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감독의 지위에 합당한 자의 자격 3:1-7

 

우리는 디모데가 에베소에 머물던 복음 전도자임을 알고 있다.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과 작별하기를 무척 서운해 했다. 이는 특별히 그가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고 그들에게 말했기 때문이다(행 20:38).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그들에게 남겨 두었다.

(1) 사역은 일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감독의 직분은 하나님이 정하신 직분으로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감독의 직분은 근면과 열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사역자들은 그들의 직분으로부터 얻어지는 명예나 이득보다는 항상 그들의 일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선한 일이며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다. 사역은 영원한 영혼의 삶이나 행복 못지 않게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이다. 이 직분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이 직무에 대한 열렬한 마음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2) 감독으로 일할 사람은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어야만 한다.

  1) 사역자에게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며 비방거리가 없어야 한다.

  2) 그 사람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

  3) 그 사람은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건실하며 온건하고 절제하는 자이어야 한다.

  4) 그 사람은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경솔하거나 허영을 부리거나 천박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

  5) 그 사람은 친절히 대접하는 자이어야 한다.

  6) 가르치기를 잘 하는 자이어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전할 뿐 아니라 잘 전하는 자이어야 한다.

  7) 술을 즐기지 아니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8) 구타하지 아니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즉 싸우기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온순함과 사랑으로, 그리고 예의바르게 모든 일을 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9) 더러운 것을 탐하지 아니하는 자이어야 한다. 즉 이 세상의 부에 대해서 죽고 위엣 것을 사랑하는 자이어야 한다.

  10) 인내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다투지 아니하고 관용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손으로 구타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입으로도 다투지 아니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11) 탐내지 아니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탐심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좋지 않은 것이며 사역자에게는 가장 좋지 못한 것이다.

  12) 그 사람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이어야 한다. 사역자의 가정은 모든 다른 가정의 선한 본이 되어야 한다. 모든 단정함으로(4절). 이는 곧 '진지함'을 뜻한다. 아랫 사람을 복종케 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이다. 자녀들을 복종케 함에 있어서 엄격하게 하지 말고 진지하게 해야 한다.

  13) 새로 입교한 자가 아니어야 한다. 초신자는 깊은 신앙을 아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겉만을 알기 때문에 그러한 자는 자칫 교만하여지기 쉽다. 사람이 무지하면 무지할수록 그들의 교만도 더욱 크게 되는 법이다. 우리는 교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만은 천사들을 마귀들로 떨어뜨린 죄이기 때문이다.

  14) 바울이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고후 2:16)라고 한 것처럼 우리가 크게 소리치게 되는 중요한 근거는 무엇인가? 거룩한 경계가 이 일에 있어서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가장 신실하고 진실한 사역자들이 자신들에 대해 불만을 품을만한 이유가 정말 없을 것인가? 그들에게 있어서, 되어져야 할 자신들의 상태와 해야만 할 자신들의 일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가!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찬미하며 감사한다. 이는 주께서 그를 충성되게 하셨기 때문이며 또 충성되이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를 우리 일에 합당케 하실 것이며 또 우리의 충성에 대해 영광의 면류관으로 보답하실 것이다.

 

Ⅱ. 집사의 자격 3:8-13

 

* 집사의 특성(8-13)

집사는 반드시 단정(진지함)해야 한다. 진지함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는 것으로서 특별히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8절). 일구이언은 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첨꾼과 헐뜯는 사람이 곧 일구이언하는 사람이라 하겠다.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이는 술이 곧 갖가지 유혹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이것은 특별히 교회의 재정을 맡은 집사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다(9절). 만일 우리가 깨끗한 양심을 가진다면 우리의 영혼 안에 믿음의 비밀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10절).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친교에 책망할 것이 없는가 반드시 시험해봐야 한다. 그들의 아내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선한 성품을 가져야 한다(11절). 사역자들과 관계하고 있는 모든 자들은 그들의 사역이 비난받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행동을 하는데에 갑절의 주의를 쏟아야 한다. 앞에서 감독이나 사역자에 대하여 말하였던 것처럼,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집사가 한 아내의 남편된 자이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이어야 한다. 집사의 가정은 다른 가정의 본이 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집사가 왜 반드시 자격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13절에 나타나 있다. 초대 교회에서는 사역자들 혹은 감독이라고 불리우는 직분자들과 집사들 이렇게 두 개의 지위가 있었다. 집사직의 목적은 사역자의 사례비와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 등 교회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생각 하기 위한 데 있었다. 낮은 직분에서는 성실하고 올바르게 하는 것이 높은 위치를 부러워하게 하지 않는 방법이 된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는다. 이것은 또한 그 사람의 믿음에 큰 담력을 줄 것이다. 반면에 성실함과 올바름이 부족하게 되면 소심하게 되어버릴 것이다.

 

Ⅲ.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 3:14-16

 

그는 디모데에게 여러 훈계와 도움을 주기 위해서 그에게 속히 가기를 소망했다. 그래서 그는 그에게 아주 간략히 썼다. 그러나 정작은 만일 그가 지체하게 되면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1) 사역자들은 스스로 잘 처신해야 한다. 그들의 직분이 자신들로 하여금 선하게 처신하도록 의무를 지워준다. 이는 그들의 직분이 그들로 함부로 처신하지 않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집이다.

(2) 그곳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것이 교회의 큰 지주가 된다.

  1) 그곳은 '진리의 기둥과 터'(15절)이다. 교회 자체가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교회는 성경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제시하는 기둥일 뿐 아니라 그것이 부착되어 있는 기둥이기도 하다. 어떤 학자들은 그것을 디모데로 이해한다. 복음 전도자로서 그는 다른 신실한 사역자들과 함께 진리의 기둥이며 터라고 하겠다. 교회안에 그리스도의 진리를 지속시키는 것이 그들의 일인 것이다. 진리를 찾는데 부지런하며 치우치지 않도록 하자. 어쨌든 진리를 행하도록 하되 그것을 찾기 위해 들인 많은 수고에 대해선 생각지 말자. 그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데 세심하도록 하자. 그리고 그것을 널리 알리도록 주의를 기울이자.

  2) 그러면 교회와 사역자들이 기둥과 터로 여기는 진리는 무엇인가? 바울은 우리에게 그것에 대해 말한다(16절).

   ① 기독교는 이성으로나 직관적으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비밀이다. 이는 기독교가 비록 이성과 상반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이성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건의 비밀로서 이방인들의 모든 비밀들을 능가하는 것이다.

   ② 그 비밀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바 된 하나님이시다. 그는 '영으로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신다.' 그는 죄인으로서 수치를 받으셨고 악인처럼 죽으셨으나 다시 부활하심으로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다. 그는 '천사들에게 보이셨다.' 천사들이 그에게 수종들었다. 이는 그가 천사들의 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는 '만국에서 전파되신다.' 그리스도께서 만국의 구원자, 구세주가 되시고자 희생 제물이 되셨다는 것은 경건의 비밀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는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다.' 사악한 가운데 있는 세상이 예루살렘에서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자를 구세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는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지 그의 승천만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영원히 살게 될 것이기도 하다.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은 실제로 틀림 없이 하나님이셨다. 이것이 비밀된 것이다. 경건은 모든 부분과 각 세목에 있어서 비밀된 것이라고 하겠다. 그것은 큰 비밀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호기심을 가지고 들추어내기 보다는 오히려 겸손하게 경모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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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도에 대하여 2:1-8

 

1.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1-3)

특별히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책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바울은 어떤 규정된 기도의 형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기도가 그들에게 전반적인 지적 능력을 충분히 가져다 주리라고 생각했다. 즉 만일 기도하는 중에 성경이 그들에게 가르치는 바를 깨닫고 기도의 영이 그들에게 부어진 바 된다면 그들은 구태여 어떤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본문 가운데 함축되어 있다. 우리는 또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는 분파되어 지는 것과 매우 거리가 먼 종교이다. 반면에 기독교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확산되어야 할 사랑을 가르친다. '임금들을 위하여 기도하라'(2절)는 말씀을 생각해 보자. 비록 그 당시의 임금들이 이방인들이었으나 그래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의 번영과 그들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그로 인해서 우리가 화평 중에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결코 우리가 높은 지위를 얻고 부요케 되고 그들 밑에서 명예와 권세를 가지기 위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선한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소망은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가지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경건하고 단정한 중에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결코 계속해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두 단어로 압축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의무를 보게 된다. 즉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경건과 모든 사람에 대하여 선한 행실을 보이는 단정이 그것이라고 하겠다. 이 둘은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것을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기도속에서 우리 자신들에 대해서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함과 아울러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다. 이는 그들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기 때문이며, 그들의 높은 지위를 위협하는 많은 함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2.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4-7)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선하신 뜻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되 오직 한 분이시다(5절). 이 한 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진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원을 얻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2) 한 분 중보자가 계시며 그 중보자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속전으로 주셨다(5,6절). 하나님의 긍휼이 자신의 모든 사역에 베풀어진 것처럼 그리스도의 중보도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진다. 따라서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행위의 언약으로서의 율법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언약으로서의 율법아래 있게 된다. 즉, 그들은 은혜아래 있게된 것이다. 우리는 죽지 않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 삼으셨다. 중보자는 불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불화를 만들어 놓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즉 화평케 하기 위해서 오신 중보자이시다. 그는 '기약이 이르면 증거되어질' 속전이시다(6절). 바울은 이 그리스도의 중보의 가르침을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하기 위해 세움을 입었다. 그는 특별히 이방인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신실하고 진실하게 세움을 입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코자 하시는 선하신 뜻을 가지고 계시다. 따라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 얻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뜻하심에 의한 것이므로 사람들의 부족한 의지로 인해 이루지 못하는 것과는 다르다. 구원 얻는 자들은 진리를 아는 데 이르러야 한다. 지식 없이 결코 생각이 온전할 수는 없다. 만일 우리가 진리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의해 지배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한 분 중보자시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속전으로 주신 분임을 전파하기 위하여 사역자로 세움을 입었다. 사역자들은 진리를 전파해야 한다. 바울처럼 그들은 믿음과 진실 가운데서 전파해야 했으며, 또한 그들은 신실하고 진실해야만 했다.

3.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에 대한 훈시(8)

남자들은 각처에서 기도해야 한다. 어떤 장소이든 기도하기에 좋지 않은 장소란 없다. 또한 어떤 장소이든 하나님이 더 받으실만한 장소란 없다. 거룩한 손, 혹은 정결한 손을 들어 기도해야 한다. 이 정결이란 죄의 오염으로부터의 정결을 말하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사랑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즉 분노없이 혹은 어떤 사람에게 악의나 화를 내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의심 없이' 기도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다툼 없이'로 해석한다.

 

Ⅱ. 여자들의 복장과 순종에 대하여 2:9-15

 

(1)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여자들은 단정해야 하며 건실해야 하고 종용해야 하며 순종해야 한다. (어떤 사람의 호사스럽고 저속한 복장 속에서 그 마음속의 허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들이 '자신들을 단장할 더 좋은 장식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행은 가장 훌륭한 옷이다. 경건하려는 자들은 다른 행동에 있어서 뿐 아니라 그들의 복장에 있어서도 경건한 자답게 처신해야 한다. 여자들은 그들의 신앙의 원리들을 배워야 하며, 그리스도를 배워야 하고, 성경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종용해야 하며, 순종해야 하고, 남자를 주관하지 말아야 한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이다(13절). 또한 여자가 창조에 있어 가장 나중이었던 것처럼, 죄에 있어서는 가장 먼저였다. 정절 가운데 계속 있는 자들이 '해산함으로, 혹은 해산함 가운데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곧 위로의 말씀이다(15절). 그들이 죄에 빠졌다고 하는 판결이 결코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광대한 기독교 규범은 남자들에게 뿐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남자들 뿐 아니라 여자들도 신앙을 고백해야 하며 경건함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듯이 사도 시대에 있어서 뛰어난 기독교 신앙의 고백자들이었다.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옷은 선행이라고 하겠다. 여자들은 반드시 배우는 자들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교회에서 공공연하게 선생이 되어질 수 없다. 여자는 남자를 주관하지 못하며 오직 종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가르치는 것이 금해져 있지만 선한 여자들은 각 가정에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신앙의 원리들을 가르쳐야 한다. 디모데는 어릴 적부터 거룩한 성경을 알았다. 그러면 그의 어머니와 외조모외에 그에게 성경을 가르칠 사람이 또 누가 있었겠는가? 남자가 여자를 주관하며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할 것에 대한 매우 합당한 이유가 13절, 14절에 잘 나타나 있다. 여자는 자녀를 낳고, 산 자녀들의 산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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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제명과 훈계 1:1-4

 

1. 서신의 제명(1-3)

바울의 신임장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 구주 하나님에게서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명령을 받은 자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며, 영생에 대한 우리 모두의 소망은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의 참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그가 디모데의 회심의 매개자가 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디모데가 자기를 아들이 하듯 섬겼기 때문이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 아들과 같은 직무를 행함에 있어 전혀 부족하지 않았으며, 바울 역시 그에 대해 아버지와 같은 돌봄과 애정에 있어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2. 축복(2)

교회들에 보내는 바울의 모든 서신들에 있어서 사도의 축복은 '은혜와 평강'이다. 그러나 디모데에게 보내는 두 개의 서신과 디도에게 보내는 서신에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으로 되어 있다. 사역자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긍휼이 더욱 필요하다. 만일 디모데가 풍성하고도 계속적인 긍휼을 필요로 했다면 우리 사역자들은 더욱 그래야 되지 않겠는가.

3. 바울이 디모데를 이 직무에 임명하는 목적(4)

그가 해야 할 일은 교회의 사역자들과 성도들 모두가 온전하도록 돌보는 일이었다. 즉 그들로 하여금 기독교의 교훈에 다른 것을 덧붙이지 않게 하며, 변색하지 않게 하며, 그들에게 전파된 그대로를 잘 지키게 하는 것이었다. 사도 시대에는 기독교를 더럽히기 위한 시도들이 많이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디모데에게 이 직무는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않도록 해야만 할 뿐 아니라 바른 교훈을 순수하고 깨끗하게 가르치도록 해야만 했다. 다른 교훈은 성도들의 신앙을 더럽게 하고 넘어뜨리게 할 것이다. 이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4절). 의심쩍은 변론은 교회를 바로 세워주기 보다는 오히려 끌어내리는 것이 된다. 경건한 교훈은 모든 논의에 있어서 사역자들이 지행해야 할 목표이다. 경건한 교훈이란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처음 하나님께 나아온 것은 믿음에 의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교훈 받는 것도 믿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똑같은 믿음의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역자들은 논쟁을 피해야 한다.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진리에 대해서까지라도 논쟁은 믿음 실행 순종으로 이루어진 신앙의 활력을 좀 먹는 것이 된다.

 

Ⅱ. 율법의 참된 목적 1:5-11

 

여기서 사도는 율법의 용도와 복음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다.

1. 율법의 목적과 용도(5-10)

그것은 사랑을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1) 하나님의 율법의 주된 의도와 방향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또한 서로 서로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진실로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대적을 사랑하게 만들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할 것을 가르칠 뿐 아니라(마 5:44), 그 목표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 대체된 계명인 복음을 의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율법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을 자랑하되 그것을 단지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데만 사용한 자들은 그 율법의 최종 목표가 복음 전파이며 또한 청결한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깨뜨린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모든 죄악된 사랑으로부터 청결해져야 한다. 우리의 사랑은 '선한 양심'에서 일어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대한 진정한 믿음은 여기서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불리워진다. 그것은 숨김이 없는 사랑이다. 그것에 의해서 행해지는 믿음은 비슷한 성질을 띠어야 하며 순수하고 신실하여야 한다.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율법에서 벗어나게 될 때 그들은 무익한 말다툼으로 빗나가게 될 것이다. 사람이 목표를 잃어버리게 될 때 그가 취하는 모든 걸음은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특별히 신앙에 있어서 다툼이 있다는 것은 무익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무익한 다툼 외에는 거의 어떤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지 않다.

   (2) 율법의 용도(8절) : 유대인들은 그것을 부당하게 사용했다. 그들은 자신의 의를 세우는데에 그것을 사용했다. 그러므로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율법을 바른 용도의 위치로 환원시키고 오용하지 않도록 하라. 이는 율법이 아직까지 생활 규범으로서 대단히 유익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죄된 것과 의무가 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서 유익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라고도 하겠다. 율법이 주는 두려움이라면 그것이 사람들의 손을 묶고 사람들의 혀를 구속한다는데 있을 것이다. 율법은 주로 옳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크건 작건 그 정도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온갖 죄인들을 위해 있는 것이다(9,10절).

2. 사도 바울이 보여주는 복음의 영광과 은혜(11)

하나님의 많은 영광이 그의 창조와 섭리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복음 가운데 더욱 크게 나타난다. 이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비취기 때문이다. 그래서 11절에 '영광의 복음'이라고 했다. 바울은 이 영광의 복음이 자기에게 맡겨진 것을 큰 명예와 큰 은혜로 여겼다.

 

Ⅲ.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에 대한 언급과 찬양 1:12-17

 

1.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림(12)

사람들에게 사역을 맡기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이다. 사역자들이 사역자들을 만들 수는 없다. 하물며 사람이 스스로를 사역자로 만드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그 일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역을 맡기기 위해 부르신 자들을 그 일에 적합하게 만드신다. 즉 그는 자신이 자격을 준 자를 부르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사역을 맡기기 위해 부르신 자들에게 능력 뿐 아니라 충성심까지도 주신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믿을만한 종들이다. 사역에 대한 부르심은 큰 은혜라고 하겠다.

2. 바울의 회심에 대한 자신의 설명(13-17)

   (1) 회심 전의 바울은 어떠했는가? 종종 크고 뛰어난 봉사를 위해 예정된 자들은 회심 전의 자신들을 버린다. 만일 진실로 회개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시지 못할 정도로, 혹은 그를 위해 우리가 일하지 못할 정도로 중대한 죄란 없다. 진실로 회개한 자들이라면 자신들의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선한 사도는 종종 자신의 이전 삶이 어떠했는가를 고백하였다.

   (2)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큰 은혜.

    1) 그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긍휼을 입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한 것은 알고 한 것보다는 죄가 가볍다고 하겠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 행하는 죄도 죄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무지는, 비록 죄를 무효화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정상 참작의 구실은 될 것이다. 죄인들이 알지 못하고 행하는 것의 바닥에는 불신이 깔려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해서 바울은 긍휼을 입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풍성한 은혜를 주셨다(14절). 즉 그의 영광의 죽음 가운데 나타난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한다.(15절). 우리는 여기서 복음 전체의 개요를 보게 된다. 즉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상에 임하셨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그것은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복된 소식이다. 또한 그것은 너무 좋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는 그것이 미쁜 말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가장 큰 죄인이었다. 바울은 스스로 자신이 그러한 자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핍박자는 가장 좋지 못한 죄인들 중에 드는 사람이다. 바울은 그런 자였던 것이다. 다른 곳에서 바울은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엡 3:8)로 부르고 있는데 여기서는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로 부르고 있다. 죄인 중의 괴수가 성도들의 우두머리로 될 수도 있는 것이다.

    3) 바울이 하나님께서 찾은 긍휼.

     ① 이는 회개하고 믿게 될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16절). 지극히 진노케 한 자에 대해 그가 아주 오래 참음은 그리스도의 오래참으심의 한 보기였다. 아무리 큰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절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본을 위해 예정된 것이었다.

     ② 그는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감사할만한 고백을 집어넣지 않고서는 자신의 편지를 계속해서 써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긍휼에 대해 보답할 의무를 느끼는 자들은 자기들의 마음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로 넓힐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그의 위대하심을 표명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애정어린 배려들은 그에 대한 우리의 고귀한 생각들을 결코 감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그것들을 넘치게 하신다. 우리를 다투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손길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영광스런 속성들에 대해 넘치는 찬양을 하도록 만든다.

 

Ⅳ. 디모데에게 다시 권고함 1:18-20

 

바울은 디모데에게 확고하게 그의 사역 가운데 나아갈 것을 훈시하고 있다(18절). 전에 디모데를 지도한 예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디모데에게 이 직무를 맡기게 하였다고 하겠다. 사역이란 죄와 사단에 대한 선한 싸움이다. 사역자들은 부지런하고 용기 있게 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전에 디모데를 지도했던 예언들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의무를 활발히 다하도록 분발시키는 동기가 된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서 품은 선한 소망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의무를 다하도록 환기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19절). 선한 양심을 버리는 자들은 곧 믿음의 파선자들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둘 모두를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전에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적이 있었던 두 사람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믿음에 관하여 파선한 자들로서 예로 들어 말하고 있다. 바울은 그들을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 즉 그들로 하여금 훼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사단의 왕국에 속한 것으로 선포하였다. 만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정반대로 역사하실 수 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사단에게 내어준 바 되었다. 이는 그들로 훼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였다. 어떤 사람은 그들이 사단에 의해 더욱 훼방하는 자들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자. 이는 만일 우리가 한번 이것들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정체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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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2절]
본문에서 바울은 종과 상전의 관계 및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노예였으며, 특히 로마 시(市)는 노예의 수가 자유민의 네 배나 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전쟁 포로이거나 부채를 갚지 못해 노예로 전락한 자들이었다. 로마의 모든 일은 노예들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심지어는 자녀 교육까지도 노예들에게 일임 되었다. 따라서 노예 문제는 로마 제국의 중요한 사회 문제로 등장하였고 결국은 로마 멸망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바울 당시 이러한 노예 문제는 교회에까지 영향력을 미쳤고 초대교회에서는 이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다. 한편 바울 사도가 믿는 종들에게 상전을 존중하고 복종하라고 권면한 것은 단순히 인간성을 말살하는 노예 제도가 정당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존하는 체제 아래서 믿는 자들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극대화하며, 교회가 지향하는 세계의 변혁은 폭력적인 변혁이 아니라 인간성의 변화를 통한 점진적이고 근원적인 것이며, 교회의 원초적인 관심은 사회 제도 자체라기보다 그 사회에 소속되어 있는 인간의 구원임을 깨달을 수 있다<계 서론, 기독교의 역사관>.
(3~21절)
목회자 자격에 관한 바울의 교훈 - 서신 전체의 결론 부분으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는 권면 몇 가지가 강경한 어조로 언급되어 있다. 본문의 내용은 이단과 돈에 대한 경계(3~10절), 개인적인 권면(11~16절), 부자들에 대한 경계(17~19절), 결언(20~21절)으로 이루어져 있다.
[3~5절]
이단의 외적 특징 - 고후 11:13~15절의 내용이 이단의 본질적인 속성을 설명한 것이라면 본문은 이단의 외형적 특징을 설명한 것이다. 본문에 나타난 거짓 교사들의 특징은 ① 그들은 자기 자랑을 일삼는 교만한 자들이다. ② 알기 어려운 추상적 이론에 착념하여 실생활보다 변론에 치중한다. ③ 그들의 연설은 실제적이 아니며 사람들의 칭찬과 박수 갈채에만 관심을 둔다. ④ 그들은 교회의 건덕을 세우기보다는 평화를 교란시키며 분열을 조장한다. ⑤ 그들은 종교을 상업화하여 돈벌이와 이익의 도구로 삼는다<요일 4:1~6, 이단의 정체>.
[6절]
지족(知足)하는 마음. 스토아 철학의 '아타락시아'는 외부적인 환경이나 여건으로부터 떠난 '마음의 평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금욕적인 경건에 도움은 줄지언정 참된 만족은 줄 수 없다. 참된 만족은 오직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시 145:7~21; 빌 4:11, 12).
[7~8절]
바울은 인간의 본래적 무소유와 근원적인 한계성을 강조함으로써 먹을 것과 입을 것, 즉 생활의 최저 한도로 만족할 줄 아는 신앙 자세를 견지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특히 본문은 재물의 소유가 구원이나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으며, 사람이 죽은 후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내적 자아(품성, 영혼 등)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며, 많은 재물은 오히려 신앙 생활과 선행에 장애가 되며, 성도들이 견지해야 할 참된 자세로 자족하는 마음임을 교훈해 준다.
[9절]
부(富)하려 하는 자들. 기본적인 의식주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부를 추구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인류 공존의 법칙을 무시하며 이웃에 대한 착취와 불의를 그들의 삶의 근간(根幹)으로 삼는 자들이다. 본절은 이들이 당하게 될 필연적인 결과를 3단계로 밝혀 주고 있다. 첫째, 돈을 지나치게 추구함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시험과 올무'에 빠져 모든 인간 관계와 사건을 재물 축적의 수단 및 기회로 삼는다(약 5:1~6). 둘째, '해로운 정욕'에 빠지게 된다.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욕심은 영혼의 눈을 어둡게 만들며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셋째, '침륜과 멸망', 즉 몸과 영혼의 완전한 파멸에 이르고 만다(고전 5:5; 살전 5:3).
[10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 돈을 사랑하는 것 즉 돈을 삶을 위한 건전한 수단으로 삼지 못하고 목적으로 삼는 것은 생명을 구원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가능케 하는 믿음과 양심을 파괴해 버리기 때문에 모든 죄악의 출발이자 근거가 된다. 본문은 인간의 재물 추구는 쾌락 추구와 마찬가지로 끝내 만족시킬 수 없는 갈증을 일으키며, 사람을 이기적, 경쟁적으로 만들며, 재물이 주는 행복은 일시적일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염려와 불안을 남겨 주며, 재물에 대한 욕심은 사람을 죄의 길로 인도하여 믿음을 버리게 만든다는 교훈을 준다.
(11~16절)
디모데에 대한 개인적 당부 - 거짓 교사들과 재욕(財慾)을 경계한 바울은 이제 디모데에 대한 개인적인 권면과 당부를 주고 있다. 본문에서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것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선한 삶을 살 것을 특별히 강조한다.
[11절]
하나님의 사람아. 이 같은 칭오는 구약 시대에는 모세(신 33:1), 다윗(대하 8:14), 엘리야(와하 1:9) 등 특별한 하나님의 종들에게만 붙여졌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 이 칭호는 어느 특정인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왕 같은 제사장이요 그의 소유 된 백성이 된 모든 성도들에 대한 명칭으로 변하였다(롬 1:7; 빌 4:21; 벧전 2:9). 이 호칭은 특별히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이 어떠한 존재이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며,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존재로 믿음과 양심을 지키며 살아야 할 것을 깨닫게 해준다.

[12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이 표현은 이곳과 딤후 4:7절에만 나오는 독특한 것이다. 바울은 당시 헬라 사회에서 크게 유행하던 운동 경기에 비유하여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인내하며 싸우라는 권면을 주고 있다. 여기서 '싸우라'에 해당하는 헬, '아고니존'은 문자적으로 '상을 얻기 위해 경쟁하라'는 뜻인데 이 상은 곧 영생을 가리킨다(마 18:8)<엡 6:10~20, 성도의 영적 전쟁>.

[15절]

기약(期約). 일반적으로는 정하신 때를 가리키며 종말론적으로는 그리스도 재림의 날을 의미한다. 그의 나타나심. 그리스도께서 장차 이땅 위에 재림하실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재림의 날은 만세 전에 이미 결정되었으며 그 구체적인 때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15~16절]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속성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①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다. ② 하나님은 유일하신 신으로 이 땅의 절대적인 주권자이시다. ③ 하나님은 능력의 근원으로 전능하신 분이다. ④ 하나님은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다. ⑤ 하나님은 영광 자체이시며 초월적인 분이다. ⑥ 하나님은 인간이 볼 수 없는 영이시다(요 1:18; 골 1:15).

(17~19절)

부자의 신앙 실천 - 본문은 부자들의 겸손과 일시적인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 것을 강조함으로써 부가 사람을 교만케 해서는 안 되며, 재물은 선한 사업과 사랑의 실천을 위해 사용되어야 함을 교훈해 준다.

[19절]

좋은 터를 쌓아. 선한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보화를 하늘나라에 쌓아 두라는 뜻이다(마 6:20). 참된 생명. 영생을 의미한다(마 25:34~40).

(20~21절)

디모데에게 주는 마지막 권면이자 결론으로 이단에 대한 경계이다.

[20절]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 생명을 구원하는 복음의 진리와는 무관한 거짓된 지식, 곧 당시 에베소 교회에 존재하던 영지주의자와 유대주의 가르침을 뜻한다.

 

# 해설

상전에 대한 순복 (1~2절)

노예 제도가 있던 초대교회 당시의 상황에서 나온 교훈이며 갈등 관계에 있는 두 계층을 향하여 순복과 사랑의 원리를 논한 것으로 엡 5:5~9절과 일맥 상통한다.

경건한 자가 금할 교만과 탐욕 (3~10절)

바울은 경건한 자는 자족과 겸손을 배워야 함은 물론 경건치 못한 자는 탐욕하게 됨을 가르친다. 따라서 돈을 사랑하는 자는 이미 경건한 자가 아니다.

결론적인 개인 권면 (11~16절)
본서는 다른 편지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의 교훈과 개인 편지의 성격을 띠는 디모데 개인과 교회 전체에 주는 교훈의 글이다. 이 단락은 편지의 말미에 와서 다시 한번 디모데와 같은 후배 목회자에게 주는 개인적인 권면이다. 특히 겸손한 순종, 최후의 상급 언급과 아울러 목회자의 사역을 선한 싸움으로 묘사한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12절).
부자의 신앙 실천 (17~19절)

자칫 현실에 안주하기 쉬운 부자들에게 천국을 전제로 현실 생활에서 자신들의 부로써 사랑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실천적 신앙을 교훈하는 삽입 단락이다.

끝맺는 말 (20~21절)

비교적 비공식적 인사말로서 특히 헛된 변론을 피할 것을 재차 명함으로 목회자의 교리적, 사상적 무장과 굳은 신조를 강조하고 있다(딤후 2:15, 24).

 

# 핵심

1~19절

정통 신앙에 입각한 성도와 목회자의 마땅한 삶을 교훈하는 내용이다.

 

# 묵상

주인에 대한 종의 자세 (1~2절)

주인이나 종이나 하나님 안에서는 한 형제이나, 공적인 관계에서는 주인을 공경하고 섬겨야 합니다. 이는 노예 제도가 존속하던 초대 교회의 특수한 상황 하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간에 신분에, 또 현재 자신이 맡은 직무와 신분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 (3~5절)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기 보다는 이를 변론과 논쟁의 재료로 삼으며 교만한 마음을 지닌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짓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단 종파의 교주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재물에 대한 경건자의 자세 (6~7절)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겸손한 마음과 늘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족이란 자신의 처지에 적당히 안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땅에 묻어 두었을 때 책망받은 것처럼 올바른 의미에서 자족한다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서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권면 (11~14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악의 유혹들을 피하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선한 행실을 통하여 책망받을 것이 없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합니다. 바울이 믿음의 생활을 싸움에 비유하는 것은 보다 긴박하고 철저한 영적 생활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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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25절)
다양한 분류의 성도와 목회자 - 전장에서 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를 논한 바울은 이제 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과 그에 대한 대응책, 즉 목회자로서 취해야 될 태도에 대해 논하고 있다. 본장은 특히 목회자로서 신분과 연령이 다른 각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본장의 내용은 남녀 노소에 대한 태도(1, 2절), 과부에 대한 태도(3~16절), 장로들에 대한 태도(17~25절)의 세 단락으로 구분된다. 한편 본장은 목회자는 성도들의 잘못에 대해 분명하게 견책해야 하며, 그 견책은 인간적인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의 정신에 입각하여 행해져야 함을 교훈해 준다<딛 서론, 바울 서신의 목회자상>.
[1~2절]
본문에는 남녀 노소, 즉 모든 성도들에 대한 사역자의 처신 및 태도가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연결된 한 가족이며, 분노는 의도하는 선을 이루기보다 분열과 반목(反目)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며, 노인을 존대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효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기본적인 윤리이며, 인간적인 예의 범절은 종교나 시대, 공간을 막론하고 지켜져야 할 영속적인 규범이며, 주의 사역자들은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자리에 서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렘 43:2, 겸손과 교만>.
(3~16절)
과부에 대한 목회자의 올바른 처신 - 구약 시대부터 과부는 고아와 함께 약함과 보호해야 할 대상의 대명사로, 중요한 사회 문제로 등장했을 뿐 아니라(신 10:18; 시 68:5) 초대교회에서도 과부 문제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초대교회는 이들의 구제를 위해 일곱 집사를 뽑는 등 특별히 배려하며 신경을 썼다(행 6:1)<시 10:14, 구제의 대상과 방법>.
[3절]
과부를 경대하라는 말은 그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함과 동시에 구체적으로 경제적인 도움까지 베풀라는 의미이다. 바울 당시는 남편과 사별한 여인뿐만 아니라 일부 다처제(一夫多妻制)의 성행으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과부들도 많았다. 한편 과부에 대한 관심과 물질적인 도움의 필요성은 신.구약성경 여러 곳에 강조되어 있다(출 22:22, 23; 신 24:17; 시 149:9; 사 1:17, 18; 막 12:42, 43).
(4~8절)
효의 실행 - 효(孝)의 실행에 대한 명령이다. 여기서 바울은 효의 실행과 하나님 신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인간적인 관계, 즉 부모에 대한 공경이 무시될 때 그 사람의 신앙 자체도 무의미함을 강조한다. 이로써 효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는 첩경이고(엡 6:1~3), 기독교는 실천적인 종교이며, 부모 공경은 시대를 초월하는 종교적 의무로서 기독교의 근본 윤리이며(출 20:12), 교회는 경건 훈련의 일환으로 효도를 적극 권장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교훈해 준다<엡 6:1~3, 유교적 효 윤리와 기독교의 효 사상>.
[6절]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앞절의 참 과부의 행실과 대조되는 표현으로 방탕과 성적 부도덕 등 쾌락을 추구하는 과부들의 영적 죽음의 실상을 밝힌 것이다.
[8절]
가족 부양의 의무를 기피하던 불성실한 교인들에 대한 경고이다. 바울 당시 일부 교인들은 생계 능력이 없는 가족이나 친척에 대한 부양의 의무를 의도적으로 소홀히 함으로써 교회의 재정적인 부담을 가중시켰다. 이러한 자들은 믿음을 고백하고 교회에 출석할지라도 실상은 불신자들로 정죄받아 마땅한 자들이다(롬 2:14).
[9~10절]
참 과부의 조건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가족이 없으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기도에 전념하는 자(4, 5절), 세상적 쾌락을 멀리한 자(6절), 60세 이상 되고 재혼하지 않은 자(9절), 자녀 양육, 나그네 대접, 봉사 구제 등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자(10절) 등이다.
(11~13절)
젊은 과부의 치리 문제 - 젊은 과부를 참 과부로 인정하여 명부(名簿)에 올리는 일을 금지해야 할 이유가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나이가 젊어 재혼할 가능성이 많으며 이로 인해 헌신의 서원과 맡은 바 직분을 외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젊은 과부들은 할 일 없이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남의 이야기를 옮기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함으로써 교회에 문제거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11절]
그리스도를 배반할. 배교의 의미보다는 맡은 바 직분을 저버림으로써 그리스도께 대한 신실한 사랑과 헌신의 서원을 외면해 버린다는 뜻이다.
[12절]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예수에 대한 신앙의 변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과부 명부에 등록할 때 행한 맹세를 저버렸다는 뜻이다<민 30:1~16, 서원과 맹세에 대하여>.
[15절]
사단에게 돌아간. 젊은 과부들 중 정욕 때문에 믿음의 길을 떠나서 부정한 남녀 관계를 저질러 타락해 버린 것을 의미한다. 본문은 특히 믿음을 포기한 자는 반드시 사탄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는 점과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만 의뢰할 것을 교훈해 준다(히 12:2).

(17~25절)

장로들의 처우 문제 - 본문은 특히 말씀 전파와 가르치는 일을 전담하는 장로들에게는 정신적 예우(禮遇) 뿐만 아니라 그의 상응하는 충분한 보수를 주어야 하며 이를 통해 그들이 더욱 교회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갈 6:6). 본문의 내용은 장로의 대우 문제(17, 18절), 장로에 대한 송사(19~22절), 디모데에게 주는 권면(23~25절)의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17절]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 장로는 두 부류로 구분된다. 첫째, 치리 장로(Ruling Elder)는 교회의 조직, 행정, 성도의 치리 문제를 담당한다. 둘째, 가르치는 장로(Teaching Elder)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하던 교회의 지도자로 초기에는 감독으로 불리다가 오늘날에 와서는 목사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19~20절]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세 사람의 증인이 있을 때만 받아들이라는 권고이다(신 19:15). 그 이유는 장로들을 교인들의 악의와 근거 없는 비난으로부터 보호하고 교회 내에서 장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함이다. 반면 범죄한 장로에 대해서는 온 교회 앞에서 그를 징계해야 하는데 이는 다른 성도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어 그들의 범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21~22절)

본문은 주의 사역자들이 취해야 할 처신에 대해 몇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 그것은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 것, 타인에 대한 송사를 경솔히 믿지 말고 확실한 증거를 요구할 것, 범죄자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징계할 것, 선입견을 가지고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말 것, 남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고 정결케 할 것, 남을 판단할 때는 극히 신중할 것 등이다.

[21절]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그리스도의 재림 때 나타나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천사들로, 타락한 천사들과 대조된다(계 18:1; 계 20:1; 계 21:9).

[22절]

경솔히 안수. 장로, 집사 등의 임직식은 무엇보다도 신중하고 올바른 선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신 34:9; 행 6:6; 행 13:3).

[23절]

여기서 우리는 디모데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점과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따뜻한 부성애 그리고 지나친 금욕 생활의 무익성을 깨달을 수 있다.

[24절]

본문은 특히 인간의 모든 죄와 선행은 반드시 드러나고 범죄는 심판으로, 선행은 상급으로 보상되며 악이 선으로 가장할지라도 일시적일 뿐이며 선이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갈 6:9, 10; 히 4:12).

 

# 해설

각 부류의 성도와 목회자 (1~25절)

교회의 각 부류 성도를 가족 구성원처럼 대할 것을 전제한 후(1, 2절), 가장 유의해야 할 두 부류로 과부와 장로를 꼽고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교회가 보존하되 그 선별에 엄격한 제한을 둘 것을, 후자의 경우에는 그들 직분의 고귀함과 권위를 십분 존중하며 특히 송사와 치리에 있어서 예우를 다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3~20절). 그리고 다시 일반적 원리인 공평(21절), 신중(22, 23절), 신념(24, 25절)을 예시한다.

 

# 핵심

1~25절

목회자가 여러 유형의 교인들을 어떻게 지도하고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세부적이고도 실제적인 목회 지침이다.

교회의 직원(17절)

사도와 선지자, 전도자(행 21:8; 고전 12:28) 등은 초대 교회 당시에만 존재했던 비상 직원이다. 반면 장로와 집사는 오늘날까지 존속하는 통상 직원이다. 장로는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로 구분되는데 "목사"(엡 4:11)가 후자에 해당한다. 성경에는 "감독"도 나오는데(딛 1:7) 다스리는 장로, 또는 이방인 교회에서 장로를 지칭하던 명칭이라는 두 견해가 있다. 교회에서 재정 관리와 봉사의 직무를 감당하는 '집사'의 효시는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의 일을 전담하도록 선임했던 일곱 집사들이다(행 6:1~6).

 

# 묵상

성도의 인간 관계 (1~2절)

성도는 노인들을 부모님과 같이 공경하고, 젊은 사람들을 자신의 형제 자매와 같이 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하나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성도들은 육신의 부모 안에서 맺어진 혈연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궁극적인 부모가 되시는 한 분 하나님 아래에서 맺어진 공동체입니다.

장로에 대한 예우 (17~20절)

장로를 대하는 성도들은 그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하며, 송사가 있을 때에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수렴하여 판단하고, 잘못이 인정된 경우에는 공식적으로 책망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교훈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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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16절)
참 교사의 훈련과 열심 - 바울이 디모데에게 개인적인 권면을 주고 있다. 본장의 내용은 이단에 대한 경계(1~5절), 경건의 우월성(6~10절), 목회자의 의무(11~16절)로 구분된다. 본장은 특히 성도들은 경건의 훈련을 통해 스스로 영적 성숙을 이루어야 하며, 배교를 막기 위해선 말씀과 전파와 그 말씀 위에 굳게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을 교훈해 준다(엡 4:13; 벧후 1:5~11).
(1~5절)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 - 바울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금욕주의적 이단에 대해 특별히 경계하고 있다. 이단에 대한 경계는 본서의 핵심적인 주제의 하나로 본서 여러 곳에서 강조되고 있다(1:3~7; 6:3~5).
[1절]
어떤 사람들이. 당시 에베소 교회에서 활동하던 영지주의적 이단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영혼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고 주장하여 극단적인 방종이나 쾌락주의 아니면 극단적 금욕주의에 빠졌으며, 가르침을 통해 교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본문에 나타난 이단은 바로 금욕주의적 경향을 띤 영지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성격은 배교함, 사탄의 가르침을 좇음, 양심이 마비되어 무감각해짐, 거짓말을 함, 극단적인 금욕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3절]
혼인을...식물을 폐하라. 금욕주의자들의 구체적 가르침의 내용이다. 그들의 가르침은 물질을 악한 것으로 보는 영지주의와 유대교의 한 분파인 엣세네파의 극단적 금욕주의가 혼합된 것으로 결혼 무용론과 더불어 육식과 음주를 철저히 배격하였다. 특히 엣세네파는 금욕주의를 성결과 동일시하여 모든 육체적인 쾌락을 죄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하나님의 창조에 위배된 것이며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의 참된 가치를 깨닫지 못한데서 나온 것이다(골 2:6, 23).
[4~5절]
창조물의 근본적인 선함을 강조하고 있는 본문은 선악, 진위(眞僞), 정과 부정(不淨)의 판단 기준이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있으며, 부정은 창조물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의 죄성에서 기인됨을 강조한다.
[6절]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 참된 목자를 가리키며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는 모든 권면의 목적이 이 한마디 속에 축약되어 있다. 한편 선한 목자의 전제 조건은 '믿음의 말씀'과 '선한 교훈'을 좇는 것인데 믿음의 말씀은 복음의 진리를 , 선한 교훈은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배우고 실천해 온 구약의 교훈을 가리킨다(딤후 3:14, 15).
[7절]
경건(헬, 유세베이아). 한마디로 기독교 신앙 전반에 관한 포괄적 용어이다. 그것은 예수의 교훈이며(6:3) 진리와 동행하는 성도의 삶이며(딤후 1:1), 믿음의 비밀을 소유하는 것이다(딤후 1:9). 뿐만 아니라 경건은 성도의 최고 덕목인 사랑의 실천을 전제로 하고 있다(약 1:27). 따라서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며 현재와 미래에 신령한 축복이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8절]
육체의 연습. 금욕적인 생활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으나 여기서는 건강과 경기에서의 승리를 위한 신체 단련을 가리킨다.
(11~16절)
바울의 목회 지침 - 디모데에게 실제적인 삶과 신앙에 있어서 신자들의 모본이 될 것을 강조하고 있는 본문은 디모데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적용되는 가치 있는 권면이자 목회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본문에서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참된 지도자의 자세는 지도자는 먼저 사람들을 깨우칠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는 항상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도자는 실천적인 삶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지도자는 공동체 내에 발생한 그릇된 교훈을 경계하여야 한다. 지도자는 자신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 경거의 훈련을 시켜야 한다<겔 33:6, 종교 지도자의 책임>는 것이다.
[13절]
목회자의 기본적인 임무가 세 가지로 나타나 있다. 즉 주의 말씀을 읽고 권면하고 가르치는 것은 복음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것으로 어느 하나를 소홀히 할 때 그의 사역은 온전한 것이 될 수 없다.
[14절]
은사. 안수받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영적능력(성령의 은사)을 의미한다. 장로의 회. 원래 유대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유대의 최고 결정 기관인 산헤드린을 일컫는 말이었다(눅 22:66). 그런데 이 조직이 초대교회에 그대로 반영되어 교회의 중대사를 논하고 성례전을 집행하는 최고의 단체로 직제화된 것이 바로 장로의 모임 곧 장로의 회이다(행 20:17).

# 해설
참 교사의 훈련과 열심 (1~16절)
앞의 1:3~11절의 내용과 일맥 상통하는 내용으로 일원론적, 창조론적, 윤리론적 성경 진리를 인본주의적 진리로 유포(流布)하는 자들의 허구성을 밝히고(1~5절), 그에 대응한 복음 사역자들의 계시 의존적 자세와 자기 절제 그리고 이론적 성경 연구 및 영성 훈련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있다(6~16절). 특히 사역자로서 또는 성도로서 능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한 경건의 훈련을 육체 운동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 핵심

1~16절

성도들이 이단 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며, 또한 그들이 경건 생활에 힘쓰도록 하기 위해 목회자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한다는 교훈이다.

 

# 묵상

거짓 교사 (1~5절)

거짓 교사들은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포기하라고 하며, 오직 임박한 종말만을 강조하여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재림의 그 날과 시는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따라서 믿는 자들은 그 날이 오기까지 깨어 기도하며 성실하게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심판날에 하나님이 선한 자들을 찾아서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마 24:40, 41).

경건한 삶 (7절)

경건한 삶이란 영육간에 건강한 삶을 살며, 온갖 거짓된 신화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좇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경건은 절제라는 말과 함께 쓰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모든 욕망과 불의한 유혹들을 과감하게 끊고,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을 항상 기억하며 절제하는 삶을 사는 것은 경건한 삶의 기초가 됩니다.

가르치는 자의 자세 (12~16절)
가르치는 자는 자신이 받은 바 은총을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본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는 심는 자이며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대명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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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16절
)
감독과 집사의 자격 - 본장은 본서가 목회 서신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한편 바울이 본장을 기록한 것은 자신의 에베소 도착이 늦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며, 자신이 없는 동안 디모데가 교회 제도와 직분을 잘 활용하여 원활하게 치리(治理)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동역자와 주의 몸 된 교회를 항상 염려하는 바울의 뜨거운 사랑을 엿볼 수 있다.
(1~7절)
감독의 자격 열다섯 가지 조건이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다.
[1절]
감독(監督). 초대교회 내에서 감독은 교회 생활과 사업을 감찰하고 교인들의 신앙 생활 전반을 보살펴 주는 역할을 하였다.
[2절]
한 아내의 남편. 본절에서는 재혼을 금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 이유는 재혼할 경우 가정이나 자녀 문제로 인해 감독 직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4~5절]
본문은 가정과 교회의 관계성, 즉 가정은 교회의 원형으로 교회 지도자가 가정을 잘 다스릴 때 비로소 교회 성도들도 바로 지도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여기서 우리는 가정은 교회의 축소판이며, 실천적인 신앙 교육의 장이며, 한 사람의 가정 생활은 그의 사회 생활의 척도가 됨을 알 수 있다.
[6절]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 마귀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으나 마귀에게 준비된 하나님의 정죄 곧 마귀가 받는 것과 똑같은 심판을 의미한다.
[7절]
외인.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의미한다.
(8~13절)
집사의 자격 - 초대교회는 집사의 자격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행 6:3)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직분자들의 윤리적 책임성과 신앙적 고결성의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외형적 단점과 더불어 질서있는 삶(8절)과 언행일치의 삶(8절), 이성적 사고와 판단으로 올바른 공동체 방향을 이끌어 가기 위한 술의 금지(8절)와 구제를 위한 재정 문제에 있어서의 청지기적 성실성(8절), 도덕적인 양심(9절)과 결정적 흠이 없는 자(10절), 그리고 경건한 가정생활을 통한 교회 사역이(11, 12절) 요구되었다. 한편 집사들은 교회의 감독을 보좌하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에 힘썼다. 즉 집사는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온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는 직책임이 분명하다.
[8절]
집사. 이들은 교회의 감독과 장로들을 보좌하고 성도들 중 가난한 자 구제하는 일을 주로 하였다. 집사가 처음 생기게 된 것도 다름아닌 구제 사업을 원활히 하기 위함이었다(행 6:1~6)<시 10:14, 구제의 대상과 방법>.
[9절]
믿음의 비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의 도리를 의미한다. 거짓 없는 믿음과 깨끗한 양심은 그리스도인들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2대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고전 4:1; 엡 3:4).
[11절]
여집사의 자격에 대한 언급이다. 참소. 까닭없이 남을 비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탄적인 행위로 공동체를 어지럽히고 파멸시키기까지 한다(계 12:10).
[13절]
아름다운 지위. 성도들로부터 받는 존경과 보다 높은 교회 직분을 함께 의미한다.
(14~16절)
교회와 복음의 심오함 - 바울은 이제 본서의 저작 동기를 밝힌다. 그 목적은 디모데에게 올바른 목회 지침을 주고, 에베소 교회에 대한 디모데의 권위를 확고히 하며, 그에 대한 바울의 개인적인 관심을 재확인시키기 위함이다.
[15절]
하나님의 집.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곳이라는 뜻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교회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주권적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집단임을 가리킨다(마 18:17). 진리의 기둥과 터. '진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요 14:16), '기둥과 터'는 교회가 복음의 진리를 전파하고 지탱하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16절]
본절은 시적인 문체로 승화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이며 초대교회 그리스도론의 극치이다. 이 짧은 문장 속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 승천 등 그분의 모든 사역이 다 포함되어 있다<눅 9:28~36, 예수 생애의 5대 사건>.

# 해설
감독과 집사의 덕 (1~13절)
성도 중 교회를 대표하여 일할 각종 일꾼들에 대해 요구되는 덕목은 피동적인 선발 기준이면서 또 능동적으로 추구해야 할 지표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들은 내적으로 교회의 치리를 맡은 자들이며, 외적으로 교회를 대표하는 자들로서 선교적 의미를 갖는바, 바울은 7절에서 이를 언급한다.
교회와 복음의 심오함 (14~16절)
삽입 단락으로 본 편지의 저작 동기를 밝히면서 다시 한번 자신들이 맡은 직무의 엄정함을 밝힌 부분이다. 세상 지식은 알면 알수록 쉽고 가벼워진다. 그러나 구원의 진리는 알면 알수록 그 심오성에 더욱 겸손해지게 된다. 이는 끝이 있는 땅의 진리가 아니라 끝이 없는 하늘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 핵심
1~16절
교회를 지도할 책임자인 감독과 봉사 직분을 감당할 집사의 자격 요건에 관한 교훈으로서 직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 묵상

교회 직분자의 자격 (1~13절)

교회 직분자는 먼저 자신이 인격적으로 온전해야 하며, 모범적인 신앙의 가정을 이룬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은 세상의 직제와는 다릅니다. 따라서, 자신의 명예를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봉사하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직분자의 가정은 가정의 질서가 잘 잡힌 가운데 자녀들이 신앙 안에서 잘 양육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가정은 이 땅의 작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가정의 평화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에게는 다른 사람들로 부터 칭송받는 아름다운 지위를 갖게 되며, 주 안에서 그 믿음이 더욱 굳건하여집니다. 초대 교회에서 집사는 교회의 구체적인 사업을 담당하던 사람들로, 구제품을 모으고 배분하는 등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신앙 고백 (16절)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이란 계시된 진리, 즉 예수님의 성육신,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심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러한 신앙 고백은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일단의 이단 사상에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써, 바울은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승천에 이르기까지를 간명하게 밝히고 이 모든 것을 진실한 신앙 고백의 내용으로 삼았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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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15절)
기도에 관한 교훈 - 에베소 교회에서 발생한 이단에 대해 경고한 바울은 이제 교회 안에 예배 지침 곧 기도와 예배시 여자의 처신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본장은 특별히 기도의 중요성과 기도의 대상은 모든 인류란 점을 강조하며 진실한 성도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음을 보여 준다.
(1~8절)
복음의 보편성 -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의 중요성과 바울의 이방인을 위한 사도권을 재확인하고 있는 본문의 핵심적인 주제는 '복음의 보편성'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며(1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하시며(4절), 기도의 대상도 교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포괄하고 있음을 본문이 분명이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6절).
[1절]
첫째로 권하노니. 이것은 시간적인 순서의 우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공예배에 있어서 기도가 가장 중요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배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기도인데 그 까닭은 성도들이 기도를 통해 속죄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직접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구(헬, 데에시스)는 긴박한 상황에 놓인 개인이나 단체가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을 가리키며, 기도(헬, 프로슈케)는 일반적인 모든 기도를, 도고(헬, 엔튜크시스)는 타인을 위한 중보 기도 또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자유롭고도 친밀한 기도를, 감사(헬, 유카리스티아)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의미한다.
[2절]
임금들과...위하여 하라.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은 통치권의 올바른 행사로 국민의 안녕과 복지에 힘쓰도록 하기 위함이며, 성도들이 고요하고 평안한 중에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함이며, 통치자 역시 인간으로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기 때문이다<렘 22:1~7, 지도자의 책임>.
[4절]
구원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예비되었다는 점에서는 보편적이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선택적이며 조건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은 모든 인류에게 전파되어야 하며, 구원은 회개와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요 3:16; 고후 5:14, 15)<약 서론, 회개와 신앙>.
[5~6절]
본문에는 바울의 신학 사상이 세 가지 측면에서 부각되어 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유일성과 절대성이다. 둘째, 그리스도는 인류의 대속주로서 주를 떠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어떠한 화해도 불가능하다. 셋째,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참 신인 동시에 참 인간이시다. 속전. 문자적으로는 노예를 해방하기 위해 지불되는 몸값을 뜻하나, 여기서는 죄의 속박으로부터 인류를 해방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의미한다(갈 3:13; 엡 1:7).
[8절]
기도의 자세 및 요건이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첫째, 기도하는 자는 거룩한 손, 곧 죄로부터 분리된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둘째, 마음에 분노가 없어야 한다. 셋째, 다투거나 의심해서는 안 된다. 넷째, 기도는 자기 중심적이거나 이기적이어서는 안 된다<눅 11:1~3, 올바른 기도 행활>.
(9~15절)
교회 내 여성의 덕 - 공적 예배를 중심으로 여성도들의 신앙 생활 자세(9, 10절)와 질서 유지를 위한 여성의 활동 제한과 그 성경적 근거(1114절), 여성도의 신앙 자세에 대한 재강조와 구원의 약속이다. 여기서 왜 유독 여자에게만 이런 요구를 하느냐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본서 서론, '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참조하라. 성경은 지나친 가부장적 편견으로 인하여 여성에 대해 편견을 갖고 무시하는 것을 철저히 금하는 동시에 여성에게도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따라 여성으로서의 덕을 가져 줄 것을 거듭 권고하고 있다.
[9~10절]
염치와 정절로...오직 선행으로. 전자는 겉모습이 아니라 고상한 내적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여성다움으로써 자신을 단장할 것을, 후자는 이론과 수다가 아니라 성실과 실천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것을 교훈한 것으로서, 우리의 겉과 말이 아니라 속과 행동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라는 말씀이다.
[13~14절]
바울이 여성에게 남성과의 협력 문제에 있어서 이처럼 순종과 절제를 지시하는 것은 단순한 임기응변적 조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의거한 질서의 순서와 여성 본유의 유약한 심성에 기초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고전 11:1~16).
[14절]
이는 그 옛날 하와의 범죄를 여성 전체의 범죄로 보아 두고 두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에서 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 전체의 대표격인 하와도 그랬듯이 오늘날의 여성도 그 본성상 심성이 유약하기 때문에 남성에 의지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15절]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 견해가 있으나 신앙적 해산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보는 견해가 적절하며 또한 상징적으로는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해산함으로써 그분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구원 얻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미 4:9).

 

# 해설

중보 기도의 권면 (1~8절)

교회 공동체 안에서 먼저는 목회자가, 그리고 성도들이 가장 처음으로 힘쓸 일로서 중보 기도를 들고 있다. 4절에서는 그 이유를, 5~8절에서는 명령의 권위와 당위성을 언급하고 있다. 한편, 사회와 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의 특별한 당부는 그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강조이기도 하다.

교회 여성의 덕(德) (9~15절)

먼저 여성들의 약점으로 작용될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한 경계(9, 10절)와 남녀 관계에 있어서 창조 질서에 의거한 지시를 주고 있다(10~15절). 이와 같은 여성들에 대한 비교적 수동적인 덕목의 요구는 교회 공동체 내에서의 질서 유지라는 특수 목적을 고려한 것임을 유의하여야 한다.

 

# 핵심

1~15절

공중 예배에 관한 교훈으로서 여성을 상대적으로 경시하던 시대 상황에 입각하여, 예배에 참석하는 여성도들의 합당한 태도를 강조한다.

여성 성직자 (12절)

바울은 교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당시의 시대 상황에 입각하여 교회에서 여성도가 회중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일을 금했다. 이에 따라 보수적인 개신 교회에서는 아직도 여성도를 목사나 장로로 세우는 일을 금하고 있다. 하지만 성경이 여성의 가르치는 은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초대 교회 당시에도 사적인 모임에서는 여성도가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권면하고, 예언할 수 있었다(행 18:26; 행 21:9). 그리고 여자도 집사로서 교회에서 헌신, 봉사하도록 허락되었다 (3:10, 11).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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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11절)
유대 혼합주의자들에 대한 징계 - 본문에서 바울은 유대적 영지주의에 대한 경고와 함께 율법의 본래 의도를 밝힌다. 바울 당시 영지주의는 분명한 형태를 취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영지주의의 혼합주의적 경향과 육체를 악한 것이라고 보는 사상은 이미 교회에 많은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1절]
우리 소망. 인간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따라서 어떤 희망을 가졌는가에 따라 그의 삶의 질과 방향이 결정된다. 예수를 자신의 희망으로 가진 자는 영생을 원하는 자로서 마땅히 예수를 닮고자 할 것이다(고후 1:7; 벧전 3:15; 요일 3:3).
[2절]
믿음 안에서 참 아들. 성도들은 이처럼 신앙 안에서 서로 긴밀한 교제를 나눌 필요가 있다. 서로간의 교제는 기쁨과 위로는 물론 서로의 신앙을 격려해 준다(행 2:42; 히 10:24; 요일 1:7).
[3절]
마게도냐로 갈 때에. 이것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1차로 풀려난 후에 일어난 일로 바울과 디모데가 함께 에베소에 있다가 바울은 마게도냐로 떠나고 디모데는 그곳 목회를 위해 머문 사건을 가리킨다. 다른 교훈. 일반적으로는 기독교의 진리에 배치되는 이단적 사상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유대주의와 헬라 사상이 혼합된 유대주의적 영지주의를 뜻한다.
[4절]
신화. 그리스.로마 신화와 영지주의의 에온에 의한 창조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한 집안 또는 도시의 기원을 어떤 신에게까지 소급시키는 풍조를 가리킨다. 끝없는 족보.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자신의 족보를 이스라엘의 유명한 조상들에게 억지로 연결시켜 이것을 구원의 조건인 양 내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5절]
경계의 목적은...사랑이거늘. 이단에 대한 경계의 근본적인 목적은 성도들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 거짓 없는 믿음을 지켜 온전한 사랑을 실천토록 하는 데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은 신학적 논쟁이나 교리적인 확고함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이며, 사랑의 상실은 이단 발생의 일차적인 원인이며, 사랑은 인간의 삶이 윤리적으로 깨끗해지고 믿음의 바탕 위에 설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6~7절]
율법의 선생. 당시 에베소 교회에서 활동하던 거짓 교사들의 정체를 밝혀 준다. 그들은 율법을 구원의 조건인 양 강조하는 유대주의자들로서 영지주의와 혼합된 교리를 가지고 공중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다.
(8~10절)
율법의 효용 및 목적 - 바울은 이제 율법 자체는 선한 것임을 밝히고 그 효용 및 목적을 설명한다(롬 7:12). 그것은 인간의 의(義)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인간이 죄인임과 동시에 그 죄의 치명적인 심각성을 깨닫게 해주며(롬 7:7), 성도들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도록 경고해 주며, 행악자들의 죄악을 다스리고 심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9절]
알 것은 이것이니. 진리의 핵심을 알아야지 일관성 없는 지식의 부스러기를 자기 과시의 도구로 사용하면 오히려 진리 자체로부터는 멀어진다.
(12~17절)
바울의 고백 - 본문에서 바울은 갑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가 받은 구원에 대하여 감격적인 어조로 감사한다. 롬 7:15~8:2절의 내용이 바울의 내적 죄성에 대한 처절한 고백이라면, 본문은 그의 외적 죄행(罪行)에 대한 진솔한 참회의 고백이라 할 수 있다.
[12절]
내가 감사함은.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선택하여 구원해 주시고,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을 믿고 긍휼을 베푸시며, 영광스러운 사도의 직분을 맡겨 주시고, 그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덧입혀 주셨기 때문이다<룻 서론, 감사의 요소와 의무>.
[13절]
과거 하나님을 부인하던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삼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행 7:58; 행 9:1).
[15절]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4:9절과 함께 복음 전파의 대상이 일부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인류에 미치는 보편적인 것임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예수께서...세상에 임하셨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이 이 말 속에 압축되어 있다. 여기서 '구원'이란 말은 죄와 사망의 상태에서 구출되는 것 뿐만 아니라 의와 자유, 축복 등으로 인도되는 적극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롬 5:5; 갈 5:1).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것은 자신의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는 바울의 신앙 간증인 동시에 참된 승리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위대한 신앙의 선진들과 마찬가지로 바울의 이러한 죄 의식과 참회의 고백은 복음 사역을 승리로 이끄는 근본적인 동인(動因)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들이 느끼는 진정한 죄 의식은 그들로 하여금 정신적 우월감과 자만이 빠지지 않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하며, 은혜의 보답을 위해 능동적인 삶을 살게 하며, 다른 죄인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막 14:66~72, 자아가 깨어져야 하는 이유>.
(18~20절)
디모데에게 향한 권면 - 본문은 복음 전파 사역이 사탄과의 영적 전투이며 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예언, 즉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하며 굳건한 믿음과 착한 양심이 선행되어야 함을 교훈해 준다<엡 6:10~20, 성도의 영적 전쟁>.

[20절]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에베소 교회에 있던 이단자를 가리킨다. 사단에게 내어 준 것. 출교(黜敎)를 의미한다. 한편 이러한 징계의 목적은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이단 사설로부터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고 출교자를 연단시켜 회개케 하기 위함이다.

 

# 해설

인사말(1~2절)

다른 서신과 비슷하나 수신자를 아들로 부르는 것이 특이하다. 아비가 아들에게 가업을 인계하는 심정으로 노목회자가 후배 목회자에게 본 서신을 썼음이 암시된다.

유대 혼합주의자들에 대한 경계 (3~11절)

교리적 측면에서 초대교회의 가장 큰 적은 율법과 혈통을 강조하는 유대주의와 인간의 이성과 지식을 강조하는 헬라주의였다. 이에 바울은 여기서 유대, 헬라 혼합주의자들이 교회에 들어와 논쟁을 위한 논쟁만을 야기함에 대해 목회자로서 이를 강력히 저지시킬 것을 권하고 있다. 그리고 율법의 기능과 더불어 제한적 속성을 약술하고 있다. 현대 교회에도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초월성을 받아들이려는 애씀은 전혀 없이 인본주의 사상 조류를 객관적 근거도 없이 추종하여 끝없는 논쟁을 야기시키는 자들이 더러 있다.

선배 사역자의 간증과 권면 (12~20절)

바울은 예수께서 교회를 핍박하던 자신을 오히려 교회의 일꾼으로 만드셨음을 강조함으로써 복음의 능력, 복음의 진실성, 복음의 사랑, 복음을 위한 헌신의 각오를 간증하고, 이제 사역자의 길에 들어선 디모데를 향하여 선한 싸움의 독려와 그 자세를 권면한다. 또한 바울은 19, 20절에서 한번 믿음에 들어섰다가도 교리적.윤리적 관점에서 믿음의 순결을 버린 배도자를 예시하여 경고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 핵심

1~2절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천명하면서 수신자인 디모데에게 문안 인사를 하는 내용이다.

 

# 묵상

서신의 첫 인사말 (1~2절)

바울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사도된 자임을 밝히고,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디모데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나타낼 때에 세상의 지위와 명예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에서의 디모데 (3절)

디모데는 율법에 얽매여 헛된 공론을 일삼는 자들을 깨우치기 위해 에베소에 머물렀습니다. 당시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오직 율법만이 구원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의 의미 (9절)

율법은 옳지 못한 사람들을 개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율법을 '몽학 선생'으로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율법이란 인간의 삶의 윤리적 지표를 제시하여 주는 안내자와 같다는 뜻입니다. 한편 믿음이 온 후에는 누구든지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사도직의 출처 (12절)
바울의 사도직의 권한은 그를 충성되이 여기시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계 사도들은 바울의 사도권이 출처가 없는 불분명한 것이라고 비방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주장합니다(고전 9:1~27).

긍휼을 입은 바울 (1:16~2:7절)

바울이 긍휼을 입은 까닭은 죄인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표본으로 삼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회개한 자에 대해서는 그 죄를 다시 기억치 않으시고(렘 31:34), 어느 누구라도 널리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사 55:7). 이런 점에서 바울이 이방인의 스승이 된 이유도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과 중보자되시는 예수님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에 빠져, 이방인들은 물론 자신의 동포인 사마리아인들까지 멸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이 세상 누구에게나 동인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있음을 보여주십니다(엡 3:6).


출처 : 바이블25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디모데전서 6장 7절~21절]
7절 -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절 -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절 -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절 -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11절 -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절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절 -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절 -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절 -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17절 -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절 -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절 -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20절 -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21절 -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 주제별 목록 작성
하나님에 대한 영광송
15절 : 재림의 주 / 복되신 하나님 / 유일하신 하나님 / 능하신 하나님 / 만왕의 왕 / 만주의 주
16절 : 불멸의 하나님 /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분 / 본 사람이 없는 분 / 볼 수 없는 분 /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받으실 분
부한 자들의 준수 사항
17절 : 교만하지 말 것 /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 것 / 하나님께 소망을 둘 것
18절 : 선한 일을 할 것 / 선한 사업에 부요할 것 / 나눠 주기를 좋아할 것 / 동정하는 자가 될 것

* 도움말
1. 올무(9절) : 영적으로 실족시키거나 범죄케 하는 유혹거리를 말한다.
2. 침륜(9절) :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나 형벌을 의미한다.
3. 정함이 없는(17절) : ‘지속적이지 못한’, ‘일시적인’의 뜻으로 물질의 유한성을 지적하고 있다.
4. 동정하는(18절) : 구체적으로 가난한 형제를 돌아보며 구제하라는 의미이다.
5. 허한 말(20절) : 여기서는 열매맺지 못하는 불신앙적인 말을 가리킨다.

* 말씀묵상
참된 사람들조차도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도록 미혹 받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교회 지도자라면 돈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인정받는 사람들 중에서 선택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결코 물질로 인해서 경건을 욕되게 하거나 오염시켜서는 안됩니다.

1. 경건과 이익
지족하는 마음만큼 부요한 것도 없습니다.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네 보물이 있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지만 우리의 보물은 경건이 아닌 물질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열망은 경건이 아닌 이익들에 치우쳐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이나 돈을 사랑하는 자들의 현재가 그럴듯해 보일지는 몰라도 그들의 신앙과 정신, 삶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하고 맙니다(9-10절). 오늘날과 같이 소비가 급증하고 우리의 관심을 분산시킬 만큼 다양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시대 속에서 바울과 같은 철저한 지족의 정신에로의 회복이 절실해집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의 행동원리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디모데는 거짓 교사들과 철저히 달라야만 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와 관련된 모든 악을 피하고(9-10절), 자질들을 겸비하며, 이미 받은 영생을 확고하게 붙잡아야 했습니다(11절). 11-12절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디모데에게 주는 메시지가 점차 강화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피하라, 좇으라, 싸우라, 취하라’는 네 가지 명령을 행동에 옮기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자세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사는 한 믿음의 선한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역시 14절에서도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까지 이 명령을 흠도 없고, 나무랄 것도 없이 잘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우리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소극적이고 타협적인 자세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솔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하겠습니다.

[도움질문]
1. 부와 돈을 사랑하는 자의 결국은 무엇입니까?(9-10절)
2. 디모데에게 주어진 네 가지 행동원리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십시오.(11-12절) 이 명령은 언제까지 지켜야 하는 것입니까?(14절)
3. 당신의 소망이 재물이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어떻게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제공:프리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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