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냄 37:1-7
우리를 해하려는 원수들의 악한 계획을 좌절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보고 오히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고, 우리 자신의 의무를 충실하게 행하는 것이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에게 겁을 주어 여호와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여호와께로 나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바람이 여행자의 저고리를 억지로 벗기려고 하지만 여행자가 오히려 옷깃을 꼭 붙잡았던 것과 같은 논리이다.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독하면 할수록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영화롭게할 방법을 연구하였다. 히스기야는 신하들을 이사야에게 보내어 기도를 요청하였다. 그는 이날의 일련의 사건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던 이사야의 예언을 기억하였던 것이다. 오늘은...능욕의 날이라. 그러므로 오늘을 기도의 날로 삼자. 아이를 낳으려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같도다. 그러므로 이제 기도하자. 고통이 가장 심할때 가장 열심히 기도하자. 기도는 아이를 해산시키는 자비의 산파이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들으셨을 것이라.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실줄 누가 알겠는가.'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독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셨다(6절). 그를 분명히 심판하실 것이다. 죄인들의 두려움은 멸망의 서막에 불과하다. 산헤립은 그의 군대를 살육한 자에 관한 '풍성'을 듣게될 것이며, 이로인하여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살해될 것이다(7절).

Ⅱ. 히스기야의 기도 37:3-20
하나님은 약속대로 우리를 굳게하셔서 잠잠히 그 능욕을 견딜수 있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응답하셨다. 그러나 그가 랍사게에게 어떤 회신을 보내었다는 기록은 나와있지 않다. 다만 그는 그일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겼다. 랍사게도 새로운 지시를 받기위하여 그의 주, 앗수르 왕에게로 돌아갔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을 자극하지도 않았고 경고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유다와 싸우려고 올라왔는데 바로 그때 구스 왕이 산헤립과 싸우려고 나아왔다(9절). 전쟁을 좋아하는 자들은 남의 도전을 받을 것도 예상하기 마련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거만하게 그의 이름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은 악한 짓이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글로 쓰는 것은 더 악한 짓이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한것이기 때문이며, 더멀리 퍼져나가고, 더오래 남으며, 더큰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큰승리를 거두었을때 죄인들의 마음이 더욱 완악해지고 더욱 대담해지는 일이 종종있다. 앗수르 왕은 하나님의 땅을 멸할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즉 우상을 숭배하던 하맛과 아르밧 왕이 쉽게 그들의 먹이가 되었으므로, 개혁을 시도하는 경건한 유대의 왕도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글을 받고 그것을 여호와앞에 펴놓았다. 그는 산헤립에 대하여 말하려 하지않고 그의 편지에 나타난 내용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이제 사실 자체를 보자. 이것은 문서이므로 위에 말한 내용이 적용된다. 여호와여 눈을 떠 보시옵소서.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그분만이 홀로 하나님, 곧 천하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서 격려를 받았다.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어떤 일이라도 하실 능력이 있으실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이었다. 우리도 막강한 침략자들에게서 위협을 받을때 겸손하게 그러나 용기를 가지고 위대한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호소할수 있다.

Ⅲ. 산헤립의 몰락 37:21-38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두려운 소식을 들을때 참고 견디며 기도로써 하나님께 믿음의 메시지를 보낸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하시는 은혜와 평화의 메시지를 기대할수 있을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히스기야의 기도에 긴응답을 보냈다. 네가...내게 기도하였도다. "그러니 너는 이것을 알아라. 이제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으므로 안심하라."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은 누구에게냐. 바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한것이다. 그리고 산헤립은 그의 부하에게 이같은 일을 하게 하였다. 이것이 그가 하나님을 모욕한 죄를 더가중시켰다. '네가 네 종으로' 곧 형편없는 신분인 네 종으로하여금 '주를 훼방하게 하였구나.' 사람이 자신의 업적을 스스로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를 멸시하는 것이다.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으니...내가 태초부터 행한바요. "그러나 너는 네가 그일을 행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구나"(24-26). 아무리 능력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하다. 이일들을 내가...상고부터(영원한 경륜속에서) 정한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그러므로 이일들을 너의 업적으로 자랑하는 오만은 내가 참을수가 없구나." 산헤립은 어디에서나 능력있고 재빠른 전사였지만, 하나님은 그가 나가고 들어감을 알고계셨다(28절). 그가 그렇게 고집세고 제 마음대로 행하던 자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셨다(29절). "그가 여기까지는 왔지만 더이상 가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산헤립이 유다를 치는 임무를 허락하셨지만(참조. 10:6), 여기에서 그계획을 변경하셨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실 것이다(35절). 포위한 군인들이 성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며 그성을 점령하기전에 패퇴하게될 것이다(33절).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은혜가운데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오실 것이다. 그땅의 소출이 보통때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며, 따라서 이전의 손실은 풍성하게 보충될 것이다. 그들은 나라가 황폐하여졌다고하여 안식년 지키는 의무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수 없었다. 지금 당장 내년에 먹을 양식을 비축해두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안식년을 경건하게 지켜야 했으며 그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심판이 다가왔을때 그앞에 설 자는 하나도 없다. 어느날 밤에 하나님께서 한사자에게 명령하시어 대군을 그자리에 송장으로 눕혀놓게할 것이다(36절).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앞에 설수는 없다. '대왕 앗수르왕'도 그의 군대를 전멸시킨 사자에게서 죽음을 당하지 않기위하여 두려움에 쫓겨 자기 나라로 돌아갈때 아주 왜소하게 보일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산헤립을 보잘것없이 만드셨을때 왕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이 임무였던 아들들이, 그가 지금까지 보호하던 우상앞에 그를 희생으로 드렸다(37,38절). 과거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던 자가 지금도 구원하시며 장래에도 구원하실 것이다.

# 핵심
37:1-7
산헤립의 위협을 받은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했으며, 이사야의 중보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약속이 주어진다. ‘그룹 사이에 계신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두그룹 사이에 임재해 계심을 나타낸다(출 25:22). 히스기야는 이 칭호를 통해 하나님의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개입을 요청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하나님과 택한 백성간의 언약적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끝으로, ‘만군의 여호와’는 주님의 권능을 찬양하며, 도움받기를 소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처럼 그가 고백한 하나님의 칭호는 그분의 영광과 권능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고대 전쟁시의 공성전술(37:33)
고대 근동의 공성(攻城)은 크게 3단계로 나누어 시행되었다. 먼저, 선봉이 되는 공격부대는 활쏘는 군사들이었다. 이들이 적군에 대규모로 접근하여 진을 형성하면 방패를 든 군사들이 이들을 엄호하는 전선을 구축했다. 그다음에는 활쏘는 군사들이 보다앞으로 나아가고, 다른 군사들은 성벽에 사닥다리를 놓고 올라가고, 또다른 군사들은 성의 기초를 파헤쳐 성벽을 무너뜨린다. 이때 성문을 불로 공격하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적의 성벽보다 높은 토둔을 쌓고, 그위에서 성의 내부를 공격했다(겔 4:2).

# 묵상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은 히스기야 ( 37:1 )
이는 앗수르의 굴욕적인 행동에 대한 굴욕감과 고통의 표시이며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겸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는다고 하는 것은 수치와 극심한 고통을 나타내는 유대의 관습입니다. 즉 유대인들은 고난을 당했을때나 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당하는 경우 참회의 뜻으로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의 날에 성도들은 의의 행실로 짠 세마포 옷을 입습니다(계19:8).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 ( 37:3 )
랍사게의 군사들에 의해 포위당한 예루살렘이 모욕과 수치를 당한 날을 가리킵니다. 환난과 책벌의 날이라고 표현한 것은 앗수르의 침략과 포위를 하나님의 징계라고 이해하는 것에 근거한 말입니다. 또한 능욕이란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략에 의해서 모욕당한 것과 이로인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욕당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도우시는 하나님 ( 37:6 )
절망에 빠져있는 히스기야와 그대신들에게 이사야 선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말씀은 히스기야 왕과 대신들과 온유다 백성들에게 큰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절망가운데 처할때 성도는 '두려워말라 너를 도우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신을 그의 속에 두리니’라는 말의 의미 ( 37:7 )
하나님께서 랍사게에게 거짓 영을 부으실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거짓 영은 랍사게에게 거짓된 소문을 듣게 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때로 악한 자들에게 거짓 영을 보내셔서 그들의 죄악을 그치게 하십니다(왕상22:22).
앗수르의 왕 산헤립의 편지 ( 37:10-13 )
히스기야에게 보낸 이편지에는 앗수르 왕의 힘앞에 어떤 왕이나 신(神)도 그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굴복하였으므로 유다도 순순히 항복하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더이상 여호와를 의지하지 말라는 조롱의 내용도 들어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보낸 이 조롱의 편지를 여호와앞에 놓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그의 능력을 무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시기를 원하였습니다.
구원을 요청하는 히스기야의 기도 ( 37:16-20 )
앗수르가 멸시하고 조롱한 여호와 하나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여러 민족들의 우상과는 다름을 보여주고 천하만국으로 여호와가 하나님이신줄 알게하기 위해서 그는 기도했습니다. 또한 히스기야는 유다의 생존이 곧 하나님의 명예와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드렸습니다. 즉 앗수르가 아무리 위협적인 존재일지라도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신들은 거짓 신이요, 헛된 것이므로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그들을 능히 물리칠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적인 태도였음을 보게됩니다. 즉 히스기야는 기도할때에 그의 관심을 하나님과 그영광에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도할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으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태초부터 행한바요, 상고부터 정한바 ( 37:26 )
이말은 앗수르의 모든 성공이 여호와의 계획에서 비롯된 것임을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 열국의 흥망성쇠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계 모든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따라서 본절의 말은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히스기야에게 응답하신 하나님 ( 37:30 )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앗수르의 침공으로인해서, 금년에는 수확을 거두지 못하고 밭을 갈지도 못하므로 명년까지 야생곡물을 먹을수밖에 없으나, 제3년에는 정상적으로 경제생활을 할수 있으리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이는 곧 잠시후면 앗수르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대로 산헤립은 국내 문제로 예루살렘에서 철수하여 자기 신전에서 예배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호와의 열심 ( 37:32 )
이말씀은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까지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성전에 대한 잘못된 열심으로 성전을 더럽히는 모든 자들에게 채찍을 휘두르셨습니다(마21:12, 13).
에살핫돈 ( 37:38 )
주전 681-668년동안 재위한 앗수르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산헤립의 아들로 산헤립이 신전에서 살해되자 그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애굽을 세번 원정하여(주전 674, 673, 670) 조공국으로 만들었으며, 수리아를 정복하고 유다왕 므낫세에게 조공을 받다가 그가 반역하자 포로로 끌고가 니느웨성에 유폐시켰습니다(대하33:1). 그러다가 주전 668년 애굽의 반란을 진압하러 가던중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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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산헤립의 침입 36:1-10
백성들이 의무를 다하고 있을때에도 환난과 고통을 당할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해나가고 있을때, 더 잘하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완전한 단계에까지 진력하도록 재촉하시기위해 하나님께서 고통을 더하신다하더라도 우리는 의아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원수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두렵게 하여, 특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떠나도록 위협하여 그들을 정복하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랍사게도 여기에서 히스기야를 요란한 말로 비방하였다. 그는 히스기야가 자기 주인 앗수르 왕에게 도저히 대항할 능력이 없는 자라고 희롱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영혼의 원수들을 대항하여 터를 굳게 지키기위하여 우리의 심령을 지킬 필요가 있다. 원수들이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할때 그들은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행할 위임을 받은 것처럼 행동하기 쉬우며 이것은 또한 흔히있는 일이다. 랍사게도 실제로는 여호와를 '거스려' 올라왔지만, 감히 '내가 이제 올라와서 이땅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라고 말할수 있었다(36:10).

Ⅱ. 산헤립의 교만 36:11-22
공사는 모사들과 방백들이 상의할 일이며, 이것을 백성에게 알리는 것은 옳지못하다. 따라서 비열하게 백성들을 부추켜서 자신들의 통치자를 대적하게 하는 일은 부당한 처사이다. 남을 비방하는 거만한 자들은 상대방이 정중하게 이야기하면 더거칠게 나오기 마련이다. 히스기야가 보낸 사신들은 랍사게에게 더이상 정중하게 말할수 없을정도로 정중하게 말하였다. 청컨데...종들에게 말씀하고. 그러나 이말에 그는 더 신이나서 거친 말로 떠들었다. 사단이 사람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떠나게 할때, 자기에게 굴복한다면 상황이 훨씬 호전되리라고 속삭인다. 세상과 정욕은 우리에게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와 언약을 맺자. 우리에게 굴복하고 우리와 동업하자.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 포도를 먹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우리를 기만하는 말이며, 우리를 가장 비참한 포로와 노예로 삼으려고 하면서도 자유를 가장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하여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이방의 잡신들과 비교하는 것보다 더어리석은 행위는 없으며, 더 큰모욕도 없다. 이방 잡신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위대하신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다. 이방 잡신들은 인간의 상상의 소산물이며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다. 교만한 죄인들은 자신이 다른 피조물들과 비교할수 없는 위대한 존재이므로 창조주에게 필적할만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자기들이 여러나라들을 정복하였고, 이제는 만군의 여호와도 자신들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구해내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질그릇 조각이 땅의 질그릇 조각과는 다툴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토기장이와 다툴수는 없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할때도 있다. 히스기야는 이렇게 명하였었다. 대답지 말라. "너희가 그의 입을 막을수 없으므로, 그일을 하나님께 맡기라." 사자들은 '잠잠하여 한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지만',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받은 것에 격분하여 자신들의 옷을 찢었다.

# 핵심
36:1-22
앗수르왕 산헤립이 B.C. 701년경 베니게를 점령하고 블레셋을 멸절시킨후 예루살렘을 포위한 사실을 배경으로 한다. 산헤립의 보냄을 받은 랍사게는 유다에게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
고대인의 전쟁과 신(36:18)
고대인들은 전쟁을 치를때 자신이 믿는 신의 보호아래 싸운다고 생각했으며, 승리했을경우 자기 신의 영광이 된다고 여겼다. 앗수르인들도 이와같은 사고방식을 따라 전쟁에서 승리했을경우 그들이 신봉하는 신인 앗술(Asshur)에게 영광을 돌렸다고 생각했다. 이와같이 고대인들은 한나라의 존립 여부가 그나라의 수호신의 능력여하에 좌우된다고 믿었으며, 한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군사적으로 패배하는 것은 곧 그나라의 신이 상대국의 신보다 열등하고 약하기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묵상
랍사게 ( 36:2 )
랍사게라는 이름의 뜻은 ‘잔을 드는 장관’으로 앗수르왕 산헤립이 다르단 랍사리스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보내 히스기야에게 항복하도록 요구하게 한 앗수르 대장의 칭호입니다(왕하18장). 다르단 다음가는 고관인 그는 유다와 아람 말을 할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유다말로 히스기야와 백성들을 위협하고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를 모욕하는 말을 해서 항복을 유도하고자 했습니다.
산당과 제단을 없애버린 히스기야의 교훈 ( 36:7 )
종교개혁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과 아세라 목상을 없애고,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분향하던 폐습을 없애버렸습니다(왕하18:4). 이에 대해서 랍사게는 올바로 알지못하고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여러 제단을 없앤 것으로 알고 유대인들이 스스로가 성소를 없애 관계를 단절해버린 여호와를 의지하느냐고 비웃었습니다.
앗수르의 포로정책 ( 36:16, 17 )
앗수르가 취했던 정책은 포로민들을 이주시키고 혈통을 뒤섞어 앗수르에 동화시키려는 정책입니다. 주전 722년경에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동화되어 생겨난 사람들이 바로 사마리아인들이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앗수르의 이러한 혼혈정책, 포로민 이주정책을 두려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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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복음이 주는 축복 35:1-4
(1) 본문에는 광야가 좋은 땅으로 변하는 것이 나타난다. 유다 땅이 앗수르 군대에게서 놓이자 광야로 변했던 그땅이 회복되어서 장미처럼 만개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아무런 열매도 내지못하고 오랫동안 광야로있던 이방 민족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자 복음과 함께 기쁨이 임했다(시 67:3,4;96:11-12). 사마리아에 그리스도가 전파되자 '그성에 큰기쁨'이 있었다(행 8:8). 회심시키는 은혜는 황야였던 영혼으로하여금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나도록 만든다. 모든 제도속에 있는 가치있는 것들이 복음속으로 들어온다. 바울이 히브리서에서 보여주듯이 유대 교회의 모든 아름다움이 그리스도 교회로 들어왔다. 모세의 율법가운데 바람직하던 모든 것들이 복음의 제도로 이양되었다.
(2)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고 있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그의 은혜와 사랑을 어느때보다도 더욱 나타내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막을 꽃피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여호와의 영광을 더많이 볼수록 우리는 더욱 즐겁고 더욱 많은 열매를 맺게될 것이다.
(3) 연약하여 낙심가운데 있는 자가 더욱 격려를 받는다(3,4절).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사역자들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직책때문에 약한 손을 강하게 할 책임을 맡고있으며, 앗수르 군대로인하여 받은 두려움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날수 없었던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이제 다시 긍휼을 베풀어주시리라는 확신을 넣어줄 책임을 맡고있다. 복음은 다음과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1) 연약한 자들에게 힘을 주며 그들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도 약한 손과 떨리는 무릎을 가진 자들 즉 아직도 그리스도 안의 어린아이인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연약한 자들을 받아주는 것뿐만 아니라(눅 22:32) 그들을 굳세게 하기위하여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롬 15:1;살전 5:14).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힘을 길러서 우리 자신을 튼튼하게 하는 것도 우리의 의무이다(히 12:12).
2) 겁많고 의기소침한 자들에게 활기를 넣어주는 것이다. "겁내는 자에게, '성급한 자에게'(원문은 이렇다) 즉 첫번째 경보에 놀라서 도망치고자 하는 자들, 또 성급하게 '우리가 끊어져 망하였도다'(시 31:22)고 말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이두려움들을 잠잠케하기에 충분한 것이 복음속에 있다고 하라." '굳세게 하라'고 말씀해주신 분이 권능있는 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다.
(4) 구세주가 다가오시리라는 확신을 주고있다.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나타나시어 너희 원수를 치실 것이며 그들이 불법과 너희의 손실을 보상해주실 것이라." 하나님의 궤를 인하여 마음을 떠는 자들 그리고 세상에서 그의 교회를 염려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일을 맡으시리라는 사실로인하여 두려움을 진정시킬 것이다.

Ⅱ. 복음의 축복 35:5-10
"너희 하나님께서 곧 그리스도께서 오실때에 큰일을 보게되리라."
(1) 자연과 은혜의 왕국에 공히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이 행해질 것이다.
1) 사람들의 몸에 이적이 행해질 것이다(5,6절).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이것은 우리 주께서 지상에 계실때에 자주 행하신 일이다(마 9:27;12:12;20:30;요9:6). '에바다'(열려라)라는 말씀 한마디로 그의 능력에 의하여 귀머거리의 귀가 열렸다(막 7:34). 많은 앉은뱅이들이 그들의 사지를 다시 쓸수 있게 되었다(행 3:8). 또한 벙어리들도 말할수 있게 되었다(마 9:32,33).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로서 오셨다는 것을 증거하기위해 이런 이적들을 행하셨다(요 3:2).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능력으로써 이일을 행하심으로, 그는 자기가 하나님이시라는 것 즉 처음에 사람의 입과 듣는 귀와 보는 눈을 만드신바로 그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2) 더 큰이적들이 사람의 영혼에 행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영에 의하여, 영적으로 눈먼 자들이 밝히 보게되고(행 26:18),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귀먹었던 자들이 '주께서 그마음을 열어 청종케하신' 루디아처럼(행 16:14) 기꺼이 그부르심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벙어리가 되어서 하나님에 관해서 혹은 하나님께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알지못하던 자들이 하나님을 알수 있도록 그들의 이해가 열렸을때 그로인하여 그입으로 주를 찬미할 것이다.
(2) 성령이 위로부터 부어질 것이다. 그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광야에서 물이 솟을' 것이다(6절). 성령이 말씀을 듣는 이방인들에게 내려왔을때 이일이 이루어졌다(행 10:44). 여기 '물이 솟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방인들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오는 놀라움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것의 복된결과는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되리라'(7절)는 것이다. 규례가 없어 '마르고 곤핍하던 땅'에는(시 63:1) 샘물 곧 복음의 사역이 있게될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하는 시내'이다(시 46:4). 뜨겁고 메마른 땅에 거처를 택한 '시랑의 굴'(34:9,13)이 시냇물이 흘러들어가 그곳을 차지함으로써 그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무성히 날것이다. 기독교가 이방인들의 성읍에 심어져 크게 융성했을때가 바로 이와같았다. 그성읍들은 여러 세대동안 시랑, 아니 귀신의 처소가 되어왔었으나 그들이 기독교로 개종했을때 그시랑의 거처가 변하여 비옥한 밭이 되었다.
(3) 신앙과 경건의 길이 여기에서 '거룩한 길'이라 불리우고 있다(8절).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러 오실때 하나님의 복음에 의해 우리를 이길로 이끄실 것인데 그것은 이전에 한번도 묘사된 적이 없는 길이다. 그것은 지정된 길, 곧 대로일 것이다. 그것은 왕의 대로 곧 왕중 왕의 대로로써 우리는 그길에서 잠시 쉴수는 있으나 중단할수는 없는 길이다. 그 거룩한 길은 하나님의 계명의 길이다. 그것은 옛적부터 있었던 선한 길이다(렘 6:16). 그길을 더럽히거나 그곳을 걷는 자들을 방해하는 깨끗지못한 자들은 지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택하신 자들을 위한 길이 될것이니(시4:3) 그것은 그들만을 위하여 예비될 것이다. 악한 세상의 방해가 미치지 못하는 그곳에서 구속받은 자가 행할 것이다. 그곳을 지나기로 선택된 행인은 다른 일에는 힘이 약하여 우매하나 이 길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영으로부터 너무나 분명한 지시를 받기때문에 실족치 아니할 것이다. 그들은 그여행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다. 좁은 길을 걷는 자들은 비록 서로 다른 오솔길을 택해서 걸으며 모두가 똑같이 바르지는 않지만 마침내는 모두 같은 목적지에서 만나게 된다. 진리의 영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진리가운데로 그들을 인도할 것이다. 하늘에 이르는 길은 평탄할 것이며 찾기 쉬운 길이다. 그것은 안전한 길일 것이다.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9절). 아무것도 '해하거나 멸하지' 않을 것이다. 이길을 철저히 지키는 자들은 울부짖는 사자인 사단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 거룩한 길로 행하는 자들은 참으로 그들을 해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에 평정을 유지하며 나아갈 것이다. '거룩한 길'로 행하는 자들은 부정한 것을 가까이하지 아니하며 패역한 세대에서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 구원받는 자들가운데 속하고자 하는 자들은 구속받은 자들이 걷는 길로 가야한다.
(4) 이길의 결국은 영영한 희락이 될것이다(10절). 여기에 시온의 시민을 위한 희소식이 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하나님은 그들이 사로잡힘을 면할 문을 열어주실 것이다. 그들은 복음의 교회 즉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시온산(히12:22)에 서로 연합할 것이다. 믿음에 의해 복음의 시온의 시민이 된 자들은 기뻐하며 길을 갈수 있다(행8:39).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기뻐하며,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라' 했다. 하나님의 백성은 바벨론에서 시온으로 귀환할때 '울면서' 왔다(렘1:4). 그러나 그들은 새노래 즉 사람이 전혀 배울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하늘의 시온에 올것이다(계14:3). 그들의 기쁨은 눈으로 볼수 있는 것이 될것이다. 여기 이세상에서처럼 더이상 비밀의 것이 되지않을 것이다. 즉 그것은 선포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영생에 대한 우리의 기쁜 소망과 전망은 현재의 모든 슬픔과 기쁨을 함께 삼켜버릴 것이다.

# 핵심
35:1-10
장차 도래할 메시아 왕국의 영광과 번영을 벅찬 감격과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선포한다.

# 묵상
우매한 행인 ( 35:8 )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대해서 알지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자요, 비신앙적인 사람들입니다(욥5:2; 잠10:21). 이들은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10절)와는 반대되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길 ( 35:8 )
이길은 깨끗지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만이 걷게되는 길입니다. 또한 이길은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요14:6). 그러므로 구속함을 입은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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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하나님의 대적들에 대한 경고〔1〕 34:1-8
(1) 전쟁이 선포된다(1절). 모든 열국은 그전쟁에 관계되어 있으므로 이선포에 귀를 기울이고 청종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분노하시며 그진노가 열국위에 머물러있다.
(2) 선언문이 발표되고 포고된다.
1) 하나님께서 전쟁을 일으키시려는 자들에게 선포됨(2절) : 여호와께서 만국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은 마귀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과 믿음을 대적해서 연합한다. 지금까지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참으심으로 혜택을 받았듯이 이제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분노를 예상해야 한다. '하나님의 분'은 특별히 '만군을 향하여' 있다. 그들은 그군대로 하나님의 백성을 해하였다. 그들은 그군대로써 하나님의 고의와 능력을 대적하여 자기편의 이익을 도모할 것을 바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분노는 제일 먼저 그 군대위에 임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위하여 싸우시는 자들에게 그전쟁의 근거와 이유가 선포됨(8절) : 이것은 여호와의 보수할 날이요. 여호와께서 참으시는 때가 있듯이 이제는 복수하시는 때가 있을 것이다. 이는 비록 그가 오래참으시지만 언제까지나 참으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실 해이다.' 시온은 거룩한 성으로써 이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의 모형이요 상징이다. 시온은 그이웃들이 자기에게 행한 악에 대하여 그들과 마땅히 다툴만하다. 시온은 작의 처지를 변호해주실 것을 하나님께 맡겼고 하나님은 정하신 때가되면 그일을 행하실 것이다.
(3) 전쟁의 전략 :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5절). 이것은 그당시에 칼을 단단하게 하거나 빛을 내기위하여 어떤 액체에 담그던 관행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수도 있다(겔 21:9-11). 하나님의 칼은 하늘에서 곧 그의 계획과 작정속에서, 그의 공의와 능력속에서 족하게 마셨다. 그칼은 '에돔위에 내리며 멸망으로 정한 백성위에 내릴 것이다.' 하나님의 전쟁의 칼은 언제나 공의의 칼이다. 그판결에 따른 무서운 살육이 그들사이에서 행해질 것이다(6절). 하나님의 자비와 인내가 악용되는 날이 지나면 이제 아무도 그의 공의의 칼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은 죄로인하여 인간 본성의 존엄을 상실하며 스스로를 멸망하는 짐승처럼 만든다. 그러므로 그들은 짐승처럼 살육당하며 그군대의 살육은 양이나 염소의 무리를 도살하고 어린양의 콩팥과 기름을 공급하는 것과 다를것이 없다. 아니, 여호와의 칼은 양과 염소 즉 그불쌍한 일반 병사들을 해치울뿐 아니라 들소와 송아지와 수소가 한가지로 도살장에 내려가듯(7절) 큰 자, 강한 자 그리고 지휘관들도 양과 염소처럼 쉽게 희생이 되고 만다. 가장 위대한 인간들일지라도 크신 하나님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심지어 굳고 바위가 많은 산들이 그피에 녹을 것이다(3절). 이표현들은 과장법으로 되어있으며 이런 표현이 사용된 것은 큰두려움을 주기에 적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큰살육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큰희생제물이 될것이다(6절). 희생제물은 하나님을 높이기위한 것이요,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죄의 보상을 요구하시며 또한 오직 피만이 사죄할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큰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지 않으셨다면 온세상은 이처럼 죄인들의 피로 적셔졌을 것이다. 이 살육은 인간에게 혐오스러운 것이 될것이다(3절). 이 살육의 결과는 마치 자연계의 모든 조직이 붕괴되고 녹아버린 것과 같은 전체적인 혼돈과 황폐일 것이다(4절). 말아놓은 양피가 열에 의하여 오그라지는 것과 같이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릴 것이다.' 별들은 가을 낙엽처럼 떨어질 것이며, 피정복 국가의 모든 아름다움과 기쁨과 위로는 사라져 없어질 것이고 통치자와 정치조직은 폐지될 것이다.

Ⅱ. 하나님의 대적들에 대한 경고〔2〕 34:9-17
이 예언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국가와 성읍과 궁전과 가정에서 종종 발생하는 우울한 변화들을 묘사하고 있다. 번성하던 곳들이 몰락해 간다. 우리는 역사속에서 유명했던 큰성읍들이 어디에 서있었는지조차 알지못한다. 이 예언은 속량하실 해가 오고 시온의 송사를 위해 신원하실 해가 올때에 하나님께서 내리실 공의의 형벌인 심판을 묘사하고 있다. 교회를 멸하고자 하는 자들은 결코 그목적을 이루지못하고 도리어 반드시 자기 자신을 멸망시킬 것이다.
(1) 그나라는 소돔의 연못같이 될것이다(9,10절). 그땅에 물을 대어주고 주민을 상쾌하게 해주던 '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응고될 것이다. 그땅의 먼지는 유황으로 변할 것이다. 그들의 죄가 그땅으로 하여금 매우 불붙기 쉬운 것으로 만들었기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처음 불씨만으로도 불이 붙을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탈것이며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않을 것이다.' 지옥에 있는 자들의 고통, 또는 자기 자신의 양심속에 지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고통은 중단됨이 없다. '세세에' 땅위에 격동케하는 죄인들이 있는한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진노를 가볍게 여길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임이 드러날 것이다.
(2) 성읍들은 마치 낡고 사람이 살지않는 집이 맹수나 불길한 새들에게 차지된 것처럼 될것이다. 하나님은 그성읍들을 멸망과 파괴의 표적으로 삼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베푸실 것인즉(11절). 그나라의 모든 곳에 덮힐 혼란과 공허는 마치 땅이 '혼돈하고 공허'(똑같은 단어가 사용된다)했을때(창 1:2)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 죄는 곧 낙원을 혼란으로 바꿀 것이며 모든 창조의 아름다움을 더럽힐 것이다. 혼란이 있을때에 곧 공허가 임할 것이다. 그성읍의 높은 자들은 모두 끊어지고 그들중 아무도 감히 나서려하지 않을 것이다(12절). 그들이 자기앞에 놓인 복잡한 일들을 돌아보게 하기위하여 '귀인들을 부르되 아무도 없을 것이다.'
(3) 궁궐까지도 황량하게될 것이다(13절).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이 자라서 시랑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것이니.
(4) 그성읍들은 무서운 짐승들과 새들의 거처와 소굴이 될것이다. 이황폐가 여기에 상세히 설명되고 있다(11절). 한적한 장소를 좋아하는 '당아' 즉 펠리칸이 '그땅을 차지할 것이다'(시 102:6). 그리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는 '고슴도치', 음울한 새 '올빼미', 시체가 있는 곳에 모이는 맹금 갈까마귀가 거기에 거할 것이며,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않는 부정한 새들이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13절). 방백들의 궁전이었던 곳이 이제는 부엉이나 타조의 거처가 될것이다(14절). 광야의 '들짐승'들이 축축한 늪지인 성의 들짐승들과 만날 것이다. '수염소가 그동류를 불러' 이 황막한 곳에 더불어 살것이다. 거기에서 '올빼미가' 쉴것이다. '부엉이가 거기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며'(15절) 시체로 잔치를 베푸는 '솔개들도 그짝과 함께 거기 모일 것이다.' 죄가 일으키는 이런 상황은 얼마나 암담한 변화인가. 죄는 비옥한 땅을 황무지로, 번화한 성읍을 황야로 변하게 한다.
(5) 이 예언의 성취에 대한 확증이 여기에 제시되고 있다(16,17절).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영이 수행할 것이니 이는 하나님의 어떤 말씀도 헛되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밀한 순서와 배당이 지켜질 것이다. 그새와 짐승들을 위하여 여호와께서 제비를 뽑으심으로써 그것들은 각기 자기 거할 처소를 알게될 것이다. 그들이 그항오를 어기지 아니하며 피차에 공격하지 아니할 것이다. 옛예루살렘은 그멸망에서 회복되었고 마침내 복음의 예루살렘에게 그자리를 내주었다. 이복음의 예루살렘은 낮아질지도 모르나 재건될 것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에게 자리를 내어줄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 핵심
34:1-17
에돔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대적들에게 내릴 철저한 심판에 관한 예언이다.
두루마리(34:4)
양피지나 파피루스 따위에 기록된 고대의 문서. 고대에 많은 글을 쓰기위해서는 두루마리가 준비되었으며(겔 3:1-3; 슥 5:1,2) 그재료로는 가죽, 파피루스, 양의 가죽을 가공한 양피지 등이 사용되었다. 보통 두루마리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20cm, 30cm 되는 것을 길게 이어 축에 감아 보존했고, 읽을때에는 그것을 폈다(렘 36:2). 일반적으로 두루마리는 한쪽면만 썼는데, 양면이 다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 묵상
열국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 ( 34:2, 3 )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육하셨습니다. 그리고 살육당한 자의 시체에서 악취가 솟고 그피에 산들이 녹는다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이방 나라들에게 임할 심판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완성과 세상 죄악들에 대한 전면적인 파괴가 함께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선언했습니다.
종말의 날에 일어날 하늘의 현상 ( 34:4 )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릴 것입니다. 이말은 하늘에 있는 모든 것들 즉 태양, 달, 별들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으로 고대 세계에서 신으로 간주되고 섬겨지던 이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상들이 모두 제거됨을 의미합니다. 하늘이 말린다는 것은 전우주적인 파국과 새창조를 암시하는데, 이는 죄로 물든 옛하늘이 사라지고 새로운 하늘이 열림을 뜻합니다(마24:29; 벧후3:10; 계6:12).
그짝이 없는 것이 없는 여호와의 책 ( 34:16 )
문자대로 해석하면 ‘이런 짐승들가운데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의 책에는 별들의 이름과 수가 적혀 있으며(사40:26) 모든 피조물이 다 기록되고 계산되어 있다(말3:16)는 의미입니다. 여호와의 책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두 기록되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을 명한 것이 하나님의 입이요, 그것들을 모은 것도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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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다가 겪을 환난 33:1-12
(1) 교만하고 거짓된 앗수르인들은 자기들의 온갖 속임수와 폭력으로인하여 재앙을 받고있었다(1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해쳤고 평화협정을 어겼으며 그들에게 속임수를 썼다. 앗수르인들은 자기들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않은 자들을 해쳤으며, 그들과 아무런 다툴 의사도 없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항상 자기에게 신실하게 대한 하나님의 백성을 속였다. 유다의 성읍들을 파괴한 그앗수르인들의 군대는 천사에 의하여 파멸될 것이다. 갈대아인들이 앗수르인들을 속일 것이며 그들에게 반기를 들것이다. 산헤립 자신의 두아들이 산헤립을 속이고 그가 기도하고 있을때에 야비하게 그를 살해할 것이다. 그가 최악의 일을 마쳤을때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극한까지 그가 갔을때에, 두려움의 잔이 그의 손에 들려질 것이다.
(2) 하나님의 백성들은 환난중에 있는 그땅을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서 간절히 자비를 구한다(2절).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1) 자기들을 위하여 병역의 의무에 종사하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히스기야와 그의 방백들 그리고 모든 전사들이 주께로부터 끊임없이 힘과 용기를 공급받아야 하겠나이다. 매일 아침 그들이 나아갈때마다 그들은 새로운 할일을 만나고 극복해야할 어려움들을 만나겠사오니 그들로 기운을 얻게하시고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게하소서"(참조. 신 33:5).
2) 그백성의 무리를 위하여 : 주는...환난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잠잠히 앉아서 감히 높은 곳에 오르려 하지않는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구원자로만 의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자체로 믿고 의지했다.
(3) 앗수르의 군대는 괴멸당했다. 그들은 부유하게 되었으나 유다와 예루살렘에게 손쉬운 제물이 되었다. 기도가 드려지자마자(2절) 응답되었고(3절) 이루어졌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기들을 대적에게서 구원해주실 것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이상을 해주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들로하여금 그들의 적에 대하여 승리를 거두게 하신 것이다. 파멸시키는 천사가 수천명의 앗수르 군사를 도륙하자 앗수르 진영의 힘은 파괴되고 말았다(3절). 진동시키는 소리에 그나머지 백성은 도망쳤다. 공격당한 유다 모든 성읍들의 황폐를 복구하기위하여 앗수르 진영의 노략물이 탈취되었다(4절). '황충의 모임같이' '메뚜기의 뛰어오름같이' 예루살렘 거민들이 '그노략물을 모은 것이다.' 즉 약탈자들은 황충이나 메뚜기의 무리가 밭이나 나무를 황폐하게 만드는 것처럼 신속하게 앗수르의 부를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이다.
(4) 대적의 노략물이 그렇게 모아진다(5절). 여호와는 지존하시니. 그의 백성이 그일의 축복을 얻게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동맹한 국가들을 흩으실때에(3절), 그는 시온에 '공평과 의' 즉 정의감을 '충만케 하신다.' 이제 시온은 다시 '의의 성읍'이라고 불리울 것이다(1:26).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은 그들의 환난중에 하나님께서 그들편에 서셨다는 확신으로 용기를 얻는다(6절).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기에 바람직한 목표가 나와있는데, 그것은 우리시대의 '평안함' 곧 나라가 잠잠히 지내는 것과 구원의 힘 즉 외부의 대적에게서 구원을 얻는 것이다. 여기에는 또한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들이 스스로를 다스려야할 경건한 상태의 규율이 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참된 신앙은 왕과 백성 모두에게 참된 보배니라." 그것으로인하여 그들은 부유한 자로 불리운다.
(5) 예루살렘이 처한 큰환난이 묘사된다. 여기서는 다음의 사실들이 예언되고 있다.
1) 그대적은 매우 난폭할 것이므로 그와는 평화조약을 체결할수 없고(왜냐하면 그는 그조약을 지키는 것이 마치 그를 그말의 종으로 낮추기나 하는 것처럼 '조약을 파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준비해서 그들을 대적할수도 없으니, 이는 그가 '성읍들을 멸시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의 자비의 탄원을 비웃는다. 그는 거의 저항을 받지않으므로 그들을 멸시하며 모든 사람들을 칼로 칠때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지않는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람에게도 관심을 두지않는다.
2) 그러므로 그는 어떤 조건으로도 화평의 관계를 맺으려하지 않는다. 화친을 맺기위하여 히스기야가 보낸 '평화의 사신'도 그가 매우 교만하여 더불어 협상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는 실망하고 상심하여 '슬피 곡할 것이다.'
3) 그나라가 얼마동안 그대적에 의하여 완전히 황폐하리라는 것이 예언되어 있다. 어떤 사람도 감히 그길을 여행하고자 하지 않았으므로 교역과 상업이 중단되었다. 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기며. 그땅에서는 어떤 사람도 이익을 얻을수가 없다(9절). 그황폐가 어디에나 임한다. 열지파에게 속했던 지역이 이미 황무하게 되었다. 백향목으로 유명한 '레바논,' 장미꽃으로 유명한 '샤론,' 가축으로 유명한 '바산,' 곡식으로 유명한 '갈멜'은 모두 매우 비옥하지만 이제는 광야처럼 되었으며, 예전상태와는 너무나 다르게 변했으므로 옛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들은 때가 이르기도전에 그약탈자의 손에다 그열매를 떨어치는도다."
(6)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 교만한 침략자를 치기위하여 나타나신다(10-12절). 지금까지 하나님은 무관심한 방관자로서 앉아계신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심판하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뿐 아니라 그가 모든것 위에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실 것이다. 모든 조력자가 끊어지는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도우실때이다. 하나님은 앗수르인들을 파멸시키실 것이다. "오, 앗수르인들이여!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라. 그것들은 무가치하고 무익하며 너희 호흡이 불이되어 너희를 삼킬때 좋은 연료구실을 할것이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여 너희가 내뿜는 위협과 살의는 너희 자신을 삼킬 것이라." 하나님은 그들 자신의 호흡이 그들을 사를 불을 지피게 하실 것이다. 그때에 그백성이 횟돌가마속의 횟돌불같이 되며 말라서 순식간에 타버리는 잘려나간 '가시나무'같이 된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앗수르 군대가 바로 그렇게 멸망했다.

Ⅱ. 희망의 예언 33:13-24
우리가 그능력을 인정해야 하는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은 시온의 죄인들을 두려움으로 치셨다(14절).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었다. 시온의 특권과 그봉사를 누린 죄인들이 있는데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않다. 이 시온의 죄인들이 비록 항상 은밀한 놀람과 두려움아래에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 자신의 양심의 가책으로인하여 평소보다도 더욱 큰두려움에 빠졌다.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거기에 불사를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을때 그들은 애굽으로 피신할수 없었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내려주신 약속을 불신하면서 어쩔줄을 몰라하며 이렇게 부르짖었다. 우리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그러므로 성읍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피신하자." 혹은 앗수르 군대가 멸망하는 것을 그들이 보았다는 뜻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바로앞에서 말한 그불이 앗수르 군대의 멸망이기 때문이다(11,12절).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 일을 행하는가를 시온의 죄인들이 보았을때 그들은 자기들이 다른 신들을 은밀히 섬김으로써 이 하나님을 격동시켰다는 것을 알고는 큰두려움에 사로잡혔다.
(2)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지한 그의 백성들의 안전을 은혜로 지켜주셨다. "이를 들으라. 그리고 의롭게 행하고 정직히 말하는 자를 높은 곳에 거하게 하시는 것을 보고 그의 권능을 알라"(15,16절).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사실을 볼수 있다.
1) 죄악이 관영할때에도 선한 성품을 가진 사람은 의롭게 행한다. 그는 공평의 법에 따라서 모든 자에게 그 해당한 몫을 돌리니 곧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몫을, 사람들에게는 사람의 몫을 돌린다. 그는 정직히 정직(원문은 이렇게 되어있다)을 말한다. 즉 그는 정직한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이웃을 착취함으로써 자기를 살찌우는 것을 천하고 더러운 일로 생각한다. 만약 어느때고 정의를 굽게하는 뇌물이 그의 손에 쥐어지면 그뇌물이 자기에게 들어오도록 하게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욕으로 여기고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한다.' 그는 '귀를 막아' 잔인한데에 빠지게 할수 있는 어떤 것이나 그에게 보복을 충동하는 어떤 암시도(욥 31:31) 듣지 아니한다. 그는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한다.' 그는 죄를 그렇게도 혐오하기때문에 다른 사람이 죄를 범하는 것도 차마 보지 못한다. 자기 영혼을 깨끗하게 보존하고자 하는 자들은 유혹에 대하여 귀를 막고 허탈한 것에서 눈을 돌려야 한다.
2) 모든 사람이 재앙을 당할때에라도 선한 자는 위로를 보존하므로(16절) 그는 안전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교제를 가질 것인데, 하나님은 삼키는 불이시지만 그에게는 도리어 기쁨의 빛이 될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환난에 대해서 그는 높은 곳에 거하여 그환난의 해를 실제로 입지는 않을 것이다. 큰물의 홍수가 그에게 가까이 하지못할 것이다. 혹시 그것이 공격해 온다하더라도 인공 및 자연적으로 요새화된 '견고한 바위가 그보장이 될것이다.' 만세 반석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높은 망대가 되실 것이다. 그에게는 어떤 것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철저하게 포위된 속에서라도 그에게 '양식은 공급되고 그물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에게 좋은 모든 것이 풍족할 것이다.
(3)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며 침략자들의 손에서 건지실 것이다. 히스기야는 베옷과 얼굴의 모든 슬픔을 벗어버리고 왕의 옷을 입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공중앞에 나타나(17절) 그의 사랑하는 모든 신하들에게 기쁨을 줄것이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들은 믿음의 눈으로 거룩한 아름다움중에 계신 왕의 왕을 볼것이며 또한 그아름다움이 그들위에 임할 것이다. 이제 포위가 풀리게되면 그들은 대적의 손에 빠질 위험이 없이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광활한 땅'을 볼것이다. 즉 그들은 그나라와 가장 먼 구석까지 찾아가게될 것이다. 이처럼 믿는 자들은 하늘의 가나안 곧 저 먼땅을 바라보면서 환난때에도 그소망으로 위로를 삼을 것이다. 그들이 빠져있던 그두려움에 대한 기억조차도 그들의 구원의 즐거움을 더해줄 것이다(18절). "그두려운 일이 끝났을때 기쁨으로 너의 마음에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하여 내리라. 너는 아직도 너의 귓가에 '비상, 비상, 비상!' 각자 제 위치로. 기록하던 자가 어디있느냐? 그로하여금 점호명부를 작성케하라. '공세를 칭량하던 자' 그리고 군대의 회계책임자가 어디있느냐? 방위비로 지출할수 있는 자금이 얼마인가 살피도록 하라. '망대를 계수하던 자가 어디있느냐.' 동원가능한 인원을 계수할수 있도록 그일을 잘하도록 하라'는 말이 아직 들린다고 생각하리라." 그들은 앗수르 사람들을 보아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앗수르 사람들은 강포한 민족이었고 유대인들의 청원이나 호소를 알아들을수 없는 이상한 방언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구실로 자기들은 유대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며 자기들의 말도 이해시킬수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백성은 방언이 어려워서 네가 알아듣지 못하며(19절).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20절). "그성에서 우리는 엄숙하고 신성하게 절기를 지켰으며 종교적 모임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위해 함께 모이곤 했도다." 선한 사람들은 바로 이 이유때문에 정복자들이 성전을 불태울까봐 시온을 인하여 고심했다. 여기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두가지 사실이 약속된다.
1) 확고한 기초가 있는 안전에 대한 약속이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안정한 처소'가 될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전처럼 전쟁이나 핍박의 경고에 의하여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29:20). "너는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는 살아서 그복을 보며 거기에 참여할 것이라."
2) 움직이지 않는 굳건함의 약속이다. 우리가 의식을 지키는 성읍인 예루살렘은 새예루살렘에 비해 보면 하나의 '장막에 불과하다.' 현재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나타나는 것은 미래를 위하여 준비된 그것과 비교해볼때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현재의 예루살렘은 '옮겨지지 아니할' 그러한 장막이다. 이 고난이 지나면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확고한 평강을 즐길 것이다. 그리고 그장막의 말뚝과 줄, 곧 신성한 특권은 옮겨지지 아니할 것이다. 땅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의 장막으로써 비록 그것은 이곳저곳으로 이동할수는 있지만 세상이 계속되는한 뽑히지 아니할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는 매세대마다 자기를 섬길 씨를 갖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그언약의 약속들은 교회의 말뚝이요, 복음의 교회의 줄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보호자와 구주가 되실 것이다(21,22절). 이것이 그들의 확신의 주된 근거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구주가 되실 것이며 영광스런 주님이 되실 것이다. 그는 넓은 하수나 강이 둘림같을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그옆을 흐르는 큰강이 없었으므로 교역과 통상에는 편의를 주었지만 최고의 자연적인 방비하나가 있다면 그곳을 '노질하는 배'가 통행치 못할 것이다.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요. 이는 우리가 그의 판단에 거하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오. 따라서 모든 생각이 그에게 복종케 된다.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게 충성해야할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그대적들은 마치 폭풍우속에 휘말려서 선구(tackle)는 찢어지고 돛대는 부러졌으며 그파손된 것을 수리할수 없는 배가 마침내 파선되는 것과 같다(23절). 그들은 예루살렘이 자기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예전처럼 항구에 막 들어와서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이 자기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때에 그들은 돛을 달지 못하였다. 그들의 진영의 재물은 유대인들을 의한 풍성한 노획물이 될것이다. 때가되면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나누리니. 그들은 장막을 그대로 버려두고 갔으므로 그모든 보화는 포위당했던 자들의 손에 들어가며 심지어 '저는 자도 그재물을 취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악한 것에서 좋은 것을 내셨으며 예루살렘을 부요케까지 하셨다. 질병과 죄가 모두 제거될 것이다. 그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저는 자도 그재물을 취할 것이며' 병든 자도 그리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전달된 나머지, 병든 자들마저도 그들의 질병을 잊고 즐거움에 참여할 것이다. 그들의 성읍의 구원이 그들의 치료가 될것이다. 혹은 병든 자들이 예루살렘이 번영하는 것을 보는동안에는 불평없이 그병을 견디어 낼것이다.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죄는 영혼의 질병이다. 죄를 용서하실때 하나님께서는 그병까지 고치신다.

# 핵심
33:1-24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으나, 교만함으로인해 심판을 받게된 앗수르의 비참한 운명에 관한 예언이다.

# 묵상
지존하신 여호와 ( 33:5 )
본문에서 소개되고 있는 그분은 지존하신 분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스스로 존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출3:14). 모든 생물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았기때문에 그분이 생명을 거둬가시면 즉시 죽음에 이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영원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보배 ( 33:6 )
보배는 여호와를 경외함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여호와 경외로인해 구원을 얻고 지혜와 지식이 풍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보배를 질그릇 곧 우리안에 가짐으로써 심히 큰능력을 발휘할수 있습니다(고후4:7).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의로운 자들은 복이 있다(마5:6)고 하셨습니다.
먼데 있는 자들과 가까이 있는 자들 ( 33:13 )
먼데 있는 자들이란 앗수르를 패배시킨 하나님의 심판과 그능력의 소식을 접하게될 원방 민족들을 가리키고, 가까이 있는 자들이란 앗수르의 참패를 직접 목격한 유다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은 지역적 한계를 초월하며 시간과 공간에 구애됨없이 전파될 것입니다.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함 ( 33:14, 15 )
삼키는 불, 영영히 타는 것은 바로 진노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불과 함께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할수 있는 자는 의인, 정직한 자, 불의를 미워하는 자입니다. 다윗은 시편 15편에서 이와 유사하게 주의 장막에 거할 자들의 목록을 제시합니다.
절기지키는 시온성 ( 33:20 )
우상숭배에 물들어 적의 침략을 받아 포로로 끌려갔을때 이스라엘은 절기를 온전히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포로에서 귀환하여 고토로 돌아온 이스라엘에 의해 다시 절기가 지켜질 것임을 암시합니다. 또한 이말씀이 종말론적으로는 사탄의 세력이 영원히 멸망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참예하게됨을 의미합니다.
새예루살렘의 이름 ( 33:21 )
그이름은 바로 ‘여호와 삼마’인데, 이말은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함께계시는 새성읍 예루살렘은 옛성읍과는 달리 영원히 멸망받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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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통치 32:1-8
본문은 번영하는 왕국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장관들과 신하 모두가 준수해야할 훈령집이거나 히스기야에 대한 찬양집으로 생각할수 있다.
(1) 장관들은 자기의 직책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고 또 권세자들은 그권세를 부여받게된 목적에 따라 통치해야 한다(1,2절). 방백들에게는 왕 곧 최고 통치자로서 그들을 다스릴 군주가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방백들은 그를 통하여 연합할수 있다. 그리고 왕은 그수하에 방백들을 두어 관원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함으로써 왕은 그들을 통하여 행동할수 있다(벧전 2:13,14). 그들은 법에 따라 그들에게 부여된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 그들은 또한 지혜와 공정한 태도를 가지고 공의를 이루도록 통치해야 한다. 그리스도 자신도 규율에 따라 통치하셨다. 이렇게함으로써 그들은 백성들에게 큰축복을 베풀게될 것이다(2절). 공의로 통치하는 자 곧 '그사람은...가리우는곳 같을 것이다.' 방백들이 그들의 도리를 다할때 백성들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행동할 것이다. 이 선한 통치자는 그신하들에게 모욕과 폭력의 풍우로부터 그들을 가리우는 방파제가 된다. 하나님은 가나한 자와 고아를 지켜주시는 분이다. 그는 땅을 서늘하게도 하고 비옥하게도 함으로써 '마른 땅에 냇물같을 것이며' 가난한 여행자가 살인적인 태양의 열기를 피할수 있는 '큰바위 그늘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신 그리스도 예수가 그의 왕국에 속한 모든 신실한 신하들에게 이와같으리라는 것은 더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가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냇물과 같은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곧 그는 여행자가 살인적인 태양의 열기를 피할수 있는 '큰바위 그늘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신 그리스도 예수는 그의 왕국에 속한 모든 신실한 신하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그분안에서 우리는 의에 굶주리는 자들에게 공급할 냇물과 곤고한 영혼이 구할수 있는 모든 원기 회복과 여행자에게 피신처를 제공하는 큰바위의 그늘을 발견하게 된다. 방파제와 바위가 자기들을 통해 피신처를 얻는 사람들을 구하기위하여 몸소 바람과 폭풍을 대하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지키기위하여 몸소 폭풍우를 맞으신다.
(2) 신하들은 자기가 맡은 직책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들은 기꺼이 가르침을 받고 그들의 통치자들과 교사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진리의 빛과 권능에 복종해야 한다(3절). 이와같이 축복받은 개혁이 수행되고 사람들이 개혁을 하는데 있어서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수행하게 될때 '보는 자' 곧 선지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상을 통해 그들에게 복을 주심으로써 그들로하여금 백성들과 교통하게 하신다. 그때 전파된 말씀을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생길 것이다(4절). '조급한 자의 마음'은 치유를 받아 '지식을 깨달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이 이해할수 있는 귀를 열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후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이일을 행하셨다(눅 24:45;요일 5:20). 하나님의 일에 대해 말할때마다 더듬거리곤 했던 '어눌한 자의 혀'도 이해를 바탕으로 믿고 말하는 자들처럼 '말을 분명히 할것이다.' 선과 악의구별은 빛을 어두움이라 하고 어두움을 빛이라 하는 자들로인하여 더이상 혼돈되지 않을 것이다(5절). 궤휼한 자를 다시 정대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니. 궤휼한 자들은 높은 자리에 오를때 '은인'(눅 22:25)으로 불리지만 세상이 더 현명해지면 그공로에 따라 발탁될 것이다. 악한 자들은 더이상 사람들로부터 평판을 얻지못할 것이다. 다시말해서 사람들은 그들의 재물이나 명예로운 직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끼치는 덕과 유익함과 선행을 통하여 백성들을 복되게 할것이다. 이러한 규율을 강화시키기위하여 여기에서는 궤휼한 사람과 정대한 사람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궤휼한 자와 야비한 자는 권세를 손에 쥘경우 더 큰불행을 초래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영광은 그를 더 악하게 만들 것이다(6,7절). 이처럼 비열하고 악한 사람들은 항상 부정한 일을 꾸민다. 그들에게는 일말의 관대함도 찾아볼수 없다. 죄안에서 일을 꾸미고 계획하는 경우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단에게 속한 일이 더많아진다. 그들은 감정이 격해있을때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비열하고 악한 말들을 서슴지않고 내뱉는다. 그들은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림'으로써 불경스런 행동을 한다. '위선'(역주:한글개역에는 '간사'로 번역되어 있음)이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그렇다. 악을 장려하기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도 없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대신 그들을 더궁핍하게 만든다. 어리석은 자는...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하며. 즉 그들은 주린 자들이 갖고있는 음식조차 빼앗으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려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는...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여. 즉 그들은 어느때보다 더 긴급한때에 늘 해오던 구제마저 끊어버린다. 이처럼 야비하고 악한 사람들은 항상 그주변에 그들의 악한 목적을 돕는 악한 하수인들을 거느리고 있다. 진실로 정대하여 그렇게 불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그의 힘이 닿는한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푼다(8절).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자선을 베푸는 일은 그릇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행해져야 한다.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하나님께서 그섭리를 통하여 그가 안정된 번영을 누리고 확고한 평판을 얻도록 그에게 보상을 해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은혜를 베풀어 그의 마음을 평안케 해주실 것이다.

Ⅱ. 아름다운 전망 32:9-20
이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궤휼한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시고 정대한 자들에게는 긍휼을 베풀어 그들의 정대한 행동에 대해 보상해주시는 내용을 대하게 된다.
(1) 사람들의 행실이 매우 악할때 역경의 시기가 온다. '안일한 부녀들'과 '염려없는 딸들'에게 그 경종이 울리고 있다. 그들의 교만과 사치를 채워주기위하여 그들의 남편들과 아버지들은 가난한 자들을 굶어죽게 하는 시험을 받게된다. "일어나서 정중하고 주의깊게 내 말을 들을지어다."
1)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쾌락과 방종에 빠져 살고있는 땅에 황폐케하는 심판을 내리려하셨다. 이것은 주로 산헤립의 군대가 유다의 모든 성읍을 포위하고 있을때 그들의 파괴행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러날 여러해'(흠정역)라는 말은 '일년 남짓'(한글개역에는 이렇게 표기됨-역주)으로 언급되어야 한다. 따라서 황폐케하는 심판은 일년이상 지속되었다. 앗수르 군대는유다 땅을 침입할때부터 시작해서 이처럼 오랫동안 유다 땅을 황폐케함으로써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려 했다. 너희 염려없는 여자들아...너희가 당황하여 하리니. 이사야 선지자는 여기에서 그들에게 소작료와 산해진미를 대어주던 그땅이 머지않아 황폐케되리라고 말한다. 포도수확이 없으며. "그렇게되면 너희가 무슨 수로 포도주를 즐기겠느냐? 열매거두는 기한이 이르지않을 것임이니라. 이는거두어들일 것이 전혀없을 것이기 때문이라(10절). 너희에게는 좋은 우유와 좋은 밭과 소산물이 부족하게될 것이라." 그들이 편히 살던 유다의 성읍들이 폐허가 될것이다(13,14절). 형극과 질려(곧 죄와 저주의 열매)가 내 백성의 땅에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그때에 강함과 웅대함에 있어서 요새와 망대같았던 그훌륭한 집들이 '영영히 굴혈이 될'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로하여금 이런 광경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그들이 '떨고 당황하며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신다(11절). 이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의 옷을 벗기리라는 것을 시사할뿐만 아니라, 환난을 막는 최선의 길은 진실된 자책과 경건한 슬픔으로 하나님앞에 회개하며 스스로를 겸비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환난에 대한 최상의 준비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모든 정욕의 즐거움을 떠나는 것이다.
(2) 자신의 순전함을 지키는 나은 자가 아직 있을동안에는 필경 좋은 시기가 오리라는 것을 기대할만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때를 히스기야 통치 말기에 보았다. 그러나 이 예언은 보다 멀리있는 메시야의 날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수 있다. 메시야는 '의의 왕'이며 '평강의 왕'이다. 이 복된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15절).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한 뜻뿐만 아니라 우리안에서의 하나님의 선한 역사까지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신을 주심은' 누가복음 11:13절과 마태복음 7:11절과의 비교에서 알수 있듯이, 사실상 그들에게 온갖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다. '성신이 그들위에 부어지리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이 소망을 가지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수 있는 위대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에 은총을 베풀고자 하실때, 그은총의 도구로 쓰시고자 하는 자들에게 성신을 부어주심으로써 자격을 부여하신다. 메시야의 왕국은 성령이 부어졌을때 임하셨고 세워졌으며(행2장), 또 세상끝까지 존속될 것이다. 광야(메마른 불모지)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그때 땅이 그소산을 낼 것이다. 메시야의 날에는 '산꼭대기 땅의 열매가 레바논같이 흔들리리라'고 하였다(시 72:16). 어떤이는 이것을 복음의 교회로 이방인이 들어오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성령이 땅에 부어지면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그광야를 '아름다운 밭'이 되게하고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어' 그밭을 더욱 기름지게 할것이다. 목회자들은 율법을 설명하고 재판장들은 그율법을 집행할 것인데, 이들은 악한 자들을 선하게 하고 선한 자들을 더 선하게 할만큼 현명하고 신실할 것이다. 각계각층의 백성들 곧 가난하고 비천하며 무식하여 광야처럼 버려진 자들과 부유하고 훌륭하고 유식하여 아름다운 밭처럼 존경을 받는 자들이 다같이 정확한 사리판단을 하게될 것이다. 내적인 평화(17절)는 의가 내재할때 따라온다(16절). 의자체가 곧 평화이며 그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 곧 마음의 경건한 평정과 안심이다. '모든 경건과 단정함중에' 사는 삶은 고요하고 평안하다(딤전 2:2).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우리는 의무를 이행하는 가운데서 진정한 기쁨을 얻을 것이다. 비록 의의 역사가 수고스럽고 우리에게 멸시를 준다하더라도 그것은 평화이다.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산헤립의 침입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자 백성들은 의심할 나위없이 전쟁의 경보로 소란스럽게 되지않은 조용한 거처가 주는 긍휼을 그 어느때보다도 실감하였다. 각가정은 분쟁과 싸움없이 평화로이 지내도록 해야한다. 그리고나서 가정을 하나님의 보호에 맡겨야 한다. 예루살렘은 평화로운 거처가 될것이다(참조. 33:20). 바람을 막도록 심기운 '삼림이 우박에 상하고' 그위에 격하게 부딪히는 폭풍이 임하게 될때에도 예루살렘은 '조용히 쉬는 곳'이 될것이다. 왜냐하면 그성읍은 낮은 곳에 있게될 것이어서 즉 바람보다 낮은 곳에 있어서 노한 폭풍을 맞지않으며 '예루살렘을 두른 산들'(시 125:2)로 보호받는 곳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방곡곡에서 해마다 좋은 곡식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수확을 증가시켜 주실 것이지만, 농부들은 부지런해야 하며 '모든 물가에 씨를 뿌려야' 한다. 만일 농부가 그렇게만 한다면 그가 자신의 가축들 곧 소와 나귀를 몰고 들어가 잎사귀를 먹일정도로 곡식이 무성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농부처럼 물가에 그들의 씨를 뿌리러나가는(마 13:3) 사도들의 사역에 대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복된 시대를 베푸실때 자기가 가진 것으로 선을 행함으로써 그것을 더욱 향상시키는 자들, 즉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는 자들에게는 복이 있다.

# 핵심
32:1-20
의와 공평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왕이 출현할 것을 선포한다.
물가에 씨뿌리기(32:20)
물이 귀했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물가는 농작물을 재배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다. 물가에 뿌린 씨앗마다 풍성한 수확을 거둘수 있었고(시 1:3), 심지어 소와 나귀 등의 가축들을 물가의 밭으로 몰고나와 일찍나온 잎들을 먹일수 있었다. 물가의 땅은 비옥하여 식물들이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 묵상
의로 통치할 한왕 ( 32:1 )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고대해온 구세주 메시야를 뜻하는 말로서, 이는 하나님나라를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고명한 자 ( 32:8 )
고명한 자란 히브리어로 ‘나디브’라는 말로, 남에게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가리킵니다. 곧 외부적인 강압에서가 아니라 그내면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봉사정신입니다. 예수님은 이일을 위해서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따라서 그분의 제자된 성도는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돌보는 성품이 되어야합니다.
안일한 부녀들 ( 32:9 )
‘안일하다’라고 번역된 ‘솨아난’은 ‘태평스러운’, ‘오만한’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일한 부녀들이란 안심하고 나태한 여인들같은 예루살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마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처녀(마25:6-15)와 같이 주의 날의 도래에 대해서 알지못한채 오직 현재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의가 있는 아름다운 밭 ( 32:16 )
구약사상에 따르면 땅의 생산력과 인간의 정의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시72편; 사11:1-9). 그러므로 이표현은 의를 이루는 곳에서는 생산력도 풍성해짐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부어짐으로 새로운 삶의 유형이 나타나고 그결과로 자연도 새로운 생산력을 갖게됨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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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애굽을 의지한 자의 재앙 31:1-5
(1) 여기서 그 죄가 책망되고 있다(1절). 그들은 마치 거짓된 신들을 경배하는 자들이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의 종들보다도 더 성공할수 있기라도 한양, 위급할때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갔다.' 애굽인들은 많은 병사와 말 그리고 기병들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만일 그들이 그곳에서부터 자기들을 도울 군대를 데리고 올수 있다면 앗수르 왕을 이길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무시하였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2) 이죄의 어리석음은 그들이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였다는데에 있다.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2절). 그가 자기의 무한하신 지혜로 애굽의 모든 책략보다 더뛰어나게 이스라엘을 도우시지 않겠는가? 그들은 하늘을 바라봄으로 더좋은 도움을 가질수 있었을때에 그렇게 하지않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수고, 즉 지루한 여행을 하였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려하지 않는다면 그가 '악행하는 자' 곧 애굽으로 내려가는 음모를 꾸민 자들을 치실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을 도울수 없는 자들을 의지하였으며 결국 그의지가 무용했음이 곧 드러나게 되었다(3절). 그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의지하려고 하는 애굽인들이 '사람이요 신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모든 사람은 애굽인들이 하나님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영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도움을 구하는 자들은 그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않다면 그들은 그것들에 대해 그처럼 신뢰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애굽인들은 '애굽에 관한 경고'(19절)에서 볼수 있듯이 곧 보응을 받을 것이다. 그때 그들에게로 피하여 도움을 얻고자한 자들은 그들과 함께 무너질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서 하나님의 일을 탈취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애굽과 동맹을 맺는 것이 곧 예루살렘을 보존할수 있는 큰방편인양 자부하였다. 이제 이사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애굽의 원조없이도 보존될 것이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은 애굽으로 도망한 자들이 멸망할때일지라도 여전히 안전하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식물을 움켜쥘때 사자가 취하는 그런 대담함으로 예루살렘의 대적들을 치실 것이다(4절). 사자가 자기 식물을 움켜쥐기 위해 나아올때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가 불려온다.' 그러나 이목자들은 감히 사자에게 가까이 접근하지 못한다. 그들이 할수 있는 모든 것은 '소리'를 내는 것뿐이며 그렇게함으로 사자를 놀라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사자가 그소리에 개의하겠는가? 아니다.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인하여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이와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산...에서 싸울 것이며. 즉 그는 사자가 어린양을 갈기갈기 찢듯이 아무저항도 받지않고 쉽사리 앗수르 군대를 멸할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단지 사자를 향해서 소리지르는 여러 약하고 단순한 목자들과 같을 따름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새가 그새끼들을 대하는듯한 자애로움으로 예루살렘의 벗들을 위해 나타나실 것이다(5절). '새가' 공격을 받았을때 전속력으로 '날개치며' 그둥지로 날아가 그주변을 배회하여 자기 새끼들을 보호하고 침입자들을 쫓아내듯이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애정과 긍휼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보호하실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넘어와서 구원하리라. 본문에서와 같은 의미로 '넘어온다'는 말이 사용된 곳은 단지 이곳에서와 멸망시키는 천사가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일때 이스라엘 사람의 집을 넘어간 것에 관해서 기록해 주고있는 출 12:12,13,27절에서 일뿐이다. 앗수르 군대는 예루살렘을 넘어가는 멸망시키는 천사에 의해 멸절되어질 것이었다. 그들은 온역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나 포위된 자들은 한사람도 전염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같이 그는 그의 백성의 집을 넘어가실 것이며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Ⅱ. 회개의 요청과 구원 31:6-9
(1) 개혁되어진 예루살렘은 대적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다(6,7절). 성읍에서 외치는 여호와의 소리와 심판을 해석해주는 선지자의 소리가 그것을 보여준다. "너희는 악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즉 너희 이스라엘 자손이 거역했던 이에게로 다시 충성스럽게 돌이키라." 이사야 선지자는 그들에게 그들의 태생과 혈통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들은 타락한 자손들이긴 했으나 그래도 자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돌이켜 그들의 타락을 고침받아야 한다. 은혜로운 약속이 나타나 있다. 은우상 금우상을 그날에는 각사람이 던져버릴 것이며. 즉 히스기야의 명령에 복종할 것이다. 앗수르의 침입으로 경고를 받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하기를 거절했었다. 우리 죄에 대해서 우리를 두렵게하는 것은 복된 두려움이다. 그것은 전체적인 개혁이 될것이다. 각사람은 자신의 우상들을 던져버릴 것이다. 그것은 정책적인 이유로 행해지는 것이 아닌 경건에 의한 개혁이 되어질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우상을 던져버릴 것인데 이는 그것이 그들로 범죄케하였기 때문이다.
(2) 예루살렘을 포위한 자들은 패주할 것이다. 그들이 우상을 던져버릴때에 앗수르인들은 무너질 것이다(8,9절). 앗수르 군대는 천사의 손에 들려진 여호와의 칼에 의해 즉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앗수르 왕은 보이지않는 칼을 피해 그자신의 요새로 도망갈 것이다. 그와 함께있는 그의 방백들은 기호를 보고서 그것이 자기들을 쫓는 유대인 무리의 기호가 아닌가하여 기호를 볼적마다 노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이와같이 할것인가?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불과 가마가 있는 곳에 기거하듯이 그곳에 거처를 두고 계시다. 앗수르인들은 그를 자신의 집에서 쫓아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는 친히 예루살렘 사면의 불성곽이 되신다. 따라서 도성을 공격하는 자는 누구든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게 된다.

# 핵심
31:1-9
유다는 친애굽 정책으로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악행을 일삼은 결과 앗수르에 의해 유린당하는 위기를 맞아야 했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이사야는 인간과 우상을 의지하는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 주어질 안전을 약속한다.
애굽의 말과 병거(31:1)
고대 근동에서 말과 병거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데 큰몫을 차지했다. 애굽의 바로는 출애굽 당시만해도 600승의 병거를 보유했고(출 14:7), 애굽왕 시삭은 1,200승의 병거와 60,000의 마병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했다(대하 12:3). 그리고 애굽은 말과 병거를 수출한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왕상 10:29). 일찍이 하나님은 왕된 자에게 말을 많이 두지말라고 명하셨으며, 말을 얻으려고 애굽으로 가는 일을 금하셨다(신 17:16). 이는 언약 백성으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도록 하시기 위한 조치였다.

# 묵상
불려오는 여러목자 ( 31:4 )
여러목자가 불려왔다는 말은 동맹을 맺은 여러나라의 왕들이 앗수르를 원조하기 위하여 나아온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자가 식물을 움키려고 으르렁거릴때 사람들의 소리로인하여 놀라거나 굴복하지 않음같이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앗수르는 멸망케하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불과 풀무 ( 31:9 )
여기서의 불과 풀무는 진노의 불이 아니라 지키시는 불인 화염검(창3:24)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불이 함께하시기때문에 앗수르의 왕과 방백들은 두려워하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을수 없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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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애굽을 의지한 죄 30:1-7
유다 백성들이 이웃 나라로부터 공격을 받았을때 하나님을 바라고 그를 의뢰하는 대신에 또다른 이웃 나라의 원조를 구한 것은 그들의 실책이었고 어리석음이었다. 유다는 이스라엘을 치기위해 아람에게 도움을 청하였으며(대하16:2,3) 아람을 치기위해서는 앗수르의 도움을 청하였고(왕하16:7) 앗수르를 치기위해서는 애굽의 도움을 청하였다(왕하18:21).
(1) 그들의 죄에 대한 묘사 : 그들은 하나님께 논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계교'를 베풀면서 내게 조언을 구하지 않으며 더나아가서는 내 뜻을 받아들이려고도 하지않는도다."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이는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며 거짓 피난처임이 드러날 것이라." 그들은 '바로의 세력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였다.' '애굽의 그늘'(그것은 단지 그늘에 불과했다)이 바로 그들이 자신들을 감싸려했던 겉옷이었다.
(2) 이 죄의 악함 : 그들은 신앙고백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의지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이 패역한 자들로 낙인찍힌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죄에 죄를 더하였다. 그들은 애굽인들을 자신들의 맹우로 만들기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다.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그들은 그리로가는 편한 길을 찾기위해 왔다갔다 하였다.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즉 하나님께서 그것을 용납하시는지의 여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일을 이루기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였다(6절). 그들은 그들의 재물을 '남방 짐승'(애굽에서 가져온 것으로 유다 남방에 있던 말)에 실었다. 두려워하는 자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그들은 자기들이 사는 곳보다 다른 곳이 더안전하리라고 생각했다. 혹은 그들은 바로의 조신들에게 뇌물로서 그재물을 보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값없이 도우셨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애굽에게 도움을 청할경우 그들은 상당한 대가를 치뤄야 하였다. 그들은 거칠고 곤고한 땅, 즉 가나안과 애굽사이에 위치한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사자와 불뱀이 있는(신8:15) 땅을 지나 애굽으로 그들의 보화를 운반하였다.
(3) 그 죄의 결과 : 애굽인들은 그사신들을 영접했을 것이며 환대했을 것이다. '그방백들은 소안에 있고' 그왕은 자신이 그들에게 보내줄 원조를 의지하도록 격려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기대한만큼의 성과를 얻지못할 것이다. 애굽인들은 그들을 유익하게 할수가 없었다(5절). 하나님께서는 애굽인들이 그들에게 '무익하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다(6절). 그들이 일으켜 주기로한 군대는 적합한 시기에 징집될수가 없었다. 혹은 애굽인들은 은밀히 앗수르인에게 붙었는지도 모른다.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7절).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3절). "따라서 너의 자신이 애굽을 의지한 너희의 어리석음을 비난할 것이라. 그리고 네가 의지했던 '애굽의 그늘' 즉 '날개치는 소리나는 땅'(18:1)이 너희의 부끄러움이 될것이라." 동맹을 맺기위해 매우 힘쓴 이스라엘의 방백들은 '그들이 다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하며 수욕이 되게한 것임'을 알고 크게 부끄러워할 것이다(5절). 피조물을 의뢰하는 자는 조만간에 그것이 그들에게 치욕이 됨을 알게될 것이다. 창조주는 만세반석이지만 피조물은 상한 갈대이다. 우리는 사람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되는 반면, 하나님께는 많은 것을 기대할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에 대해 외쳤느니라. 그들의 세력은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라. 즉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른 피조물들에게서 도움을 구하려고 방황하지 않는 것이니라."

Ⅱ. 경고의 말씀 30:8-17
(1) 본문에 있는 서문은 매우 두려운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것을 기록하여 이 악한세대에 대한 영구적인 증거로서 보조하여야 했다. 서판에 기록하여 책에 써서 후세에 영영히 있게하라(8절). 그것은 당시의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기위하여 기록되어져야 했다. 즉 그들의 자녀들이 그것으로 유익을 얻을 것이다. 만일 백성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악한가를 알지못한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쓰시기전에 얼마나 공정한 방법으로 시험하셨는가를 알지못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너무 자기들에 대해 가혹하다고 생각하기가 쉬울 것이다. 이같이 기록케 한것은 먼후대와 먼곳에 떨어져있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서이다.
(2) 불경스럽고 사악한 유대인들에 대한 묘사가 나타나 있다.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9절). 즉 "그들은 자기들이 한말 곧 정당한 약속도 지키려하지 않는도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적하였다. "그들은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며 또 그것을 따르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3) 그들에게 내려진 선고는 두려운 것이다.
1) 그들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했다. 그들은 실제로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고 하였다. 선지자들은 그들에게 그들의 과오를 말하면서 죄로인한 그들의 위험을 경고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견뎌낼수가 없었다. 선지자들은 그들에게 부드러운 말을 해주어야 했다. 아무리 옳고 참되다할지라도 부드러운 말이 아니면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않았다. 속기를 바라는 자들이 속아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선지자들은 그들로하여금 죄악을 좇지못하도록 가로막았으며, 하나님의 진노의 칼을 손에 들고 발람의 길을 막았던 천사처럼 그들의 길을 막아섰다. 그들은 고집스럽게 마음에 정한바를 밀고나갈때 선지자들에게 '너희는 정도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에 대해서, 그리고 그분이 얼마나 엄하게 죄인들을 벌하실 것인가에 대해서 말하였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사악한 백성들이 대부분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그들에게 선고가 내려졌다(12,13절).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심을 말할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심판의 근거가 나타나 있다. 너희가 이말을 업신여기고. 여기서 '이말'이란 일반적인 의미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모든 말씀을 뜻하는 것일수도 있고, 혹은 특별한 의미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임을 선포하는 본문의 말씀을 뜻하는 것일수도 있다. 너희가...압박과 허망을 믿어. 즉 그들은 사기와 폭력으로 얻은 제물이나 그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택한 죄악된 방법을 믿었다. 그들이 이러한 것들을 의지했기에 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에게 심판이 내려졌다. 이 죄악이 너희로 마치 무너지게된 높은 담...같게 하리라. "너희가 의지하고 있는 이것은 모래위에 지은 집처럼 될것이라. 너희가 의지했어야할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사실이 너희가 의뢰하고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을 불쑥 나온 담처럼 만들 것이라. 그리하여 그위에 조금만 무게가 가해져도 그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무너지고 말것이라."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짐같게 하리라. "너희와 너희가 의지했던 모든 것이 토기장이의 진흙처럼 약하게 될뿐만 아니라(28:16) '그릇의 훼파됨'처럼 산산히 파쇄될 것이라. 즉 사용하지 못할정도로 산산히 부서져서 물이나 불을 조금도 담을수 없는 토기처럼 되어질 것이라." 물, 불 이 두가지는 일상생활에 매우 필요한 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대개 깨어진 그릇 조각에다 그것을 얻어오곤 했다.
2)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로운 인도하심을 무시하였다. 그들은 자기들 뜻대로 하려고 하였다(15-17절). 그들을 알고 계셨을뿐만 아니라 그들의 안녕을 바라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귀한 처방을 베풀어주셨다. 그것은 또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온갖 악한 재앙에서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즉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우리의 안식처인 그분안에서 휴식을 취하여야 한다. 위의 악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과 우리의 의무가운데 거하자. 그것이 구원얻는 길이다. "애굽으로 내려가고자 하는 계획에서 돌이키라. 돌이켜(너희 마음과 생활을 철저히 개혁하여) 안연히 처하여야(너희 영혼을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시켜야) 구원을 얻을 것이라."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일을 행할 힘을 얻었으면 하는가?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하시고자 하는일을 행하실수 있으리라는 확실한 신뢰를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할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의 힘이 될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고가 자기들에게 아무리 유익된 것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자신들의 의사로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은 마땅히 병으로 죽게될 것이다. 그들은 지시된 처방대로 시도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너희는 이르기를 아니라(16절)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지 않겠노라 하였노라." 우리가 말타고 도망하리라...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즉 "우리가 외국의 원조를 얻기위해 여기저기로 다닐 것이라." 산헤립이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들을 모두 점령했을때 저패역한 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참을성있게 하나님께서 이전에 그들을 위해 놀랍게 행하셨던 것처럼 이제도 행하실 것을 기다리라고 하는 권고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죄는 곧 그들의 형벌이 될것이다. "너희는 도망하리라 한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너희가 전속력으로 달아나면 너를 추격하는 자들도 그리할 것이라." 개들은 빨리 달아나는 자들을 더욱 쫓으며 짖어대는 법이다. 정복자들은 가만히 앉아있는 자들은 보호해주었으나 달아나는 자들은 추격하였다. 그들이 쉽게 끊쳐질 것이 예언되어졌다(17절). "한명의 대적이 그들 일천명을 물리칠 것이며 다섯명의 대적이 한군대를 도망치게할 것이라. 단지 여기저기에 겨우 피신한 자들이 홀로 살아남아서 외떨어진 곳 즉 '산꼭대기의 깃대같이' 되리라.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기위해 남아있게될 것이라."

Ⅲ.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 30:18-26
어떤 이들은 앞의 마지막구절('너희 남은 자는 산꼭대기의 깃대같겠고')에 나오는 '남은 자'를 자비의 기념으로 보존되리라는 약속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본문의 첫구절을 댓구로 읽을수도 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1)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실 것이다. 그는 은혜를 베풀기위해 기다리실 것이다(18절). 즉 "그는 너희가 그에게로 돌이켜 그의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실 것이라. 그래서 그는 너희를 긍휼로 맞을 준비를 하실 것이라. 그는 너희를 구하시기위해 스스로 격동하실 것이며 일어나실 것이라. 그는 '그성소에서 일어나실' 것이라."(슥 2:13). 여호와께서...일어나시리니. 즉 "그는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즉 위급한때의 곤곤한 부르짖음과 타는듯할때의 기도의 부르짖음을 말한다. 들으실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그가 들으신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도다. 첫마디에 그가 네게 응답하실 것이며 내가 여기 있노라고 말씀하실 것이라." 재산의 침해를 받았던 자들은 다시 안온히 자기의 소유를 누리게될 것이다. 위험이 지나가면 그들은 전처럼 '시온에', '예루살렘에' 거할 것이다. 그들은 악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거할 것이다. 시온 즉 거룩한 도성에 거하는 자들은 그곳이 그들의 눈에 있는 눈물을 씻기에 충분한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은 두가지 큰진리에 근거하고 있다.
1)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는 그의 섭리의 모든 배분에 있어서 지혜로우시며 공의로우시고, 그의 말씀에 있어서 진실하시고, 그의 백성에 대해서 자애로우시다.
2) 그러므로 그를 기다리는 모든 자는 복이 있다. 즉 기도로써 그리고 소망을 가지고 그를 기다리는 자들은 복이 있다.
(2) 그들은 다시는 은혜의 방편의 부족을 겪지않을 것이다(20,21절). 그들이 다시는 '통곡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는 것이 약속되었다(1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실지도 모른다는 것이 여기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들의 눈이 그들의 '스승을 볼것'이라는 것이 약속되었다. 즉 그들이 신실한 스승을 얻을 것이며 그를 존경하게 될것이고 이전처럼 그를 무시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약속되었다. 그리고나면 그들은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더달게 받을수 있을 것이다. 옛청교도들 사이에는 "흑빵과 복음과 진수성찬"이라는 속담이 있었다. 그들의 스승들은 구석으로 쫓겨나 있었던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스승들을 구석에서 다시 부르시어 그들을 엄숙한 집회에 다시 세우실 기회를 찾으실 것이다. 그들이 공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적인 경고와 충고를 하는 특전도 가지게 되리라는 것이 약속되었다(21절).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즉 "길을 잘못든 나그네를 부르듯이 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 것이라." 다시말해서 "네 두에서, 즉 그는 너를 보되 너는 그를 보지못하는 곳에서 들려올 것이라"는 뜻이다. "네 눈은 네 스승을 보고 있노라. 그러나 눈에 보이지않는 스승이 있으니 그는 곧 네 자신의 양심으로서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그것의 직임을 다하도록 일깨워줄 것이라." 그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이말은 네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했을때 들려질 것이라." 좌편과 우편에는 과오가 있으며 각편의 덕에는 치우침이 있다. 그리고 유혹자는 우리를 곁길로 유인해 내기에 바쁘다. 그때에 신실한 사역자나 친구의 세심한 권고에 의해 혹은 양심의 저지와 하나님의 성령의 주장하심에 의해 우리가 옳은 길가운데 있게되고 잘못된 길로 가지않는다면 복된 일이다. "그것은 말하여질뿐만 아니라 네 귀가 또한 그것을 들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이전에 한번, 두번 말씀하셨을때 네가 그것을 듣지 아니하였느니라(욥 33:14). 그러나 이제 너는 이 은밀한 속삭임을 주의하여 듣되 순종하는 귀로 들을 것이라."
(3) 그들은 그들의 우상숭배에서 치료될 것이다. 즉 우상에서 떠나게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과 다시는 관계하지 않을 것이다(22절). 그들은 그들의 가장 사랑하는 죄와 결별할 것이다. 이전에 그들이 배교했던 날에 그들은 얼마나 미친가운데 떨어져 있었는가. 그들은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만들 우상에 올린 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금에다 채색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위에 덮개와 장식물을 올렸다. 즉 그들은 우상을 경배하는 일에 드는 비용은 조금도 아까운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회개의 날에 그것들에 대해서 얼마나 심한 분노를 품었던가. 그들은 그들의 신상들을 격하시켰을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파손시켰고 또한 우상을 만든 금과 은을 심한 분노로 던져버렸다. 아마도 이것은 산헤립의 군대로부터 예루살렘이 구원받은후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그것을 버린 많은 사람가운데서 성취되어진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을때 성취되어졌다. 이는 그들이 그후로 우상을 가증히 여겼기 때문이다. 아울러서 이말씀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말미암아 영적인 우상숭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으로 돌아오는 영혼의 회심가운데서 날마다 성취되고 있다.
(4)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온갖 좋은 것들을 풍성히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들의 스승들을 주시고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 그들의 마음을 드릴때,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것도 그들에게 더하실 것이다(마 6:33). 그리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때, '땅은 그소산을 내며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시 67:5,6). 따라서 다음과 같은 말씀이 이어서 나타나고 있다. "네가 네 우상들을 버릴때 네가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실 것이라."(23절). 하나님께서는 비를 주셔서 우리가 뿌린 씨앗을 적셔주실 것이다.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즉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 영적인 소산을 내는 일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땅의 소산은 '살찌고 풍성케'될 것이다. 즉 소산들이 매우 살찌고 넉넉하며 충분할 것이다. 너의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곡식도 까지않은 겨채로는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고, '육지창으로 까불어' 훌륭한 곡식으로 주어지게 될것이므로 골짜기로 흘러내리는 '개울'과 '시냇물'이 잇게될 것이다(25절). '크게 살육하는 날'은 천사에 의해 앗수르 진영에서 있어질 일로 그때에는 그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하기위해 세운 망대들이 무너질 것이다.
(5) 이모든 것의 결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줄것이다(26절). 빛이 증가될 것이다. 즉 지식이 증가될 것이다(그 예언들이 성취될때 그들은 완전히 깨닫게될 것이다). 달빛은 햇빛같겠고 햇빛은 칠배가 되어 일곱날의 빛과 같으리라. 그때 '여호와께서 그백성의 상처를 싸매실 것이다.' 즉 이 침입으로인해 그들에게 행해진 상처들을 고치시고 모든 손실들을 보상하실 것이다. 복음은 흑암중에 앉아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빛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마치 햇빛이 달빛을 능가하듯이 구약의 빛을 능가한다.

Ⅳ. 앗수르의 멸망에 대한 예언 30:27-33
앗수르 군대의 멸망을 보여주는 이 두려운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의 한부분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앗수르로하여금 그와같은 일을 행하지 못하도록 막으실 것이다.
(1) 여기에 전능자 하나님이 그의 권능과 진노의 두려움으로 소개되어 있다(27절).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이름은 앗수르 사람들이 무시하던 이름이었다. 그는 진노의 사자이시다. 그의 진노가 불붙듯하여. '하나님의 입술'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방의 신들과 비교한 랍사게의 모독으로인해 '분노로 찼다.' 그혀는 맹렬한 불같으며. 그는 자신의 분노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 장엄한 소리를 듣게하시며 혁혁한 진노로...명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30절).
(2) 여호와의 이러한 진노에 의해 다음과 같은 것이 나타났다. 여호와께서...그팔의 치심을 보이시되(30절). '주의 손이 높이 들리는 것을 보지않으려는'(26:11) 자들도 그팔의 내리침을 알게될 것이며 그심판의 중함을 발견하게될 것이다(27절). 여기에 다음 다섯가지의 심판이 나타나 있다.
1) 창일하여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 앗수르 군대는 이제까지 유다에 대해 '목에까지 미치는 창일한 하수'였었다(8:7,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분노의 호흡이 그들로 그와같이 당하게할 것이다.
2) 멸하는 키. 하나님께서는 이것으로 앗수르 군대를 이루고있는 열방들을 까부르려고 하셨다(28절). 그는 그들을 흔들어 서로를 치게하고 그들을 크게 놀라게하여 모두 없어지도록 그들을 까부를 것이다. 이는 그것이 '멸하는 키'이기 때문이다.
3) 자갈. 하나님께서는 자갈을 먹이시는데 이는 그들로하여금 악을 행하지 못하게하며 그들 자신들의 뜻과는 달리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봉사케하기 위해서이다(10:7).
4) 막대기...몽둥이. 심지어 '여호와의 목소리'까지 있다. 그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다'(31절). 그것을 피할수 있는 길은 없다. 앗수르 사람이 발견되는 모든 곳에서 여호와께서는 '그위에 몽둥이를 더하심으로서' 안식이 있게하실 것이다(32절).
5)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고...예비된 것(33절). 예루살렘에 인접해있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를 '도벳'이라고 불렀다. 그골짜기에 많은 앗수르인들이 진을 쳤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거기서 그들은 멸하는 천사에 의해 살육당했다.
(3) 앗수르의 멸망은 곧 예루살렘의 승리이다(29절). 너희가...밤에와 같이 노래할 것이며. 즉 밤중에 여호와의 전에 서있는 자들이 노래하듯이 찬미의 시로 그의 영광을 노래할 것이다.

# 핵심
30:1-33
유다 멸망의 외적원인을 설명한다. 즉 유다는 앗수르의 침략을 막기위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과 동맹을 맺는 과오를 범했다.
남방짐승(30:6)
이에 대해 몇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애굽의 상징적 동물인 물소나 하마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애굽 사람들을 지칭한다는 견해. 그러나 이것은 애굽에 구원을 청하는 유다의 헛된 시도를 책망하는 전후 문맥상 타당하지 않다. 둘째, 본절 하반절에 나오는 사자들과 독사, 기타 무서운 짐승들을 가리킨다는 견해. 이것역시 수용하기 어렵다. 셋째, 재물과 보물을 싣고가는 유다 사신들의 어린나귀를 가리킨다는 견해. 여기서 나귀는 그들의 주인인 유다의 사신들과 함께 경고를 받고있다. 문맥상 이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 묵상
죄에 죄를 더한 이스라엘 ( 30:1-2 )
죄는 그죄로만 끝나지 않고 또다른 죄를 유발시킨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한번 한것을 다시 반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죄는 습관화되어 그영향으로 죄를 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마귀를 대적하며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벧전5:8-9).
남방짐승 ( 30:6 )
델리취는 이짐승이 하마를 가리키며 애굽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주변 국가들로부터의 안전을 위해 세력이 막강한 애굽의 도움을 구하기위해 많은 보물을 싣고갔으나 그것은 헛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때 가장먼저 그들을 보호하시는 여호와께 도움을 구해야 했습니다.
부드러운 말을 하라고 요구한 백성들 ( 30:10 )
책망과 심판을 선포하지말고 그들의 귀에 듣기좋은 소리 곧 복과 평강만을 외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잘못을 회개하는 소리보다는 복을 빌어주는 말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기복신앙입니다. 많은 종교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평강을 빌어주지만 기독교는 진정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여호와를 외면하고 자기이익만 구하는 자에게는 심판을 선언합니다. 그래서 당시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백성들의 이러한 요구에 따라 평강하다는 거짓을 선포했습니다.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 ( 30:20 )
극심한 곤궁과 재난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곧 구원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는 표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표현은 그들이 당하는 비통의 때가 곧 끝날 것임을 확신시켜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날이 이르기전 재난의 시작이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마24:6-9).
백성들이 정도를 걷게되는 방법 ( 30:21 )
우편으로 치우치거나 좌편으로 치우칠때마다 뒤에서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있게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소리로서 사람들로하여금 좌편이나 우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걷을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원방에서부터 오는 여호와의 이름 ( 30:27, 28 )
여호와의 이름이나 여호와의 능력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표현은 앗수르를 치기위하여 먼나라인 바벨론에서 군대가 진군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미혹케하는 자갈을 통해 열방을 까부르면 그들은 어쩔줄 몰라 허둥대며 최후의 순간을 맞을 것입니다.
멸하는 키 ( 30:28 )
하나님의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중 하나는 선과 악을 구분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날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시기 위해서 키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이유 ( 30:29, 30 )
유다를 잔혹하게 압제하던 앗수르가 멸망당하기 때문입니다. 앗수르의 멸망으로인해서 이스라엘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구원을 기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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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예루살렘의 고난과 그 대적의 파멸 29:1-8
본문에서 '아리엘'이라고 불리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라는데에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왜냐하면 아리엘이 다윗이 거한 성읍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시온'이라고 불리는 곳의 일부가 특별한 의미로 다윗의 성읍이었는데, 그곳에 성전과 궁전이 있었다. 그러나 그성읍이 왜 그렇게 불렸는지는 확실치 않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성읍에도 별명이 있다. '아리엘'이란 "하나님의 사자" 혹은 '강한 사자'라는 뜻이다. 사자가 금수중 왕이듯이 예루살렘은 성읍중의 성읍이었다. 예루살렘이 의로운 성읍으로 있는동안은 사자처럼 담대하였다. 혹자는 '아리엘'이 사자가 먹이를 삼키듯이 제물로 바쳐진 짐승을 삼킨 "번제단"을 의미한다고도 본다. 그러나 오히려 그말은 "슬프다 예루살렘이여 예루살렘이여"라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 나을듯하다. 여기에서 '아리엘'이 반복하여 불리어지는데(마태복음 23:37절에서 '예루살렘'이 반복하여 불리어진 것처럼) 그것은 좀더 각성시키기 위해서이다.
(1) 예루살렘의 고난이 예언된다. 비록 예루살렘이 견고한 성읍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죄악이 발견되면 화가 있게될 것이다.
1) 예루살렘은 그가 외면적인 종교적 행사를 수행했다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했다(1절). 연부년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즉 "해마다 계속해서 절기를 지키라. 너희 모든 남자로 일년에 세번 여호와앞에 나오게 하고 아무도 빠지지 않게하라. 그들로 이 의식중 하나도 소홀히 여기지 않게하라. 즉 '그들로' 늘 하는대로 '제물을 잡게하라.' 그러나 그들의 생활이 고쳐지지 않고 그들의 마음이 겸손해지지 않는한 그들은 결코 노하신 하나님을 달래고 그의 진노를 돌이킬수 없을 것이라."
2) 예루살렘은 그가 '만군의 여호와께 징벌받으리라'는 것을 알아야했다(6절). 예루살렘의 죄가 '벽력과 지진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같은 놀라운 일들로 처벌될 것이다. 이것을 세부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공격당할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아리엘을 멸망시키리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고난을 받으나 깨어 회개케 하기위한 것이므로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3절). 예루살렘을 둘러 진을 친것은 대적의 군대였다. 사람들이 우리를 대적하여 싸울때 우리는 하나님이 그들속에서 우리와 다투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둘째, 예루살렘은 그땅이 황폐해지는 것을 보고 슬퍼할 것이다. 네가 슬퍼하고 애곡하며(2절). 예루살렘 거민들은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아리엘처럼 될것이다. 즉 예루살렘 본래대로 될것이다.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1:26).
셋째, 예루살렘이 낮아지고 굴욕을 당할 것이다(4절). 네가(극도의 거만에서)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 티끌에서 날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이리라. 그들이 병든 자처럼 허약해질 것이며, 그들의 말소리는 적들이 엿들을까 무서워 낮아지고 종종 중단될 것이다.
(2) 예루살렘의 대적의 파멸이 예언된다(5,7절).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리라(4절). 네가 그같이 비천하게 될것이라.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와 강포한 자의 무리' 곧 대적의 허다한 군대는 전혀 말을 하지 못하거나 속삭이지조차 못하는 '세미한 티끌같고 불려가는 겨같이 될것이라.' 너는 낮아질 것이나 그들은 완전히 흩어지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27:7). '그일이 경각간에 갑자기 이룰 것이라.' 그리하여 대적은 멸망에 놀라고 너는 구원에 놀랄 것이라." 앗수르 군대는 한천사에 의해 즉석에서 순식간에 몰살당했다. '시온을 치는 열방의 무리는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여전히 주리는 것같이 될것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삼키고 약탈물로 치부할 것이라고 기대하였을 것이나 그들의 기대는 헛된 꿈이 될것이다. 그들 자신과 그들의 허세, 권력 그리고 그들의 번영이 꿈처럼 사라질 것이다.

Ⅱ. 유다에 대한 경고 29:9-16
(1) 선지자는 유다 백성의 어리석음에 놀란다. 그들에게는 '여호와의 선한 지식'을 가르치는 레위인들이 있었으며 또한 하나님에게서 직접 메시지를 받아 그들에게 전하는 선지자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계시의 온갖 축복을 받았던 '이 큰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신4:6)일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나라는 그와 정반대였다(9절). 선지자는 그들중 바르게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 백성은 속이기를 즐기며, 마시고 떠들며 흥청거리는도다. 그러나 너희는 '부르짖으라.' 즉 그들의 어리석음을 슬퍼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그들은 쾌락에 대한 사랑과 신앙에 대한 편견 그리고 그들이 받아들인 타락한 원리로 취했다. 그들은 취한 사람처럼 그들이 현재 받고있는 하나님의 책망을 깨닫지 못한다. 술취한 자는 '사람이 나를 때려도 아프지않다고'(잠23:35) 말한다. 영적으로 취하는 일도 있다.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10절). 그러므로 이것은 그들이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한' 것, 곧 그들이 잠을 사랑한 것에 대해 내리신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었다. 그들은 '좀더 자자 좀더 졸자'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큰미혹에 넘기시어 '이제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이사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고 극도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할때까지 계속해서 불신앙을 고집한 믿지않는 유대인들에게 적용된다.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못할 눈과 듣지못할 귀를 주셨다함과 같으니라'(롬 11:8). 이 예언은 유대교회 말기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백성의 장로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크게 반대하였고 판단의 혼란에 빠졌을때 이루어졌다. 모든 묵시, 특별히 이사야가 보고 공표했던 묵시의 뜻을 알수 없게 되었다. 그들에게 묵시가 있었으나 그들은 묵시로인해 결코 지혜로와지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비록 훌륭한 자라도) 받은 책을 봉한채로 놓아둔 것과 같다. 그는 그것이 단지 책이라는 사실밖에 모른다. 그와같이 그들은 이사야가 말한 것이 묵시며 예언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그의미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너희에게는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르는 냄새'가 되는 그묵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냄새'가 될것이라." 지식은 그것을 깨닫는 자에게는 쉽다.
(2) 선지자는 신앙이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자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고한다(13,14절).
1) 그들의 죄는 그들이 종교적인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을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13절). 마음을 아시는 분이 외형과 가식에 속으실리가 만무하다.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다면 그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이 말할 것이다. 그러나 신앙이 말만을 앞세우는 것에 불과한 자들이 많이 있다. 그신앙은 단지 입술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다. 그들은 마음으로 예배드리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예배의 규례로 삼지도, 하나님의 뜻을 예배의 근거로 삼지도 않는다.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장로들의 유전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율법보다 귀하게 여겨졌다. 우리 구주께서는 이사실을 그당시 형식적인 신앙을 지닌 유대인들에게 적용하셨다(마 15:8,9).
2)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영적인 사악함에 대해 영적인 심판으로 그들을 벌하시겠다고 경고하신다(14절). 내가 이 백성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은 마음에서 진실함이란 하나도 남김없이 다버렸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머리에서 모든 총명을 제하실 것이다. 그들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그들은 위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속이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스스로 어리석은 자처럼 행하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속게 된다. 이것이 기이한 일이다. 그 지혜롭던 자들이 갑자기 지혜를 잃어버리고 크게 미혹당하게된 것이다.
(3) 선지자는 하나님 모르게 은밀히 꾀하려고 생각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보인다. 그들은 '자기들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한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려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을 아시지 못하게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책략은 그들의 어리석음만을 드러낼 뿐이다(16절). 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너희는 사물의 질서를 뒤엎고, 너희의 계획에 하나님의 섭리를 이용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도다. 즉 너희는 이치를 거스리며 악한 목적을 위해 도모하는도다. 그러나 이같은 너희의 패리함은 토기장이의 진흙처럼 여겨질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가 진흙을 주무르듯이 쉽게 너희와 너희의 도모를 뒤엎고 분쇄하실 것이라."

Ⅲ. 남은 자에 대한 긍휼과 은혜의 약속 29:17-24
본문에서 하나님은 일을 완전히 뒤바꾸시겠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잠시만 기다리라. 그러면 너희가 세상을 통치하는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될 것이라." 여기서 예언된 놀라온 변혁은 산헤립의 침공이 좌절되어 유다와 예루살렘이 보존된 사실을 언급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그러나 처음에 복음이 전파될때의 유대인들의 거절로 볼수도 있다.
(1) 본문에서 큰변화가 예언된다(17절). 즉 삼림이 없던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할 것이며' 기름진 밭이었던 갈멜은 삼림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언된다. 땅이 보통때보다 더기름지게 되리라는 것은 산헤립의 패퇴를 보여주는 징조였다(37:30). '금년에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사람이(짐승들이 그러듯이) 땅에서 자연적으로 나온 것을 먹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때는 레바논이 아주 비옥해져서 한때는 레바논보다 훨씬 비옥한 밭으로 여겨졌던 땅이 삼림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 이방인들중에서 허다한 무리가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왔을때 광야가 비옥한 밭으로 변했다(54:1).
(2) 무지했던 자들이 유식해질 것이다(18절). 이 예언을 깨닫지 못하던 자들이, 그것이 성취될때는 깨닫고서 그사건에서 하나님의 손을 인정할뿐만 아니라 그예언에서 하나님의 음성도 인정하게될 것이다. 그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그때에 불쌍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될 것이다. 그리고 흑암가운데 앉아있던 자들이 큰빛을 보게될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이 그들에게 보내져 그들의 눈을 뜨게할 것이기 때문이다(행 26:18). 또 그릇되었던 자들은 올바르게될 것이다(24절). 곧 '마음이 혼미하던 자'가 사물을 바로 깨닫게될 것이다. 이는 진리의 영이 그들을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어려워서 이해할수 없다고 투덜대던 자들이 그참된 의미를 배워서 그진리를 더욱 달게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잘못알고 불평하던 자들이 일의 결말을 보고서 하나님이 모든일 가운데서 의도하고 계시는바가 무엇인지를 깨닫게될 것이다(호 14:9). 우울하게 지내던 자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이다(19절).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이말씀은 그들이 고난속에서도 여호와로인하여 계속해서 기쁨을 누렸으나 이제는 그기쁨을 더하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겸손함이라는 은혜는 우리의 거룩한 기쁨을 증가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산헤립 곧 '강포한 자'와 그의 막강한 군대가 '소멸될' 것이다(20절). 실로 강포한 자인 사단의 권세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널리퍼짐으로 말미암아 꺾일 것이다(히 2:4). 핍박하던 자들이 조용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온전한 평안을 누릴수 있도록, 나라안에 있던 경만한 자들이 히스기야의 개혁에 의해 소멸되고 제거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선지자들을 핍박하였는데 아마도 이사야 선지자도 박해하였을 것이다. 이사실은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을 박해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잘 적용된다. 그들은 그 죄때문에 제거되고 소멸되었다. 그들은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백성을 칠 기회를 가만히 기다렸다. 그들은 그신앙인들이 죄악이라고 할수 있는 어떤 것을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포착하기위해 염탐꾼을 보내어 '죄악의 기회를 엿보았다.' 그들은 아주 지혜롭고 착한 한사람이 어떤 말을 좋은 의미로 했다는 것을 명백히 알면서도 용어를 잘못 선택했거나 헛나온 '한마디 말때문에 사람을 범법자로 만들었다'(21절, 한글개역에는 '송사에 사람에게 죄를 입히며'라고 되어있다-역주). 그들은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들' 곧 선지자나 재판관이나 관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해주고 시정해주어야 했으나 오히려 백성들을 미워했고 그들에게 올무를 놓았다. 그들은 우리 구주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마 22:15) 주님을 감시하도록 보내어진 바리새인들의 밀사와 같이 그렇게 행하였다. 그들은...헛된 일로 의인을 억울케 하느니라. 그들은 우리 구주께 했듯이 자기들이 생각해 낼수 있는 온갖 간계와 술책을 써서 사람을 헐뜯고 거짓되게 말했다. 자기 원수의 비난때문에 부끄러워했던 야곱이 이제는 그비난이 물러감으로 안심하게 될것이다(22절). '아브라함을' 환난가운데서 '구속하셨고,'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이 된 모든 자들을 그들의 환난에서 구속하실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을 구속하심으로 자기 교회를 돌보기 시작하신 이가 야곱 족속을 위해 나타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얼굴이 이제부터는 실색하지 아니할'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용기를 얻을 것이다. 자기 가문이 다 끊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야곱이 자손을 보고 즉 허다한 믿는 무리를 보고서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22절) 성문에서 그원수와 말할 것이다(시127:5). 자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섭리의 손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모들에게 적지않은 위안을 준다. 그러나 자기 자녀가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 곧 하나님의 은혜의 손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때 그사실은 부모들에게 더욱 큰위안을 줄것이다.

# 핵심
29:1-24
타락한 예루살렘의 징계와 회복에 대한 예언. 하나님의 심판으로인해 정화된 백성은 구원의 은혜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게될 것이다.

# 묵상
아리엘 ( 29:1 )
문자적으로는 ‘불구덩이’를 가리킵니다. 아리엘은 원래 번제단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적군에 의해 포위되고 곤궁에 빠져 비참해질 번제단 혹은 희생 제단으로서의 예루살렘을 뜻합니다.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는 말의 의 ( 29:4 )
예루살렘이 쇠약해져서 큰소리로 이야기할수 없을뿐만 아니라 그들이 말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말할수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비참한 환난이 포악한 앗수르에 의해 예루살렘에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눈은 선지자요 머리는 선견자 ( 29:10 )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부어주셨으므로 들어도 듣지못하고 보아도 보지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묵시를 주셔도 깨닫지못하는 선지자, 혹은 선견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계획에 따라 미혹하게 하는 영을 보내셔서(딤전4:1) 사람들로하여금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 죄에서 돌이키려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지 않으면 그는 결코 죄를 고백하거나 죄를 도말해 버릴수 없습니다.
사람의 계명 ( 29:13 )
하나님의 계명과는 달리 인간의 지혜나 그교훈을 가리키며, 혹은 지혜자의 지혜나 명철한 자의 총명이라고도 일컬어집니다(14절). 신약성경에서는 사람의 계명을 외식, 헛된 교훈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마15:1-9; 막7:6, 7). 하나님의 계명을 들으며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백성은 생명을 얻으며(잠4:4), 영화로운 면류관을 받게됩니다.
이제부터 부끄러워 아니하게될 야곱 ( 29:22 )
이는 야곱이 대적의 침략에 의한 수치를 당하지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옛적에 아브라함을 수치에서 건지신 하나님께서 그후손에 대해서도 역시 구원자가 되실 것임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마음이 혼미하던 자 ( 29:24 )
히브리어로 ‘표예’라고 불리는 ‘혼미함’은 ‘비틀거리다, 방황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말은 당시 이스라엘을 무력하게 만들었던 정신적 방황을 일컫는 말로 곧 여호와 신앙에서 벗어나 우상숭배에 빠졌던 이스라엘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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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에브라임에 대한 책망 28:1-8
(1) 이사야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죄로인하여 다가오는 심판에 대해 경고한다. 그심판때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 땅을 황폐시키고 그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다. 에브라임은 '결실이 많음'이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그들에게는 '기름진 골짜기'가 아주 많았고(1,4절)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 사마리아는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었다. 그들의 땅은 가나안의 영광이었고 그들의 골짜기는 곡식과 포도로 뒤덮여 있었다.
1) 그들은 풍요함을 그릇되게 사용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의 시대에 베풀어주셨던 선하심이 그들에게 '교만한 면류관'이 되었다. 교만은 그들가운데 만연해 있는 죄였다. 그래서 선지자는 담대히 '교만한 면류관이여 화있을진저'라고 선언한다. 그들은 육욕에 빠져있었다. 에브라임은 술취함으로 유명했고 가장 기름진 골짜기인 사마리아는 '술에 만취한' 자들, 다시말해서 '술때문에 쇠잔해진' 자들로 가득하였다. 술취한 자들은 스스로를 바보와 짐승으로 만든다. 그죄는 사람들을 이기어 그들을 '종으로 만든다'(벧후 2:19). 그들의 육체는 그죄로인해 상하고 그들의 건강은 파괴된다. 그들은 그죄로인해 파멸된다. 하나님과의 화목도 깨어지며 오로지 천박한 정욕을 만족시키려고만 한다. '에브라임의 취한' 자들에게 화있을진저! 에브라임은 신앙을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기때문에, 그들이 취하면 특별한 화가 따른다. 어떤 사람들은 술마시기를 겨루는 못된 시합에서 다른 사람들을 곯아 떨어지게 만들고 승리를 거두어 쓴 화관이 곧 '교만한 면류관'이라고 생각한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렇게 남용한 풍요함을 그들에게서 거두신다. 그들의 '영화' 곧 그들이 자랑하던 풍요함은 '쇠잔해가는 꽃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그시절에 그들의 곡식을 도로 찾아가실'수 있으며(호 2:9) 그들이 바알을 위해서 준비한 하나님의 물건들을 도로 찾아가실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대신해서 강탈할 준비가 되어있는 '강하고 힘있는' 대리자 곧 그들이 자랑하는 모든 것을 '손으로 땅에 던질' 앗수르 왕이 있다(2절). 그때 '교만한 면류관과 에브라임의 취한 자가 발에 밟힐 것이다'(3절). 술취한 자들은 어리석게도 교만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비웃음을 사게된다. 그들의 골짜기의 아름다움은 저절로 시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안에서 부패할수밖에 없는 원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처음익은 무화과'는 발견되자마자 곧 따먹힌다. 그와같이 이세상의 재물도, 그것이 저절로 썩지않으면 처음익은 열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게걸스럽게 먹히기 쉽다.
(2) 선지자는 그다음에, 열지파에 비해 두지파 밖에 되지않기 때문에 '남은 백성'(5절)이라고 부르는 유다 왕국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1) 이사야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약속하며, 에브라임의 아름다움이 짓밟히고 먹히게 될때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5,6절). 앗수르 군대가 이스라엘을 황폐시킬 그날에 하나님은 그의 남은 백성에게 그들이 필요로하고 바랄수 있는 모든 것이 되어주실 것이다. 유다 왕국 뿐만아니라 자신의 순전함을 지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러하실 것이다. 앗수르인들이 이스라엘안에서 시끄럽게 두들겨대는 '쏟아지는 우박같고, 파괴하는 광풍같으며, 큰물의 창일함같은' 때(2절),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주께 굳게 매달림으로써 자신을 구별한 자기 백성들을 특별한 은총으로 구별하실 것이다. 그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남은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5절). 하나님은 그들이 새로워진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기위해 그들에게 그와같이 나타나실 것이며, 새로워진 그형상은 그들에게 아름다운 화관이 될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지혜와 은혜를 주실 것이다.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신이 되시며. 상담자들은 지혜롭고 사려깊게 지도할 것이고 재판관들은 공의와 공평으로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난관을 극복하기에 필요한 모든 용기를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즉 그들이 포위하고 있는 성읍들의 문, 혹은 그들이 자기들을 포위하고 있는 적들을 치러나갈때 그성읍 문에서 하나님께서는 힘이 되어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이 두가지, 곧 군대의 힘과 재판장의 지혜를 주실때 그는 그백성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되신다. 이말은 그리스도와 관련있는듯 싶다. 갈대아 역본도 이말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그날에 메시야가 영화의 면류관이 되실 것이라.'
2) 선지자는 타락한 많은 사람들에 대해 한탄한다(7절).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인하여 옆걸음치며. 에브라임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에도 술취한 자들이 있다. 에브라임에 있던 죄가 유다에서도 발견되었지만 에브라임과 같이 파멸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포도주로인하여 옆걸음을 쳤다. 과음하는것 자체가 실제적인 잘못이다. 그들은 판단력이 흐려져서 술로 건강을 지키고 소화력을 촉진시키려고 생각하나 오히려 술때문에 몸을 망쳐 질병과 죽음을 재촉한다. 그들의 지각은 흐려지고 그들의 양심은 술로인해 마비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타락된 관념을 신봉하고 정욕을 즐기는 마음을 갖게된다. 다음의 세가지 사실이 이죄를 더욱 악화시킨다.
① 더나은 모범을 보였어야할 자들이 이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인하여 옆걸음치며. 그들은 술마시느라고 그들의 직무도 잊어버렸다. 제사장들은 제물을 바치는 자이므로 특별한 법에 따라 금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레 10:9). 선지자들은(아모스 2:11절에 나타난대로) 나실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책망할 죄를 가능한한 멀리 피하도록 주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중에 이죄에 사로잡힌 자들이 많이 있었다.
② 이죄의 결과가 매우 해로웠다. 즉 그들의 행실이 나쁜 영향을 끼쳤기때문만이 아니라 선지자가 취해서 '이상을 그릇 풀었기'때문에 매우 해로웠다는 것이다. 제사장은 '재판할때 실수하고'(7절) '법을 잊어버렸다'(잠 31:5). 그들은 육체만큼이나 정신적으로 비틀거렸다.
③ 그병이 전염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상에는 토한...것이 가득하고(8절). 술취한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하여금 구역질나게 만들만큼 역겹다. 그들이 음식을 먹은 식탁은 그들이 토한 것으로 더럽게 얼룩졌던 것이다.

Ⅱ. 유다의 제사장과 선지자들의 죄 28:9-13
선지자는 본문에서 이백성의 불행한 어리석음 즉 그들이 말을 듣지않는다는 사실을 한탄한다.
(1) 선지자들과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지식과 그의 뜻을 '가르치며 그들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하려고' 하였다(9절). 먼저 진리의 지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고, 그리고나서 그들의 감동을 얻고 그들의 의지로 율법을 준수하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다루시는 방법이다.
(2)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유익을 끼치기위해 온갖 방법을 하나도 빼놓지않고 다사용했다. 그리고 그들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 즉 품에서 떨어져나와 이제막 책을 대하는 아이에게처럼 가르쳤다(9절). 유대인들의 어머니들은 흔히 자기 자녀들을 취학 연령인 세살이 될때까지 젖을 먹였다. 그들은 아이들이 배울수 있는 능력이 생겼을때 그들에게 여호와의 선한 지식을 가르쳤으며 심지어는 바로 얼마전에 젖을 뗀 어린아이들조차 가르쳤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읽기를 배우듯이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씩' 배웠다. 이처럼 여러번에 걸쳐 조금씩 배웠으므로 그들은 기억하는데 무리를 느끼지 않으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경계에 경계를 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경건의 교훈에는 공의의 교훈을 더해야 하고 공의의 교훈에는 사랑의 교훈을 더해야 한다. 또 동일한 교훈과 동일한 경계가 자주 반복되어야 한다. 교사들은 배우는 자들의 능력에 맞게 가르치며 그들이 가장 필요로하는 것을 여러번에 조금씩 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신 6:6,7). 그들은 백성들을 구스르고 설득하여 배우게 하려고 하였다(12절). 하나님은 자기 선지자들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지금 너희에게 가르치고 있는 이것이 안식이니라." 너희는 곤빈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그안식은 너희 영혼의 '상쾌함'이 될것이며 오랫동안 전쟁으로 시달려온 너희나라를 전쟁으로부터 쉬게하리라."
(3) 그들은 어린아이들처럼 배우려고 하지않았다(9절). 그들은 자신들에게 안식과 상쾌함을 주는 이것을 '들으려고 하지않았다'(12절). 선지자의 가르침을 듣는 옛습관을 그대로 유지하였기때문에 가르침은 끊임없이 그들의 귀를 울렸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아무것도 남지 못했다.
(4) 하나님은 이점에 대해서 그들을 아주 엄하게 벌하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명백한 가르침을 들을수 있는 특전을 그들에게서 빼앗고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들에게 말하려고 하신다(11절). 위안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채찍의 두려운 소리를 듣게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불경스럽게 멸시함은 자신의 멸망을 재촉하고 무르익게 할뿐이다.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13절).

Ⅲ. 심판의 예고 28:14-22
선지자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난다음 계속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조롱한 자들을 책망한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에서 치리하는 경만한 자들,' 곧 예루살렘의 관원들에게 말을 한다(14절).
(1) 경만한 자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마음대로 해보시라고 대들었다(15절).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도처에서 심판이 내려질때도 폭력에 의해서 죽지않고 수한이 차서 죽도록 죽음과 계약을 맺은 것처럼 자신의 생명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에 있다면 사실 우리는 죽음이 언제 오든지간에 그것이 우리의 두려움이 되지못하고 우리에게 실제적인 아무해도 끼치지 못하도록 죽음과 언약을 맺은 것이 된다(고전 3:22,23).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원수로 만들고 있으면서 죽음을 친구로 만들려고 생각하는 것은 이를데없이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 경만한 자들이 "우리 땅에 '넘치는 재앙이 유행하여' 다른 사람들은 그재앙을 당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미치지 못하리라"고 말할때 그들에게는 맹목적인 자만심이 있었다. 그러면 그들은 무슨근거로 이러한 확신을 가졌는가?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를 삼았고. '하나님의 채찍,' 곧 넘치는 재앙인 원수에게 거짓과 허위가 된것들을 피난처로 삼아 그들의 전략이나 평화협정에 거짓 항복하여 적들을 속임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지키려고 하였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치리자들은 자신들이 지방 정치가들보다 더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위험이 지나가면 곧 자기들의 멍에를 떨어버리려는 속셈을 가지고서 앗수르 왕에게 예루살렘성을 내어주거나 그의 속국이 되겠다는 약속으로 아첨하려고 한다. 속임수와 거짓으로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자들은 그 목적을 달성할수는 있으나 거기서 위안을 기대하지는 못한다.
(2) 하나님은 이사야을 통해서 그들의 이확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이신다. 하나님은 먼저 그들이 근거할수 있는 기초를 보여주시기 전까지는 그들의 거짓된 확신을 방해하시지 않는다(16절). 보라 내가 한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그기초는 다음의 두가지로 이루어졌다.
첫째, 일반적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루어졌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은 믿음을 세우기에 적합한 견고하며 영구한 기초석이다. 그것은 '시험한 돌'이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가 그것을 의지해왔어도 결코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구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언약으로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이말씀이 신약에서 명백하게 그에게 적용되기 때문이다(벧전 2:6-8). 그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바로 그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놓으신 기초이다. 그는 시험한 돌이며, 건물의 모서리에 있는 모퉁이돌 곧 '모퉁이의 머릿돌'이시다. 이약속들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여라"하고 말하면서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조용히 그때를 기다릴 것이다. 그들이 지금 의지하고 있는 기초는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17절).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이말씀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나타낸다.
1) 그가 교회를 세우시리라는 것 : 하나님은 기초를 놓은(16절)다음에 건축자들이 하듯이 줄과 추로써(슥 4:10)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공평이 추가되고 의는 줄이 될것이다. 그리스도를 기초로하여 세워진 교회는 성경에 의해 형성되고 개혁될 것이다.
2) 그가 교회의 원수들을 벌하시리라는 것 : 하나님은 정확한 규례를 가지고 그들을 고소하실 것이다. 이 조롱하던 자들은 헛된 소망을 가지고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 소망으로인해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거짓을 자기의 피난처로 삼는 자들은 모래위에 집을 세우는 자들이다. 그집은 폭풍이 몰아치면 무너지고, 그것이 무너질때 그것을 세운 자도 그속에 함께 묻힐 것이다. 그들은 넘치는 재앙이 그땅을 휩쓸고 지나갈때 자기들에게는 가까이 미치지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들에게 그들이 먼저 그재앙으로 인해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다(19절). 그것이 유행할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유행하고. "마치 그것이 너희를 잡으려는 목적으로 온것처럼 너희가 결코 안전하지 못하리라. 흑암중에는 역병이, 한낮에는 파멸이 돌아다니리라." 멀리서 들려오는 그소식이 그들을 두렵게할 것이다. 악한 소식이 조롱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을 주나 하나님을 신뢰하여 마음이 확정된 자는 그소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에 '넘치는 재앙이' 올때 조롱하던 자들의 모든 위안과 확신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것이다(20절). 참을성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못하며. 그들은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들을 지켜줄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불충분하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같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조롱하는 자들과 다투려고 오실때 세상의 의로운 재판관처럼 '자기 일을 행하시며 자기 공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에 자기 백성의 원수들을 대적해서 그일을 하신 것처럼, 이제는 자기백성을 대적해서 그일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시대에 블레셋 사람들을 대적하여 브라심산에서 일어나시고(삼하 5:20) 여호수아시대에 가나안 사람들을 대적하여 기브온 골짜기에서 일어나신 것처럼 이제는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일어나실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인 지체라고 고백하면서도 교만과 조롱으로써 스스로 블레셋 사람과 가나안 사람처럼 되는 자들은 그들처럼 다루어지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그의 비상한 일'이 되고 '기이한 공'이 될것이다. 그것은 이제까지 그가 자기 백성들에게 행하시던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신다면'(63:10) 그것은 실로 기이한 일인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의 적용은 바로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말라(22절). "하나님의 말씀이나 심판에 의한 책망을 감히 조롱하려고 하지말라.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말라. 너희 결박 즉 너희를 죄의 지배아래 묶어두는 결박과 너희를 묶어 하나님의 심판에 넘겨주는 결박이 우선할까 하노라." 이 경만한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할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선지자가 그들에게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을 단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멸망을 피할수 있겠는가?

Ⅳ. 심판의 제한 28:23-29
농사일을 들어 설명한(우리 구주께서 말씀하신 여러가지 비유처럼) 이비유는 '들을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엄숙한 선언과 함께 시작된다(23절).
(1) 본문에 나오는 비유는 아주 평이하다. 즉 농부는 수고와 신중함을 기울여 자신의 일에 전념하고 그일의 방법과 순서를 지킨다.
1) 밭갈고 파종하는 일에서 그렇게 한다.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끊이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그는 '소망을 가지고 밭을 갈며 소망을 가지고 파종한다'(고전 9:10). 그땅을 개간하며 그르게만 하겠느냐. 그는 그땅이 씨를 받기에 적당하도록 하기위해 그렇게 한다. 그가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그토양에 적합한 씨를 뿌리지 않겠는가? 농부는 진흙땅에는 어떤 곡식이 적합하고 모래땅에는 어떤 곡식이 적합한지를 알고있다. 따라서 그는 각각의 씨를 제자리에 뿌린다. 그는 소맥은 가나안 땅의 주요 산물이었기때문에(겔 27:17) 제일 좋은 곳에 뿌리고(어떤 역본에서는 이렇게 해석한다) '대맥은 정한 곳에 뿌린다.'
2) 타작하는 일에서 그렇게한다(27,28절). 농부는 곡식을 타작하는 일도 정해놓는다. '소회향과 대회향'은 껍질이나 이삭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때문에 '작대기와 막대기'로 떨기만해도 된다. 그러나 '곡식'은 겨에서 낟알이 쉽게 빠져나오지 않으므로 '도리깨'로 털어내야 한다. 그런데 농부는 알곡을 겨에서 떨어내기에 필요한 시간이상으로 '늘 떨기만 하지않는다.' '그는 곡식을 부수려고 하지않는다.' 즉 '수레바퀴로' 곡식을 으깨거나 '말굽으로 부수려고 하지않는다.' 곡식을 가는 일은 다른 작업에 의해서 행해진다. 생활비를 버는것 뿐만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마련하는데도 많은 수고가 따른다. 그럴지라도 그것은 결국 '썩는 양식'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더욱더 수고하기를 마다하겠는가? '곡식은 부수어진다.' 그리스도께서도 부수어지셨다.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도록 하시기위해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셨다'(53:10).
(2)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더나아가서 이비유를 하나님의 심판에 도전하는 자들에 대한 답변으로 본다. "농부가 언제까지나 밭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는 씨를 뿌리듯이 하나님도 언제까지나 경고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는 죄인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심판을 내리시리라.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여 돌이키게 하기위해 지혜롭게 그일을 하실 것이라." 그러나 우리는 이비유를 더폭넓게 생각해 볼수 있다.
1) 농부에게 '그의 하나님'으로서 '적당한 방법을 보이시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26절). 농부들에게는 일의 순서를 정할수 있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농경술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때문에 사람에게 내리신 선고를 실행하시고자 사람으로 땅을 경작하도록 내보내셨을때 사람에게 아주 유리하게 땅을 경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는 사실은 그선고의 무게를 다소나마 덜어준다. 사람들에게 그일을 할수 있는 능력과 그일을 하고자하는 마음을 주시고 그일에서 기쁨을 갖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섭리를 직접적으로 의존하기때문에 그일을 위한 분별력을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곡식을 타작하는 농부의 일에 대한 다른 예를 보면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것이라'고 한다(29절). 사람들이 일을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가 '생각이 지혜로우시고 행사가 뛰어나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밭이다(고전 3:9). 그리스도는 참포도나무요 그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 15:1). 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규례로써 끊임없이 밭을 경작하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을 통해서 묵은땅을 파 일구시지 않는가? 하나님은 자기 종들의 손으로 그의 말씀을 뿌리신다(마 13:19). 마음의 토양이 어떻든지간에 말씀속에는 토양에 적합한 이런저런 씨들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듯이 하나님의 막대기도 그와같이 지혜롭게 사용된다. 고난은 우리를 세상에서 떼어내고 우리에게 있는 겨를 우리로부터 분리시키기위해 계획된 하나님의 도리깨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만한 시험을 주실 것이다. 즉 막대기와 작대기로 그목적을 달성하시면 하나님은 수레바퀴와 말굽을 사용하시지 않을 것이다.

# 핵심
28:1-5
교만한 에브라임에 임할 심판을 예언한다.
에브라임의 방탕과 사치(28:3)
에브라임, 즉 북왕국의 왕들은 ‘겨울궁과 여름궁’을 따로 만들었고(암 3:15), ‘상아궁’을 가졌으며(왕상 22:39),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할정도로 호사스럽게 생활했다(암 5:11). 또한 그들은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과 살만에셀의 발흥으로 말미암아 외부의 정세가 긴박해지고 전운(戰雲)이 감도는때에도, 그들은 술과 노래에 탐닉하며 사치를 즐길만큼 어리석고 교만했다(암 6:4,5).
타작법(28:27,28)
팔레스타인의 타작법중 가장 원시적인 방법은 막대기를 가지고 곡식이 떨어지도록 줄기를 때리는 것이었다. 이는 비교적 가볍고 깨지기 쉬운 곡물을 타작하는데 사용된 방법이다(삿 6:11). 두번째 방법은 가축들의 발밑에 곡식을 두어 밟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교적 단단한 곡식을 타작할때 사용되었다. 만일 이방법을 택한다면, 주인은 소가 곡식을 떠는동안 그곡식을 주워먹는 것을 금할수 없었다(신 25:4). 세번째는 곡식위로 수레를 끄는 것이었다. 이수레는 나귀나 소가 끌고다녔다.

# 묵상
여름전에 처음익은 무화과 ( 28:4 )
무화과는 여름실과로서, 6월쯤 익은 무화과는 이른 무화과라고 불리는데(렘24:2; 호9:10; 미7:1) 특히 맛이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에브라임의 아름다움은 쇠잔해가는 꽃이요, 누구나 발견하는대로 금방 따먹어버리는 이른 무화과같이 아무런 방비가 없이 허술했습니다. 주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 역시 이른 무화과였는데(마21:18-20; 막11:12, 13), 이는 열매를 맺을 징조조차 보이지않는 유대인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경계와 교훈 ( 28:10, 13 )
‘경계’는 계명이며, ‘교훈’은 널리 알려진 말 곧 규범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0절은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교사처럼 늘 재앙이 임하리라는 말만을 하며 그들의 행동을 간섭하는 이사야의 행위를 악인들이 비웃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13절은 들어도 듣지못하고 보아도 보지못하여 재앙을 깨닫지 못하리라는 말씀처럼(사6:10), 그들이 알지못하는 말씀을 전함으로써 그들로하여금 멸망케하시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험한 돌 ( 28:16 )
모퉁이의 돌을 가리킵니다. 이돌은 시온산에서 계시된 율법 또는 여호와께 신실한 사람들의 피난처인 시온산 위의 성전, 혹은 다윗의 이상국가를 상징합니다. 또한 이돌은 여호와께서 시온산에서 시작하신 구원활동, 하나님이 세우신 참된 신앙공동체 혹은 신앙을 상징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돌은 ‘산위에서 뜨인 돌’(단2:45)이요, 흔들리지 아니하는 영원한 구원처소이며 그를 믿지않는 유대인들에게는 시험하시는 돌이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거짓의 피난처 ( 28:17 )
거짓이란 주로 이방신, 우상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이표현은 우상을 숭배하는 산당이나 성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공평과 의로써 죄를 멸하시는때에 거짓 것으로 즉 우상숭배를 통해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모든 사람들은 결코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깨끗이 제거되리라는 것입니다.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 ( 28:18 )
‘사망’이라는 단어 ‘마웨드’는 지하의 신, 스올의 신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말은 가나안 신화에 나오는 지하의 신 ‘몰’이나 애굽의 신 ‘오시리스’와 맹약했다고 하는 뜻입니다. 또한 이표현은 인간이 범죄하여 죽음이 이세상에 들어왔고 인간은 어쩔수없이 죽음에 이르게된 상태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사망과 음부와 맺은 언약은 그들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죽음에 이르게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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