될뿐만 아니라, 완전히 건강한 상태로 회복되어서 앞으로 15년을 더살게 되리라는 약속을 주셨다. 우리가 질병가운데서 기도할때, 여기에서 히스기야에게 주신 것과 같은 응답을 주시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성령으로 우리로 즐겁게 하시며 우리의 모든 죄악이 사하여졌음과 그의 은혜가 우리에게 족함과 우리가 사나죽으나 그의 것임을 확신시켜 주신다면, 우리가 공연히 기도하였다고 말할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에 힘을 공급하지 않으신다하더라도 '우리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신다면' 우리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다(시 138:3).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마음상태를 아시고 그가 살게될뿐만 아니라,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게'될 것까지(시 128:5) 약속하셨다. 지금 구원받은 예루살렘은 계속해서 앗수르 군대로부터 보호를 받게될 것이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거듭 확인하여 주셨다. 이것도 작게 여기시고 하나님이 표시를 그에게 주셨다. 이표적은 '해그림자가 뒤로 물러가는' 것이었다. 태양은 믿을만한 시간 측정기구이다. 그러나 해의 그림자를 앞으로 가게 정하신 분께서는 원하시면 뒤로 가게도 하실수 있다. 모든 빛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빛의 주관자이신 것이다.

Ⅱ. 히스기야의 찬송 38:9-22
여기에 히스기야의 감사찬송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가 병에서 회복한후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지은 것이다. 그는 조상 다윗의 시편에서 몇개를 취하여 사용할수도 있었으나, 이사건은 아주 독특한 것이어서 그의 마음은 경건한 감정으로 가득찼으므로 그는 자신의 말로 이감정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고난에 관한 회상과 당시 마음의 상태를 기록하는 일은 곧 우리가 병들었을때 여러가지 일에 관하여 가졌던 생각들과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대단히 좋은 일이다. 히스기야가 병에서 회복한후 남긴 이 시는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나 우리는 '히스기야가 그받은 은혜에 보답지 아니하였다'는 기록도 볼수 있다(대하 32:35). 이러한 감명깊은 사실은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런일도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일순간의 감사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항상 감사하는 생활은 보다 좋은 것이다. 이제 이 시를 살펴보면 질병이 심해졌을때 그는 완전히 절망상태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10-13절).
(1) 이 시는 히스기야가 자신을 죽을 목숨으로 스스로 포기하였을때 자신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현재의 처지를 최악으로 여기거나 모든 병자들이 당장 죽게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를 낮추신 분이 또한 우리를 높이실 것이다. 이와같이 다윗도 환난가운데 있을때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암담하고 서글픈 결론을 내렸지만 환난에서 건짐을 받은후에는 그사실을 반성하고 '경건중에 말하였다'(시 31:22;77:7-9)는 말로 변명했던 적이 종종있다. 이때 히스기야는 39세가량이었으며, 자신의 년수가 아직 많이 남아있으며 이시간들은 행복한 시간이 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그러나 이 전염병이 갑자기 자기를 덮였을때 그는 그것을 자신의 '중년'을 끊어버리는 것으로 간주하였고 이제 그는 '여년을 빼앗기게 될것으로 즉 생의 모든 즐거움과 하나님과 자기 세대에 봉사할 모든 기회를 빼앗기게 된것이라고 단정하였다. 같은 뜻으로(12절), "나의 년수는 목자의 장막처럼 떠나가버렸고, 나에게서 옮겨져 버렸구나. 이제 나는 하는수 없이 거처를 옮겨야 되는구나." 현재 우리의 생활은 천막에서 사는 목자의 생활과 같으며 쉽게 걷어치울수 있는 형편없고 초라한 추운 장막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세상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뿐이다. 이곳에서 걷어치운 초라하고 더럽고 낡은 계달 장막이 그곳 새예루살렘에서는 솔로몬의 장막처럼 아름답게 새로 세워질 것이다. 히스기야는 여기에서 또다른 비유를 추가하고 있다. 내가 내 생명을 말기를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같이 하였도다. 그는 자신의 행위로써 생명의 실을 끊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죽을수밖에 없었기때문에 어쩔수 없이 자신의 모든 생의 계획과 목적, 그리고 몸과 같이 '마음의 사모하는바'를(참조. 욥 17:11) 다 끊어버리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우리의 날은 '베틀의 북'에 비유되었다(욥 7:6). 매우 빠른속도로 한번 왔다가면 그때마다 실을 남겨놓는다. 그리고 베짜기를 마쳤을때 실을 끊고 필은 베틀에서 내려져서 우리 주님에게 보여지게 된다. 여기에서는 주님은 베가 잘짜졌는지 아닌지 심판하시며 우리는 육신에서 행한 일대로 받게된다. 베짜는 사람이 일을 마쳤을때 실을 끊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한 사람들은 생이 끝났을때 그들의 모든 염려를 끊어버리고 모든 노력으로부터 쉬게된다. "그러나 내가 나의 생명을 끊어버렸다고 멸하였는가? 아니다. 나의 시간은 내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으며, '나를 틀에서 끊으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이미 필의 길이가 얼마나 될것인지 정해 놓으셨으며 그길이가 되었을때 잘라내실 것이다." 그는 무덤의 문이 항상 열려있어서 지금도 '다고다고'라고 외치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제 이땅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과 선한 일을 하는 것도 다 빼앗겨버렸다고 생각하였다(11절). 내가 또 말하기를...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한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그는 여호와께서 성전에 현현하시는 것과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을 다시는 보지못하겠고, 친구들도 더이상 보지못할 것이며 죽음의 고통이 매우 심할 것이라고 여겼다. "주께서 나를 쇠잔케 하는 병으로 끊으시리니(한글개역에는 '나를 틀에서 끊으시리니'로 되어있다) 이 병으로 인하여 내가 약해지며 속히 쓰러져갈 것이라." 그는 모든 질병을 종으로 부리시는 하나님께서 그질병으로 '사자같이 그의 뼈를 꺾으시며' 뼈를 가는 고통을 겪게하실 것이라고 단정내렸다(13절). 그는 다음날 아침에는 극한 상황에 이르고 이와같은 고토와 비참한 가운데서 죽게되리라고 생각하였다. 나의 명이 조석간에 마치리이다. 우리가 병들었을때 이와같이 남은때를 계산해 보지만, 우리는 여전히 불확실한 가운데 있게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이세상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살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어떻게하면 우리가 보다 안전하게 저세상으로 갈수 있을까하는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할 것이다.
(2) 그는 이상황에서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14절).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새들이 무서움을 느낄때 지저귀는 것처럼, 내가 소란을 피웠도다." 짧은 시간동안에 병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살펴보라. 어떤 사람들은 그가 지금 고통중에 부르짖던 자기 기도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도가 신음소리와 합쳐져서 마치 제비나 학이 지저귀는 것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기도를 이와같이 형편없이 평가하였지만, 이 기도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것이었다. 그는 '비둘기같이 슬피' 울었다. 그러나 소리를 죽이고 참고 견디면서 울었다. 전에는 그의 기도에 즉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여러차례 보았지만 지금은 볼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아 죽게 되었사오니, 나로 무덤의 문사이에서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그들이 나를 무덤의 문으로 몰아쳐 가니이다." 우리가 사형 선고를 받았을때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셔서 우리를 사망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 그반대편에 있는 하늘나라로 데려가지 않으신다면,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일을 행하지 않으신다면, 우리 스스로는 어찌할수 없고 다만 그대로 죽을수밖에 없다.
(3) 그는 자신을 회복시키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고 감사드렸다. 내게 말씀하시고...이루셨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게 당신의 선지자를 보내셔서 내가 반드시 회복할 것이며, 15년을 더 살것이라고 말씀하셨나이다." 주께서...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이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진배없나이다. 당신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나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말씀하셨고, 그는 이것을 확신하였다. 원컨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주옵소서(16절). 내 영혼의 고통을 인하여 내가 종신토록 각근히 행하리이다(15절). 다시말하면 고통당할때 불평한 것을 애통해 하면서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셨을때 그는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는 것을 체험하였으므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였기때문에 이경험을 통하여 자신과 또한 다른 사람을 격려할 것이다(6절). "당신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이와같은 일들로인하여 사람들이 살고있나이다. 즉 나를 회복시키신 당신의 능력과 자비하심으로인하여 모든 사람이 생을 유지하고 있나이다.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 있사오니. "하나님께서 내 육신의 생명을 보존하시기위해 행하신 일을 통하여 유지되고 있나이다." 그는 극한 고통에서부터 건짐을 받았다(17절). 보옵소서 내게 큰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산헤립이 패퇴할때 그는 갑자기 이질병에 걸렸고 이것이 그를 괴롭혔다. 이것은 죽음의 고통인 것처럼 보였으나 담즙과 쑥에 불과한 것이었다. 다시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구원을 주실때에 그에게 필요한 조건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영혼을 사랑하시기때문에 주신 것이다.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시 18:19). 본문에도 깊은 사랑이 잘나타나 있다.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이것은 그리스도로인한 우리의 구원에도 적용될수 있다. '그사랑과 그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63:9).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심으로 우리의 육체도 보존해 주시는 사실은 갑절의 위로가 된다. 다시말해서 하나님께서는 그거주자를 사랑하시기때문에 집까지 고쳐주신다는 뜻이다. 이것은 죄용서의 결과이다.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나이다. 그럼으로써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다윗이 자기 죄가 바로 자기앞에 있을때에 그죄에 대하여 외면하지 않은 것과 같이 우리가 죄에서 얼굴을 돌리지 아니하고 참된 회개를 할때,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등뒤로 던져버리시는 것이다. 만약 히스기야가 이 병으로 죽었더라면 그가 추구하던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한 봉사도 끝나버렸을 것이다(18절). 그러나 그는 이질병에서 회복한후 하나님을 찬양하고 봉사하는 일을 계속할뿐만 아니라 더많이 하기로 결심하였다(19절). 산 자 곧 산 자는...주께 감사하며. 우리는 우리 생애에 늘 하나님을 찬양할뿐만 아니라,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자녀에게 알게하여' 오는 세대도 주의 신실하심을 의뢰함으로 영광을 돌리도록 하여야할 것이다. 히스기야 자신은 이일을 한것이 분명하지만 그의 아들 므낫세는 그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았다. 이것을 볼때 부모가 자녀들에게 좋은 것 좋은 교훈 좋은 모범 좋은 책은 많이 줄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줄수 없다는 것을 알수 있다.
(4) 마지막 두구절은 다음의 두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1) 여기에 기록된 치료수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것으로 대치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그약속이 빨리 이루어지도록 촉진하려는 의도다. 히스기야는 반드시 회복될 것이지만, '한뭉치 무화과를 취하여 종처에 붙이는' 일이 필요하였다(21절). 의사나 의술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아서는 안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활용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에 복종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실 것이다.
2) 우리가 생명과 건강을 구하는 최대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지식과 은혜에 대하여 더많이 알기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히스기야는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하실 징조가 무엇이냐"는 뜻으로 '내가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기위하여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징조가 무엇이뇨'라고 물었다(22절).

# 핵심
38:1-22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시켜 주신 사실과 이에 대한 히스기야의 찬양을 언급한다.
아하스의 일영표(38:8)
히스기야의 선왕 아하스가 만든 해시계. 이는 몇개의 계단을 나누고 그곳에 비치는 해의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재는 기구였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일영표는 바벨론에서 최초로 만들어졌고 이것이 앗수르에 전달되었는데, 아하스가 다메섹에 머물러있는 디글랏빌레셀을 방문했을때 일영표에 대한 지식을 가져왔다고 한다(왕하 16:10).

# 묵상
사망선고에 대한 히스기야의 반응 ( 38:1-7 )
자신의 모습그대로 하나님앞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였을뿐 아니라,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2절).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하나님앞에 자신의 모습을 정직히 고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아하스의 일영표 ( 38:8 )
일영표는 히스기야의 부친 아하스가 10개의 누각을 세워 그위에 지나가는 해그림자를 통해서 시간을 측정하던 장치였습니다. 그런데 해그림자가 뒤로 물러나는 기적을 통해서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병을 낫게 해주시리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이를통해서 우리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주께 중보가 되어달라고 하는 히스기야 ( 38:14 )
보증인이 지불능력이 없는 채무자의 책임을 대신 지고 그를 구해내듯이 여호와께서 몸소 자기를 보살펴달라고 하는 뜻입니다. 종교적 중보자의 역할은 본래 제사장이 맡았는데, 제사장은 하나님께 사람의 회개한 증거를 보여드리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유하시는 은혜를 알게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간인 대제사장 자신도 중보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진정한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는 더좋은 언약의 중보이시며(히8:9), 새언약의 중보(히9:15; 12:24)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후 하늘에 오르사 하늘보좌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히스기야에게 큰고통을 더하신 이유 ( 38:17 )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고난은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기때문에 자신에게 유익합니다. 우리는 병 등의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살아계심과 사유하시는 은사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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