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냄 37:1-7
우리를 해하려는 원수들의 악한 계획을 좌절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보고 오히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고, 우리 자신의 의무를 충실하게 행하는 것이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에게 겁을 주어 여호와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여호와께로 나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바람이 여행자의 저고리를 억지로 벗기려고 하지만 여행자가 오히려 옷깃을 꼭 붙잡았던 것과 같은 논리이다.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독하면 할수록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영화롭게할 방법을 연구하였다. 히스기야는 신하들을 이사야에게 보내어 기도를 요청하였다. 그는 이날의 일련의 사건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던 이사야의 예언을 기억하였던 것이다. 오늘은...능욕의 날이라. 그러므로 오늘을 기도의 날로 삼자. 아이를 낳으려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같도다. 그러므로 이제 기도하자. 고통이 가장 심할때 가장 열심히 기도하자. 기도는 아이를 해산시키는 자비의 산파이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들으셨을 것이라.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실줄 누가 알겠는가.'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독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셨다(6절). 그를 분명히 심판하실 것이다. 죄인들의 두려움은 멸망의 서막에 불과하다. 산헤립은 그의 군대를 살육한 자에 관한 '풍성'을 듣게될 것이며, 이로인하여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살해될 것이다(7절).
Ⅱ. 히스기야의 기도 37:3-20
하나님은 약속대로 우리를 굳게하셔서 잠잠히 그 능욕을 견딜수 있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응답하셨다. 그러나 그가 랍사게에게 어떤 회신을 보내었다는 기록은 나와있지 않다. 다만 그는 그일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겼다. 랍사게도 새로운 지시를 받기위하여 그의 주, 앗수르 왕에게로 돌아갔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을 자극하지도 않았고 경고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유다와 싸우려고 올라왔는데 바로 그때 구스 왕이 산헤립과 싸우려고 나아왔다(9절). 전쟁을 좋아하는 자들은 남의 도전을 받을 것도 예상하기 마련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거만하게 그의 이름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은 악한 짓이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글로 쓰는 것은 더 악한 짓이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한것이기 때문이며, 더멀리 퍼져나가고, 더오래 남으며, 더큰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큰승리를 거두었을때 죄인들의 마음이 더욱 완악해지고 더욱 대담해지는 일이 종종있다. 앗수르 왕은 하나님의 땅을 멸할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즉 우상을 숭배하던 하맛과 아르밧 왕이 쉽게 그들의 먹이가 되었으므로, 개혁을 시도하는 경건한 유대의 왕도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글을 받고 그것을 여호와앞에 펴놓았다. 그는 산헤립에 대하여 말하려 하지않고 그의 편지에 나타난 내용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이제 사실 자체를 보자. 이것은 문서이므로 위에 말한 내용이 적용된다. 여호와여 눈을 떠 보시옵소서.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그분만이 홀로 하나님, 곧 천하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서 격려를 받았다.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어떤 일이라도 하실 능력이 있으실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이었다. 우리도 막강한 침략자들에게서 위협을 받을때 겸손하게 그러나 용기를 가지고 위대한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호소할수 있다.
Ⅲ. 산헤립의 몰락 37:21-38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두려운 소식을 들을때 참고 견디며 기도로써 하나님께 믿음의 메시지를 보낸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하시는 은혜와 평화의 메시지를 기대할수 있을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히스기야의 기도에 긴응답을 보냈다. 네가...내게 기도하였도다. "그러니 너는 이것을 알아라. 이제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으므로 안심하라."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은 누구에게냐. 바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한것이다. 그리고 산헤립은 그의 부하에게 이같은 일을 하게 하였다. 이것이 그가 하나님을 모욕한 죄를 더가중시켰다. '네가 네 종으로' 곧 형편없는 신분인 네 종으로하여금 '주를 훼방하게 하였구나.' 사람이 자신의 업적을 스스로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를 멸시하는 것이다.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으니...내가 태초부터 행한바요. "그러나 너는 네가 그일을 행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구나"(24-26). 아무리 능력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하다. 이일들을 내가...상고부터(영원한 경륜속에서) 정한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그러므로 이일들을 너의 업적으로 자랑하는 오만은 내가 참을수가 없구나." 산헤립은 어디에서나 능력있고 재빠른 전사였지만, 하나님은 그가 나가고 들어감을 알고계셨다(28절). 그가 그렇게 고집세고 제 마음대로 행하던 자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셨다(29절). "그가 여기까지는 왔지만 더이상 가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산헤립이 유다를 치는 임무를 허락하셨지만(참조. 10:6), 여기에서 그계획을 변경하셨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실 것이다(35절). 포위한 군인들이 성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며 그성을 점령하기전에 패퇴하게될 것이다(33절).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은혜가운데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오실 것이다. 그땅의 소출이 보통때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며, 따라서 이전의 손실은 풍성하게 보충될 것이다. 그들은 나라가 황폐하여졌다고하여 안식년 지키는 의무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수 없었다. 지금 당장 내년에 먹을 양식을 비축해두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안식년을 경건하게 지켜야 했으며 그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심판이 다가왔을때 그앞에 설 자는 하나도 없다. 어느날 밤에 하나님께서 한사자에게 명령하시어 대군을 그자리에 송장으로 눕혀놓게할 것이다(36절).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앞에 설수는 없다. '대왕 앗수르왕'도 그의 군대를 전멸시킨 사자에게서 죽음을 당하지 않기위하여 두려움에 쫓겨 자기 나라로 돌아갈때 아주 왜소하게 보일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산헤립을 보잘것없이 만드셨을때 왕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이 임무였던 아들들이, 그가 지금까지 보호하던 우상앞에 그를 희생으로 드렸다(37,38절). 과거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던 자가 지금도 구원하시며 장래에도 구원하실 것이다.
# 핵심
37:1-7
산헤립의 위협을 받은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했으며, 이사야의 중보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약속이 주어진다. ‘그룹 사이에 계신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두그룹 사이에 임재해 계심을 나타낸다(출 25:22). 히스기야는 이 칭호를 통해 하나님의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개입을 요청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하나님과 택한 백성간의 언약적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끝으로, ‘만군의 여호와’는 주님의 권능을 찬양하며, 도움받기를 소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처럼 그가 고백한 하나님의 칭호는 그분의 영광과 권능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고대 전쟁시의 공성전술(37:33)
고대 근동의 공성(攻城)은 크게 3단계로 나누어 시행되었다. 먼저, 선봉이 되는 공격부대는 활쏘는 군사들이었다. 이들이 적군에 대규모로 접근하여 진을 형성하면 방패를 든 군사들이 이들을 엄호하는 전선을 구축했다. 그다음에는 활쏘는 군사들이 보다앞으로 나아가고, 다른 군사들은 성벽에 사닥다리를 놓고 올라가고, 또다른 군사들은 성의 기초를 파헤쳐 성벽을 무너뜨린다. 이때 성문을 불로 공격하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적의 성벽보다 높은 토둔을 쌓고, 그위에서 성의 내부를 공격했다(겔 4:2).
# 묵상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은 히스기야 ( 37:1 )
이는 앗수르의 굴욕적인 행동에 대한 굴욕감과 고통의 표시이며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겸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는다고 하는 것은 수치와 극심한 고통을 나타내는 유대의 관습입니다. 즉 유대인들은 고난을 당했을때나 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당하는 경우 참회의 뜻으로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의 날에 성도들은 의의 행실로 짠 세마포 옷을 입습니다(계19:8).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 ( 37:3 )
랍사게의 군사들에 의해 포위당한 예루살렘이 모욕과 수치를 당한 날을 가리킵니다. 환난과 책벌의 날이라고 표현한 것은 앗수르의 침략과 포위를 하나님의 징계라고 이해하는 것에 근거한 말입니다. 또한 능욕이란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략에 의해서 모욕당한 것과 이로인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욕당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도우시는 하나님 ( 37:6 )
절망에 빠져있는 히스기야와 그대신들에게 이사야 선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말씀은 히스기야 왕과 대신들과 온유다 백성들에게 큰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절망가운데 처할때 성도는 '두려워말라 너를 도우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신을 그의 속에 두리니’라는 말의 의미 ( 37:7 )
하나님께서 랍사게에게 거짓 영을 부으실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거짓 영은 랍사게에게 거짓된 소문을 듣게 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때로 악한 자들에게 거짓 영을 보내셔서 그들의 죄악을 그치게 하십니다(왕상22:22).
앗수르의 왕 산헤립의 편지 ( 37:10-13 )
히스기야에게 보낸 이편지에는 앗수르 왕의 힘앞에 어떤 왕이나 신(神)도 그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굴복하였으므로 유다도 순순히 항복하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더이상 여호와를 의지하지 말라는 조롱의 내용도 들어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보낸 이 조롱의 편지를 여호와앞에 놓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그의 능력을 무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시기를 원하였습니다.
구원을 요청하는 히스기야의 기도 ( 37:16-20 )
앗수르가 멸시하고 조롱한 여호와 하나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여러 민족들의 우상과는 다름을 보여주고 천하만국으로 여호와가 하나님이신줄 알게하기 위해서 그는 기도했습니다. 또한 히스기야는 유다의 생존이 곧 하나님의 명예와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드렸습니다. 즉 앗수르가 아무리 위협적인 존재일지라도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신들은 거짓 신이요, 헛된 것이므로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그들을 능히 물리칠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적인 태도였음을 보게됩니다. 즉 히스기야는 기도할때에 그의 관심을 하나님과 그영광에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도할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으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태초부터 행한바요, 상고부터 정한바 ( 37:26 )
이말은 앗수르의 모든 성공이 여호와의 계획에서 비롯된 것임을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 열국의 흥망성쇠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계 모든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따라서 본절의 말은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히스기야에게 응답하신 하나님 ( 37:30 )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앗수르의 침공으로인해서, 금년에는 수확을 거두지 못하고 밭을 갈지도 못하므로 명년까지 야생곡물을 먹을수밖에 없으나, 제3년에는 정상적으로 경제생활을 할수 있으리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이는 곧 잠시후면 앗수르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대로 산헤립은 국내 문제로 예루살렘에서 철수하여 자기 신전에서 예배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호와의 열심 ( 37:32 )
이말씀은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까지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성전에 대한 잘못된 열심으로 성전을 더럽히는 모든 자들에게 채찍을 휘두르셨습니다(마21:12, 13).
에살핫돈 ( 37:38 )
주전 681-668년동안 재위한 앗수르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산헤립의 아들로 산헤립이 신전에서 살해되자 그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애굽을 세번 원정하여(주전 674, 673, 670) 조공국으로 만들었으며, 수리아를 정복하고 유다왕 므낫세에게 조공을 받다가 그가 반역하자 포로로 끌고가 니느웨성에 유폐시켰습니다(대하33:1). 그러다가 주전 668년 애굽의 반란을 진압하러 가던중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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